샬롬~!
연일 계속되는 장마와 찜통 더위속에 모든 분들 건강히 잘 지내시죠?
오늘 저녁 7시에 김문수 목사님을 모시고 22명의 형제자매님들이 모인 가운데
"왜 킹제임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가"라는 주제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무나 은혜롭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성경번역의 변개된 과정과 오류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새삼스레 느끼는 시간이었으며
킹제임스 성경이 오랜 시간 동안 단 한번의 개정도 없이 얼마나 잘 보존되었는지
다시 한번 증명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진정으로 바른 말씀에서 바른 교리가 뿌리가 내려진다는 것을 재차 깨닫게 됩니다.
오늘도 창원에서, 양산에서 또한 포항까지 멀리서들 오신 형제자매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한동대에서 오신 교수님 부부께서도 열심히 경청하면서 바른진리의 말씀에 탄복하셨습니다.
다음 모임을 기대하면서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3-07-26 00:06:14 | 조영근
이렇게 죄와 죄들이 구분되기는 하지만 우리말의 특성 상 목사가 강단에 서서 선포하는 경우 죄의 용서 혹은 짧게 죄 용서 혹은 죄 사함을 받으라고 하지 죄들의 용서를 받으라고 길게 복수의 죄들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은 목사와 성도들이 서로 이해하며 들으면 됩니다. 다만 단복수가 구분되지 않은 개역성경으로 교리를 세우려 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만은 명심해야 합니다. 샬롬
2013-07-25 10:55:48 | 관리자
죄와 죄들의 차이
참고로 이 글의 앞부분은 워치만 니의 글입니다. 니의 글은 많은 경우 분명한데 어떤 경우에는 나누지 않아도 될 것까지 심하게 나누므로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이 글은 괜찮아서 올립니다. 워치만 니 말고 지방 교회의 위트니스 리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영해의 대가로서 매우 이상한 해석을 취하므로 그의 글은 아예 처음부터 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두 사람의 책들이 다 지방 교회가 운영하는 복음 서원에서 나오므로 조심하고 경계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아주 쉽게 죄와 죄들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죄는 단수이고 죄들은 복수이다. 우리는 죄와 죄들의 차이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만일 당신이 죄와 죄들을 구분할 줄 모른다면, 당신은 구원에 대하여도 분명하지 않을 것이다. 죄와 죄들을 분명히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았을지라도 자기의 구원 여부에 대해 분명하지 못하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무엇이고 또 죄들이란 무엇인가? 간단한 정의를 내리겠다. 죄는 당신 안에서 당신에게 죄들을 범하게 하는 능력이고, 죄들은 밖으로 범한 낱낱의 죄들을 가리킨다.
죄란 무엇인가? 나는 여기서 죄의 뿌리, 죄의 근원 혹은 본죄, 원죄 등의 명사는 쓰지 않겠다. 이 명사들은 다 신학자들이 지어낸 것이므로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겠다. 단순한 것이 좋다. 여기서 우리는 체험에서 이것을 보기로 하자. 우리 속에서 우리를 사욕과 정욕의 길로 향하게 하고 그런 자연스런 경향을 갖도록 우리를 지배하고 강요하는 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죄이다. 그러나 우리 속에서 우리를 강요하고 재촉하는 죄뿐 아니라 밖으로 행한 낱낱의 죄들도 있다. 성경에서 죄들은 행위에 속하고 죄는 생명에 속한다. 죄들은 우리의 손과 발과 마음 곧 우리 온 몸으로 행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말한, 몸으로 행한 일들이다. 그러나 죄는 어떠한가? 죄는 우리의 육체 안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일종의 율이다. 항상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하고 악을 행하게 하는 그것이 바로 죄이다.
우리가 죄와 죄들을 잘 구분하기 위해서는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의 말씀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는 죄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완전히 보여 준다. 이 여덟 장의 성경 말씀에서 한 가지 놀라운 것은 1장부터 5장 11절까지는 죄(sin)보다는 주로 죄들(sins)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서 5장 12절부터 8장까지는 주로 죄들이 아닌 죄를 보여 준다.
즉 로마서 1장부터 5장 11절까지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로마서 5장 12절 이후의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의 사람의 어떠함 곧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죄는 우리에게 우리의 생명이 어떠한가를 말해 준다.
로마서 5장 11절 이전의 말씀은 죽은 것을 살아나게 하는 것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거기서의 문제는 살아나게 하는 필요보다는 범한 낱낱의 죄를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5장 12절 이후의 말씀, 둘째 단락에서 우리는 몸의 지체들 안에 있는 법, 즉 우리 속에 있는 강하고 힘센 어떤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죄임을 알게 된다. 이 죄가 우리를 끌어당겨 죄를 짓게 강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원받을 필요가 있다.
죄들은 우리의 행위이기 때문에 성경은 죄들이 용서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러나 죄는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로 하여금 죄들을 범하도록 억압하고 강요하는 것이므로, 이 죄에 대해서는 해방될 필요가 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 준다.
한번은 어느 선교사를 만났는데, 그가 대화 중에 ‘죄 용서(the forgiveness of sin)’라는 말을 사용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서 성경의 어느 곳에 ‘죄 용서(the forgiveness of sin)’라는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주 많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한 군데만 보여 달라고 말했다. 그는 “당신은 없다는 말씀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성경 전체에서 ‘죄 용서(the forgiveness of sin)’라고 말한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죄들의 용서(the forgiveness of sins)’라고 말합니다. 용서받는 것은 죄들이지 죄가 아닙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내 말을 신뢰하지 않고 성경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는 내게 “니 선생님, 정말 그렇군요. 성경에서 죄들이 용서받는 것을 말할 때마다 복수를 표시하는 ‘s’를 붙였군요.”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용서받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닌 죄들임을 볼 수 있다.
죄들은 밖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용서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당신 안에 있는 어떤 것, 강하고 힘세며 당신에게 죄를 범하도록 재촉하는 그것은 용서받는 것이 필요하지 않고 그것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다. 당신이 그것의 권세 아래 있지 않고 그것과 관계를 갖지 않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죄들은 용서받을 때 해결된다. 그러나 죄는 그 권세 아래 있지 않고 그것과 관계를 맺지 않을 때 해결된다. 죄들은 우리의 행위이고 낱낱이 행한 것이기 때문에 용서가 필요하다. 그러나 죄는 우리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해방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성경은 한 번도 죄를 용서받는다고 말한 적이 없고 항상 죄들을 용서받는다고 말한다. 동시에 죄들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말한 적도 없다. 나는 성경이 그렇게 말한 적이 없음을 장담할 수 있다. 성경에는 죄에서 해방된다는 말은 있어도 죄들에서 해방된다는 말은 없다. 왜 그런가? 당신 속에서 당신을 억압하고 죄들을 범하게 하는 그것에 대하여 당신은 다만 거기에서 벗어나고 해방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성경에서 분명히 구분되어 있다.
여기서 나는 여러분에게 이것을 비교하여 제시해 보겠다.
성경에서 죄는 육체 안에 있고, 죄들은 행위에 속한다고 말한다.
