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미국 뉴져지에 사는 양동현입니다.
이곳을 통하여 많은것을 배우고 있읍니다.
고국에서 들려오는 많은 소식가운데 자살이란 소식이 최근 많이 들렸었지요.
미국 교포 사회에서도 쉬쉬 하지만 자살이란 소식이 많이 있읍니다.
교회내에서는 들어 내놓고 말 하지 못하는 부고의 사연중 하나입니다.
지난 주중에는 젊은 청년의 돌연사가 있었읍니다. 안타깝게도 자살이었읍니다.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무엇을 쓰고 있는지 잠시 멍해집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구할수 없었던 생명인가요?
교회안에 들어 온 영혼이었는데...
무엇인가 우리의 잘못으로 그 사람을 실족하게 한것은 아니 었는지..
회개합니다.
한 교회에서 같이 앉아 예배드린 사람으로 많이 슬픕니다.
다시는 이런 자살의 소식이 교회안에서 만큼은 없었으면 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5:2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0 21:39:35 | 양동현
기독교 서점에서 파는 책의 내용은 다 100% 좋은 것, 나쁜 내용이 있는 책은 들여놓지도 않았겠지,기독교 방송에서 하는 방송 내용은 다 100% 온전한 것으로 순진하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전에 우연히 집에서 뉴스를 보다가 기독교방송을 틀게 되었습니다.몇몇 성인들을 앞에 모아놓고, 목사님이 성경을 설명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마침 어떤 목사님이 성경구절을 설명하다가 "성경 사본"에 대해 이야기를 하길래 귀를 쫑끗세우고 들어보았습니다.내용은 이렇습니다.1) 원본이 하나있었는데, 여러사람들이 읽도록 하기 위해서 사본을 만들게 되었다 2) 그럼 여러 사본이 생길 것이 아니냐, 그럼 그중에는 온전한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사본을 만들때 어떤 사람은 잠깐 졸다가 2줄 건너뛸수도 있고, 적은 것을 또 적는 경우도 있다.이때 한명 질문합니다.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옮겨 적는데 2줄 건너 뛰고 그럴수가 있지요 ? 일부러 그런 건 아닌가요 ?"답변왈 "절대로 일부러 사본을 왜곡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컨닝해보시지 않았느냐 ?, 옮겨 적다보면 헷갈리고 글씨도 서로 비슷비슷해서 그럴수가 있다"청강생 "(의심스런 눈빛이지만) 맞아요, 그렇군요 !!!!"3) 그러다 보니 그것을 판별하기 위해서, 여러 사본을 놓고 비교해 보면 어떤 것이 오리지날인지 알 수 있다. 대학 다닐때 우리 경험했잖아요, 잘된 레포트을 참조해서 아류작들을 만들잖아요, 그럼 교수님들이 서로 대조해보고 어느 것이 원본이고 컨닝한 것인지 구분하지요. 성경에서 사본을 가지고 이런 작업하는데 이를 "사본학"이라 합니다.4) 시간이 지나 원본은 없어졌으니, 양 많고 오래된 것이 원래의 원본하고 제일 가깝겠지요 ????5) 개역 성경은 이렇게 선별된 사본을 가지고 만들어진 최고의 성경입니다.6) 자신있게 "개역 성경은 그래서 100%는 아니더라도 99%정도(??) 정확하게 잘 만들어진 성경입니다"라고 끝을 맺더군요.그 다음에 청강생들 성경책을 나름대로 쓱쓱 넘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표정이 시근뚱하고 "그래, 성경은 그리 완벽할 수 가 없겠구나"라는 것이 표정에서 나오더군요
다 듣고나서, 목사라는 분의 설명도 유치하고, 우선 이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들을 것인가 걱정되더군요.방송으로 나온 내용이니 저것이 성경의 진실인 것으로 알고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장사하시는 믿으시는 분들중에 많은 수가 기독교 TV 하루종일 틀고 보시는 분들도 계십니다.이런 것으로 거의 세뇌가 되시니, 하나님 말씀이 100% 보존된 성경이라고 하면 "그것에 대해서 나도 좀 들어서 아는데요, 내가 알기로는 그렇게 될수가 없어요"라며 우리를 보는 눈빛이 달라지지요.
개역 성경사용하시는 목사님들중에 성경의 무오성에 대해서 설교하시는 분들 계시는데, 자신이 믿는 그 99%만이 100% 무오하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맞다하더라도 아래 말씀에 근거한 나머지 1%는 어디로 갔나요?"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24:35]"
저런 설명을 들으면 "어떤 성경도 완벽할 수 는 없겠구나"라는 사탄의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잡아버립니다.그래서 성경이 다 거기서 거기인 불완전한 것이다, 디자인 예쁘고 핸드백에도 잘 들어가는 아담한 성경을 고르게 됩니다.
킹제임스에 대해서 사람들이 저에게 물어보는 것이 "그럼 개역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냐?"고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개역의 5~7%정도가 잘못되었으며 중요교리/신성과 관련된 부분에서문제가 있고요, 킹제임스 성경을 보시면 개역에서 설명이 안 되거나 난해한 구절들에 대해서 잘 설명/연결이 될 정도로 오류가 없습니다"하지요, 그럼 그분은 "뭐 5%가지고 그러느냐 성경 잘 보지도 않는데, 그냥 개역봐도 되겠네"라고 말하십니다.그러나 "제대로 바르게 말씀을 알고 믿어야지요, 그런데 이 5~7%가 우리 믿음의 기초에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입니다."라고 말을 해도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입니다.
사람들을 1~2분내에 납득 못시키면 그냥 마음속에서 돌아서 버립니다. 그 이후로는 듣는둥 마는둥입니다.저는 능력이 없어서 그 시간내에 납득 못시킵니다....하나님께서 그런 분들께 어떤 계기를 주시기를....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5:2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0 18:53:33 | 김학준
게시판 585번에 등록된 김문수님의 글을 보고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궁금한 부분이 자꾸 헛갈리게 하니 잘 좀 정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먼저 글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전날에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되어있습니다. 그 부분만 인용하면 [예수님은 유월절 전날(예비일)에 십자가에 달리셨으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날은 수요일이 됩니다.][예수님께서는 수요일 십자가에 달려서 그날 오후에 죽으시고 수요일 저녁 무렵(목요일 유월절 시작되기 전)에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14장이나 마태복음26장을 보면 흠정역에는 친철하게 큰 제목으로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지킴] [왕이 유월절을 지킴] 이라고 써있는데 그 부분의 성경 말씀을 언급 된 글 내용에 비교하면 예수님은 유월절 전날에 유월절 어린양을 드신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유대시간으로는 같은 날이지만 우리들 시간 개념으로는 전날 밤이 맞겠죠?)에 제자들과 유월절 어린양을 드시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김문수님의 글에 따르면 예수님은 유월절이 아닌 전날에 어린양을 드신거란 말이 되는 거죠? 그런데 언급된 글의 내용중에 [유월절 어린양은 유월절이 시작되는 날의 저녁에 잡아야 했습니다(출12:6).] 라는 글이 있는데 이건 어떻게 이해 해야 하는건가요? 예수님이 드신것은 유월절 어린양이 아닌 건가요? 아니면 예수님은 예외적으로 유월절이 아닌 하루 전날에 미리 유월절만찬을 드셔도 되시는 분이신건가요? 그럼 왜 흠정역은 친절하게 큰 제목으로 예수님이 유월절을 지키셨다고 쓴건가요? 제가 보기엔 어디까지나 짧은 제 시선입니다만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당일 저녁식사 시간에 유월절 어린양을 드시면서 주의 만찬도 제정하신걸로 보여지는데요 그렇게 본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날은 유대시간으로 저녁식사를 하신 날과 같은 유월절 아닌가요? 제말은 유월절 어린양을 식사하신날(주의만찬을 하신날)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날은 같은 유월절이다 이런 말인거죠 시간의 흐름 차이로 식사가 먼저고 십자가 사건은 그 담으로 이루어 진거죠 앞에 식사는 유대시간으로 저녁 해가진 이후에 하신거고 뒤에 십자가 사건은 같은날(우리식으로 다음날이지만) 해가 뜬 이후 낮동안에 있었던 일이되는거죠 맞나요? 그럼 그담에 오는 안식일이 [유월절 안식일](김문수님의 표현)이 아닌 다른 안식일로 보여지는데요 아니면 유월절이 두번인건가요? 유월절 안식일은 아니지 않을까라고 생각되어지는데요 제가 보는 시각으론 분명해 보입니다만 이건 점점 복잡해지기만 하는데요 먼저 글을 괜히 본거 같아요 아 머리아파요 제발 정리 좀 해주세요~!!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라는 글은 사절입니다. 읽어도 몇번을 읽어봤으니까요 제말은 예수님께서 저녁식사 즉 유월절 어린양을 드신날이 (주의 만찬을 행하신 날) 십자가 사건 앞에 일어난 사건이며 또한 그날이 유월절이냐? 아니면 김문수님의 말대로 유월절 전날이냐? 하는 겁니다 제 의견으로는 유월절 전날이 아닌 유월절이 맞는거 아닌가 하는데요 머 제가 잘 못 이해하는건가요? 확실하게 정리해주세요 주 안에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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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0 16:34:52 | 변경진
아직도 일천번제 헌금을 드리는 교회가 주변에 널려 있어 가슴이 미어집니다.그런 교회 목사는 도대체 성경을 어떻게 읽기에 지금, 이 신약 시대 말기에 구약 시대의 번제 헌물을 요구할까요?
목사들이 기본적으로 너무 소양이 없습니다.너무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습니다.이것은 결코 내 자랑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다른 분야를 보십시오.저는 공과대학의 교수입니다.그런데 교과서를 읽지 않아 내용을 모르므로 부실하게 가르치면 대번에 인터넷에 학생들의 비판의 소리가 올라옵니다.그런데 목사들은 이런 비판이 없습니다.그래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생깁니다.마르틴 루터, 로이드 존스, 웨슬레, 무디, 스펄전 같은 목사들이 일천 번제 헌물 이야기를 들으면 기가 막혀 입을 열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바로 신약시대에 구약시대의 관습을 따르는 것입니다.그런 자들은 니골라당입니다(계2:6).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도랑에 빠집니다.호세아서 4장 9절을 보십시요.그 백성에 그 제사장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기독교의 현주소입니다.일천 번제가 먹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목사들이 바로 서야 국가와 민족의 해이한 기강도 바로 설 것입니다.
