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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도 UFO를 목격하다 1976년도 가을에 미 대통령 후보였던 지미 카터는 선거 유세장에서 자신도 UFO를 목격했음을 강조하면서, 자신을 뽑아주면 UFO에 대한 비밀자료를 모두 공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카터가 밝힌 바에 의하면, 1969년 조지아주 리어리 지역에서 열렸던 라이온스 클럽 집회에서 연설하기 전에 자기의 측근과 더불어 UFO를 목격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달 정도의 크기였으며 매우 밝게 빛났고 시시각각 색깔을 바꾸었다. 우리는 대략 10분 가량 지켜보았는데,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UFO를 목격한 사람을 조롱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카터는 선거공약대로 자신의 재임기간에 정보자유화법에 따라 UFO 비밀을 공개했습니다. 한편 카터를 이은 레이건 대통령은 그 재임시절에 수차례나 외계인의 지구 침공 가능성을 언급해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1985년 11월 제네바에서 당시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회담을 하는 중에 그는 "만약 외계인의 침공에 직면하게 된다면 서로 협력하여 이에 대처하자"고 말했습니다. 당시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어쨌든지 그는 외계로부터 미지의 존재들이 침공해올 가능성이 있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그는 UN 총회에서의 기조연설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가끔씩, 만일 지구가 외계인의 공격 위협을 받는다면, 온 세상 사람들이 매우 신속하게 연합하여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전세계를 대표하는 UN에서 그것도 자그만치 176개국의 대표들 앞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이 참으로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가 이런 발언을 하게된 이유는 실제로 레이건 자신이 UFO를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UFO 목격담을 자신이 주지사로 재임하던 시절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지의 워싱턴 지국장이었던 밀러(Norman C. Miller)에게 개인적으로 털어놓았습니다. 1974년 어느 날 밤 그를 포함한 일행 4명이 탄 비행기가 캘리포니아주 베커스필드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후방에서 다가오는 UFO를 목격했다고 합니다. 맨 처음에는 그것이 마치 정지한 불빛 같았는데 어느 순간에 갑자기 속력을 내면서 다가오더니 45도 각도로 순식간에 날아오르는 바람에 기내에 있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비행접시는 크기나 모양이 매우 다양하며 대부분이 불에 그을림을 당한 금속처럼 은색이나 검은 금속체 같은 색깔을 띄고 있습니다. UFO 중 어떤 것들은 접시처럼 생겼고, 어떤 것들은 삼각형이나 부메랑처럼 V자로 생겼으며, 또 어떤 것들은 계란처럼 타원형이거나 원형입니다. 인류가 겨우 음속으로 나는 비행기를 만들려 애쓰고 있는 이 시점에 UFO의 대부분은 음속의 5∼6배가 되는 고속으로 날아다닙니다. 또한 비행접시들은 매우 조용하며 낮은 음을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UFO 출현 시에 자동차나 비행기 혹은 가정집이나 발전소에서 전기 공급이 끊어지는 것을 경험했다고 보고했습니다. 1967년 12월 3일에 네브라스카주에 사는 쉬르머(Herbert Schirmer)는 UFO에 납치되었고, 그 후에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날아다니는 기계들은 마치 빙빙 돌아가는 원반 같았고 빛과 소리를 냈으며 플로리다주 해안과 아르헨티나 근처, 남극 밑부분의 바다 아래에 그 기지를 두고 있었다. 이 기계들은 마그네슘으로 만들어졌으며, 수정같이 생긴 회전체를 포함하는 가역 전자기 시스템으로 운전되었고, 이 회전체는 두 개의 기둥같이 생긴 반응기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 비행체들은 중력을 헤쳐나가며 물질을 조절하고 빛을 꺾이게 하는 능력을 지녔다. 또한 이것들은 저수지나 발전소에서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쉬르머의 증언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1965년에는 뉴햄프셔주에 UFO가 출현했다는 소식이 여러 차례나 보고되었습니다. 그 보고의 90%는 UFO들이 송전선 바로 위에 나타났다고 증언했고, 1966년 11월에는 캐나다 일부와 북미의 여덟 개 주에서 동시에 전기가 끊어져 3,500만명이 고생을 했습니다. 1966년 이후에도 UFO가 자기들 근방에 출현하자 전기 장비가 이상한 현상을 일으켰음을 보고하는 운전자나 조종사들이 20명이 넘었습니다. 또한 비행접시의 특징중 하나는 많은 경우에 그들이 비행체로서는 도무지 하기 힘든 곡예 비행을 한다는 점입니다(파티마의 원반 태양 그림 참조). 좀 더 쉬운 말로 하자면, UFO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상의 법칙에 위배가 되는 일들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UFO들은 음속의 다섯 배가 넘는 고속으로 날아 가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곤 합니다. 