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의 붕괴 13
● 스콧 휴즈
진화론의 모순 이론
진화론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생명체들의 진화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어떤 절차나 과정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비록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과정이 제안되기는 했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유기체 진화에 대한 만족스러운 구조를 제공하지 못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어떻게 진화가 일어났는가를 설명해 주는 4개의 주요한 진화 구조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라마르크의 진화설
‘획득된 형질의 유전 이론’(용불용설)으로 알려진 이 이론은 라마르크(Jean Baptiste de Lamarck, 1744~1829)에 의해 처음 제안된 것으로 유기체 진화에 관한 최초의 체계화된 이론이었다. 이 이론의 기본 전제는 계속해서 사용하는 기관은 점점 발달하고 동시에 쓰지 않는 것은 점점 퇴화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필요에 의해 얻게 되는 특성들은 결국 새로운 종으로 진화될 때까지 계속해서 후대로 계승된다는 것이다. 라마르크는 기린의 긴 목이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발달되었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 그는 기린이 나무의 잎사귀들을 먹으며 지속적으로 목을 뻗어 높은 곳에 있는 잎사귀들을 먹으려는 과정을 통해 기린의 목이 가늘고 길게 발달하게 되었다고 믿은 것이다.
이러한 특성들을 유전으로 계승받은 후손들 역시 스스로 이것들을 개선하여 자기들의 후손들에게 넘겨주고 그래서 결국 그런 특성을 갖는 후손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자손에게 유전될 수 있는 변화는 오직 유전자의 변화와 그들이 갖고 있는 DNA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라마르크의 진화론에 대한 근본적인 오류가 발견됨으로써 궁극적으로 이 이론은 거부를 당하게 되었고 그 결과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획득한 특성의 계승 이론’(용불용설)은 과학계 전체에 의해 자연스레 버림을 받게 되었다.
다윈의 진화론
이것은 1859년에 다윈(Charles Darwin)에 의해 체계화된 진화론의 구조이다. ‘자연 선택설’(Theory of natural selection)로 알려진 이 이론은 적자생존의 개념을 핵심으로 한다. 다윈은 어떤 생명체가 먹이와 물과 집 등을 얻기 위해 경쟁하며 생존을 위해 계속되는 투쟁을 하고 있다는 점을 관찰했다. 그는 생명체들 가운데는 다양한 것들이 존재하므로 보다 우수한 특성을 지닌 것만이 잘 싸우게 되고 그 결과 많은 자손을 만든다고 추론했다.
다윈은 기린의 긴 목이 생존을 위한 투쟁의 결과라고 생각했음에 틀림이 없다. 그는 더 긴 목을 가진 기린이 음식물 얻기 경쟁에서 성공할 수 있고 따라서 자신들과 비슷한 자손을 더 많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더 이상 과학자들이 추측하고 있는 생명체의 진화를 설명해 주는 유일한 구조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자연적 선택은 적자의 생존을 설명하는 것이지 결코 적자의 출현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윈의 저서인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과 「사람의 혈통」(Descent of Man) 안에 무려 800번이 넘게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돌연변이 이론
이것은 1901년에 드브리스(Hugo de Vries)에 의해 제안되었으며 1866년에 유전학자 멘델(Gregor Mendel)이 진행한 연구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완두콩 꽃을 사용한 멘델의 역사적 실험은 다윈의 진화론의 근본적 오류를 드러내 주었다. 원래 빨간색과 흰색의 꽃을 내는 모(母)식물을 교배해서 생긴 제2대 빨간색 꽃식물을 이종 교배했을 때, 멘델은 빨간색 꽃 뿐 아니라 하얀색 꽃도 얻을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다윈은 모 식물이 하얀 특성을 소유하지 않았으므로 하얀색 꽃이 생긴 것은 진화론에 따른 새로운 발전/진보라고 가정하였다. 그러나 멘델은 이러한 특성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을 확실히 보여 주었다. 사실 그것은 모 식물의 세대 안에서 우성의 유전자(빨간색)에 의해 일시적으로 감추어진 채 열성의 성질(흰색)로 항상 존재했던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러한 새로운 사실들을 직시하고 그에 따라 주장하는 바를 적당히 바꾸어야만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아주 편리하게도 유전자가 돌연변이의 과정을 통해 완벽하게 새로운 형태로 변화할 수 있다는 설이 제안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돌연변이 이론인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새로운 종은 유익을 끼치는 돌연변이(DNA 교체의 기회)의 결과로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과학자들은 이러한 과정 역시 유기체의 진화를 설명하는 유일한 구조로 인정하지 않는다.
신다윈주의
사실 현대 진화론들은 다윈의 사고를 수정하고 추가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신다윈주의라 불린다. 이러한 형태의 과정을 제안하는 현대 과학자들은 유기체의 진화가 자연 선택(다윈주의), 돌연변이 그리고 지질학적 연대 등의 종합적 효과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신다윈주의자들은 돌연변이라는 과정이 진화에 필요한 잡종들을 제공하며 굉장히 긴 시간을 거쳐 자연 자체가 자기의 뜻대로 그 중에서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돌연변이나 자연 선택 하나만으로는 자기들이 가정하는 생명체의 진화 과정을 설명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비록 이것이 가장 최근의 진화 이론이긴 하지만 이것 역시 아주 기본적인 결점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그럴듯한 진화의 구조로는 부적격하다.
예를 들어, 만일 돌연변이가 생명체의 진화 과정에 정말로 필요했다면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생명체의 생존 능력을 증대시켜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돌연변이는,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불행한 생명체에게 비록 치명적이지는 않다 해도, 거의 대부분(99.99%) 해로운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돌연변이는 더 약하고 살아가기에 불리한 생명체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돌연변이에 의해 생긴 존재들은 생존을 위해 싸우기가 어렵다. 이러한 사실은 현대 진화론의 가정과 희망적 기대에 회복할 수 없는 큰 타격을 주는 것이다. 또한 돌연변이는 기린의 긴 목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목 길이의 작은 차이는 음식의 차이나 혹은 목의 길이를 제어하는 여러 가지 우성 유전자수의 변화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이미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돌연변이는 단지 해로울 뿐 아니라 또한 매우 드물게 일어난다. 그것은 DNA 분자가 1,000만 번 복제될 때 겨우 한 번 일어난다. 다시 말해, 돌연변이는 무작위로 일어나며 방향성이 없어서 예측할 수도 없다. 또한 유기체 진화에 관한 개념이 가능하다고 가정할 때 우리가 확실히 기대할 수 있는 어떤 의도된 설계나 계획 등을 따르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 단순한 무작위적 돌연변이는 체계화되어 있고 늘 방향성을 띠고 있는 진화를 설명할 수 없다. 그 안에는 지적 설계를 위한 중요한 능력이 결핍되어 있다.
돌연변이의 99.99%가 해롭고 매우 드물며 완전히 무작위적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신다윈주의자들은 이러한 어려움들이 지질학적 연대와 자연 선택에 의해 다 해결된다는 ‘초특급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진화에 의해 만물이 형성되는 데 이용될 수 있는, 풍부하고도 알맞은 돌연변이들이 생산되고 선택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고 믿는다. 비록 우연의 과정들에 의해 어떤 것이 생산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연에 의해 창조된 것의 대부분이 순간적으로 소멸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연한 과정에 의해 지금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그와 똑같은 객관적 확률에 의해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화론자들을 매우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시간이 실로 유기체 진화를 구원시켜주는 구원자가 아니라 그것을 대적하는 큰 원수라는 사실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 대한 토론에서 이미 배웠듯이, 시간이 해 주는 일은 분해와 붕괴이지 결코 종합이 아니다. 맹목적으로 자연 선택의 과정을 외쳐대면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면서도 신다윈주의자들은 여전히 자기들의 부서질 수밖에 없는 이론을 지탱할 만한 것을 찾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연 선택은 단지 적합한 생명체의 생존과 연속성을 보증하고 동시에 적합하지 못한 생명체는 파괴시키는 전통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새로운 생명체를 생산하는 혁신적 과정이 아니며 단지 이미 존재하는 구조체나 생명체를 보존하는 역할만 할뿐이다.
결론적으로, 돌연변이와 자연 선택과 시간의 구조를 조합한 신다윈주의는 진화론자들이 가정하는 생명의 진화 과정을 결코 설명할 수 없다. 돌연변이는 항상 이전보다 덜 적합한 생명체를 만들어 낸다. 자연 선택은 적합하지 못한 생명체를 파괴한다. 시간은 죽음과 붕괴만 가져온다. 따라서 이 세 가지로 구성된 진화의 구조는 어떠한 긍정적인 것도 낳을 수 없는 삼중 부정 구조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진화론자는 자신의 이론에 대한 근거나 혹은 설명도 없이 자신의 이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사람이 믿는 비과학적인 상상을 계속해서 믿을 수 있겠는가? 이 세상의 신 즉 사탄이 진리를 믿지 않는 자들을 골라 그들의 마음을 멀게 한 것은 참으로 사실이 아닌가?(고후4:4)
생물 발생설
진화의 현대적 개념은 16세기 과학자들이 주장한 자연 발생설 즉 죽어서 부패한 물질로부터 생명체가 자연히 생겨났다는 이론이 세련되게 단장되어 복귀된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연 발생설의 지지자들은 피상적인 관창을 통해 여러 가지 ‘흥미로운’ 것들 즉 바나나 껍질에서 과일 파리가 나오고 거름에서 구더기가 나오고 죽은 송아지에서 벌이 나왔다는 것 등과 같은 것을 보았고 그 결과 이 같은 결론을 이끌어냈다.
자연 발생설은 레디(Redi, 1688), 스팔란자니(Spallanzani, 1780), 파스퇴르(Pasteur, 1860)와 버어쵸우(Virchow, 1858) 등과 같은 생물학자들의 신중한 연구에 의해 논박되었다. 이들은 피상적 현상을 넘어선 아주 조심스런 실험을 진행하였다. 그들은 어떤 물질이 미리 살균되어 가능한 생물학적 오염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되면 그것으로부터 어떤 생명체도 발생할 수 없음을 증명했다. 그러므로 자연 발생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과 또 다른 이들의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생물발생에 대한 법칙이 정립되게 되었다. 생명은 오직 먼저 존재하는 생명체로부터만 나오며, 오직 자신의 종류만을 영원토록 존속시킬 것이다. 분명히, 이 법칙은 자연 발생설과 생명체의 종류의 변형이란 있을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학생들이 먼저 자연 발생설의 반증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배운 뒤 곧바로 생명체가 나타나는 이유가 진화론의 구조 즉 자연 발생이라는 사실을 배운다면 그것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반면에 생물 발생설의 법칙은 성경적 창조주의와 일치하며 여기서 우리는 모든 생명은 먼저 존재한 생명으로부터 나오고 스스로 같은 종류만을 재생산할 뿐이라고 배운다. 창조론자들은 또한 이 법칙이 창조주의 존재에 대한 간접적 증명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결국, 생명이 없었던 처음 지구는 오직 먼저 존재했던 생명 되신 창조주로부터만 생명을 부여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요약
진화론자들을 당혹케 만들 정도의 복잡하고 다양하고 아름다우며 질서 있는 생명체들이 보여 주는 놀라울 정도의 완벽함은 생명체에 대한 진화론자들의 설명/해석을 완전히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생명체들 사이에 존재하는 의태, 공생, 기생 등의 놀라운 상호 관계들은 분명하게 계획된 것이며 지능적 설계를 보여 주는 것이다. 놀랍도록 정밀한 이주 능력과 그 밖의 다른 본능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은 진화론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DNA 분자의 복잡함은 오직 특별한 창조의 관점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유기체 진화에 관한 이론이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생물학의 일관되고 압도적인 증거는 성경적 창조주의를 지지하고 있으며 신화와 동화와 같은 진화론을 확실하게 논박하고 있다. 한때 다윈은 자신의 신학이 ‘단순한 혼란’에 지나지 않는다고 시인한 적이 있다. 이제는 이 같은 그의 진술이 그의 생물학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음이 아주 확실해졌다.
2009-07-17 14:07:22 | 관리자
진화론의 붕괴 12
● 스콧 휴즈
창조의 생물학적 증거 II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서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특별 창조의 예들을 제시하려 한다.
폭격수 딱정벌레
당신은 가끔 아주 작은 상자 속에 깜짝 놀랄 만한 것이 있을 수 있음을 주의해 본 적이 있는가? 작은 폭격수 딱정벌레가 바로 이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폭격수 딱정벌레는 훌륭한 방어 시스템을 가진 매우 작은 곤충이다. 적의 공격을 받을 때면, 이 활발한 작은 딱정벌레는 언제나 자극적이고도 불쾌한 가스를 폭발시킨다. 이 가스의 온도는 무려 100℃나 되며 그것은 꼬리에 있는 두 개의 관으로부터 나와 그를 공격하려 했던 자의 불행한 얼굴 위에 뿜어진다.
독일의 화학자 쉴트크넥트(Herman Schildknecht)는 폭격수 딱정벌레가 어떻게 이러한 훌륭한 화학적 묘기를 연출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는 딱정벌레가 두 개의 매우 위험한 화학물질(사진 현상액으로 쓰이는 하이드로퀴논과 과산화수소)을 혼합해서 자기의 폭약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두 개의 화학물질 외에도 이 영리한 작은 딱정벌레는 ‘억제제’로 알려진 또 다른 형태의 화학 물질을 만든다. 이 ‘억제제’는 화학 물질들이 분사되는 것을 막아 주며 딱정벌레가 언제까지라도 이 화학 물질들을 안전하게 보관 할 수 있게 해 준다.
만일 딱정벌레에게 개구리 같은 적이 접근하면 그는 언제든지 저장된 화학물질을 두 개의 연소관으로부터 마치 안개처럼 분출시킨다. 그리고 아주 정확한 시기에 다른 화학 물질(반억제제)을 첨가한다. 이 ‘반억제제’는 억제제를 무력화시키며 불쌍한 적의 얼굴에서 정확한 시기에 격렬한 폭발이 일어나게 한다. 이런 불가사의하고도 복잡한 기능이 수백만 년을 거쳐 점차적으로 진화될 수 있겠는가? 진화론자들은 종종 기가 죽은 채 ‘그럴 수 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 대해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고 생각해 본다면 누구라도 진화론의 모순을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진화론의 ‘견해’대로 수천 세대의 딱정벌레들이 치명적인 진화론 실험 속에서 이처럼 위험한 화학 물질들을 잘못 배합하기도 하고 제대로 배합하기도 하는 시행착오 끝에 결국 우연하게 신비로운 배합 공식을 개발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과연 그것들은 어떻게 억제제를 개발했을까? 억제시키려는 두 개의 화학 물질을 당신이 이미 갖고 있지 않다면 억제제의 개발 자체가 전혀 필요 없는 것이다. 반면에 만약 당신이 억제제 없이 이미 두 개의 화학 물질을 가지고 있다면 때는 이미 늦어서 당신은 이미 스스로 폭파되고 말았을 것이다. 명백히 이러한 화학 물질과 억제제의 조합은 어떤 지적 예견과 계획을 떠나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딱정벌레가 어떻게 해서든지 필수적인 억제제와 두 개의 화학 물질을 동시에 개발했다고 가정하자. 이런 결과로 얻게 된 용액은 무해한 혼합제로 남아 있기 때문에 딱정벌레에게 아무런 이익도 주지 못한다. 그것이 딱정벌레에게 어떠한 이익을 주기 위해서는 반억제제가 반드시 그 용액에 첨가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또 다시 수천 세대 동안 이 가련한 딱정벌레들은 어떤 특별한 이유나 이익도 없이 반억제제가 우연히 완성될 때까지 단지 그 화학 물질들을 섞어서 저장해야만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반억제제가 개발된다 해도 그것을 조절해 주는 시스템이 완성되어야 하므로 그 동안에 그는 자기 자신을 산산이 폭파시키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그를 잡아먹기 원하는 굶주린 적의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아! 그는 아직도 두 개의 연소관을 개발해야만 하고 방향을 정확히 맞추고 폭파 시간을 제어하기 위해 정확한 통신 및 타이밍 회로망을 개발해야만 한다.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수천 세대 동안 이 태평한 딱정벌레들은 스스로 새롭게 발명한 능력에 익숙해질 때까지 스스로 자신을 폭파시켜가며 대포를 쏘아대는 독립운동 잔치를 벌여야만 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렇게 비참한 시행착오가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단계적 진화론을 지지하는 동기는 무엇인가?
진화론자들은 진화론 구도 안에서 모든 것을 유익한 것으로 간주하며 논리적 목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결코 발전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들은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하며 전체적 방어 시스템이 모두 일시에 진화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 불가능한 것이다. 대자연계 속에는 이러한 완벽한 조화의 예가 셀 수도 없이 많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놀라운 작은 폭격수 딱정벌레들이 특별한 창조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고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놀라움에 대해 어떤 다른 합리적 설명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위의 예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물 딱정벌레 역시 훌륭한 방어 조직을 가지고 있다. 그는 땀샘으로부터 정화 물질을 분비함으로써 자기의 적을 도망가게 한다. 뿜어 나오는 정화제는 두 가지 목적을 이룬다. 첫째, 딱정벌레를 앞으로 빨리 나아가게 하여 임박한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둘째, 정화제는 물의 표면 장력을 부수어 그것을 쫓던 곤충으로 하여금 물속에 빠지게 한다. 시편에 기록된 말씀들이 얼마나 진실한가!
“오 주여, 주께서 행하신 일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것들을 다 만드셨사오니 주의 부요하심이 땅에 가득하나이다.”(시104:24).
이주 본능
철새들은 뛰어난 항해 기술로 멋진 묘기를 펼칠 줄 안다. 철새의 한 종류인 작은 휘파람새는 독일에서 여름을 나고 아프리카에서 겨울을 보낸다. 이 새는 여름에 새끼를 낳고 새끼와 함께 지내다가 여름이 끝나갈 무렵 어느 정도 독립심이 생긴 새끼들을 뒤로 하고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리고 남아 있던 이 새로운 세대는 몇 주일 뒤에 수천 킬로미터의 낯선 땅과 바다를 향해 본능으로 날아가서 자기들의 부모와 합류한다.
어떻게 그것들이 그 먼 거리를 그렇게 정확히 항해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것들은 전에 결코 그 곳에 가본 적도 없다. 이 새들의 두뇌 속에 별을 보고 위도, 경도, 방향 등을 찾는 방법과 달력, 시계를 비롯해 항해에 필요한 모든 자료가 유전된 정보로 쌓여 있음이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 이처럼 고도로 정교한 장치는 그것들로 하여금 어느 누구의 인도 없이도 정확하게 자기들의 부모를 찾아갈 수 있게 해 준다.
또 다른 많은 새와 동물들도 이와 비슷한 이주 본능을 발휘한다. 황금 물새 떼는 허드슨만 어귀를 떠나서 약 13,000km를 여행하는데 그것들은 캐나다의 노바스코시아주로부터 카리브해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약 3,000km의 바다를 가로질러야 하고 그 뒤 남쪽으로 가서 아르헨티나에서 겨울을 난다. 다음 해에 그것들은 중앙아메리카와 미시시피강 유역을 거쳐 다시 허드슨만으로 되돌아온다.
제비는 북부 캐나다에서 아르헨티나까지 약 15,000km의 거리를 이주한다. 북극 제비갈매기는 극과 극을 왕복 여행하느라 매년 약 22,000km를 날아다닌다. 고래, 물개, 박쥐, 연어, 바다거북이, 뱀장어, 나그네쥐, 그 외에 다른 다양한 동물들 역시 이주한다. 이것들이 이주하는 이유와 이러한 동물들이 보여 주는 불가사의한 방향감각은 진화론자들을 매우 당혹하게 만드는 과학적 난제 중 하나이다. 진화론자들은 어떻게 이러한 뛰어난 능력들이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우연한 기회를 통해 점진적으로 진화되었는지 설명하기 위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본능이 점진적으로 발달한다는 것은 매우 불가능해 보인다. 왜냐하면 이주 본능은, 그것이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으면, 전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양의 절반만 완벽히 건널 수 있다는 것은 아무런 이익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주 본능의 완벽함과 복잡함 그리고 수많은 동물들을 광범위하게 보존시켜 주는 월동(越冬)을 위한 집단 이주의 필수적 역할 등은 점진적 단계적 진화 과정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놀라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유일하고도 논리적인 결론은 이 짐승들이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뛰어난 능력으로 주의 깊게 이것들을 설계하고 창조했다는 것이다.
곤충의 비행
곤충은 다양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아주 놀라운 능력 즉 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유일한 무척추 동물이다. 그것들은 다른 무척추 동물보다 훨씬 다양해서 약 100만 종이나 된다. 곤충의 날개는 비행하기 위해 멋지게 설계된 도구이며 이것은 매우 강하게 노 젓는 동작을 가능케 한다. 곤충들의 날개의 움직임은 매우 복잡하여 상승과 하강 운동, 앞뒤로의 이동, 움츠리고 펴는 운동, 때로는 모양을 바꾸기 위해 접거나 구부리는 운동도 다 할 수 있다. 많은 곤충들은 한 곳에 계속해서 떠 있을 수도 있으며 심지어 거꾸로 날 수도 있다. 또 어떤 것은 옆으로 날거나, 똑같지 않은 날개의 움직임을 이용해 머리나 꼬리를 중심으로 회전하기도 한다.