죄는 우리 몸에서 원칙(생명의 원칙)이고, 죄들은 우리 몸에서 사실(생명의 사실)이다.죄는 지체 안에 있는 법이고, 죄들은 사실적인 범죄요, 실제로 행한 것이다.죄는 우리의 어떠함과 관계있고, 죄들은 우리의 행함과 관계있다.죄는 우리의 어떠함에 속하고, 죄들은 우리의 행함에 속한다. 죄의 범위는 생명의 범위이고, 죄들의 범위는 양심의 범위이다. (죄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능력이고 죄들은 양심의 능력이다. 사람은 생명 안에서 죄의 지배를 받고, 밖으로 사람이 많은 죄들을 범할 때 양심 안에 참소와 불안이 있게 된다.)죄는 총체적인 것이고, 죄들은 낱낱의 것이다.죄는 해방 받을 필요가 있고, 죄들은 용서받을 필요가 있다.죄는 성화와 관련되고(롬5:12-8장), 죄들은 칭의와 관련된다(롬1장-5:11).죄는 사람의 본성 안에 있고, 죄들은 사람의 길에 있다.
비유로 말하자면, 죄는 나무와 같고, 죄들은 나무의 열매와 같다.
많은 경우,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죄인을 빚진 사람에 비유한다. 우리는 빚을 지는 것이 아주 좋지 않은 일임을 알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빚을 진 사람에게 있어서 빚을 진 것도 문제이지만 그의 속에 빚을 지는 성향이 있는 것이 더 문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빚을 지다 보면 남의 돈을 빌려 쓰고서도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인은 남에게 빚진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즉 남에게 빌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만일 당신이 누구에게서 이삼백 원 또는 이삼천 원을 빌렸는데 나중에 갚을 능력이 없어서 친척이나 형제 또는 친구나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이 그 빚을 갚아 주었다 하자. 그런데도 삼사 일 후에 당신이 또 남에게 빌리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서 당신은 돈을 빌리는 것과 빌리고자 하는 마음은 별개임을 볼 수 있다. 밖에서 빌린 빚은 성경에서 말한 죄들과 같다. 걸핏하면 돈을 빌리려고 하는 습관과 성향은 죄와 같다. 그러한 사람은 누가 빚을 갚아 주었다고 해서 돈을 빌리는 일을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빚을 갚아 주는 사람이 있으므로 더욱 돈을 빌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범한 죄들을 처리하실 뿐 아니라 동시에 죄로 향하는 우리의 속마음도 처리하신다. 우리가 죄들을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죄를 처리하는 것도 중요함을 보아야 한다. 반드시 우리가 이 두 방면을 보아야지만 우리의 구원이 완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복음(워치만 니) 제1권 제1장에서 발췌함
박옥수 구원파의 문제
죄와 죄들의 단복수 구분이 안 되면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박옥수 구원파에서는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이라는 광고를 버스에 붙이고 대형 체육관에서 집회를 갖습니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죄와 죄들을 전혀 구분하지 않으므로 이들은 ‘죄 사함’이 죄들뿐만 아니라 죄(죄성)의 용서(사함)을 뜻한다고 믿고는 한번 구원받으면 그 사람은 완전히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 삶에서는 죄들이 매일 반복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교주 목사는 “죄 없다!”만 외치므로 오래 거기 다니다 보면 양심이 마비되기 시작합니다. 거기서는 성화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합니다. 성화 이야기를 하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됩니다. 그래서 전혀 성화를 모르는 신도를 만들어 놓습니다. 요일1:8-9에는 죄와 죄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8절 만일 우리에게 죄(단수)가 없다고 우리가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며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9절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복수)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1:8-9).
물론 개역성경은 9절 역시 죄들 대신 죄라고 단수로 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개역성경으로 이 구절을 읽으면 죄가 없어지는 것이 되고 맙니다. 8절은 우리(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죄 즉 죄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믿음에도 불구하고 죄들이 있으므로 고백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9절은 말합니다.
또한 구원파 교주는 사람에게 두 개의 본성이 있음을 가르쳐주지 않고 죄(죄성)이 전혀 없는 새 본성만 있다고 가르치므로 추종자들은 심각하게 양심의 찔림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지나다 보면 “죄 없다”는 소리에 취해서 양심이 무뎌지므로 악한 일을 하고도 찔림이 생기지 않는 나병 현상이 발생합니다.
또한 모 단체에서는 아담의 죄(원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지옥에 간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사람은 육신적으로 죽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지옥 불 속에 들어가는 둘째 사망은 죄인 각 사람의 죄들 때문입니다. 아담의 죄 때문에 사람이 다 지옥에 간다면 하나님은 불의의 하나님이 되고 맙니다.
결론을 내립니다.
'죄들’에 대해 하나님이 마련하신 해결책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용서입니다(요일1:7). 아무리 많이 울어도 참회해도 선행을 해도 죄들은 용서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피만이 죄들을 용서합니다(마.
‘죄’에 대해 하나님이 마련하신 해결책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한 구출입니다. 로마서 5장은, 죄인은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죄인이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롬5:19를 보기 바랍니다. 즉 사과 나무가 죄이고 사과들은 그 나무에서 나오는 죄들입니다.
죄 문제의 해결책은 부모를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출생에 의해 아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담에게서 나오려면 죽어야 하며 롬6:3-4는 어떻게 우리가 아담에 대해 죽었는지 보여 줍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으로,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와의 이 연합 안에서 우리는 아담 안에서 또 죄에서 죽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위치라는 측면에서는 사실이지만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상태는 그렇지 못합니다. 현실은 우리에게 아직 옛 본성 즉 육신(죄)이 있음을 잘 보여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의 성화 과정을 통해 죄를 십자가에서 죽여 처리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이 죄에 대해 한 번 죽으셨으므로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 매일 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역시 2000년 전에 죄에 대해 한 번 죽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여겨야 합니다(롬6:11). 롬6:14의 “죄가 너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의 단수 죄는 성화와 연관이 있는 죄성을 뜻합니다.
그래도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롬6:1-2) 예,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이 여기에서 의미한 바는 우리가 판결을 받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말씀은 우리가 새 본성을 받아 죄의 법에 대해 죽었으므로 더 이상 죄의 법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하여 사도는 우리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롬6:11).
이 말은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해 죽은 자로 여기고 또 옛 생활 습성에 대해서도 죽은 자로 여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라고 말하며 또한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의 죽을 몸 안에서 군림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정욕 안에서 죄에게 순종하지 말라”(롬6:12)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될 때 다음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너희를 지배하지 못하리라(롬6:14).
위의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믿는 자의 위치는 하나님 앞에서 확고히 정착되어 안전하나 그의 상태는 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 본성이 그를 지배하느냐 새 본성이 그를 지배하느냐에 따라 그는 죄로 가득하기도 하며 죄가 없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염두에 둔 채 로마서 강해 노트를 보면 강해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참고로 영어를 하시는 분들은 다음의 자료를 보기 바랍니다.
http://www3.telus.net/trbrooks/SinSins.htm(*) 역시 워치만 니 자료이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음입니다.
구약은 죄와 죄들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습니다.그러나 신약은 죄와 죄들이 놀랍도록 명확히 구분됩니다.
