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상 중요한 곳에 구축해 놓은 견고한 방어 시설.
2009-07-19 17:34:26 | 관리자
팔레스타인의 주요 강.
요르단 강 지도 참조(51). 이것은 남북으로 흐르면서 그 땅을 둘로 나누는데 서쪽의 땅이 더 크고 중요하다. 디베랴 바다와 사해 사이에는 요르단의 골짜기 혹은 평야가 있다(왕하25:4; 대하4:17). 이 강의 평균 너비는 20-70미터이며 직선 길이는 96킬로미터이지만 구불구불 흐르므로 실제 길이는 320킬로미터나 된다. 디베랴 바다와 사해는 지중해의 높이보다 각각 90미터와 390미터 낮으므로 요르단 강은 남쪽으로 흐르면서 높이가 약 100미터 정도 떨어진다. 요르단의 물은 갈릴리 바다와 마찬가지로 시원하고 그 안에는 고기가 많다. 여기에는 나루들과(삿3:28; 12:5; 삼하17:22-24) 배가 있었다(삼하19:17-18, 39). 바다 참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요르단이 범람할 때에 그것을 건넜는데(수3:15) 이때에 강물이 멈추어 서서 그와 그의 백성은 젖지 않고 건널 수 있었고 그 이후에도 엘리야와 엘리사는 요르단을 가르고 그곳을 지났다(왕하2:8, 14). 바로 여기에서 우리 주님은 침례자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으셨다(마3:13).
2009-07-19 17:33:55 | 관리자
I.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그는 자기 형 아하시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고 12년 동안 통치하였다. 그는 바알 숭배를 멈추었지만 여로보암의 죄를 따랐다. 그의 통치 때에 모압 족속이 반역을 일으켰으나 요람은 유다 왕 여호사밧의 도움을 받으며 후에 큰 살육으로 모압 족속을 패주시켰다. 그러나 곧바로 그는 시리아의 벤하닷과 그의 뒤를 이은 하사엘과 싸움을 하였고 바로 이때에 사마리아는 기적적으로 포위와 기근에서 벗어났으며 엘리사는 나아만의 기적을 포함하는 여러 기적을 베풀었다. 요람은 하사엘과의 싸움에서 부상을 당하고 라못길르앗의 외곽에서 자기의 군대 대장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그의 시체는 예스르엘에 있는 나봇의 밭에 던져졌고 이로써 주님의 말씀대로 아합의 집은 완전히 멸절되었다(왕상21:18-29; 왕하1:17; 3:1).
II.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그는 자기 아버지의 뒤를 이어 8년 동안 통치하였다. 그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와 결혼하였으며 그 결과 그의 영토에 저주가 임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 형제 다섯을 다 죽이고 그들의 소유를 빼앗았으며 유다에 페니키아 사람들의 우상을 도입하였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에돔, 블레셋, 아라비아 사람들의 침략을 받았다. 그의 영토와 도시와 집안은 황폐하게 되고 그는 창자에 병이 나서 고통을 받았으며 결국 죽어서도 왕들의 돌무덤에 들어가지 못했다
(왕하8:16-24; 대하21:1-20).
2009-07-19 17:33:16 | 관리자
I. 기드온의 막내아들.
그는 아비멜렉이 자기 형들을 죽일 때에 도망하여 목숨을 건지고 후에 가시나무와 다른 나무들의 비유를 통해서 세겜 사람들을 비난하며 예언적으로 저주하였다. 그는 브엘로 도피하여 거기서 자기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았다(삿9:1-57).
아비멜렉 참조.
II. 유다 왕 웃시야의 아들.
그는 나병에 걸린 웃시야가 죽기까지 얼마동안 대리 왕으로 지냈으며 25세에 왕위에 올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중에 16년을 통치하였다. 왕하15:5-38; 대하26:21; 27:8은 지혜롭고 번영을 누리며 여러 가지 유익한 일을 한 이 왕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2009-07-19 17:32:33 | 관리자
I.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그는 교활하고 원칙이 없는 사람으로 다윗의 아들 암논의 친구였다(삼하13:3-5). 그는 압살롬이 자기 누이 다말로 인하여 암논을 죽이려 하는 것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지만 자기 친구가 암살되자 당연한 일이라고 변명하였다(삼하13:32-35).
