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866개
나창주님께서 중요한 질문을 해주셨네요. 앞에 여러 분들께서 설명해 주셨지만 저도 나름대로 도움이 될까 하여 올려봅니다. 나창주님께서 올려주신 엡 2:8 영문에는 사실 단어가 하나 빠져 있네요. that 이 빠져 있거든요. 전체를 다시 올리면 이렇습니다: For by grace are ye saved through faith; and that not of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그런데 이 말씀에서 it is 는 이탤릭체로 되어 있습니다. 이 의미는 it is 는 원문에는 없는데 번역자가 원문을 영문으로 번역하기 위해 영문법 상 필요해서 보충해 넣은 것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흠정역처럼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처럼 이해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문제는 it 이 무엇을 가르키는가가 아니라 that 이 무엇을 가르키는가 입니다. 이것을 생각함에 있어서 우선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은 문맥이 아니라 문법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문맥에 가장 적합한가가 먼저가 아니라 먼저 문법적으로 가능한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that 은 지시대명사이므로 앞 문장을 살펴보면 후보자가 셋이 있습니다: 은혜(grace), 믿음(faith), 그리고 앞 문장 전체. 여기에서 한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흠정역에는 "구원을 받았나니"로 되어 있어서 마치 "구원"도 명사이고 후보에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원문이나 영문이나 모두 동일하게 이것은 동사입니다. "구원을 받았나니" 보다는 "구원되었나니" 이지요. 그래서 "구원"은 that 이 가리키는 단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은혜"는 사실 이 단어 자체에 이미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새삼 다시 강조해서 써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그럴 만큼 특별한 이유가 본문 상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that 이 "은혜"를 가리킨다는 것은 가능성이 떨어집니다. "믿음"은 어떨까요? 우선 먼저 일반적으로 말씀드려서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 맞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는 바,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의미는 "무조건적으로 (강제로) 수여되는 의미에서의 선물"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물이 될 수가 없지요. 모든 좋은 선물과 완전한 선물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약 1:17). 믿음은 아닐까요? 또한 고전 12:9 말씀에도 성령님의 선물인 믿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믿음과 엡 2:8 말씀의 믿음은 조금 다릅니다만 고전 12:9 말씀의 믿음은 선물인데 엡 2:8 말씀의 믿음은 선물이 아닐까요? 그러면 어떻게 모든 성도들에게 한 믿음(엡 4:5)이 가능할까요?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의 이 말씀에는 칼빈주의처럼 "무조건적이고 강제적인" 의미에서의 선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또한 아르미니우스주의처럼 사람에게는 태생적으로 믿음(faith)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식의 의미도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우리가 믿어야 - believe 또는 receive 해야만 - 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본문에서 일단 믿음은 that 이 가리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앞 문장 전체인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되었다" 또는 좀 줄여서 "saved through faith (믿음을 통해 구원됨)"이 바로 that 이 가리키는 것일까요? 저는 이것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전체 문맥에도 더 잘 어울리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 말씀이 곧 "너희가 어떻게 하든지 믿음을 만들어내기만 해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구원해 주겠다"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해야만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사람이 태생적으로 믿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거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가져다 주시는 은혜"를 모든 사람에게 제공하셨습니다. 이 은혜로 말미암아 사람은 믿음(faith)을 가질 수조차 없는 상태에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은혜로 주시는 믿음을 수납함으로써 - receive 함으로써 - 은혜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 믿음을 수납하지 않고 거절하는 사람은 은혜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고요. 이 믿음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며 우리는 이 믿음에 순종함(롬 1:5)으로써 하나님의 자녀임을 밝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엡 2:8 말씀에서 that 이 가리키는 것은 믿음이라고 해도 좋고 "믿음을 통해 구원받음"이라고 해도 좋다고 봅니다. 다만 여기서 믿음이란 칼빈주의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이고 강제적으로 특정인에게 주시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믿음이지만 우리가 수납해야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믿음이 되는 그런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2011-11-13 12:00:27 | 이재연
에베소서 2장 8절 말씀에서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인지, 아니면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인지를 물으셨네요. 먼저 전체 문맥을 알아보기 위해 1-7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내용이 우리의 믿음에 대한 것인지,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한 것인지 살펴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전체 문맥은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이 구원이 어떻게 주어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구원이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난 것이냐 하는 것이 2장 8,9절의 결론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아무 공로가 없어도 거저 주시는데, 누구든지 믿음을 통해서(우리의 책임) 그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주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원격 조종하여 믿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청에 대한 우리의 자발적인 응답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믿어서, 내가 여러 종교 중에서 잘 선택해서, 내가 현명하게 잘 선택해서"라고 자랑을 할 수는 없습니다. "by grace through faith"에 유의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먼저 은혜를 베풀어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물로 보내주지 않으면 우리는 제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믿을 게 없습니다. 