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그리스어 파스카를 번역한 것으로 파스카는 유월절과 부활절 두 가지로 번역될 수 있으나 행12:3에서 이미 때가 무교절 기간이라 했으므로 유월절은 지났음을 알 수 있고 따라서 킹제임스 성경이 이 단어를 이방인 헤롯이 지키던 부활절로 번역한 것은 합당하다.
2009-07-20 01:57:25 | 관리자
전쟁에서 다윗을 죽이려 했던 거인. 아비새가 그를 죽이고 다윗을 구출하였다(삼하21:16-17).
2009-07-20 01:57:00 | 관리자
사울의 아들.
사울이 죽은 뒤에 사울의 친척이자 장군인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세워 마하나임에서 이스라엘 사람 대부분에 의해 왕으로 인정받게 하였다. 한편 이때에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만을 다스렸다. 이스보셋은 40세에 통치하기 시작하여 2년 동안 평화롭게 다스렸고 그 후에 다윗을 치려고 오랫동안 전쟁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아브넬의 버림을 받고 세력이 점점 더 약해져서 결국 암살당하고 말았다(삼하2:8-11; 3:1-39; 4:1-12).
2009-07-20 01:56:34 | 관리자
I. 아브라함과 하갈 사이의 아들(창16:1-16; 21:1-34).
그는 처음에 약속의 아들로 여겨졌으나 이삭의 출생 이후에 17세쯤에 자기 아버지 집에서 쫓겨났다. 그는 광야의 열기와 갈증을 기적을 통해 이겨 내고 바란 광야에 머물면서 이집트에서 아내를 얻고 열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이 아랍 족속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는 이삭과 좋은 관계를 가진 것으로 보이며 아브라함이 죽을 때에 그와 함께 그의 임종을 지켜보았고 137세에 죽었다(창25:9, 17).
그의 후손인 이스마엘 족속은 모세 당시에 ‘하윌라에서 이집트 앞의 수르에 이르는 지역’에 살았는데 이곳은 아라비아의 북서부 지역이다. 그 뒤에 그들과 셈의 4대 손인 욕단의 후손과(창10:26-29) 아브라함이 그두라에게서 얻은 욕산(창25:3)과 또 욕산과 욕단의 형제들이 아라비아 반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스마엘 족속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수가 많고 창대하게 되었으며(창17:16) 창16:12의 예언 역시 그들의 역사 속에서 실현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형제 유대인들 곁에서 방랑하는 삶을 살았다. 미디안 족속, 아라비아 참조.
II. 유다의 통치자.
그는 갈대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때에 암몬 족속에게로 도망했다가 얼마 후 돌아와서 그달리야 총독과 다른 사람들을 암살하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 또 도망했다(렘40:1-16; 41:1-18).
2009-07-20 01:56:05 | 관리자
르호보암 시대에 이스라엘이 둘로 나뉘기까지 이스라엘 자손 혹은 사람은 열두 지파 전체를 뜻했으나 그 이후에는 대개 북 왕국의 열 지파를 가리킨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지도 참조(19).
이 열 지파 중에서 에브라임 지파가 우두머리 노릇을 하면서 남쪽의 유다 지파와 경쟁을 하였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에 속하였으며 하나님의 언약궤는 오랫동안 에브라임 지파 안에 있는 실로에 머물렀다. 물론 북 왕국 이스라엘의 창시자 여로보암도 에브라임 지파에 속하였다. 왕국의 분열 이후에 열 지파가 예루살렘에 돌아가 경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단과 벧엘에 두 개의 금송아지가 세워졌고 이로써 이스라엘에 우상숭배가 도입되고 불경건함이 유다보다 이스라엘에서 더 빨리 확산되었다. 이스라엘은 칼과 기근 등으로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을 뻣뻣하게 하다가 결국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하였다. 이스라엘의 254년의 역사 속에서 여러 계통의 19명의 왕이 있었으며 세겜과 디르사 그리고 사마리아가 차례로 수도가 되었다. 아시리아의 살만에셀에 의해 다른 곳으로 끌려간 이스라엘 지파들은 다시 민족 전체가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한편 되돌아온 사람들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 속에 묻혀서 돌아왔으며 그들은 우리 주님의 때까지 유대인이라는 명칭을 받게 되었다. 가나안, 히브리 사람, 유다 참조.