II. 겐 족속 레갑의 아들.
그는 모세의 장인 호밥의 후손으로 예후 시대에 레갑 족속의 우두머리로서 그들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명령을 주었다(왕하10:15; 대상2:55; 렘35:6-10). 레갑 족속 참조.
2009-07-19 17:31:52 | 관리자
I. 게르솜의 아들 레위 사람.
그는 므낫세의 손자였으며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 경건치 못하게 미가의 제사장이 되었고 후에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었다. 그의 후손은 포로가 될 때까지 거기에서 그의 뒤를 이었다(삿17:1-13; 18:1-31). 대부분의 현대 역본은 이 요나단이 모세의 손자라고 기록하지만 사사기의 연대는 그가 모세의 손자가 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물론 그의 아버지 게르솜은 모세의 아들이 아닌 다른 게르솜이다.
재판관들의 연대 선도 참조(4).
II. 사울의 큰 아들.
그는 구약에서 가장 사랑스런 인물 중 하나이다. 믹마스에서의 그의 용감한 이야기는 그의 믿음과 용맹을 잘 보여 준다(삼상13:1-23; 14:1-52). 백성은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래서 사울의 어리석은 맹세에 따라 그가 죽지 않게 하였다. 그는 다윗을 마치 자신의 혼처럼 사랑하였다(삼상18:1-4; 19:2; 20:1-42). 비록 자기 친구가 왕좌를 차지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의 야망을 버리고 자기 친구를 위해 수고하며 자기 아버지와 화해를 시도했다. 그는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의 싸움에서 사울과 함께 죽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한 다윗의 시는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사랑과 애틋한 마음을 담고 있다(삼하1:1-27). 후에 다윗은 그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내어 그에게 은혜를 베풀었다(삼하9:1-13).
III.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점령 후 유대인 가운데 남은 자들의 지도자들 중 하나(렘40:8).
2009-07-19 17:31:10 | 관리자
열두 명의 소 대언자 중 하나.
그는 스불론의 가드헤벨 사람이며(왕하14:25) 여로보암 2세 때에 니느웨에 대해 대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니느웨와 반대편에 있는 다시스로 가기 위해 욥바에서 배를 탔다. 그러나 폭풍을 만나서 사람들이 그를 바다로 내던지자 그는 고래의 뱃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거기서 죽은 채 밤낮 사흘 동안 지냈는데 이것은 우리 주님이 땅의 심장부에서 밤낮 사흘을 지낸 것을 나타낸다. 그 뒤에 그는 부활하여 해변에 토해졌고 주님의 말씀을 다시 받아 순종하며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다. 니느웨 참조. 이 대언자의 경고에 따라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하고 파멸은 연기되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요나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씀하심으로 그것이 역사적으로 사실임을 확증해 주셨다(마12:39-41; 16:4; 눅11:29-32).
2009-07-19 17:30:25 | 관리자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의 어머니.
그녀는 레위의 딸로 아므람의 아내였으며 자기 남편의 고모였다(출6:20). 물론 근친 간의 결혼은 후에 금지되었다
(레18:12).
2009-07-19 17:29:36 | 관리자
고대 히브리 재판관들은 재판받는 당사자들의 재물이나 영향력 등에 구애받지 말고 진리와 공의에 의거하여 바르게 선고해야만 하였다(레19:15; 신16:18-19; 잠24:23).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사람의 생김새나 위치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마음과 속 중심에 따라 판단한다(행10:34; 롬2:6-11). 그러므로 우리도 바로 이런 식으로 주변 사람들을 판단하여야 한다.