우리는 실험을 통해서 그런 속도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꾸게 되면 회전시의 중력에 의해 (혹은 원심력에 의해) 조종사가 마치 종이처럼 쭈그러질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고속으로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게 될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것으로, 단지 차이가 있다면 UFO와 같이 고속으로 날아가는 경우에는 그 힘이 엄청나게 세다는 점입니다. 사실 우리의 몸은 계속해서 진행하려던 방향으로 나가려 하고 안전벨트가 우리를 꽉 잡아주기 때문에 큰 위험에서 벗어 날수 있습니다. 우리가 겨우 시간당 60킬로미터로 달릴 때에도 이같은 큰 힘을 경험하게 되는데 만일 누가 시간당 6,000킬로미터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타고 있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방향을 바꾼다면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사자는 마치 스파게티 소스처럼 완전히 눌려서 국물만 남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지능이 높은 조종사들이 운전하고 있음이 어느 정도 증명된 이런 비행접시들이 그렇게 갑자기 방향을 바꾸고 수직으로 하강하고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믿을 수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물론 그 안에 타고 있는 조종사가 그 힘에 의해 젤리처럼 흐믈흐믈하게 되지 않고도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 가운데 매우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988년에 라자르라는 추진 시스템 엔지니어가 불쑥 튀어나와 양심선언을 했습니다. 그는 한 때 미국의 뉴멕시코주에 있는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에서 일했으며 메슨 물리 연구소에서도 일했고 1988년에는 "프로젝트 갈릴레오"를 수행하기 위해 네바다주의 "에리아 51"(영화 "인디펜던스데이"에 나오는 제51구역) 비밀 지역에 갔습니다. 1989년에 그는 자신의 증언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 그의 증언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다음은 물리학을 전공한 대학교 교육을 받은 엔지니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그는 20세기에 태어나 UFO에 관한 일을 했으며, 9대의 UFO를 연구하여 반응기와 중력 추진 시스템을 개발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과연 뉴스미디어의 주장이 옳은가 아니면 키케로, 플리니, 플루타르크, 비드 등의 기록이 옳은가 살펴봅시다. (1) UFO 원반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2) 중무장한 경비원들이 곳곳에 있었다. (3) UFO의 높이와 너비는 각각 5미터와 17미터였다. (4) UFO의 천정은 1.8미터 정도였다. (5) UFO는 볼트나 리벳으로 연결한 흔적이 없었으며, 사용된 재질은 금속 같았다. (6) UFO의 반응기는 "반물질"을 생산했다. (7) 반응기의 직경은 0.45미터였고, 크기는 0.3미터였고 UFO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다. (8) 반응기는 양자들을 가속시켰고 열을 전기로 변환시켰다. (9) 반응기의 효율은 99%였다. (10) 반응기에는 미지의 원소가 연료로 사용되었다. (11) 우리는 이 원소를 화학주기표에 끼워 넣었고, 115라는 "안정된 원소"의 번호를 부여했다. (12) 동전크기만한 이 원소는 잘 보관되었고 삼각형의 쐐기들은 반응기에 넣기 위해 잘라야했다. (13) UFO는 무거웠으며 구리빛/오렌지 빛이었고 방사능을 내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독성을 띤 것 같았다. (14) 9대의 UFO는 그 밑부분에 세 개의 중력 증폭기를 달고 있었다. (15) 반응기들은 옴니크론과 델타라는 두 개의 모드에서 작동했다. 각 비행체는 나름대로의 중력장을 만들어 냈고, 나는 이들이 작동하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시간을 잃어버리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에는 UFO 신화에서 매우 불길한 전조를 보낸 두 가지 돌발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이미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 아담스키 등이 주축이 된 UFO "접촉자" 이단(혹은 사교)의 등장입니다. 아담스키는 자신이 실제로 외계인들과 접촉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참으로 특이한 그의 주장에는 자기가 비행접시를 타고 금성과 기타 다른 세계에 갔다왔으며 녹색피부를 한, 인간과 비슷한 "휴마노이드"(Humanoid) 여인들을 보았으며 "우주의 형제들"이 자신을 지구의 대사로 임명했다는 것 등을 포함합니다. 아담스키는 자신이 비행접시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담은 사진들을 제시했으나, 이 그림들은 사실 거의 믿기 어려울 정도로 조잡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좀 신비스럽게 죽기 전에 그는 외계인 그룹들과 교통했으며 외계인 복음을 전파하는 여러 개의 조그만 단체들을 많이 남겨 놓았습니다. 그가 UFO라고 주장한 그 사진은 참으로 UFO 원조 그림이 되었고, 그래서 1960년대 TV에서 연속극으로 방영된 "침입자"(Invader)라는 드라마에서는 그 사진의 비행접시가 외계인이 타고 오는 비행접시의 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베티와 바니라는 이름을 가진 힐 부부(Betty and Barney Hill)에게 일어났습니다. 