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의 집과 문영권 저자는 19세기 형제교회 형제들의 유산을 따르고 연구하는게 그분들의 목적이지 성경을 따르고 연구하려는 의도가 없어 보입니다. 참고하시되 조심하셔야 합니다. 성경의 문제도 그렇고 구원관도 이상한 교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kgp9985@daum.net)
2013-05-22 12:29:43 | 이명렬
이와 관련한 설교가 제 사이트에 있습니다.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http://cjbaptist.org/bible-library/doku.php?id=%EC%9A%946.35-47
2013-05-21 20:19:27 | 이준오
다음의 말씀을 이해하면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타언어들은 믿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 아니요,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로되 대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요,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니라(고전14:22).
방언은 일차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신자들과는 사실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2013-05-21 11:09:56 | 관리자
방언(타언어)의 목적을 이해하기 앞서 먼저 이해가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점을 이해하면 방언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여깁니다.
알다시피 방언과 관련한 성경구절은 고전 14:2-5에서 나옵니다.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말하나니 아무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나 그가 영 안에서 신비들을 말하느니라. 3 그러나 대언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그들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나니 4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자기를 세우나 대언하는 자는 교회를 세우느니라. 5 나는 너희가 다 타언어들로 말하기를 원하되 차라리 대언하기를 원하노니 타언어들로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가 세움을 받게 하지 아니하면 대언하는 자가 그보다 더 나으니라."(고전 14:2-5)
이 중에서 "알지 못하는 언어"가 바로 개역성경에서 "방언"으로 번역된 부분입니다. 영어로는 unkown tongue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중 사람들이 현대의 "방언"을 붙드는 이유는 "하나님께 말하나니"와 "그가 영 안에서 신비들을 말함이라" 이 부분일 것입니다. "내가 하는 말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께서는 아시며 나는 영으로 신비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 할 부분이 바로 "신비"의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신비란, 우리가 신비스럽다고 말할 때의 그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신비는 항상 "계시되지 아니한 감추어진 진리"를 의미합니다.
그런 점으로 인해 성경에서 "신비"와 함께 사용되는 단어는 거의 대부분이 "알다"와 "계시"입니다. 감추어진 진리가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계시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신 것입니다. 다음의 성경구절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눅 8:10, 킹흠정 그분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왕국의 신비들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유로 되었나니 이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1:25, 킹흠정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에 대해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곧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부분적으로 눈멀게 된다는 것이라.
롬 16:26, 킹흠정 이제는 밝히 드러났으며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대언자들의 성경 기록들을 통해 믿음에 순종하게 하려고 모든 민족들에게 알려지게 된 신비의 계시에 따라 너희를 굳게 세우실 분
고전 13:2, 킹흠정 내가 대언하는 선물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이해하며 또 모든 믿음이 있어 산을 옮길 수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고전 15:51, 킹흠정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리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엡 1:9, 킹흠정 친히 자신 속에서 작정하신 자신의 크신 기쁨을 따라 자신의 뜻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으니
엡 3:3, 킹흠정 곧 계시로 그분께서 내게 그 신비를 알리셨나니 (그것은 내가 전에 몇 마디 적은 것과 같으니라.
엡 3:4, 킹흠정 그것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읽을 때에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바를 깨닫게 되리라.)
엡 3:5, 킹흠정 그분께서는 이제 자신의 거룩한 사도들과 대언자들에게 성령을 통해 이 신비를 계시하신 것 같이 다른 시대들에서는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그것을 알리지 아니하셨는데
엡 3:9, 킹흠정 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감추어져 온 이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든 사람들이 보게 하려 하심이라.
골 1:26, 킹흠정 이것은 곧 여러 시대와 여러 세대로부터 감추어졌으나 이제는 그분의 성도들에게 드러난 신비에 관한 것이라.
골 1:27, 킹흠정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리려 하시는데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
골 4:4, 킹흠정 이것은 내가 마땅히 할 말을 하여 이 신비를 드러내고자 함이라.