한편 성경은 재판정에서 부자나 지위가 높은 사람을 우대하는 것을 엄격히 금한다(잠28:21; 약2:1-9; 유16).
2009-07-19 17:28:56 | 관리자
이 말은 원래 ‘숨겨졌다’는 뜻을 갖고 있었으나 주후 450년경부터는 구약시대의 ‘정경이 아닌 책들’을 의미하게 되었다.
외경 문제의 핵심은 로마 카톨릭 성경 안에 포함된 몇 가지 책이 과연 성경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외경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사이에 하나님께서 대언자를 통해 말씀하지 않던 약 400년간의 기간에 기록된 15개의 ‘유대인들의 문학작품’이다. 이 중 어떤 것은 역사적 가치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비논리적이고 그 저자를 알 수 없으며 또 그 안에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이나 권위를 받았다는 주장도 없다. 또 어떤 것은 그 내용이 전설적이며 공상만화 같기도 하다. 이 중 몇 개는 바빌론 포로 생활 이후에 유대인들의 우상숭배를 금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현존하는 외경은 다 그리스어로 기록되었고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솔로몬의 지혜서; 집회서; 토비트; 에스드라상(*); 마카베오상; 마카베오하; 유딧; 바룩; 예레미야의 편지; 에스드라하(*); 에스델; 아사랴의 기도(혹은 세 아이의 노래); 수산나; 벨과 뱀(원래는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참고로 위의 목록에서 (*)가 붙은 책은 천주교회에서도 외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책이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은 결코 외경을 자기들이 읽는 구약성경에 포함시키지 않았으나 프로테스탄트 중 어떤 이들은 외경이 삶의 예와 예의범절 등을 위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여긴다. 반면에 천주교회는 ‘에스드라상하서’와 ‘므낫세의 기도’를 뺀 나머지 12권을 정경으로 인정하며 따라서 구약성경이 39권이 아니고 51권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요세푸스와 필로도 이것들을 정경에서 제외시키고 있으며 성경 신자들은 단 한 번도 이런 책을 ‘영감 받은 정경’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이 안에는 신뢰하지 못할 내용과 실수, 가르침 등이 들어 있어 그리스도를 포함한 신약시대의 사도들은 단 한 번도 외경을 언급하거나 인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런 외경들은 역사적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의 책들’에 불과하며 결코 구약성경의 일부가 될 수 없다.
성경, 정경, 요세푸스 참조.
2009-07-19 17:28:10 | 관리자
사실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그릇되게 함.
2009-07-19 17:27:06 | 관리자
왕의 위엄과 권능을 보여 주는 자리.
솔로몬의 왕좌는 상아로 되었고 금으로 입혔으며 금 사자(獅子)가 있었다(왕상10:18-20). 하늘은 하나님의 왕좌요 땅은 그분의 발받침이다(사66:1). 하나님의 왕좌는 영존하며 공의와 공평 위에 지어졌다(시45:6; 97:2, 사6:2-4; 겔1:1-28 참조). 그리스도는 하늘의 왕좌에 앉아 계시며(시110:1; 히1:8; 계3:21) 그분의 신실한 제자들은 그분의 왕국의 영광에 참여할 것이다(눅22:30; 계4:4; 5:10).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왕좌인 하늘을 두고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마5:34; 23:22). 골1:16에서 이 말은 천상의 영적 존재들의 한 등급을 말한다. 천사 참조.
2009-07-19 17:26:36 | 관리자
다마스커스에 아카바 만까지 요르단 강 동쪽 즉 트랜스요르단을 남북으로 잇는 고대의 유명한 통상로(민20:17; 21:22).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데스바네아에서 모압 평야까지 이 길을 통해 가려 하였으나 에돔 왕과 아모리 왕 시혼은 이를 거절하였다.
2009-07-19 17:25:58 | 관리자
살렘 왕 멜기세덱이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을 맞이하여 축복한 곳(창14:17).
후에 압살롬은 여기에 자기의 기념비를 세웠다(삼하18:18).
2009-07-19 17:25:28 | 관리자
한창 성함.