1961년 9월 19일, 그들은 뉴잉글랜드(보스턴 근방) 지방에서 차로 여행을 하는 동안 2시간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후 최면 상태에서 그들은 자기들이 외계인들의 우주선에 타고 있었고 자기들의 차로 되돌아 올 때까지 그 2시간동안 의학적으로 마취의 상태에 빠져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으로 외계인들에 의해 납치당한 사람들로 알려지지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외계인에 의한 납치사건은 UFO 신드롬 속에서 조용하게 늘어만 갔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는 홉킨스(Budd Hopkins), 파울러(Raymond Fowler), 그리고 뉴에이지 공포 작가 스트리버(Whitley Strieber) 등이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E.T.라 불리는 외계인들에 의한 납치사건을 다루면서 대중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의 두 사람은 아마츄어 탐험가(혹은 조사자)로서 이들은 힐 부부가 경험했던 것과 거의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알렸습니다. 한편 스트리버는 자신이 외계인들에 의해 납치를 당했으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된「커뮤니온」(Communion),「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브레이크스루」(Break through) 등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사실 스트리버의 책들은 대중들의 의식 속에 큰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왜냐하면 1980년대 후반에 수없이 많은 외계인에 의한 어린아이와 어른의 납치 사건들이 보고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바드 대학의 저명한 맥 박사(Dr John Mack)는 미국인 중 사오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스스로 외계인에 의해 납치를 경험이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진술했습니다. 소떼의 죽음 한편 UFO 미스테리의 범주에 속하는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 최근에 일어났습니다. 물론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지만 문서로 잘 정리되어 제시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이것은 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현상입니다. 1960년대 후반에 힐 부부가 납치되었다고 주장한 일이 있는 후 몇 년이 지난 뒤에 몬타나주와 와이오밍주의 고립된 지역에서 수많은 소들이 매우 정교한 방법으로 사지가 절단되어 죽어 있는 것이 발견되어 보고되었습니다. 이 짐승들의 사체 주변에는 대부분의 경우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짐승을 죽인 자들이 매우 정교하게 짐승의 귀나 입술 혹은 생식기나 둔부 등을 잘라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이처럼 제거된 신체 부위의 상처는 매우 예리했으며 마치 외과 의사들이 사용하는 메스나 레이저 등에 의해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1960년대에는 레이져라는 것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위를 끄는 사실은 이처럼 짐승의 신체가 잘린 사건의 현장 부근에서는 UFO나 검은색 비행기(대개 헬리콥터) 등이 그 시간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부디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라며 또한 이렇게 신체를 절단 당한 짐승이 대개 소라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곡식 밭의 원들 1970년대 중반 영국 남부의 농촌지역에서는 곡식 밭에 큰 원이 생기는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일본, 캐나다, 러시아, 뉴질랜드 등 30여개가 넘는 나라의 농부들이 자기들의 곡식 밭에 외계인이 침입한 흔적이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곡식 밭에 생긴 원들이 외계인들에 의한 것으로 생각했고, 마치 그들이 이 땅에 와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왔으며 너희들의 곡식 밭을 밟아 놓았다." 이런 원들은 대개 지름이 3.3m 정도나 되며 어떻게 생긴 것인지 그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물론 기후나 짐승들에 의해 이같은 원이 생길 수는 없습니다. 사실 "곡식 밭에 생기는 원들"은 중세부터 존재했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 그 빈도가 급속도로 증가했습니다. 1976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발견된 이후에 매년 전세계적으로 거의 1000건 이상이나 발생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원이 주로 영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아마도 이 현상이 그 지역에 있는 신비한 고인돌과 관계가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상한 현상이 미국에서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우스다코다주에 사는 한 농부는 자신의 밀밭에서 24m 길이의 물음표가 새겨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기극이라고요. 아닙니다. 국제적인 UFO 관찰 기구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우스다코다주에는 사기꾼이 살지 않는다. 