구원이라는 선물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며(by grace), 우리가 그 은혜를 누리려면 믿음이라는 방법을 통해(through faith)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어주신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saving faith)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후에 성령의 열매로 맺게 되는 믿음을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갈5:22). 어떤 분은 갈5:22을 내세워서 믿음이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에 구원받는 믿음 자체가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하나님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주어진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은 믿기도 전에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먼저 성령부터 받고 구원을 받은 후, 그 다음에 믿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이전 글에서 다룬 바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은혜로 믿게 되는가, 믿어서 은혜에 들어가는가?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331
2011-11-13 05:09:40 | 김문수
나창주 님, 반갑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선물을 성경은 무어라 말씀하시는지요..(롬4:3a) ...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니라.(롬6:23) 맞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영원한 생명, 곧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된 구원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영어 성경 해당 구절만 살펴보면, 영어 문장 내의 대명사는 특별한 설명이 없는 한 대명사와 가장 근접한 위치에 있는 명사들 중 가장 문맥에 맞는 명사를 대입하면 실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가장 평범한 원칙을 따르시면 됩니다. 우선 이 엡2장의 문맥은 그 전 구절인 3~5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나간 때에는 ... 진노의 자녀들이었으나 ...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엡2:3~5) 이렇게 보시면 가장 쉽게 답을 얻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아는 데까지 알려드렸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샬롬.
2011-11-12 23:00:04 | 소범준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For by grace are ya saved through faith; and that not of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이 구절의 그것은 구원을 가리키는 것인지 믿음을 가리키는 것인지 궁금해서 질문해 봅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1-14 17:11:0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12 22:17:11 | 나창주
안녕하세요? 너무 막연해서 뭘 도와달라고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이런 구절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할 부분이 없고요, 다른 번역본들은 가톨릭 학자들이 본문에 수정을 가해서 생긴 일이거나 각 역본이 다르게 해석, 또는 이해 부재로 생긴 일인데 당연히 킹제임스 흠정역이 제대로 된 것이고요, 그 과정 등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들을 통해 공부하시면 되겠습니다.
2011-11-07 18:31:04 | 김재욱
안녕하십니까?   다른버전에서는 :" 자기를 아는 지식안에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시어"(엡 1:17) 라고 되어있고 흠정역에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 1:17) 라고 되어있습니다.   두 버젼의 번역차이가 현저함을 느낍니다. 이해해보려고 여러가지로 노력했으나 저의 어학실력의 부재로 난관에 처해있습니다 도와주시기 바랍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9: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07 18:17:49 | 김형렬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느냐, 사람의 생각과 이론에 맞추어 해석하느냐의 문제 같습니다. 성경을 믿지않는 사람들은 설명을 해주어도 여전히 믿지 '않습'니다.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더군요.) 성경에 나오는 내용이 믿기지는 않지만, 믿고싶다고 바라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믿겨지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고, 어떻게든 수많은 사람들을 쓰셔서 증거를 보여주심에도, 굳은 마음을 가지고 증거들을 부인하며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갈 길로 갈 겁니다. 그냥 무조건 믿으라는 것은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세상적인 이론을 통해 성경을 이해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믿기면 믿어지는 것이고, 안믿기면 안믿는 것이겠지요. 굳이 김인수 님께서 이해가 안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시려고 노력하지 않으시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왜냐면 김인수 님도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는 잘못된 설명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김인수 님께서 이해하신 한도내에서만 설명하시고, 잘 모르는 부분은 나도 아직 이해는 되지않는다고 솔직히 말씀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해한 것만 가지고도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이 믿어진다고 말씀하시면 어떨까요? 그런 솔직한 모습을 볼때 다른 사람도 성경에 무언가가 있구나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지 않을까요? 모든 것을 다 설명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결국은 이론적으로 토론하여 성경이 논리적이지 않음(인간의 이해로는 해석안되는 것임)을 반박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굳이 거기에 휘말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 제가 이해 못한 부분은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하고, 다만 제가 확실히 아는 부분에 대해서만 확신을 가지고 설명합니다. 잘 모르는 부분은 좀더 성경을 읽고 또 이야기나눈 상대와 같이 의견을 나누며 이해하고 싶다고도 말합니다. 인간의 논리로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아닐까 싶네요..