2009-07-19 17:25:01 | 관리자
하늘의 왕국 참조.
2009-07-19 17:24:38 | 관리자
성경에서 왕은 항상 큰 위엄을 지니거나 큰 영토를 지니지 않았다.
성경은 조그만 마을과 부락도 왕을 가지고 있다고 기록하며 또 우두머리 혹은 지도자도 왕으로 기록한다. 이런 차원에서 모세는 여수룬의 왕이라고 할 수 있다(신33:5). 물론 그는 다윗과 솔로몬같이 왕은 아니었고 지도자 혹은 우두머리였다. 이런 것을 알면 가나안 지방같이 작은 곳에 31명의 왕이 있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수12:9-24). 물론 이 숫자는 여호수아의 손을 피해 달아난 다른 왕들은 제외한 것이다. 아도니베섹은 자기가 70명의 왕을 붙잡아 그들의 엄지발가락을 잘랐다고 말한다(삿1:5-7). 이런 왕들은 현재 아랍 부족들의 족장들과 비슷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에게는 사울 때까지 왕이 없었다. 처음에 이집트에서는 장로들이 그들을 다스렸고 후에는 모세와 여호수아같이 하나님이 지정한 사람들이, 그 후에는 옷니엘, 삼손, 입다 같은 재판관들이,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울이나 다윗 같은 왕들이 다스렸다. 그들은 독특한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그들의 정부는 신정 통치 체제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법을 주시고 그들의 치리자를 정해 주셨으며 백성은 주님 안에서 이들의 말과 법을 따라야 했다. 또한 의심이 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정부의 우두머리인 하나님께 의뢰해야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은 우리의 재판관이요 법을 주는 이시요 왕입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왕을 요구한 것은 주 하나님의 직접 통치를 거부하는 불신의 행위였다(삼상8: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왕을 주셨으나 백성은 여전히 그분을 자기들의 왕으로 간주하였고 그래서 우상숭배는 왕이신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었다.
그들은 왕정 하에서도 여전히 성경을 법규로 삼았으며 대언자나 대제사장이 왕에게 기름을 붓고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며 그의 손에 홀을 쥐어 주었다(신17:15-20; 삼상10:1; 12:12-15; 삼하1:14, 21; 왕상1:39; 왕하9:1-6; 11:2-12; 시21:3). 왕이 하나님의 사역자이므로 그분은 백성이 필요로 하는 공적 일에 대한 지침을 그에게 주었다. 그래서 왕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왕과 백성이 하나님을 머리로 인정하고 순종할 때에는 형통하였으나 그렇지 않을 때에는 버림을 받았다. 유다와 이스라엘 두 왕국 중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신속하게 저버렸으며 그 결과 먼저 아시리아의 포로가 되는 운명을 맞이하였다. 이스라엘에는 여러 왕조의 19명의 왕이 있었다. 유다 왕국은 이스라엘의 멸망 후에도 더 존재하였으며 오직 다윗 계열의 19명의 왕이 통치하였다.
왕들의 연대 선도 참조(5-6).
2009-07-19 17:24:15 | 관리자
아하수에로 왕이 폐위시킨 페르시아의 왕비.
그녀는 왕의 연회에 나아와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구분하였다(에1:1-22).
2009-07-19 17:23:28 | 관리자
그나스의 아들.
그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재판관이 되어 메소포타미아 왕의 압제에서 백성을 구하고 40년 동안 그들을 평화롭게 재판하였다. 그의 아내 악사는 그의 형인 갈렙의 딸이며 드빌을 정복한 대가로 그에게 주어졌다(수15:17; 삿1:13; 3:9-10).
2009-07-19 17:23:03 | 관리자
고대에는 대개 여인들이 옷을 짰다(왕하23:7; 잠31:13, 19).
유대인들은 대제사장의 옷을 바느질해서 만들지 않고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통짜로 짰다(요19:23). 의복 참조.
2009-07-19 17:22:29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