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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까딱 잘못하면 침례교만 교회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저 역시 침례 성도지만 이런 극단적인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캐롤의 피흘린 발자취가 주장하는 내용이 그런 것입니다. 그것을 랜드마크주의라고 합니다(이것은 침례교회의 교황주의입니다). 내용이 그럴듯 해 보이지만 침례교회만 그것도 독립침례교회만 교회라는 주장은 성경에 없습니다. 또 교회가 교회를 낳아 연속적으로 이어져 온다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바른 교회의 개념이 이어져오고 있지 지역 교회가 이어져 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양쪽의 극단을 조심해야 합니다. 천주교, 칼빈주의, 랜마크주의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만 교회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데서는 자유가 억압을 당합니다. 성경의 교회가 무엇인지 보고 늘 내 자신의, 우리 교회의 부족함을 살펴보면서 바르게 행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칼빈을 지적한 것은 이런 예를 보면서 우리 자신을 살펴보자는 취지입니다. 자기의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무력과 압제를 가하는 것은 성경의 기독교가 아닙니다. 특히 한국의 칼빈주의자들이 완고한 자세를 버리고 성경에 순종해야 함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감사합니다.
2010-05-08 11:48:23 | 관리자
저는 요즘에 교회사를 들으면서, 나 한테는 저런 요소가 없나? 혹시 나도 아니라고 하면서 그러지않나? 하며 나를 되돌아봅니다. 사탄은 교묘해서 사람을 정말 잘 속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죄인이라서 자꾸 자기를 세울려고 합니다. 역사를 배우는 목적 중에 하나는 교훈을 얻기 위함이지요. 하지만, 올바른 역사를 배울 때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잘못된 역사, 자화자찬으로 쓰여진 역사를 배우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읍니다. 그래서 성경이 거짓없이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에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2010-05-08 11:31:59 | 홍승대
우리는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형제님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요 귀한 간증을 교훈삼아 앞으로 반복되는 슬픔(?)이 없도록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형제님의 고백이 말로는 쉽지 정말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그리 쉽지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비슷한 경험들이 있는 사람들은 형제님의 마음을 100% 공감할것 입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2010-05-08 10:35:21 | 송재근
흠... 어디까지가 “이단인 자는 한두 번 훈계한 후에 거절하라”이고, 어디까지가 형제 자매인지... 참 헷갈림을 느낍니다. 어째 거기에 그런 식으로 방해의 손길이 뻗치는지...;;; 형제님, 늘 좋은 글과 소식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0-05-08 10:23:32 | 김용묵
저는 칼빈이 저지른 것에 대해서 킹 제임스 성경 교회들을 만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제쳐놓고 인간의 교리를 더 높이니 참 안타까울 뿐입니다. 거듭났다고 구원, 구원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교단을 만들어 놓고 [우리 목사님이 그러는데........우리 목사님이 이러는데........]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올바른 종말론과 교회론을 가르쳐야 합니다.] = 아멘입니다.
