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5:8; 15:7; 16:1-17에 나오는 병(甁)은 그리스어 ‘피알레’에서 나온 말로 위가 열리고 목이 길며 좁아서 액체를 한 곳에 집중해서 부을 수 있는 그릇을 뜻한다. 그러나 정확한 형태가 묘사되지 않았으므로 어떤 이들은 이것을 호리병, 플라스크 형태 혹은 대접으로 추정한다.
2009-07-05 01:05:06 | 관리자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가리키며 눅9:31에 1회 사용되었다.
2009-07-05 01:04:40 | 관리자
히브리 사람들은 해와 달을 제외한 모든 천체를 별이라 부른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권능과 전지하심에 대해 말하면서 “그분께서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그 이름대로 부르신다.”고 말한다(시147:4). 이는 곧 모든 군대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군대의 모든 별의 수를 아시고 그들의 이름을 아신다는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는 동이 트기 전에 밝게 빛나는 새벽별 혹은 샛별이라고 불린다(계22:16). 크게 번창하는 것의 상징으로 성경은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를 예로 든다(창15:5; 22:17; 26:4; 출32:13). 불명예와 재난의 시대에는 하늘의 별이 빛을 발하는 것을 멈추고 또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사라진다. 유대와 동방의 청명한 밤에 뜨는 별들은 참으로 큰 영광과 아름다움과 놀라움을 주며 그것들의 순환 회로는 경이 그 자체이다. 그래서 이교도들은 별을 신으로 여기고 경배하였으나 성경은 이것을 엄격히 금한다(렘10:2). 우상숭배 참조.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나타나실 때에 유대인들과 다른 이교도들도 메시아 혹은 그와 비슷한 어떤 것을 바라고 있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온 세상에 퍼져나가서 메시아 사상을 파급시켰기 때문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이 구원자 메시아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며 하나님께서 직접 간섭하셨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쪽의 지혜자들은 유대에서 신성한 인물이 태어남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기적적으로 하늘의 별에 의해 그분이 계신 곳까지 인도를 받았다(마2:9).
2009-07-05 01:04:10 | 관리자
그리스도의 삶에서 나타난 이 놀라운 일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그리 멀지 않은 헤르몬 산이나 다른 산에서 일어났다(마17:1-9; 벧후1:16-18). 이때에 주님의 옷과 형체가 완전히 영광 중에 있었고 율법과 대언자를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가 복음을 대표하는 예수님께 경의를 표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속죄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신약과 구약의 조화를 증명하였고 이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와서 그분에게 명예와 권위를 부여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메시아 되심과 그분의 신성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 준다.
2009-07-05 01:03:41 | 관리자
다른 사람의 사정을 변호하는 사람.
실제로 기술적으로는 유대인들이 로마 사람들의 지배를 받기까지 이런 직책이 없었다. 이 단어는 우리의 중보자 예수님에게 적용되며(요일2:1; 비교 롬8:34; 히7:25) 우리의 교사요 위로자이신 성령님에게도 적용된다(요14:16; 15:26).
2009-07-05 01:03:15 | 관리자
불순물로 산화철을 함유한 석영의 일종.
이것은 산화철의 종류에 따라 녹색, 적색, 갈색 또는 황색을 띠며 모두 거의 불투명하다. 또한 흔히 여러 색이 섞여서 얼룩점을 나타내고 줄무늬 모양을 가진 것도 있다(출28:20; 계4:3; 21:11).
2009-07-05 01:02:50 | 관리자
벽돌은 주로 진흙으로 만들어 해 아래에서 말려 단단하게 했으며(창11:3) 어떤 경우에는 벽돌 가마를 사용하기도 했다(삼하12:31; 나3:14). 바벨탑은 벽돌로 역청을 사용하여 제작되었다. 벽돌은 대개 가로 세로 30센티미터 정도의 크기를 가졌으며 바빌론과 이집트에서 발견되는 벽돌에는 왕이나 제사장의 스탬프가 찍혀 있다. 벽돌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것은 이집트에 살던 히브리 사람들이 벽돌 만드는 일로 이집트 왕에게 학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집트의 유적지를 살펴보면 그들이 당한 모든 일 즉 벽돌을 나르고 굽고 진흙을 이기고 말린 일이 그림으로 새겨져서 잘 나타나 있는데 대부분 이 일은 외국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진흙에 짚을 섞으면 단단하게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9-07-05 01:02:24 | 관리자
I. 갈릴리의 도시.
신약시대의 땅 지도 참조(39). 이곳은 가버나움에서 조금 북쪽으로 게네사렛 호수의 서부 기슭에 있었으며 사도 빌립, 안드레, 베드로의 고향이며 주님도 여기를 자주 방문하셨다(마11:21; 막6:45; 8:22).
II. 요르단 동부의 도시.
이 근처에서 주 예수님께서는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베푸셨다(눅9:10; 비교 마14:13-22; 막6:31-45). 이 지역은 사분영주 빌립이 확장해서 아우구스투스의 딸 줄리아를 기념하기 위해 줄리아스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곳과 위의 벳새다가 같은 곳이라고 믿는 견해도 많다.
2009-07-05 01:01:56 | 관리자
베다니 근처의 마을. 이곳은 올리브 산의 동쪽 기슭에 위치하였다(마21:1; 막11:1; 눅19:29).