죄(단수): “Sin” in singular number: Matt.12.31; John 1.29; 8.34 (twice), 46; 9.41 (twice); 15.22 (twice), 24; 16.8,9; 19.11; Acts 7.60; Rom. 3.9,20; 4.8; 5.12 (twice), 13 (twice), 20,21; 6.1,2,6 (twice), 7,10,11,12,13,14,16,17,18,20,22,23; 7.7 (twice), 8 (twice), 9,11,13 (thrice), 14,17,20,23,25; 8.2,3 (mg., thrice), 10; 14.23; 1 Cor. 15.56 (twice); 2 Cor. 5.21 (twice); 11.7; Gal. 2.17; 3.22; 2 Thess. 2.3; Heb. 3.13; 4.15; 9.26,28 (the second “sin”); 10.6,8,18; 11.25; 12.1,4; 13.11; James 1.15 (twice); 2.9; 4.17; 1 Peter 2.22; 4.1; 2 Peter 2.14; 1 John 1.7,8; 3.4 (twice), 5 (the second “sin”), 8,9; 5.16 (twice), 17 (twice).
죄(복수)“Sins” in plural number: Matt. 1.21; 3.6; 9.2,5,6; 26.28; Mark 1.4,5; 2.5,7,9,10; Luke 1.77; 3.3; 5.20,21,23,24; 7.47,48,49; 11.4; 24.47; John 8.21, 24 (twice); 9.34; 20.23; Acts 2.38; 3.19; 5.31; 10.43; 13.38; 22.16; 26.18; Rom. 4.7; 7.5; 11.27; 1 Cor. 15.3,17; Gal. 1.4; Eph. 2.1; Col. 1.14; 1 Thess. 2.16; 1 Tim. 5.22,24; 2 Tim. 3.6; Heb. 1.3; 2.17; 5.1,3; 7.27; 8.12; 9.28 (the first “sins”); 10.2,3,4,11,12,17,26; James 5.15,20; 1 Peter 2.24 (twice); 3.18; 4.8; 2 Peter 1.9; 1 John 1.9 (twice); 2.2,12; 3.5 (the first “sins”); 4.10; Rev. 1.5; 18.4,5.
이것을 정리하면 내용은 위와 같습니다.
2013-07-24 17:28:25 | 관리자
동방의 독수리와 14만 4천
19세기 중반 전 세계가 격변하는 시기에 미국에서는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등의 이단이 생겼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 같은 경우는 노골적으로 자기들만이 계시록의 14만 4천을 구성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1,000년간의 여호와의 왕국이 이루어지면 자기들만이 구원에 참여하여 왕이 되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제사장으로 봉사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윌리엄 밀러에 의해 시작된 안식교는 역사적 전천년설에 의거하여 다니엘서 8장 14절의 2,300일을 2,300년으로 잘못 해석하여 그리스도의 1차 재림이 1844년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다가 주님의 재림이 없자 크게 실망한 뒤 지금은 그분이 조사 심판 중이며 2차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고 억지 주장을 폅니다.
몰몬교는 종말론과 미국인 선민의식에 빠진 조셉 스미스가 도를 닦다가 UFO의 인도를 받고 특별 계시를 받아 추종자를 거느리게 된 미국인들의 토속 샤머니즘 종교입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계룡산에서 도를 터득하여 혹세무민하는 이단의 한 종류로 보면 됩니다. 그 안에는 아메리카 대륙과 미국인들에 대한 강한 선민의식이 들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외국계 이단들의 특징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내부의 신도들에게 신비적 종말론을 주입하여 교회와 교주에게 충성봉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14만 4천에만 들어가면 영생복락을 누린다고 신도들을 부추겨 재산을 탈취하고 맑은 정신을 빼앗아가는 것이 이런 이단들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어느 이단이나 거의 비슷하지만 일단 이런 데 빠지면 이성이 마비되어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본인들만이 선택받은 자들이라는 강한 확신에 잠겨 바른 것을 말해 주는 모든 사람을 배척하고 자기들이 당하는 고난을 주님을 위해 핍박받는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한편 한국에서는 1950년대 6.25 전쟁 이후 박태선의 전도관을 필두로 해서 역시 선택받은 14만 4천을 미끼로 내걸며 동시에 한국 민족의 우월함을 강조하는 자생된 사이비 종파들이 있습니다. 이들 역시 미국의 이단들처럼 신도들에게 종말론을 강하게 주입하고 재림에만 초점을 맞추어 살도록 강요하며 특히 한국이 동방의 독수리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선민의식을 고양시킵니다.
2013년 3월 4일 자 <한겨례 21>은 한국 내 사이비 교회들의 문제가 심각함을 인식하고는 민중들을 선도하고 계몽하기 위하여 ‘하나님 20명, 재림예수 50명’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다음은 그중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신과의 합일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적 신앙 행태는 지금까지도 한국 개신교계 소종파의 주요 특징이다. 2000년 문화관광부의 의뢰로 국제종교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 ‘한국의 종교단체 실태조사연구’는 개신교 계통 소종파를 크게 △신비주의 △종말론 △외국계 신흥종파 3가지 계열로 분류하고 있다. 이 가운데 수적으로 가장 우세한 것은 신비주의 계열이다. 신비주의 계열은 다시 △베뢰아아카데미(귀신론) 분파 △신비주의 기도원 분파 △직통 계시파 △전도관 분파 △장막성전 분파 △통일교 분파로 나뉘는데, 최근 개신교계가 대대적 배척운동을 벌이고 있는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은 장막성전 분파에 속한다.
장막성전은 1960년대 경기도 과천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서울대공원이 들어선 막계동 일대가 이들의 ‘성지’다. 신천지 교회의 본부가 과천에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장막성전은 1966년 한국 소종파 운동 사상 가장 나이가 어린 유재열(당시 17살)이 세워 화제를 뿌렸다. 장막성전이란 이름은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 15장 5절 “또 내가 이일 후에 보니 하늘에서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유재열은 1960년대 초부터 부모와 함께 서울 상도동의 호생 기도원을 다니며 신비주의 신앙에 몰입했다. 그는 1965년에 예수의 계시를 받았다며 이듬해 ‘종말 심판의 피난처’라는 장막성전을 설립했다. 전성기에는 청계산 저수지가 있는 막계동 일대에 신도 2천 명이 모여들어 집단생활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조직 운영에 불만을 품은 내부자의 투서 때문에 사기죄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나온 뒤 교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는 1980년 기성 교단에 교회를 헌납하고 홀연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귀국해 사업가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떠난 뒤 장막성전은 신천지, 증거장막성전, 무지개증거장막 등 여러 갈래로 분리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재열은 자신에게 만국을 다스릴 권세가 있으며 14만4천 명에게 구원의 징표를 주는 사명이 주어졌다고 했는데, 그의 성서 해석과 교리의 기본 골격은 핵심 추종자이던 이만희(현 신천지 총회장)를 통해 지금의 신천지에 고스란히 전승된 것으로 알려진다.
신천지에서 알 수 있듯, 대부분의 소종파들은 강력한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존재와 함께 신비주의와 종말론적 흐름이 섞여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진구 연구실장은 “예언서·계시록의 종말론과 민족주의적 선민사상이 결합해 재림예수가 한국에 온(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1960년대 이후 한국 소종파에서 보이는 보편적 흐름”이라고 했다.