2011-10-19 13:09:19 | 김태현
우리 주님 안에서 함께 나누어 보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많은 분들이 생각하기를, 창세기 1장의 "하루"는 현재의 하루와 다를 것이다 하고 지레 짐작으로 확증하시더군요. 더욱이 창조의 기록을 살펴보면 태양이 만들어지는 것은 제 4 일째이니 우리의 과학적(?) 사고 방식으로는 태양 없는 하루란 말이 안 된다고 느껴지기에 더욱 그렇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루"가 한 시대 - 수 억년이나 되는 아주 긴 시대라고도 하고 - 이것은 역시나 우리의 과학적(?) 사고 방식으로 보면 참 그럴 듯 합니다 - 또 다른 사람들은 우주가 한번 멸망했다가 다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창세기 1장의 기록을 살펴보면 한가지 더 이상한 점이 있지요... 바로 식물은 제 3 일째에 창조되었다는 점입니다. 태양 없이 식물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요? 저는 바로 여기에 "하루"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힌트가 있다고 봅니다. 이것을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먼저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과학적 사고에 따르면(?) "하루"는 한 시대라고 하는 것이 참 타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온 우주를 창조하시는 데 있어서 뭐 하나 만드시고 그렇게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실 필요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1, 2년 정도도 아니고 수 억년이나 기다려야 하실 필요가 있을까요? 진정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서 말씀만으로 창조하시는 분이신데 하나씩 구별해서 창조하시기에 하루면 충분하고도 남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제 식물과 태양의 관계를 생각하면 하루를 한 시대라고 하기엔 불가능하지요. 과학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식물이 태양없이 수 억년을 생존해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하나님께서 식물들을 태양없이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생존하도록 하셨다고 믿는 것보다는 차라리 온 우주가 6일 동안에 창조되었다고 믿는 것이 더 타당하겠지요. 하나님께서 맨처음에 온 우주의 시공간을 창조하시고 지구를 딱 하나 만드신 후에 곧바로 빛을 만드셨습니다. 이 빛에 의해서 "하루"는 정해지는 것입니다. 현재의 하루와 같은 하루로 정해진 것이지요. 그것을 모세가 출애굽기에서 다시 한번 확인해 준 것이고요. 그리고 바로 이 빛 때문에 식물이 태양없이 하루를 살 수 있었던 것이고요. 만일 태양만을 유일한 식물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한다면, 식물이 태양이 없어서 광합성을 하지 않고 하루를 버틸 수는 있겠지만 너무 추워서 다 얼어 죽었겠지요. 처음부터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빛이 계시록 21, 22장에 다시 나타난다고 봅니다. 처음에 어둠이 있었으나 빛을 만드셨고, 이것을 저녁과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라고 하신 말씀에서 이미 어둠과 빛의 경과를 따라 하루가 지났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맨 첫날부터 이미 "하루"는 현재의 하루와 같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것입니다. 사실 그 "하루"를 그대로 따르기 위해서 태양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2. 예수님께서는 창세로부터 이미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물이셔야 했습니다 (계 13:8).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이루시기 위해 때가 이르기까지 기다리셔야 했고 (갈 4:4), 마침내 다 이루셨습니다. 여기에는 그 어떠한 다른 가정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할 가능성은 이미 0 % 였습니다. 그 때를 기다리셨다가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3. 다니엘의 70 이레 중에서 마지막 1 이레만은 왜 따로 떨어져서 이루어져야 하는지는 다니엘서 9:24~27 말씀을 자세히 하나씩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2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70 이레를 정하신 이유를 설명해 주시고 있습니다. 즉, 70 이레가 지난 후에는 "범법이 그치고 ~ 기름을 붓고자 함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또한 메시아가 끊어지는 것, 즉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69 이레 이후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만일 70 이레가 69 이레 후에 연속해서 이루어졌다면 24절에 기록된 70 이레를 정하신 이유들이 다 이루어져 있어야만 합니다. 다 이루어졌나요?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마지막 1 이레는 언제 이루어질까요?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일이지요. 따라서 마지막 1 이레는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로 미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2011-10-19 10:38:13 | 이재연
