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서쪽의 도시.
이곳은 에브라임과 베냐민 지파의 경계에 있었으며(창12:8; 28:10-22) 야곱은 에서를 피해 도망가다가 여기서 꿈을 꾸고 루스라는 이름 대신 이곳을 벧엘이라 불렀고(삿1:23)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뒤 다시 그곳에 장막을 쳤다(창35:1-15). 여호수아가 이곳을 점령해서 베냐민 지파에게 주었으나(수12:9; 18:22) 에브라임 사람들이 여기서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냈다(삿1:22-26). 여기에 언약궤와(또 성막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되며(삿20:27; 삼상10:3) 사무엘은 여기서 순회 재판을 열었다(삼상7:16). 그러나 솔로몬 이후에 이곳은 심각한 우상숭배 본거지가 되었다. 여로보암은 이곳이 예전에 거룩한 곳이었으므로 이곳에 금송아지 두 마리 중 하나를 놓았고(왕상12:29) 그래서 대언자들은 벧엘을 대적하는 주님의 말씀을 선포했으며(왕상13:1-2; 렘48:13; 암3:14; 7:10) 요시야 때에 이런 대언의 말씀이 성취되었다(왕하23:13). 또 그 후에 벧엘의 황폐로 인해 다른 말씀들도 성취되었으며 그 결과 거기에는 폐허만 남게 되었다.
2009-07-05 00:55:10 | 관리자
벧엘 동쪽에 위치한 사막이나 장소(수7:2; 18:12; 삼상13:5; 14:23).
벧아웬에 금송아지들이 세워졌기 때문에 이곳은 벧엘을 대신해서 수치스런 용도로 거명되었는데(호4:15; 10:5) 벧엘은 ‘하나님의 집’을 뜻하고 벧아웬은 ‘죄 혹은 우상의 집’을 뜻한다.
2009-07-05 00:54:39 | 관리자
한 곳은 갈릴리 바다의 남동쪽 40킬로미터에 있었고 다른 곳은 갈릴리의 막달라 근방에 있었는데 여기에는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요새로 된 굴들이 있었다(호10:14).
2009-07-05 00:54:09 | 관리자
므낫세에게 주어진 도시.
이곳은 요르단의 서부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예스르엘 골짜기의 끝부분에 위치했으며 이스라엘은 한 번도 이곳을 정복하지 못했다(수17:11, 16; 삿1:27). 사울 왕의 죽은 몸이 이곳의 성벽에 묶여 있었다(삼상31:10, 12; 삼하21:12; 왕상4:12).
2009-07-05 00:53:42 | 관리자
헤브론 근처에 있던 유다의 산간 도시(수15:58).
르호보암은 이곳을 강화하였고(대하11:7) 느헤미야 시대에 이곳의 치리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일을 도왔다
(느3:16).
2009-07-05 00:53:05 | 관리자
I. 제사장들에게 준 유다의 도시(수21:16; 삼상6:15; 대상6:59).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2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단과 블레셋 족속의 경계 근처에 있었다(수15:10; 삼상6:12). 아마도 수19:41의 이르세메스와 이곳은 같은 곳일 것이다. 이곳은 유다와 이스라엘이 싸워서 아마샤가 패한 것으로 유명하며(왕하14:12-14) 또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하나님의 궤가 돌아온 장소로, 그 궤를 더럽게 한 사람들이 벌을 받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삼상6:1-21). 분단 왕국 지도 참조(31).
II. 이집트의 유명한 도시(렘43:13).
2009-07-05 00:52:34 | 관리자
재판관 입다의 시절에 있었던 암몬 자손의 마을(삿11:33).
이곳은 헤스본에서 북동쪽으로 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두로의 시장에 좋은 밀을 제공하였다(겔27:17).
2009-07-05 00:51:03 | 관리자
아이와 기브아 근처의 도시. 이곳은 믹마스 북쪽에 있었다(삼상14:2; 사10:28).
2009-07-05 00:50:39 | 관리자
사울의 작은딸.