이들은 다 열심히 일하는 농부들로서 자기들의 밀밭을 망쳐놓는 사기극을 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렇게 원을 만드는 것이 곡식을 가져가기 위함은 아닙니다.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농촌에 사는 일가족은 자신들의 자동차를 세워 놓는 길에 약 12m 크기의 원이 파져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그날 저녁에 그들은 사과나무 위에 깔때기 모양의 빨간빛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다음날 일어나 보니 사과들이 모두 없어졌습니다. 이처럼 곡식 밭에 원이 생기는 원인을 규명해보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그 원들이 매우 정교한 형태로 기하학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고 놀라곤 합니다. 대개 곡식들은 땅에서 약 5cm 정도 높이로 짓눌려 있고 또한 전체적인 형태는 마치 회오리바람이 몰고 간 듯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줄기는 꺾이지 않아 그대로 두면 추수 때까지 가서 열매를 맺습니다. 원이 하나인 경우도 있고 한 원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동심원이 둘러싸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켈트족의 십자가처럼 가운데 큰 원이 있고 사방으로 작은 원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크기는 자동차 타이어부터 축구장에 이를 정도로 다양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비한 것은 그 근처에 사람의 발자국이나 자동차의 타이어 자국 등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예전에는 대기권에 존재하지 않았던 전기장에 의해 "플라즈마 볼텍스 현상"이 일어나서 이런 원들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중세부터 있어 왔습니다. 또 다른 이들은 이 원들이야말로 UFO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에드윈 퍼라는 캐나다 농부는 쟁기질을 하다가 앞에서 다섯 개의 빛나는 비행접시가 땅에서 약 40cm 위에 떠서 빙빙 돌고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거의 두시간 동안이나 그 광경을 보았고 마침내 비행접시들은 다섯 개의 원을 남겨 놓은 채 그곳을 떠나갔습니다. UFO와 영화산업 이런 사건이 자꾸만 발생하면서, 그늘 속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던 UFO 논의가 점차로 대중들 속으로 파고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행어 18」(Hanger 18)과 같은 영화가 만들어 졌고 그 후에는 스필버그 감독의 「클로스 인카운터: 세 번째 종류의 접촉」(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같은 대규모 흥행 영화가 만들어 졌습니다. 그래서 UFO와 E.T. 등을 다루는 영화들이 미국 헐리우드의 영화 산업계를 이끌고 나갔습니다. 제가 다시 한번 이 점을 말씀드리는 것은 1950년대에 헐리우드에 UFO 영화 붐이 일어난 것이 실제로 그 당시에 UFO가 수없이 많이 출현한 것과 무관치 않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정지한 날」(The Day the Earth Stood Still),「그것은 외계에서 왔다」(It Come From Outer Space),「지구와 비행접시」(Earth vs the Flying Saucers) 등의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계가 실제로 비행접시 현상을 선전해 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이 1970년대에도 스필버그 감독의 「클로스 인카운터」(Close Encounters) 같은 영화 등을 통해 일어났으며, 지금 이 시간에는 「종족들」(Species), 「도착」(The Arrival) 「스타게이트」(Stargate) 와 「인디펜던스데이 」(Independence Day) 등의 영화를 통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헐리우드 영화계가 이런 영화를 제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을 살펴볼 때 우리는 실제로 흥행업계를 거머쥐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기억해야만 합니다. 사실 테드 터너나 소니 혹은 M.G.M.사가 영화 흥행 업계를 쥐고 흔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배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있어 이 모든 것을 장악한 채 자기가 가는 곳마다 자신의 소발자국(소들의 신체가 절단 났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을 남기려 하고 있습니다. 테드 터너나 스필버그 감독 등 현재 영화흥행 산업계의 '신들'(시82:6,7)은 자기들이 어디서 돈과 능력을 구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며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엡2:2)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놀림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UFO 컬트 서문에서도 말씀드린대로 1997년은 참으로 UFO의 해였습니다. 1997년 3월 26일 캘리포니아주 란초산타페에 있는 160만불짜리 호화 주택에서 21명의 여자와 18명의 남자가 자주 빛의 삼각형 덮개를 덮은 채 죽어 있는 것을 보안관이 발견했습니다. 이들의 나이는 20세에서 72세로 밝혀졌으며 대부분이 셔츠 주머니에 자기들의 정체를 알려주는 물건들을 지니고 있었고 다음과 같은 자살 방법이 적힌 조그만 종이 쪽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푸딩이나 애플소스를 취해 페노바르비탈이라는 수면제와 섞어 술과 함께 마시고는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라." 