2009-07-20 01:55:24 | 관리자
야곱이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뒤에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이름(창32:1-2, 28-32; 호12:3). 야곱 참조.
이스라엘은 야곱의 씨 즉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을 가리키기도 하고(고전10:18) 남 왕국 유다와 대비되는 북 왕국 이스라엘 즉 이스라엘의 열 지파를 가리키기도 한다. 분단 왕국 지도 참조(31).
2009-07-20 01:54:46 | 관리자
아합 왕의 아내.
그녀는 두로와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이었으며(왕상16:31) 일생동안 사마리아에서 우상숭배를 부추기고 하나님 경배를 근절하며 그분의 대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몰두하였다. 그럼에도 오바댜는 목숨을 내걸고 100명의 대언자들을 살려 주었다. 바알의 대언자 450명이 엘리야의 말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그녀는 그를 죽여 복수하려 하였으며 또 후에는 속임수로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아 자기 남편에게 주었다. 그녀는 엘리야의 예언대로 피를 흘리고 처참하게 죽어 개밥이 되었다(왕상19:1-21; 21:1-29; 왕하9:1-37). 그녀의 이름은 이스라엘에서 속담이 되었으며 사도 요한은 두아디라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여대언자를 이세벨이라고 불렀다(계2:20).
2009-07-20 01:54:14 | 관리자
다윗의 아버지.
그는 오벳의 아들이며 모압 여인 룻의 손자이다. 다윗은 사울의 시기를 받아 어려움을 당할 때에 룻의 고향인 모압에서 피신처를 구했다(룻4:17; 삼상17:12; 22:3; 마1:5).
2009-07-20 01:53:31 | 관리자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수확 때에 곡식이나 열매를 남겨두어 그들이 쓸 수 있게 했으며 이런 것을 모으는 것을 이삭줍기 혹은 끝물 포도 줍기라 한다(삿8:2; 룻2:1; 사17:6). 구약시대에 이것은 모세 율법의 일부로 시행되었다(레19:9-10; 23:22).
2009-07-20 01:52:57 | 관리자
아브라함과 사라의 아들(창17:17; 18:12; 21:6).
그는 히브리 민족과 그리스도의 선조 중 하나이다. 그의 이야기는 창세기 21, 24-28, 35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는 그의 부모가 아기를 낳지 못할 정도로 연로할 때에 하나님의 예언과 약속에 따라 출생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기의 이복 형 이스마엘의 시기를 받았고 이로써 약속의 자녀의 상징이 되었다(갈4:29). 그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배웠고 그래서 믿음의 여정에서 순종하고 신뢰하는 것을 잘 보여 주었다. 그는 또한 묵묵히 자기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자기 몸을 내줌으로써 하나님 아버지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님의 예표가 되었다. 그는 40세에 메소포타미아의 리브가와 결혼하였고 자기의 삶의 대부분을 가나안의 남부 지역에서 보냈다.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에 그는 자기 형 이스마엘과 다시 만났다.
성경에는 그의 두 아들이 나오는데 그의 아내 리브가는 야곱을 좋아했고 그는 에서를 좋아했다. 결국 이 일로 인하여 가정에 시기와 분쟁과 죄와 형제들 간의 이별 등이 생겼지만 이 모든 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는 137세에 야곱에게 복을 주고 그를 메소포타미아로 보냈으며 180세에 죽어서 아브라함의 무덤에 묻혔다. 그는 겸손하고 조용하고 묵상하는 사람이었으며 특히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2009-07-20 01:52:34 | 관리자
아모스의 아들.