그렇다면 성경에서 방언을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했는지 보십시오.
방언이 가장 먼저 주어진 때는 오순절 날로 그 때 방언을 받은 제자들이 무엇을 선포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우리 언어들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말함을 우리가 듣는도다"(행 2:11)
그 다음 방언이 등장하는 것은 사도행전 10장입니다. 베드로를 포함하여 이방인들의 구원을 믿지 못했던 유대인들을 위하여 성령께서는 이방인들에게 방언을 허락하심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을 크게 높입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타언어들로 말하며 하나님을 크게 높이는 것을 그들이 들었기 때문이더라."(행 10:46)
그 다음 방언이 등장하는 것은 사도행전 19장입니다. 오직 요한의 침례만을 알고 성령님의 침례에 대해 알지 못하던 사람들을 위해 바울은 그들을 위해 재 침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방언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방언을 받고 한 일이 무엇인지 보십시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님께서 그들 위에 임하시므로 그들이 타언어들로 말하고 대언하니라."(행 19:6)
이들은 방언을 가지고 대언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약성경이 완전히 주어져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가 드러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용하여 그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언"의 역할입니다. 성경이 완전히 주어지기 전 "대언자"의 역할은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였습니다. 문제는 대언자는 자기의 말들을 알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를 전해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복음이 여러 지역으로 전파됨에 따라 그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하나님의 계시를 증거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해 "방언"의 은사를 허락하셨습니다. 방언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계시되지 않은 감추어진 진리를 증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왔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여러가지 은사들이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럼에도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들을 그 목적에 맞게 사용하지 못했고 자기들이 가진 은사들을 남용하였습니다. 그 결과 교회 안은 혼란스러워졌고 바울은 그들의 남용되는 은사들의 사용을 바로 잡고자 고린도전서 14장을 기록하였습니다.
대언과 마찬가지로 방언은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알립니다. 그러나 방언은 "통역"하는 자가 없다면 그것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방언의 은사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이 세움을 얻게 하려면, 그에게 방언의 은사가 주어진 목적에 따라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놀라운 계시를 전해 주던가 아니면, 교회 내에서 "통역자"를 통하여 그에게 계시된 것을 전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방언은 하나님께서 사람안에서 그의 영을 통하여 역사하심으로써 그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하나님의 계시를 전해 주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전 14:21에서 인용한 말을 보십시오.
"율법에 기록된바, 내가 다른 언어들과 다른 입술들을 가진 사람들을 써서 이 백성에게 말하리라.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였으니"(고전 14:21)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대언과 방언을 같이 말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방언과 대언은 같은 목적으로 주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전 13:10의 완전한 것이 오면에 대해서는 저 역시 그것이 완전한 성경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의 견해는 문맥의 의미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몸같이 되는 것"을 의미할 것이라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대언과 방언은 완전히 그쳤는가? 저는 그 대답을 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부분들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구절을 드리고자 합니다.
벧후 1: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도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속에 떠오를 때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빛을 대하듯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
성경은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입니다. 그 어떤 대언이나 방언이라도 성경보다 더 확실한 대언은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2013-05-21 11:05:29 | 관리자
영어 성경은 몇 종류나 될까요?
이것은 사실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1500년 이후에 나온 영어 성경은 약 900종류가 된다고 합니다.
http://record.americanbible.org/content/bible-qa/number-english-translations-bible
웨이트 박사의 통계에 의하면 150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출간된 영어 성경전서와 신약전서는 약 428개라고 합니다.
http://truthinreality.com/2013/03/12/the-four-fold-superiority-of-the-kjv-bible/
위키 백과를 보니 19세기 이후의 현대 영어로 된 성경전서와 신약전서는 약 100개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Modern_English_Bible_translations
그러므로 “영어 성경은 200개 이상이다.”라고 말하거나 혹은 “300개 이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다 옳습니다.
