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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약12235개
  I. 레바논의 도시. 이곳은 아셀 지파에게 배정되었으나(수13:4; 19:30) 정복되지 않았다(삿1:31). II. 예스르엘 골짜기에 있던 잇사갈 지파의 도시. 이곳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으로 유명했다(삼상4:1; 29:1). 분단 왕국 지도 참조(31). III. 갈릴리 바다에서 동쪽으로 8킬로미터 떨어진 도시. 이스라엘이 벤하닷을 패주시킬 때 이곳의 성벽이 무너져서 27,000명의 군사들이 그 밑에 깔렸다(왕상20:26-34).    
2009-06-14 00:27:55 | 관리자
  영어의 Father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종종 조상, 창시자, 기원자 등을 의미한다(창4:20-21; 요8:56; 롬4:16). 고대 동방에서는 상담자 혹은 종교의 지도자를 아버지라 불렀으며 그런 차원에서 요셉은 파라오의 아버지였다(창45:8). 하나님은 사람들의 창조자로서 아버지이시다(신32:6; 사63:16; 64:8; 눅3:38). 그러나 우리는 죄들로 인해 자녀의 권리를 버렸으며 따라서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만 그분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요20:17; 롬8:15-17). 아바 참조. 족장 시대에 아버지는 자기 집의 주인이요 재판관이었으며 가족 문제에 관한 한 무제한적인 권위를 행사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무시하거나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큰 죄악이었으며 율법 아래에서는 자녀들이 부모를 저주하면 죽어야 했다(출21:15, 17; 레20:9). 이 경우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공적 재판소로 데리고 가야 했다(신21:18-21). 어머니, 가정 참조. 고대 이교도들은 자기들에게 계략을 베푸는 자를 아버지라 불렀으며 이런 풍습이 유대인들에게로 넘어와 그들도 미가와 같이 제사장 계급의 사람을 가리켜 아버지라 불렀다(삿17:1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땅에 있는 자를 너희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한 분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니라.”(마23:9)고 하시며 이 같은 관행을 책망하셨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지금도 이 같은 일을 행하며 그래서 사제와 교황을 Father 즉 아버지(신부)로 부른다. 교황, 제사장 참조. 아버지 없는 자(Fatherless) 구약성경에서 아버지 없는 자들은 과부와 나그네와 함께 보호받을 대상으로 나온다. 성경의 하나님은 이처럼 사회의 보호와 사랑이 필요한 이들에게 긍휼 베풀 것을 강조하며(출22:22-24) 심지어 십일조의 일부로 그들을 도울 것을 명하셨다(신14:28-29; 26:12-14). 또 그들을 위해 수확할 때 열매와 곡식을 남기라고 명령하셨다(신24:19-22). 대언자들 역시 하나님이 그들의 보호자이심을 선포했다(사1:17; 렘7:6; 호14:3; 슥7:10). 그러므로 그들을 압제하는 것은 잔인함과 불공평의 전형적인 예였다(욥6:27; 22:9; 시94:6; 사1:23; 말3:5). 신약성경에서 야고보 역시 구약시대 대언자들의 심령으로 교회가 아버지 없는 자들과 과부들을 도와야 한다고 명령한다(약1:27). 과부 참조.    
2009-06-14 00:27:16 | 관리자
  사해와 요르단 강 하부의 동쪽에 위치한 산지. 이곳은 여리고 맞은편에 위치하고 모압과 르우벤 지파의 영토 내에 있다. 이 산지가 어디까지를 포함하고 있는지 알기는 어려우며 느보, 비스가, 브올 산이 아바림 산지에 있었다(민23:28; 27:12; 33:47-48; 신32:49; 34:1). 이예아바림(민21:11)은 이 지역의 남부 지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2009-06-14 00:25:22 | 관리자
  섬으로 번역된 히브리말은 물 혹은 바다나 강 등과 대비되는 ‘사람이 거하는 마른 땅’을 뜻한다(사42:15; 사50:2 비교). 그러므로 이것은 물 근처의 땅, 해변, 섬 등을 가리키며 따라서 아스돗(사20:6), 두로(사23:2, 6), 그리스(겔27:7) 혹은 ‘엘리사의 섬들’의 경우에는 해안을 뜻한다. 반면에 갑돌 혹은 크레테의 경우에는 대륙과 대비되어 섬을 뜻한다(렘47:4; 2:10; 참조 시97:1; 에10:1). 한편 섬들이라고 복수로 표현될 때에 이 말은 바다 건너의 먼 지역 특히 서쪽의 섬들과 해양 지방 등을 뜻했다(시72:10; 사24:15; 40:15; 42:4, 10, 12).    