1. 모세가 살던 시대에는 지금과 같이 하루가 24시간이었습니다. 엿새 동안에 주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주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11)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알아듣는 용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말씀하신 6일은 모세가 생각하는 6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말씀하시는 분과 듣는 사람이 사용하는 용어가 서로 다르다면 의사소통이 안되겠지요. 2. 위에 자세히 설명해 주셨네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순종도 미리 알고 계셨고, 그래서 그분의 구원계획에는 그것조차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이 그들이 불순종하도록 만든 것이 아닙니다. 3. 단9:26에 의하면 "that shall come shall destroy the city" 마지막 한 이레는 62 이레 직후가 아니라 미래에 있을 일(shall)을 말합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야 시작됩니다. "he shall confirm the covenant with many for one week" (단9:27). 질문보다는 성경과 여기 있는 자료들을 통해 먼저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011-10-19 03:09:34 | 김문수
반갑습니다. 계속 같은 이야기를 드리고 있는데 끈질기게 질문이 올라오는군요.^^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짧은 답변이 불가능합니다. 질문하는 분이 계속해서 추가 질문을 할 텐데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궁금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관련 자료들을 찾아 폭넓게 알아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차피 단편적인 지식들은 계속 모순에 부딪혀 전체적인 흐름을 알아야 끝이 나기 때문이지요. 1. 먼저 창세기의 한 날이 지금과 다르다는 것은 무슨 말씀인가요? 그때의 하루도 지금의 하루와 똑같은 하루입니다. 혹시 이 글에 나오는 내용에 대한 질문인가요?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3&page=&cate_name=&sfl=&stx=&sst=&sod=&spt=&page= 2.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였다면 더 이상의 인간 역사는 없었다고 볼 수 있으나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에는 유대인이 메시아를 거부하고 이방인이 구원을 받는 것까지 미리 아심에 의해 예정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백성의 마음을 우둔하게 하고 그들의 귀를 둔하게 하며 그들의 눈을 닫을지니 이것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기에 (사 6:10) 예수님의 인용 : 이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사 언제라도 그들이 회심하여 자기 죄들을 용서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막 4:12) 바울의 추가설명 :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실족함으로 넘어지게 되었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오히려 그들의 넘어짐을 통해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이르렀으니 이것은 그들이 질투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1:11) 이는 물론 이스라엘이 고질적인 불순종으로 인한 것이지 자유의지를 조정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이 돌이켜 회개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어차피 메시아를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역사가 이어지고 이방인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순차적 구원 프로그램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에 대해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곧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부분적으로 눈멀게 된다는 것이라. (롬 11:25) 3. 그렇게 구약의 대언자들이 모르던 교회시대가 시작되고 남은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을 봉우리 그림이 아닌 것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왜 70이레가 중간에 끊겨야 했느냐는 이야기 같은데요... 70이레가 쉼없이 이어진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또한 교회시대는 2천년이 넘어갈 수도 있지만 마태복음 1장 1절에 나오는 '한 세대'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달리 설명하기보다는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그것을 이루는 방법이 유대인의 완악함을 역이용해 이방인을 살리고 그 이후에 유대인이 돌아오게 하는 방법인 것이지요. 