주여,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지금 이 시간에 일천 번제, 다니엘 21일 기도, 맥추 헌금 등과 같은 구약의 관습을 실행하려는 니골라당에게 고통을 당하는 성도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알아야 바로 믿을 수 있습니다.
일천 번제를 주장하고 실행하는 니골라당에게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아주 확실합니다.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지도 않고 오히려 미워하는 일입니다.
목사 여러분!
우리 제발 같이 각성합시다.
회개합시다.
성도들 볶는 일 그만둡시다.
주님께로 갑시다!
사랑침례교회 목사 정동수
호세아서 4장 6-11절6 내 백성이 지식이 부족하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거부하였으므로 나도 너를 거부하여 네가 나를 위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은즉 나도 네 자녀들을 잊으리라. 7 그들이 불어날수록 내게 죄를 지었은즉 내가 그들의 영광을 수치로 바꾸리라. 8 그들이 내 백성의 죄를 먹고 자기 마음을 자기 불법에 두나니 9 그 백성에 그 제사장이 되리라. 내가 그들의 길들로 인하여 그들을 벌하며 그들의 행위로 인하여 그들에게 보응하리라. 10 그들이 {주}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일에서 떠났으므로 먹어도 족하지 아니하고 행음해도 늘지 아니하리라. 11 행음과 포도주와 새 포도즙이 마음을 빼앗아 가느니라.
호세아서 6장 1-6절
1 오라,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낫게 하시리라. 그분께서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시리라. 2 이틀 후에 그분께서 우리를 되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분의 눈앞에서 살리로다. 3 우리가 계속해서 {주}를 알고자 하면 그때에 우리가 알리라. 그분의 나아오심은 아침같이 예비되어 있으며 그분께서는 비같이 곧 땅에 내리는 늦은 비와 이른 비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4 ¶ 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오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선함은 아침 구름 같고 사라지는 새벽이슬 같나니 5 그러므로 내가 대언자들로 그들을 넘어뜨리고 내 입의 말들로 그들을 죽였노라. 너에 대한 심판은 앞으로 나아가는 빛 같으니라. 6 나는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며 번제 헌물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더 원하였으나 7 그들은 사람들같이 언약을 어기며 거기서 나를 대적하고 배신하였도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5:2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19 23:49:25 | 관리자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
저는 이전에 성경을 보면서 이해가 잘 안되는 구절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잠13:22에 [선한 사람은 자기 자손의 자손에게 상속 재산을 남기거니와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라는 구절 속에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인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보면 죄인의 재물이 의인을 위해 쌓이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잘 이해가 안 갔습니다.
그런데 작년 11월 달에 경험을 통해서 이 구절이 마음에서 아멘이 되었습니다.
제가 조선족들이 가장 많이 집중되어 살고 있는 연변지역에 가서 전도를 하고 또한 그곳에 있는 형제자매님들과 모임을 가지고 오군 했습니다.
물론 연변은 같은 중국 길림성에 속한 곳이지만 거리로 말하면 기차로만도 11시간 타고 가야 하는 거리이고 한번씩 갔다 오면 물질이 많이 들어가군 했습니다.
또한 그곳에 형제자매님들이 형편이 어려운데다가 아직 신앙이 너무 어려서 섬기는 법은 잘 못하고 제가 오히려 밥도 더러 사주고 이런 저런 것으로 돈을 써야 하는 형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 번씩 갔다 오면 돈이 중국 인민페로 약 1700원 정도 들군 했습니다.
제 자신이 시골에서 살다보니 돈을 벌 곳도 없고 시골 교회에 몇 명 모이는 교회에서 사역을 하다 보니 교회에서 차비를 대줘서 연변에 가기도 어려운 형편입니다.
지금 형편으로 봐선 연변지역에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다녀와야 하는데 그 돈을 마련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작년 11월 달에 형편을 봐서는 연길에 다녀와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갈 물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이 물질 때문에 기도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어떤 목사님과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화중에 자연스럽게 연변지역에 대해서 말하게 되었고 연변지역에 갔다 와야 하는 것도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화중에 그 목사님이 그럼 연변에 바로 갔다 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망 결에 [목사님, 연변에 가는 차비는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절 책망하면서 연변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가고 아니라면 가지 말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이라면 한달 생활비 가지고서라도 가라는 것입니다.
그 말에 속에서 순간 울컥 하는 마음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목사님도 중국에 와서 한번 살아봐라, 그 돈을 가지고 목사님이 한 달 살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마음속에 이 소리가 목사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 소리라는 마음이 들어졌고 하나님이 저 목사님을 통해서 나에게 믿음으로 이끄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전에 구원파라고 하는 그 교회들에서 나올적에 누가 물질을 대줘서 나온 것이 아니고 아무 보장도 없이 단 하나인 말씀대로 살자는 마음에서 나왔는데 하나님이 지금까지 날 이끌어 주었는데 내가 지금 또 사람을 쳐다보고 있다는 마음이 들면서 회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우리 집에 가용돈이 전부 1700원이 남았는데 이번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한번 믿음으로 살아보자 라는 토론이 되어서 가용돈 1600원을 가지고 연변 지역에 다녀왔습니다.
그때 연변지역에 가서 주님이 형제자매님들 속에 많은 일을 하는 것을 보았고 또한 제 마음에 하나님이 많은 은혜를 주었습니다.
연길에서 은혜속에서 지내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채 집에 도착하지 못하고 기차를 타고 매하구시라는 그곳에 도착하여 저의 집에 오려고 버스를 타고 있는데 연길에 자선단체의 자매님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자선단체에서 학교들의 일로 조사할 것이 있는데 이번 조사를 끝마치면 돈 2천원을 드리고 또한 조사하는데 들어가는 돈을 4천원을 미리 보낼테니 그 돈에서 남은 돈도 저의 생활비로 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사흘기간을 이용해서 그분들이 부탁한 일을 끝마치고 나니 조사하는데 쓰라고 준 돈에서 2천원이 남았고 또한 자선단체에서 잘 해냈다고 수고했다며 돈 2천원을 더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방식으로 저에게 물질을 공급해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자선단체 사람들 대부분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게 되면서 그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 발을 내 디뎠을 적에 하나님이 놀랍게 일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잠13:22 말씀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이 고맙고 감사가 되었습니다.
난 나 자신을 몰랐는데 그 목사님은 저를 알기 때문에 저를 믿음으로 이끌어 주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주님은 저의 형편을 아십니다. 또한 제가 어떻게 해야 할 것도 압니다.
저는 현제 매월 셋째 주에 연변지역에 한 번씩 다녀오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어떻게 또 이끌어 주실지 모르겠지만 주님이 저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때론 형편을 보고 흔들릴 적도 있지만 다시금 말씀에 잡히군 합니다.
저를 위해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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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9 10:15:00 | 홍승현
노아의 방주엔 현재 살아 남아있는 종류의 동물만 들어 간 걸까요?
아니면 성장하기 전의 작은 공룡까지 태웠다고 보는게 맞을까요?
제 생각엔 화석으로 남아 있는 동물들은 하나님의 의도로 탑승이 거부되어
멸종 됐다고 보는게 더 타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노아 홍수 후 기후 조건이 맞지 않아 공룡들이 죽어갔다라고 하는 분도 있는데
홍수 뒤 죽을 존재들을 일부러 태우셨을 것 같지도 않고요.
하지만 혹시 다른 의견이 있는 분들이 계시면 알려주세요.
가벼운 질문이라고 했지만
사실 제가 나중에 창세기에 관한 만화를 그릴 생각이기 때문에 좀 더 정확히 하고 싶어서
묻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1:1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18 01:59:33 | 한용희
하나님의 아들께서 묻는 제자들에게 기도의 모범 사례를 제시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아버지의 이름을 언급하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게 하옵시며 … ’ (마6:9)
또한 예루살렘 올리브 산에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희생제물로 자신을 바치시기 직전 기도하신 때에도 아버지의 이름을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 나타내셨다 고백하셨고 그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주실 것을 기도하셨다.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17:6),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 우리와 같이 …’
뿐만 아니라 계시록에서 3장 12절을 보면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그에게 새겨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기는 자는 … 내가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시 …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고 …’
그런데, 우리가 구원받고 생명을 얻으며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행4:12, 롬10:9, 13, 요20:31, 요일5:11-12, 요14:13-14 등).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은 우리에게 자세하게 계시되었으므로(마1: 21-13 등),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다. 성경은 오직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을 이름을 높이고 그 이름을 위해 삶을 영위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롬14:6, 8, 고전6:13, 빌4:7-8 등).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분명히 가장 존중(존귀히 여김을) 받으셔야 할 아버지의 이름을 그 분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분명히 나타내셨다 고백하셨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달라고 간구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으로 우리가 구원과 생명과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함을 받고 그 이름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존귀한 이름이라면 아버지의 이름은 더욱 존귀한 이름이라 할 수 있는데, 과연 아버지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혹자는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드디어 아버지께서 그 분의 생명, 진리, 영광을 온전히 보여주셨기 때문에(요1: 1-18, 14:6-7), 그리고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 하나이시므로(요일5:7)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은 곧 아버지의 이름이요. 또한 성령님의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혹자는 아버지의 이름을 몰라도 그 아들의 이름을 통해 충분히 구원받고 생명을 얻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받고 살 수 있는데 굳이 아버지의 이름을 알 필요가 무어냐며 반박하기도 있다. 혹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은,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작은(귀여운) 이름 정도로 생각하여, 여호와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생각하거나 여호와를 아들의 이름보다 높은 이름으로 엄숙하게 부르면서 두려움을 가지고 대한다.