그는 가장 뛰어난 히브리 대언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예루살렘에서 웃시야 왕의 통치가 끝날 무렵부터 그 뒤를 이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때까지 근 60년 동안 대언하였다(사1:1). 이사야는 오직 예루살렘에서 살면서 거기서 대언을 한 것으로 보이며 사39:1-8의 기사 이후에 역사에서 사라졌다. 탈무드의 전통은 그가 므낫세 왕의 통치 때에 톱에 썰려 죽임을 당했다고 전한다(히11:37). 그는 구약시대의 복음 대언자로 불리며 그래서 이사야서는 ‘성도 이사야가 전한 복음’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이 안에는 임마누엘 하나님과 그분의 출생, 그분의 생애와 속죄 죽음, 그분의 영존하는 왕국 등이 자세하게 예언되어 있다(사7:14-16; 9:6-7; 11:1-10; 32:1-20; 42:1-25; 49:1-26; 52:13-15; 53:1-12; 60:1-21; 61:1-3).
이사야서는 단순함, 순수함, 달콤함, 오묘함, 메시아 예언 등으로 인해 히브리 대언자서 가운데 백미로 꼽힌다.
2009-07-20 01:52:04 | 관리자
온 인류의 첫 번째 어머니.
이브의 이야기는 아담의 이야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아담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브라는 이름은 생명을 뜻하는 단어에서 나왔다(창3:20). 그녀는 남자를 돕기 위해 남자로부터 만들어졌다(창2:18-22; 고전11:1-16). 여자는 남자의 협력자로서 순종해야 하는 약한 그릇으로 만들어졌으므로(딤전2:9-15; 벧전3:1-7) 남자들은 자기 몸을 사랑하듯 여자를 사랑해야 한다(엡5:28-33). 여러 시대를 통한 여자의 역사는 하나님이 이브에게 선고하신 특별한 형벌을 그대로 성취하고 있다(창3:16).
2009-07-20 01:51:26 | 관리자
야벳의 후손들이 거한 소아시아와 유럽 대륙(창10:5). 섬 참조.
2009-07-20 01:50:59 | 관리자
역사가 요세푸스는 성전의 뜰에 가슴 높이의 벽이 있고 정해진 위치에 기둥들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그리스말과 라틴말로 “이방인들(타국인들)이 제단에 가까이 가는 것을 금한다.”는 표시가 있었다고 기록한다(엡2:14).
성전 참조.
2009-07-20 01:50:29 | 관리자
세상에서 가장 두드러진 이방 국가는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메대-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였다.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등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쳐서 정복하려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이 찰 때까지 그들을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어 두셨고 그 후에 그들을 풀어놓으시고 주전 606년경에 세상의 권세가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넘어가게 하셨다. 바로 이때부터 그리스도께서 눅21:24에 말씀하신 ‘이방인들의 때’가 시작되었는데 이때는 곧 하나님께서 심중에 정하신 어떤 한정된 기간이다. 이것과 바울이 롬11:25에서 말한 ‘이방인들의 충만함’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이방인들의 충만함’은 교회를 이루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이방인들을 가리키며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유대인들 가운데 부분적으로 눈먼 것이 지속될 것이다.
적그리스도와 이방인들의 때 선도 참조(77).
이방인들의 때에 관해서는 느부갓네살이 꾼 꿈과 다니엘이 본 네 가지 환상이 포함된 다니엘서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느부갓네살 왕은 즉위 2년에 한 꿈을 꾸었고 꿈속에서 거대한 형상을 보았다(단2:31-45). 이 형상은 세상 왕국들을 상징하며 그 왕국들의 통일성과 역사적 계승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이 형상에 사용된 금속의 질적 가치가 위에서부터 점점 하락하는 것은 세상 왕국의 쇠퇴를 보여 주며 형상의 무게 또한 줄어든다. 형상을 구성하고 있는 네 가지 금속은 연이어 일어난 네 개의 세상 왕국을 의미한다(단2:37-40). 느부갓네살 왕의 때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의 네 왕국 곧 바빌론, 메대-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 제국이 세계의 정부로서 계승되었는데 여기서는 이 왕국들의 개수와 그 이름이 순서대로 밝혀져 있다(단2:38-40; 8:20-21; 9:26).