그녀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나 사울은 마지못해서 다윗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의도로 그녀를 그에게 내주었다(삼상14:49; 18:20-29). 그녀는 자기 아버지가 보낸 암살자들의 손에서 자기 남편을 구하고 그가 탈출할 수 있는 계략을 베풀었다(삼상19:14-15). 그 후에 그녀의 아버지 사울은 그녀를 발디에게 주었으나(삼상25:44) 다윗은 몇 년 뒤에 그녀를 되찾았다(삼하3:12-21).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올 때에 그녀는 그가 매우 기쁘게 뛰노는 것을 보고 못마땅하게 여겼으며 그 결과 왕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사랑을 베풀지 않았다(삼하6:16-23). 신앙심 측면에서 자기 눈에 멋지지 못하게 열심을 보인 것을 미워한 그녀의 감정은 자기 남편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강했고 그 결과 그녀는 화를 자초하여 자식 없이 죽었다.
2009-07-05 00:50:00 | 관리자
천사장 참조.
2009-07-05 00:49:14 | 관리자
I. 아합이 여호사밧과 함께 시리아 사람들을 치려 할 때에 여호사밧의 요구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자문을 구한 대언자. 그는 충성스럽게 그리고 두려움 없이 아합에게 대언하였고 그 결과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후에 그는 감옥에서 나왔고 아합은 그의 예언대로 싸움터에서 죽었다(왕상22:8-38). 이 일에서 아합이 드러낸 어리석음은 말씀의 빛을 거부하는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 확연히 보여 준다.
II. 유다의 통치자.
그는 유다의 백성을 개혁하고 그들을 깨우치려는 여호사밧의 노력을 인정하고 동의하였다(대하17:7-9).
2009-07-05 00:48:23 | 관리자
여호야김의 궁전에 있었던 젊은 통치자. 그는 왕의 조언자들에게 예레미야의 엄중한 경고를 전달하였다(렘36:11-13).
2009-07-05 00:47:51 | 관리자
I. 유다의 서쪽에 있던 모레사 출신의 대언자.
그는 열두 명의 소 대언자 중 일곱 번째 인물이며 유다 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50년 동안 대언하였다. 그는 대언자 이사야와 동시대 사람이었으며 그래서 그의 표현과 비슷한 표현이 그의 글에서도 발견된다(사2:2와 미4:1, 사41:15와 미4:13 등 비교). 그가 담대하게 주님을 섬긴 것은 그로부터 1세기 후에 나타난 대언자 예레미야의 방패가 되었다(렘26:18-19; 미3:12). 그는 고상하게 또 격렬하게 글을 기록하였으며 그의 글에는 여러 번의 장면 전환도 나온다. 그의 대언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과 심판,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멸망, 유대인들이 포로 생활에서 귀환하는 것, 그들의 원수들이 심판 받는 것 등과 관련이 있다. 그는 메시아의 오심에 대하여 “그의 나아감은 옛적부터 있었으며 영원부터 있었다.”고 말하면서 그분의 오심이야말로 그가 묘사하는 영광스런 장래의 모든 소망의 기초임을 보여 주었다. 그는 또한 예수님이 유다의 베들레헴에서 한 여인의 아들로 태어날 것을 정확히 대언하였고(미5:2-3) 유대인들은 그것이 메시아 출생에 관한 것으로 이해했다(마2:6; 요7:41-42).
II. 재판관 시대에 살던 에브라임 사람.
그는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의 재판관 시대에 자기 어머니에게서 1,100세겔을 훔쳤다가 그것을 되돌려 주었으며 자기 어머니의 동의를 받아 그 돈으로 개인의 성스러운 장소를 만들고 주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형상을 세우며 또 복을 받기 위해 레위 사람을 자신의 제사장으로 고용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우상숭배를 멸시하시고 단 족속의 군대를 보내어 그의 제사장 요나단과 그의 우상숭배 기물을 강탈하게 하였다(삿17:13).
2009-07-05 00:47:23 | 관리자
요나단의 아들. 그는 므립바알이라고도 불렸다(대상8:34).