2010-05-07 21:19:38 | 시님사람
  내 양들을 먹이라.  (요21:15-17) 사역자에 있어서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네 것, 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주님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역을 하다보면 주님의 것으로 만들기보다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할 적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자주 생각나는 형제분이 있는데 그 형제님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내가 저지른 잘 못됨에 돌이켜 보게 됩니다. 그 형제님은 제가 거듭나기 전에 저희 교회에서 집사로 있었는데 후에 큰 시내로 돈벌이 나가서 한 십년동안 소식이 없던 형제였습니다. 그런데 십년이 넘은 어느 날 저를 찾아왔고 또한 그 형제와 교제를 나누었는데 그 형제가 그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 형제님은 제가 사는 곳이 길림성인데 길림성 성소재지인 장춘시에서 돈벌이를 하면서 종교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 형제님이 구원을 받고 너무 기뻐했고 그 형제님이 구원을 받음으로 인하여 형제님 아내도 구원을 받았고 또한 장춘시에 여러 사람이 연결이 되어서 약 열 명 정도가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 작은 모임이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그 형제님이 구원을 받고 제가 자주 장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전했는데 정말 그곳에 갈 적마다 복음을 전할 혼들이 연결이 되었고 또한 교제가 참 잘 되어 주님께 감사가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물질 면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님이 번마다 채워주는 경험을 하면서 참 좋았습니다. 장춘시에 형제님이 구원을 받고 여러 형제자매님이 구원을 받으면서 자연적으로 모임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장춘시는 제가 사는 곳에서 약 3시간 반 정도 차를 타고 가야하고 제가 자가용도 없기에 매주 다니며 말씀을 전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못가는 주일 모임 때는 그 형제님에게 들을 말씀 씨디를 주어서 듣게 했고, 또한 제가 설교한 것을 타자로 해서 모임 때마다 형제님이 그것을 놓고 모임을 가지군 했습니다. 이렇게 지내다가 제가 킹 제임스 성경을 알게 되었고 킹 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독립침례교회들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형제님도 킹 제임스 성경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모임에서 함께 킹 제임스 성경으로 모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 형제님은 가정생활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형제님이 인간적인 생각이 들어갔나 봅니다. 후에 장춘에 어떤 자매님을 통해서 그 형제님이 저 아닌 한국에서 구원파라고 하는 그쪽 목사님들을 모시고 말씀을 들었고 또한 돈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형제님에게 인차 전화를 했더니 그 형제님이 절대 아닌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 후부터 그 형제님과의 교제를 끊게 되었고 그 일로 말미암아 장춘에 형제자매님들과 교제가 끊기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그 일을 생각해보면 제가 너무나도 잘못 했단 마음이 듭니다. 저는 내 편을 만들려고 했지 주님의 편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가 가정 형편이 어렵다 보니 인간적인 생각이 들어서 돈을 받고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그때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그 형제의 잘 못됨을 용서해주고 인내로 기다리면서 말씀을 계속 전해주었다면 아마 그 형제님을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 일로 그 형제님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렇게 사역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배반할지를 미리 알았고 베드로가 세 번 자신을 부인할 것까지도 미리 알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끝까지 제자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주님을 배반하고 도망간 제자들을 향하여 또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용서가 결국 제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생명을 바쳐서 복음의 일을 하게 하는 훌륭한 능력의 일군들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를 찾아와서 [내 양들을 먹이라.]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참된 목자는 양을 헤치는 사나운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싸워 양을 지키는 목자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내 양들을 먹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양은 주님의 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형제자매님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온전한 양을 우리에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양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목자가 필요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형제자매님을 맡겨주었다면 우린 끝까지 그 형제자매님들을 돌봐줘야 합니다. [내 양들을 먹이라]는 것은 섬겨주라는 것입니다. 내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섬겨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부족함이 있지만 그 부족함을 끌어안고 내가 섬김으로 주님의 편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는 것이 참된 사역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이 다시 묵상이 되면서 제가 전도를 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이 제가 맡겨준 형제자매님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끝까지 섬겨주는 것이 참된 사역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게 되었고 또한 그 형제님과 그곳에 형제자매님들을 버린 제 잘 못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3: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07 21:03:15 | 시님사람
