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6508개
  개인 집이나 도시의 문지기(삼하18:26; 왕하7:10; 막13:34; 요10:3). 성전의 문지기는 모두 레위 사람이었으며 그들은 한때 4,000명이나 되었고 여러 조로 나뉘어서 문을 지켰다(대상16:42; 23:5). 그들은 모든 문을 지키고 자기들의 조 별로 성전 안에서 의무를 행하였으며(대상26:1-19; 대하8:14; 35:15) 밤에 찬양의 노래로 주님께 영광을 돌렸다(시134:1-3). 또한 대하23:14는 그들이 요아스를 보호하고 아달랴를 죽이는 일을 했음을 알려 준다.    
2009-06-15 00:19:51 | 관리자
  히브리 사람들은 보통 “샬롬레카” 즉 “당신에게 평강이 있기를!”이라는 말로 문안 인사를 하였다. 이런 인사를 받은 사람은 상대방에게 “당신에게 평강이 있기를!”이라고 응답하였다(창29:6; 삿18:15). 성경에는 이 외에도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기를 바라노라.” 혹은 “주의 복이 너와 함께 있기를 바라노라.” 등의 문안 인사가 있다. 지금도 동방 사람들은 정중하게 이런 식의 인사를 하며 어떤 때에는 문안 인사와 함께 입을 맞추거나 손이나 수염에 입을 맞추고 손을 가슴에 대고 몸을 숙였다가 위로 펴서 인사를 한다. 야곱이 에서에게 인사한 것과(창33:1-34) 또 창19:1; 23:7; 42:6; 삼하1:2; 요20:26 등을 비교하기 바란다.   그런데 이렇게 예의를 갖추어 정중하게 문안 인사를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엘리사가 자기 종을 보내 죽은 아이의 몸에 자기 지팡이를 올려놓게 하였을 때 길에서 인사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왕하4:29). 그와 동일한 이유로 우리 주님은 70명의 제자들에게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 인사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눅10:4). 그렇지 않으면 복음을 선포하는 귀중한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동방 사람들의 문안 인사는 겉치레로 이루어졌으므로 다음과 같은 우리 주님의 말씀은 그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기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것과 달리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2009-06-15 00:19:26 | 관리자
  성벽이 있는 마을의 문은 대개 나무로 만들고(삿16:3) 두꺼운 쇠나 놋으로 입히며(시107:16; 사45:2; 행12:10) 빗장으로 강화시키고(신3:5; 왕상4:13) 옆에는 탑이나 망대를 세웠다(삼하18:24, 33). 보통 성문을 취하면 도시를 점령한 것으로 보았으므로(신28:52; 삿5:8) 성문 혹은 문은 권력과 지배의 상징이 되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씨가 그들의 원수들의 문을 소유하리라고 약속하셨다(창22:17). 그런 차원에서 ‘지옥의 문들’은 실제적인 문으로 볼 수도 있고 ‘지옥의 권세’ 혹은 ‘지옥’ 그 자체로 볼 수도 있다(마16:18).   성문 혹은 성문 근처에는 빈 공간이 있어서 거기서 장이 서거나 재판이 열리곤 했으며(창23:10-18; 신16:18; 21:19; 25:6-7; 룻4:1-12; 잠22:22; 암5:10-15) 또 거기서 여가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창19:1). 그러므로 ‘성문에 앉은 자들’이라는 표현은 한가히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과 술 먹는 사람들을 나타낸다(시69:12). 도시가 재앙을 당하면 사람들이 성문에서 애곡하였으며(사14:31; 렘14:2) 또 여기에서 공적 메시지가 선포되고 대언자들이 말씀을 선포했다(잠1:21; 8:3; 사29:21; 렘17:19; 26:10). 한편 성문에서 가까운 바깥에서 사람을 처형하기도 했다(왕상21:13; 행7:58; 히13:12). 교만을 통해 자기 집의 문을 높이는 자는 결국 도둑질을 하게 되어 파멸에 이른다(잠17:19). 문을 넓게 여는 것은 기쁨과 환영을 뜻하며 우리 주님이 하늘로 올라갔을 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시24:7, 9). 끝으로 새 예루살렘의 문들이 열려 있다는 사실은 땅의 도시들의 성문이 밤에 닫혀 있다는 사실과 대조를 이루면서 그곳이 빛의 세상이요 안전을 보장하는 세상임을 보여 준다(계21:25).