이중에서 현재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성경은 KJB, NIV, NASB, NKJV, ESV, RSV, NRSV, Living Bible, Amplified Bible, ASV, CEV, Message 등입니다.
이렇게 영어 성경이 많아도 KJB를 제외한 나머지는 다 같은 종류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의 성경과 ‘마귀에 의해 약 7%가 변개된 성경’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개수가 아무리 많아도 항상 한 종류의 성경과 또 다른 종류의 성경이 일대일로 대립하고 있음을 기억하면 좋을 것입니다. 이 성경 전쟁은 실제로 1881년에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80년 이후부터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 이후부터 약 23년 동안 동일한 성경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바른 성경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우리가 교만히 행하지 않으면 흠정역 성경이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최후 보루로 남을 것입니다.
이 성경 사역이 바르게 펼쳐지도록 기도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샬롬
2013-05-20 22:51:14 | 관리자
상단 우측에 구글 검색이나 게시글 검색을 통해서 필요하신 자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래 글들을 참고하십시요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466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08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4&write_id=63
2013-05-20 07:22:50 | 답변팀
현시점에 개역개정 성경이 너무 많이 통용되다보니 흠정역 이란걸 잘 몰랐습니다.목사님 설교를 듣고 궁금한점이 있어 질문 드립니다.네슬레 헬라어성경이 소수본문(?) 이라는 말씀에,신약 원어성경ᅟ은 현재 어떤 버전이 가장 좋을까요?킹제임스 흠정역 성경도 번역본인데 원문의 내용을 그대로 아주 잘 보존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2013-05-19 17:13:09 | 김종화
안녕하세요?
이번에 진리침례교회 김영균 목사님께서 히브리서 연구라는 좋은 책을 내셨습니다.
저자는 '율법이냐, 은혜냐' 등의 책을 지은, 유명한 M.R. 디한 박사입니다.
히브리서 6장과 10장을 인용하며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책에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이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지금까지 본 히브리서 주석서 중에서 가장 실제적인 책인 것 같습니다.
이 좋은 책을 무료로 볼 수 있게 PDF 파일을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될 줄로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5-18 10:16:06 | 관리자
성경 말씀을 자세히 알고 싶어하는 김기덕 형제님의 열정과 관심이 여기에 있는 많은 형제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충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동방에서 온 지혜자들의 말을 듣고서 헤롯은 그리스도가 어디서 태어날지를 물었습니다. 수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은 미가 대언자의 말을 인용하며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답했습니다(마2:5-6). 그들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 경배하러 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벧엘에 있던 대언자들, 여리고에 있던 대언자들은 주께서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가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왕하2:1-6). 그러나 그들은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러 따라가지도 않았고, 오히려 사람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틀림없이 엘리야는 어느 산이나 골짜기에 떨어졌을 거라고 믿고 실종된 엘리야를 수색, 구조하기 위해 사람들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왕하2:16-18). 그들은 지식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마귀들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보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마귀들이 예수님을 믿었던 것은 아닙니다(눅4:41).
이런 말씀들을 보면 "지식"이 반드시 "믿음"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지식적으로는 알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겁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복음이 선포되었으나 선포된 그 말씀이 그것을 들은 자들 속에서 믿음과 섞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들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하였느니라(히4:2).
2013-05-17 09:04:16 | 김문수
김문수목사님을 비롯해서 여러 형제님들이 좋은 말씀들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죄송하지만 제가 알고자 하는 것만큼 제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지는 못한것 같습니다.
전 생각하기를 적은 죄를 지은 사람과 많은 죄를 지은 사람이 받는 지옥의 형벌이 다르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목사님 글 중에서 알면서도 믿지 않는 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 건지요?
알면서도 믿지 않을수가 있는 건지요?
조지 와일드 교수님 그런 사람을 말하는 건가요?
아님 믿다가 타락해서 믿음에서 떨어진 사람을 애기하는 건가요?
제가 질문한 내용은 기존 교회에서 전혀 듣지 못한 것이라 질문을 올렸던 것이었습니다.