2009-07-05 01:01:22 | 관리자
나보니두스의 아들이며 바빌론 왕국의 마지막 왕(단5:1-2; 7:1; 8:1).
다니엘서 5장은 벨사살이 관능적인 쾌락을 추구했음을 보여 준다. 그는 자신의 처첩들과 귀족들과 더불어 술잔치를 하면서 자기의 할아버지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가져온 거룩한 그릇들을 가져다가 술을 마셨고 이때에 손이 나타나서 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을 기록하였다(단5:25). 성경은 이때에 벨사살의 안색이 변하고 허리뼈 마디가 풀어지며 무릎 뼈가 서로 부딪혔다고 기록한다(단5:6). 바로 그 날 밤에 메대 사람 다리오의 군대가 바빌론을 취하고 그를 죽였다.
2009-07-05 01:00:54 | 관리자
유대를 다스린 로마의 총독.
그는 원래 노예였으나 카이사르 클라우디우스가 석방시키고 승진시켰으므로 클라우디우스라는 이름을 지녔다. 그는 잔인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젊은 아그립바의 누이 드루실라를 유혹하여 그녀와 결혼하였다. 총대장 루시아가 바울을 가이사랴로 보내었으므로 벨릭스는 그의 말을 듣고 그가 무죄임을 확신하였지만 그럼에도 바울의 친지들이 뇌물을 주고 그를 데려가기를 바라면서 풀어 주지 않았다. 바울은 그와 그의 아내에게 하나님의 공의와 정숙함과 최후의 심판 등에 대해 담대하게 말했지만 벨릭스는 떨면서도 그를 다시 가두고 자기 속사람의 확신을 억눌렀다. 그로부터 2년 뒤인 주후 60년에 그는 로마로 돌아가면서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려고 바울을 풀어 주지 않았다. 그 뒤 그는 자신의 실정(失政)에 대해 재판을 받고 자신의 형제 팔라의 도움으로 사형을 면하게 되었다(행23:26; 24:1-27).
2009-07-05 01:00:06 | 관리자
이것은 대개 도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따라서 벨리알의 아들이라는 말은 사악하고 가치가 없는 사람 즉 반역하는 자, 말을 듣지 않는 자를 가리킨다(삿19:22; 삼상2:12). 나중에 이 말은 사악한 주(主) 즉 사탄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었다
(고후6:15).
2009-07-05 00:59:27 | 관리자
에벨의 아들. 그는 셈의 사대 손이며 그 당시에 땅(지구)이 나뉘었으므로 벨렉이라는 이름을 받았다(창10:25; 11:16).
2009-07-05 00:58:45 | 관리자
갈대아에서 다니엘에게 주어진 이름(단1:7; 4:8).
2009-07-05 00:58:16 | 관리자
바빌론 사람들의 주요 우상.
2009-07-05 00:57:49 | 관리자
베냐민의 북서부 귀퉁이에 있던 두 인접 도시.
이것들은 보통 ‘위 벧호론’과 ‘아래 벧호론’으로 구분하며 이 둘 사이에는 조그만 골짜기가 있었다. 위 벧호론은 예루살렘으로부터 20킬로미터 떨어진, 돌 많은 산등성이에 있었다. 이 도시는 해안으로 이어지는 길에 있었으며 여호수아는 이 길을 따라 내려가서 아모리 족속을 쫓아냈고 바울은 밤에 안디바드리로 가기 위해 이 길을 지났다(수10:1-11; 행23:31-32).
2009-07-05 00:57:24 | 관리자
유다의 경계에 있던 베냐민의 마을(수15:6; 18:19, 21).
2009-07-05 00:56:54 | 관리자
드고아와 베들레헴 사이의 마을(느3:14; 렘6:1).
2009-07-05 00:56:24 | 관리자
모압 족속에게서 빼앗은 르우벤의 도시(민33:49; 수12:3; 13:20). 포로 생활 이후에 아모리 족속이 그곳을 다시 빼앗았다
(겔25:9).
2009-07-05 00:55:56 | 관리자
아이 서쪽의 도시.
이곳은 에브라임과 베냐민 지파의 경계에 있었으며(창12:8; 28:10-22) 야곱은 에서를 피해 도망가다가 여기서 꿈을 꾸고 루스라는 이름 대신 이곳을 벧엘이라 불렀고(삿1:23)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뒤 다시 그곳에 장막을 쳤다(창35:1-15). 여호수아가 이곳을 점령해서 베냐민 지파에게 주었으나(수12:9; 18:22) 에브라임 사람들이 여기서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냈다(삿1:22-26). 여기에 언약궤와(또 성막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되며(삿20:27; 삼상10:3) 사무엘은 여기서 순회 재판을 열었다(삼상7:16). 그러나 솔로몬 이후에 이곳은 심각한 우상숭배 본거지가 되었다. 여로보암은 이곳이 예전에 거룩한 곳이었으므로 이곳에 금송아지 두 마리 중 하나를 놓았고(왕상12:29) 그래서 대언자들은 벧엘을 대적하는 주님의 말씀을 선포했으며(왕상13:1-2; 렘48:13; 암3:14; 7:10) 요시야 때에 이런 대언의 말씀이 성취되었다(왕하23:13). 또 그 후에 벧엘의 황폐로 인해 다른 말씀들도 성취되었으며 그 결과 거기에는 폐허만 남게 되었다.
2009-07-05 00:55:10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