꿀벌이나 말벌, 파리 같은 곤충들은 작은 날개 면적과 뛰어난 비행 기술을 동시에 잘 조화시켜야만 한다. 예를 들어 꿀벌의 경우 만일 그것들이 큰 날개를 갖고 있다면 벌집 안에서 제 기능을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꿀벌의 날개는 작아야만 하는데 이 같은 날개 면적의 축소는 매우 빠른 날개 짓에 의해 보상된다. 이렇게 날개 짓을 하는 속도는 딱정벌레의 경우 초당 55번에서 꿀벌의 경우 초당 200번에까지 이른다. 더 작은 곤충들 가운데 어떤 것은 놀랍게도 초당 1,046번의 날개 짓을 한다. 곤충의 비행하는 모습은 실로 공학적 경이이며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과 지혜를 보여 준다. 성경에 증명되어 있듯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능력들이 그분의 창조물로 인해 드러나므로 만일 사람이 진실을 거부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핑계도 댈 수 없게 된다(롬1:20).
미끼고기와 낚시고기
하와이의 오하우 섬 근처에는 미끼를 가지고 있는 아주 흥미 있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 비교적 보기 드문 이 물고기는 자기의 등지느러미를 미끼로 사용하여 자기가 잡아먹으려는 다른 물고기들을 유인한다. 그리고 저녁 먹을거리가 눈에 들어오면 이 미끼고기의 등지느러미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등지느러미는 마치 ‘입’과 ‘눈’이 완벽히 맞춰진 분리된 작은 물고기처럼 보이게 된다.
미끼고기는 자기의 제물을 유인하기 위해 자기의 등지느러미를 들어 올리면서 아가미의 움직임까지 멈추고 또 숨을 죽이며 가짜 미끼가 짙은 빨간색을 띠게 만든다. 동시에 가짜 미끼와 미끼고기를 연결하는 부분은 투명해져서 가짜 미끼가 마치 미끼고기로부터 분리된 것처럼 보이게 한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이 미끼고기는 가짜 미끼가 좌우로 움직이도록 한 뒤, 부동자세를 취하고 미끼의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게 한다. 아무 것도 의심하지 않는 희생자가 가짜 미끼에 접근하여 마침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미끼고기는 전광석화같이 그것을 낚아채 버린다.
미끼고기는 이미 생물학적 세부 사항까지도 고려되어 만들어졌으며 그 안에 대단한 독창성과 목적성이 뚜렷하게 있음을 보여 준다. 어느 누구도 진화론으로 이러한 불가사의를 설명 할 수는 없다. 이처럼 확실한 설계는 단순히 우연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니며 고도의 능력이 있는 프로그래머(즉, 창조주)가 미끼고기의 DNA 속에 암호화해서 만들어 놓은 청사진 즉 조심스럽고도 상세한 청사진을 필요로 한다.
다른 물고기들은 자기들의 먹을거리를 잡기 위해 또 다른 형태의 미끼를 사용한다. 입 위에 걸린 움직이는 낚싯대 끝의 가짜 미끼는 많은 낚시고기들의 특징 중 하나이다. 낚시고기 중의 한 종류는 등에서 뻗어 나온 ‘낚싯대’를 가지고 있는데 그 끝에는 빛나는 ‘전구’가 달려 있다. 깊은 바다에 사는 어떤 낚시고기는 입천장에 달린 ‘빛나는 전구’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가짜 미끼를 좌우로 흔들흔들하면서 활짝 벌려진 입 주변을 돌아다닌다. 작은 물고기들은 이 광경에 끌려들어 자기들의 무덤인 낚시고기의 입안으로 헤엄쳐 들어온다!
낚시고기들의 놀라운 모습 중 하나는 그것들이 포착한 먹이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작은 새우처럼 보이는 가짜 미끼로 고기를 잡아먹는 낚시고기는 미끼로 하여금 거꾸로 쏘는 듯한 동작을 취하게 해서 마치 그것이 진짜 작은 새우의 움직임을 흉내 내게 한다. 물고기 모양의 미끼를 단 낚시고기는 헤엄치는 물고기 흉내를 내기 위해 측면으로 물결치는 동작을 취한다.
우리는 이따금 ‘미끼’가 작은 고기들에 의해 따먹히는 경우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불행은 이미 예측된 것이며 이러한 물고기들에게는 새로운 ‘미끼’가 빨리 자라게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부여되어 있다. 사실상 새로운 미끼는 일반적으로 수일 내에 자라기 시작하며 2주 내에 옛 것을 완전히 대치한다. 이처럼 복잡하고 목적으로 가득하며 정확한 형태학적 구조들에 대해서는 진화론에 기반을 둔 어떠한 형태의 합리적인 설명도 있을 수 없다. 아주 그럴듯하게 진화론에 따라 상상한다 해도 이러한 놀라움을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 설계의 놀라운 모습은 분명히 어떤 설계자를 필요로 한다.
요약
독특한 설계와 적응은 대자연의 복잡한 구성물을 통해 풍부하고 완벽하게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진화론에 의거한 그 어떤 설명도 완전히 타파해 버린다. 대부분 이러한 구조와 능력은 단순히 단계적으로 진화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그것들이 오직 완벽하고 완전할 때에만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모든 자연은 선포한다. “보라, 주인 되신 창조자를!”
영국의 유명한 물리학자 켈빈 경(Lord Kelvin)은 이렇게 말했다. “지혜롭고 은혜로 가득한 창조 설계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증거가 우리 곁에 놓여 있다. 무신론에 입각한 생각은 내가 말로 옮길 수 없을 만큼 무의미한 것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진리는 이성 만능주의 과학자들의 복잡한 머릿속에 있지 않고 우리 주변에, 늘 볼 수 있는 데 존재한다. 다만 그들이 유명한 고등교육기관에서 과학을 전공했다는 말에 진리를 알고 있는 일반인들이 기가 질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 역시 다 편견을 가지고 산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과학자들은 사실을 다루는 과학을 연구하므로 편견이 없다고 믿으며 바로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죄 덩어리요, 편견에 파묻혀 산다. 그런데 불행히 과학자들의 대부분은 이성주의라는 온상에서 자란 학문의 독을 먹고 지독하게 하나님을 배격한다. 그래서 사실 복음은 간단한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창조주를 시인하고 그분께 솔직하게 나아가면 그분께서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덮어 주신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신 것을 보라.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고 강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고귀한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자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하나님께서 있는 것들을 쓸모없게 하려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시고 참으로 없는 것들을 택하셨나니 이것은 어떤 육체도 자신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2009-07-17 14:03:34 | 관리자
진화론의 붕괴 11
● 스콧 휴즈
창조의 생물학적 증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참으로 놀라우며 불가사의한 곳이다. 이 지구는 시간당 100km를 달릴 수 있는 치타, 17년간이나 잠잘 수 있는 곤충들, 45분 동안이나 물속에 머물 수 있고 500m나 잠수할 수 있는 웨델 물개(Wedell seals), 자신의 팔을 먹으면 또 새로운 것이 자라곤 하는 8개의 팔을 갖고 있으며 잉크를 쏘는 낙지, 물을 5m나 쏘아 벌레를 잡는 사수어, 시간당 230km의 속도로 먹이를 덮치는 송골매 등의 고향이다.
이러한 생명체들과 그들의 놀랄 만한 능력을 다 나열한다는 것은 아마도 끝이 없는 일일 것이다. 지구는 진화론적 설명을 완벽하게 무시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하고 난해한 ‘적응품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대자연 안에는 독창적인 설계와 목적을 보여주는 수많은 예들이 흘러넘친다. 우리가 사는 이 놀라운 세계에서 목적과 설계라는 개념은 ‘목적론’(teleology)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생명체들이 그것들의 환경에 대해 불가사의하게 적응하는 것과 그것들의 놀라운 상호 관계를 경외의 눈으로 지켜본다. 그들은 이러한 복잡하고도 정밀한 ‘적응품들’이 어떤 목적이나 의도가 전혀 없는 자연적 진화의 점진적 과정에 의해서는 절대로 생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또한 온 지구상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광범위한 생명체들의 아름다움, 복잡함, 그리고 완벽함이 초지성적인 창조자와 설계자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된다고 믿고 있다.
자연 속의 뛰어난 설계
유명한 여론 조사 기관의 창시자인 갤럽(Georgy Gallup)은 한때 하나님의 존재를 통계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몸을 생각해 보라, 각각의 모든 기능이 저절로 생길 수 있는 확률은 통계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비록 우리에게 인체의 모든 불가사의한 미스터리들을 표면적으로라도 짚고 넘어갈 만한 충분한 시간과 장소가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을 당혹케 할 정도로 복잡한 인체의 작은 부분인 눈에 대해 생각해 봄으로써 대자연 속에 있는 뛰어난 설계에 대한 우리의 연구를 시작해 보려 한다.
인간의 눈
진화론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복잡한 인간의 눈을 점진적인 우연적 발달로 설명하려 하지만 사실 거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다. 자동으로 목표를 찾으며 초점을 맞추고 알맞게 조리개를 열 수 있는 인간의 눈은 거의 완벽한 어둠 속으로부터 눈부신 태양 빛 사이의 전 영역에서 그 기능을 발휘하며, 머리카락과 같이 가는 물체들도 볼 수 있고 매일 평균 10만 번의 서로 다른 동작을 취할 수 있으며, 컬러 입체 화면을 연속적으로 우리에게 정확히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은 보통 아무런 불편 없이 행해지며 우리가 잠잘 때 그것은 스스로 정비하는 일을 수행한다.
인간의 눈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해서 과학자들은 아직도 그것의 복잡한 기능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함께 움직여서 인간의 시각을 만들어 내는 복잡한 구조와 작동은 정말로 놀라우며, 고도로 정교한 눈의 동시성 등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어떻게 진화론자들이 인간의 눈이 점진적인 시행착오를 거치며 진화론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믿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만일 우리가 눈이란 완전히 발달되기 전에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이것은 더 분명한 진리가 될 것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집적된 완전한 기능체로서의 역할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눈이 단계적으로 진화했다는 주장은 참으로 이상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개념이다.
다윈(Charles Darwin)은 눈과 같은 구조물을 설명하려 할 때 진화론이 전적으로 부적절함을 시인했다. “눈과 같이 거리에 따라 초점을 맞추고,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고, 입체적 및 색채적 차이를 종합할 수 있는 독특한 장치가 자연 선택에 의해 저절로 형성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스스럼없이 고백하건대 터무니없는 일이다. 눈만큼 완벽한 조직체가 자연 선택에 의해 형성될 수 있다는 신념은 모든 이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다.”
우호적이며 종합적이며 동시적인 돌연변이들이 무한히 생긴다면 혹시 눈과 같은 기관이 만들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진화론자들에게 관대히 양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와이송(Wysong)은 그런 식으로 눈이 형성 될 가능성이 번 중 단 한 번 정도뿐임을 계산하였다. 만일 진화론이 주장하는 대로 눈이 지금의 눈처럼 진화하기 위해서는 우연이 단 한 차례만이 아니고 여러 차례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진화론자들의 문제들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샐리스배리(Frank Salisbury)는 이런 의심스런 추측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의심은 소위 평행 진화라 불리는 것과 관련이 있는 데 그것은 심지어 눈과 같이 복잡한 것이 여러 차례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오징어나 척추동물 혹은 절지동물 등에서 매번 우연한 발달이 있었다는 것이다. 단 한 번에 이러한 것들의 기원을 설명한다는 것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이 진화에 의해 생성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한다.”이제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내려야만 하는 결론은 더욱더 명백해졌다. 눈은 진화적 발달로 인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처음부터 완벽하고 놀라운 형태로 창조되어진 것이다. 스터미우스는 다음과 같은 현명한 말을 했다. “눈에 대한 조사는 무신론에 대한 해결책이다.”
삼엽충의 눈
비록 지금은 멸종되었지만 삼엽충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자연 안에 있는 독창적 설계와 목적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살아 있는 유기적 조직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사람의 눈의 수정체와는 달리 삼엽충의 눈은 무기적 방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과적으로 많은 삼엽충의 눈의 수정체들은 화석의 기록으로 잘 보존되어 왔고 따라서 화석학자들은 그것들을 연구할 수 있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하나의 수정체로 이루어진 인간의 눈과는 달리 삼엽충의 눈은 종류에 따라 한 개의 눈에 100~15,000개의 수정체를 갖고 있으며 매우 독특한 이중의 수정체 구조로 설계 되었다. 이 특별한 구조는 삼엽충으로 하여금 물속에서도 찌그러짐 없이 완벽하게 사물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애비의 ‘사인의 법칙’(Abbe's Sine Law)과 ‘퍼르맷의 원리’(Fermat's Principle) 그리고 다른 여러 광학의 원리에 대한 지식들이 이 같은 삼엽충의 수정체들의 설계 속에 담겨져 있다. 그것들은 매우 지식 있는 물리학자(하나님)에 의해 조심스럽게 설계되었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사실 창조주의자들은 그러한 사실에 대해 동의한다.
해삼
해양 생물 가운데 존재하는 가장 흥미로운 신비 중 하나는 놀랍게도 해삼에서 발견된다. 해삼은 조수의 영향을 받는 지역의 해안을 따라 거주하며 주로 말미잘을 먹고 산다. 말미잘은 그다지 해삼의 마음에 드는 저녁거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만일 누가 그들을 조금이라도 건드리기만 하면 그는 촉수 위에 있는 수천 개의 날카롭고도 작은 세포를 사용하여 침입하려는 적을 독이 있는 침으로 찌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찔리게 된 침입자는 전신이 마비되고 결국 말미잘의 위로 빨려 들어가 소화되어 버리고 만다. 비록 말미잘이 이러한 놀라운 방어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해삼은 결코 말미잘에게 찔리거나 그것의 날카로운 세포를 자극하지 않고도 혹은 그것들을 소화하지 않고도 그것들을 먹을 수 있다. 대자연 안에 있는 이러한 환상적인 신비들 중 하나는 해삼이 이 불쌍한 말미잘의 날카로운 세포들을 어떻게 처치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해삼이 먹은 말미잘의 찌르는 세포들은 소화되지 않은 채 위와 연결된 섬모가 있는 관을 따라 내려가서 끝에 있는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 찌르는 세포들은 이 작은 주머니들 안에서 정렬되고 저장되어 해삼의 방어를 위해 쓰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해삼이 공격을 받게 되면 그것은 가련한 말미잘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침을 사용해서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다. 이처럼 믿기지 않는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고도로 복잡한 변형의 과정은 진화론을 완전히 붕괴시켜 버린다.
무엇보다 이 찌르는 세포들이 폭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해삼은 일시적으로 그것들을 중성화 시킬 수 있는 어떤 종류의 화학적 수단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또한 해삼은 말미잘의 조직만 소화하고 날카로운 세포들은 소화하지 않는 새로운 소화 시스템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해삼은 날카로운 세포들을 정렬하고 저장하고 유지하는 고도로 복잡한 구조뿐 아니라, 섬모가 있는 매우 정교한 관과 작은 주머니를 교묘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결국, 진화론의 기대와는 반대로 말미잘은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을 포기함으로써 해삼의 계획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명백하게도 이렇게 놀라운 적응 설계의 존재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은 전혀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렇게 신비한 관계에 대한 유일하며 합리적인 설명은 이러한 조직체들이 그들의 생태학적 지위에 맞게 창조자에 의해 특별히 창조되었고, 조심스럽게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정원을 가꾸는 개미
자연에서 관찰 되어왔던 또 다른 흥미 있는 관계는 중남미의 아카시아 나무에 대한 것이다. 이 나무는 사납게 먹어대는 개미들이 서식하는, 속이 텅 빈 커다란 가시들을 갖고 있다. 또한 나무에 있는 작은 혹들은 개미들에게 음식을 공급한다. 따라서 개미들은 이 나무로부터 음식과 피난처를 동시에 공급받는 것이다. 이 나무는 이들 개미들과의 거래 조건으로 모든 동물 침입자와 식물 경쟁자로부터 완벽한 보호를 제공받는다. 이 개미들은 모든 침입자들을 무섭게 공격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생 관계의 참으로 놀라운 면은 이 개미들이 모두 훌륭한 정원사들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들은 자기들의 집이 되는 나무로부터 모든 방향으로 규칙적인 습격을 감행하여 그 나무 주위에서 감히 머리를 내미는 모든 녹색의 어린 가지들을 물어 뜯어버린다. 그 결과로 이 특별한 나무는 풍부한 태양빛과 공간을 갖게 되는데, 사실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한 경쟁이 항상 치열한 열대의 정글에서 이런 광경을 본다는 것은 드물다. 실험적으로 살펴보면 이러한 나무들 중 하나로부터 모든 개미들이 제거되었을 때 그 나무는 2~15개월 안에 죽고 말았다. 진화론자들은 보통 이러한 유형의 공생 관계를 상호 순응의 예로 분류한다. 물론 그들은 결코 이처럼 뒤얽힌 관계가 진화론의 과정을 통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화론의 관점은 과학이 아닌 믿음과 가정의 문제로 계속 남게 될 뿐이다. 이러한 경이적인 관계들이 전지하신 창조자의 손에 의해 계획적이고 지능적으로 설계되었다고 인식하는 창조론자들의 믿음은 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것이다.
정화 공생
진화론적 생각이 옳지 못함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자연계의 경이로운 관계는 청소하는 공생 관계이다. 예를 들어, 작은 물고기나 새우를 잡아먹으러 돌아다니는 큰 물고기들의 입은 고기 부스러기들과 기생충 등으로 인해 결국 더럽혀지게 된다. 몇몇 종류의 물고기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지역의 청소를 담당한 부서를 찾아간다. 청소 담당 부서에서 큰 물고기는 입과 아가미실을 열어 무서운 이를 드러낸 채 서 있고 용감한 작은 청소 물고기들과 새우들은 자신들의 임무인 청소를 하며 입속을 헤엄쳐 다닌다. 그들의 임무를 수행한 후에, 작은 물고기들은 큰 물고기의 입에서 무사히 헤엄쳐 나오고, 큰 물고기들도 유유히 헤엄쳐 사라진다. 이러한 관계로부터 쌍방이 이익을 보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사실이 이렇게 특별한 관계의 기원과 발달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 같은 관계가 성립된 이후에는, 오직 생존 가치라는 것이 그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이유로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포식성 물고기와 청소 고기 그리고 작은 새우의 여러 종류들이 이러한 운영 체계에 포함된다는 사실은 진화론자들을 더 당황하게 만들어 버린다.
창조론자들은 이러한 유형의 관계는 결코 단순한 기회나 진화론의 시행착오 과정에서 생겨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모든 동물들의 자기 보존 본능은 작은 물고기들이 이치에 맞지 않게 자살 행위를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다. 물론 쉽게 먹이를 얻을 수 있다는 유혹(작은 물고기들)과 귀찮게 하는 청소자들에 대한 역반응(큰 물고기)은 이러한 관계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만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형태의 공생 조합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들이 어떤 특별한 창조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나는 정화 공생이 단지 물고기에만 한정된 것이 아님을 말하려 한다. 놀랍게도 어떤 이집트 물새는 나일 강에 사는 악어의 음식 찌꺼기와 기생충을 치우기 위해 악어의 입 안으로 똑바로 걸어 들어가 청소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 새 역시 전혀 자기 몸에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고 무사히 빠져 나온다.
이번 호에서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특별 창조의 예를 몇 가지 살펴보았다. 이런 증거들이 너무나도 명백히 창조를 가리키는데 어째서 과학자들은 혹은 많이 배운 사람들은 이런 증거를 묵살하고 진화를 택하는 것일까? 어제도 이 질문을 받고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스스로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명체와 온 우주에 관한한 창조와 진화 둘 중에 하나뿐이 없음을 시인한다. 그런데 만일 그들이 창조를 인정하면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들은 스스로 주인이요 심판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자기가 창조물이라고 시인하게 되면 자기를 만든 창조주에게 자기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며 그분의 심판을 받아야 함을 알고 있다. 그들은 한 마디로 이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를 원하고 스스로 심판자가 되기를 원한다. 바로 여기에서 이 세상의 모든 거짓 종교와 믿음이 나오게 되며 그 중에서 가장 편만한 것이 바로 인본주의/진화론 종교체제이다.
성경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리며 이들 모두가 죄인임을 증언한다.
“또한 그들이 자기 지식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림받은 생각에 내주사 합당하지 못한 일들을 행하게 하셨으니 그들은 곧 모든 불의와 음행과 사악함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하며 시기와 살인과 논쟁과 속임수와 적개심으로 가득하고 수군수군하는 자요, 뒤에서 헐뜯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업신여기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한 일들을 꾸미는 자요,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자요, 지각이 없는 자요, 언약을 어기는 자요, 본성의 애정이 없는 자요, 화해하기 어려운 자요, 긍휼이 없는 자라. 그들이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죽어야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알고도 같은 일들을 행할 뿐 아니라 그런 일들 행하는 자들을 기뻐하느니라.”(롬1:28-32)
창조주를 바로 알고 창조물로서의 위치를 깨닫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요,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첫걸음이다. 혹시 독자들 가운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분이 있으면 진지하게 깊이 고민하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솔직하게 갈구하는 심령에게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2009-07-17 14:01:29 | 관리자
진화론의 붕괴 10
● 스콧 휴즈
창조의 수학적 증거
지금까지 여러 회에 걸쳐 제시한 지질학적 사실들은 생물체의 진화에 대한 일반적 이론에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혔다. 사실 진화론이 제시하는 것은 우주의 모든 복잡한 구조나 계가 순전히 자연적이고 우연한 자연 과정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주의적 관점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외부의 어떠한 초자연적 존재 즉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 그들은 우주가 독립적이며 스스로 진화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에 대해 정반대의 견해를 표명하는 성경적 창조론은 수도 없이 많고 매우 복잡한 시스템과 우주의 미묘한 구조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특별하고 강력한 증거를 제공해 준다고 주장한다. 우주 전체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그 복잡성과 질서는 너무나 엄청나서 결코 단순히 우연에 의해 이루어 질 수 없는 것들이며 창조론자들은 이런 것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재주를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호에서 우리는 수학적 확률의 기본 원리를 이용하여 생물체의 우연한 진화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해 볼 것이다. 확률이란 단순히 어떠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번개에 맞을 확률은 다행히도 약 60만 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한 장의 복권만 가지고 1등으로 당첨될 확률은 불행히도 약 520만 분의 1이다. 진화론자들은 내부적으로 서로 연관된 많은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몹시 복잡한 계들이 단순히 아무 목적도 없는 과정에 의해 발생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적용하자면 많은 원숭이에게 넉넉한 시간을 주어 타자를 치게 하면 결국 그 중 한 마리는 완벽한 대백과 사전을 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완전히 무의미한 것이며 간단한 확률 통계 이론을 적용함으로써 이러한 관점의 우매함과 천진난만함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가며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26 글자로 구성된 영어 알파벳으로부터 임의로 9개의 글자를 선택하여 ‘evolution’(진화)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 보자. 이 경우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269번의 시도 중에서 단 한 번뿐이다. 이것은 5조 4천 2백 9십 5억 3백 6십 7만 9천 번 중의 한 번과 같은 것이다! 우연히 26 글자 중 9 글자를 택하는 것 같이 단순한 요구에 대해서도 수학적 확률은 참으로 그것이 기대할 수 없는 불가능한 사실임을 제시해 준다.