2009-06-15 00:18:51 | 관리자
  무화과나무는 팔레스타인에 아주 흔했으며 다른 것이 자랄 수 없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랐다. 이 나무는 키가 크고 잎이 많으므로 사람이 쉴 수 있는 그늘을 제공했고 또 과일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음식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무화과는 평화와 번영의 상징이었다(왕상4:25; 미4:4; 슥3:10; 요1:49-51). 무화과는 동방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물이었고 여름에 가장 많이 배출되었지만(왕하20:7; 사38:21) 이른 무화과의 품질이 좋았다(사28:4; 렘24:2; 나3:12). 잎이 나타나거나 꽃이 피기도 전에 열매가 맺히는 것이 무화과의 특징이었으나 아주 작고 숨겨진 꽃이 있기는 하였다.   무화과나무의 잎은 봄의 끝에 생기며 따라서 이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옳음을 보여 준다. “그것의 가지가 아직 연하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너희가 아느니라”(마24:32; 아2:13). 무화과는 마치 미국에서 나는 배처럼 생겼고 어떤 때에는 줄에 묶어 말리기도 했으며 이로써 무화과 덩이라는 표현이 생겼다(삼상25:18; 왕하20:7; 대상12:40). 이렇게 말린 무화과의 부피를 줄이려고 바구니나 그릇에 넣고 누르면 마치 떡처럼 눌리게 된다.  
2009-06-14 13:04:58 | 관리자
  이 땅에 문자 그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믿는 것. 로마 카톨릭 교회는 로마 교회의 교황이 이 세상을 다스리는 현 시대가 곧 천년왕국이며 따라서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한다는 무천년설을 가르친다. 이것은 어거스틴과 그의 추종자들이 추구하는 신학의 근간이 되는 믿음이지만 성경은 결코 이 같은 불신을 지지하지 않는다. 전천년 신앙, 천년왕국 참조.    
2009-06-14 13:02:01 | 관리자
  야곱이 레아에게서 얻은 딸(창30:21). 성경에서는 그녀만이 야곱의 유일한 딸로 기록되어 있다. 자기의 가족이 살렘 근처에서 머무는 동안 그녀는 부주의하게 가나안 족속 여인들과 사귀다가 그 땅의 젊은 통치자 세겜의 유혹에 빠져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그녀를 구출하고 그들에게 원수를 갚았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그들의 아버지 야곱에게 큰 슬픔이 되었다(창34:1-31; 49:5-7). 디나는 자기 가족들과 더불어 요셉이 있던 이집트로 내려간 듯하다(창46:15).    
2009-06-14 12:59:46 | 관리자
  유다 왕 아하스가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왕들을 치기 위해 도움을 받으려고 초청한 아시리아의 왕(왕하16:7-10). 그는 요청에 따라 와서는 오히려 아하스로부터 많은 조공을 요구하여 그를 괴롭게 하였고(대하28:20-21) 또한 이스라엘 왕국에서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다가 자기 왕국의 여러 곳에 이주시켰으며 (대상5:26; 왕하15:29) 이로써 이사야 대언자의 대언을 성취하였다(사7:17; 8:4). 그는 니느웨에서 19년 동안 통치하였으며 그의 아들 살만에셀이 뒤를 이었다. 그는 다른 곳에서 딜갓빌네살이라고도 불린다(대하28:20).    