다섯 가지 세상 왕국 선도 참조(76).
한편 이 형상은 산에서 잘라 낸 돌에 발을 맞고 부서져 산산조각이 나고 마는데 이 돌은 점진적으로 땅에 가득 차서 단번에 형상을 부수고 만다. 또한 이 형상의 멸망의 때는 발가락이 형성된 이후이며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형상의 두 다리는 로마 제국이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열되던 주후 364년경에야 나타났고 열 개의 발가락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이 돌이 형상 위에 떨어지는 때는 ‘이 왕들의 날들’ 곧 장차 있을 열 개의 발가락이 대표하는 왕들의 때로서 다니엘의 해석 속에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다(단2:44; 7:23-24).
여기에 나오는 돌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네 가지 금속으로 표현된 네 왕국은 문자 그대로 실질적인 왕국이다. 그러므로 말세에 있을 ‘돌 왕국’ 역시 문자 그대로의 왕국이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돌 왕국’이 그 세상 왕국들을 파괴하고 그것들을 대신하여 온 땅을 정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돌 왕국’은 그리스도가 친히 다스리시는 천년왕국이며 형상이 상징하는 이방인들의 때는 그리스도께서 땅에 재림하실 때에 비로소 끝나게 된다.
이방인, 천년왕국 참조.
2009-07-20 01:50:02 | 관리자
히브리 사람들이 율법을 받아들이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 붙여 준 호칭.
이와 대조적으로 유대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개종자라 불렸다. 복음의 시작부터 기독교는 모든 민족에게 전달되었다. 자신의 대언자들을 통해 이방인들을 믿음에 이르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은혜로 자신의 약속을 성취하셨고 그래서 크리스천 교회는 주로 이방인들로 구성되고 교만을 버리고 주 예수님을 자기들의 메시아와 구속자로 받아들인 유대인들로 구성되었다. 바울의 서신서에서 이방인들은 대개 그리스 사람들이라 불렸고(롬1:14, 16; 고전1:22, 24; 갈3:28) 사도행전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행6:1; 11:20; 18:4).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의 사도라 불리는데(갈2:8; 딤전2:7) 그 이유는 그가 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베드로는 주로 유대인들에게 선포하였음으로 할례자들의 사도라 불린다(갈2:8). 이방인 선도 참조(73).
2009-07-20 01:49:18 | 관리자
나병 같은 피부병은 이마에 생길 수 있었다(레13:41-44).
다윗은 골리앗의 이마를 쳐서 죽였다(삼상17:49).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이마에 거룩한 패를 지녔다(출28:38). 이마는 매우 중요하므로 봉인하기에 좋은 곳이다. 환난기에 하나님의 십사만 사천은 이마에 봉인되고(계14:1) 새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은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을 가질 것이며(계22:4) 큰 창녀와 짐승의 추종자들은 이마에 악한 표를 가질 것이다(계13:16).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이마에 붙였다(신6:8). 마음이 강퍅한 것을 가리켜 이마가 굳다고도 한다(겔3:7-8).
2009-07-20 01:48:42 | 관리자
갯과에 속한 짐승.
이리는 개와 비슷하나 개와는 달리 짖지 않고 으르렁거리며 잔인하지만 겁도 많아서 아주 굶주린 경우가 아니면 사람을 피해 도망한다. 그러나 굶주리면 밤에 떼를 지어 다니며 사람도 공격한다(렘5:6; 겔22:27; 합1:8). 이리는 빠르고 양을 물어갈 정도로 힘이 세며 보통의 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떼를 지은 이리는 목자와 양들에게 큰 위협이 되며(눅10:3; 요10:12) 이런 차원에서 박해자들과 거짓 교사들은 그리스도의 양떼에게 사나운 이리들이다(마10:16; 행20:29).