이런 흐름이 형성된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한국교회사 연구자인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는 “교권화된 기성 교회에 대한 불만과 영적 체험에 대한 열망에서 싹튼 해방 전 신비주의 그룹이 전쟁의 참화와 극심한 빈곤의 경험 속에서 종말론적 계기와 만나고, 때맞춰 등장한 카리스마적 개인들이 이 흐름을 주도하며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등장한 소종파들은 처음엔 기독교의 카테고리 안에 머무르며 활동하지만, 교세가 늘고 주류 교회의 배척이 시작되면 점차 그 경계를 벗어나게 된다. 그들의 교주들은 선지자나 성령, 재림예수를 자처하다 말년엔 스스로를 신의 반열에 올려놓는 경우도 있다. 박태선(천부교)· 안상홍(하나님의 교회) 등이 대표적이다. 탁지원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에 따르면 국내 소종파 지도자 중에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만 20여 명, 재림예수를 자처하는 경우가 5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 밖에 하나님의 부인이나 보혜사 성령, 혹은 성서 속 인물인 엘리야나 다윗을 자처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소종파 집단 안에서 지도자 개인의 카리스마를 절대화하다 보니, 공교회로서의 성격이 약화되고 여러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횡령이나 폭력, 추행 같은 문제가 외부로 노출되고 결국 사법 권력의 개입을 부르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런 기사에서 보듯이 한국의 소종파 사이비들의 특징은 일단 한국 민족을 특별히 선택받은 동방의 독수리로 보며 그중에서도 자기들에게 속한 자들만 계시록의 14만 4천으로 규정하여 성도들의 맹목적인 추종을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통일교에서는 이미 재림주가 재림하였다고 보고 있으며 계시록 7장 2절에 따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곳이 ‘해 돋는 데’ 즉 동방의 나라인 한국이라고 해석합니다(하나님의 바른 말씀은 ‘해 돋는 데’라고 하지 않고 ‘동쪽’이라고 말함). 따라서 통일교 신도들은 자신들의 교주인 문선명(文鮮明)이 바로 그 재림주라고 주장합니다.
전도관에서는 감람나무가 나타나면 말세가 된다고 말하고 자신들의 교주인 박태선(朴太善)이 곧 감람나무이며 그가 왔으므로 지금이 말세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악조건에서는 14만4천 명만이 천년 성에 들어가고 호조건에서는 14만4천 명 외에도 수많은 무리가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전도관의 신앙촌 입주자의 수에 따른 변화를 예상하고 내놓은 주장입니다.
요즘 교회들에 큰 문제를 안기고 있는 신천지의 교주 이만희는 자신을 ‘약속의 목자’, ‘이긴 자’, ‘대언자’,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합니다. 신천지의 핵심 교리는 성경이 온통 비유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비유를 바로 풀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해 전에 미국에서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오다가 친절한 기장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성경을 읽고 있는 나를 보고는 목사냐고 묻고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의 믿음에 대해 소개하였습니다. 친절한 분으로 알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분의 성경 해석 방법이 기묘했습니다. 그분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마태복음 13장 34-35절을 인용하였는데 개역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개역: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그분은 이 말씀을 근거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모두 비유이며 심지어 창세기 이후의 모든 것이 다 비유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비유를 바르게 깨달은 사람에게 성경을 배워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이분은 신천지에 속한 분이었습니다.
이분의 주장에도 분명히 일리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쓰는 개역성경이 그렇게 이야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이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으니 그분의 말씀은 모두 비유가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마도 정상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알려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계룡산 도사들과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바른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흠정역: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없이는(without a parable)그들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것은 대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내가 내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되 세상의 창건 이후로 은밀히 간직된 것들을 말하리라, 하였느니라.
우리 주님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그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요점을 이야기할 때마다 쉬운 비유를 들어 핵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영어로는 ‘without a parable’인데 이것이 개역성경처럼 ‘비유가 아니면’으로 잘못 번역되면 수십만의 사람들을 무지와 저주 속에 빠뜨립니다. 이런 오역으로 인해 신천지에 빠져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이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신천지는 성경 전체를 이와 같은 비유 해석 즉 영해(靈解)로 풀고는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이 바로 신천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14만 4천명이 구원받는 자로 신천지에 입교하면 신천지 즉 ‘새 하늘과 새 땅’이 과천의 청계산 부근에 임하게 되며 그들은 육체로 영생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면서 신천지가 들고 나오는 것이 한국 민족의 우수성과 최근에 이루어지는 한류 열풍입니다. 14만 4천의 대부분은 한국 사람들 가운데서 나오며 이런 일을 위해 싸이 등의 한류 열풍이 -비록 저급하지만 - 온 세상에 파급되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신천지 교주가 있는 한국은 성지 중의 성지이며 14만 4천에 속할 한국 사람들은 선민 중의 선민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신천지 역시 과거에 토속 종파들이 사용하던 방법대로 비유 해석(영해)의 계시록 설교와 ‘동방의 독수리’ 타령을 다시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는 좋든 나쁘든 한류 붐을 일으킨 것은 싸이를 비롯한 출중한 한민족 가수들 - 신천지의 한민족 선민사상에 따르면 - 인데 신천지는 이들이 일으킨 한류 열풍은 선민사상을 증명하기 위해 대대 선전하면서도 이런 연예인들의 한류는 저급 한류라고 주장하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신천지의 영적 한류가 새로운 차원의 한류라고 주장합니다.
다음은 ‘새로운 한류 신천지 한류’라는 제목으로 신천지뉴스에 난 기사입니다.
‘
강남 스타일’로 세계적인 톱스타가 된 싸이는 이제 세계 각국을 누비며 노래한다. ‘강남 스타일’의 B급 정서는 전 세계인에게 통했고, 덕분에 싸이는 좋게든 나쁘게든 국가 홍보에 공을 세웠다. 최근 후속곡 ‘젠틀맨’의 관심과 인기도 상당하다. 그러나 이번 ‘젠틀맨’의 가사는 물론 뮤비의 선정성이 심각한 수준이다. 국위 선양이니 창조 문화니 하며 싸이를 온통 찬양하고 있지만, 과연 그 내용과 질이 어떠한지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한류란 대한민국의 문화와 정서가 세계에 전파되어 널리 관심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한류란 비단 대중문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나아가 정신적인 것, 종교적인 것까지 아우를 수 있는 통섭(막힘이 없이 여러 분야에 통함)의 흐름이어야 한다. 이에 최근 세계의 종교인들을 눈뜨게 한 새로운 한류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4월 중순, 인천공항에 다수의 외국인 목사들이 내한했다. 미국, 영국, 독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세계 각국의 비행기가 착륙했다. 이 나라들은 작년 여름부터 시작된 신천지 예수교의 총회장의 4차에 걸친 계시록 순회강연을 접한 국가들이다. 총회장은 수많은 언론과의 인터뷰와 방송 출현을 통해 뚜렷한 계시복음을 전했고, 각국 정상과의 대담과 종교 지도자들의 기도회에 참석하여 새로운 평화의 재료로서 ‘하늘 문화’를 제시했다. 현지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전에 들어 보지 못했던 미래에 관한 새로운 해법은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한국행을 결심하게 했다. 이미 20년이 넘는 목회 연륜과 수만의 성도수를 가르치고 있는 목자들이 대한민국으로 종교 유학을 오게 된 것이다. 이들은 신약의 예언이 성취된 것을 직접 확인하며, 비유풀이부터 계시록의 실상까지 보름부터 길게는 석 달까지의 일정으로 성경 전반을 공부하고 있다.