1부터 20까지 번호를 매긴 20장의 카드를 생각해 보자. 이 카드들을 잘 섞어서 일렬로 내려놓았을 때 1부터 20까지 순서대로 놓일 확률은 2,432,902,008,176,640,000번 중 단 한 번이다! 이 어마어마한 숫자는 20계승(20!)이라고 하며 1부터 20까지의 모든 숫자를 곱함으로써 ‘쉽게’ 구할 수 있다.
창세기 1장 1절 말씀 -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 을 우연히 만들 수 있는 확률은 2644번 중 단 한 번이다. 이것은 1.81479392×1062번의 시도 중에서 단 한 번 가능하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바꿔 말하면, 성경의 첫 구절을 우연히 만들어 낼 수 있는 확률은 181,479,392,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번 중에서 단 한 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구성 요소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확률은 급속히 감소한다. 이제 단지 200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매우 단순한 시스템 즉 생명체와 비교하면 참으로 단순한 시스템이 우연히 발생하게 될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러한 질서 정연한 시스템을 형성할 수 있을 확률은 200계승(200!) 중 단 한 번뿐이다. 이것을 다시 쓰면, 788,657,867,364,790,503,552,363,213,932,185,062,295,135,977,687,173,263,294,742,533,244,359,449,963,403,342,920,304,284,011,984,623,904,177,212,138,919,638,830,257,642,790,242,637,105,061,926,624,952,829,931,113,462,857,270,763,317,237,396,988,943,922,445,621,451,664,240,254,033,291,864,131,227,428,294,853,277,524,242,407,573,903,240,321,257,405,579,568,660,226,031,904,170,324,062,351,700,858,796,178,922,222,789,623,703,897,374,72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중에 한 번인 셈이다.
이 어마어마한 숫자는 다시 간단히 쓰면 약 10375이다. 이처럼 처음 시도에 200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시스템을 적당한 배열로 만드는 것은 10375 경우 중 단 한 번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해서 다른 조합을 시도해 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에는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우주에는 단지 약 1080개의 전자가 있다. 이것이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는 최대 부품 숫자라고 가정한다면 어떤 주어진 시간에 각각 200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집합체의 숫자는 1×1080/2×102=5×1077 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정확한 배열을 얻기 위해서는 그러한 집합체를 10375번 구성해 보아야만 한다.
첫 번째 시도한 집합들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정하고 1초에 10억 번씩 시도해서 계속 진행해 나간다고 생각해 보자. 더 나아가 진화론자들에게 가능한 모든 이익을 주기 위하여, 300억 년(1018초) 동안 계속해서 이 같은 시도를 해 왔다고 생각하자. 왜냐하면 이 기간은 진화론자들이 우주의 연대로 추측하고 있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이 양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도할 수 있는 조합의 최대치는 아직도 이다. 즉, 이렇게 많은 양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번의 시도 중 하나가 우리가 원하는 200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시스템을 산출해 낼 수 있는 확률은 단지 번 중의 한 번인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200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복합 시스템이 단지 우연에 의하여 발생될 기회는 실제적으로 없다.
진화론자는 자기의 의견을 옹호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인가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며 그것을 실수라고 얼버무릴는지도 모른다. 또한 200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시스템이 한 번에 갑자기 구성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고 대신에 단계적 돌연변이나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발전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주장은 진화론자들의 생각에 더욱더 악영향을 끼칠 뿐이다. 단계적 과정에 의해서 200개의 부분으로 구성된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는 확률은 급수 형태인 2!+3!+4!+···+200! 중 단 한 번이다(!은 계승을 의미). 분명히 이 수는 200!보다 훨씬 더 큰 수이다. 실로 200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시스템을 이러한 단계적 방법에 의하여 발전시킬 수 있는 확률은, 이미 위에서 우리가 확인한 대로, 거의 0의 확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동시 발생의 경우’보다 실제적으로 훨씬 더 적다.
사실 200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시스템은 생명체에 비하여 우스우리만큼 원시적인 것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행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생명체로 분류될 수 있는 가장 기초적 형태의 단백질 분자는 적어도 400개의 아미노산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각각의 아미노산은 4개 또는 5개의 원자들의 특별한 조합으로 이루어져있고, 각각의 원자들은 양자, 중성자, 전자들의 독특한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골레이는 복제하기에 가장 간단한 단백질 분자가 형성될 수 있는 확률은 중 단 한 번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와이송(Wysong)은 가장 작은 분자가 자기 분열을 할 수 있는 어떤 물질을 형성하기 위해 단백질과 DNA가 형성될 수 있는 확률을 계산했는데 그것은 번 중 단 한 번의 확률이었으며 그것은 또한 어마어마한 양의 시간과 시약을 주었다는 가정 하에서 계산한 것이다. 좀 더 복잡한 구조나 사람의 머리 안에 있는 뇌의 피질같이 복잡한 기관들에 대한 우연적 발생 가능성을 누가 상상이나 해 볼 수 있겠는가? 뇌의 피질은 특별한 계획에 따라 정교하게 정돈된 10,000,000,000개 이상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포 한 개 한 개는 그것만으로도 환상적으로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다!
파리 대학의 슈첸버거 교수는 “진화에 관한 신다윈주의적 해석에 대한 수학적 도전”이라는 학술회의에서 돌연변이나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의 확률은 생각해 볼 수도 없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우리는 그것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 만일 글자를 불규칙적으로 변화시켜가며 컴퓨터로 그런 상황을 모의실험 한다면 우리는 수정된 프로그램이 무엇을 계산할는지 전혀 알 수 없다(즉 확률이 이하임). 다시 말해 그 프로그램은 전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Schutzenberger, Algorithms and the Neo-Darwinian Theory of Evolution, in Mathematical Challenges to the neo-Darwinism Interpretation of Evolution).
지금까지 논의해 온 것들에 대한 확률이 매우 작으므로 대개 수학자들이 1050번의 경우의 수 중에서 단 한 번 일어날 확률을 갖고 있는 사건을 0의 확률을 가진 사건 즉 불가능한 사건으로 여긴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생물일지라도 단지 우연에 의하여 발생한다는 것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생명은 결코 우연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며 또한 명석한 과학자들이 조합해 낼 수 있는 어떤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유기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복잡하다는 사실은 초자연적 설계와 계획 없이 그 같은 생명체가 발생할 수 있었다는 생각, 즉 단순히 우연에 의존하는 생각을 완전히 배제한다.
수학적 분석에 기초를 두면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결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특징짓는 매우 복잡하고 질서 정연한 시스템들이 결코 우연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고 우리의 창조주 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손으로 만드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이 기록한 시편 기자의 말이 얼마나 정확하고 적당한 표현인가!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노래로 우리 하나님을 찬양함이 선하고 즐거우며 또 찬양을 드림이 마땅하도다. 주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들을 함께 모으시며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그분께서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그것들의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고 권능이 크시며 그분의 명철은 무한하시도다(시147 : 1-5).
2009-07-17 13:59:35 | 관리자
진화론의 붕괴 9
● 스콧 휴즈
창조의 물리학적 증거
지난 호까지 제시한 지질학적 사실들은 생물체의 진화에 대한 일반적 이론에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혔다. 이제 우리는 부가적으로 우리에게 사실적 증거를 제시해 주며 또한 진화론을 반박하고 성경적 창조론을 지지해 주는 역할을 하는 물리학이라는 과학적 분야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열역학 제1, 제2법칙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데 이 두 법칙은 모든 종류의 계(system)에 대해 계속해서 반복 시험되어 확실성이 증명된 과학적 법칙들이다. 유명한 과학자들 치고 이 법칙의 타당성과 광범위한 적용성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열역학 제1법칙
열역학 제1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열역학 제1법칙이란 어떤 형태의 에너지가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바뀔 수는 있으나 저절로 생성되거나 소멸되지는 않는 것을 말한다. 이 법칙이 결론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우주가 저절로 창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주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자연 법칙이란 것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같은 과학적 사실은 자연주의적이며 혁명적인 진화론의 기본 개념과 직접적으로 배치가 되며 큰 갈등을 일으킨다. 현재 우주의 구조는 진화론이 요구하는 바와 같이 혁신적 구조가 아니라 보존적 구조이다.
과학자들은 에너지와 물질의 기원 혹은 전체 에너지의 보존 이유 등에 대하여 설명할 수 없지만 성경은 해답을 갖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200억년 전에 빅뱅이 생겼으며 그때에 콩알만 한 것 안에 온 우주가 다 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그 콩알은 어디서 생겼을까? 그냥 생기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누군가가 그것을 만들지 않았다면 그 콩알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만이 스스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수 있다. 인간은 단지 이미 존재하는 물질을 개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영어 단어 create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데 사용되고 그런 존재를 creator라고 한다. 반면에 사람은 유에서 유를 만들므로 maker라 부른다. 사람은 실제로 아무것도 create 할 수 없다. 이 차이를 인식하면 누구나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금세 알 수 있을 것읻가.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끝내신 뒤부터(창2:3) 에너지는 더 이상 창조될 수 없다. 에너지가 소멸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떠받치시기’ 때문이다(히1:3). 그분은 자신의 창조 세계를 보존하시며 간수하신다(느9:6; 벧후3:7).
열역학 제2법칙
진화론은 열역학 제1법칙에 의해 큰 타격을 받은 뒤 열역학 제2법칙으로부터 거의 살아남지 못할 정도의 치명적 일격을 받게 된다. 열역학 제2법칙은 유용 에너지 감소의 법칙으로 알려져 있다. 이 법칙은 몇 가지 다른 방식으로 표현이 가능한데 어떤 경우에도 그 의미는 다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열역학의 중요한 적용 분야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고전적 적용
전체 에너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하여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처음에 누군가가 에너지를 불어넣지 않았다면 온 우주 자체가 보존될 수 없다. 비록 진화론자들이 ‘빅뱅’을 주장하지만 이 ‘빅뱅’을 위해서도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들은 한결같이 이 점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에너지가 어디에선가 생겼다는 공허한 주장만 되풀이한다. 전체 에너지는 유용 에너지와 무용 에너지의 합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어떤 작용계 내에서 유용 에너지를 사용하면 할수록 무용 에너지가 증가하며 우리는 이를 가리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표현한다.
2. 통계적 적용
어떤 시스템의 질서도는 자유자재의 형태 즉 무질서의 상태로 변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모든 계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확률이 적은 경우에서 큰 경우로만 진행된다. 예를 들어 커피 잔에 담은 뜨거운 물은 뜨거운 상태로 유지되는 것보다 주변 환경의 온도로 차갑게 되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 다시 표현하면 뜨거운 상태로 있을 확률이 차가운 상태로 있을 확률보다 낮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뜨거운 물은 차가운 물로 변하는 것이다.
3. 정보적 적용
통신 시스템에 의해 전달되는 정보는 방해를 받아 불완전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 모든 것의 핵심 내용은 모든 계를 가만히 둘 경우 질서 있는 상태로부터 점점 무질서한 상태로 변화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우주는 조직체의 질서를 감소시켜 해체시키는 방향 즉 쇠퇴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물질로 구성된 것들은 다 쇠퇴하고 있으며 모든 생명체는 결국 먼지로 되돌아가고 우주의 모든 에너지는 임의의 저급 열에너지로 될 것이며 우주는 보통 열사(heat-death)라고 하는 상태로 죽어가게 될 것이다. 에딩턴 경(Sir Arthur Eddington)이 열역학 제2법칙을 가리켜 ‘시간의 화살’(Time's Arrow)이라고 부른 것은, 화살이 지속적으로 아래 방향을 향해 떨어진다는 사실을 주목한다면 결코 놀랄 만한 일이 못된다.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배하면서 좀 더 질서를 띠고 복잡한 개체를 이루는 진행도 가능할 수 있겠지만 필연적으로 그것은 매우 제한적이고 드물며 사실상 일시적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만일 진화론이 어느 정도 그럴듯하게 보이려면 적어도 열역학 제2법칙을 수십 억 년간이나 위배해야만 한다! 이처럼 열역학 제2법칙은 진화론을 통계적으로 거의 증명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 뿐 아니라 실제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당신의 이론이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배된다면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희망을 줄 수 없습니다. 그 이론은 매우 비참하게 붕괴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창조론자들은 열역학 제2법칙으로부터 나온 엔트로피 증가(무질서도 혹은 불규칙성의 증가)의 법칙이 인간의 타락(창3:17-19)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내리신 저주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설명한다. 창조론자들은 또한 모든 피조 세계가 결국에는 부패와 쇠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롬8:18-23). 그래서 지금의 세상에는 에너지와 물질만이 보존되며 엔트로피는 증가하지만 앞으로 오는 세상에서는 엔트로피도 보존될 것이다.
이것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아메바와 사람의 질서도를 보면 사람이 아메바보다 훨씬 더 크다. 그러므로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 질서도가 낮은 아메바가 저절로 진서도가 놓은 사람으로 진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이것은 사람과 원숭이에게도 적용된다. 원숭이가 사람이 되려면 열역학 제2법칙이 변해야 한다. 하지만 이 우주에서는 그런 일이 생길 수 없으므로 진화는 불가능한 것이다. 단지 마음속에 창조주를 두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진화의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로마서 1장 20-2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神格)은 창세로부터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알되 그분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며 오히려 자기들의 상상 속에서 허망해지고 또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그들은 스스로 지혜 있다고 선언하나 어리석은 자가 되어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 발 달린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것들과 같은 형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그들 마음의 정욕을 통해 부정함에 내주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겼느니라. 그분은 영원히 찬송 받으실 분이시로다. 아멘.
열역학 제2법칙이 진화론자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므로 일반적으로 그들은 그것을 무시하려 하고 있는데 이는 결코 놀랄만한 사실이 아니다. 이에 대해 설명해 보라는 압력을 받게 되면 그들은 열역학 제2법칙을 교묘히 빠져나가기 위한 시도로 보통 두 가지 의견을 제시한다.
첫 번째 의견은 열역학 제2법칙이 지구 같은 개방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태양이 엔트로피로 인한 에너지 손실을 보충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지구에 제공하고 있으므로 제2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언뜻 보기에는 그럴듯한 진술로 보이지만 이 주장은 두 가지 주요한 잘못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로 모리스(Henry M. Morris) 박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주장은 에너지의 양을 에너지의 변환과 혼동하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이 자연계에는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진화 과정을 일으킬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가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실제 문제는 “어떻게 태양 에너지가 진화를 유지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단지 에너지가 있다고 해서 질서를 띠며 구조적 성장의 발전을 가져오는 것으로 추정되는 진화가 자동적으로 보증되지는 않는다.
어떤 방향성을 가진 프로그램 기구(Program mechanism)들이 이 같은 에너지를 ‘좀 더 발전된 구성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로 변환시켜 주는 것이 필요하다. 목재, 벽돌, 못, 그리고 공구 더미 등을 예로 들자면, 비록 그것들이 일을 수행시킬 만한 충분한 에너지를 태양으로부터 받고 있는 ‘개방계’임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계획 없이 자동적으로 진화해서 건물로 변할 수는 없다. 또 기억해야 할 것은 아무리 건물이 복잡하다 해도 살아 있는 가장 단순한 세포에 비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원시적이라는 점이다.
둘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진정한 ‘폐쇄계’는 것은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열역학 제2법칙이 지구와 같은 개방계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모든 계 역시 ‘개방계’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엔트로피 법칙과 진화론이 서로 보조를 맞추도록 하기 위해 그들이 사용하는 두 번째 주장은 열역학 제2법칙이 ‘살아 있는 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생명 현상이 엔트로피 법칙과 눈에 띄게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씨가 자라서 나무가 되고 태아가 성장하여 성인이 된다. 그러나 모리스 박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생명체의 성장 과정은 실제로 열역학 제2법칙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생명체의 성장 과정은 실제로 발아 세포의 놀라운 구조가 이루어 낸 업적일 뿐이다. 그리고 발아 세포는 그 안에 생명체 내부로 들어오는 화학물질들을 동화시켜 점차 모체(母體)의 구조와 같은 구조를 이루어 가는 데 필요한 비밀스런 정보들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제로 질서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 체계의 신비한 복잡성과 그것이 사용할 수 있는 주변의 에너지가 외부적으로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체가 실제로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배하면서 더 복잡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성장한 생명체는 유전자 내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질서가 단순하게 바깥으로 표현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성장한 생명체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성장 과정과 발전을 위한 청사진은 이미 모체의 유전자 내에 있었던 것이다.
DNA 안에 이미 있었던 질서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기원은 창조론자에게 아무런 어려움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화론자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직면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지적 질서와 설계가 이미 존재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생명체가 시작될 수 있었을까? 이 문제는 무신론을 믿는 진화론자들을 영원히 괴롭히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엔트로피가 외관상으로 감소하는 현상이 단지 외부 환경 내에 더 큰 엔트로피 증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만 한다. 이처럼 전체 계 혹은 우주는 열역학 제2법칙이 요구하는 대로 계속해서 소멸되는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과정들은 일시적이고 결국에는 사라지거나 해체되고 만다. 생명체는 열역학 제2법칙을 연기시켜보려 하지만 엔트로피는 결국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야 만다. 한 마디로 생물학적 계와 생물학적 과정들은 복잡한 화학적/물리적 과정들이며 열역학 제2법칙은 이 모든 것에 확실하게 적용된다.
진화론을 지지하는 생화학자 블럼 박사(Dr. Harold Blum)는 이 사실을 인식하고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우리가 아무리 세밀하게 생명체의 ‘에너지론’(Energetics)을 조사한다하더라도 열역학 법칙들을 무너뜨릴 증거는 발견할 수 없다. 우리는 생명체 내에만 존재하며 비생명체의 세계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엄청난 복잡성을 보게 된다.”
이제 우리는 열역학 제2법칙이 생명체가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러나 창조 모델은 열역학 제2법칙이 효력이 있을 것이며 따라서 여러 가지 과학적 사실에 의해 구체화 된 것이라고 다시 한 번 예측하고 있다.
요약
두 개의 가장 신뢰할 만한 과학 법칙인 열역학 제1, 제2법칙은 ‘보존과 쇠퇴’라는 두 개의 과정이 여러 가지 물질로 구성된 우주를 특징 있게 만들어 주고 있으며 우주의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음을 증명해 준다. 이런 사실은 우주 전체가 점점 더 나아지기를 소망하는 진화론의 체계가 요구하는 것과 예상하는 것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한다. 우리는 모리스 박사의 유명한 글을 인용함으로써 이번 호의 결말을 지으려 한다.
“열역학 제2법칙은, 소위 과학이 어떤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만큼이나 아주 확실하게 우주에 시작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이와 비슷하게 열역학 제1법칙은 우주가 스스로 시작될 수 없었음을 보여 준다. 우주 내의 전체 에너지량은 일정한 값이지만 사용 가능한 유용 에너지량은 감소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간을 역행해서 되돌아가게 되면 사용 가능한 에너지량이 점점 증가하게 될 것이고 결국 사용 가능한 에너지량이 전체 에너지량과 같았던 시작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시간’이라는 것은 이 이상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 이때가 바로 에너지와 시간이 존재하게 된 때이다. 에너지는 자체적으로 창조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2009-07-17 13:55:26 | 관리자
진화론의 붕괴 8
● 스콧 휴즈
노아의 홍수: 대격변
지난 호에서 우리는 시베리아 지방에서 갑작스레 얼어 죽은 매머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큰 초식성 열대 짐승들이 그곳에서 죽어 묻혀 있을까? 창조론자들은 이 놀라운 상태에 대해 아주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한다. 그 이유는 지금부터 약 4350년 전에 발생한 노아의 대홍수 때문인데 이때에 홍수 이전의 세계를 덮고 있는 증기 막이 홍수 이후에 붕괴되었다.