그런데, 여호와라는 이름으로는 영원한 죄사함과 영생,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또는 천국의 시민권)을 얻을 수 있다고 기록된 성경 말씀은 없다. 따라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아들의 이름인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높여야 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한편 성령님의 이름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면,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성령님의 정확한 이름을 말씀하시지는 않으셨다. 다만 성령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 아들의 영,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 분 자신의 이름으로 보내실 위로자(요14:26)로 우리에게 계시되고 있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 분은 은혜와 진리의 영으로,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 예수님을 우리 안에서 증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에게 권능을 주시며 아들의 형상을 우리 안에서 만들어 가시는 분으로 계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성령님에 대한 이름이라기보다는 그 분의 거룩한 성품과 사역과 뜻을 보여주는 일종의 지칭(대명사)으로 봄이 타당한 듯싶다.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고 따르고 섬기는 우리가 마땅히 거룩히 여겨야 할 아버지의 이름을 그리고,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나타내셨다고 분명히 고백하신 아버지의 이름을 그리고 천상에서 이기는 자 위에 새겨질 아버지의 이름을 언급하셨다. 그러한 아버지의 이름을 몰라도 되는 것인가요? 아버지의 이름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또한 성령님은 이름이 없으신 분인가요? 하나님은 세 인격으로서 한 분이신데, 과연 이름 없으신 인격이 있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버지의 이름, 성령님의 이름에 관심이 있으신 형제, 자매님은 저를 포함한 이 사이트를 이용하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욱 잘 알고 더욱 존귀히 여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으로 그 이름(들)을 위해 온전한 삶을 영위하는 데 유익이 될 좋은 길라잡이가 되는 답변들을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1:3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17 12:20:07 | 신대준
거짓 것이 세상에서는 더 인기가 있습니다.
저는 거듭나기 전이나 거듭난 후로나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 있었는데 말씀을 전하다 보니 모임 때 전할 말씀을 준비해야 하는데 때론 어떤 성경구절에 내용은 대략 생각나지만 그 구절이 어느 성경, 몇 장, 몇 절에 있는 줄을 몰라서 컴퓨터 프로그렘인 [베들레헴]이라는 성경 구절 찾기를 이용해서 성경구절을 찾고 또한 비슷한 성경구절을 찾군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간 [개역성경]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 [베들레헴]이라는 성경 찾기를 사용하면서 여러 가지 성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들레헴] 성경 찾기에 들어가 보면 일곱 가지의 성경이 들어있는데 각자 많은 곳에서 성경구절이 다른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후로부터 많은 목사님들께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보존하였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고 또한 저도 그렇게 알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 [베들레헴] 성경 찾기를 알게 되면서 많은 부분의 구절이 다른 성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한 어느것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지 의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제가 그간 사용했던 개역성경만 봐도 신약에 보면 성경 장절은 표시해놓고 내용에 있어서는 그냥 [없음]이라고 적어놓은 구절이 여러 곳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왜 이렇게 많은 부분의 빼놓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군 했습니다.
그런데 킹 제임스 성경을 알게 된 후로부터 성경에 대한 알 수 없었던 수수께끼가 풀리게 되었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성경을 보존해 주셨다는 것과 사단이 많은 변질된 성경을 만들어 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킹 제임스 성경을 알게 된 후로부터 제가 이전에 저와 같이 했던 사람들에게 이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서 말해주면 많은 사람들이 이 킹 제임스 성경을 사용하게 되고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이 평시에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한다고 하던 사람들이 바른 성경을 전해주는데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저보고 미쳤다고 하고 배척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서 전해주기만 하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바른 성경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외지에 돈 벌러 나가 있던 저의 누님이 몸이 아파서 저의 집에 와 있으면서 거의 한 달 동안 치료를 하다가 그저께 다시 원래 가 있던 천진시로 돌아갔습니다.
저의 누님은 사람들이 [구원파]라고 하는 [생명의 말씀선교회]라고 하는 이요한 목사님 쪽에 있는 교인입니다.
지금 천진시에는 그쪽 교회에 모임이 생겼고 사역자도 와 있습니다.
원래 천진에는 그쪽 교회에 모임이 없었는데 저의 누님이 가서 전도하여서 세워진 모임입니다.
그간 저는 이요한 목사님이 있는 교파들이 주장하는 성경적으로 잘 못된 교리와 믿음이 아닌 것과 또한 개역성경의 잘 못된 점, 그리고 킹 제임스 성경을 왜서 봐야 하는지를 말해 주었는데도 저의 누님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번에 저의 집에 거의 한달 동안 있으면서 계속해서 우리 교회들의 말씀을 듣게 했고 또한 바른 성경에 대해 말을 해주었는데도 끝까지 돌이키지 않고 천진으로 돌아갔습니다.
참 누님을 보면서 너무 한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누님은 성경대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어떻게 바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우리 누님을 보면서 더욱 들어지는 마음이 사람들은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거짓 것을 좋아합니다.
이전에 제가 연변에 갔을 적에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증인회]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안상홍씨가 성령 하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무식하게 안상홍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았냐면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 세 글자에 다 동글뱅이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상홍]이란 이름에 봐도 이름 세 글자에 다 동글뱅이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안상홍이가 하나님이란 증거가 된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 참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무식한 말인데도 더 놀라운 것은 그런 말을 듣고 [아멘!]하고 그런 엉터리 말에 미혹이 되어서 그쪽 사람들을 따라다니는 많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전혀 성경적으로 맞지도 않은 엉터리 말을 들으면서도 [아멘!] 하고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참 놀랍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전에 또 성경을 가지고 점을 쳐주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잠언 성경을 가지고 점을 치는데 만약 내 생일이 6월 3일이라면 잠언 6장 3절과, 바꾸어서 잠언 3장 6절이 하나님이 나에게 준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엉터리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그래도 맞다고 [아멘!]아면서 따라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대학생들까지도 따라 다니면서 은혜가 된다고 난리를 합니다.
이런 엉터리 사람들이 전하는 것이 성경적이고 은혜가 된다면 저희가 전하는 이 바른 성경인 킹 제임스 성경을 전하고, 우린 정말 바른 성경대로 말씀을 전하려 하는 사람들인데 더 성경적이고 은혜가 되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엉터리 목사들을 따라 다니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고, 진짜 성경대로 살려고 하고 진짜 바른 성경, 하나님이 보존한 참된 성경을 전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배척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들이 성경대로 거듭났다고 주장하는 구원파 계열의 사람들까지도 우리가 바른 성경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들은 배척하고 있습니다.
저의 누님이 저의 집에 와 있는 동안에 그는 할 수 없이 모임에 참석을 했는데 우리 교회가 다 킹 제임스 성경을 사용하고 모임시간에 전하는 말씀이 다 킹 제임스 성경을 전하고 읽는데도 저의 누님은 자신이 가지고 온 개역성경을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에 킹 제임스 성경이 없어서 누님이 보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 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개역성경을 보았습니다.
저는 요즈음 들어서면서 제가 정말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은 사람이구나 하는 마음이 더욱 들면서 하나님께 참 감사가 되었습니다.
저의 가정에서 매일 저녁이면 가정식구들이 모여서 가정모임을 가졌는데 매일 저녁 정동수 목사님, 김영균 목사님, 김재근 목사님, 박참하 목사님.... 등 여러 목사님들의 말씀을 돌아가며 듣군 합니다.
말씀을 들을 적마다 얼마나 마음에서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참으로 그냥 무조건 아멘이 되는 것이 아니고 성경적으로 비추어 보았을 적에 너무나도 은혜가 되었고 아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제가 더욱 느끼게 된 것은 제가 구원을 받은 것이, 또한 바른 성경인 킹 제임스 성경을 알게 되고, 킹 제임스 성경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도, 이런 바른 성경적인 교회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도.......제가 똑똑해서, 제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백 프로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할렐루야!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나를 먼저 소망침례교회에 김재근 목사님을 만나게 해주시고 바른 성경을 가르쳐 주시고, 이렇게 성경적으로 사는 여러 목사님들과 형제자매님들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저는 아직 너무 부족합니다.
저를 위해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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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6 11:39:52 | 홍승현
다름이 하니라요...구원에 대헤서 인데요..
구원을 받고나서 우상숭배하면 어덯게 되나요...,,,
구원 받고나서 불교에서 하는 고사를 하면 어덯게 되나요......
구원받고나서 풍수리지를 믿으면 어덯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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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6 00:06:46 | 현지웅
안녕하세요.
킵바이블을 알게 된지는 한 10개월 정도 된 것 같은데, 오늘에야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구원이 뭔지 바른 믿음이 뭔지에 대한 고민 없이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내가 구원받지 못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구원에 대한 확신, 믿음을 찾는다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같은 종류의 책도 읽고,
손기철 장로님의 치유집회도 가고,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그러다 작년 6월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가(롬 3:23~26)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면서,
그때부터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이 후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바른 믿음이란 무엇인지,
바른 교회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10년 이상 다니고 있는 지금의 교회에서는 더 이상 예배 시간에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하고 힘들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30분도 안 되는 설교시간의
반 정도를 예화로 채우시고, 기도 시간에는 자꾸만 조용히 침묵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하시는데,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고, 예배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 많이 저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문제는 저 혼자 결정 할 수 없기 때문에 남편의 필요가 생길 때 까지 더 오래~ 참아야 하나보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제가 지금의 우리 아이들 보다 더 어려서 다녔던 교회의 목사님을 30년 만에 남편과 함께 만났습니다. 그 목사님께서는 저희가 다니는 교회이름을 들으시고는 다른 교회를 찾아보라고,
작지만 목사님이 열정이 있으시고, 바른 믿음을 가진 교회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랑 침례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설교 말씀중에 다윗의 인구계수 사건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지난 주에 있었던 교회행사와 어쩜 그렇게 일치 하는지,
제가 또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교만했었는지, 사랑침례교회로 모인 성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런 교회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또 남편이 이렇게 빨리 동의를 해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여러 가지로 너무나 많이 감격했습니다.^^;;
그동안 많이 헤매고 어리석었고 힘들었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하시는 하나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둘째 아이가 예배시간에 쪽지에 뭘 적길래 뭘 적었냐고 물어봤습니다.
사랑침례교회의 좋은 점 나쁜 점을 적었는데, 예배실에 창문이 있고,
예배 시간이 긴 것(성경 세미나까지 듣느라 힘들었나 봅니다)이 나쁜 점이고,
아빠 엄마와 함께 예배드리고, 찬송가가 자리마다 있고,
사랑 침례교회에선 아빠가 착해진다는 것이 좋은 점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바른 믿음,바른 교회, 바른 예배를 구하면서 킵바이블과 사랑침례교회 변두리만
맴돌다가 한번 교회를 방문해 보았을 뿐인데, 저 뿐 아니라 가족들이 모두 행복한 경험을 하게 된것 같습니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좀 있지만, 다시 교회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 적다 보니 무지 긴 글이 되었네요..