희생자들의 침대 밑에는 여행용 가방이 잘 정돈되어 있었고, 죽은 사람 모두 주머니에 5달러 지폐와 몇 개의 25전 짜리 동전, 그리고 입술에 바르는 연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샌디에고 카운티의 블랙본 의사는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집단 자살로 보이며, 치밀하게 계획되어 실수없이 수행되었다." 이들은 "헤븐스 게이트"(Heaven's Gate, 즉 하늘의 문)라는 이름을 지닌 사교집단으로 밝혀졌고, 바로 그 날 약 4210년만에 "헤일-밥" 혜성이 확연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자 자신들의 자살극을 수행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들은 www.heavensgate.com이라는 인터넷 웹사이트를 개설해서 자신들의 정체 및 임무를 전세계에 알렸으며 많은 이들을 독려하여 같이 죽자고 제안했습니다. 다음의 그림은 "헤븐스 게이트"의 인터넷 홈페이지 로고이며, "헤븐스"라는 단어와 "게이트"라는 단어가 마치 뉴에이지의 앵크 십자가 형상을 이루며 빨갛게 깜빡거리며, 그 밑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었습니다. "약속된 대로, 하늘의 문에 이르는 열쇠들이 2000년전에 예수와 그의 아버지 안에 있었던 것처럼 지금 또다시 티와 도(UFO) 안에 있다." 이 희생자들은 고등지식을 갖춘 외계인들의 세계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으며 거기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들이 속한 "헤븐스 게이트"에 입교하는 것이며, 헤일-밥 혜성의 출현은 이같은 고등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집단으로 자살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라고 믿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헤일-밥 혜성의 꼬리에 UFO가 숨어 있으며 그 안에 외계인들이 타고 있다고 믿었으며, 인간의 몸이란 매개체 혹은 통에 지나지 않으며 고등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이 통을 벗어 버려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들은 자기들을 로마군에 의해 죽는 것보다는 스스로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주후73년에 마사다에서 자결한 유다인들과 비교했습니다. 이들은 참으로 왜곡된 뉴에이지 신학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가 사실은 이 땅에 와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를 소유한 외계인이며 침례자 요한이 침례를 주었을 때 그 외계인이 예수의 몸으로 들어갔다고 믿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성령님께서 비둘기처럼 내려왔을 때, 사실은 외계인이 예수의 몸이라는 통속에 들어온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예수라는 사람은 고등세계의 대표자로 선택된 인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사교 단체들이 집단 자살 행각을 벌인 경우는 몇차례 있었지만 이번처럼 UFO를 숭배하는 단체가 집단 자살을 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정도로 이제 UFO 및 외계인 문제는 위험수위를 넘어선 상태에 있습니다. 과연 이 모든 것이 거짓일까요? 모두가 다 사기를 치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UFO 및 외계인에 대한 증거는 너무나도 많아 셀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저는 분명히 이 문제가 마귀와 관련이 있다고 믿으며 우리 크리스천들도 반드시 이 문제에 대해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2009-05-08 15:15:40 | 관리자
제1장: UFO의 역사 다음의 글은 「UFO는 있다」(도서출판 두루마리)에서 취한 것입니다. 그림을 넣지 못함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10년 전에 출판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없어서 성경구절을 사적으로 번역해서 넣었습니다. 시간이 있어서 최신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으로 바꾸면 좋을 텐데 아직 여유가 없읍니다. 다만 이 글의 필요가 있어서 그내로 올리니 양해해 주기 바랍니다.   "오, 하나님 맙소사, 이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1994년 3월 8일, 미시간주 머스키간에서 엄청나게 큰 UFO를 목격한 경찰관의 비명소리- "이것은 금속체로서 그 크기가 엄청나게 크다." -미국 공군의 만텔대위가 UFO를 추격하다가 구름속으로 사라지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 "하늘을 주시하라!" -영화 「클로스 인카운터」의 원제목-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위를 보고 너희 머리를 들라. 