5월 잠실 올림픽 홀에서 ‘신천지 말씀 대성회’가 열렸다. 이들은 행사에 참석하여 자진해서 단상에 올라 뜨거운 간증을 토했다.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으로 불러 주셨고, 성경 육천년의 역사를 깨닫게 해 준 약속의 목자께 너무 감사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또한 지금껏 무지의 시대를 살던 이 시대 신앙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 그리고 성경을 깨닫는 것임을 본국의 성도들에게 가르치겠다고 약속했다. 많게는 천만이 넘는 성도를 거느린 목자의 입에서 나오는 탄성과 말씀 앞에서의 순종은 과연, 이 역사가 확실한 증거와 비전을 가졌음을 다시 한 번 입증하였다.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흐름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신천지 한류, 오늘도 신천지는 하늘의 문화와 평화의 정신을 통하여 혼돈한 지구촌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활발히 하고 있다. 바야흐로 한류가 대세인 오늘날, 구습을 뛰어 넘어 신한류를 개척한 신천지... 이제는 말세론이 아닌 창조론을 논할 때임을 세계만방에 선포한 신천지는 신패러다임의 주자로 우뚝 섰다.
사이비들이 선민의식 고취와 함께 혹세무민하는 양상은 전 세계 대부분 이단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신천지가 폄하한 싸이가 바로 장막성전의 창시자인 유재열의 사위라는 점입니다(“해 아래 새 것 없다” 신천지의 계보, 교회와 신앙).
싸이를 비롯해서 한류 열풍을 주도하는 K 팝 가수들이 온 세상에 전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호루스의 눈, 루시퍼, 단일세계정부, 천주교 마리아 찬양 등 뉴에이지 사상입니다. 이런 적그리스도의 한류 열풍과 하나님의 선민과는 사실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등의 공작을 통해 한국인들이 마귀의 사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파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게 올바른 분석입니다. 적그리스도의 도래를 찬양하는 한류 열풍에 대해서 우리는 경각심을 가지고 바르게 대처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일입니다.
이제 계시록 영해로 역시 우매한 사람들을 사로잡는 안상홍 증인회의 동방의 독수리 주장을 살펴보겠습니다. 다음은 “동방의 독수리는 하나님에 대한 상징이다(안상홍님)”라는 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마지막 때 동방의 구원자로 등장하신 안상홍님을 믿고 있습니다.동방의 구원자이신 안상홍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은 성경 66권 예언에 따라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신, 영적 고레스이신 안상홍님을 담대히 전하는 전도자들입니다.
<동방의 독수리는 하나님에 대한 상징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 동방에 구원자를 보내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사46:11)
동방의 독수리는 구원자께서 동방 나라에 사람으로 등장하시어 하나님의 모략인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예언입니다.
그러나 훼방자들은 사체를 먹는 독수리를 하나님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하며 성경의 예언을 부인하고 있습니다.성경을 살펴보면 다양한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성정을 알려주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성경의 비유는 인간이 이해하기 쉽도록 특징을 인용한 것입니다.그러므로 비유된 동물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찾으려는 의도는 억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자로 비유하기도 하고(계5:5)때로는 어린양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요1:29).또한 포도나무와 (요15장) 성전으로도 표현합니다(계21:22).
하나님을 사자, 어린양, 포도나무, 성전으로 표현하신 데는 각각 뜻이 있습니다.
사체를 먹는 동물에 하나님을 비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움직이지 못하는 포도나무나 성전을 하나님으로 표현하는 것도 불가합니다. 사체를 먹는 독수리에 하나님을 비유하면 안 된다는 훼방자들의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독수리로 비유하셨습니다.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19:4) “마치 독수리가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신32:11)
동방의 독수리로 임하신 하나님은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이십니다.안상홍님께서는 두 번째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모략인 구원을 이루시고 계십니다.안상홍님께서 구원을 베푸시는 곳은 절기 지키는 시온, 하나님의 교회입니다.안상홍님의 신성을 깨달아 안상홍님께서 이루시고 베푸시는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셔서 영원한 생명의 축복 받는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을 통해 우리는 안상홍 증인회 역시 한민족의 우수성을 고취시키면서 동방의 독수리가 곧 한국에 임한 구세주 안상홍이라고 주장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해석을 정당화하기 위해 심지어 계시록의 밧모 섬과 예루살렘 그리고 대한민국이 수평으로 같은 위도에 있다고 세계 지도에 수평으로 금을 그어 놓고는 한국이 곧 계시록이 말하는 ‘해 돋는 데’라고 주장합니다. 실제 지도를 펴서 수평으로 금을 거 보면 이것이 거짓말임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여호와’에 ‘o'이 세 개 있듯이 ’안상홍‘에도 ‘o'이 세 개 있어서 안상홍이 여호와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런 추론은 모두 비유 해석 즉 영해(靈解) 때문에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역시 기존 교회들로부터 이단 판정을 받은 부산제일교회 박무수 목사의 동방의 독수리 설교인 ‘동방의 독수리의 비밀’(사46:11)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의 속은 아무도 모르는 깊은 물에 비유하고 계십니다. 마음 속 제일 깊은 곳에 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깊이 숨겨진 죄까지 드러내놓고 회개할 때 눈이 밝아져서 내 앞에 예비 된 복이 보입니다.
1. 동방의 독수리는 모략을 이룰 사람입니다.만일 여러분이 거짓 설교를 듣는 다면 여러분의 영혼은 노략질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들을 분별하여 아무 설교나 들으면 안 됩니다(요일4:1, 잠13:20). 교회에 가면 흔히 구약설교를 듣게 됩니다. 그러나 4단계 회개 그리스도로 수건을 벗기지 않으면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고후3:14).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모르니 ‘동방의 독수리’를 바르게 깨달아 설교하는 분이 없습니다. 동방의 독수리는 본문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모략을 이룰 사람’입니다(사46:11).
2. 동방의 독수리는 참 목사입니다.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모략입니다. 모략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명철한 자에게 모략을 주시며 명철한 자가 모략을 얻게 됩니다(잠1:5). 명철한 자는 바로 하나님이 인정하는 참 목사입니다(렘3:15). 모략을 얻은 참 목사가 여러분을 지혜와 명철로 양육하여 넉넉히 천국 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므로 참 목사를 지칭하는 ‘동방의 독수리’를 ‘악한 날짐승’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모략을 얻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사람을 ‘악한 날짐승’으로 바꾸어 놓아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였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시107:10-11).
3. 모략은 사람의 깊은 것까지 들여다봅니다.여러분이 독수리의 특성을 알면 왜 참 목자를 독수리에 비유하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명철한 참 목사가 말씀을 힘 있고 강하게 전하며 모략을 얻은 자로서 사람의 깊은 속을 들여다보는 밝은 눈이 있습니다(잠24:5, 잠20:5). 참 목자는 모략으로 성도의 깊은 속에 들어있는 죄를 보고 기도하며 말씀을 선포하여 영혼을 살려 주는 것입니다(눅23:34). 우리도 명철한 자에게서 나오는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책망과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잠21:16). 이것이 우리의 살 길입니다.