장로교회의 창시자로 알려진 칼빈은 무자비하게 자기의 반대자를 많이 죽인 사람입니다(적어도 80여 명을). 구약시대의 장로 체제와 신정 정치 체제를 제네바 시에 도입하여 신약 교회가 아니라 구약의 신정 정치 이스라엘 체제를 실현하려 한 사랍입니다. 그래서 그는 천주교의 교황과 같이 제네바의 치리자가 되어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핍박하고 압제했습니다.    교회사 강좌 37, 38은 장로 교회의 시작과 당회의 시작, 폐해 등을 다룹니다. 어디서도 이런 역사는 잘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분명한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어떤 분파의 창시자와 기원을 알면 모든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교회사 37 교회사 38 교회사 39 교회사 40   칼빈 사상의 핵심이 바로 신정정치체제의 구현인데 이것은 예수님이 전혀 원치 않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이후에는 성전 휘장이 찢어져서 새로운 신약시대가 열렸습니다.   따라서 칼빈주의는 처음 시작부터 단추가 잘못 끼어진 '비뚫어진 신학체계'입니다. 교회가 다스리는 왕국을 천년왕국으로 이해하는 개념은 연옥의 창시자요, 배도자인 어거스틴이 기초를 마련해 주었고 천주교회가 완성을 했으며 여기서 나온 칼빈이 프로테스탄티즘을 통해 구현하려 했습니다.   이런 데서는 무천년주의를 주장합니다. 육적인 유대인과 중동의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구약의 중요한 부분을 다 영해합니다. 교회가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이런 체제는 하나남이 원치 않는 체제이며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체제입니다. 16세기의 이런 체제를 지금 21세기에 구현하려는 칼빈주의자들이 우리 주변에 도처에 너무 많아 안타깝습니다. 이들은 성경을 믿지 않고 칼빈의 말을 믿으려 합니다. 칼빈이라는 틀을 통해서만 성경을 보려 하므로 이들에게는 성경이 꽉 막힌 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역사를 배워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이들이 역사를 잊어버리고 맙니다.   칼빈이 아니라 성경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인 바울을 따라갑시다. 그것이 신약 교회가 해야 할 입니다. 어거스틴, 루터, 칼빈, 에드워즈, 오웬 등을 목자로 삼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큰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바울 신학이 모자라서 어거스틴, 오웬 신학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반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에드워즈처럼 살 수 없을까 한탄하지 말고 바울을 거울 삼기 바랍니다. 바울의 서신서에서 무엇이 부족하기에 이들의 책을 교과서로 삼아야 합니까?   특히 칼빈주의 청교도들은 이 점에서 회개하고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올바른 종말론과 교회론을 가르쳐야 합니다.   2010년 5월 14일에 이어서 적습니다.   교회사 39, 40과에서는 칼빈과 세르베투스 이야기 그리고 칼빈주의의 문제점을 살펴봅니다.   어떻게 구약의 장로 제도를 도입하고 신민 정부의 힘으로 교회를 치리하려 하며 강압적인 예정론을 통해 선교의 필요를 막아 버린 칼빈주의의 핵심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이제 성경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이때에 을 성경을 읽고 거기로 돌아가는 일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3: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07 14:14:28 | 관리자
교회사 38 정수영 목사님 목사님이 저술한 새교회사 1과 2를 중심으로 신약 교회의 발전과 타락의 역사를 공부합니다. 참된 신약 교회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35회부터는 칼빈과 장로교회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38회에는 제네바에서 칼빈의 만행에 대한 기록이 들어 있습니다.
2010-05-07 13:55:23 | 관리자
교회사 37 정수영 목사님 목사님이 저술한 새교회사 1과 2를 중심으로 신약 교회의 발전과 타락의 역사를 공부합니다. 참된 신약 교회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35회부터는 칼빈과 장로교회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2010-05-07 13:54:16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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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6 21:10:39 | 오인용
형제님 역시 디자인에 일가견이 있으신 분이니 그쪽 사정을 잘 아시는군요. ^^;; 네, 산돌의 설립자는 목사를 겸직하는 분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대단합니다. 사명부터가 너무 노골적이지 않으면서 은근히 기독교적인 냄새가 나잖아요. 이름을 무척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체'도 산돌이니까 만들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안에 흠정역도 초창기에는 머리말에 "이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주축이 되어 세워진 산돌 커뮤니케이션의 서체를 사용했으며"란 문구까지 있었답니다. 3판부터는 다 윤명조로 바뀌었지만 말이죠. 문화바탕과 문화돋움만으로 문서를 만들어 보면 중후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는 건 좋은데, 말씀하신 것처럼 한 197, 80년대 문서 같고 심지어 북한-_- 삐라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나름 중앙 정부 명의로 배포된 서체인데 널리 쓰이지도 않고 더구나 여증들의 전속 서체로 전락하니 더욱 이질감이 커지고 있어서 안습입니다. =_=;; 아울러 저는 코레일 전속 서체가 등장하기 전 우리나라 간이역 역명판에서 쓰이던 그 특유의 둥근 고딕을 좀 디지털 서체로 만들고 싶은 부담을 품고 있기도 합니다.
