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12421개
성경의 용은 중국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 상상하는 용과 다르다. 예를 들어 겔29:3의 용은 강 한 가운데 누워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계시록 12장의 용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다시 말해 성경의 용은 보통 우리가 ‘공룡’이라 하는 짐승과 비슷하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영어에서 용의 용례를 찾아봐야 한다. 원래 영어에서 용은 공룡과 같은 큰 괴물을 지칭하는 데 쓰였다. 공룡을 지칭하는 ‘다이너소어’(Dinosaur)라는 단어는 1841년에 처음으로 문헌에 나오며 그 전에는 영어에서 그런 괴물을 통칭하여 ‘용’으로 불렀다(옥스퍼드영어사전, 앵글로색슨연대기 등 참조). 그래서 영국의 전래 동화에 나오는 용은 대개 모습이 ‘공룡’ 혹은 ‘공룡’의 새끼처럼 생겼다. 성경은 사탄 마귀를 용이라고 지칭한다(계12:9). 사탄, 마귀 참조.    
2009-07-19 17:46:50 | 관리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 중 하나. 이곳은 지중해에 위치하였고 가이사랴에서 남쪽으로 48킬로미터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5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신약시대의 땅 지도 참조(39).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므로 유대의 주요 항구가 되었고 첫 번째와 두 번째 성전을 지을 물자가 레바논과 두로에서 여기에 도착하였다(대하2:16; 스3:7). 요나는 여기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고 베드로는 도르가를 살렸으며 또 해변에 있던 시몬의 집에서 환상을 보고 구원이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를 향하는 줄 알게 되었다(행9-11).    
2009-07-19 17:46:17 | 관리자
극적인 시의 형태로 기록된 구약성경의 책. 이 책은 의로운 사람이 고난당하는 문제를 다루므로 지혜서의 하나로 분류된다. 지혜 문학 참조. 욥기는 모든 상황에서 주님을 신뢰하여야 함을 보여 준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 그 이유를 알려고 노력해도 허사인 경우가 많다. 실로 많은 경우에 의인들이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고난을 당하곤 한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서 주님을 신뢰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은 또한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 세상이나 자신의 본성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행하시는 분임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다른 의지에 상관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자신의 때에 자신의 일을 수행하시며 우리가 그분의 뜻을 이해하든지 혹은 이해하지 못하든지 제약을 받지 않는다. 욥은 또한 하나님이 권능과 위엄의 하나님임을 발견하였다. 그분께서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게 될 때 우리는 욥처럼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겸손히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할 것이다.      
2009-07-19 17:45:45 | 관리자
신실함과 경건함과 부와 명예와 가정의 화목 등으로 유명한 족장.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그의 믿음을 시험하였으며 이 과정 속에서 욥은 순식간에 재물과 자식과 건강을 잃고 고통을 받았다. 그는 우스 땅에 살았는데 이곳은 보스라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부 에돔 지역으로 추정된다.    
2009-07-19 17:45:03 | 관리자
I. 침례자 요한.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달려간 사람으로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아들이고 예수님보다 여섯 달 먼저 태어났다(눅1:26). 구약의 여러 성경 구절이 침례자 요한에게서 성취되었다(사40:3; 마3:3; 말3:1; 4:5; 마11:14). 천사 가브리엘은 그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전에서 섬기는 동안 그의 출생과 이름과 직무에 대하여 예언하였고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할 때에 그리고 요한의 출생과 이름을 짓는 일에서 나타났다(눅1:1-80). 그는 초기에 동부 유대에서 지냈고 30세쯤에 주님의 대언자로 나타났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제사장이었고 또 엄격하게 나사르 사람으로 살았으므로 그의 모습은 구약시대의 엘리야와 거의 비슷하였다. 무리들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바 자기들의 죄를 정죄하는 말씀을 듣기 위해 사방에서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히 드러나기 위해 필요한 회개의 침례를 기쁘게 받았다.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아와 침례를 받고 모든 의를 성취하셨다. 이때에 그는 이미 정해진 표적 즉 성령님께서 비둘기같이 내려와 그분 위에 앉는 것을 보고 그분이 주님의 그리스도인 줄 확실히 알게 되었고 곧바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하였다(요1:29; 갈3:24). 요한은 그 당시에 큰 명성이 있었으며(눅3:15) 산헤드린 공회는 그에게 물어 보기 위해 사자들을 보냈고(요1:19-28) 헤롯 왕 역시 그에게 듣기를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구원자 예수님의 발 앞에 내려놓았다(요1:27; 3:30). 