동방의 독수리는 특정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명철한 자가 동방의 독수리이며, 이 뜻을 동방에서 이루신다 하셨으니 우리는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 모두 참 목사의 설교를 듣지 않은 것을 회개하고 마지막 때가 가까워질수록 더욱더 참 목사의 설교를 사모하며 명철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박무수 목사는 동방의 독수리가 참 목자 - 물론 자기 자신 - 를 가리킨다고 영해하고 있습니다. 박 목사는 영해의 대가입니다. 그의 4단계 회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입었던 옷을 로마 병사들이 4조각으로 나눈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옷이 4조각으로 나뉘었으니 무조건 4단계 회개가 필요하다고 영해를 합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해석이 달라지는 체계를 영해 체계라 합니다. 이런 해석 체계에서는 교주가 원하는 대로 성경을 해석하면 그것이 곧 그 말씀의 확고부동한 해석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국내 자생 사이비 교주들은 성도들의 민족의식 함양을 위해 ‘동방’이 나오는 구절을 찾고는 문맥에 상관이 없이 그것을 한국이라고 주장하고 자기가 만든 집단이 바로 동방의 독수리가 임하는 곳이요, 거기에 속한 신자들이 14만 4천의 선택받은 자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동방의 독수리는 워낙 유명해져서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김대호라는 작가가 <동방의 독수리>라는 제목의 책을 썼는데 이것은 안철수를 연상케 하는 18대 대통령 한철주를 주제로 한 미래소설입니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한민족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 하나인 단 지파의 후예로서 미래에 동방의 독수리로 세상을 장악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반도는 성지 중의 성지로 여겨집니다. “신앙의 목적에 대한 계시를 받고 지중해 서편에서 동방으로 이동해 온 위대한 민족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민족입니다.”
동방의 독수리는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가?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합니다. 또한 특별한 일이 없으면 문자 그대로 풀어야 합니다. 이사야서 40장 이후에서 동쪽을 뜻하는 east라는 단어는 세 군데(사41:2; 43:5; 46:11)에만 나옵니다. 그런데 사43:5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씨를 동쪽에서 데려오신다는 말이므로 이 주제와는 상관이 없으므로 나머지 두 구절만 살펴보겠습니다.
누가 동쪽으로부터 의로운 사람을 일으키고 그를 불러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으며 그 앞에 민족들을 주어 그로 하여금 왕들을 다스리게 하였느냐? 그분께서 왕들을 먼지같이 그의 칼에, 쫓겨 가는 지푸라기같이 그의 활에 넘겨주시매 그가 그들의 뒤를 쫓아가되 심지어 자기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따라 안전하게 지나갔나니(사41:2-3)
내가 동쪽에서 굶주린 새를 부르되 곧 먼 나라에서 나의 계획을 집행할 사람을 부르리라. 참으로 내가 그것을 말하였은즉 또한 그것을 이룰 것이요, 내가 그것을 작정하였은즉 또한 그것을 행하리라(사46:11).
우리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어 잡혀간 이후에 그들을 해방시킬 사람을 동쪽의 메대/페르시아에서 세우려 하시면서 예언의 말씀으로 사41:2~3을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사44:28-45:3에서 고레스가 바로 그 사람 즉 하나님께서 동쪽에서 일으키실 자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46:11에서 다시 한번 고레스를 가리키며 동쪽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집행할 사람을 부르겠다고 하십니다.
메대/페르시아는 이스라엘에서 보면 동쪽에 있고 또 살짝 북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41:25에서 동일하게 고레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북쪽으로부터 한 사람을 일으켰은즉 그가 오리라. 그가 해 뜨는 곳에서부터 내 이름을 부르며 회반죽 위에 임하듯,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는 것 같이 통치자들 위에 임하리라(사41:25).
그러므로 사이비 이단들이 자기들의 교주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이사야서 말씀은 한국의 이단 교주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동북쪽에 위치한 메대/페르시아 왕국의 고레스 대왕입니다. 이것 이외의 다른 해석은 사적인 해석이요, 비유 해석이며 영해의 더러운 산물입니다.
더욱이 이들이 그토록 칭송하는 동방의 독수리는 바르게 된 성경에서는 ‘동쪽에서 오는 굶주린 새’로 되어 있습니다. 굶주린 새는 까마귀도 될 수 있고 육식을 하는 새는 다 될 수 있습니다. 이 새가 꼭 독수리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명백히 개역성경은 이것을 오역하였습니다.
영어 KJB와 ASV는 이 단어를 ‘a ravenous bird’(굶주린 새)로 번역하였고, NKJV, NASB, NIV와 RSV는 ‘a bird of prey’(희생물을 먹는 새)로 번역하였습니다. 어떤 역본도 개역성경이 독수리라고 번역한 이 히브리 단어를 독수리 즉 eagle로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안상홍 증인회에서 하나님을 독수리라고 하면서 언급한 출19:4와 신32:11은 하나님을 독수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수리처럼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국어를 제대로 보지 않고 무지하게 해석한 결과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비유로, 은유로 풀어야 할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한 번도 독수리로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자기 백성을 위해 독수리처럼 일을 하셨습니다.
이런 사실을 직시한 대한성서공회는 개역개정판을 내면서 독수리를 '사나운 날짐승‘으로 바꾸었고 그 결과 ’동방의 독수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던 이단들에게는 치명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개역성경만 고집하고 성경을 바꾼 성서공회를 향해 불평을 제기합니다. 그토록 좋아 하던 독수리가 사라졌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킹제임스 성경 같이 바르게 번역된 역본으로는 자기들의 영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방의 독수리뿐만 아니라 14만 4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있는 그대로 믿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계시록 7장 4-8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4 또 내가 봉인된 자들의 수에 대하여 들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십사만 사천이더라. 5 유다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갓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6 아셀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7 시므온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8 스불론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라. 4절이 말하듯이 14만 4천은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봉인된 자들’입니다. 얼마나 명백합니까? 이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환난기에 왕국의 복음을 선포할 유대인들입니다. 성경에서 이방인을 가리켜 ‘유다 지파, 르우벤 지파…’라고 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길까요? 개신교 내에 천주교에서 전수받은 이스라엘 대체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해가 안 되는 구절이 나오면 이들은 곧바로 영해 작업에 들어갑니다. 그 결과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바로 신천지, 안상홍 증인회 등에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유다 지파, 르우벤 지파…’의 14만 4천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재산을 탕진하고, 가정이 파괴되면서도 육체를 입고 영생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에는 미국, 영국, 한국 등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한때 영국이 온 세상을 지배할 때에는 앵글로 색슨족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12지파’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이런 사상이 넘어간 뒤에는 이방인(미국인)이면서도 유대인 행세를 하며 토요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안식교와 여호와의 증인들이 나왔습니다. 이러다가 이런 부류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는 한민족이 혹은 한민족의 어떤 종교 지도자가 동방의 독수리로 둔갑하고 그런 단체에 속한 자들이 14만 4천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들 중 극단적인 이들은 심지어 구원받으려면 구약의 유월절을 지키고 토요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다 비유 해석 즉 영해(靈解)의 추잡한 쓰레기이며 성경대로 믿는 우리 성경 신자들은 이런 데 일고의 가치도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해의 근원이 바로 천주교의 교리를 확립해 준 어거스틴과 그의 교리를 그대로 차용한 칼빈이므로 우리는 어거스틴 주의와 칼빈주의를 경계합니다. 둘 다 교회의 세상 정치를 위해 성경을 왜곡한 사람들의 틀린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단 종파들이 비성경적인 종말론을 가르치는 것은 신자들에게 자신들의 종파만이 마지막 때에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내세워 자신들을 따르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러한 주장에 미혹되지 말고 항상 경계하며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행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마25:13).