이 자유게시판을 통해서 많은 질문에 성실히 답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013-05-17 02:26:17 | 김기덕
안녕하세요?
이것은 아내를 통해 아침에 들은 글입니다.
이 글을 읽고 어떤 자매(?)는 "이렇게 무서운 글에 은혜가 있느냐?"고 했다고 합니다.
이 글이 무엇이 그리 무서울까요?
지극히 정상적인 글인데 말입니다.
신비주의, 은사주의, 기복주의에 빠져 정신줄을 놓고 사는 분들에게는 무서운 글일지 모르지만
정상적으로 믿음 생활 하는 이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는 극히 정상적인 글입니다.
서울 사랑의 교회의 어려움이 잘 해결되면 좋겠습니다.
샬롬
(원 저자가 개역성경을 썼으므로 성경 구절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에센스만 보시기 바랍니다.)
----------------------
불의 앞에 오랜 침묵은 가장 비겁한 무언의 동조이다.
불의 앞에 오랜 침묵은... 죄를 부추기는, 가장 비겁한 무언의 동조이다.계속해서 오랫동안, 그대로 조장 되었던... <비겁한 침묵의 악들.>
침묵에는 보이지 않는 숨겨진 다양한 언어의 색깔과 표현들이 있다.
어떤 사회나 공동체이든 함께 해야 할 목표와 방향들을 정해야 될 때
그 의견들이 제시 되 면은, 그에 따라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들을 말하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침묵으로 일관 하게 된다.
그 침묵 속에는...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그 뜻을 지지하고 함께 동참한다는 긍정의 의미가 들어가 있고
그와는 정 반대로, 나와는 뜻이 다르기에반대의 입장을 표명하는 수단으로 그 침묵들을 쓰기도 하며이것도 저것도 그다지 모두 다 관심이 없기에 그대로 그렇게 침묵들을 하기도 한다. 또, 우리의 여러 상황들과 오랜 정서 상조용히 있는 침묵들을, 미덕처럼 여겨왔고 여겨져왔었다. 한 두 번씩은 모두 다 경험들을 해 봤던 일들...
그것은 말하지 말아야 할 때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말해서 생겨났던 어려운 일들
또 굳이 빠르게 행동하고 움직이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들
그러함에도...그러나 정작 말해야 할 때 비겁하게 말하지 않아서또 분명하게 행동하고 움직여야 할 때 임에도 가만히 있어서불의와 불법의 타오르는 위험한 세력들을 더 크게 확장 시키고 확대시키는, 죄를 부추기는 일들에... 함께 덩달아 수없이 무언의 동조를 해 왔던 일들,
세상 그 어디, 그 어느 곳보다...불의와 불법들 앞에, 그대로 말하지 않는 비겁한 침묵으로 인하여 수많은 악들을 무방비 상태로 조장하는 곳들이 있다면...그 곳이 바로 이 시대 전혀 부끄러움들을 알지 못하는 우리들의 벌거벗은 교회들이 아닐까?
오랫동안 하나님께선 불의와 불법 수많은 악들 앞에서그 악의 근원인 이유와 원인들 뿐 아니라침묵하는 절대 다수에 대한 분명한 의지와 뜻들도 계속해서 보내 오셨다.그 무지함과 안타까운 많은 연약함들 속에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꼭꼭 집어서 다 드러내시고 나타내 보이시고 있는데...
지금은, 침묵 할 때가 아니고... 절대로 결코, 침묵해서도 안 된다.
"주께서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사도행전 18:9,10>
교회들 속... 수많은 불의와 불법들이 일어 날 때마다하나님은 계속해서 쉬지 않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속에서 수도 없는 무지함 가운데그 안에서 계속 되어지는 무분별함과 무책임들 가운데끊임없이 일어나는 불의와 불법 속에 타락한 성으로이 땅의 주님의 교회들을 이 지경까지 만들어 버렸고
설령, 불의와 불법들 앞에 정확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와 뜻들을 알았다 해도서로의 기득권들과 더러운 이권들이 오랜 세월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 설 켜눈감고, 입을 다물고, 철저하게 침묵함으로...끓어오르는 탐심과 탐욕으로, 오랜 때가 찌들어가는 흉칙한 성으로이 땅의 주님의 교회들을 이렇게 까지, 이렇게 되도록 망가트려 버렸다.