이는 너희 구속이 가까움이라, 하시더라"(눅21:28) 과연 UFO는 성경과 어떤 관련이 있으며 땅위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일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지난 10여년간 저(슈네벨린)는 지옥으로 향하는 죄인들, 특히 사교나 이단에 빠져 죄 중에서 헤매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전념해왔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UFO와 복음 전하는 일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비록 뉴에이지 운동이 소위 외계인이라 불리는 존재들과 상관이 있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뉴에이지 속의 'UFO 현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는 이미 죽은 자들과 접촉하는 영매들이 행했던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우주의 외계인들과 접촉을 시도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세속 대중 매체들도 '날으는 비행접시'를 추종하는 사교에 대해 공공연히 이야기하며 비행접시에 끌려간 인물 중 가장 많이 화제에 오르고 있는 아담스키(George Adamski) 등에 대해 과대 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난 몇 년동안에 이런 엉터리 같은 친구들이 주장하는 바를 기독교의 관점에서 반박하는 책들이 저술되어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런 친구들은 몰몬교도나 프리메이슨(Free masons, 석공조직)과 같은 범주에 속하는 자들로 한마디로 말해 사람들을 속이는 자들입니다. 반면에 모든 UFO 현상을 이런 엉터리 사기꾼들이 조작해낸 부풀린 풍선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그것 또한 이 현상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사실 이 UFO 현상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생각할 줄 아는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다 시간을 내서 깊이 연구해야만 할 주제입니다. 이 문제에서 우리가 감지해야 할 사실은 UFO야말로 매우 확실하고 분명한 방법으로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마지막 때의 속임수"로 사람들을 이끌고 갈 변수일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UFO가 사회의 비밀 조직과 어두움의 세력들과 연합하여 모든 인류를 노예로 만들어 하나님의 말씀에서 "대환난"(마24:21,29;계7:14)이라고 표현된 마지막 기간을 맞이하도록 준비시킨다는 점입니다. UFO란 단지 허깨비나 환영이 아니고 더더욱 속임수도 아니며 능력이 있고 사악한 존재들이 만들어내는 속임수를 위한 고차원의 도구인 것입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저는 매우 강력한 어조로 이 점을 강조하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마귀들이 행하는 일들로 인해 놀라시지 않는다." 이제부터 전개될 내용으로 인해 어떤 이들은(특히 대중매체를 무조건 따라가는 성도들은) 매우 놀라게 될지도 모르지만, 늘 다음의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에게 경고를 해 주셨으며, 바로 그분께서 창조주이시다." 누가복음 21:11에 있듯이, 예전에는 없었던 방식으로 하늘에 놀라운 표적이 나타나서 사방에서 믿는 이들을 공격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제 우리 믿는 이들이 머리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속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눅21:28). 성경은 해답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우리를 마땅히 그리스도의 사역자요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여기게 하라. 더욱이 청지기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전 4:1,2)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이 언급한 청지기란 주인에게서 어떤 값나가는 것을 인수받아 잘 간수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청지기가 되려면, 그는 무엇보다도 신실해야만 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받은 모든 것이 실제로 자기의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4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재물을 맡은 청지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비들을 맡기셨고 이것들을 맡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신실하게 이것들을 가르치고 보존해야만한다는 것을 깨닫게됩니다. 그렇다면 독자께서는 이런 신비들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만일 우리가 이 신비들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신실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이런 신비가 무엇인지 알려고 조차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행계좌, 사회보장제도, 연금, 보험, 자기 자녀들, 집, 차, 물가 등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나 신비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마치 올빼미로 가득한 창고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초점은 사람들이 도무지 진리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현대인들은, 심지어 크리스천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조차도, 의를 좇기 위해 혹은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애타하거나 굶주려하지 않습니다. 