2009-06-14 00:24:02 | 관리자
  선하고 칭찬받을 만하며 도덕적으로 훌륭한 것. 성경은 종종 하나님의 선하심을 말하는데(출33:19; 롬2:4) 그분의 선하심은 의, 거룩함, 공의, 인자함, 은혜, 긍휼, 자비, 사랑을 포함한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마19:17)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은 부자 청년이 선하다고 한 존재 즉 자신이 하나님임을 보여 주셨다. 끝으로 선함은 성령님의 열매 중 하나이며 그리스도인의 특성으로 나타난다(갈5:22; 마5:44-45).    
2009-06-14 00:23:35 | 관리자
  공중 앞에서 말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사61:1; 행8:4; 고전1:18, 21; 2:4; 15:14; 고후10:14; 엡3:8; 딤후4:17; 딛1:3). 이것은 널리 알림을 뜻하고 주로 복음이나 말씀과 관련하여 쓰였다. 구약의 초기부터 공중 앞에서 진리의 교훈을 주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에녹은 대언하였고(유14-15) 노아는 의의 선포자가 되었다(벧후2:5). 모세와 재판관과 대언자들의 이야기에는 공중 앞에서 종교적인 연설을 한 것이 많이 나온다. 이런 것들은 어느 정도 유대인들의 의식과도 관련이 있었다(느8). 성전에서 노래한 시편들도 백성에게 주는 교훈을 담고 있었다. 포로 생활 이후에 회당들이 세워졌으며 거기에서는 일주일 내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강론하는 일이 있었다. 한편 복음 세대에서는 그리스도의 대사가 된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규례가 되었고 바로 이 일을 통하여 세상이 변화되었다(막16:15; 고전1:21; 딤후2:2; 4:2).    
2009-06-14 00:23:10 | 관리자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선택과 사람의 자유 의지를 보여 준다. 이 둘은 구원 교리를 이루는 데 필요한 두 개의 짝으로 선택은 하나님 편에서의 일이고 자유 의지는 사람 편에서의 일이다. 선택의 교리가 왜곡되면 운명론 혹은 무능력 교리에 빠지게 되고 이로써 사람은 자유 의지를 부인하며 구원받는 일에 자기가 할 일이 전혀 없다는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선택이란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어떤 사람은 선택해서 구원하시고 어떤 사람은 버리신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구원받을 사람들의 숫자에 제한을 두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구원의 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성경 전체를 통해 나타난다. 하나님은 가인 대신 아벨을, 함과 야벳 대신 셈을, 나홀 대신 아브라함을, 에서 대신 야곱을, 므낫세 대신 에브라임을 택하셨다. 하나님은 개인뿐만 아니라 민족도 선택하신다(롬9:15-21; 참조 요15:16; 행13:48; 엡1:4-5; 살후2:13: 딤후1:9). 하나님은 심지어 창세 전에 어떤 이들을 선택하셨으며 따라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정해진 자들은 다 믿더라.”(행13:48)는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다. 한편 성경은 사람의 자유 의지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가르친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6:37; 참조 요1:12; 5:40). 또 성경 맨 끝에서 하나님은 특정한 자들이 아니라 모두를 초청하신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 하시더라”(계22:17). 하나님의 선택과 사람의 자유 의지에는 모순이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 여기에는 모순이 전혀 없다. 하나님의 예지 즉 미리 아심이 이 모든 문제를 풀어 주기 때문이다. “사도 베드로는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두루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통해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이르도록 선택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전1:1-2).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29-30).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이나 예정은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일지 혹은 거부할지 미리 아시는 하나님의 선견지명에 기초를 두고 있다. 즉 하나님은 이런 ‘미리 아심’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을 예정하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시고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을 예정하셔서 정죄에 이르게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은 임의적이거나 강압적이지 않으며 사람의 자유 의지와도 전혀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한 죄들의 용서를 모든 사람에게 선포하셨고(행13:38) 모든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회개할 것을 명령하시며(행17:30) 사람들이 자신과 화목할 것을 간청하신다(고후5:18-20).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역과 그로 인한 은혜는 무조건적으로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자신에게 나아오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겠다고 진실하게 약속하셨다. 단 이러한 은혜가 은혜가 되려면 개인이 마음 문을 열고 의지적으로 복음을 수용해야 한다. 성령님은 자기 의지로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의 마음의 문을 강제적으로 열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떤 이를 구원하려고 택하셨으므로 그가 믿든지 믿지 않든지 궁극적으로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따라서 땅에 사는 동안 성도들은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롬1:16). 그런데 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므로(롬10:17) 사람이 무엇을 믿을지 알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복음의 선포가 사람의 구원에 필수적이며 영혼구령이 교회의 가장 큰 사명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선택받은 자들은 다 구원받고자 하는 사람들이고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다 구원받고자 하지 않는 자들이다.” 자유 의지, 미리 아심, 예정 참조.    