창세기 7장 11절에는 “그 날에 큰 깊음의 모든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런 증기 막은 세계 도처에 온실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이 같은 온실 효과로 인해 홍수 이전의 기후는 거의 계절의 변화 없이 지구 전체를 통해 온화했을 것이다. 또한 그때에는 비와 무지개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다(창2:5-6; 8:22; 9:13). 오늘날 우리가 전 세계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심한 폭풍은 이 같은 증기 막으로 인하여 결코 생성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창2:5,6; 히11:7). 이 같은 증기 막의 존재는 야자수 잎들, 과일 나무, 열대 해안의 갑각류, 산호초, 거대한 양의 아열대성 식물들이 추운 극지방에 묻혀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사람의 수명은 홍수 이후에 계속 줄어들어 지금은 70-80세가 되었다. 또한 이 증기 막은, 돌연변이와 노화 작용을 가속화시키는 영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진 우주 공간으로부터의 해로운 열복사를 걸러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막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또한 홍수 이전의 족장들의 긴 수명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로도 잘 알려져 왔다(창 5:5-27). 우리는 대홍수 이후에 성경에 있는 여러 족장들의 나이가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노아 = 950년
살라 = 433년
벨렉 = 239년
아브라함 = 175년
모세 = 120년
다윗 = 70년
현재 = 70-80년(시90:10)
창조론자들은 이 거대한 증기 막의 붕괴만이 창세기 7장 11-12절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일간 밤낮으로 비가 땅에 쏟아졌다.”는 이 구절은 결코 평상시의 폭우가 내린 것을 보여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재 대기의 수증기와 구름이 다 지면에 떨어진다 해도 이로 인한 강우는 몇 시간 후에는 끝이 나며 강우량은 전 세계에 걸쳐 겨우 10cm 높이의 물만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홍수 이전의 거대한 증기 막의 붕괴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이 도대체 시베리아에서 얼어 죽은 채 발견되고 있는 거대한 매머드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수증기 막의 붕괴로 인해 북극 지방에 살고 있었던 매머드가 갑작스럽게, 거의 순간적으로 얼어 죽었을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이 수증기 막이 초기에 붕괴되기 시작했을 때 영하 150℃정도의 차가운 기운이 그들을 덮쳤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물론 이 같은 이론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이 이론은 상당한 과학적/성경적 지지를 받고 있으며, 현재는 어떠한 균일론/진화론적 설명보다도 적합하게 매머드 등이 묻힌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노아의 대홍수 이전에 있었던 증기 막에 대해 더 알기를 원하면 딜로우(Joseph C. Dillow)가 지은 「위에 있는 물들」(The Water Above, Moody Press, 1981)을 참고하기 바란다.
한편 창조를 지지하는 다른 증거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멸종: 지난 수십 년 동안 진화론자들은 공룡이나 삼엽충 같은 강인하며 확고히 정립된 동물들이 갑자기 화석의 기록으로부터 없어져 버린 사실로 인해 매우 당황해 하고 있다. 그것들이 갑작스럽게 사라진 사실 자체가 진화론자들에게는 큰 수수께끼이지만 창조론자들은 그것들의 불행이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창세기의 대홍수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창조론자들은 증기 막이 갑작스럽게 붕괴됨으로 인해 홍수 이후의 기후는 홍수 이전의 기후와 완전히 다르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이런 동물들은 더 이상 따뜻하고 안정되며 온화한 기후 속에서 살 수 없게 되었고, 매우 차가운 온도, 맹렬한 폭풍, 지독한 겨울 등과 같이 상대적으로 불안정하고 좋지 못한 환경 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서 어떤 동물들은 좋지 못한 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집단 전체가 멸종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 공룡 같은 냉혈 동물은 체온이 외계의 온도에 의해서 유지되므로 이 같은 기후에 의해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2) 석화(石化)된 나무토막: 돌처럼 딱딱하게 된 이 나무들은 균일론/진화론자들에게 또 다른 수수께끼를 던져 주는데 그 이유는 이것들이 소위 ‘균일화된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화석 기록에서 수천 개씩이나 발견되곤 하며 이것들의 섬유질과 세포 조직은 실리카로 대체됨으로써 완전하게 보존되어 왔다. 이런 나무토막들에 관한 증거는 한결같이 갑작스런 대격변의 사건을 가리키고 있다. 이 나무토막 중 그 어느 것도 서 있는 채로 발견되지 않았다. 이 나무토막들의 가지들은 다 떨어져 나갔으며 그 중 어떤 것들은 아직까지도 손상되지 않은 껍질을 갖고 있는데 결국 이런 사실은 썩는 현상이 생기기 전에 그것들을 갑작스럽게 매장시킨 어떤 급격한 일이 일어났음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해 원래의 삼림은 굉장한 힘을 갖고 있던 물로 말미암은 대격변에 의해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고 거기서 퇴적되어 결국 석화 되었던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한 단 하나의 합리적이며 그럴듯한 설명이 창세기의 대홍수라고 주장한다.
(3) 다층 나무: 다층 나무란 보통 키가 6m을 넘는 나무로 지층의 여러 단면에 있는 화석나무를 말한다. 이런 화석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형성되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지층이 그 위에 서서히 쌓이는 동안에 그것들이 다 썩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나무들이 진화론자들이 가정하는 진화론적 시간 구도 상에서 무려 몇 백만 년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명백하게도, 언제나 성경에 기초하여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창조론자들은 이런 나무들의 수송 및 침전이 그것들 주변에 있던 퇴적물과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균일론/진화론의 가정에 심각한 문제를 던지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화석의 증거들은 창세기 대홍수라는 성경적 대격변론을 지지한다.
(4) 수명이 짧은 일시 흔적: 물결 자국, 빗방울 흔적, 벌레 자국, 그리고 동물의 발자국 같이 수명이 짧아 금방 사라지게 되는 흔적들이 화석 기록 안에서 무수히 발견된다. 이 같은 종류의 화석은 원래 최근에 침전된 퇴적물 층의 표면 위에 살짝 스쳐가듯이 자국만 남긴 채로 형성되었다. 오늘날과 같이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이와 같이 수명이 짧은 일시 흔적들은 형성되지도 않고 보존되지도 않는다. 이들의 보존은 화학적 변화 과정과 관련이 있으며, 매우 비정상적으로 순식간에 일어난 매장 등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 같은 흔적들이 전 세계의 모든 화석 기록 속에서 수도 없이 많이 발견된다는 사실은 창세기 대홍수 같이 갑작스럽게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대격변에 의해 퇴적층이 형성되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된다.
(5) 유기체의 부드러운 조직: 화석 기록에는 실제로 유기체의 부드러운 부분(혹은 조직)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소위 가장 오래된 지층이라고 생각되는 곳에서도 이런 것들이 발견된다. 또한 이런 화석들은 대개 한꺼번에 대량으로 발견된다. 미국 자연사 박물관의 화석 학자 느웰(D. D. Newell)은 최근에 이 같은 화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기체의 조직이 방부제의 늪 속에 보존된 예들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은 중부 독일 가이셀탈에 있는 신생대 제3기 에오세 갈탄 침전 지역에 있는 ‘화석 무덤’ 안에서 발견된다. 무려 6,000개가 넘는 척추동물의 유해와 수많은 곤충들, 연체동물들, 식물들의 잔해들이 그 안에서 발견되었다. 이런 동물들의 부드러운 세포들이 압축된 잔해들은 상세하게 그 세포들의 조직을 보여 주었고 그 중 몇몇은 화학적 변화를 거의 거치지 않았다.”
이처럼 놀라운 퇴적물들은 정상적이며 느리고 균일하게 한 곳에서 일어나는 과정에 의해 형성될 수가 없다. 생물체들이 어디에선가 운송되었고 퇴적물에 의해 급속도로 매장되었음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부드러운 조직들이 수백만 년 동안 썩으면서도 침해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해 왔다고 주장하는 균일론/진화론의 가정은 분명히 이치에 닿지 않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대안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일어났던 대격변 즉 수력에 의한 전 세계적 대격변뿐이며 이런 대홍수만이 이런 생물체들을 파멸시키고 운반하고 쌓아서 그들로 하여금 퇴적물 안에서 썩지 않고 보존될 수 있게 할 수 있다. 오직 창세기 대홍수만이 이렇게 관찰된 사실들을 합리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대안인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지금까지 화석학이 진화론을 확고히 해줄 수 있으며 참으로 중요한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위에서 살펴본 대로, 실제 화석 기록에서 관찰된 것은 진화론을 대적하며 오히려 성경적 창조론과 대격변론을 지지해 준다. 진화론적 선조들을 갖고 있지 않은 채 매우 다양하며 발전된 형태의 생명체들이 갑자기 나타났다는 사실과 시간에 따라 종류들이 변하지 않고 여전히 같다는 사실, 그리고 화석 기록 안에 과도기 중간 단계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전적으로 성경적 창조론/대홍수를 지지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매머드와 석화 된 나무들, 다층 나무들, 순간적 흔적들, 부드러운 조직들, 화석 무덤 등의 화석화 현상과 같은 증거들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이른 바 ‘창세기 노아의 대홍수’라는 큰물에 의한 대격변이 순간적으로 전 세계에 이루어 놓은 역사를 보여 준다. 따라서 화석 기록이 제공해 주는 증거들은 창조와 창세기 대홍수에 대한 성경 기록을 확증해 주며, 동시에 진화와 균일론을 단숨에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지구의 독특함
창조가 있었다는 사실은 반드시 창조자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복잡한 설계는 주의 깊고 지적이며 숙련된 설계자를 필요로 하며 모든 조직은 조직체의 주관자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아주 단순하며 간단한 논리이다. 우주비행사들이 달에 착륙했을 때 바위 사이에 놓인 아주 섬세한 컴퓨터 시스템을 발견했다고 생각해 보자. 만일 그 컴퓨터가 공간 속에서 생겨난 바위들과 운석들의 우연한 충돌을 통해 또는 어떤 우연한 사건을 통해 진화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면 과연 그것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일까? 아니면 그것이 어떤 지적 창조자에 의해 세심하게 고안되었다고 결론짓는 것이 더 논리적일까? 일반적 상식대로라면 물론 후자의 설명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주스를 만드는 믹서 그 자체가 달착륙선 아폴로 16호로 변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것은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일이며 분별없고 불합리한 일이 아닌가? 분자의 우연한 조합을 통해 우연히 사람이 만들어져서 우연히 지금까지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 역시 이와 같이 분별없고 불합리한 일은 아닐까? 물론 온 우주와 태양계가 하나님에 의해 고안되었다는 증거는 그것들이 단순히 우연에 의해 조합되었다는 그 어떤 가능성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다. 이제 우리는 생명체를 유지하기 위해 매우 주의 깊고 특별하게 고안된 태양계의 몇 가지 특징을 생각해 보려 한다.
1.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매우 적당한 거리에 위치해 있고 이로써 우리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적당한 열량을 정확하게 받는다. 우리의 태양계 내의 다른 유성들은 태양에서 너무 가깝거나 멀어서 생명체들이 살 수 없다.
2. 지구의 회전 속도에 조그만 변화만 있어도 생명체들은 살 수 없다. 예를 들어 만일 지구가 현재 속도의 1/10으로 회전한다면 모든 식물이 밤에는 얼어 버릴 것이고 낮에는 바삭바삭 타 버릴 것이다.
3. 지구가 거의 원형 궤도를 따라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기 때문에 온도 변화는 적당한 한계 내에서 유지된다.
4. 극한 온도는 대기권 안에서 온실 효과를 나타내는 이산화탄소와 수증기 등에 의해 온화하게 만들어진다.
5. 지구로부터 약 384,000km 정도 떨어진 채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달은 지구에 전혀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바다의 조류를 일으킨다. 만약 달이 지구에서 현재 거리의 1/5 되는 위치에 있게 되면 대륙은 하루에 두 번씩 완전히 바다에 잠길 것이다.
6. 지구 지각의 두께와 바다의 깊이는 정교하게 고안되어 있다. 만일 지각의 두께가 증가하거나 바다의 길이가 단지 몇 미터 정도 더 길어진다면 자유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흡수율이 갑작스럽게 변해서 식물과 동물이 존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7. 지구의 축은 궤도 평면에 대한 수직축으로부터 23.5도 기울어져 있다. 이 같은 경사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는 것과 더불어 먹이 공급을 원활히 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계절의 변화를 일으킨다.
8. 지구의 대기권(오존층)은 무서운 태양의 자외선 복사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보호막의 역할을 하는데 만일 이것이 없다면 모든 생물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9. 지구의 대기권은 날마다 초당 50km의 속도로 들어오는 약 2천만 개의 운석들로부터 지구를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일 이 같이 중요한 방패가 없다면 인류에 대한 위험이 무한대가 될 것이다.
10. 지구는 아주 완전한 물리적 크기와 질량을 갖고 있으므로 대기 압력과 중력 즉 물과 대기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힘 사이에 세심한 균이 유지되어 생명체가 존속할 수 있다.
11. 지구의 대기권을 이루는 두 가지 주요 성분은 질소(78%)와 산소(20%)이다. 이 두 물질 사이의 기묘한 조성비는 모든 생명체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12. 지구의 자기장은 해로운 우주 방사선으로부터 생명체를 보호하는 매우 중요한 보호막으로서 작용한다.
13. 지구는 필수적인 물리적 성질을 다 갖고 있으며 특히 생명체의 존속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물을 원활하게 공급하는 축복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지구가 어떤 목적을 위해 세심히 고안되고 창조되었다는 개념을 뒷받침 해주는 이런 형태의 예들을 얼마든지 많이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만으로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섬세한 생명체들에게 꼭 필요한 상호 의존적 조건들과 요소들이 완전하고 복잡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이 일들을 위해 누군가가 치밀하게 지적이고 목적으로 가득한 설계를 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토록 복잡하고 균형을 갖춘 생명체를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들이 단지 우연에 의해 생겼다고 믿는 것은 절대적으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직하고 객관적인 관찰자라면 태양계가 하나님에 의해 지적으로 그리고 섬세하게 만들어졌다고 결론 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편 115편 16절은 이렇게 말한다.
“하늘과 하늘들은 주의 것이로되 그분께서 땅은 사람들의 자녀들에게 주셨도다.”
아직도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 못하는 독자는 다음의 말씀을 잘 음미해 보기 바란다.
“그러나 이제 짐승들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너를 가르치리라. 공중의 날짐승들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일러 주리라. 혹은 땅에게 말하라. 땅이 너를 가르치리라. 바다의 물고기들도 네게 밝히 알려 주리라. 이 모든 것 중에 어느 것이 주의 손이 이 일을 이루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모든 생물의 혼과 모든 인간의 호흡이 그분의 손에 있느니라.”(욥12:7-10)
2009-07-17 13:52:19 | 관리자
진화론의 붕괴 7
● 스콧 휴즈
중간 진화 단계의 부재
일반적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으로까지 발달하는 생명체의 기본적 단계는 다음과 같다.
제1단계 : 무생물 무기체, 제2단계 : 원생동물, 제3단계 : 무척추 후생동물, 제4단계 : 척추 어류, 제5단계 : 양서류, 제6단계 : 파충류, 제7단계 : 조류, 제8단계 : 네 발 가진 털 짐승, 제9단계 : 유인원, 제10단계 : 사람
지난 호에서 확인했듯이, 만약 진화가 이러한 방식으로 실제로 일어났다면, 우리는 화석의 기록 안에 보존된 수많은 과도기 중간 형태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즉 완벽하고 논리적이며 객관적인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모든 경우에 있어 주요한 집단들 사이의 존재하지 않는 과도기 중간 형태들은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 이제 다음의 거대한 차이들을 살펴보자.
첫째, 죽은 물질로부터 살아 있는 원생동물로 변한다는 가정 속에 담긴 변화는 정말로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변화인데 이것은 자연 발생을 반증했던 레디(Redi), 스팔란자니(Spallanzi), 그리고 파스퇴르(Pasteur) 등의 업적을 무시하는 순전한 추측일 뿐이다.
둘째,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진 미생물과 후생 동물인 무척추 동물의 복잡성과 다양성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셋째, 무척추 동물과 척추동물 사이에 존재해야 할 것으로 추정되는 ‘진화를 위한 과도기 중간 형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진화론자들이 이 두 형태 사이에 무려 1억 년이라는 기간이 있었다고 주장하므로 이 사실은 더욱더 놀라운데, 왜냐하면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과도 형태의 동물이 수십 억 개는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런 과도기 중간 형태는 단 한 개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넷째, 어류로부터 양서류로의 진화론적 진보/발전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류가 양서류로 진화하는 데는 약 3천만 년이 걸린다고 알려져 있으나 아직 어느 누구도 한 마리의 양서/어류 중간 단계 생물을 찾아 내지 못하고 있다. 실러캔스(Coelacanth, 멸종된 것으로 믿고 있던 중생대의 물고기. 최근 남아프리카해에서 몇 마리가 생존하고 있는 것이 발견됨)는 한때 과도기 중간 형태의 동물로 인용되곤 했으나 후에는 합당치 않은 예로 판명되었다. 실러캔스는 수백만 년 동안 멸종되지 않았고 1938년까지 살아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다섯째, 양서류와 서로 다른 파충류 사이에는 결코 중간연결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세이무리아(Seymouria)가 이 같은 연결고리로서 알려져 왔으나 그것은 지질 주상도에서 다른 파충류들이 이미 있었던 시대보다 2천만 년 뒤에나 나타난다.45)
여섯째, 파충류와 포유류 사이에는 어떠한 과도형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곱째, 파충류와 조류를 연결해주는 진화론 연결 고리가 하나도 없다. 진화론자들은 한 때 시조새가 이 둘 사이를 연결해주는 고리라고 강력히 주장했으나 화석학자들의 발표에 의하면 그것은 완전한 조류이다.
여덟째, 진화론자들이 가정하는 인류의 조상(즉 어떤 형태의 유인원)으로부터 사람을 연결해 주는 중간 단계 혹은 과도 형태는 전혀 없다. 진화론자들이 사람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하는 화석원인들은 실제로 유인원이거나 혹은 사람의 화석이며 결코 중간 단계가 아니다. 그런 화석들이 유인원과 사람 사이에 존재했던 동물들의 화석이라고 주장할 만한 과학적 증거는 단 하나도 없다.
과도기 중간 형태의 동물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로, 최근에 몇몇 과학자들은 진화가 점진적 작은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갑작스런 큰 변화에 의해 발생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단절 평형’(punctuated equilibrium)이라고 알려진 이 개념은 1977년부터 화석학자 굴드(Gould)와 엘드릿지(Eldredge) 등이 발전시킨 것이다. 일순간에 파충류가 알을 낳고 조류가 그 알로부터 부화된다는 것을 제안하고 있는 골드슈미트(Goldschmidt)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희망하는 괴물’(hopeful monster)이라는 용어로 이 개념을 정립했다! 창조론자들은 이런 생각들이야말로 완전히 가상적이며 과학적 증거가 결여된 거짓 속임수라고 주장하며, 이러한 과학자들이야말로 상상 속에서 알을 낳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요약하여 말하자면, 화석의 기록은 종들의 불변성을 보여 주며 대단히 중요한 증거 곧 과도기 중간 연결고리들을 전혀 보여 주지 않으며 매우 다양하며 복잡한 형태의 생물들이 자기들의 진화론적 조상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나타났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들이야말로 우리가 강력하게 진화론을 거부하는 분명한 이유들이다. 한편 이 사실들은 성경적 창조 모델과 거의 완전하게 일치하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화석의 바위들은 진실로 “하나님의 창조!”를 굳게 선포하고 있다.
화석화 과정
비록 충분하지는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화석 기록은 진화론의 모체가 되는 균일론에 대해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대규모의 화석화 현상은 오늘날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물고기가 죽었다고 해서 곧장 바닥에 가라앉아 화석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분해되거나 분해시키는 고기들에 의해 곧장 소멸된다. 이런 이유로 인해 지금부터 50~60년 전에 도처의 평야에서 죽은 수백 만 마리의 버팔로(buffalo, 미국 들소) 시체들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오늘날에는 화석화 현상이 거의 없지만 과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화석화 현상이 많이 있었다. 우리가 화석 기록 속에서 발견하고 있는 ‘잘 보존된 수십 억 개의 화석들’은, 균일설/진화론을 주장하는 지질학자들이 추측하고 가르쳐 온 것처럼, 지금 이 세상에서 관찰할 수 있는 과정들에 의해 형성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같은 화석들의 보존 상태는 비정상적이며 예외적이며 비규칙적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는 지구 화석들의 기록은 불규칙하며 전 세계적 지각 변동 및 대홍수 등을 확실하게 입증해 주고 있다. 지질 주상도에 나타나는 화석의 기록들은 생물체 형성이 진화론을 따라 이루어졌음을 보여 주는 진화의 역사가 아니고 오히려 갑작스럽게 어떤 시대로부터 생명체들의 종말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대격변의 역사이다. 이에 대해 성경은 주전 2,300년경에 노아의 대홍수에 의한 홍수 이전 시대의 전멸이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노아의 대홍수성경은 노아의 대홍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지면 위에 있던 모든 생명체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하늘의 날짐승이 멸망하였더라. 그것들이 땅에서 멸망하였고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은 살아남았더라.”(창7:23).
화석의 기록진화론자들은 자기들이 추정하는 생물 형태의 진보 즉 간단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의 진보를 보여 주는 사실들이 화석의 기록들에서 발견되므로 이런 사실이 생명체의 진화를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화석의 기록에 나타나 있는 생명체의 진보에 대한 사실이 전 세계적 대격변을 몰고 온 대홍수의 작용에 의해서도 동일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화석의 기록을 살펴보면 마치 수중의 무척추 동물이 물고기로, 양서류로, 파충류로, 포유동물로, 그리고 사람으로 진보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 이유에 대해 창조론자들은 단순히 대홍수로 인한 죽음과 파괴를 피할 수 있는 능력의 정도가 그 안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그런 대격변의 사건 속에서는 수리학적, 생태학적, 생리학적 분류에 관한 일반적 규칙들에 대한 예외가 있을 수도 있으며, 창조 모델 안에서는 이러한 예외들이 예측될 수도 있고 수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같은 반전 현상은 그것 자체가 진화론자들이 추측하고 있는 생명체의 진화론적 변화에 대한 역전 현상이 되므로 진화론자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지각 변동의 대파괴라 할 수 있는 창세기의 대홍수 기사를 확신시켜줄 수 있는 놀라운 화석화 현상들이 세계 도처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짐승들은 대개 입을 벌린 채, 등이 활처럼 구부러진 채, 무서운 모습으로 묻혀서 발견된다. 우리는 간단히 그 몇 가지 예를 들 것이다.