므비보셋은 그의 아버지가 길보아 전투에서 죽을 때에 아주 어렸으며(삼하4:4) 이 놀라운 소식을 들은 그의 유모는 아이를 데리고 급히 떠나다가 아이를 떨어뜨려 그는 평생 동안 자리를 절었다. 다윗은 평화롭게 왕국을 다스릴 때에 자기와 요나단 사이의 우정을 생각하고 사울의 집에서 남은 자들을 찾아 친절을 베풀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 므비보셋에게 그의 할아버지 사울의 재산을 주었으나 후에 그는 그의 종 시바의 속임수로 인해 그 중 일부를 잃게 되었다. 그는 압살롬의 반역 때에 다윗을 생각하며 충성스럽게 지냈으나 시바의 모함과 다윗의 성급한 결정으로 인해 재산의 일부를 잃게 되었다(삼하9:1-13; 16:1-4; 19:24-30). 그 뒤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의 원수를 갚아 주기 위해 사울 집에 속한 사람들을 내어줄 때에 그를 불쌍히 여겨 살려 주었고(삼하21:1-14) 이로 인해 사울의 또 다른 아들인 므비보셋이 죽게 되었다(삼하21:8).
2009-07-05 00:46:44 | 관리자
I. 홍해와 시내 산 사이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진을 친 곳.
여기서 그들은 주님을 향해 불평하였는데 이때에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바위에서 샘이 나오게 하였다(출17:1-7). 이곳은 시험이라는 뜻을 가진 맛사라고도 불렸는데 그 까닭은 그들이 거기서 하나님을 시험하였기 때문이다(신33:8; 히3:8).
II. 가데스 근처의 신 광야에 있던 또 다른 기적의 샘(민20:13-14).
이곳은 모세와 아론이 죄를 범한 곳이며 이 죄로 인하여 그들은 요르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이곳은 므리바의 물이라 불리기도 하며(신33:8; 시81:7; 106:32) 므리바가데스라 불리기도 한다(민27:14; 신32:51; 겔47:19).
2009-07-05 00:46:02 | 관리자
고대 바빌론 사람들의 우상.
이것은 화성의 신으로 추정된다(렘50:2). 바빌론 왕들의 이름에도 이 말이 첨가되어 에빌므로닥, 므로닥발라단 등의 이름이 생겼는데(왕하25:27; 사39:1) 후자는 브로닥발라단이라고도 불린다(왕하20:12).
2009-07-05 00:45:24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마리아 : 천지의 여왕
카톨릭 주의는 마리아가 죽을 때 주님께서 그녀를 하늘로 끌어올리시고 그녀에게 ‘천지의 모후’ 혹은 ‘만물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주셨다고 주장합니다.
마침내 티 없이 깨끗하며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았던 동정녀(마리아)는 지상 생활을 마친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에로 부르심을 받아 주님께로부터 천지의 모후(Queen over all things)로 추대받았다[제1편 p. 366 #966].
여기서 다시 한 번 카톨릭 교리와 하나님의 말씀은 정면 충돌을 일으킵니다. 성경 말씀은 전혀 그런 교리를 가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가르침을 책망합니다. 예레미야서 44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배도하여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으로 알려진 거짓 여신에게 예배하는 행습을 보게 되며 이것이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불러일으켰음을 알게 됩니다.
너는 그들이 유다의 도시들과 예루살렘의 거리들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보지 못하느냐? 자녀들은 나무를 모으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여인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과자를 만들어 하늘의 여왕에게 바치고 다른 신들에게 음료 헌물을 부음으로 나의 분노를 일으키느니라(렘7:17-18).
어째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의 여왕이라 불리는 거짓 여신에게 예배했을까요? 사실 그것은 그들에게 전해 내려온 사람들의 전통이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우리 입에서 나간 것을 반드시 이행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행하던 대로 곧 우리와 우리 조상들과 우리 왕들과 우리 통치자들이 유다의 도시들과 예루살렘의 거리들에서 행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여왕에게 음료 헌물을 부으리라. 이는 그때에는 우리에게 양식이 풍부하고 넉넉하여 아무 재난도 보지 아니하였으나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여왕에게 음료 헌물 붓는 일을 그만 둔 뒤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으로 진멸을 당하였음이니라, 하며 또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여왕에게 음료 헌물을 부을 때에 어찌 우리 남자들의 허락도 없이 그 여왕에게 과자를 만들어 경배하고 음료 헌물을 부었으리요? 하니라(렘 44:17-19).
카톨릭 주의는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이교도들의 그 동일한 종교 의식을 물려받은 것이 아닙니까?