물론 그 모두가 인간의 의지를 조종하는 방법이 아님은 다시 말씀드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설명이 충분치 않겠지만 간단히 말씀드린다면 이 정도 적어 보고요... 다른 분들이 또 알려주실 겁니다. 그러나 이 내용들은 모두 이 사이트에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찾아서 어느 것을 듣고 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 전체가 다 달려나오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계시록, 마태복음, 창세기 등 강해를 들어보시고 다양한 검색어로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2011-10-18 14:34:16 | 김재욱
본 싸이트를 통해 많은 성경적 진리를 깨우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여기가 질의응답코너가 아님을 알고는 있지만 달리 질문할 데가 없어서 글을 올립니다. 미련하다 엉뚱하다 생각하지 마시고 불쌍히 여겨, 토를 달거나 참고 할 만한 글이나 싸이트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하려니 그저 믿으라고만 할 수가 없어서요...! 첫째는 창세기에 나오는 한 날이 현재의 하루와는 다른데, 저녘과 아침이 됨(한 날)을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지? 둘째는 주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오셨음에도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에 매달아 돌아가시게           하여 왕국이 잠정적으로 연기되었는데,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메시아 왕국을 받아들였다면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어떻게 되는거예요. 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지? 셋째는 다니엘의 70이레의 마지막 1이레가 69이레와 연속되지 않고 교회시대 후 마지막 7년 환난기에 도래한다는 간격을 봉우리나 계곡 이런것 말고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지?   SOU5004@PARAN.COM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1:5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18 11:35:05 | 김인수
목사님이나 장로님, 또는 교회에 헌신하시는 많은분들이 하나님말씀에 어긋난다니요? 자기헌신(행위)으로 구원을 받을수 있다고 가르치는것이 잘못이지(마20장 포도원의 품꾼들 비유-사람의 행위와 무관한 은혜)-, 구원받은후의 믿음생활,즉 헌신하는 생활자체는 아름답고 존경스러운것입니다. 지금 하고 계신것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선물로 받은 형제,자매님들 교회를 통해 그믿음이 드러날수있도록 죽기까지 신실합시다(계2:10절). 아울러 딤전2장15절 말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란 구절을 깊이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13~14절에 전후설명이 있습니다. 여자가 속아 범죄가운데 있었기때문이지만 해산은 창세기부터 여자들에대한 하나님의 최고의 축복이셨음을 생각하시면 궁금증이 다소 풀리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진정한 하나님말씀은 하나님과 성령님께서 영감을 주신분밖에는 알수없습니다. 우린인간이니까 당연궁금합니다. 이런 계기로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함께 공부할수있기에 전성실님의 용기가 너무 멋지십니다.
2011-10-13 09:25:27 | 최제식
예리하십니다.^^ 지적하셨듯이 이 숫자는 대충 어림잡은 숫자는 아닌 것으로 보이구요, 관점의 차이도 존재한다고 사료됩니다. 두 곳의 기록에 차이가 있는 것은 지적하신 대로 노획한 범위에서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 편으로는 [팀]으로 이해하는 해석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와 중국의 전쟁사를 예로 보더라도 병거(전투용 수레) 한 대에는 전투병 2명을 필두로 무기관리자, 취사병, 말 먹이고 관리하는 자, 수레 고치는 자, 보급품 담당자, 심지어 병사들 빨래 해주는 자까지를 포함하여 한 수레에 딸린 인원이 최소 10명입니다. 그러니까 과거에 수레가 1만대면 정예기병 2만에, 노무자 8만, 합이 10만이죠. 이와는 별도로 보병은 평균적으로 기병의 5배쯤 되니까 기병과 보병을 합하면 60만 대군이 됩니다. 수나라가 만승국(1만대의 수레를 보유한 나라)이었고 고구려가 천승국이었으니까 군사력의 차이가 엄청났죠. 구약시대의 중동에서도 동양과 편제의 차이가 있었겟지만, 재래식 전쟁에서 기병(수레)을 보조하는 노무자 및 병사(창병, 궁병, 장검병 등)들이 많이 따라가야 하는 것은 동-서양이 별 차이가 없다고 사료됩니다. 여기서도 문맥상 병거와 말의 연관성이 깊은데, 사무엘하 8장에서 말씀하는 기병이 단독으로 말을 타고 싸우는 기병이라기 보다는 병거를 모는 기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직접 전투하는 기병만을 세느냐, 부속인원을 포함하느냐 하는 관점의 차이도 분명히 존재할 수 있다고 사료됩니다. 따라서 병거 천대에 기병 칠백은 전투병만 계수했고, 기병 칠천은 전투병과 딸린 인원을 모두 포함했다고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병거 1,000대에 기병 칠백이면 병사가 많이 모자란 수이지만 전사자가 발생했을 것을 감안하면 맞는 수입니다.