이제, 이 상황들 속에서 절대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그 어느 것보다... 불의와 불법들 앞에 오랜 침묵은, 가장 비겁하고 비참한 무언의 동조이다.이제 곧 이어, 그 책임들을 너무나 선명히 하나님은 분명하게 하나하나 물으실 것이다.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보라 이 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하리라." <이사야65:2~7>
이제, 하나님의 그 모든 때가 되면
참으로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영적 무지함 들과 무관심들로 함께 빚어 만들어 놓은 교만함의 축제들로 높이 쌓아올린 타락한 성들...
그 안에서... 그 속에서... 수없이 벌어지고 있는 악한 패역들의 끈질긴 고리들...
정작 말해야 할 때 비겁하게 말하지 않아서 불의와 불법의 타오르는 세력들을 더 크게 확장 시키고 확대시키는 일에 무언의 동조들을 해 왔던 수많은 일들
세상 그 어디, 그 어느 곳보다 더 오랫동안 진실들을 꼭꼭 감추고 비겁한 침묵으로 인하여 수많은 악들을 무방비 상태로 조장하는 곳들이 있다면...
그 곳이 바로 이 시대 무너질 대로 무너지고 타락할 대로 타락한 우리들의 벌거벗은 몸, 그 수치와 부끄러움을 전혀 알지 못하는 교회들이 아닐까?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 <이사야5:12,13>
정녕 눈앞에서 수많은 불의가 행하여지고 도적질한 영적 권력의 남용들이 자행되어도알면서도, 보면서도, 그 권력의 폭력들 앞에서자신들의 이름과 영역, 지위와 위치들을 모두 잃어버릴까
노심초사 아무 말 하지 못하고도리어 그 권력 앞에 아부하고, 아첨하며, 묵인해 버리는 정녕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많은 모습들이 그동안 얼마나 비참 하도록... 비겁하고 비굴하게 살아왔던가.
오늘날 우리 교회들의 문제와 비리가 무엇인지는 그 권력의 혜택들을 누리고 있는 기득권들이 더 분명하고 정확하게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혜택 받는 영향력의 달콤함들 때문에 모두 다 쉬쉬쉬하며 꼬리들을 감추고 자신들의 비밀스러운 탐욕의 방들에 꼭꼭 숨어 있는 것은 정녕 아닌지....
"악을 선하다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 진저." <이사야5:20>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 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어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할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8:12>
그러나 오래도록, 오랫동안 이 패역 앞에 긴긴 침묵을 깨고 하나님의 잃어버린 영광과 이름을 위해 하나님 스스로 일어나시리니... 그 때가 되면 불의와 불법들을 알면서도 도와주었던 자와 도움을 받았던 자 모두가하나님의 엄중한 심판대의 채찍들 앞에 반드시 그대로 두렵게 서게 될 것이다.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 <예레미야 6;30,31>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려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이사야 31;3>
원문: http://m.cafe.daum.net/howsarang/8Xq5/3988?listURI=%2Fhowsarang%2F_rec%3FboardType%3DM&boardType=M®dt=20130514032134
2013-05-16 23:25:21 | 관리자
역시, 김문수 목사님께서 정확한 말씀 적용으로 참된 진리의 말씀을 더 깊이 깨닫게 하여 주셔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참되고 정확무오 하신가를 마음속에 한번더 새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13-05-16 14:59:41 | 김건
네, 여러 형제님들이 답을 올려주셨네요.