이방 종교
본서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호기심 있는 카톨릭 교인들은 ‘하늘의 여왕’을 섬기는 많은 거짓 종교들을 연구함으로써 카톨릭 주의와 그것들 간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이 사실에 매혹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 여신들을 지칭하는 데 그토록 자주 사용되었던 이름을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주셨다고 말하는 카톨릭 주의의 주장은 참으로 놀랄 만한 것입니다.
누가 높임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카톨릭 주의는 마리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높입니다.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 하늘들 위로 높임을 받으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보다 위에 있기를 원하나이다(시57:5).
주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어다(시18:46).
주여, 주의 능력으로 인하여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이와 같이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양하리이다(시21:13).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인 줄을 알지어다. 내가 이교도들 가운데서 높임을 받고 땅에서 높임을 받으리로다(시46:10).
땅의 방패들이 하나님께 속하였으므로 백성의 통치자들이 함께 모였으니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라. 그분께서 크게 높임을 받으시리로다(시47:9).
주는 높임을 받으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높은 곳에 거하시며 공의와 의로 시온을 충만하게 하시기 때문이라(사33:5).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라는 이름은 943회 나오며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533회 그리고 주 예수라는 이름은 115회 나옵니다.
신약성경의 처음 네 권의 책은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기록하고 있고 신약의 나머지 책들도 그분을 주요 테마로 삼고 있습니다. 반면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저 손에 꼽을 정도로 등장하며 결코 어떤 것의 여왕으로 언급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들로 하여금 다 예수라는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빌2:9-10).
그들이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께서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시도다, 하더라(계5:12).
누가 모든 영광을 받아야만 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광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만일 누가 말하려거든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섬기려거든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것은 모든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분께 찬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벧전4: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들의 용서를 주시려고 자신의 오른손으로 그분(예수님)을 높이사 통치자와 구원자가 되게 하셨느니라(행5:31).
무슨 일이 반복되는지 아시겠지요?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려고 힘쓰는 반면 카톨릭 주의는 예수님을 끌어내리고 마리아를 높이려고 애씁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시고 십자가에서 끔찍한 고통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찌해서 그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한 여자에 의해 대치되고 무시당하는 것입니까?
결 론
카톨릭 주의는 주님께서 마리아를 ‘천지의 여왕’(Queen of all things)의 반열로 드높이셨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격노케 한다고 선언하십니다. 당신은 어느 쪽을 신뢰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의 전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들로 하여금 다 예수라는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또 모든 혀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2009-07-03 14:08:55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마리아 : 기도의 응답자
카톨릭 교리는 신자들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기도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청함으로써 우리가 불쌍한 죄인임을 깨달으며 또한 지극히 거룩하신 분 즉 ‘자비의 어머니’께 호소한다. 마리아는 우리가 죽을 때도 함께 계실 것이며 우리가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시간에 우리의 어머니로서 우리를 맞아들여 천국에 계신 당신의 아드님 예수께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비는 것이다[제4편 p.912-913 #2677].
여러분은 이러한 주장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그저 사람들의 전통에서 나온 것인지 반드시 아셔야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주장 하나 하나를 면밀하게 검토할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기를 청원하는 것 : 성경적 근거가 없는 사람들의 전통
∙자비의 어머니 : 또 하나의 사람들의 전통
∙마리아를 지극히 거룩하신 분으로 높이는 것 : 사람의 전통. 우리는 이미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심을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가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시간에 마리아가 우리를 맞아들임 :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사람들의 전통
∙마리아가 우리를 예수님께 인도함 :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의 전통
카톨릭 신자 여러분, 부디 눈을 뜨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 중 어느 하나도 결코 말씀하신 바가 없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초기 카톨릭 지도자들의 머리 속에서 고안된 전통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실 복된 동정녀는 오랜 옛적부터 ‘천주(하나님)의 모친’(Mother of God)이란 칭호로 공경받고 신자들은 온갖 위험과 아쉬움 중에 그의 보호와 도움을 청한다[제1편 p.368 #971].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마리아에게 기도할 수 있다는 가르침은 과거의 카톨릭 지도자들이 조작해 내어 오늘날의 카톨릭 교인들에게까지 전해 내려온 또 하나의 사람들의 전통일 뿐입니다. 예수님이나 성경의 어느 누구도 결코 마리아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기도해야 할까요?
성경은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기도하도록 명령함으로써 카톨릭 교리 문답서를 즉각 반박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환난이 닥쳐올 때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마리아가 아닙니다.