화석 무덤 : 전 세계에 걸쳐 문자 그대로 대규모의 화석들로 가득한 동굴, 계곡, 매장지가 발견 되었다. 이같이 다양한 동물의 화석들은 종종 무질서한 상태로 내버려진 채, 위치나 기후가 매우 다른 지역에서 나온다. 이 같은 현상은 전 세계적 대홍수로 인한 대변동에 의해서만 만족스럽게 설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따뜻하고 습기가 많은 아열대성 지역, 건조 지역, 추운 북쪽 지역의 여러 동물의 잔해들이 보존된 미국 메릴랜드 주 컴벌랜드의 동굴을 생각해 보라. 영국의 노퍽 산림 지대는 북쪽의 추운 지방 동물과 열대 지역의 따뜻한 기후에서 사는 동물, 그리고 온대 지역의 식물들이 서로 뒤섞인 채 남아 있다. 발트해의 호박무지, 네브래스카 주의 어게이트 스프링 채석장, 캘리포니아주의 라브리피트 목장, 스코틀랜드의 올드레드 샌드스톤, 영국과 프랑스의 무수한 바위균열계곡, 유럽의 많은 다른 지역도 이와 비슷한 매장물을 갖고 있다.
균일론/진화론 원리들은 결코 이런 이상한 현상들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거대한 화석 무덤과 대규모 매장지는 오직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난 대변동 즉 창세기의 대홍수를 강조하는 성경적 지각 변동에 의해서만 올바르게 설명될 수 있다. 분명히, 이것들은 창세기의 대홍수로 인한 강력한 물살에 의해 홍수 이전의 식물들과 동물들이 파괴되고 운반되고 쌓여서 화석으로 남은 것이다.
매머드 : 거대하고 갑작스런 지각 변동이 한때 지구를 강타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더욱 놀라운 증거는 북극 지방(북시베리아와 알래스카)에서 순식간에 죽은 수백만 마리의 매머드와 다른 거대한 짐승들 안에서 발견된다. 이것들의 대부분은 무릎을 꿇고 있거나 입에 음식을 물고 서 있으며 살과 털이 전혀 손상되지 않은 채(물론 죽은 것을 빼고는) 원형 그대로 발견되고 있다. 눈과 적혈구는 굉장히 잘 보존되어 있으며, 세포 안에는 수분 분리 현상이 부분적으로 있었는데, 이것은 매머드들이 매우 갑작스럽게 얼게 되었고 지속적으로 얼려진 채 역사를 통과해 왔음을 잘 말해 준다. 다음은 네이버 지식 사전에 기록된 매머드에 대한 정의이다.
매머드 : 홍적세 중기부터 후기에 걸친 빙하기에 생존하였다. 특히 중기에 생존했던 것은 고형(古形) 매머드라고 한다. 크기는 3m가 넘지만, 코끼리로서는 중형으로 약간 큰 부류에 들 정도이다. 어금니는 엘레파스라의 공통적 특징인 능판(稜板)이 많이 모여서 빨래판 모양으로 되어 있다. 어금니는 굵고, 나선상으로 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대지방에 적응하여 생활하였으며 약 1만 년 전인 홍적세 말에 절멸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얼음 속에서 죽은 매머드가 동부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알래스카 등지에서 많이 발견되어 화석 코끼리 중에서 잘 알려져 있다. 몸은 약간 길고, 온몸이 담갈색 또는 암갈색의 긴 센털로 덮였으며, 피하지방이 두껍게 발달해 있다. 진화상으로 고형 매머드는 온난한 기후에 적합했고, 그 중 일부가 한랭지에 적응하여 전형적인 매머드가 되었다. 매머드는 인류와 관계가 깊은데, 구석기시대 후기에는 대형동물의 대표로서 사냥의 첫째 대상이었다. 그 당시의 동굴벽화에 매머드 사냥 그림이 묘사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관계가 밀접했음을 알 수 있다. 유라시아·북아메리카 대륙에 분포하였다. 한국에서는 발견된 일이 없으나, 일본에서는 홋카이도에서 발견되었다(네이버 지식 사전).
이런 사전들은 한결같이 매머드가 죽은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매머드들이 화석 형태가 아니라 얼음에 묻혀 냉동된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1846년 시베리아의 인디기르카 강 바닥에서 찾아낸 키 4m, 몸 길이 4.5m의 매머드는 어찌나 보존상태가 좋았던지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특징은 서 있는 자세로 얼어붙었다는 점이다. 이는 매머드가 죽은 뒤에 냉동된 게 아니라 살아 움직이다가 한순간에 빙결됐음을 말해 준다. 급속 냉동을 보여 주는 증거는 또 있다. 그 후 발견된 매머드 일부의 경우 위뿐만이 아니라 입 안에도 씹던 풀들이 남아있었다. 이것은 ‘식사’중에 그대로 동결됐다는 것이다. 또한 희한한 사실은 매머드가 먹던 풀들이 열대 혹은 온대 식물이었다는 점이다.
이 현상을 규명하려 했던 균일론자들은 다 실패하고 말았다. 19세기 균일론의 대표격인 리엘(Charles Lyell) 역시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고, 이 문제가 자기의 진화론을 심각하게 위협함을 인식하였다. 그래서 그는 매머드들이 수영을 하다가 한파를 겪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분명히 부적당하며 우리가 목격한 사실과 전혀 맞지도 않는다. 다윈 역시 매머드들에 대해 알고 있었으나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인정하였다. 물어볼 필요도 없이 균일론/진화론은 이에 대해 결코 해답을 제시할 수 없으며 갑작스런 지각 변동에 의해서만 이런 것들을 설명할 수 있다.
창조론자들은 이 놀라운 상태에 대해 아주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한다. 그 이유는 대홍수 이전의 세계를 덮고 있는 증기 막이 대홍수 이후에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7장 11절에는 “그 날에 큰 깊음의 모든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런 증기 막은 세계 도처에 온실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이 같은 온실 효과로 인해 홍수 이전의 기후는 거의 계절의 변화 없이 지구 전체를 통해 온화했을 것이다. 또한 그 때에는 비와 무지개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다(창2:5-6; 8:22; 9:13). 오늘날 우리가 전 세계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심한 폭풍은 이 같은 증기 막으로 인하여 결코 생성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창2:5,6; 히11:7). 이 같은 증기 막의 존재는 야자수 잎들, 과일 나무, 열대 해안의 갑각류, 산호초, 거대한 양의 아열대성 식물들이 추운 극지방에 묻혀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심지어 진화론을 믿는 과학자들 중에도 ‘극(極)이동’,또는 ‘극 점프’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 가설의 골자는 강력한 소유성의 충돌로 지구의 자전축이 약 20도 이동함에 따라 온화한 지역이 단 몇 시간 만에 극권으로 변하는 등 기후대가 급속하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북반구에서는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남반구에서는 남극대륙에서 갑작스런 결빙이 야기됐다고 한다. 지구의 자전축에 변화가 올 경우 기후 이변 등 지구 생태계에 엄청난 영향이 미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기본적으로 4계절의 변화가 지축의 기울기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의 이런 주장은 기본적으로 노아의 대홍수 같은 대격변이 이 땅에 있어서 지구의 자전축을 바꾸었음을 지지한다. 다만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마음속에 두려 하지 않기 때문에 유성이나 우주인 등의 중립적 존재가 이 일을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믿을 뿐이다. 자세히 지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부정할 수 없는 사건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말씀대로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우리 주님은 선언하신다. “도마야, 너는 나를 보았으므로 믿었으나 보지 않고도 믿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요20:29)
2009-07-17 13:50:41 | 관리자
진화론의 붕괴 6
● 스콧 휴즈
화석학
지금까지 화석학은 진화론에 대해 가장 긍정적이며 확실한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화석학이란 한 마디로 화석 연구를 통해 선사 시대의 생명체를 다루는 지질학의 한 분야이다. 진화론자들은 생명체의 진화에 대한 실제적 증거를 보여 주는 것이 바로 화석의 기록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과연 화석의 기록은 실제로 진화론을 지지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성경적 창조론이나 대격변론을 지지하는가?
우리는 진화라는 개념이 실제로는 과학자들이 펴낸 동화에 지나지 않으며 왕자로 변한 개구리에 대한 이야기 같이 믿을 수 없는 것임을 보여 줄 것이다. 다만 진화의 경우에는 마법적 변화가 동화에서처럼 순간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거의 무한대의 지질 시간이라는 마법의 지팡이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곧 살펴보겠지만 화석의 기록은 실제로 진화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성경적 창조론이나 대격변론을 지지해주고 있다.
진보된 생명체의 갑작스런 출현
지구 지각의 밑에서 약 3분의 2 되는 지점(선캄브리아기로 불림)에서 발견된 화석의 기록을 살펴보면 거기에 생명체의 형태가 전혀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선캄브리아기 다음 단계인 캄브리아기 암석에서는 수십 억 개의 매우 진보된 형태의 생명체 화석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 무척추 동물의 대부분이 캄브리아기의 화석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동물들은 매우 다양하므로 진화론자들조차도 이러한 진화를 위해 적어도 15억 년은 필요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정도이다.
만일 진화가 사실이라면 이 캄브리아기 생명체들에 대한 수십 억 개나 되는 진화론적 조상들이 선캄브리아기 암석들에서도 발견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유명한 생화학자 기쉬(Duane T. Gish) 박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선캄브리아기 암석에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단 한 개의 다세포 동물 화석도 발견되지 않았다! 모순의 여지없이, 우리는 캄브리아기 동물군의 진화론적 조상들은, 설사 진화론자들이 그것들이 존재했음을 역설한다 하더라도, 결코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간략히 말해서 화석의 기록은 생명체들이, 진화론자들의 주장과 같이 진화를 위해 꼭 필요한 그것들의 조상들도 없이, 대단한 다양하고 복잡하고 풍부한 가운데 갑작스럽게 나타났음을 보여 준다! 분명히 이것은 점진적 유기체 진화의 증거가 아니며 초자연적 창조에 대한 증거이다.
종류들의 영원성
오래 된 것으로 추정되는 암석들 안에서 발견된 수많은 식물과 동물 화석들은, 그것들이 진화하여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현대판 후손들과 비교해 볼 때, 본질적으로 같은 것임이 밝혀지고 있다. 진화론자들이 수백만 년 동안 진화한 것으로 추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갑각류 어족인 링굴라(Lingula)와 불가사리, 바퀴벌레, 박테리아 등은 각각 2.5억 년, 5억 년, 6억 년 전에 살았다고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그것들의 조상들과 비교할 때 아무런 차이도 없다. 다윈은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했는데 그의 말은 지금까지도 진리이다.
“한 종이 다른 종으로 변했다는 것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한 종이 다른 것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진화론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또한 난감하게 만드는 것은 화석의 기록이 ‘종류에 따른 재생’이라는 성경적 원리를 강력히 지지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생명체가 지속적인 흐름의 상태에 있어야만 한다는 진화론에 통렬한 일격을 가하는 것이다.
성경은 창세기 시각부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그것들의 종류대로’ 만드셨다고 기록한다.
창세기 1장 11절: 식물이 종류대로 창조됨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자기 종류대로 열매 맺는 과일 나무 곧 열매 속에 씨가 있는 과일 나무를 땅 위에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세기 1장 21절: 바다의 생물들과 날짐승들이 종류대로 창조됨
하나님께서 큰 고래들과 물들이 풍성히 낸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피조물을 그것들의 종류대로, 날개 달린 모든 날짐승을 그것들의 종류대로 창조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장 24절: 땅의 생물들이 종류대로 창조됨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땅은 살아 있는 피조물을 그것의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그것의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세기 1장 21절에는 진화론자들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진리가 들어 있다. 그들은 고래와 같은 포유동물이 육지에서 살다가 바다로 들어가 진회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이 고래들도 그때에 창조하셨다고 한다.
한편 사람의 타락 이후로 죄악이 극에 달했을 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짓게 해서 그의 가족과 모든 짐승과 날짐승을 구원하셨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또 ‘그것들의 종류들이’ 등장한다.
바로 그 날에 노아와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그의 아들들과 함께한 그들의 세 아내가 방주로 들어가되 그들과 모든 짐승이 그것의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것들의 종류대로, 땅에서 기는 모든 것이 그것의 종류대로, 모든 날짐승 곧 모든 종류의 모든 새가 그것의 종류대로 들어가고(창7:13-14)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하나님은 이처럼 치밀한 분이시다.
‘그것의 종류대로’(after its kind) 창조했다는 성경의 기록은 단지 화석의 기록에 의해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과학적 관찰과 실험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노련한 품종 개량사와 유전 공학자들은 종의 안정성이 그야말로 뛰어난 특성임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물론 특별한 유기체만을 위한 DNA에 의해 규정되는 어떤 한계 안에서 일어나는 이른 바 ‘종 안에서의 수평적 형질 전환’(때때로 미시적 진화로 불림)은 가능하며, 이것은 여러 가지 품종 개량에 유용하게 사용되어 왔다. 예를 들자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200개가 넘는 다양한 개가 있다. 또한 자연적 변이에 의해 1,500개의 다양한 산사 나무를 얻는 것이 가능하다. 다윈이 목격한 다양한 피리새 역시 이러한 수평적 형질 전환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심지어 인류도 다양한 인종으로 될 수 있는 충분한 잠재성을 갖고 있다. 고대 팔레스타인 지방(민13 : 28-33; 신2:10-11, 21)의 키가 2.7m나 되는 거인 아낙 자손들(Anakim)과 현재 중앙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키가 겨우 1.2m밖에 안 되는 피그미족을 비교해서 생각해 보라.
그러나 하나의 유기체 종류가 완전히 새로운 유기체로 변하는 ‘수직적 형질 전환’(거시적 진화로 불림)은 불가능하며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개는 결코 말로 변할 수 없으며, 산사나무는 장미가 될 수 없고, 피리새는 다른 특성을 갖는 피리새 외에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다. 여러 세기에 걸친 품종 개량실험은 유기체 진화론에 대항하여 설득력 있게 반박할 수 있는 확고한 증거들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종 사이의 경계는 매우 실제적이며 끊을 수 없는 생물학적 사실이다. 또한 비정상적 교배가 시도될 때에는 언제나 번식 불능의 결과가 뒤따른다.
말 + 당나귀 ⇒ 불임 노새
얼룩말 + 말 ⇒ 불임 지브론키(Zebronkey)
사자 + 호랑이 ⇒ 불임 라이거(Liger)
이렇게 태어난 잡종들이 모두 다 어김없이 불임성을 갖게 되어 번식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진화론을 반박하는 강력한 증거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성경적 용어인 ‘종류’(kind)가, 비록 어떤 사람들이 ‘종류’와 동식물의 ‘과’(family)가 상당히 비슷하다고 느낌에도 불구하고, 린네의 임의적 동식물 분류계와 어떤 직접적인 상호 관계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기쉬 박사는 성경적 용어인 ‘종류’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종류란 보편적 특성들에 대해 여러 가지 상이한 유전자들을 소유한 유기체 집단이며, 일반적으로 평범한 환경 하에서 다른 집단과는 상호 교접하지 않는다.”
종류들의 영원성에 대한 마지막 예는 초파리에 대한 것이다. 초파리는 실험실에서 방사능 충격을 계속해서 받음으로 쉽게 1,000세대가 넘게 번식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주어진 환경 속에서 진화론을 지지하는 어떤 종류의 발전이 일어날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이 매우 다양한 형태의 돌연변이 기형 초파리를 생산해 내기는 했지만, 결코 어떠한 새로운 종류의 생명체 즉 진화론에 따른 새로운 생명 형태도 생산해 내지는 못했다. 그것들은 여전히 초파리였을 뿐이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실질적으로 관찰된 과학적 사실들이 성경적 기록을 확인해 줌을 깨닫는다. 창조된 생명체들은 다른 종류가 아닌 바로 자신들의 종류대로만 번식하였다. 영원히 고정된 종류(창 1: 11, 12, 21, 24, 28) 안에서 허락된 제한적 변이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법칙은 신약 성경의 고린도전서 15장 38-39절에서도 또한 확인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기뻐하시는 대로 그것(알갱이)에게 몸을 주시며 또 모든 씨에게 그것의 고유의 몸을 주시느니라. 모든 육체가 같은 육체는 아니니 한 종류는 사람의 육체요, 다른 것은 짐승의 육체요, 다른 것은 물고기의 육체요, 다른 것은 새의 육체라.”
과도기 형태의 부재
이제부터 우리는 아마도 진화론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인 과도기 형태의 완벽한 부재 현상에 대해 논하려 한다. 진화론자들의 주장대로, 만일 생명체가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하는 흐름 속에서 항상 존재해 왔다면, 각 종류가 뚜렷이 많은 만큼이나 그 수가 많은, 서로 다른 형태들 간의 중간/과도기 단계를 담고 있는 화석이 많이 존재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떠한 화석에서도 ‘속’(major groups)이나 ‘문’(phyla) 사이의 과도기 중간 단계라 할 수 있는 것들이 발견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 생명체들은 오늘날과 똑같이 선명하게 구별되어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우리는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화석의 기록에 보존된 촘촘한 단계적 변화의 기록을 발견하지 못하며, 대신에 늘 그 안에서 거대한 간격만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일반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유기체 진화 이론에 치명적인 것이다. 심지어 뛰어난 진화론 수호자였던 다윈 자신도 이 같은 치명적 결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셀 수도 없이 많은 과도기 형태가 존재해야만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지구의 지각 안에서 이들이 묻혀 있는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모든 자연계는 우리가 보는 것처럼 잘 정돈된 종류들로만 존재하고 있으며 혼란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지질학 연구는 이 이론에 필요한 변화 즉 과거와 현재 사이에 무한정으로 많이 있어야 할 단계적 변화를 보여 주지 않는다. 참으로 이 사실은 진화론을 반박하는 많은 반론 중 가장 명백한 것이다. 그러나 과도기 중간 단계의 부재는 지질학적 기록이 극도로 불완전하다는 데에 있다”.
비록 다윈이 이 같이 과도기 중간 단계들이 없음을 진실하게 인정하고 그 문제점을 심각하게 느꼈을 정도로 정직하기는 했지만, 그는 이것이 단지 화석 기록의 불완전함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희망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이 중간연결고리들이 발견될 것이고 진화론에 치명타를 입힌 시간상의 간격들이 채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이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한 변명들은 사실상 진화론자들에게 더 이상 아무런 피난처도 제공해 주지 못한다. 네빌(George Neville)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화석 증거의 빈곤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변명할 필요가 없다. 어떤 면에서 보면 화석은 이제 거의 다루기 힘들 정도로 많이 발견되었고, 발견된 화석들을 종합해 보기도 전에 새로운 것들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화석이 발견됨에도 불구하고, 화석의 기록은 그 안에 여전히 많은 시간상의 간격을 포함하고 있으며 결코 연속적이지 않다.”
스웨덴 룬트 대학의 닐슨(N. Heribert-Nilsson) 교수는 40년이 넘게 진화론이라는 주제에 대해 연구해 왔고, 이 존재하지 않는 중간연결고리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사실 화석학에 근거한 사실들을 떠나서 진화론의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화석들은 현재 매우 완벽하므로 과도기 형태의 부재 원인이 화석의 수량이 적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런 형태의 부재는 사실이며 화석들은 결코 그런 간격을 채워주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다윈의 시대가 지나간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는 그 때보다 더 적은 수의 ‘과도기 중간 형태’가 남아 있을 뿐이다. 다윈이 희망한대로 보다 많은 수의 과도기 중간형태가 발견되지 않았고, 따라서 우리에게는 실질적으로 더 적은 수의 형태만이 남게 되었다. 그 이유는 예전의 몇몇 고전적 진화론 사례들 - 예를 들어 시조새 등과 같은 사례 - 이 오늘날에는 새로운 정보와 발견으로 인해 버림을 받거나 무시를 받게 되었고, 더 이상 새로운 과도기 형태들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극복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의 겁 없는 믿음은 더욱더 완강하다. 룬(A. Lunn)은 언젠가 이러한 믿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풍자의 글을 썼다.
“믿음은 바라고 기대하는 화석에 대한 실상이요, 볼 수 없는 중간연결고리에 대한 증거이다.”
잘 발달되고 확고히 정립된 생물 분류학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 성경적 창조론을 지지하는 데 사용된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생명체는 계속적으로 흐르는 상태에 있으며 심지어 극소한 돌연변이 같은 변화를 통해 변화한다는 진화론적 모델의 근본적 가정을 잠시 생각해 보자.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때는 생물의 분류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만다. 그러나 살아있는 유기체들이 잘 구별되며 서로 분리된 범주 안에서 쉽게 분류된다는 사실은 창조 모델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성경은 창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그런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히11:3).
지금 눈에 보이는 것들은 이미 존재하던 것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할 때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래서 성경은 또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창11:6).
이런 믿음을 가지려는 모든 분에게 주님의 은혜가 넘치길 원한다.
2009-07-17 13:48:04 | 관리자
진화론의 붕괴 5
● 스콧 휴즈
지구의 형성 연대 2
지난 호에 이어서 이번 호에서도 성경의 연대가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몇몇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려 한다. 사실 지구의 연대가 성경에 기록된 대로 6000년에 지나지 않음을 확신하면 창조와 진화 문제의 90% 이상은 해결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조금 더 현실적인 데이터와 함께 짚고 넘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a) 인구 증가
지구의 형성 연대가 매우 짧음을 설득력 있게 증언하는 또 다른 사실은 인구 증가 과정이다. 진화론자들은 인류가 적어도 1백만 년 전부터 이 땅에 거주해 왔다고 믿고 있고 반면에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사람들은 인류가 단지 몇 천 년 전부터 이 땅에 거주해 왔다고 믿고 있다. 사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근본적 크리스천들은 아담부터 지금까지 약 6000년이 지난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서로 다른 견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인구 증가에 대한 통계로부터 얻은 자료/정보는 어떤 것을 더 지지하고 있는가?”