아래 말씀들도 함께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주인의 뜻을 알고도 자기를 예비하지 아니하고 주인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그 종은 채찍을 많이 맞되 알지 못하고 채찍 맞을 일들을 한 자는 적게 맞으리라. 누구든지 많이 받은 자에게는 사람들이 많이 요구할 것이요, 사람들이 많이 맡긴 자에게는 더 많이 달라고 하리라(눅12:47-48).
내 형제들아, 너희는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더 큰 정죄를 받을 줄 너희가 아느니라(약3:1).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진리를 듣고, 알면서도 믿지 않고 따르지 않은 자와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사람들 사이에 그 책임에 있어서 차등을 둔다는 뜻이지 몰랐기 때문에 책임을 면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세상의 창조 이후로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롬1:20).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타오르는 불로 징벌하실 때에 그리하시리라. 그들은 주의 앞과 그분의 권능의 영광에서 떠나 영존하는 파멸로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1:8-9).
2013-05-16 14:28:11 | 김문수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네게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결코 네게 있지 아니하였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에게는 더 큰 죄가 있느니라, 하시니라. (요 19:11)
2013-05-16 09:27:26 | 답변팀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만약 큰 죄를 지은 사람과 작은 죄를 지은 사람을 똑같은 벌로 다스리신다면 공평하지 못한 일입니다.
갈6:7 속지 말라. 하나님은 조롱당하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마찬가지로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죽어서 지옥에 간 사람과 여러 번 듣고도 자기 마음으로 거부한 사람이 갈 곳의 등급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마11:20-24 그때에 그분께서 능력 있는 일들을 가장 많이 행하신 도시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도시들을 꾸짖기 시작하시니라.
고라신아, 네게 화가 있을지어다! 벳새다야, 네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 안에서 행한 능력 있는 일들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오래 전에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속에서 회개하였으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더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여졌으나 지옥에까지 떨어지리라. 네 안에서 행한 능력 있는 일들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것이 이 날까지 남아 있었으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더 견디기 쉬우리라.
히10:28-29 모세의 율법을 멸시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인해 긍휼을 얻지 못하고 죽었거늘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발로 밟고 자기를 거룩히 구별한 언약의 피를 거룩하지 아니한 것으로 여기며 은혜의 영께 무례히 행한 자가 당연히 받을 것으로 생각되는 형벌은 얼마나 더 극심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해 보라.
알 레이시의 천국과 지옥 바로알기(그리스도 예수안에)라는 책에 더 자세한 설명이 있으니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찾아보고 생각해 볼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3-05-16 09:13:38 | 유준호
아래 링크중 천국과 지옥 바로알기 책이 있습니다.PDF화일로 무료로 배포하는 책 입니다.제5장 지옥의 등급을 참조 하시면 도움이 되겠네요.http://keepbible.com/Pds1-1/View/4Rp
2013-05-16 09:10:24 | 허광무
정목사님 설교중 제가 들은 것인데요(지옥의 등급)
어떤 사람이 복음의 빛을 많이 받았는데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면
지옥의 고통이 더 클 것이고 복음의 빛을 적게 받았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지옥의 고통이 덜 할 것이라는 설교를 들었는데요.
그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는지 제가 알 수가 있을까 해서요?
알려주셨음면 감사하겠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5-20 22:56:5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3-05-16 05:33:09 | 김기덕
안녕하세요?
지인을 통해 옥성호 형제의 귀한 글 한 편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런 글은 그 자체가 한 편의 위력 있는 설교입니다.
바른 것을 선포하는 좋은 목사가 많이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
위험한 설교
며칠 전 만난 친구에게 그 친구가 다니는 교회,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교회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더군요.
“그 목사님 설교를 한 마디로 하면 ‘안전한 설교’라고 할 수 있지. 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안전한 설교....다른 말로 하면 아무런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없는 설교를 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설교는 그 어떤 영혼도 결코 변화시키지 못하는 그런 설교를 말하기도 합니다.듣는 내내 적당히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지만 교회 건물을 나서는 순간 내 머리에서 사라지는 설교, 내 속에서 그 어떤 고뇌와 갈등도 일으키지 않는 그런 설교.....바로 안전한 설교입니다.