2009-06-14 00:22:25 | 관리자
  기존의 한글 성경에서는 성령님에 의한 영적 선물을 은사(恩賜)로 번역했지만 일반적인 정의에 따라 은사가 왕이나 부모가 신하나 자식에게 거저 주는 선물을 말하므로(약1:17) 선물이야말로 하나님의 영적 선물을 가장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물에는 구원(롬5:15), 영생(요4:10, 롬6:23), 성령(행2:38, 고전12:4) 등이 있으며 최대의 선물은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3:16; 롬8:32). 하나님은 이 지고의 선물과 함께 다른 좋은 것을 선물로 주셨다(롬8:32). 사도 바울은 특별히 성령님의 선물(은사)들에 대하여 잘 보여 준다. 그것들은 초대 교회에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들로서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능력, 기적들 행함, 대언, 영 분별, 타언어, 타언어 통역 등을 가리킨다(롬12:6-8; 고전12:4-11; 28-30). 영적 선물들은 대개 하나님의 은혜가 비범한 형태로 특별히 나타난 것이었으며 그래서 바울은 이런 선물의 남용을 막기 위해 선물들의 실질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성령께서는 영적 선물들을 주셔서 성도들이 교회를 세우고 섬기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열매를 맺게 하셨다. 따라서 모든 영적 선물에는 중대한 책임이 뒤따른다. 한편 극적인 선물들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질서가 필요했고(고전14:40) 그래서 대언하는 자들의 영은 대언하는 사람 자신에게 제재를 받아야 했다(고전14:32). 초기 사도 시대에는 다양한 종류의 영적 선물이  주어졌지만 주후 95년경에 성경이 완성되면서 이 중에서 기적과 관련된 몇 가지 선물과 대언의 선물 등은 사라지게 되었다. 기적, 병 고침, 타언어 참조.    
2009-06-14 00:21:09 | 관리자
  하나님의 간섭을 통해 하나님만이 드러낼 수 있는 비밀스런 일을 볼 수 있는 사람. 이 말은 몇몇 히브리 대언자에게 적용되었다(삼상9:9; 대하29:30; 33:18-19; 사29:10; 30:10; 비교 민24:3-4). 그러나 이 명칭이 마치 점을 치는 듯한 인상을 주므로 이것은 나중에 대언자로 바뀌었다. 대언자 참조.    
2009-06-14 00:19:43 | 관리자
  페르시아와 시리아에서 잘 자라는 과일 나무. 석류는 오렌지 크기이며 그 안에 많은 씨가 있고 그 주스는 순수하며 강산성이다. 이것은 아름답고 값어치 나가는 과일이므로 정원에서 많이 가꾸었다(아4:13; 6:7, 11; 8:2; 욜1:12). 석류는 팔레스타인에 아주 많았으며(민13:23; 신8:8) 인조 석류는 대제사장의 옷의 장식으로 쓰였고(출28:33) 건물의 장식으로도 쓰였다(왕상7:18).      