귀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좋은 글을 남겨 주시는 분들..정말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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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4 22:48:34 | 임성희
우리나라에는, 전국민이 알 정도로 시끄러운 사고를 쳐서 20세기에 교도소에 갔다가, 출소 후 기독교에 귀의하여 21세기의 여생을 이 분야의 사역에 바치겠다고 공언한 사람이 최소한 둘 있다. 이들의 발언은 매스컴에도 보도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누군가 하면......;;하나는 삼풍 백화점 사장이던 이한상 씨이다. 몽골 선교사가 되었다고 한다.그리고 다른 하나는... 잘 알다시피 고문 기술자라는 말을 만들어 내며 한때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 씨이다. 요 몇 년 전에 아예 목사 안수를 받았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야말로 저주의 이름으로 전락한 삼풍 백화점!당시 경영진은 돈에 눈이 먼 나머지, 전세계의 건축 전문가들을 경악케 한 전대미문의 비리와 편법을 동원하여 백화점 건물을 혹사시켰다. 그러다 결국 거대한 백화점 한 동을 지진이나 외부 폭격도 없이 제 발로 와르르 무너뜨리는 사고를 터뜨렸다. 4층 기준으로 설계된 건물을 5층으로 무단 증축하고, 미관을 위해 기둥 수를 줄이고 있던 기둥도 굵기를 줄이고, 윗층에는 무거운 온돌을 얹고, 옥상에는 규정 하중의 몇 배나 더 무거운 에어컨까지 얹고... 전문가들은 그 상태로 건물이 어떻게 6년씩이나 버텼는지를 더 신기해한다.
이들의 죄질이 더욱 나쁜 이유는, 건물이 붕괴할 걸 알고도 자기네만 쏙 피하고 영업은 계속 강행시켰다는 점 때문이다. 귀중품을 지하로 옮기고 고위 임원들은 미리 대피하고서 말이다. 이건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때 패닉 상태에 빠져서 자기 혼자 마스터 키를 빼들고 전동차를 탈출해서 달아나 버린 기관사와는 차원이 다른 악행이다.이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던 1천 명이 넘는 종업원과 쇼핑객은 건물과 함께 그대로 폭삭.. 성수대교가 무너진 지 불과 8개월 남짓만에,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평시에 최다 사상자를 낸 최악의 참사를 일으키고 국제 망신까지 초래했다.
한편, 이근안의 과거 행적은 더욱 "충격과 공포"이다. 심문 전에 기선 제압용으로 한주먹으로 사과를 으스러뜨리는 퍼포먼스부터 시작해 물 고문, 전기 고문, 통닭 고문, 잠 안 재우기 등등.. 말이야 쉽지 당해 보면 정말 차라리 죽여 달라는 말밖에 안 나온다. 그는 말했다. "내가 손대기만 하면 누구라도 불게 돼 있어."고문 출장까지 갔던 그가 돌연히 목회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흉악범이 회개하여 목사가 된 것과는 다른 차원이며, 왕년에 크리스천들을 핍박하던 바울이 회심한 것과도 성격이 다르다.
고문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반인권적이고 사악한 행위이다. 성경의 그 엄한 구약 율법조차 사형은 백 번 인정할지언정, 고문은 절대 없다.그런데 이근안을 까는 글은 인터넷에 이미 널리고 널렸으니 본인은 일부러 좀 다른 관점에서 논리를 펴도록 하겠다. 오죽했으면 인류 역사에 고문이란 게 존재했을지를 생각해 보자.
뻔히 드러나 있는 혐의를 일단 부인부터 하고, 아무 죄책감도 없이 거짓말로 태연하게 잡아떼기만 하던--그래 봤자, 밑져야 본전이므로-- 인면수심 흉악범 김길태를 보고 열불이 안 났을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고문이란 저런 신발샛길을 위해 존재하는 거라는 게 본인의 육신적인 심정이었다. -_-;;
그리고 2006년 이래로 결국 미제 사건으로 남은 전북 대학교 이윤희 씨 실종 사건을 기억하는가? 딸을 잃은 아버지는, 강력한 용의자이자--그러나 무능한 수사로 말미암아 증거 확보와 유죄 입증엔 실패-- 딸의 스토커이던 뻔뻔한 남학생으로 하여금 읽으라고 쓴 공개 성명서에서 이렇게 절규했다.
"이 사건을 맡은 수사관이라면 누구라도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 정도 사건은, 30년 전만 해도 물 고문에 고춧가루 한방이면 일도 아니었을 거라고 말이다. 네놈 선배들이 피땀 흘려 이뤄낸 민주화의 열매를 네놈 같은 녀석이 악용하는 게 통탄스럽다."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S103&articleId=50338
요즘 같은 첨단 과학 수사 기법과 심리 프로파일링 같은 기술도 없던 시절에 흉악 범죄에 맞서서 치안은 유지해야겠고,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 정말 누가 누군지 모르는 간첩 불순분자도 우글거리던 시절,비열하고 부작용의 우려도 만만찮으나 저비용으로 성과를 제일 간단하게 내는 방법을 현실적으로 외면할 수 있었겠냐 말이다.
고문을 옹호나 정당화할 의도는 절대 없으므로 오해 없기 바란다.단지 전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그의 과거 행적이 그저 아무 이유 없이 하늘에서 그저 뚝 떨어진 건 아니라는 걸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더 잃을 게 없으니 배째라 하는 악질을 다스리는 제일 쉬운 방법은, 그 녀석들에게도 “더 잃을 게 있다는 걸” 일깨우고 공포에 빠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를 다스리기 위해 자연인이 이열치열로 만들어 낸 차선책 중 하나가 고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이렇게 서로 다른 분야에서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동일하게 징역 7년이라는 죄값을 치렀다. 가정 전체가 풍비박산 났고 가족들까지 밖에 얼굴을 들고 다니질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한상은 피해자 배상금 명목으로 전재산을 압류 당했으며, 이근안의 자녀 중엔 아버지가 누군지 밝혀지자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다 못해 직장을 그만두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몽골로 떠난 후 언론으로부터 수 년째 별다른 소식 없이 잠적해 있는 이한상과는 달리, 이근안은 불과 몇 개월 전까지도 언론 인터뷰에도 적극 응하면서 국내에서 활동 중인 것 같다. 그런데 발언의 수위가 다소 우려스럽다.
그래, 만에 하나 그는 왕년에 정말로 국가 명령에만 충성한 사람일 수 있으며, 고문도 상부 기관의 명령 내지 묵인하에 실적 쌓으려고,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수행한 것일 수도 있다. 무고한 사람 잡은 것보다는 그래도 진짜 흉악범이나 간첩을 잡은 공이 더 클 수도 있다. 나라가 망한 것도 아닌데, 당대 상황을 감안하지도 않고 어제의 충신이 무작정 오늘의 역적으로 뒤죽박죽 평가 잣대가 바뀌는 언론 플레이도 본인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말은 목사 타이틀을 갓 얻은 그의 지금 처지에서 할 말이 아니다. 그런 변명은 그가 회개의 열매부터 충분히 보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이근안 목사에게서 그리스도를 발견한 주변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옹호하는 발언을 자발적으로 한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아직도 그로 인해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린 사람, 파탄 난 가정이 즐비한 현 시국에서 그의 자기방어 변명성 발언은 더욱 많은 사람을 실족시키고 복음을 비방할 빌미만을 불신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선과 악, 죄와 벌, 회개 같은 것은 민감한 주제이다. 성경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며 오늘날 사람들이 반드시 정확하게 갖추고 있어야 하는 개념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라든가 복음에 대해 요즘 나돌고 있는 무수한 오해들도 불식시킬 수 있으며, 불신자에게 복음을 정확하게 전한다든가 교회 내부에서 죄로 인해 간증을 잃은 사람을 다루는 과정도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저 두 사람의 경우를 생각하면서 저런 개념을 재정립을 한 번쯤 할 필요를 느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기독교는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종교 중 하나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굳이 종교라고 풀이하자면, 인간의 모든 문제의 원인을 죄 때문이라고 규정하며, 그 죄를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좀더 구체적으로는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해결하고 내세의 구원까지 얻으라고 가르치는 종교이다.
그 교리는 인간의 머리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자연인들 보기에는 황당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믿음으로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그거야말로 인간의 지혜와 시스템을 초월하는 기독교의 본질이기 때문에, 그 교리로 인해 복음이 초기에 비방 받고 조롱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귀결이다. 성경은 그것 자체만으로 두려워하거나 쫄 필요는 절대 없다고 거듭해서 강조한다. 하나님이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주신 간증도 무수히 많으며, 그 어리석음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게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성경의 하나님께 다음과 같은 원칙은 변함이 없다.
첫째, 하나님은 죄 자체에 대해서는 절대 자비심이 없다. 지옥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국민 정서가 좀 이상하고 사법 체계도 그런 관행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나쁜짓을 저질러도 가해자 역시 죽었다거나, 술 취해서 실수한 것이라거나, 우울증 때문이라거나, 뭐 이런저런 사정이 있으면 굉장히 동정· 미화와 정상 참작을 잘 한다. 싸움을 중재하는데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으며 시빗거리가 정당한 것인지를 보는 게 아니라 누구 처지가 더 딱한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누가 더 많이 얻어맞고 다쳤는지를 더 감안하는 식이라고나 할까?
하나님은 이런 사고방식을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 지옥엔 히틀러, 유영철 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너무 착해서 구원도 못 받은 사람도 많고, 비참하게 살다 불쌍하게 죽은 사람도 엄청 많이 가 있다! 이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죄는 철저히 미워하고 회개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죄를 지은 사람은 그로 인해 민망해하고 가슴 아파하고 죄의 결과를 수습하고 그 대가를 기꺼이 치러야 한다. 죄를 무슨 치유 받아야 할 질병인 것처럼 여기고 동정하는 것, 죄 지어서 당연하게 받은 벌을 무슨 의인이 받는 시련과 영적 전쟁처럼 미화하는 것, 그 사람도 잘못된 사회 시스템의 피해자일 뿐이라고 감싸는 것... 역겹다. 다 한마디로 개소리이다. 하나님의 성품과 복음에 대해 아주 잘못된 인식을 심어 놓는다. 이런 사고방식을 종교의 탈을 쓰고 부추기는 위선자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한다. 용공 사상만 불온 사상이 아니다.