우리는 복음서의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그 분의 가르침은 실로 ‘안전한 설교’와는 거리가 멀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양분되었습니다. 분노가 극에 달해 그를 죽이려고 하던가 아니면 그의 말씀에 인생 전체가 변화되거나....둘 중 하나였습니다.
안전한 설교를 달리 표현하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설교’를 말하기도 합니다. 만약 지금 이 글을 목회자들 중에 보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의 설교는 안전한 설교인지 아닌지를 말입니다. 나의 설교가 과연 ......성도들의 현실과는 동 떨어져 저 멀리 구름 위에서 들리는 월요일 학교 조회 시간의 ‘교장 선생님 훈시’와도 같은 그런 설교인지 아닌지 말입니다.
그러나 안전한 설교로 가득찬 교회는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안전한 설교에 물든 목회자와 그런 설교를 듣는데 익숙해진 성도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다름아닌 ‘현상 유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일상의 평온함을 깨는 어떠 시도들에 대해서도 강한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일상의 평온함을 유지해온 것이 비록 ‘거짓과 기만, 위선’이었다고 해도 그들은 관계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참과 거짓이 아닌 일상이 제공하는 기득권일 뿐이니까요. 따라서 그런 사람들에게 참과 거짓을 놓고 아무리 설명해도 그것은 말 그대로 소 귀에 경읽기일 뿐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사실을 모르셨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위험한 설교를 하면 할수록 그에게 다가오는 것은 더 큰 위험과 더 많은 적들이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위험한 설교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비록 33년간 짧은 생이었지만 자신의 ‘위험한 인생’을 죽는 바로 그 순간까지 이어갔습니다. 우리가 이런 예수님을 볼 때 ‘위험한 신앙’을 가지고 ‘위험한 인생’을 사는 것은 피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내가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감당해야 할 내 삶의 몫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이 외쳤던 ‘위험한 설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설교는 점점 더 듣기 힘들어집니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설교는 점점 더 우리의 예배 속에서 사라지고 우리 주변은 ‘동업자 의식’에 젖은 ‘안전한 설교’, ‘믿음의 명문가를 만들자’라는 식의 안전함을 넘어 실로 하나마나한 헛소리 설교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명심합시다. 이 세상은 ‘언제나’ 위험한 신앙을 가지고 위험한 인생을 살아간 사람들로 인해 바뀌었고 발전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나는 오늘 아침 이 메일을 통해 내가 갈급하던 ‘위험한 설교’를 하나 들었습니다. 그 설교는 다름 아닌 사랑의교회 문제들과 관련해 한 집사님이 내게 보낸 장문의 글었습니다. 그 메일은 다음의 문장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몇 년전 제 초심과 각오를 놓지 않으려 합니다. 지난 시간들을 뒤돌아보면 지쳐서 다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있지만...그래선 안되겠지요?”
이 분의 글은, 이 분의 인생은 그 자체로서 내게 하나의 ‘위험한 설교’입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강단 위에서 외쳐지는 ‘위험한 설교’가 실종되어가는 만큼 나는 내 주변에서 삶으로 외쳐지는 ‘위험한 설교’들을 더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그 설교를 들을 때마다 신앙은 입으로 떠드는 게 아니라 삶으로 사는 일이라는 기본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원문: http://m.cafe.daum.net/howsarang/Dxch/60?listURI=%2Fhowsarang%2FDxch%3FboardType%3D
2013-05-15 14:56:30 | 관리자
자료를 보니 잘 만들어진 것을 알 수가 있겠네요
이렇게 준비하려면 꽤 많은 시간과 정리하는 수고가 필요했을 텐데 좋은 자료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활용하겠습니다.
2013-05-14 13:18:59 | 노영기
좋은 자료를 공유해 주셔서ㅕ 감사합니다.
앞으로 좋은 글도 많이 남겨 주세요.
샬롬
2013-05-14 09:29:48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