그에게는 제자들이 있었으며(마9:14; 눅5:33; 요4:1) 그의 영향력은 후에도 지속되었다(행18:25; 19:3). 그는 사람들을 개혁하기 위해 신실하게 수고하였으며 그 뒤에 이 일로 인하여 헤롯 안디바에 의해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옥에서 자기의 두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그분이 선생님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물었다(마11:3). 바로 이때에 우리 주님은 요한이 대언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메시아의 대언자들 중에서 오직 그만 모든 사람이 보기 원하던 그분의 일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왕국에서 가장 작은 자보다도 작았는데 그 이유는 우리 주님의 죽음과 부활로 인한 왕국의 확립을 그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의 지상 사역은, 헤롯이 그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헤로디아가 자기 남편이 점점 더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것을 보고 우려를 표명함으로써 끝나게 되었다. 그녀의 딸 살로메는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한 뒤 그의 목을 요구함으로써 요한은 옥에서 목이 잘려 죽었고 그의 제자들은 그의 몸을 가져다가 묻고 예수님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마14:3-12). II. 사도 요한.   그는 세베대와 살로메의 아들로서 갈릴리의 벳새다 출신이었다. 세베대와 그의 아들들은 어부였으며 좋은 환경에 있었던 것 같다(막1:20; 15:40; 요18:15; 19:27). 요한의 성격에는 온유함과 강력함이 혼합되어 있었다. 성경은 그가 매력적이며 평온하고 겸손하며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사랑 많고 조용히 묵상할 줄 아는 성격 속에는 강인함과 결정력이 들어 있었다(눅9:54). 유순해 보이지만 그는 확고하고 두려움이 없었으며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서 그분과 함께 하였다(요19:35). 그는 예수님의 무덤에 일찍 갔으며 그분의 승천 이후에 예루살렘에서 옥에 갇히고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였다(행4:13). 그는 주님께 헌신한 사람이었고 또 야망도 있었으므로 그분의 오른편에 앉게 해 달라고 간구하기도 하였다(마20:20-24). 그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적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처음에 침례자 요한의 제자였으나 예수님께로 인도되어 즉시 그분을 따르다가 잠시 갈릴리로 돌아와 어부 생활을 하였으며 다시 부름을 받아 주님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눅5:5-10). 우리 주님은 사랑스럽고 열정이 넘치는 이 제자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요13:23; 19:26; 20:2; 21:7). 마지막 만찬에서 그는 주님 옆에 누웠으며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그에게 부탁하였다. 그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함께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보았고 또 겟세마네에서의 고통을 보았다. 야고보 참조.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그는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거기 교회의 기둥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갈2:9). 주후 65년경에 그는 에베소로 가서 소아시아에 복음을 선포한 것으로 보이며 사도 바울이 죽은 이후에 거기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다. 주후 95년경에 그는 밧모 섬으로 유배되어 갔고 거기에서 계시록의 환상을 보았으며 그 뒤 에베소로 돌아와 아주 늙도록 살면서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는 제자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언제나 “어린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는 권면의 말씀을 주었다. 그는 요한복음과 계시록 그리고 세 서신서를 기록하였다. 요한일서는 일반 서신으로 요한복음의 동반서이며 그 당시 유행하던 영지주의의 오류들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그는 특히 은혜와 진리 가운데 교회를 세우기 위해 애썼고 특히 거룩한 사랑을 강조하였다. 요한이서는 경건함에서 뛰어난 크리스천 부인에게 보내는 서신이었으며 요한삼서는 신실함과 충성심이 강한 라틴 사람 가이오에게 보내는 서신이었다. 계시록과 세 서신서는 주후 76-98년경에 기록되었으며 신약성경의 책 중에 가장 늦게 기록된 책들이다. 영지주의, 계시록 참조. III. 마가라는 이름을 가진 요한. 마가 참조.        
2009-07-19 17:42:59 | 관리자
  가레아의 아들. 그는 예루살렘이 파괴된 이후에 유대인들을 이끈 우두머리 대장이었다. 그는 총독 그달리야의 권위를 인정하고 이스마엘의 음모를 그에게 알렸으나 그것은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는 그달리야의 원수를 갚았으나 후에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남은 사람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갔다. 예레미야는 그들이 반역하고 우상숭배하는 것을 막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심판이 이집트에 내려간 사람들에게 임할 것을 예언하였으며 그것은 후에 성취되었다(왕하25:23-26; 렘40-44).      