둘째, 하나님은 진심어린 회개에는 무한 관대하다.제아무리 인간의 죄가 무겁고 심각하다 한들 하나님의 사고방식에는 명예 살인이란 건 없다. 자해나 자결로 명예를 회복하는 행위를 결코 정당화하지 않는다. 이것이 일본과 서양 문화권 사이에 죽음에 대한 인식을 서로 극과 극으로 갈라 놓기도 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 때문에 진짜로 죽어야 할 때에도 동물을 대신 죽게 하셨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게 하셨다! 하나님의 보혈이 대가로 치러졌는데 그 무슨 죄인들 회개하면 사해지지 않겠으며, 과거에 어떤 나쁜짓을 한 사람이라도 자원하는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이 쓰시지 않겠는가? 죄에 대한 찔림부터 있은 후에 그 상처를 아물게 해 줄 복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기독교의 법칙이다. 예수님은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성도를 결코 거절하지 않으신다. "넌 그리스도인이 될 자격도 없다. 너처럼 우리 교회를 배반하고 내 명예에 먹칠을 한 녀석은, 부끄러운 줄 알면 나가서 곱게 할복해라" 그러시지 않는다!
셋째, 박해 상황만 아니라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인간과의 관계와 대체로 모순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의 양심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양심도 믿음도 필요하지 않은 '시스템'이라는 것을 과학 기술의 힘을 빌려 발달시키려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엔 별 관심이 없다. 크리스천은 불신자가 언뜻 보기에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을 믿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 말도 안 되고 보편적인 이성과 양심에 위배되는 사항을 믿는 게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의 모습은 불신자에게 어떤 형태로 비쳐져야겠는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증거는 보이는 사람에게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는 게 당연하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그래서 성경엔 굳이 야고보서 말씀을 차치하고라도 요 13:35, 요일 4:11-12 같은 준엄한 구절이 있다.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기 전에 사람하고부터 먼저 화해하라고 말한다(마 5:23). 하나님 따로 사람 따로가 절대 아니다. 대인 관계와 대신(對神) 관계는 별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는 하나님께 고백하더라도, 죄의 결과로 인해 야기된 잘못과 허물은 사람 간에 서로 고백하라고 성경이 명령한 것이다. (약 5:16)
하나님께 자백(소스 코드 차원에서): 돈을 사랑했다,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사람으로부터의 칭찬을 구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말씀을 어겼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죄는 결국, 선하신 분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지 않고 그분 말씀을 믿지 않은 잘못된 마음 상태에서 비롯됐다 등등..
사람에게 자백(실행 결과 차원에서): 오늘도 내 성질대로 욱하고 말았는데 이건 내 잘못이다. 미안하다, 내가 좀더 당신 입장에서 생각을 못 했다, 이 사고는 내가 잘못된 지시를 내려서 일어난 것이다, 내가 뭘 제대로 안 해서 그렇다, 내가 몰래 슬쩍 했다 등등...
명확하지 않은가? 그 후 회개의 열매는 당연히 행동으로 나타난다. 마음을 완전 정반대로 돌이키고, 과거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수습하는 것이다. 성령님이 임재하고 죄에 대해 극도로 민감해진 사람이라면, 저렇게 안 하는 게 비정상이다.남이 받아들이든 말든 내가 사과해야 하는 일이면 사과하고, 처벌을 감수하고, 필요하다면 물질적인 배상도 하고... 영적인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불신자들이 "그럼 평생 나쁜 짓 해 놓고서 주둥이로 예수 믿고 회개만 달랑 하면 천당 가냐?" 뭐 이런 식으로 비아냥거릴 일이 없게 하나님은 다 배려해 놓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불신자에게라도 그런 식의 실족거리를 만들지는 않는다.
죄를 마음껏 지을 수 있던 상황에서는 온갖 나쁜 짓 다 하다가, 죄가 탄로나고 경찰에 검거된 뒤에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입 싹 씻듯이, 잘못을 일단 인정하는 게 전략상으로 더 나으니까 '죄송~' 이러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회개가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한다. 얼마 전엔 우리나라에서 어느 사형수가 그저 죄책감과 불안에 사로잡혀서 안절부절 못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마치 가룟 유다의 도피성 자살을 연상케 하는 이런 행위도 회개가 아니기는 마찬가지이며, 동정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본인은 보지는 않았지만, 3년 쯤 전에 개봉한 영화 <밀양>에도 복음을 왜곡하는 여러 스토리 중, 이런 장면이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저 놈(자기 자식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 안 했는데 어떻게 신이 먼저 용서를 할 수 있어?" 정말 가슴아프기 그지없는 장면이다. 이 글의 서론에서 언급한 저 두 사람은 "피해자 여러분께 하늘로부터 오는 위로가 있길 원합니다" 같은 말이 입에 발린 위선으로 비치지 않도록, 더는 실족거리를 만들지 않도록, 어느 사역자보다도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자기를 희생하여 회개의 열매를 보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성경에는 이 주제와 관련하여 구원과는 완전 별개로, '사망에 이르는 죄'라는 개념이 있음을 첨언하고 글을 맺겠다. (요일 5:16-17) 이 사망이란 하나님께서 도저히 회개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성도를 극단적으로 데려가시는 경우라든가 사회의 형벌을 의미할 수 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연쇄 살인 흉악범이 회개하여 예수 믿고 구원 받으면, 그는 구원 받은 사형수이다.기독교 만화 전도지를 보면, 안티들이 그렇게도 조롱하듯이 흉악범이 감옥에서 예수 믿어서 사형 당한 뒤 천당 가고, 그 반면 자기 의에 가득차서 예수님을 거부한 형사 내지 교도관은 죽어서 지옥 가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심지어 더 극단적으로 가자면, 그 흉악범에게 살해 당한 피해자는 지옥 가고 가해자는 구원 받는 것마저도 가능하다. 교리적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단 하나 최후의 보루. 성경은 사형수에게도 인격이 있네, 인권 이 따위 헛소리를 하면서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사형 제도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기독교 교리의 논리 체계이다. 지금도 사형 반대 외치면서 피해자 유족들의 가슴에 두 번 못을 박는 위선적인 종교인들 역시,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다시 공부하면서 자기의 오류에 대해 깊이 회개와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2:3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14 14:37:03 | 김용묵
양 한 마리를 찾아 떠나시는 하나님.
일 년 반전에 제가 연길에 전도 갔다가 우연하게 차에서 두 자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님들은 미국에 자선단체 사람들이 중국에 들어와 자선사업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 자선단체에 직원으로 일을 하고 있는 자매님들입니다.
그 자매님들이 하는 일은 주로 학교들에 가난한 어린아이들의 조학금을 전달해주는 일입니다.
그 자매님들을 통해서 저는 6개 조선족 학교들의 명의교장으로 일을 하게 되었고 또한 학교에 조학금을 줄 아이들 명단을 작성하고 또한 조학금을 전달해주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처음 그 자매님들이 조학금을 전달하는 일을 해주면 안 되겠냐고 물었을 적에 목사가 무슨 그런 일을 하겠느냐 생각하고 거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소망침례교회에 김재근 목사님에게 이런 자매님들을 만나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대화중에 말을 해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김재근 목사님이 그 일을 왜 거절하느냐고, 우선 홍형제님이 많은 사람을 만나야 전도를 할 기회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해 주어서 저도 생각해보니 그렇단 마음이 들어서 그 일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조학금을 전달해 주는 일을 하게 되었고 학교들의 선생님들과 많이 만날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실 중국 형편으로는 선생님들에게 전도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입니다.
또한 선생님들 중에 누가 종교 신앙을 한다면 그 선생님은 그 학교에서 잘리더나 승진을 하는데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배웠다는 것으로 일반 저 같은 사람들은 너무나도 무시하는 편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자선사업을 하지 않으면 학교 선생님들을 만나기도 힘들고 특히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그 자선사업이 두 달간 진행되다가 자선단체에 문제가 일어나서 지금까지 조학금 주던 것이 끊겼습니다.
그리고 5개 학교와 연결이 끊기고 지금 한 개 학교와만 제가 더러 다니군 합니다.
하지만 조학금 전달해준 일로 인하여 제 주위에 학교들에서는 저에 대한 평가가 좋고 교장과 선생님들이 절 좋아합니다.
제가 학교에 일을 하면서 제가 살고 있는 현성에 조선족 학교에 음악 선생님과 교제가 되었고 그 음악 선생님인 김영광 형제님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 지금 주일에 저희 교회 모임에 나오고 있고 김영광 형제님이 구원을 받음으로 한국에 돈벌러 나가 있던 김영광 형제님의 아내가 한국에 진리침례교회와 연결이 되어서 김영광 형제님 아내가 구원을 받고 지금 진리침례교회에 나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조학금 전달하는 그 일이 더 잘 되길 바랬습니다.
그런데 어째 그런지 지금까지 다시 회복이 안 되고 있습니다.
학교들에 다니면서 돈도 많이 써버렸습니다.
요즈음 내 마음에 눅15:3-7에 말씀이 마음에 생각이 되었고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김영광 형제님 부부를 구원을 시키려고 이런 일을 시작하지 않았나 싶은 마음이 듭니다.
나는 이 일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길 원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고 하나님은 한 사람을 구원을 받기 하기 위해여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눅15:3-7에 말씀에 보면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서 찾아떠났고 그 양 한 마리를 찾아와 그 찾음으로 인하여 잔치를 베푸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이야기에 보면 양 한 마리 보다 양 한 마리를 찾아 떠나 다니며 쓴 돈과 찾아온 후 잔치를 베푼 돈이 더 많이 들었겠단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이 양 한 마리를 찾음으로 기뻐합니다.
주님은 김영광 형제님 부부를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 이런 일을 하게 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저의 마음에 감사가 되었습니다.
사실 저도 시골에서 태어났고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골에 있는 나에게 하나님은 찾아주셨고 구원을 받아 자신의 아들로 삼아주셨고 지금 정말 성경적인 교회들을 만나게 해주어서 정말 많은 은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하나님의 그 은혜에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합니다.