2009-06-14 12:59:15 | 관리자
  성막에서 성소에 들어갈 때 왼쪽에, 진열하는 빵의 반대쪽에 금 등잔대가 있었다. 등잔대는 다리와 대와 여섯 개의 가지로 구성되어 있었고 대와 가지들에 총 일곱 대의 등잔이 있었으며 가지들은 잔과 꽃받침과 꽃으로 구성되었다. 등잔들에는 순수한 기름이 있었고 저녁마다 불을 밝혔다(출25:31-40; 30:7-8; 37:17-24; 레24:1-3; 삼상3:3; 대하13:11). 첫 번째 성전에는 지성소의 오른쪽과 왼쪽에 둘 순금 등잔대 열 개가 있었으나(왕상7:49-50; 대하4:7; 렘52:19) 두 번째 성전에는 성막과 비슷하게 한 개의 등잔대만 있었으며 이것은 예루살렘이 멸망될 때에 로마로 옮겨졌다. 스가랴와 요한이 본 등잔대의 환상을 참조하기 바란다(슥4:2-12; 계1:12, 20).      
2009-06-14 12:58:21 | 관리자
  고대 사람들의 등잔은 성경에서 종종 캔들(candles)이라 불리는데 이것은 여러 형태의 우아한 모습의 등잔과 기구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손으로 가지고 다닐 수도 있고 등잔대에 세워 놓을 수도 있었다. 등불은 대개 식물성 기름이나 밀랍 등을 연료로 사용하였으며 밤새도록 빛을 내었다. 그러므로 어두운 집은 예전 주인이 죽었음을 나타내며(욥18:5-6; 잠13:9; 20:20; 렘25:10-11) 등불이 계속해서 타는 것은 국가나 개인의 번영과 형통의 상징이었다(삼하21:17; 왕상11:36; 시132:17). 거리에서 가지고 다니는 등불은 심지가 대기에 노출되었고 다른 손에 들고 다니는 기름통에서 기름을 부어 주어야 했다(마25:3-4). 한편 횃불도 고대의 도시에서는 필수품이었다(요18:3). 참고로 17세기 영어에서 ‘캔들’은 초가 아니라 등불이다.    
2009-06-14 12:57:54 | 관리자
  기럇세벨로 불리던 도시(삿1:11). 이곳은 문서의 도시 혹은 책의 도시를 뜻하며 그 이름으로 보아 가나안 사람들의 문서들을 보관하는 도시로 추정된다. 이것은 유다의 남서부에 있는 도시로 여호수아가 아낙 자손으로부터 빼앗은 곳이지만 가나안 족속이 다시 이곳을 점령하자 옷니엘이 이곳을 빼앗았고 후에는 제사장들에게 주어졌다(수10:38-39; 15:15-17; 21:15). 한편 드빌은 갓 지파에게도 있었고 베냐민 지파의 경계에도 있었다(수13:26; 15:7).    
2009-06-14 12:56:18 | 관리자
  I. 라비돗의 아내 여대언자. 그녀는 라마와 벧엘 사이의 종려나무 밑에 거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재판했으며(삿4:4-5) 바락을 불러 시스라를 치게 하고 그에게 승리를 약속했다. 그러나 바락은 그녀가 함께 가지 않으면 혼자 가지 않겠다고 했으며 이에 그녀가 갔으나 이번 여정의 승리가 여인의 승리로 기록되고 그의 것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싸움에서 승리한 후에 드보라는 삿5:1-31에 기록된 승리의 노래를 지었다. II. 리브가의 유모. 그녀는 리브가를 따라 아람에서 가나안까지 왔으며(창24:1-67) 벧엘 근처에서 죽을 때에 그녀를 위해 기념물을 만들었다(창35:8).    
2009-06-14 12:55:50 | 관리자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작은 딸. 그녀는 젊은 아그립바와 버니게의 누이로서 미모와 음욕으로 유명했다. 그녀는 먼저 코마게나의 왕 안티오쿠스의 아들이 유대교를 수용한다는 조건하에 그와 약혼했으나 그가 할례를 거부하자 그녀의 오빠는 그녀를 에메싸의 왕 아지주스에게 주었다. 그런데 벨릭스가 유다의 총독으로 부임하자 그녀의 오빠는 그녀를 설득해서 그녀의 남편과 그녀의 종교를 버리고 벨릭스의 아내가 되게 했다. 한편 바울은 그들 앞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증언했다(행24:24). 그녀와 그녀의 아들은 나중에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 때에 죽었다.    
2009-06-14 12:55:20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