2010-05-06 18:59:09 | 김용묵
제 글은 좀 매니아/덕후스러운 편인데, 늘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무래도 여증들 간행물의 본문 서체 이름보다야, 여증들의 교리가 왜 저주받을 이단인지 아는 게 더 중요하죠.
2010-05-06 18:58:33 | 김용묵
김 형제님에게 이런 식견이 있으셨군요.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글꼴은 컴퓨터 계열과 디자인 계열의 역사가 많이 다릅니다. 저도 사진식자로 수작업 하던 시절이 길었었지요. 문화바탕체는 처음 듣습니다. 마치 국민학교 때 네모칸 쓰기공책에 견본으로 나오는 명필의 펜글씨 같네요. 이 글꼴은 보기에 따라 고풍스럽고 복고풍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제 눈에는 북한의 삐라 같은 느낌도 드는군요. 여호와의 증인 때문에 벌써 선입견이 생긴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글은 글꼴 만들기가 매우 힘들지요. 만들어 놓으면 모두 카피되고, 시간과 인력도 많이 듭니다. 영어는 대소문자 각각 26개와 물음표, 느낌표 등만 만들면 끝나지만 한글은 조합형 완성형에 따라 다르고, 경우에 따라 위치와 크기가 변하는 많은 글씨들을 미리 만들어 놓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한글의 과학성이 높다지만 성경을 보존해 주신 영어의 편리함과 우수성은 매우 독특한 것입니다. 저는 88년 경 산돌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 가던 석금호 교수님께 1년을 배운 적이 있는데, 타이포그래피에 크게 눈을 뜨는 시간이었지요. 그분은 제자라도 크리스천이면 사석에서는 형제님, 자매님 하실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천입니다. 독립신문 시대에 쓰였던 개역성경 글씨체를 누구나 쓸 수 있도록 '산돌성경체'로 디지털화 한 것도 산돌 커뮤니케이션이지요. 물론 이 글꼴을 보면 개역성경이 떠올라서 우리는 잘 쓰지 않습니다만... 그래서 어떤 것이 이미지화되고 정체성이 생겨 굳어지는 일은 조심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특히 성화나 왜곡된 이미지에서 오해도 많이 생기니까요. 복음을 표현할 때는 가능한 무색투명한 것이 좋은 것 같아요. 대개 조금씩 다른 서체를 식별하는 이들은 많지 않지만 디자이너나 출판업자들에게는 아주 민감한 것이 글꼴입니다. 많은 자체 제작 서체가 나오고 있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가독성 높은 것이 제일 좋은 글꼴이 아닌가 싶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5-06 11:26:27 | 김재욱
이 분야 저 분야에서 참 많은 지식을 가지고 계신 우리 김형제님^^* 형제님의 글을 읽으면, 뭐랄까요? 톡톡 튀는 분위기랄까요? 그러면서도 야무지게 영글어진 지식적 사고와 삶의 철학이 날을 세우듯 올곧게 무장한 귀한 믿음과 어우러져 친밀하고도 은혜롭게 다가옵니다. 저는 ' 더 용자' 라고 하신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수대라는 간행물의 서체가 문화바탕체라는 사실은 오늘에서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형제님 덕분에 또 하나의 지식을 얻게 되네요.^^ 고맙습니다. 평안하세요~
2010-05-06 00:48:21 | 이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