나는 시골사람이고 너무 평범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지만 주님은 저를 귀하게 봐주십니다.
앞으로 하나님이 학교일을 어떻게 이어가시고 또한 여기에서 마무리 지을지는 모르지만 다만 김영광 형제님 부부를 얻은 것으로 인하여 주님을 찬양합니다.
조학금 전달 문제가 더 이어져서 주위에 5개 학교들에서도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여러 형제자매님들, 그리고 목사님들이 이 일을 놓고 많이 기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 홍승현 형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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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4 10:42:17 | 홍승현
지난 주에는 예배를 마치고 한참을 서서 울고 있는 한 자매님을 보았습니다.
예쁘게 생긴 딸아이는 엄마를 맴돌며 위로하고 있었고
지긋이 미소를 짓고 있는 아빠가 옆에 든든이 서 있었는데 ...
민망할 것 같지만 그 눈물의 원인이 무엇일지 궁금해져서
진정되기를 기다렸는데 온 가족이 함께 이곳에 와서 예배드리게 된 것에 대한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과연 나는 언제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었는가?
또한 온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는 것에 대한 감동이 있었는가?
딱딱하고 무뎌진 제 마음이 부끄러웠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자매님댁은 이동원목사님이 시무하는 지구촌교회를 다녔다고 합니다.
이동원목사님은 지성과 인품이 있는 분으로 평판이 나 있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분이지만
우리나라에 관상기도를 설파하고 두 날개 운동을 펼친다는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만 있었는데 오늘은 그곳의 동정이 어떤지 궁금해져서
그 교회 홈피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지구촌교회는 ‘3·3·3 비전’ 달성을 자축했다.
교회 설립 때부터 품어온 성도 3만명, 평신도 선교사 3000명, 해외 선교사 300명 양육의 바람을 실현한 것이다.
이 목사는 이어 새로운 ‘2020 비전’인 ‘동역으로 펼쳐가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축제는 연합 합창단 700여명의 ‘할렐루야’ 찬양과 꿈과 비전을 담은 오색 풍선들을
하늘로 띄워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곳에 모였던 수 많은 군중들은 과연 어떠한 마음이었는지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모임이었는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만큼의 비중을 두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하더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안일하고 편안하고 자유롭고 게을렀던 제가
자다가 깬 사람처럼 정신이 번쩍 뜨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 혹시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위해
쓴웃음과 괴로움을 겪는 또 다른 가족이 있는지
찾아 헤메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전쟁의 후방에서 전방의 긴박감을 조금이라도 나누어야 할 것 같아
부족한 글솜씨지만 올려봅니다.
(부족한 글솜씨라 용기내지 못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저를 시작으로 해서 용기내시라는 의미도 담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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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3 18:38:50 | 정혜미
제 아내가 성경 공부중 누가 복음 족보에 가이난(게난) 2번 나오는데 아르박삿의 아들 셀라는 성경의 오기 라고해서 성경이 잘못될리가 없다고 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창조과학 홈에서 찾았습니다.
무엇이 잘못된건지 알고 싶습니다.
아르박삿의 아들은 누구인가? : 가이난, 셀라? (Who was Arphaxad’s son: Cainan or Shelah?)
Answers Magazine
만일 당신이 성경 관련 잡지에서 족보 도표를 대조해 본다면, 대부분의 현대 번역 성경들에 기록되어있는 누가복음 3:36절의 가이난(Cainan)의 이름이 없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당신은 이 이름이 창세기 10:24, 11:12, 그리고 역대상 1:18,24절에 있는 상응하는 족보들에도 나타나 있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왜 그럴까?
첫째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딤후 3:15-17), 이 모순은 무오 했던 성경 원본에서는 오류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이 삽입(insertion)은 후대의 70인역(Septuagint, LXX) 필사본들(비-영감된 히브리 필사본들)에서 발견되어진다.
누가복음 3:36절에 가이난이라는 이름이 삽입된 것에 대해서는 2 가지의 가능성 있는 설명이 존재한다. 첫째, 가이난은 원본 사본에는 들어 있었는데, 히브리 필사자들이 창세기와 역대상의 구절들을 필사하던 중에 이 이름을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헨리 모리스 박사가 지적했던 것처럼[1] 히브리 서기관들은 필사 과정에 매우 신중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것은 가능성이 낮은 설명이다. 또한 그 이름은 구약성경의 다른 고대 판(사마리아역, 불가타역, 가장 오래된 70인역 등)들에서도 빠져있다.
두 번째의 설명은 좀 더 설득력이 있다. 즉 누가의 편지를 필사한 70인역 필사자들이 부주의로 인해 아르박삿(Arphaxad, 아박삿)과 셀라(Shelah, 살라) 사이에 가이난을 실수로 삽입시켰다는 것이다. (사실 아르박삿은 35세에 셀라를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창 11:12). 따라서 그 사이에 가이난이 들어가는 것은 나이 상으로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나중의 70인역 필사자들이 누가복음에 있는 명단과 일치시키기 위하여 창세기와 역대상의 구절들에 아르박삿과 셀라 사이에 가이난을 삽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래리 피어스(Larry Pierce)는 이러한 설명이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AD 37/38 – 약 100)의 자료에 의해서도 지지받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요세푸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계도를 편집하기 위해 분명히 70인역을 사용했지만, 가외의 가이난을 포함시키지 않았음을 그는 입증하였던 것이다 :
만약 요세푸스가 ‘70인역(LXX)’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는 틀림없이 70인역에 기초하여 쓰여진 어떤 다른 문서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세푸스의 저술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70인역의 실수들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세푸스의 시대에는 가이난이라는 가외의 세대가 70인역 또는 요세푸스가 사용했던 문서에는 들어있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지 않았다면 요세푸스는 그(가이난)를 넣었을 것이다! 만일 70인역에 가이난의 이름이 포함되어있었다면, 요세푸스가 착오로 그것을 누락시켰거나(가능성 없음), 그 자료를 가볍게 취급하였거나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제롬(Jerome, 약 AD 347 – 419/420)은 벌게이트 성경(Vulgate, 성경의 라틴어 판)을 AD 5세기에 번역하였을 때, 어거스틴(Augustine, AD 354 – 430)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그는 70인역을 사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롬은 70인역이 너무나도 부정확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는 변동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던 히브리 텍스트(Hebrew text)를 사용했다[2].
피어스는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Julius Africanus, AD 약 180 – 약 250)로부터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프리카누스도 그가 분명히 70인역의 부풀려진 연대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대표(AD 220년에 쓰여짐)에 가이난을 누락시켰다. 가외의 가이난의 추가는 AD 220년 이후의 어느 시점에서 이루어졌음에 틀림없다. 피어스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
... 요세푸스는 크리스천 저술가가 아니었고 누가복음 족보의 필사본들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이지만, 이에 반해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그의 아리스티데스에게 보낸 서신(Epistle to Aristides) 3장에서, 그는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족보에 대해 철저히 연구했다. 사실 그는 누가복음 3:25절을 인용하고 있었다[3]. 따라서 아프리카누스는 누가복음과 마태복음 사본들을 둘 다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프리카누스가 누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 기록된 족보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누가복음의 사본들에 이 가짜 가이난이 들어 있었다면, 아프리카누스는 분명히 그것을 포함시키기 위해 그의 연대기를 수정했을 것이다. 사실 현존하는 가장 초기의 누가복음 사본이라고 알려진 P75 (AD 175-255년 사이[4])라 불려지는 보드머 소장품(Bodmer Collection)의 파피루스 사본(papyrus codex) 102 페이지(원래는 144 페이지)에는 가이난의 이름이 누락되어 있다. 그래서 누가복음 3:36절에 있는 내용은 AD 220년 이전에는 존재했다고 볼 수가 없다.
또한 개혁주의 침례교파 신학자인 존 길(John Gill)은 누가복음 3:36절에 가이난이 더해진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
이 가이난은 창세기 11:12절에서 모세에 의해서 언급되지 않았고, 구약의 어떤 히브리어 사본들에도 나타나 있지 않으며, 또한 사마리아어 판(Samaritan version)이나, 탈굼어 판(Targum version)에도 없다. 또한 요세푸스도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가계의 족보가 반복되고 있는 역대상 1:24절에도 없고, 베자(Beza)의 가장 오래된 누가복음의 헬라어 판에도 없다. 그 이름은 정말이지 현대의 70인역에만 나타나고 있는데, 원래는 거기에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 자료로부터 누가가 취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의 어떤 부주의한 누가복음 필사자의 탓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권위 있는 70인역에 부주의하게 삽입되어진 그때부터, 많은 헬라어 판들(Greek copies), 라틴어 판인 벌게이트(Vulgate Latin), 모든 동방 판들(Oriental versions), 심지어 그들 중 가장 오래된 시리아어 판(Syriac)에도 가이난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아르박삿의 아들이며 셀라의 아버지가 되는 그러한 가이난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성경의 어느 사본에도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5].
Footnotes[1] Morris, H.M., The Genesis Record, Baker Book House, Grand Rapids, MI, 1976, p. 282. [2] Pierce, L., Cainan in Luke 3:36: insight from Josephus, CEN Technical Journal 13(2):76, 1999. [3] Ante-Nicene Fathers 6:126, Hendrickson, Peabody, MA, 1994. [4] Geisler, N.L. and Nix, Wm. E., A General Introduction to the Bible, Moody Press, Chicago, revised and expanded, pp. 390–391, 1986. [5] Commentary available online.
*참조 : What about Cainan?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8_2/j18_2_41-43.pdf
Some remarks preliminary to a biblical chronology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56
출처 : AiGURL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1/n2/chronology-conundrums번역자 : IT 사역위원회[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1:1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13 16:39:08 | 허광무
오늘 아침에 마태복음 5장을 읽게 되었는데 5:13-16을 읽으면서 좀 생각이 되었습니다.
이전에 제가 거듭나기 전에는 제가 다녔던 많은 교회들에서 목사님들이 늘 교인들에게 설교하기를 [너희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에서는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 [너희는 땅의 소금이로되(마5:13)............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마5:14).......]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보면 이미 소금이고 빛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원래 소금이 아니로되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소금되신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왔고 빛되신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도 소금과 빛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로 거듭난 사람들은 다 소금이요 빛이라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5장에서 말하는 것은 다만 소금이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부분과 빛이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깊이 좀 묵상이 되었습니다.