모리스(Henry Morris) 박사는 평균 인구 증가율을 현재 인구 증가율의 약 1/4인 ‘1년당 평균 0.5%’ 정도라고 가정하면 현재의 전 세계 인구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단지 4,000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음을 간단한 계산을 통해 보여 준 바 있다. 이 계산은 전쟁이나 질병으로 인해 인구 증가율이 평균치 이하로 떨어진 기간도 충분히 감안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모리스 박사는 약 50억 정도인 현재 인구가 백만 년이라는 진화 역사의 결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은 결코 통계적으로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만일 인구가 백만 년 동안 매년 0.5%씩 증가한다면 현 세대의 사람 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숫자인 10의 2100승(1에 0이 2100개 붙은 수)이 될 것이다!
온 우주를 꽉 채우기 위해서 단지 10의 130승 개 정도의 전자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진화론의 허구가 어느 정도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처럼 터무니 없이 증폭된 인구의 증가는 말도 안 되는 것이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인류 연대기에 대한 성경의 창조 모델이 인류의 형성 연대에 대해 훨씬 더 믿을 만한 수치를 말해 준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단지 수천 년에 지나지 않으며 결코 수백만 년 혹은 수십 억 년이나 된 것이 아니다.
인구 증가 등과 관련해서 성경의 기록과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세계의 모든 문명은 지금부터 약 4300년 전에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전의 일들은 문자로 기록되지 않아 즉 선사시대에 일어났으므로 아무도 알 수 없다고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다. 그런데 성경은 이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가? 지금부터 약 4350년 전에 노아의 홍수가 일어나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이 죽었고 단지 그의 가족 8명이 살아남아 온 인류의 새로운 조상들이 되었다. 그들은 급격히 불어났지만 하나님의 명령 즉 “온 땅에 퍼져 나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거역하고 지금의 이라크 바그다드 부근에 있던 바벨탑에 모여 살면서 마귀를 숭배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그들은 각각 같은 말을 쓰는 무리들끼리 떼를 지어 온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민족의 시작이요, 문명의 시작이 되었다. 다시 말해 BC 2300년 전에 다른 지역에 문화나 문자 혹은 역사가 존재하지 않은 것은 그때까지 그런 지역에 사람이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는 세계 4대 문명이 모두 BC 2300년경에 시작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단기는 어떤가? 한민족의 시조로 알려진 단군의 즉위를 기점으로 이루어진 단군기원(단기)은 성경과 얼마나 잘 부합되는가? 단기의 기원은 BC 2333년이며 이때는 노아의 홍수 이후로서 민족들의 대이동 바로 전으로 추정된다. 사실 성경의 기록이 아니므로 단기 등은 틀릴 수 있으나 중국, 인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한국 등의 역사가 모두 BC 23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노아의 대홍수 이후에 민족들이 나뉜 사건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사실 중국인들의 원래 종교는 유일신인 상제를 섬기는 것이었으며 지금도 남아 있는 북경의 천단은 바로 이 상제를 경배하던 장소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일하신 하나님 사상이 마귀 숭배에 의해 모두 희석되었지만 세계 도처에 노아의 후손들이 처음에 전해 준 유일신 여호와의 신앙은 여전히 군데군데 많이 남아 있다.
(b) 지구의 자전
지구의 자전 속도는 지구에 대한 태양과 달의 중력, 저항력과 다른 원인들로 인해 점차 느려지고 있다. 균일론을 믿는 지질학자들이 고집하는 대로, 만일 지구의 나이가 수십 억 년이며 또한 지구의 자전 속도가 일정하게 감속되었다면 현재 지구의 자전 속도는 “0”이 되어야만 한다. 게다가 만일 수십 억 년을 거슬러 계산해 보면 그때에는 원심력이 매우 컸을 것이고 따라서 모든 대륙은 다 적도 지역으로 이동했어야만 했을 것이며 지구의 전체 형태는 얇은 판처럼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지구의 모양은 구형이다. 지구 내의 대륙들은 적도 지방으로만 모여 있지도 않으며 또 지구는 그 회전축을 중심으로 적도에서 시간당 약 1600km의 속도로 계속해서 돌고 있다. 분명한 결론은 지구의 연대가 결코 수십 억 년이 아니라는 것이다.
(c) 달의 퇴행
지구로부터 달이 퇴행한다는 사실은 지구와 달의 형성 연대가 비교적 짧다는 것을 보여 주는 또 다른 간단한 증거이다. 현재 달의 퇴행률은 잘 알려져 있으며 이것은 지구와 달의 형성 연대가 그리 길지 않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진화론자들이 자기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반드시 변호해야 할 기본적 문제는 현재 달이 지구에 너무 밀접해 있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달의 퇴행 속도와 진화론자들이 40억 년에서 50억 년 정도로 가정하고 있는 지구의 형성 연대를 사용하여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에 대한 계산을 해 보면 달은 현재 위치보다 지구로부터 훨씬 더 멀리 있어야만 한다. 지구와 달은 진화론을 믿는 과학자들의 가정처럼 그렇게 오래 전에 형성된 것이 결코 아니다. 생명체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진화론자들이 꼭 필요로 하는 엄청나게 긴 시간 즉 50억 년이니 200억 년이니 하는 긴 시간은 분명히 신화 속에나 나오는 것이며 실제로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d) 대기 중의 헬륨
지구의 형성 연대가 짧음을 잘 입증해 주는 또 다른 예는 대기 중에 있는 헬륨의 양이 매우 작다는 점이다. 진화론자들은 헬륨을 생산하는 우라늄과 토륨의 방사능 감소 현상이 지각 내에서 지난 수십 억 년간 존재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일 이 같은 현상이 수십 억 년 동안 계속되어 왔다면 지구의 대기는 현재 대기의 헬륨 농도(200,000개 중 1개)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헬륨을 포함해야만 한다. 이처럼 많이 있어야만 하는 헬륨의 부재 현상에 대해 그들은 일반적으로 헬륨이 외기권을 통해 날아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같은 가정을 지지할 만한 증거는 전혀 없으며 더욱이 최근의 자료를 보면 헬륨은 수소처럼 우주 공간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 진화론자들을 더욱더 어렵게 만든 것은 실제로 태양의 코로나로 인해 헬륨이 지구의 바깥 공간으로부터 들어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수치에 근거해서 계산을 해 보면 자연적 알파선 감소 현상이 현재 관측되고 있는 대기 중 헬륨 조성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약 만 년 정도임을 알 수 있다.
우주의 형성 연대
(a) 혜성
혜성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으며 태양계와 거의 같은 연대를 가진 것으로 추측된다. 혜성들은 태양 주위의 궤도를 한 번씩 돌 때마다 전체 질량의 일부분이 불타서 사라지게 된다. 신중한 연구 끝에 과학자들은 짧은 주기를 갖고 있는 혜성들의 경우 이러한 질량 감소 현상으로 인해 약 만 년 안에 혜성들 자체가 완전히 소멸됨을 밝혀냈다. 혜성들이 저절로 형성된다는 것이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여전히 수많은 혜성들이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태양계의 형성 연대가 만 년 이상 될 리가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태양계의 형성 연대가 매우 짧음을 보여 주는 이 증거를 반박할 수 있는 설명을 하지 못했다.
(b)
포인팅-로버트슨 효과
거대한 진공청소기 같은 역할을 하는 태양은 매일 약 10만 톤 정도의 미소 유성체를 쓸어 모으고 있다. 또한 태양의 복사압에 의한 힘은 행성간의 작은 먼지 입자들을 우주로 몰아내고 있으며 이 현상은 '포인팅-로버트슨 효과'(Poynting-Robertson Effect)라고 알려져 있다. 만약 태양계가 정말로 수십 억 년간 존재했다면 이 먼지 입자들은 현재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현재의 감소 비율대로 진행했다면 감지할 수 있는 그런 먼지들을 재충전시키는 근원이 없음을 감안해 볼 때 태양은 만 년 이내에 ‘자기의 집 청소를 다 끝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 태양계 내에는 아직도 아주 작은 유성체가 많이 있으며 이 사실은 태양계의 형성 연대가 매우 짧음을 확실히 보여 준다.
(c) 성단
성단(星團) 역시 우주의 형성 연대가 짧음을 보여 준다. 성단은 어떤 작가가 '벌떼와 같다.'라고 표현 한 것과 같이, 수백 개 혹은 수천 개의 움직이는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별들은 중력에 의해 서로 뭉쳐 있는데 어떤 성단에서는 그 내부의 별들이 매우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수백만 년이나 수십 억 년 동안은 계속해서 뭉쳐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우주에 성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주의 형성 연대가 수천 년 정도뿐이 안 됐음을 확실히 보여 주는 증거이다.
(d) 거성
태양이 내고 있는 에너지는 10억 개의 수소 폭탄이 매초 계속해서 폭발할 때 내는 에너지와 같은 것으로 추산된다. 어떤 별들은 매우 크고 밝기 때문에 태양이 내는 것보다 무려 10만에서 100만 배 정도나 빠르게 에너지를 여러 곳으로 방출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별들은 이 같은 비율로 수백만 년 혹은 수십 억 년 동안 계속해서 핵융합 에너지 생산 과정을 실행시킬 만큼의 충분한 수소를 초기에 포함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다면, 이 별들의 초기 무게는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대로 커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별들의 연대는 수십 억 년이 아닐 뿐 아니라 심지어 수백만 년도 아니며 단지 수천 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제시한 예들은 지구와 태양계와 우주의 형성 연대가 비교적 짧다는 것을 보여 주는 많은 현상 중 몇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외에도 다른 많은 예를 인용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제시한 것만으로도 지구와 우주의 형성 연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개념을 지지해 주는 증거를 확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사람은 증거에 의해 조금 변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마음의 편견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지옥이 있음을 확실한 진술로 보여 주셨다. 그곳은 영원한 불구덩이요, 유황불이 타는 곳이며 거기 들어간 사람들의 벌레들이 무수히 그들을 갉아먹어도 그들의 육체가 소멸되지 않는 곳이다. 이렇게 사실을 증언하시고는 누가복음 16장에서 지옥에 간 부자의 증언을 직접 소개하셨다. 그 부자는 죄로 인해 지옥에 갔으며 거기서 너무나 뜨거워서 애타게 물 한 방울 얻기를 갈망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러한 처참한 사실을 깨달은 그는 비록 자기는 늦었지만 자기 집에 아직 남아 있는 자기 형제들이 생각나서 그들에게 전령을 보내어 지옥이 있으니 제발 그들이 믿고 회개함으로 거기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아브라함에 간청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분명히 그에게 대답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대언자들이 기록해 준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니 그것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것을 믿지 않으면 심지어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사람이 지옥의 실상을 증언해도 그의 말을 믿지 못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의 특별 창조를 증언하는 증거들은 수도 없이 많다. 우리 집에는 보스톤 테리어 종류의 개가 하나 있다. 나와 내 아내와 딸들은 그 개의 눈과 털과 발바닥과 혀와 이빨을 보면서 감동에 빠진다. 얼마나 놀라운 신비인가! 사람이 이런 것을 제조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이 그냥 생길 수 있을까? 한 마디로 기이함 그 자체이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 몸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가?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내가 주를 찬양하리니 내가 두렵게 또 놀랍게 만들어졌나이다. 주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놀라우니 내 혼이 그것들을 매우 잘 아나이다.”(시139:14)
이번 달에는 독자 여러분의 몸을 가만히 보면서 창조의 신비에 두려움을 갖고 놀라움을 갖기 바란다.
2009-07-17 13:46:28 | 관리자
진화론의 붕괴 4
● 스콧 휴즈
지구의 형성 연대 1
진화론자들은 지구가 진화되기 위해 수백만 년이 걸렸다고 말한다. 반면에 성경은 지금부터 몇 천년 전에 6일 동안에 모든 창조 세계가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성경대로 지구를 포함한 온 우주가 약 6000년 전에 창조된 것이 사실이라면 약 200억년 전에 온 우주가 생성되고 그 이후에 지구가 진화되었으며 약 백만 년 전에 사람의 조상인 유인원이 처음으로 지구에 나타났다는 주장은 허구가 되고 만다. 200억년과 6000년의 차이를 이렇게 비교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200억년을 경부고속도로의 길이인 450km라고 가정하면 6000년은 약 13.5cm이다. 이런 비교를 통해 창조와 진화 논쟁의 크기가 어떤 것인지 대략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번에 이야기했듯이 진화론의 마술봉은 시간이다. 이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비논리적인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무조건 시간을 벌리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진화 논쟁에서 연대의 문제는 가장 뜨거운 이슈이다. 만약에 지구와 우주의 생성 연대가 짧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다면 진화론은 거짓임이 금방 드러날 것이다. 그래서 진화론자들은 지구의 나이가 젊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그런 과학적인 자료들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지구/우주 연대에 대한 과학적인 자료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살펴보겠다. 성경은 6일 동안에 온 세상과 우주가 창조되었다고 말하며 여기의 하루(day)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과 똑같은 하루 즉 24시간의 하루라고 이야기한다(출20:9-11). 창세기 5장과 10장을 보면 조상들의 족보가 나오는데 그들의 생애의 기간과 그들 이후의 기록들의 연대를 모두 더하면 지구와 우주의 연대는 6천년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어떤 이들은 족장들의 나이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900세 이상을 살았고 가장 장수한 사람은 므두셀라로서 그는 969세를 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창5:27). 세상 사람들과 아직 성경에 확신이 없는 크리스천들(?)은 이들의 수명과 지금 사람들의 수명을 비교하면서 이 차이점을 해결하기 위해 그 당시의 1년은 지금의 1달 정도라고 주장한다. 이것 역시 그럴 듯해 보이지만 속에 나제를 품고 있다. 예를 들어 에노스는 90세에 게난을 낳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창5:9) 이 주장대로라면 에노스는 지금 나이로 9살에 아들을 낳은 것이다. 또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으니 그렇다면 그는 지금 나이로 6살에 아들을 낳은 셈이 된다. 우습지 않은가? 이 모두는 성경을 사람의 유한한 이성에 맞추려다가 생기는 아이러니이다. 성경은 문자 그대로 믿는 것이 가장 확실하며 과학적이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전문가들과 정통 유대인 랍비들은 구약성경에 있는 연대가 실제 연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적으로 틀렸고 위험하며 장난에 불과한 주장이라고 말한다. 옥스퍼드 대학의 제임스 바 교수는 구약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교수로 알려져 있는데 그분 역시 이런 견해를 피력한다. 1984년도에 이분은 자기가 아는 한 세계적 수준의 대학에 있는 히브리어 교수나 구약학 교수 중에서 다음의 세 가지를 믿지 않는 교수는 한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첫째로, 창조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24시간을 단위로 한 6일 동안에 이루어졌다는 것, 둘째로, 창세기에 있는 족보의 연대와 기 이후의 연대를 다 더하면 우주와 지구의 실제 생성 연대가 된다는 것, 그리고 셋째로 노아 홍수 때 방주에 타지 않았던 모든 생물이 멸절되었다는 것.
이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창세기의 6일 창조의 ‘하루’가 오늘날의 24시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곧 그분이 뜻하신 바라는 것을 믿으면 문제가 간단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정말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우주가 있으라고 말씀하시면 금방이라도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하나님은 거룩하다’라고 말하는데 여기에서 ‘거룩하다’라는 말의 1차적 뜻은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창조 세계와 다른 차원에서 거하시는 완전히 다른 분이시다. 온 우주와 그 안의 피조물은 그분이 모두 생성한 이래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과학적인 연대기는 다음과 같다.
(a) 지금부터 약 6000년 전에 우주와 지구와 온 피조물이 하나님의 개입으로 특별하게 무에서 유로 창조되었다.
(b) 지금부터 약 5000년 전에 노아가 등장한다.
(c) 지금부터 약 4000년 전에 아브라함이 등장한다.
(d) 지금부터 약 3000년 전에 다윗이 등장한다.
(e) 지금부터 약 2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한다.
지구의 생성 연대가 짧음을 보여 주는 증거
(a) 지구의 자기장
지구 자기장의 세기는 지난 1세기 동안 잘 측정되어 왔고 과학자들은 이것을 통해 예외적으로 좋은 기록을 얻었다. 최근의 한 중요한 연구에서 반스(Thomas G. Barnes)는 지구 자기장의 세기가 1,400년마다 반으로 줄어들며 지수함수의 형태로 감소한다는 것을 보였다. 다시 말해 1,400년 전의 지구 자기장의 세기는 지금의 자기장의 세기의 두 배였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 사실을 가지고 10000년 전까지 역으로 추산해 보면 그때의 지구는 마치 자석별의 자기장만큼이나 강한 자기장을 갖고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이런 별에서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 물론 이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사실같이 들리지는 않는다. 이처럼 현재의 지구 자기장의 반감기를 기초로 해서 지구의 형성 연대를 추정해 보면 지구 나이의 상한은 10,000년 정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결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진화론자들이 지구의 생성 연대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유도하기 위해 사용한 ‘균일론’이라는 가정을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런 모순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화론자들은 자기들이 주장해 온 연대기 즉 지구가 매우 오래되었다는 연대기를 옹호하기 위해 ‘역전 가설’(reversal hypothesis)을 제안했다. 그들은 지구의 자기장이 지질 시대를 통해 비교적 안정된 상태로 존속되어 왔으나 어떤 기간에서는 역전되어 영(zero)이 되었다가 다시 역전되어 그 강도가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한 약 70만 년 전에 그런 역전 현상이 마지막으로 일어났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같은 ‘역전 가설’은 진화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에게 합리적이며 이론적 인 기초를 제공하지 못한다. 사실 우리는 지구의 자기장이 지구의 핵심에 있는 순환 전류 때문에 형성된다고 믿는다. 만일 우리가 약 2만 년 정도까지 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이 같은 전류에 의해 생성될 것으로 예상되는 열이 이미 지구를 녹여 버렸을 지도 모른다. 따라서 지구 자기장의 강도는 지구의 형성 연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실제로는 상당히 짧음을 보여 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b) 유성 먼지
근래에 과학자들은 우주로부터 지구의 대기권 안으로 들어오는 우주먼지 입자의 양이 거의 일정함을 발견했다. 결국 이러한 먼지 입자들은 지구의 표면에 가라앉아 쌓이게 된다. 피터슨(Hans Petterson)은 먼지 입자의 유입량을 정확히 측정하였고 지구가 연간 약 1,400만 톤의 먼지를 받아들인다고 결론지었다.
이제 진화론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지구의 나이가 약 50억 년이라고 가정한다면 전 세계에는 약 60m정도의 두께를 가진 유성 먼지 층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먼지 층은 지구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진화론자들은 사람의 활동 때문에 먼지 층이 없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살지 않는 달에서는 어떤가? 적어도 이러한 두께의 먼지 층이 있을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는 달에서조차도 우주비행사들은 결코 이런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약 1mm 두께의 먼지 층만 발견되었다. 한때 아폴로 11호 등을 포함한 많은 우주선들의 비행사들을 보내면서 미국의 항공우주국은 이들이 달 표면에 발을 대고 내릴 때 혹시라도 유성 먼지 층에 잠기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심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착륙선의 다리 밑부분을 먼지에 빠지지 않게 넓게 설계했다. 그러나 이런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달의 먼지 층 역시 달의 생성 연대가 매우 짧음을 입증한다.
진화론을 주장하는 지질학자들은 침식이나 혼합 과정이 지구에서 유성 먼지 층이 없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만족스럽지도 못하고 또 쉽게 논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왜냐하면 유성 먼지의 구성 요소들이 매우 특별하며 특히 니켈이나 철을 많이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니켈은 지각에 존재하지 않는 희귀한 원소이며 해양 중에서는 더욱 더 발견하기 어렵다. 반면에 유성 먼지내의 평균 니켈 함량은 지각 안에서의 평균 함량보다 무려 300배나 된다. 지각이나 해양에서 발견되고 있는 비교적 적은 양의 니켈을 근거로 해서 지구의 나이를 계산해 보면 지구의 나이는 수천 년 정도인 것으로 나타난다.
(c) 미시시피 강의 삼각주
미시시피 강의 삼각주는 ‘지구의 형성 연대가 매우 짧다’라는 생각을 지지하는 또 다른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해마다 미시시피 강에 의해 약 3억 입방 미터정도의 퇴적물이 멕시코만으로 퇴적되고 있다. 미시시피 강의 삼각주의 퇴적물 증가 체적과 증가율을 세밀히 연구해서 삼각주의 총 무게를 매년 쌓이는 퇴적물의 무게로 나누어 보면 삼각주의 나이는 약 4,000년 정도로 계산된다. 노아의 대홍수가 지금부터 약 4400년 전에 있었음을 감안하면 그 이후에 퇴척된 양이 성경의 연대를 확고히 지지하지 않는가?
(d) 석유와 천연가스
석유와 천연가스는 지하 저장 장소에서 비교적 침투성이 없는 ‘덮개 암석’(cap rock)에 의해 고압이 유지된 상태로 저장되어 있으며 이 저장고의 압력은 매우 높다. 덮개 암석의 침투성 측정을 근거로 하여 계산을 해 보면 석유와 천연가스의 압력이 이런 상태로 만 년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이 드러난다. 따라서 이러한 고압의 화석 연료가 수백만 년 동안 덮개 암석으로부터 새어나가지 않고 지금처럼 유지되어 왔다고 가정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석유와 천연 가스 그리고 더 나아가 해양 식물이나 다른 물질들이 놀랄 만큼 짧은 시간에 석유나 천연가스로 바뀌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최근의 여러 실험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적당한 온도와 압력을 주었을 때 식물로부터 나온 물질이 고급의 석유로 바뀌는 데는 불과 2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적당한 조건하에서 목재와 그 외 섬유소 물질들은 단지 서너 시간 안에 석탄이나 석탄류의 물질로 바뀐다. 따라서 이 실험들은 석탄, 석유, 천연가스의 형성을 위해 균일론적 지질학자들이 가정하고 가르쳤던 것과 같이 반드시 수백만 년이 필요한 것이 아님을 확실히 증명하고 있다.