2009-07-19 17:41:57 | 관리자
열두 명의 소 대언자 중 하나. 그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는 유다 왕국에 살았는데 그 당시에는 성전에서의 경배가 여전히 지속되었다(욜1:14; 2:1, 15, 32). 그는 웃시야의 통치 기간에 대언한 것으로 보인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과 관련해서 많은 이들이 욜2:28-32와 행2:17-21을 인용하며 방언과 기적, 이적 등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요엘서의 말씀은 근본적으로 이방인들과 상관이 없으며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전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이적이 부어지는 것을 보여 준다. 실제로 사도행전 2장에서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신 것을 보여 주며 민족적인 회개를 촉구하고 그로 인해 그리스도가 재림하기를 바랐다(행3:19-26). 실제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선포된 것은 이로부터 근 10여 년이 지난 뒤였다.  
2009-07-19 17:40:55 | 관리자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 그는 아비새와 아사헬의 형이었으며 다윗의 통치 기간에 그의 군대의 대장이었다(삼하2:13, 28; 10:7; 왕상11:15). 그는 용맹스런 무사였으며 능력 있는 장군이었고 압살롬을 대적한 일이나 인구 조사에서 선하게 행하였다(삼하18:1-33; 19:1-42; 24:1-25). 그러나 그는 동시에 오만하고 복수심에 불타며 양심이 없는 사람으로 아브넬과 자기 사촌 아마사를 비열하게 죽이고(삼하3:27; 20:9-10) 다윗에게 오만하게 행동하며(삼하3:39; 19:5) 우리야를 죽이는 일에 가담하고 솔로몬 대신 아도니야를 왕으로 만들려는 음모에 가담하였다. 이런 악행으로 인하여 그는 결국 솔로몬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다(왕상2:1-46).    
2009-07-19 17:40:21 | 관리자
그리스도 당시에 그분을 섬긴 신실한 여인 중 하나. 그녀는 그분의 무덤에 향품을 가지고 갔으며 그녀의 남편 구사는 헤롯 안디바의 청지기였다(눅8:3; 24:1-10).    
2009-07-19 17:39:37 | 관리자
I. 기드온의 아버지. 그는 므낫세의 아비에셀 가계에 속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바알을 섬겼으나 자기 아들 기드온이 우상숭배를 타파하자 그를 따라 주님의 편에 섰다(삿6:11, 25-32). II. 아합이 시리아 사람들과 전쟁을 하러 갈 때 대언자 미가야를 지킨 관원(왕상22:26; 대하18:25). III. 유다의 여덟 번째 왕. 그는 아하시야의 아들들 중에서 유일하게 자기 할머니 아달랴의 손을 피해 숨어서 목숨을 유지하였다. 그는 자기 고모 여호세바의 도움으로 구출되어 6년 동안 성전에서 숨어 지내다가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일곱 살에 왕이 되었다.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는 번창하였으며 우상을 제거하고 성전을 수리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은 뒤에 그는 잘못된 권고를 따랐고 그 결과 우상숭배가 부활되고 대제사장 스가랴가 백성의 죄를 꾸짖자 자기 은인의 아들인 스가랴를 버려 돌에 맞아 죽게 하였다. 그 뒤부터 재난이 따르기 시작하여 그는 시리아 사람들에게 패배를 당하고 성전의 보화를 내주며 가증한 병에 걸려 자기 신하들의 음모에 빠져 죽고 말았고 죽어서도 왕의 돌무덤에 들어가지 못했다(왕하11:1-21; 12:1-21; 대하23:1-21; 24:1-27). 요엘 대언자가 그의 시대에 대언하였다. IV.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겸 왕위 계승자. 그는 칭찬할 점이 많이 있다. 우선 그는 엘리사를 존중하였고 그가 죽을 때에 그를 찾아갔으며 거기서 시리아를 세 번 쳐서 이길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들었다. 그는 유다의 아마샤 왕과 싸워 이겼으며 이스라엘에서 가장 좋은 왕 중 하나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그의 통치 때에도 금송아지 숭배는 여전히 계속되었다(왕하13:9-25; 14:1-8; 대하25:1-28).    
2009-07-19 17:38:58 | 관리자
  아삽의 아들로 히스기야 왕의 기록관. 그는 아시리아 왕이 히스기야 왕을 치러 와서 항복을 권고할 때 왕을 대신하여 아시리아 군대에 갔던 사자 중 한 사람이다 (왕하18:17-35).    