소금이로되 맛을 읽은 소금, 빛이로되 통으로 가려놓은 빛- 아무도 쓸모없는 소금이요 빛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 말씀으로 많은 설교를 했고 많은 설교를 들었습니다.
저는 이 설교를 하면서 형제자매님들께 세상에서 또한 교회 안에서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었고 나 또한 그렇게 살도록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가정으로 부터라는 것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만들기 전에 가정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제일 먼저 만든 교회입니다.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님을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이것은 큰 신비라.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1-32]
가정은 하나님이 제일 먼저 만든 교회입니다.
그래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어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잘 나타내주고 있는 부분이 바로 엡5:25- 6:4까지의 말씀에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제일 가까운 부부간의 관계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길 원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자녀가 부모님께, 부모님이 자녀에게 ......
막9:50에 보면 소금에 대해 말하면서 [........너희속에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화목하지 못하고 가정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시면서 어찌 세상에서 교회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 뜻을 마음으로 알고 깨달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주 저의 아내와 충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 아내 때문에 내가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고 저 아내 때문에 내가 사역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론 전도를 나가려 하면 아내가 이런 환경에서 전도를 나가려 하느냐고, 오늘만 같이 있어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마귀에 속아서 나를 막으려 하니 이런 아내의 말을 들어주면 안 된다 싶어서 아내를 뿌려치고 전도를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마태복음 25장 양과 염소에 대한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나를 향해 한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제일 가까운 아내의 영혼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이 지냈습니다.
그냥 다 마귀의 역사로만 때려 붙였습니다.
겉으로 보면 나는 영적인 사람이고 아내는 늘 육적인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난 너무 위선적인 사람이었고 육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교회를 맡기기 전에 가정이란 교회를 맡겼습니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잘하였도다. 선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것에 신실하였은즉 내가 너를 많은 것을 다스릴 치리자로 삼으리니 너는 네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라 하니라.](마25:21)
[가장 적은 것에 신실한 자는 또한 많은 것에 신실하고 가장 적은 것에 불의한 자는 또한 많은 것에 불의하리라.](눅16:10)
저는 그간 신실하지 못했고 불의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보게 되면서 회개가 되었고 아내에게 마음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잘 읽지도 않던 아내가 성경을 보는 것을 보게 되었고, 기도를 잘 하지 않던 아내가 기도를 잘 하는 것을 보게 되었고, 늘 저의 부모님과 불화를 하고 늘 저를 만나면 시 어머님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불평을 털어놓던 아내가 그 소리가 서서히 줄어들고 시 어머님을 섬기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저는 교회에 무슨 문제가 있는것 보다도, 교회 봉사를 하고 전도하는 일보다도 아내가 문제가 되면 아내에게 먼저 관심을 가집니다.
이 가정은 하나님이 저에게 섬기라고 준 교회고 이 가정을 잘 섬김으로 교회도 잘 섬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혹 여러분들 중에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핑계로 아내나 가정 식구들이 영적으로 곪아터져 있는데 그냥 마귀의 일로 핑계대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저는 그간 이런 삶을 살았고 많은 사역자들이나 형제자매님들이 이렇게 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하나님 앞에 칭찬은커녕 빵점이고 책망을 받는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소금의 역할, 빛의 역할은 가정에서 부터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5장에 소금과 빛에 대해 읽으면서 들어지는 마음이 있어서 이렇게 순서 없이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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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3 14:51:29 | 홍승현
삶이 분주한 이유로 일방적으로 질문만 자꾸 올리고상호 커뮤니케이션 하지 못하는 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요즘 고민이 많다보니 질문이라도 올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여유가 생기는대로 제 의견들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현재는 대형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소위 [대안교회]라 불리는 평신도 교회로 옮길까 고민중입니다...
하지만 이 사이트를 운영중이신 분들은
아마도 목사가 존재하는 교회를 성경적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근거들을 알고 싶습니다.
제가 가고자 하는 평신도교회는
어느정도 성숙된 크리스천들이라면 돌아가면서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설교라기보다는 말씀을 나눈다는 말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말씀에 대해 서로 자유로운 질문과 대화가 얼마든 가능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제도권 교회와 극명한 차이라고 저는 느낍니다.
무조건 믿어라가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성경의 내용과 저사람이 말한 성경의 내용이 다르다면
그 차이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의 권위에도 기대지 않고
정말 각자가 말씀 앞에 홀로(동시에 공동체가 함께) 서야 하는 그런 교회입니다.
마치 이미 평신도교회를 편드는 것같이 보이겠지만
저는 현재는 중립적인 입장을 지키고자 합니다.
교회에 목사가 존재해야하는 성경적 근거가 무엇인지
다른 분들의 의견을 부탁드립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2:3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13 14:35:51 | 장경선
죄송하지만 초보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정동수 목사님의 [UFO는 있다]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1장에
UFO를 묘사한 듯한 내용이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대목을 보고 야훼는 외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봐도
그 묘사 부분이 외계인과 UFO를 묘사하는 글들과 너무나 유사합니다.
정동수 목사님 글을 다시 보니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신 부분이 있는데저는 아무리 읽어도 UFO라고밖에는 생각이 안듭니다...
참고할 만한 글 또는 자료를 소개해주시면정말 감사하겠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13:5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09 15:28:19 | 장경선
반갑습니다. 형제님 자매님, 목사님 저는 뉴저지에 사는 Jimmy라고 합니다.제가 사는 곳은 맨해튼에서 대략 30분 정도 걸리는 West Orange라는 시입니다.전형적인 유대인 동네인 이곳은 주민의 80%가 유대계 아메리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안식일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며, 높은 교육열과 축적된 부를 가지고 미국의 주류 사회를 이끄는유대인들이 그들의 고향인 이스라엘로 많이 이주하고 있습니다. 눈에 띄게 House For Sale이란sign이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대략 5년전 부터 1~2 가구씩 없어지더니 이번 오바바 정부가 시작할 무렵부터 지금까지 유난히 눈에 띄게, 이주하거나 이주를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고 있습니다.
6~7년간을 같은 이웃으로 살고 지내왔지만, 그들이 한평생 가꾸어 왔던 터전을 버리고 고향으로 간다는 것이 제 눈에는 생소한 일이었습니다. 갑자기 모든 것을 처분하고 한국으로 간다는 이민자들은 교포 사회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유대인 친구에게 물어봅니다왜 가는지 이유를 말해줄 수 있냐고?. 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내 고향이잖아" 예수님을 안 믿는 그들은 내가 Jesus의 'J' 만 꺼내도 No라고 합니다. "He was just a Jew."라는 단호한 생각은 이천년동안 이나 변하지 않게 지키고 사는 것 같습니다. 옆집에 90 이 넘으신 유대인 할머니가 사시는데 한번은 우연찮게 천국과 지옥에 관해서 얘기한적이 있습니다. 제가 말하기를 "할머니 꼭천국에 가세요" 라고 하자, 이름인 Sophia인 이 할머니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난 천국이든 지옥이든 상관안한다.어디를 가던지 먼저 가 있는 내 친구들이 있으니깐 심심하진 않을 것이다" 웃으면서 말씀하시는 이 할머니 역시 예수님을 모릅니다. 네가 믿는 하나님이나 자기가 믿는 신이나 모두 Same God 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귀환하는 것은 두드러지는 사실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13:5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09 13:28:04 | 이경진
최근에 한 미국 목사님이 북한 선교를 위해 바른 성경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성경 링크를 알려주었더니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선한 열매를 맺고 있는 우리의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사람이 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지요, 맞지요?
한국어로 된 바른 성경 링크를 찾기 위해 여러 날을 헤매다가 우리 것을 알고나서는 너무 기뻐한 그 목사님이 자기 교회에 북한선교링크를 마련했습니다.
북한선교링크
새벽부터 북치고 장구치고 흔들어대고 울고불고하는 이교도 방식의 선교 말고 말씀이 들어가는 선교를 합시다.
말씀은 반드시 변화를 일으킵니다.
위의 사이트를 살펴보시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 사람이 1억 명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들에게 킹제임스 성경을 알릴지 고민하고 기도합시다.
바른 말씀이 들어가면 영혼의 자유와 기쁨이 생깁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각종 허위 사실과 비방으로 킹제임스 성경의 자유 행로를 가로막는 무리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개 자기들의 어떤 틀을 유지하기 위해 성도들의 자유와 기쁨을 차단하려 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들어가면 반드시 영혼의 자유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 뒤에 북한과 같은 곳에서는 육체의 자유도 생깁니다.
이러한 자유 즉 성령님께서 성경을 통해 이루시는 자유를 막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킹제임스 성경에 누가 되는 거짓 비방을 할 때에는 단호하게 대처할 것입니다.
우리는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 오시기 전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모든 한국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같이 기도합시다.
샬롬.[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16:4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08 15:06:55 | 관리자
저는 어린 시절 미지의 시기에 어머니의 신앙의 영향을 받아서 예수님을 내 구원자로 영접했습니다. 정확하게 언제 구원 받았는지 모릅니다.그러나 내가 믿는 신앙의 디테일에 대해서는 주변으로부터 제대로 알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무척 긴 시간을 내 한 몸 구원 받은 것 하나로 만족하는 신자로 그냥 버로우-_-나 타고 지내 왔습니다. 불신자들의 수많은 질문에 답할 지식도 없었고, 나 같은 사람은 괜히 나대다가 기독교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는 것만으로 예수님을 위하는 일이고 다행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잘못된 생각이죠) 그리고 '신학 같은 골치 아픈 문제는 그냥 목사 같은 사람이나 신경쓰면 되지' 주의였습니다.
내가 가진 신앙을 그냥 혼자 꿍쳐 놓기만 하는 게 아니라(defensive), 남에게까지 내 신앙에 의한 영향을 끼치고 설득을 하려면(aggressive/offensive), 저는 개인적으로 '신앙 논리'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하나님 내지 성경에 대해서 정말로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고 증명 불가능한 몇몇 기본적인 명제에 대해서는 일단 '먼저 믿는다'를 깔고 들어가더라도, 그로부터 유도된 각종 교리들은 수학 공식처럼 분명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고 건전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 저의 가설이었습니다.