2009-06-14 00:18:49 | 관리자
  하나님의 은혜나 다가오는 위험 혹은 미래에 대한 근심으로 인하여 혹은 복을 간구하기 위하여 선한 일을 하거나 혹은 오락 등을 하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하는 것. 사람을 죄 짓게 만드는 서원이나 서약은 죄에 죄를 더하는 것이며 일단 서원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시15:4; 말1:14). 야곱은 메소포타미아로 가면서 십분의 일을 약속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벧엘에서 그것을 드리기로 서원하였다(창28:20-22). 모세는 서원에 대하여 몇 가지 규정을 제정하였다(신23:21, 23; 전5:4-5). 한편 미성년자의 서원은 가족의 어른의 동의가 없으면 무효였다(민30:1-16). 누구나 자기 자신 혹은 자기의 자녀를 하나님께 서원으로 드릴 수 있었다(민6:2). 재판관 입다는 자기 딸을 드렸으며(삿11:30-40)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역시 주님을 위해 그를 드렸다(삼상1:11, 27-28). 주님을 위하여 남녀를 드렸으면 그들은 주님을 위해 일해야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들을 무를 수 있었다(레27:1-34). 고르반과 나사르 사람 참조.    
2009-06-14 00:18:22 | 관리자
  편지. 신약성경에서 이 말은 사도들이 크리스천 교회를 책망하거나 지도하기 위해 특별한 경우에 기록한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편지들’을 말한다. 이로써 성령님은 우리에게 복음 전도자들이 역사적으로 진술한 참된 복음의 위대한 교리들을 주셨고 또한 그것들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일에 적용할 수 있게 하셨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사도들이 사는 동안 기록한 모든 것이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기록들만이 영원토록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보존되며 바로 이런 책들로부터 그리스도인 삶의 인도 지침이 나오고 믿음과 실행의 근본 교리가 나와서 시대를 지나면서 비슷한 상황에 빠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 정경 참조. 서신서를 읽을 때에는 먼저 그 서신서의 수신자와 연대와 일반적인 범위와 목적 그리고 그 안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와 구절 등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저자의 문체 형식과 기술 방법, 표현, 저자가 수신자들에게 보여 주려 했던 효과와 강조점, 논리의 전개 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신약성경 목록 선도 참조(10). 신약성경의 27권 책 중에서 21권이 서신서이고 그 중에 14권이 사도 바울에 의해 기록되었으며 야고보가 한 권, 베드로가 두 권, 요한이 세 권, 유다가 한 권의 서신서를 기록했다. 이런 서신서들은 신약성경에 연대기적으로 배치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사도행전의 역사를 보면서 각 서신서의 수신 교회의 설립, 특징 등을 고려해서 전체적으로 읽는 것이 유익하다. 이렇게 하면 대개 서신서들의 연대를 알 수 있고 서신서 기록자의 상황과 감정 등을 잘 파악할 수 있다. 특별히 로마서로부터 빌레몬서에 이르는 사도 바울의 서신서들은 이방인들의 신약교회를 위한 지침을 주고 있고 또 그가 저술한 히브리서는 말 그대로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지침과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을 주로 담고 있으며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구약의 희생 제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희생의 의미를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일, 이, 삼서, 유다서는 특정한 수신인이 없이 일반 교회에게 주어졌으므로 대개 ‘일반 서신’이라 불린다. 카톨릭 참조.    
2009-06-14 00:17:57 | 관리자
  에베소의 서쪽에서 64킬로미터 북방에 위치한 항구 도시. 에게해 지도 참조(41). 이곳은 주전 300년 경 알렉산더 대왕이 계획도시로 세운 곳이며 부요함 때문에 ‘아시아의 왕관’, ‘아시아의 꽃’, ‘이오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등의 칭찬을 받았다. 서머나는 처음부터 로마에게 충성을 바치고 원정군들을 원조하기도 하였으며 이러한 충성의 결과로 한때 로마의 보호와 호의를 받아 황제 숭배의 중심지가 되고 자유 도시가 되었다.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동전 등에 의거하면 이 도시가 매우 부유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서머나는 유대인들이 많이 이주하여 살던 곳으로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을 모함하고 핍박한 지역이기도 하다. 서머나 교회는 믿는 자들에게 조금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부유한 도시 한가운데서 큰 핍박을 받은 교회였다(계1:11; 2:8-11). 이 도시의 이름은 영어로 Smyrna인데 이것은 myrrh 즉 몰약을 뜻한다. 몰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쓰는 물품으로 사망과 고통을 상징한다.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주로 정부와 부유한 자들과 유대인들로부터 고통과 핍박을 받았는데 핍박하는 자들은 기독교인들의 가산을 약탈하기도 하였다(히10:34). 서머나라는 도시 자체의 경제적인 부유함과 상품 등의 풍요로움은 궁핍과 거리가 먼 것이었지만 여기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큰 고난과 궁핍을 당했다.    
2009-06-14 00:17:24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