오 주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소서. 나의 고난의 날에 내가 주를 부르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시86:6-7).
그가 나를 부르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고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시91:15).
참으로 수백 구절의 성경 말씀이 우리의 인생 길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께 도피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단 한 구절도 마리아에게 기도하라고 우리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의로운 자의 구원은 주께로부터 오나니 그분은 고난의 때에 그들의 힘이 되시리로다(시37:39).
오 주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니 주는 아침마다 그들의 팔이 되시오며 고난의 때에 또한 우리의 구원이 되시옵소서(사33:2).
가난한 자를 배려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주께서 고난의 때에 그를 건지시리로다(시41:1).
여러분은 여러분의 근심 걱정, 무거운 짐을 마리아에게 의탁하시겠습니까?
네 짐을 주께 던져서 맡기라. 그분께서 항상 너를 붙드시고 의로운 자의 흔들리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55:22).
다윗 왕은 온종일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기도하고 크게 부르짖으리니 그분께서 내 음성을 들으시리로다(시55:17).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께서는 자신을 부르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자신을 부르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계시는도다(시145:18).
신약성경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누구에게 기도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카톨릭 주의는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다시금 여러분은 어째서 카톨릭 교회의 교리 문답서가 예수님을 격하시키고 마리아를 격상시키는지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카톨릭 교회는 신자들이 무엇을 구하기 위해 예수님께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초대장을 쓰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마11:28).
성경이 틀렸거나 아니면 여러분이 필요로 할 때 여러분을 기꺼이 만나 줄 준비가 되어 있는 분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카톨릭 주의가 막고 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결 론
이제 당신은 또 하나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카톨릭 전통을 따라 마리아에게 기도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거룩한 성경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겠습니까?
나로 말하건대 나는 하나님을 부르리니 주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시55:16).
2009-07-03 14:05:40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마리아 : 또 다른 중재자
많은 신실한 카톨릭 교인들은 마리아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신자들을 위해서 중재하는 중보자라고 믿으면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열렬히 기도합니다.
그때문에 교회에서는 복된 동정녀를 변호자, 보조자, 협조자, 중재자라는 명칭으로 부른다(교회헌장 62항)[제1편 p.367-368 #969].
위의 헌장에는 마리아에게 부여된 네 개의 특별한 칭호가 있습니다. 과연 그녀는 그런 칭호들을 모두 성취했을까요? 하나씩 살펴보기로 합시다.
변호자
마리아가 하나님 앞에서 신자들의 변호자라는 믿음은 성경이 지지하지 않는 전통 즉 인간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전통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성경은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의 유일한 변호자라고 선언함으로써 카톨릭 교리를 일축해 버립니다.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범죄하여도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계시니 곧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2:1).
보조자
다신 한번 성경은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 홀로 초자연적인 협조자라고 선언함으로써 카톨릭 주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요, 주는 내 혼을 붙들어 주는 자들과 함께하시는 이시로다(시54:4).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분이시니 사람이 내게 무엇을 행하든지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하노라(히13:6).
의로운 자는 고난이 많을지라도 주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그를 건지시는도다(시34:19).
협조자
여기 또 하나의 사람들의 전통이 있습니다. 성경은 마리아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쌓아 둔 은혜를 나누어줄 수 있는 협조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중재자
성경은 결코 마리아를 신자와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로 끌어올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예수님을 유일한 중재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기 때문이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딤전2:5).
이런 까닭에 그분께서는 새 상속 언약의 중재자이시니 이것은 죽음을 통하여 첫 상속 언약 아래 있던 범죄들을 대속하시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 하여금 영원한 상속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9:15).
참된 중재자
중보자나 변호자의 역할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재하는 것입니다. 카톨릭 주의의 전통은 이 지위를 마리아에게 부여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중재자로 드높이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는 손으로 만든 거룩한 처소들 곧 참된 것의 모형들 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늘 그 자체 안으로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눈앞에 나타나시기 때문이라(히9:24).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나니 그 까닭은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이라(히7:25).
성경은 참된 중재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더없이 분명합니다.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시요, 참으로 다시 일어나신 분도 그리스도시니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느니라(롬8:34).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니라(롬8:27).
성경은 아버지께 다다르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아가야 한다고 밝히 말씀합니다.