그들의 삐딱하고 어리석은 질문에 낱낱이 다 상대해 주고 끌려갈 필요는 없지만, 일부는 그래도 나라도 궁금해서 할 만한 질문이며, 공의와 사랑이라는 두 토끼를 모두 잡은 신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해답이 존재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 악인이 잘 사는 것까지는 봐 줄 만하지만, 신이 존재한다면 의인이 저 정도까지 핍박 받고 저렇게 불쌍한 애들이 비참하게 죽는 걸 저렇게까지 방관 묵인할 수 있나?-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착하게 살던 우리 조상들 그럼 다 싸그리 지옥 갔나? 뭐 그런 거지발싸개 같은 신이 다 있나?- 진짜 예수 성실하게 잘 믿는 사람은 극성스럽게 자기가 예수 믿는다는 티 하나도 안 내고 선행으로 실천한다 (이거 압권. -_-)- 개나 소나 어중이떠중이 다 성경대로 믿고 행한다고 하는데 내가 니 말을 굳이 왜 들어야 하나?
솔직히 저런 말은 왕년엔 저도 답변하거나 반박할 수가 없어서 안달 나 있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성경은 봐도 모르는 책이고 이단이 나올 수밖에 없게 책을 쓰신 건지, 원문 이후로 내용이 소실되고 변개될 수밖에 없게 자신의 말씀을 방관하신 건지... 답답했으며 제가 그런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마음 한구석은 찝찝한 채로 있으면서 그저 NIV 성경 읽고, 내가 좋아하는 주찬양 선교단 CCM을 비롯해 기독교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종교란에다가는 '기독교'라고 쓰는, 교양 있는 종교인... 이것이 20세기까지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네, 예수님, 저를 구원해 주신 것에는 감사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써 주신 책을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그 정도로 직접적으로 적용하고 써먹어야 할지... 남까지 이걸 믿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거기까지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주변에도 아는 사람이 없네요." 정도.
다만, 옛날부터 저는 '기독교 안티'에 대해서도 어디서 비롯됐는지 모를 일종의 '안티' 의식이 있었습니다. 글을 읽어 보면 웬지 싸가지가 없고 표독스럽고.. 저거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혼을 진심으로 걱정해서 참된 행복과 평안을 선사하기 위해서 신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자기 죄를 정당화하고 덮으려고 횡설수설하는 짓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죠. 그 반감으로 인해, 아무리 성경이 허술해도 저런 녀석들 말을 듣느니 수천 년을 공격 받고도 굳건히 살아 있는 성경만이 살 길이라는 희미한 감각은 있었습니다.
그 후 21세기가 돼서야 저는 잘 알다시피 뭔가 색다른 진영을 접했습니다. 개역성경에 오류가 많다는 말은 전부터도 엄청 많이 들었으며, KJV라는 성경은 thou, thee가 나오는 개역성경의 영문판뻘처럼 보이는 성경이란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KJV가 변개되지 않은 100% 절대무오한 말씀이라는 주장은 처음 봤습니다.
뭐, 주기도문· 사도신경· 교독문· 성탄절· 부활절· 십일조 등등등이 교리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은 이미 기독교 바닥 내부에서 상식으로 접해 온 것이기 때문에 아무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주의 만찬과 침례가 맞다는 것... 당연히 OK였습니다. 그런데 세대적 진리, 환란 전 휴거, 천사의 아들들(창세기 6), 전천년주의, 그리스도의 심판석 같은 것들은 처음 접했습니다. 저는 그 전까지는 성경이 말하는 종말론 자체가 정립돼 있지 않았었습니다.
제가 이 진영을 판단하는 데, "기성 교단에서 이단으로 판정하진 않았나?" 나부랭이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기독교의 체계를 세우고 신앙 논리에 도움을 주느냐였습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부터 딱 세우는 것이 뭔가 논리와 체계가 있어 보였습니다.
"형제에게 화내는 자마다"가 아니고 "까닭 없이 화내는 자"였구나!삼위일체를 증거하는 구절이 성경에 원래 있었구나!루시퍼, 갈보리가 원래 다 바른 성경에는 존재하던 용어였구나!이스터라고 안 하고 유월절이라고 하면 성경에 모순이 생겨 버리는데 이스터를 오역이라고 하는 녀석들은.. 그들이야말로 적반하장도 유분수지!이런 지식을 하나 알 때마다.. 조금만 과장 보태면 기쁨 두 배, 행복 가득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이 진영이 "어린애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에 대해 말하는 것.. 아주 건전했습니다.사형 제도에 대해 말하는 것.. 아주 건전했습니다.성경에 모순이 있는지에 대해 답변하는 것.. 아주 건전했습니다.구원의 영원한 보장과 종말론에 대해 말하는 것.. 아주 건전했습니다.교리와 교리 사이의 인과관계를 따지니까 딱 맞아 떨어지고 모순이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풀이하면 뭔가 그림이 나오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각종 사회 이슈를 성경적으로 판단하는 안목이 좀 생기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인간의 의와 하나님의 의의 차이에 대해 알고 나니까 이제야 예수 안 믿어서 지옥 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고, 기독교는 단순히 교리나 사상을 믿는 게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인격체를 믿는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경 기록자의 관점에서 시국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되니까 신앙 논리가 생기고 남들한테 내 신앙을 떳떳하게 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구원 받기는 한참 오래 전에 받았으나, 구원 받은 사람의 삶이 이렇다는 걸 느끼게 된 지는 좀 최근이라는 뜻입니다.KJV를 갓 알게 된 직후 인터넷 상으로 온갖 진영들을 돌아다녀 봤지만, 여기만치 건전한 곳은 더 찾지 못했습니다.
2003~04년 사이가 제가 그야말로 성경 '덕후'이던 때였습니다. 내 신앙은 목사나 신학자가 지켜 주는 게 전혀 아님을 인지하고, 내가 자주국방을 이뤄야겠다고 결심을 했더랬습니다. 이 좋은 성경을 남들한테 알리려면 나부터 일단 책을 다 읽어보고 변개된 성경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다 파악해 봐야겠다는 결심을 했죠.영어 KJV, 흠정역, 표준새번역을 펼쳐 놓고 1년간 성경을 다 읽었습니다. 모르는 단어를 노트에 적고 코멘트가 떠오르는 구절을 다 정리했습니다.
왕년에는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기독교 안티들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애들이 하도 한심해서 열폭도 하고 키보드 배틀-_-도 몇 차례 떴습니다.심지어는 제 홈페이지로 기독안티 사이트 운영자가 몇 번 와서 논쟁을 제안한다고 방명록에다 초청장을 남긴 적도 있었고, 일부 천주교 사이트에서 제가 요주의 인물로 욕 얻어먹고 까이기도 했습니다. ^^;;;;
그때는 제 정신 연령에 비해 너무 엄청난 사실을 많이 알게 돼서 감당을 못 했지요. "날 속이고 있었다니 이 나쁜놈들! 박살을 내 주겠어" 이런 심정이었더랬습니다.생각하면 다 부질없는 짓이죠. 지금은 진리를 사랑으로 전해야 하는 이유조차도 신앙 논리로 설명이 됩니다. (그런 이단들이 왜 생길 수밖에 없으며, 그리스도인이 왜 성경대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성품 내지 그리스도인 구원 목적에 어떤 모순이 생기는가? 구체적인 증명 과정은 생략)
지금 저는 그 시절만치 성경 덕후-_-는 아닙니다.옛날에는 귀가 좀 얇아서 누가 성경에 모순이 있다고 그러면 "어 정말?" 그러면서 막 찾아보고 따지고 했는데, 지금은 성경에서 좀 모르는 게 있더라도 정 모르면 책 찾아보면 되고, 어차피 답이 어떻게 나오든 저의 본질적인 신앙 논리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기 때문에 그런 쪽으론 덜 민감해졌죠. 일종의 안정화 단계!
예전에 비해 머리 성장보다는 영적 성장, 실천 위주로 지향 우선순위가 바뀌었으며,성경이란 어차피 사람이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는 책이라는 면모도 많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또 미묘한 영어 뉘앙스 같은 것은 어차피 한국인이 잘 모르고 답이 없으며, 원어의 표현 자체가 원래 모호하기 때문에 영어 KJV도 그에 맞춰 모호하게 번역된 거라는 경우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저 역시 성경을 다 알지는 못합니다.동명이인이 난무하는 복잡한 인명과 지명이 나오면 여전히 헷갈립니다. 이 둘은 동일한 사건인가 아닌가 하는 것 중에도 헷갈리는 것 많고.. 성전이나 성막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여전히 감이 잘 안 옵니다. KJV 영어에도 단순히 thou, thee 같은 쉬운 거 말고, 현대 영문법으로 설명이 안 되고 잘 모르는 부분이 참 많습니다.성경에서 아주 평이하게 진술하는 이 문장을 실제로 그대로 집행해 보면 그 당시에 얼마나 엄청난 짓이었을지 예측하는 깊이가 부족합니다. 이런 안목이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 같거든요.
저는 사고방식이 단순합니다. 두루두루 둥글둥글 살지를 못하고 극단적입니다. 잘 하고 못 하는 거 담을 쌓고 선 긋길 좋아합니다. 하나 동기부여를 받은 분야에 죽도록 심취해서 끝을 내는 걸 좋아하는 덕후 스타일입니다. 저는 라오디케아 스타일이 절대 아닌 것 하나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이런 제 성깔에 정말 다른 이상한 이단에 빠져서 설치고 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죠. 제가 이 정도 평정심을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003~04년은 공교롭게도 성경에만 '덕후'가 된 게 아니라 또다른 분야에도 지독한 덕후 매니아가 된지라..요즘은 최근 코레일(구 철도청)에서 제정한 사가 Oh! Glory KORAIL! 을 들으면서 진심어린 행복을 느끼는 중입니다. 가사를 소개하며 글을 맺습니다. ㅎㅎ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fv1BcR0C-mU$
1. 레일 위에 피어나는 맑은 세상, 달릴수록 푸른 강산 녹색 철도2. 고객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행복이 함께하는 국민의 철도3. 대륙 넘어 세계로 달려간다, 내일의 꿈을 여는 희망의 철도후렴: 코레일 국민 위해, 미래를 위해, 코레일 영원히 함께 할 우리의 철도[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13:5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06 18:24:01 | 김용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