이단 종파들의 교주들은 거의 다 기독교회의 성직자 혹은 광적인 신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비성경적인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경전으로 삼아 기성 교인과 불신자들을 미혹하여 자기들만의 집단을 형성하고 반사회적이며 비윤리적인 생활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항상 근신하여 깨어 있음으로써 이들의 미혹에 대항하며 현혹되지 말고 미혹된 자들을 악에서 건져내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이런 사이비 이단 종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천주교와 개신교의 이스라엘 대체 신학, 무천년주의를 타파하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저 중동에 있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씨인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교회가 도둑질하기 위해 영해/비유 해석이 들어오게 되었고 그것이 잔혹한 마귀의 한민족 선민사상과 결합되어 한국에서만 가능한 종말론 사이비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완전히 보존해 주신 바른 성경을 가지고 바른 해석으로 바르게 진리 위에 서서 ‘환난 전 휴거’의 복된 소망을 기다리며 맡은 바 책무를 다 감당하는 좋은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한겨레: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4012.html신천지: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534싸이: https://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629안상홍: http://cafe.naver.com/festival1004/1183박무수: http://www.church.or.kr/board/board_view_01.asp?brdid=20&idx=1069
2013-07-23 11:39:59 | 관리자
11~20번 빠진내용 입니다.
11 행위로구원받지못함 롬3:28
12 믿음과 은혜로 구원 엡2:8,9
13 구원의 약속 요5:24
14 회개 행2:38
15 영접 계3:20
16 성령의 새롭게 하심 딛3:5
17 구원의 확신 요일5:13
18 재림의 약속 요14:3
19 구원의 안전성 벧전1:5
20 구원의 안전성2 히7:25
2013-07-19 19:53:56 | 임원섭
안녕하세요?
부산 지역에 모임이 있으니 한번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2161
감사합니다.
2013-07-19 11:07:09 | 관리자
답답한 심정을 진솔하게 적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이게 교회의 현실이고요.
위의 덧글에 있는 동경의 서홍준/체희녀 부부와 연락해서 교제를 나누어 보세요.
평강을 기원합니다.
샬롬
정동수
2013-07-19 11:06:14 | 관리자
그리스도 예수님안에 귀한 형제님께 인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 같은 고민을 하고 있기에 부족한 저의 생각을 적어 봅니다.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먼저 주님께 그분들을 위해 믿음으로 기도를 드리시면 어떨까 합니다.
빌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들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빌 4:7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리고나서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리의 말씀인 '킹제임스 바이블'을 전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말씀을 전하실 때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고전 13:1 내가 사람들의 언어들과 천사들의 언어들로 말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징과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2 내가 대언하는 선물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이해하며 또 모든 믿음이 있어 산을 옮길 수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고전 13:3 내가 모든 재산을 바쳐 가난한 자들을 먹이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이 내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느니라.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서 그분 안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그분은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또한 관련된 내용의 성경구절을 직접 보여드리며, 하나님 말씀의 영원한 보존과 변개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나누시면 좋을듯 합니다.
(자신만의 생각/태도/표현만으로 전하게 되는 것보다는 '주님의 귀한 말씀'으로 보여드리고 설명해 드릴때 형제자매님들이 깊이 생각해 보시더라구요.)
시 12:6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시 12:7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시 119:89 (라메드) 오 {주}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정착되었사오며
시 119:152 주의 증언들로 말하건대 주께서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셨음을 내가 옛적부터 알았나이다.
사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서리라, 하라.
마 5:18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에서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침내 다 성취되리라.
마 24:35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벧전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지속되나니 복음으로 너희에게 선포된 말씀이 이 말씀이니라.
계 22:18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계 22:19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끝으로 다음의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딤후 2:24 [주]의 종은 결코 다투지 말아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부드러우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인내하며
딤후 2:25 스스로 반대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일깨워 주어야 하리라. 혹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를 허락하사 진리를 인정하게 하시리니
딤후 2:26 이것은 마귀의 뜻대로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들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자신을 되찾게 하려 함이라.
형제님 힘내세요.
기도드리겠습니다.
샬롬~
2013-07-19 00:44:52 | 우영운
믿음의 형제자매님들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좀전에 1시간에 걸쳐서 글을 열심히 썼는데...등록은 안되고 전부 사라지고...ㅠㅠㅠ
일본이어서 그런가요? 로그인 할 때도 제대로 화면이 전환도 안되고...
어쨌든, 제가 여러분께 지혜를 구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다시 적습니다.
저는 현재 아내와 아들과 일본 동경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오랜 시간동안 성경을 신앙서적을 읽으며 성경대로 살려고 하는 크리스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정동수목사님과 킵바이블을 알게 되어서 '킹제임스성경 흠정역 영한대역'성경도
구입해서 정동수목사님의 요한계시록강해를 듣고 저의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종말신학이 체계가 잡히고
확신을 얻게 된 것같아서 참 좋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는 제 나름대로 요한계시록을 연구하고
공부해서 여러 목회자님에게 저의 '전천년주의신앙'을 말하면 일개 집사가 책 몇권읽고 말한다는 식의 대답을
들어야 했고, 성경의 여러 구절을 근거로 대며 말하면 모두 '영적인 해석'이 중요한 것이라는 식의 대답과
종말론보다 '현재'를 말씀대로 열심히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식의 대답뿐이었습니다...물론, 현재를
열심히 성실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종말에 대해서 계시해준 내용을 거의 모두 영해를 해서
결국은 계시의 내용이 뭐였는지 뭘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는 애매모호한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크리스찬은 하나님이 계시한 명확하고 굳건한 '종말신앙'이 없다면 미래에 대한 확신은
불분명해지고 현재에 대한 집착과 현세에 대한 구복적인 신앙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현재의 한국교회의 양적성장과 물질주의적타락상을 보면 알 수있겠지요...
요한계시록강해를 처음으로 마태복음강해와 창세기강해, 로마서강해, 조직신학강해를 들으면서
제자신이 얼마나 교만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저도 박사과정까지 공부한 사람이라서 여러 자료들을 비교분석하는
것은 기본이라, 현대어역본 중 이 구절은 이 성경이, 저 구절은 저 성경이 좋군!하면서 제가 성경을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인 완전무오한 말씀이라고 믿으면서도 신약성경에13군데가 없다는 것도 알면서도 대단하게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2천년의 역사적인 흐름속에서 자연히 소실되었다는 식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고, 성경이 2천년의 시간을 지나 나의 손에 어떻게 전달되어왔는지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희생이
있었는지도 전혀 몰랐고 교회에서 들은 적도 배운적도없었습니다...그래서 킵바이블의 자료를 통해서 성경전래의 역사를 공부하고는 선배들에게 감사한 마음과 이토록 무지했던 제자신을 반성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의 지혜를 구하고자 하는 것은,
제가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느 한국인이 제일많고 일본인과 미국인 제3세계인등 국제적인 교회입니다.