창조론자들은 세계의 거대한 석탄층이 노아의 대홍수 이전 시대에 있었던 많은 식물이 운송되고 변성된 것이라고 믿는다. 석탄, 석유 등이 이러한 대격변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해석은 이것들이 급속하게 형성되었음을 보여 주는 석탄층 내의 다층 화석에 의해 더욱 지지를 받는다. 뿐만 아니라 그 안에 포함된 식물의 종류와 지층의 결은 정체되어 있는 늪지대가 있었음을 말하지 않으며 격심한 변동을 가져온 물 즉 대홍수가 있었음을 증언해 주고 있다.24)
진화론자들은 사람이 진화하기 수백만 년 전에 이미 석탄이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의 뼈와 및 복잡하게 만들어진 금 사슬 같은 가공품이 석탄층에서 발견되고 있다. 창세기 4장을 통해 우리는 지금부터 5000년 전인 그 당시에 이미 금속 가공 기술이 매우 높은 수준에 있었음을 알고 있다. 두발가인은 동과 철을 다루는 기술공들의 선생이었다. 또한 우리는 창세기 7장과 8장을 통해 노아 시대의 대홍수에 의해 홍수 이전 문명들이 지구의 퇴적층 안으로 모두 매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성경의 연대가 사실임을 입증하려고 몇 가지 과학적 증거를 보여 주었다. 우리가 조금만 마음을 열고 진리를 추구하려고 하면 도처에서 아주 실제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증거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마음이다. 아무리 증거가 많아도 마음이 닫히면 모든 증거가 허서가 되고 만다. 그래서 구약 시대의 예레미야 대언자는 “마음은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극도로 사악하니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랴?”라고 탄식했던 것이다(렘17:7). 마음을 열고 사실들을 살펴보고 창조주가 있음을 기억하고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이 피조물 인간의 본분이다.
2009-07-17 13:44:52 | 관리자
진화론의 붕괴 3
● 스콧 휴즈
지구(우주)의 나이
무생명에서 생명이 나와 계속된 진화를 통해 지금의 인간에까지 이르렀다는 주장을 펴려면 신데렐라에게 나타나 그녀가 필요로 하는 모든 물품을 만들어 준 요정의 마술 지팡이가 필요한데 진화론이 요구하는 마술 지팡이는 바로 시간이다. 아메바가 하루 사이에 사람으로 변한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일이 수십 억 년에 걸쳐 일어났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긍한다. 시간이 바로 진화론의 마술 지팡이다. 진화론자들은 허점이 발견되면 자꾸 연대를 늘린다. 그래서 우주도 처음에는 20-30억년 전에 생성되었다고 했다가 지금은 200억년으로 늘려놓았다. 물론 앞으로 이것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면 지구를 포함한 온 우주는 지금부터 6,000년 전에 생성되었다. 호기심이 생겨서 네이버에 들어가서 ‘지구의 생성 연대’라고 쳤더니 “기독교인들은 과연 지구가 6000년 전에 생성된 것을 믿는가요?”라는 물음이 있고 이에 대한 답변들이 있었다.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이구동성으로 그런 것은 비상식적이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이야기를 했다. 한 마디로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바보 천치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정말로 우주는 200억년 전에 빅뱅에 의해 생성되었을까? 지구 역사 6000년은 정통 유대교인들과 히브리어에 능통한 ‘믿을 만하고 보수적인’ 신학자들의 진술에 의해서도 확인되는 진리이다. 이번에는 지구(우주)의 연대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1. 진화론자들의 시계: 지질주상도
오늘날 진화론과 일반 과학의 주요한 기초 중의 하나는 ‘지질주상도’(Geologic Column)이다. 지질주상도는 퇴적암 층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진화론자들은 그것들이 수백만(억)년에 걸쳐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1.6km 정도의 깊이로 많은 지층들을 보여 주는 미국의 그랜드케년과 같은 장소는 분명히 지층 기둥들이 존재함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19세기의 지질학자들은 균일론과 생명체 진화가 확고하게 정립된 과학적 사실이라는 가정 아래 지질주상도를 편집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먼저 지구의 연대를 신생대(지금부터 6500만년 전), 중생대(6500만년 전-2억 2500만년 전), 고생대(2억 2500만년 전-6억년 전), 선캄브리아기(6억년전 -46억년 전)로 나누고 신생대, 중생대, 고생대를 각각 몇 개의 기간으로 나누었다. 예를 들어 요즘 유행하고 있는 공룡이 존재한 것으로 알려진 쥐라기는 지금부터 1억 3500만년 전에서부터 1억 9000만년 전의 시대를 뜻한다. 이렇게 주상도를 만들면서 이들은 지층 안에 포함된 다양한 종류의 화석 특히 ‘표준 화석’(index fossil)이 일반적으로 다른 것과 쉽게 구별되며 넓게 분포되어 있고 시간적으로 제한된 기간에만 존재했기 때문에 암석의 구성 연대를 결정해 줄 수 있다고 가정했으며 이 같은 표준 화석에 따라 자기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지층을 배열했다.
그 결과 좀 더 단순한 화석 즉 그들 스스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처음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고 여긴 생물의 화석을 포함한 지층은 지질주상도의 맨 아래쪽에 배치되었고 그들이 나중에 진화되었다고 생각한 생물의 화석 즉 좀 더 복잡한 형태의 화석을 포함한 지층은 맨 위쪽에 놓였다. 이런 식으로 전체 지질주상도가 형성되었는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이 작업이 생물체의 진화가 사실이라는 가정 아래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렇게 임의로 지질주상도를 만든 뒤에 지질학자들은 어떤 지층에서 화석이 발견되면 그 화석이 주상도의 어느 기간의 표준화석과 일치하는가 살펴보고 그 지층의 연대를 주상도의 연대로 확정한다. 예를 들어 삼엽충류는 고생대의 캄브리아기에서 오도비쓰기의 표준화석이므로 삼엽충이 발견되는 지층은 지금부터 5-6억년 정도의 연대를 갖게 된다.
그러면 지질주상도의 문제는 무엇일까? 어떤 사람이 지렛대로 저울을 삼고 한쪽에 돼지를, 다른 쪽에 돌을 놓아 수평을 만들면 결국 돼지의 무게와 돌의 무게는 같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좋은데 만일 돌의 무게를 모른다면 어떻게 돼지의 무게를 알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지질주상도의 문제이다. 지질주상도는 사실이 아닌 ‘순환 논리’(circular reasoning)에 근거한 믿음 체계를 도식화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순환 논리란 다음과 같다. 여러 암석의 형성 시기를 연대순으로 정하게 된 유일한 기초는 암석에 포함된 ‘표준 화석’이란 화석이다. 또한 각각의 화석이 특정한 시대를 나타냄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화론자들이 가정한 소위 ‘생물체의 진화론적 진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들은 이런 식으로 구성된 화석의 기록만이 생물학적 진화의 유일한 기초가 된다고 믿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자면 진화라는 가정이 표준 화석의 순서를 결정하는 데 사용되었고 그 결과에 의한 표준 화석의 순서가 진화를 증명하는 것으로 발전한 것이다. 결국 “진화에 대한 주된 증거는 진화에 대한 가정이다!” 그들이 화석의 배열을 완전히 임의로 결정했기 때문에 진화라는 가정에 기초를 둔 지질주상도는 진화나 광대한 지질 연대를 설명하는 데 결코 사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가정에 기반을 둔 것은 과학이 아니며 일종의 믿음 체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와 같은 지질주상도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실제로 진화론자들의 도식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지질주상도는 단지 진화론을 신봉하는 지질학자들의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체계로서 헛된 생각에 불과하며 이 시간에 우리가 어떤 특정 지역에서 관측할 수 있는 실제 화석층 시리즈가 아니다. 실제로 암석의 형성은 이 같이 이상적이고 상상적인 순서와는 정반대로 이루어졌으며 암석과 암석 사이에는 크게 벌어진 시간의 간격 등도 포함되어 있다. 심지어 미국의 그랜드케년조차도 진화론자들이 신봉하는 지질주상도의 절반도 포함하지 않고 있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지층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과연 지질주상도가 적합한 순서대로 이루어졌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조사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현장에서 실제로 여러 가지 모순을 발견하게 되며 진화론자들이 제안한 지질주상도내의 이상적 순서가 틀림을 깨닫게 된다.
2. 과학적(?) 연대 측정
연대 측정과 관련해서 우리는 먼저 한 가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대개 사람들은 과학자들이 측정한 것은 대단히 정확하며 편견이 없는 데이터라고 생각한다. 암석의 연대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화학분석을 하는데 아주 좋은 장비를 가져다가 정교한 설비로 분석하기 때문에 화학분석 자체는 누구나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결과를 해석하는 데 있다. 화학분석의 결과를 가지고 연대를 해석하는 방법에 적용되는 기본 가정들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화학분석 결과로 계산된 연대도 틀린 경우가 허다하다. 또 그렇게 해서 얻은 분석 결과 중 많은 것이 발표조차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기존에 생각했던 것과는 결과가 너무나 다르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제 이러한 방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자.
3. 연대측정을 위한 기본 가정
모래시계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모래시계는 위에 있는 모래가 얼마나 내려갔느냐에 따라서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이다. 위에 남은 모래와 밑에 쌓인 모래를 가지고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 비슷한 방법으로 우라늄이 어떻게 납으로 변해갔는지 그 양을 측정해서 지구의 나이를 계산하는 방법이 있다. 최초에 모든 납이 우라늄이었다고 가정한다면 우라늄과 납의 양을 같이 해서 연대를 측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연대를 측정하는 데는 세 가지 기본 가정이 필요하다.
첫째는 초기 조건을 알든지 아니면 가정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암석에서 측정하고 있는 납이 처음에 전부 우라늄이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만약에 지금의 납이 원래 모두 우라늄이 아니었다면 필연적으로 연대측정에 오류가 생기게 된다. 그런데 지구가 처음 생겼을 때 우라늄이 얼마였고 납이 얼마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학자들이 연대를 측정하려면 초기 조건을 알아야 하는데 아무도 그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가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가정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두 번째 가정은 측정 대상이 ‘밀폐계’여야 한다는 것이다. 밀폐계라는 말은 모래시계의 경우처럼 시계가 외부로부터 단절되어 외부에서 안으로 모래를 넣거나 거기에서 모래를 밖으로 빼낼 수 없는 계를 뜻한다. 암석 안에 들어가 있는 우라늄이나 납이 수백만 년 동안 외부로부터 투입되거나 외부로 유실되지 않아야 밀폐계라는 가정이 성립된다. 그런데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지구의 암석층이 고립계가 아니라 외부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개방계라는 점이다. 실제로 우라늄은 유동성이 있어서 지하수를 타고 흐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얼마든지 암석에 들어갈 수 있다. 따라서 암석층이 고립계라는 것이 증명되지 않으면 연대 측정에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세 번째 가정은 우라늄의 붕괴 속도가 항상 일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래가 떨어지는 속도가 일정해야만 그 양을 가지고 시간을 측정할 수가 있듯이 우라늄이 납으로 변하는 시간도 일정해야 연대를 바르게 측정할 수 있다. 수백만(억) 년 전에는 과학자가 없어서 그 당시 우라늄이 붕괴하는 속도를 아무도 측정하지 못했다. 현재 과학자들은 지난 100년 동안의 우라늄 붕괴 속도를 측정해서 그 속도가 과거에도 균일하게 지속되었을 것이라고 가정하여 -이것은 보통 균일론이라 불린다 - 지구의 생성 연대가 150억년 되었다고 주장한다. 만약에 대학교에서 물리 시간에 10년 정도 실험을 하고 그것을 균일한 비율로 수십억 년 동안 연장해서 어떤 답을 유도내면 금방 교수가 그 답은 틀렸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것은 전혀 과학적으로 올바른 방법이 아니고 통계학적으로도 옳은 방법이 아니다. 그런데 지질학자들은 이런 것에 근거해서 지구의 나이가 140억년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돌덩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것과 설계자가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 이 둘 중에 과연 어느 것이 더 과학적인가? 100년 정도 측정한 뒤 결과를 연장해서 140억년이라는 답을 낸 것과 설계자가 역사의 기록을 가지고 6000년이라고 말하는 것 이 둘 중에 과연 어느 것이 더 과학적인가? 어쨌든 방사성 동위원소법으로 암석의 연대를 측정하려면 위의 가정들이 성립되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런 가정들이 성립되지 않으므로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법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과학적인 답을 주지 못한다.
4. 방사성 탄소(C14)이용 방법
연대 측정과 관련하여 방사성 탄소에 대해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으므로 이에 대해 잠시 검토해 보겠다. 먼저 탄소14(C14) 방법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우주 공간으로부터 지구에 들어오는 우주 광선은 대기 상공에서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뉴트론을 만들면 이 뉴트론이 질소와 충돌하며 여기서 방사능을 가진 C14가 만들어진다. 아주 높은 상공에서 만들어진 C14는 결국 낮은 대기로 내려와서 생물계에 흡수되며 이렇게 해서 C14는 공기에도 있고 우리가 먹는 음식에도 다 들어 있다. 우리가 먹고 사는 한 항상 C14를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죽은 시체는 더 이상 C14를 섭취하지 않으며 C14는 붕괴되기 시작한다. C14는 반감기가 5715년인데 반감기란 방사성 동위원소의 방사능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살아 있는 모든 동물이나 식물은 호흡과 광합성을 통해 탄소를 흡수하는데 그 안에는 C14와 C12가 일정 비율로 존재한다. 그러나 동물이나 식물이 죽게 되면 그 순간부터 더 이상 탄소를 흡수하지 못하게 돼 이때부터 ‘C14 시계’가 작동한다. C12는 방사능이 없기 때문에 일정량이 계속 남아 있지만 C14는 방사성 붕괴를 시작한다. 따라서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 C12와 C14의 비율을 측정하면 사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방법이 얼마나 부정확한지는 공개된 과학 잡지의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다. 남극에서 금방 죽은 물개의 연대를 C14를 이용하여 측정했을 때 1300년 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살아 있는 연체동물의 껍질을 측정한 결과 연대가 1000-2000년 정도 된 것으로 나왔다. 뿐만 아니라 네바다 남부 사막에서 살고 있는 달팽이의 껍데기를 측정한 결과 연대가 2만 7천년 된 것으로 나왔다. 어떤 생물은 C14를 잘 받아들이지 않고 선택적으로 C12만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방법은 믿을 것이 못된다. 스웨덴의 유명한 두 전문가는 C14 방법에 따른 결과가 이론과 맞으면 책에 내거나 보고하고 결과가 조금 이상하게 나오면 밑에 주석으로 달며 결과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르면 버린다고 보고했다. 즉 소위 과학을 한다는 사람들 역시 편견의 소유자로서 결과가 자기가 믿고 있는 이론과 맞지 않으면 데이터를 다 버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세기 1장 1절에서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라고 간단히 진리를 선포하셨다. 그게 전부다. 우리는 성경 기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결코 실수가 없으시며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지구를 포함한 우주가 생성되는 순간 그것을 본 존재는 하나님뿐이 없다. 다른 모든 존재의 주장은 그랬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바로 그 시점 전에는 ‘시간’(time)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바로 그 시점부터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차원의 시간이 도입되었다. 물론 그 전에는 ‘과거의 영원’이 있었고 이제 주님의 재림과 천년왕국 이후에 ‘시간’이 마감되면 다시 ‘미래의 영원’이 오게 된다. 영원(eternity)은 무한하므로 유한한 사람이 ‘영원’을 논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영원’이 어떠하지 어렴풋이 보여 주셨다. 사람들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하는데 성경은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17:3)이라고 말한다. 진리를 알고자 하면, 영생을 얻고자 하면 주님께서 길을 보여 주실 것이다.
2009-07-17 13:42:04 | 관리자
진화론의 붕괴 2
● 스콧 휴즈
진화론은 과학인가?
전 세계에 널리 파급되어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성경의 진리들에 대항하는 인본주의 철학의 요지는 현대 과학이 생명체의 진화가 사실임을 증명했으며 따라서 창조에 관한 성경 기록은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물체 기원에 관한 이론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이 같은 요지에는 치명적 결점이 있다. 실로 과학적 방법의 핵심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관찰과 실험에 그 기반을 두고 있으며 따라서 오래 전에 있었던 온 우주의 생성에 관한 관찰과 실험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뉴턴의 시대나 그 이후에나 사과는 나무에서 잘리면 밑으로 떨어지므로 만유인력의 법칙은 과학이다. 그러나 200억년 전에 빅뱅이 생겼고 100만년 전에 사람이 생겼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근거가 없다. 사실 그들은 그럴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1971년도 판 다윈의 「종의 기원」 서문에서 영국의 생물학자 매튜스(L. Harrison Matthews) 역시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진화는 생물학의 중심 지지력이며 따라서 생물학은 ‘증명되지 않은 이론 위에 세워진 과학’이라는 아주 이상한 학문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과학인가? 아니면 믿음인가? 진화론에 대한 믿음은 하나님의 특별 창조에 대한 믿음과 마찬가지로 믿음 혹은 신앙의 범주에 속한다. 이러한 개념들은 한결 같이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들이지만 그 중 어떤 것도 지금까지 증명된 적이 없다.
과학자들은 미래나 과거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관찰할 수 없으며 단지 추측해 볼 수만 있을 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들은 단지 현재에 대해서만 관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가정 즉 진화가 이미 확고히 정립된 과학적 사실이라는 가정은 절대적으로 거짓이다. 따라서 진화는 기원에 대한 믿음이나 주관적 철학 혹은 많은 과학자들의 종교라고 불리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과학자들과 교사들은 여전히 진화가 확고히 정립된 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다윈주의의 철저한 신봉자였던 토마스 헨리 헉슬리의 손자인 쥴리안 헉슬리(Sir Julian Huxley)는 1959년에 다음과 같이 공표했다.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첫 번째 요지는 그것이 더 이상 이론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이다. 사려 깊은 과학자라면 누구나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듯이 진화가 실제로 일어났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질학에 관한 표준 교과서인 「지구 역사의 본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화석 기록은 지구의 생명체가 여러 시대를 거쳐 변화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들 즉 반박할 수 없는 증거들을 제시한다. 화석 잔류물에 대한 체계적 연구는 지구의 과거 역사에 대해 새로운 빛을 비추어 주었으며 지난 수천 년 동안 우세하게 전해 내려온 개념 즉 구식이며 미신적인 것들 - 즉 성경적 창조론 - 을 타파해 버렸다. 화석들은 생명이 변화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간단한 것에서 점점 복잡한 것으로 진보되었음을 증명해 준다. 이것들은 모두 사실이다. 어떤 사물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오직 하나의 결론만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즉 지나온 과거와 지금의 모든 생명체는 아주 간단한 시작에서부터 진화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한편 미국의 ‘과학 진보를 위한 협회’의 대변인은 최근에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전 세계의 박물관에서 연대가 측정되고 정체가 밝혀진 약 1,000만 개 정도의 화석들은 한 점의 의혹도 없이 진화를 증명하는 100만 개 정도의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
위에서 보았듯이 비록 진화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일 수 있어도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다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자들도 인간임을 기억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모두 완전히 객관적이며 공정하며 흰 가운을 걸치고 있는 엄숙하고 깨끗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절대적으로 불합리한 것이다. 편견이나 이미 세뇌 당한 생각들의 효과, 개인적으로 강하게 갖고 있는 확신에 의한 영향,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영향 등이 일반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듯이 과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많은 과학자들과 교사들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생명과 우주의 기원과 운명에 대한 자연주의적 설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사실 이 모든 요인들이 진화론을 널리 퍼뜨리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7년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왈드(George Wald)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땅 위의 생명의 기원에 대해 언급할 때, 우리에게는 단 두 개의 가능성만이 있다 : 창조 혹은 자연 발생(진화). 이 외의 또 다른 가능성은 있을 수 없다. 자연 발생은 이미 100년 전에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판정이 났고 따라서 우리에게는 초자연적 창조라는 단 하나의 결론만이 남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적 이유 특히 철학적 이유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믿기 원하며 그것은 바로 생명이 우연히 발생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진화를 과학적 사실로 인정하고 있는 이유가 사람들이 과학적 증거에 의해 그것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고 단 하나의 대안인 특별한 창조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 다른 이론들도 제시되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DNA(디옥시리보 핵산) 구조의 발견으로 공동으로 노벨상을 받았던 크릭(Francis Crick)은 생명체가 지구에서 진화된 것이 아니라는 아주 이상한 이론을 제기했다. 다시 말해 그는 은하계에 있는 멀리 떨어진 유성에서 어떤 지적 존재에 의해 생명체가 만들어졌고 그 뒤 지구로 보내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주장이 단순히 창조/진화의 문제를 다른 시대 및 다른 장소로 옮겨 보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아야만 한다.
물론 모든 과학자들이 무신론적 진화론자는 아니다. 실로 과학의 역사 속에 꿋꿋이 서 있던 선구자 중 수많은 사람들이 헌신한 크리스천들이었다. 그들의 이름을 간략하게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뉴턴(Isaac Newton), 파스퇴르(Louis Pasteur), 케플러(Johannes Kepler), 보일(Robert Boyle), 패러데이(Michael Faraday), 맥스웰(James Maxwell), 모오스(Samuel F.B. Morse), 켈빈(Lord Kelvin) 등.
어떤 과학자들은 중립적 태도를 취하기 위해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을 선택했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과 성경을 믿는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생명체가 무기 화학물질로부터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같이 우스운 이론을 받아들이기 위해 그들은 수많은 성경의 사실을 버리고 떠나 그것들을 수정했고 궁극적으로 그것들이 진화론과 타협될 수 있도록 만들어 버렸다. 이처럼 성경을 무시하는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 바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예수회 사제인 샤르뎅(Pierre Teilhard Chardin)이다.