2011-10-13 02:40:19 | 류인선
1년 전까지는 이런 것이 문제가 된다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kjv성경을 보고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금까지 저의 모든것을 돌아보게 되고 주의사람들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생각에 사로잡혀 멍해질때도 있고 머리가 많이 아프기도 합니다. 제가 존경했던 여전도사님이 지금은 목사님으로 헌신하고 있고 이모님은 교회 장로님이고 또 저희 어머님은 권사님인데...존경하고 존중한 분들이 다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다고 하니....또 열심히하고자해서 나섰던 지난날의 저의 행동들도...그럼 지금은 어찌행해야 되나 ...고민되고... 사실 많이 위축이 됩니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바꿀수는 없는것이겠지요...다시 반성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성경말씀 열심히 봐야 할것같습니다. 여러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2011-10-12 18:04:05 | 전성실
성경을 읽다보면 궁금한 것이 어디 한 두가지겠습니까? 이것은 계속 질문을 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번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받고 나면 또 다른 것들을 질문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아마 스스로 깨닫거나 공부하려고 하기보다 한없이 질문만 하게 될 겁니다. 일단 궁금한 것에 대해서 질문하고 답변을 얻어서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하기보다는 먼저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은 성경 본문 문맥 가운데 이미 답이 나와 있습니다.
2011-10-12 15:13:48 | 김문수
고린도전서 14장에 이미 다 나오는 내용입니다. 대언을 하는 도중에 자기도 은사를 받았다는 여자들(36,37절 참고)이 끼어들어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질문을 하거나 해서 대언이나 설교의 흐름을 다 깨어 놓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경고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배 시간에 그렇게 방해하지 말고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집에 돌아가서 리더쉽인 남편에게 가르침을 받으라는 겁니다.
2011-10-12 15:09:42 | 김문수
누구든지 남자는 이성적인 면이, 여자는 감성적인 면이 강함을 인정합니다. 여자분들이 어떤 면에서 먼저 깨닫고 남자들에게도 권면하거나 이야기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깊이 들어가보면 일정부분 감성적인 면에서 접근을 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문제가 많다고 느끼는 예를 들어볼까 싶은데요. 어떤 교회 권사님이 방언이나 예언의 은사를 받았는데, 처음에는 교회 분들을 돕는 역할을 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모든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때가 옵니다. 처음에는 인정하고 받아들이던 교회분들도 나중에는 성경과 대조하여 볼 때 조금 다른 부분에 대해서 지적하면, 남자들은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보고 받아들이는 반면, 여자분들은 감정적으로 대응하면서 왜 내가 틀렸냐? 내가 받은 은사가 있기에 당신이 틀렸다! 라며 나오는 경우도 있지요. 대놓고 그러지는 못해도 기분상해 하면서 꽁 하니 감정을 가지고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때 분별은 집에서 남편에게 물어보는 것이 성경적이겠지요. 남편은 이성적으로 객관적으로 볼 수있는 위치에 있으니까요. 그런 경우를 보면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옳고 그름의 분별을 위해 이성적인 면이 강한 남자인 남편에게 묻는 것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권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종적인 분별에 있어서는 남자, 특히 남편의 판단을 따라야 된다는 말씀 같구요... 다른 양육, 유,초등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측면에서는 여자분들의 도움이 꼭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여자 목사(?)나 여자 장로에 대해서는 성경 말씀과는 다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권사라는 직분(?)도 성경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데...
2011-10-12 13:28:45 | 김태현
예 감사 합니다. 참고 자료 다 검색해 보았습니다 .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교회에서의 질서에서 여자들은 대언이나 방언이나 지도자의 위치로 권위를 행사하지 말라는 말씀은 이해합니다. 저의 고민은 예를들면 교회에서 교제중에 남녀 혼성으로 어떤 주제를 말하다가 남자분들의 주장은 비성경적이고 만약 저의 주장이 맞을때(예를들면구원은 행함이 아니라 믿음이다) 가르치는 위치에 있을때가 종종있습니다...잠잠해야 하는지 .... 이말씀도 잘이해가 안가요 만일 여자가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남편에게 물을지니.... 여러분 정말 저의 질문이 답답하시죠..까깝하시죠 저는 미치겠습니다. 그리고요 딤 2장 15절 -아시는분 간곡히 답변부탁드립니다.
2011-10-12 12:48:20 | 전성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