2009-07-19 17:38:12 | 관리자
아몬의 아들, 히스기야의 손자. 그는 경건한 왕으로 성전 예배를 개혁하고 유다 민족의 종교를 대부분 개혁하였다. 어떤 왕도 그만큼 그 땅에서 우상을 제거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들의 죽은 제사장들의 무덤에서 캐낸 뼈를 벧엘에 있던 우상들의 제단들에서 태움으로써 그것들을 더럽게 하였는데 이것은 300여 년 전에 이미 예언된 것이었다(왕상13:2). 그의 명령에 따라 성전을 깨끗이 하고 수리하는 중에 제사장들은 율법서를 발견하였는데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이것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심지어 요시야 왕도 신명기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크게 감명을 받은 것으로 보아 그 전에는 그것을 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거기 기록된 심판들을 되돌리기 위하여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백성이 회개하게 하였다. 또한 그는 백성이 주님과 언약을 다시 세우도록 하고 처음에 유월절이 제정되던 때와 같이 엄숙하게 유월절을 지키게 하였다. 백성의 회개는 형식적이었고 하나님의 심판은 되돌려지지 않았지만 요시야는 미리 죽음으로써 다가오는 재앙을 피하였다. 그는 아시리아 왕을 치려고 오는 이집트의 파라오느고를 대적하다가 부상을 입고 죽었으며 그가 죽자 예레미야 대언자를 포함한 모든 백성이 그를 위해 비통한 애가를 부르며 애곡하였다(슥12:11). 그는 여덟 살에 즉위하여 31년 동안 통치하였다(왕하22:1-20; 23:1-37; 대하34:1-33; 35:1-27).      
2009-07-19 17:37:32 | 관리자
I. 요셉과 라헬의 아들. 그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라헬에게서 태어났으며(창30:22-24) 하나님께서는 그를 감옥에서 건져 내어 이집트의 총리가 되게 하셔서 놀라운 섭리를 베푸시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게 하셨다. 그의 이야기는 성경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교훈을 주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이것은 너무나 아름다우므로 줄일 필요가 없고 반복해서 읽어도 질리지 않으며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잘 보여 준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보호하시는 것을 잘 드러낸다. 특별히 젊은이들은 자신을 조절하고 거룩한 삶을 삶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창37, 39-50). 요셉은 110세에 죽었으며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를 떠나면서 그의 유언대로 그의 뼈를 가져다가 세겜에 묻었다(출13:19; 수24:32). II.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의 남편. 그의 가계는 위로 다윗과 유다와 아브라함에게까지 이른다(마1:1-15). 그는 갈릴리의 나사렛에 거하면서 목수의 일을 하였고 예수님도 같은 직업을 가졌다(막6:3). 마리아와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로 보아 그는 매우 경건하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열두 살이었을 때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눅2:41-51) 그 이후에는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예수님이 죽을 때에 자기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요셉은 그분의 십자가 처형 전에 죽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는 유대인들 가운데 잘 알려진 것 같다(막6:3; 요6:42). III. 아리마대 사람.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때에 예루살렘에 거하였으며 의심의 여지없이 메시아를 믿고 하나님의 왕국을 기다렸다. 그는 유대인들의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으며 그들이 주님을 정죄하는 것을 반대하였다(눅23:51). 그는 주님의 처형이 끝난 뒤에 담대히 빌라도에게 가서 그분의 몸을 요구하고 니고데모와 함께 그분의 몸을 향품 등으로 싸서 새로 만든 자신의 돌무덤에 안치하였다(막15:43-46; 요19:38-42). IV. 유스도라고도 하고 바사바라고도 하는 예수님의 제자. 바사바 참조(행1:23).    
2009-07-19 17:36:42 | 관리자
유대의 제사장, 역사가(주후 37-100년). 그는 예루살렘의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고 16세 때에 광야에 나가 3년간 지내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뒤 유대교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로마의 통치를 받아들이려 했던 바리새파에 가입하였다. 주후 66-73년에 유대교 민족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로마 총독을 내몰고 예루살렘에 새로운 정부를 세우자 그는 유대 군대의 갈릴리 지휘관으로 싸웠으나 67년 로마 군대가 갈릴리의 유대 군대를 물리치자 베스파시아누스에게 투항하고 그 뒤 그의 황제 즉위를 예언하여 풀려난 뒤 이름을 플라비우스로 바꾸고 로마군에 협력하였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그는 로마로 가서 시민권을 받고 책 쓰는 일에 몰두하여 75-79년에 ‘유대 전쟁사’를 기술하고 93년에는 유명한 ‘유대 고대사’를 기술하였는데 이 안에는 창조로부터 반란 전까지의 유대 역사와 유대교의 율법과 제도의 합리성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창조 시점을 주전 4000년경으로 믿는다는 것과 또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들로 믿음을 밝혔다. 그의 저서에는 특히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에 관한 많은 자료가 들어 있다.    
2009-07-19 17:35:55 | 관리자
  I. 예수님의 형제 중 하나(마13:55; 막6:3). 그분의 형제들은 처음에 그분을 믿지 않았으나 그분의 부활 이후에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거하였다 (요2:12; 7:5; 행1:14). II. 글로바와 마리아의 아들(마27:56). III. 바나바(행4:36).    
2009-07-19 17:35:21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