하지만 참으로 성경이 성령님께서 영감을 주시고 보존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크리스천들은 이 같은 개념을 단숨에 내던져 버릴 것이다. 간단히 말해 생물학적 진화론은 살아있지 않은 물질이 살아있는 단순한 구조의 조직체를 만들었고 그로부터 여러 형태의 생물체들이 재생되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믿음에 따르면, 모든 박테리아, 식물, 동물, 그리고 사람이 어떤 방식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든지 단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어떤 지성이나 계획 없이 스스로 일어나고 우연히 생겨났다는 것이다. 또 생물학적 진화론의 바탕에서 생겨난 전제 즉 ‘분자로부터 사람이 되는 이론’의 전제는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수소 가스가 결국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한편 이와 정반대의 관점을 갖고 있는 성경적 창조론은 하나님에 의한 초기의 특별한 창조가 있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 같은 창조를 통해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모든 법칙들, 과정들, 그리고 자연계의 모든 것들이 존재하게 되었음을 말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시대마다 거짓 교사들과 사상들이 엄청나게 많이 쏟아져 나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것을 믿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진리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대다수의 의견으로부터 나온 주장이 확신을 주지는 못한다. 사실 과학적 진리는 투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대다수의 의견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못된다. 대다수의 의견이라는 것은 과거에도 종종 그러했듯이 완전히 틀릴 수도 있다.
그런데 도대체 인류의 기원 등을 연구해서 무엇에 쓰려고 하는가? 우리가 이렇게 시간과 정열을 쏟아가며 그것을 연구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물론 기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이유가 있고 사실 우리는 그것들을 자세히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느 누구나 자기 자신의 정체와 살아가는 목적 그리고 개인적 목표 등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기원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이런 것들을 깨닫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기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생활 형태를 조정할 것이며 결국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우리 인류가 안고 있는 수많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기원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달려 있다. 만일 진화론의 철학이 옳다면 삶이란 아무런 목적도 없는 것이다. 반면에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면, 사람의 기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우리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확신, 행동, 그리고 신조의 기초가 될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기원에 관한 질문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인 것이다.
진화론 및 성경적 창조론은 둘 다 과학적 방법에 의해서는 증명될 수 없으며 단지 믿음에 의해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결코 이미 알려진 사실이나 관찰된 것들을 다 무용지물로 만들어 폐기시켜야만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우리는 어떤 모델이 더 가능성이 큰가를 밝혀내기 위해 과학적 사실들을 사용해야 하며 그렇게 할 때 그 믿음은 지적 믿음이 되며 그 안에 목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앞으로 우리는 과학의 사실들이 진화론을 부정하고 성경적 창조론을 지지하고 있음을 볼 것이다.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요즘 제주도의 귤이 제 맛을 내고 있다. 귤나무는 땅에서 수분을 흡수하고 햇빛을 받아서 귤을 만들어 낸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엄청난 신비가 아닌가? 이 땅의 모든 것이 다 그렇다. 사람의 세포 하나가 온 우주보다 더 복잡하다. 그런데 완벽하게 정교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사실 대단한 믿음이다. 나는 그 정도의 믿음이 없다. 다만 나의 머리털, 손톱 하나를 보면서 그 안의 창조의 신비에 놀라고 창조주가 있구나 하는 정도의 작은 믿음만 가지고 있다. 은혜로우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런 작은 믿음의 소유자들에게 영원을 바라보는 큰 믿음을 주실 것이다.
2009-07-17 13:40:37 | 관리자
진화론의 붕괴 1
● 스콧 휴즈
한 번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큰딸이 학교에 갔다 와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아이들이 우리 조상이 원숭이였다고 말하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이것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두고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듣게 되는 질문일 것이다. 이런 질문에 대해 과연 우리 부모들은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소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많은 이들이 “그렇다.”라고 대답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원숭이를 만드셨고 그것이 수십 억 년의 진화를 통해 사람이 되었단 말인가? 대학교에서 진로와 인생 상담을 하면서 사람이 무엇인가를 학생들에게 물으면 대부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며 자기 조상이 원숭이일 것이라고 막연히 믿는다고 대답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질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1. 나는 누구인가?(Who am I?)
2. 나는 어디서 왔는가?(Where did I come from?)
3.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Why am I here?)
4.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Where am I going when I die?)
짐승들은 이런 질문들을 생각할 필요도 없고 태어나서 살다가 죽으면 끝이다. 그런데 사람은 짐승과는 다르지 않는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 문제들을 생각하면서 살고 있고 철학의 주제 역시 바로 이런 질문들에 대한 인간적인 답을 주는 것이 아닌가?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이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빅뱅에 의해 흙덩어리에서 나와 아메바로 변했다가 무수한 진화 과정을 거쳐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무슨 목표가 있을까? 그들은 왜 살까? 짐승과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를까? 한편 고차원의 창조주가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설계해서 이 땅에 내놓았다고 믿는다면 설계자의 설계 목표를 완수해야 하는 삶의 목적이 존재하게 된다.
이 세상의 모든 물건에는 그것들을 만든 존재 즉 메이커가 있다. 주변을 보라. 펜, 의자, 자동차, 책 등이 모두 메이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모든 메이커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물건을 판단하여 폐기 처분한다. 이와 마찬 가지로 사람에게도 메이커가 있다. 물건도 메이커가 있는데 하물며 물건을 설계하는 고등 존재인 사람이 흙에서 그냥 생길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을 만든 메이커가 그 사람이 자신의 목적에 부합되는 삶을 살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때가 있다(행17:31; 히9:27). 이 같은 심판에서 부적격자로 드러난 사람은 메이커가 폐기시킨다. 성경은 이 같은 메이커를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폐기 처분되는 것을 ‘유황 불 지옥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계20:10). 그러므로 인생의 참된 목적을 알기 원하는 사람은 먼저 “내게 메이커가 있는가, 없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진화론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인간 사회 전체를 지배해 왔고 특히 교육 기관들은 진화론 지배의 가장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방송 매체들은 TV 프로그램과 진화론의 관점에 충실한 신문의 사설들을 통해 마치 유기체 진화가 ‘사실’인 것처럼 선전해 왔다. 대개 이 같은 중독 현상은 뚜렷하고 오랫동안 지속되며 특히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침투할 때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매우 효과적으로 사회 속으로 파급된다. 독재자 히틀러는 이런 점을 잘 파악했고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이 큰 목소리로 오랫동안 여러 차례 거짓말을 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믿게 된다. 특히 사람들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을 더 잘 믿는다.”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적/도덕적 문제의 대부분은 진화론적 사고에 의해 부화된 인본주의적 철학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소위 ‘신윤리’라 하는 것은 사실상 ‘윤리 부재’ 철학에 의한 결과이며 이처럼 유행하고 있는 인본주의적 관점들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사상이나 생명에 관한 분야는 오늘날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25년에 미국에서 ‘스코프스 재판’이 열린 이후에 일반인들은 진화를 ‘사실’로 받아들였고 성경적 창조주의를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하고 내동댕이쳐 버렸다. 무기력한 기독교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진화론자들의 대폭격 앞에 무릎을 꿇어 타협하거나 뒤로 후퇴해 버렸으며 실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는 많은 신자들의 믿음은 나쁜 방향으로 영향을 받게 되었고 많은 신실한 사람들이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게 되었다. 지금 전 세계의 모든 학생들은 살아있지 않은 물질로부터 생명이 나온다는 자연발생설을 부정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배우고 있다. 레디, 파스퇴르, 그리고 스팔란자니는 생명이란 반드시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다른 생명으로부터 나옴을 증명했다. 그 결과 더러운 옷에서 쥐들이 태어난다는 것과 같은 우스운 생각들이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발생설의 부당함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들의 주장을 철회하고 자연발생에 의해 생명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 얼마나 역설적이겠는가?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생명체인 흙덩이라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 아메바로 바뀌고 고등 동물로 변한다고 배우고 있다. 실제로 유기체 진화에 대한 현대적 개념은 자연발생설이 유행했던 16세기경의 불합리한 사상이 다시 한 번 세련되게 꾸며져 복구된 것에 불과하며 결국 자연발생설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의 아이러니는 ‘유기체 진화’라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불가능하며 모순이라는 사실에서 유래된다. 합법적이며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이런 생각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한편 ‘성경적 창조론’은 최근에 와서 다시 회복되고 있으며 매우 인상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크게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진화론의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지식인들이 ‘지적 설계’ 혹은 ‘지적 설계자’라는 개념을 믿고 있는데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해 세상과 우주의 모든 것이 그냥 생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수많은 비기독교인 과학자들이 창조론/지적 설계론을 선호하며 진화론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 내의 여러 주(洲)들은 과학 교재 안에 창조론을 넣을 것을 고려하고 있다. 그리고 대학 캠퍼스 내에서도 창조론에 대한 강연과 논의들이 많이 진행되어 왔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각 방면에 뉴에이지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큰 서점에 가보면 뉴에이지 문서들을 취급하는 난이 기독교 및 다른 종교들의 문서들을 다루는 난만큼이나 될 정도로 이제 뉴에이지는 대중들의 삶의 한 부분이 되고 있다. CD나 레코드판들을 취급하는 곳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국내에서도 사정은 거의 비슷하며 특히 인기 연예인 등을 통해 이 같은 사상이 쉽게 전파되고 있다. 그렇다면 뉴에이지 운동이 그처럼 인기를 끌게 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뉴에이지 운동은 인도의 힌두교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사람의 윤회를 중점적으로 가르친다. 그렇다면 사람의 윤회란 무엇인가? 윤회란 사람이 주어진 삶 속에서 진보(혹은 진화)하게 되면 그 다음의 삶에서는 더 좋아지고 이렇게 수천 번의 진화를 통해서 결국에는 신(혹은 부처)이 된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인간의 진화가 여기에서 끝이 아니고 결국에는 신(혹은 부처)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같은 영적 진화에 대한 가르침이나 원숭이에서 사람이 되었다는 육적 진화의 가르침은 결국 동일한 것으로 모두 사탄 마귀에게서 나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인류와 우주의 모든 기초는 창세기 속에서 발견된다. 죄, 사망, 질병, 결혼 등의 기원, 올바른 윤리관, 성경적 구속사, 구원자의 필요성 등이 모두 창세기 속에 있다. 이 세상의 책 중에 사람이 죽는 이유를 가르쳐 주는 책이 있는가? 죽는 이유를 안다면 살 수 있는 이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으므로 창세기의 처음 11장을 신화로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사고 체계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이 세상/우주에는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는 것’이 ‘보이면서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 빛도 마찬가지이다. 우린 눈에는 무한대에 이르는 빛의 스펙트럼 중에서 가시광선이라는 미세한 스펙트럼만 보인다. 이것을 크기로 비유하자면 지구와 10원짜리 동전으로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이 정도로 유한하다. 그러므로 무한대를 보는 눈을 갖는 것이 필요하며 사람은 짐승과 달리 바로 이런 능력을 부여받았다. 우리가 늘 당연히 아는 것으로 간주하는 ‘믿음’(Faith)이란 무엇인가? 보는 것인가? 아니면 보지 않고 통찰력으로 나아가는 것인가?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For we walk by faith, not by sight, 킹제임스 흠정역 고후5:7).
킹제임스 영어 성경의 단어를 살펴보면 ‘본다’는 의미의 ‘sight’는 ’믿음’(faith)과 정반대로 쓰였음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믿음’은 ‘sight’의 반대말인 ‘insight’ 즉 ‘통찰’(보지 않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저자인 사도 바울은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그런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히11:3)고 기록한다.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부터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창조한다’의 ‘Create’라는 단어는 단순히 ‘만든다’의 ‘Make’와는 매우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창조한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부터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만든다’는 것은 이미 있는 것으로부터 무엇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위에 있는 히브리서 말씀은 분명히 이 세상의 보이는 모든 것들이 무(無)에서 만들어졌음을 말해 준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사실을 믿음을 통해 이해한다는 것이다. 지구가 혹은 우주가 수십 억 년 전에 형성되어 진화해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그랬을 것이다.”라고 믿는 것이다. 즉 ‘창조’나 ‘진화’와 같은 개념은 ‘믿음’의 문제이지 결코 증거를 눈앞에 제시해야만 그 진위를 알 수 있는 과학의 문제가 아니다.
창조의 믿음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설계자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분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비우며 거기에 순응하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 반면에 진화의 믿음을 가진 이들은 자기들이 모든 것을 주관하며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이 땅에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고 결국은 마귀를 자기들의 구원자로 믿게 된다. 따라서 어떤 이가 어떠한 믿음을 갖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 여정이 결정되며 그가 앞으로 영원히 가서 살게 될 장소가 결정된다. 이렇게 창조의 믿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모든 사람의 삶의 목표를 정해 주는 필수불가결한 기초이다.
미국에서 10년간 유학 및 이민 생활을 하다가 다시 모국에 돌아온 지 벌써 16년이 되었다. 대학에서는 물리학의 한 부류인 열역학을 학기마다 강의하고 있다. 이제 추후의 글에서도 언급하겠지만 열역학은 ‘물질 및 에너지 보존의 법칙’(제1법칙)과 ‘만물 쇠퇴의 법칙’(제2법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재로 채택한 영어 교과서의 저자는 기계공학적 관점에서 제1, 제2법칙을 모두 설명한 뒤 과연 이 법칙들이 우리의 사고 및 우주의 영역에까지 적용될 수 있는가를 학생들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유도한다. 이 부분에 오면 나는 학생들에게 ‘창조와 진화’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 뒤 내 딸이 물었던 것과 비슷한 질문을 한다. 그들에게 ‘믿음’과 ‘과학’의 문제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대부분의 학생들도 자신들이 단순히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자신들의 조상이 원숭이였다고 믿을 뿐이며 그것이 과학 자체는 아니라고 말한다.
앞으로 이 칼럼에서는 다음의 두 가지 점을 보여 주려 한다. 첫째,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의 예를 들어가며 유기체 진화론의 허구점들을 과학적으로 밝히 보여 줄 것이다. 둘째, 성경적 창조론과 노아의 대홍수/대격변론에 대한 과학적 증거들을 제시하면서 성경이 얼마나 과학적인가를 보여 줄 것이다. 마음을 열고 상반되는 견해를 비교해 본 뒤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바란다. 아는 것이 힘이다.
“그러나 이제 짐승들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너를 가르치리라. 공중의 날짐승들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일러 주리라. 혹은 땅에게 말하라. 땅이 너를 가르치리라. 바다의 물고기들도 네게 밝히 알려 주리라. 이 모든 것 중에 어느 것이 주의 손이 이 일을 이루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모든 생물의 혼과 모든 인간의 호흡이 그분의 손에 있느니라.”(킹제임스 흠정역 욥12:7-10)
2009-07-17 13:38:26 | 관리자
생물학을 열심히 연구하시는 것처럼, 마음을 열고 성경을 열심히 한번 연구해 보시기를 부탁합니다.
2009-07-17 12:18:35 | 진숙희
글을 더 이상 안 쓰려고 했었는데요, 약속을 어기고 한 자 적습니다.
나동민씨는 이제 석사를 마친 학생입니다. 이때에는 자기 공부 및 믿는 것에 대해서 자신감도 있고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절입니다.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고 좀 더 많이 공부하게 되면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현재 널리 알려진 세상지식의 먼지만큼도 안된다고 생각할 때가 올 것입니다.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 이런 말이 그냥 만들어진 말이 아닙니다.
세상 지식이 모두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날이 올것입니다.
지금까지 의견 교환을 보면 서로간의 공통점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고 그저 무의미한 평행선만 만들었을 뿐입니다.
다만, 이번 논쟁을 통해 나동민씨의 마음에 씨앗이 뿌려졌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나동민씨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여기 댓글 다시는 분들은 최소한 나동민씨보다 연배는 확실히 많으신 분들이십니다.
질문을 하시거나 이의를 제기하실 때는 예의를 지키실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인터넷일수록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겠거니 하고 더욱 겸손한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처음에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사기'라는 도발적 표현을 사용하신 것은 극히 무례한 표현입니다.
앞에서 논쟁하였던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정혜미님이 말씀하신 하신 것처럼 나중에 서로에게 좋은 기회가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2009-07-17 12:08:53 | 김학준
어떤 동기든 이곳에 까지 오셔서 용기있는 글을 남겨주셨네요.
언뜻 도전적인 태도가 보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생각을 내려 놓고
세상의 지식에 알게 모르게 세뇌되어 있는 우리의 사고를 한번 쯤 전환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셨음 좋겠습니다.
이론으로는 다윈의 발표 이후로 계속 대립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논쟁의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생물학을 연구하고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다 진화론을 믿는 다거나 다 창조론을 믿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진화론에 물든 한 영혼을 위해 선전하고 계시는 분들의
겸손한 간증들이 있어 이 논쟁(?)은 건전하게 여겨집니다.
이미 저를 비롯 이곳에 댓글을 다시는 분들도 나동민님처럼 세상에 가르쳐준 지식을
믿다가 성경을 믿게 된 분들이므로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귀를 기울여 인생의 전환점이
되시길 바랄 뿐입니다.그런데 이미 감정이 상한 상태시라면 다음기회에 만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09-07-17 10:13:32 | 정혜미
우리는 오직 성경말씀을 믿을 뿐입니다.
예수님에 의한 인류의 구원을...
미천한 인간이 어찌 하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믿지 않으려고 작정하면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하실 수 있습니다.
2009-07-17 10:01:17 | 허광무
사람 죽고 사는게 하나님 소관에 있다는 사실을 아신다면
그 분의 주권적인 행사를 인정하셔야 합니다.
그 분은 처음과 끝이요, 모든 것을 지으시고 모든 것을 멸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분의 계명을 가지고 뜨겁게 논쟁해봤자 결국 우리들은 그 분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게 사랑의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기억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 악은 절대 있을 수 없는 법이죠. 하나님은 죄악된 인간을 반드시 벌하십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공의죠. 완전히 거룩하시고 빛이셔서 모든 어둠이 그 앞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 중에 사람 죽이지 말라라는 계명이 있으나...죄악된 이방 민족들을 직접 죽이시고, 군대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요엘 3장에 나와있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십니다.
야곱과 에서 이야기에서 인간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당연히 장자인 에서가 큰 민족을 이루고 동생이 섬겨야 하겠지만 하나님은 야곱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할 특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존귀하신 예수님의 혈통도 죄에 찌들은 선조들로부터 시작됩니다.
유다 지파의 시작인 유다는 자신의 며느리와 관계를 맺었는데, 후에 동생인 요셉의 사건 때, 요셉을 위한 그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오히려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죄된 몸으로 이 땅에 오셨냐...그건 아니죠. 혈통만 그렇게 이어질 뿐, 사람의 씨를 받은게 아니라 성령께서 잉태하신거죠. 이건 성경에 나와있는 말씀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말도 안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역설적 원리는 이상하게 보이는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성경은 창세부터 종말까지 들어있는 책입니다.
이러한 책에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요 5:39)
탐구가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왜 이 말씀을 주셨나? 왜 이 시기에 쓰여졌는가?
깊게 연구하는 것이죠.
구약은 이스라엘의 역사서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에 맞는 율법들을 주신거죠.
구약은 폐기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폐기된 것들 중에서는 신약에도 남아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온 인류 구속사역을 시작하신 것이죠.
이스라엘 민족만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구원 받게 하시려고 이미 그 통로를 열어놓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가 믿기만 하면 의롭게 되고,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던간에 죽으면 심판이 있고, 그 심판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게 진리입니다.
들을 귀 있는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들으려면 듣고, 듣기 싫으면 안 들으면 되는겁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뱀의 꾀임에 빠져서 선악과를 먹는 선택을 한건 인간 스스로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죠.
성경 기록에 관해 의심하는 것 또한 믿음이 성장할 좋은 발판입니다. 만약 나동민씨께서 세례 받으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먼저 기도로써 안에 계신 성령님께 말씀의 궁금점을 여쭤보시길 바랍니다. 모든 상황들을 통해서 알려주실 것입니다.
2009-07-17 00:39:07 | 이한규
여기서도 진리는 찾을 수가 없네요. 뭔가 다를줄 알았더니
그저 있는 그대로 믿는다고 하셨으면서, 성경 말씀을 읽으면 알게 된다고 하셨으면서
막상 성경에 나와있는 의문스런 구절들에 대해서는 답변을 회피하시구요.
전 최소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예의바른 토론이 이루어 질거라 믿었지만
논리적인 반박은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무조건적인 맹신과 비아냥으로 점철된 답글만 하시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겨우 그정도로 진화론의 붕괴, 하나님의 특별창조, 창조의 증거들, 이란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사이트를 운영하시는 겁니까?
저도 그만 하렵니다. 토론 자체가 안되는 분들과는 토론을 할 가치가 없군요.
2009-07-16 19:48:43 | 나동민
저는 그 사이트와 별 관계 없습니다. 오히려 그 사이트의 원색적이고 저속한 비난에는 반대하는 바입니다.
전 그저 성경원리주의가 근대과학과 상치된다는 생각에 의문이 들어 글 남겨본 것 뿐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어도 '그냥 믿습니다.' 라고 주장하시는 분들과는 진지한 토론이 되지 않네요.
님께서 말씀하신 잔인한 하나님, 살인하는 하나님, 차별하는 하나님도 모두 성경 말씀이지요. 그런 성경을 무오하다고 믿고 근대과학의 성과들을 부정하는 게 과연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목적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글이라 삭제한다구요?
자유게시판입니다. 게다가 저는 실명으로 회원가입도 했구요. 비속어가 오고간것도 아니고 나름 상호간 예를 갖춰 토론한 글인데 삭제하는것은 비겁한 감추기로밖에 안보입니다.
혹시나 해서 이 게시물 전체를 그림파일로 저장해 놓겠습니다.
2009-07-16 19:39:50 | 나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