일본어, 한국어, 영어가 기본적으로 사용되지만 한국인이 주류이고 목사님도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제가 킹제임스성경으로 공부한 내용을 친한 집사님과 나누었고, 그분도 그래서 열심히 정동수목사님의 말씀강해를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이 집사님과 제가 서로 킹제임스성경내용을 교회에서 나누면 이런 저희들을 모습을
본 다른 집사님들이 이상하게 괴이하게 본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이단 성경이라는 것을 왜 교회에서 나누지?'라는
표정을 알수 있습니다...그리고는 '한심한 사람들이군...'이라는 표정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개역성경은 좋은 성경이지만 한국에 과도기적을 전해진 성경이고 문법적으로나 번역상에 여러 묹제가
있는 성경이고 무엇보다도 성경을 변개하려는 카톨릭의 사본을 사용한 성경이어서 이런 이런 부분이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라고 제가 찬찬히 설명을 하니 돌아오는 대답이 다음과 같았습니다...
'난 성경에 13곳이 없다고 해도 상관이 없고 관심도 없어,
그럼 개역성경을 믿어온 사람들의 신앙이 다 부정되는 건가?
솔직히 난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에 성경이 없다고 해도 상관이 없어!'
'난 성경이 구체적으로 뭐라고 하는 것보다도 우리 가족이 남편이 신앙을 갖는 것이 더 긴급하고 중요해!'
'카톨릭 성경이 왜 나쁘다는 거지? 카톨릭이 왜 이단이지? 그럼 카톨릭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구원이 없다는 말인가?'등등...
이분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성경을 판단하는 것이 오직 '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필요성을 못느끼고, 내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그걸 최종권위로 인정을 못하겠어...>
이 분들은 넌크리스찬도 아니고, 교회의 제반사항 모두를 총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더구나 저희 교회에서 처음으로 추대되는 '장로 후보'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계시하려고 하신 완전한 성경'이 있든 없든 별로 상관없고, 또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최근에 부임한 담임목사님도 미국 남침례교단출신인데 제가 물어보니 '무천년주의'를 믿는다하고
자신도 킹제임스성경을 '참고'한다고 하며 완전한 하나님의 성경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이분들이 나쁜 분들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참 좋고 인정도 많은 분들입니다.
하지만 제가 느낀 것은, 교회에서 조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제가 조목조목 물어보면 저보다도 연배가 많은 분들인데도 성경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하고
무관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교회 내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좋을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한 완전한 성경이 2000년전처럼 지금도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확신을 갖자고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요?
2013-07-18 18:45:45 | 김경호
저는 양산시 동면 금산리에 거주하는 이수원형제 입니다 나이는 54세 구원은 89년 7월더럽고 추한 죄인을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주님의 자녀입니다 현 장로교군소신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 한국교회의 넘 빗나간 것에 맘이 너무 아푸고 또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복음없이 멸망하는 영혼을 보면서 함께 킹제임스 바른 성경으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013-07-18 12:53:44 | 이수원
2013-07-18 12:47:26 | 이수원
안녕하세요?
사랑침례교회 신학원의 한 과목으로 제공하던 조직 신학 강의는 앞으로 2달 정도 중단됩니다.
추석 이후 9월 28일부터 조직신학 2를 열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면 그때에 창조, 사람, 구원, 성화, 교회, 종말 등
1학기에서 다루지 못한 주제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 참고로 9월 28일부터 시작되는 2학기에는
조직신학 2
설교와 설교자
두 과목을 개설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두 과목 모두 제가 강의할 것입니다.
내년 3월에 열릴 설교 코칭 과목을 수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설교와 설교자를 이번 학기에 수강해야 합니다.
목사가 되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은 잘 생각해서 9월에 수강 신청하기 바랍니다.
강의 내용 등은 나중에 자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정동수
2013-07-18 12:12:23 | 관리자
진품과 유사품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는군요.
2013-07-17 19:22:32 | 류인선
H 기본교리
1
교리에 견고함
엡4:14
2
마귀를 대적함
벧전5:8,9
3
율법의 목적
롬3:20
4
단번속죄
히10:10
5
거듭남
요3:3
6
새로운 창조물
고후5:17
7
성령의 보증
롬8:9
8
성령의 사역
요14:26
9
침례
롬6:4
10
성도의 자유함
갈5:1
11
회계보고
롬14:12
12
부끄러운 구원
고전3:15
13
하늘의 왕국
마10:6,7
14
왕국의 보류
마23:39
15
대환란
렘30:7
16
지옥
눅12:5
17
교회와 이스라엘
롬11:15
18
세 종류의 사람
고전10:32
19
일반적 은혜
마5:45
20
주님의 기대
딤전2:4
2013-07-15 23:04:40 | 관리자
G 성도의 도리
1
주님의 주권인정
사64:8
2
삶으로 경배
롬12:1
3
징계를 신뢰함
고전11:32
4
핍박을 감수함
딤후3:12
5
믿음으로 걸어감
고후5:7
6
믿음으로 걸어감2
히11:6
7
명령을 지킴
요일5:3
8
명령을 지킴2
요13:34,35
9
자기부인
눅9:23
10
다른사람을 섬김
막10:45
2013-07-15 23:03:00 | 관리자
F 성도의 성품
1
거룩함
레19:2
2
공의
미6:8
3
온유
딛3:2
4
겸손
빌2:3,4
5
정직
행24:16
6
순결
갈5:24
7
절제
고전9:25
8
위로
고전1:4
9
세상과구별
요일2:15,16
10
세상과구별2
롬12:2
2013-07-15 22:52:17 | 관리자
E 소망과 비전
1
휴거의 소망
살전4:16,17
2
부활의 소망
고전15:51
3
주님의 평강
사26:3
4
주님의 공급
빌4:19
5
위엣 것을 구함 2
골3:2
6
주의 일에 힘씀
고전15:58
7
제자된 삶
딤후2:2
8
제자된 삶2
딤후2:3
9
복음전파
마28:19,20
10
복음전파2
롬1:16
2013-07-15 22:50:46 | 관리자
D 성도의 생활방식
1
새로운 생활방식
빌3:20
2
새로운 생활방식2
역29:15
3
우선순위
마6:33
4
성령을 의지함
갈5:16
5
감사로 기도
빌4:6,7
6
말씀으로 기도
요15:7
7
모임
히10:24,25
8
교제
딤후2:22
9
자족함
빌4:11
10
후히 드림
고후9:6,7
2013-07-15 22:43:58 | 관리자
C 은혜의 복음
1
아름답게 창조
전3:11
2
아름답게 창조2
창1:27
3
사람의 타락
시53:3
4
사람의 타락
롬3:223
5
죄의 결과
롬6:23
6
죄의 결과2
히2:15
7
심판
히9:27
8
영원한 형벌
계21:8
9
예수님의 대속
롬5:8
10
예수님의 부활
고전15:3,4
2013-07-15 22:41:51 | 관리자
B 하나님
1
창조주
창1:1,3
2
전능자
창17:1
3
거룩하심
사6:3
4
영이심
요4:24
5
삼위일체
요일5:7
6
유일하신 주
신6:4,5
7
하나님의 의도
렘29:11
8
하나님의 의도2
신6:24
9
하나님의 길
사55:9
10
하나님의 지혜
롬11:33
2013-07-15 22:37:47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