이는 그분을 통하여 우리 둘이 한 성령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게 되었음이라(엡2:18).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작정하신 영원한 목적에 따른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담대함을 가지고 확신 있게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엡3:11-12).
사실 마리아는 성경 어디서도 중재자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반복되는 예수님의 위상 격하
성경은 절대적으로 명확합니다. 예수님께서만 유일한 변호자시요, 돕는 분이시요, 중보자이시며 중재자이십니다. 그런데도 카톨릭 교회의 전통은 이러한 네 개의 칭호를 그분으로부터 강탈해서 마리아의 무릎에 갖다 바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째서 그들은 매번 예수님을 끌어내리려 하는 걸까요? 어째서 카톨릭 주의는 성경이 예수님께 부여한 모든 지위를 그분으로부터 빼앗아서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어떤 것에게 바치는 것일까요? 과연 마리아가 그렇게 고귀하다면 어째서 사도 바울 같은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이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을까요?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음이라(고전2:2).
결 론
이제 여러분은 성경과 카톨릭 전통의 입장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영광을 마리아에게 돌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전통을 거부하고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께 돌리시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 더욱 뛰어난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또한 그분께서 더 나은 약속들 위에 세우신 더 나은 언약의 중재자이시기 때문이라(히8:6).
2009-07-03 14:02:17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마리아 : 성덕의 근원
교리 문답서는 동정녀 마리아가 성덕 즉 거룩함의 본보기요 근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성덕(holiness)의 모범을 배우며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마리아 안에서 성덕의 본보기와 근원을 알아보고[제1편 p.706 #2030].
우리가 또 하나의 모순점에 봉착했다고 해도 이제 독자께서는 이제 과히 놀라지 않으실 것입니다. 앞 장에서 논의한 대로 성경은 마리아 역시 구원자를 필요로 하는 한 사람의 죄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녀가 하나님의 아드님을 낳는 축복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그녀를 거룩함의 근원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마리아는 스스로에 대해 언급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 이는 그분께서 자신의 여종의 낮은 처지를 돌아보셨음이라(눅1:47-48).
성경이 말씀하는 거룩함(성덕)의 근원
성경은 반복적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거룩함의 모범이 되심을 단언합니다.
오 주여, 누가 주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이는 오직 주만 거룩하시기 때문이니이다. 주의 심판들이 드러났사오매 모든 민족들이 나아와 주 앞에 경배하리이다, 하더라(계15:4).
너희는 주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발받침 앞에서 경배할지니 이는 그분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이로다(시99:5).
그들로 하여금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양하게 하소서. 이는 그 이름이 거룩하기 때문이니이다(시99:3).
너희는 주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거룩한 산에서 경배할지니 이는 주 우리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이로다(시99:9).
그들이 서로 크게 외쳐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사6:3).
성경에서 거룩 또는 거룩함이라는 단어는 600번 이상 사용되었지만 그것이 마리아를 의미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거룩한 것처럼 우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리아가 거룩한 것처럼 우리도 거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같이 너희도 온갖 행실에서 거룩할지니 이는 기록된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음이니라(벧전1:15-16).
이는 내가 주 너희 하나님이기 때문이라. 그런즉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너희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레11:44).
로마 카톨릭 교회에 속해 있는 여러분, 여기에서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이 따라야 할 거룩함의 본보기와 근원으로서 우주를 다스리시는 영원하신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라고 반복적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카톨릭 주의는 “아니야, 하나님을 바라보지 말고 여기 덧없는 인간에 불과한 한 여인을 의지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맞섭니다.
이것은 지독한 신성 모독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 카톨릭 교회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연히 계셔야 할 권좌에서 그분을 몰아내고는 그 자리에 마리아를 앉히려고 할까요?
왜 카톨릭 주의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 대신에 마리아를 거룩함의 모범으로 삼기를 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게다가 그분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우리를 상기시켜 주십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곧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리니 어찌 내 이름을 더럽히리요?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8:11).
결 론
누가 당신의 거룩함의 본보기가 되어야 할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죄 있는 한 여인입니까? 카톨릭 주의는 여러분이 그 여자를 바라볼 것을 요구합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거룩함의 모범이 될 자격이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이는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음이요, 또 모든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음이니이다, 하더라(계4:11).
나는 주 곧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사43:15).
2009-07-03 13:59:00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