2009-07-20 01:48:16 | 관리자
히브리 사람들에게 이름은 아주 중요하였다.
그래서 이름은 가족의 특성이나 아이의 출생과 관련된 사건이나 한 사람의 삶에서 후대에 이루어진 어떤 특별한 사건 등을 기념하는 표적이었다. 이스마엘, 에서, 야곱, 모세, 이가봇 등을 비교하기 바란다(창16:16; 25:25-26; 출2:10; 삼상4:21). 또한 복합 이름도 매우 흔하였으며 특히 하나님의 이름인 ‘야’와 ‘엘’ 그리고 ‘여호’가 이름에 함께 쓰이기도 하였고 엘리에셀, 사무엘, 요시야, 아도니야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전체 구절이 이름이 되기도 하였는데 예를 들어 ‘엘료에내’는 “여호와께서 내 눈이시다.”(대상4:36)라는 뜻이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이름들은 대개 고대로부터 내려온 이름 즉 한 가문의 성들이다(눅1:61). 동방 사람들은 조그만 이유로도 이름을 자주 바꾸었으므로 성경에는 이름이 여럿인 사람이 많이 등장한다(룻1:20; 삼하23:8; 요1:42). 왕들도 종종 관원들을 임명하면서 그들의 이름을 바꾸었으므로(단1:6-7) 새 이름에는 종종 명예와 특권 등이 암시되어 있다(계2:17). 같은 히브리말인데도 어미 등이 조금 달라지면 영어나 한국어에서는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느6:1, 6의 ‘게셈’과 ‘가스무’를 보기 바란다. 히브리 이름은 종종 그리스 이름으로 바뀌면서 거의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야는 Elijah에서 Elias 혹은 Elie로 바뀌었다. 한편 히브리 이름이 같은 뜻을 지닌 그리스 이름으로 완전히 대체되기도 하였는데 그 예로 도마와 디두모 그리고 다비다와 도르가 등을 들 수 있다. 죽은 자의 이름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룻4:1-22에 설명되어 있다. 한편 어떤 사람의 이름을 지우는 것은 그의 가족을 멸절시키는 것을 뜻하였다(시9:5).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이나 그분의 완전함을 대신해서 그분의 이름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마28:19)는 말씀의 ‘이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전 인격과 권능과 존재를 두고 행하라는 뜻이며 이것은 마치 판사가 “내가 법의 이름으로 이러한 선고를 내린다.”고 말할 때의 ‘이름’의 용례와 비슷하다. 따라서 일부 교회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이 예수’라는 ‘예수 유일주의’(Jesus Onlyism)를 주장하면서 예수 이름으로만 침례를 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삼위일체 참조.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요14:14)는 말씀에 나오는 이름 역시 그 용례가 비슷하며 기도를 끝내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것도 주문처럼 예수님을 언급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존재와 전 인격을 의지하여 기도하라는 것을 뜻한다.
특별히 요한복음에서는 이름이 이런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병자를 고친 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사람이 온전하게 되었다고 말하는데(행4:10) 이런 것 역시 이름이 한 존재의 전 인격을 뜻함을 잘 보여 준다.
2009-07-20 01:47:50 | 관리자
이 말은 주(週) 혹은 이레로 표현되었으며 고대로부터 대부분의 민족들은 일주일 단위로 시간을 구분하였다(창29:27). 안식일 참조. 히브리 사람들은 안식일을 제외한 다른 날에 특정한 이름을 붙였다. 물론 지금의 월, 화, 수, 목, 금, 토, 일요일 규정은 색슨 족의 신화에서 나온 것이다. 다니엘은 유대인들을 향한 칠십 이레의 환상을 보았다. 칠십 이레 참조.
요20:26에서 제자들은 여드레가 지나서 다시 만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주님의 부활 이후 한 주가 지나서 여드레째에 만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오순절의 원래 이름은 이레(주)들의 명절(Feast of weeks)이었다. 오순절 참조.
2009-07-20 01:47:01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