자 그럼 '신비' 혹은 '미스테리'라는 단어는 무엇을 뜻할까요? 이 단어는 당신이 밤을 새워 연구해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신비란 말 그대로 신비이며, 당신은 그것을 믿어야지 절대로 설명을 통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은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셨다"는 사실을 신비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종종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매우 큰 일이 아니고 아주 작은 일을 통해서 이같은 일을 행하십니다. 예를 들어 그분께서는 남자 없이 여자가 아기를 갖게 하십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네 가지 방법에 의해서 사람을 만드십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흙으로부터 사람을 만드실 수 있고(창세기의 첫째 아담),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여자로부터 사람을 만드실 수 있고(마지막 아담 되시는 예수님),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통하지 않고 남자로부터 여자를 만드실 수 있고(이브), 넷째로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들로부터 사람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모든 사람들). 사람이 이 방법 중 어느 하나를 모방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는 아직도 세 가지 방법이나 더 남아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읽으며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ible)라는 구호를 외치곤 합니다. 물론 저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이해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구호는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성경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항상 우리들 보다 앞서 있으므로, 사실 우리는 그것을 잡으려고 앞으로 줄달음질 쳐야지 뒤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20세기의 현대인들보다 최소한 100-3000년 정도는 늘 앞서갑니다. 물론 저는 이 글에서 이같은 주장을 증명할 것입니다. 자, 다시 한번 성경이 말하는 '신비'가 무엇인지 다음의 정의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당신의 머리로 밤새 연구해도 설명할 수 없는 것, 바로 그것을 성경은 신비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없이 많은 미스테리(신비)들을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의 왕국의 신비들(마13:11, 눅8:10), 올리브 나무의 신비(롬11:24,25),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롬16:25, 엡3:4), 하나님의 지혜의 신비(고전2:7), 휴거의 신비(고전15:51), 하나님의 뜻의 신비(에1:9),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의 신비(에3:2,3), 그리스도의 풍부하심의 신비(에3:8,9),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의 신비(에5:32), 복음의 신비(에6:19),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신비(골1:26,27), 아버지와 아들의 신비(골2:2), 불법의 신비(살후2:7), 믿음의 신비(딤전3:9), 경건의 신비(딤전3:16), 일곱 별들의 신비(계1:20), 작은 책의 신비(계10:7-11), 바빌론의 신비(계17:5), 여인과 짐승의 신비(계17:7) 등등. 이들 외에도 수많은 은밀한 일들과 신비들이 성경 안에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참으로 성경은 미스테리에 관한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비들 중 어떤 것들은 이미 계시를 통해 밝히 드러나 있지만 또 어떤 것들은 우리가 하늘에 가게 될 때야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UFO 및 외계인에 관한 신비도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신비들 혹은 은밀한 일들 중 하나입니다. 세상의 과학자나 신학자가 무어라하던지간에 성경대로 믿는 우리는 UFO에 대한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물론 성경은 그에 대한 해답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기본적 용어 정의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 두가지 설명드릴 것이 있습니다. 간단해 보이긴 하지만, 우리는 UFO가 무엇을 뜻하는지 먼저 이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말 그대로 UFO란 "미확인 비행물체"(Unidentified Flying Object)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즉각 비행기나 유성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것은 모두 다 위의 정의에 따라 UFO입니다. 과연 UFO가 다른 별에서 온 우주선인지 아닌지는 뒤에서 판가름 날 것입니다. 따라서 날아다니는 것으로 정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이라면 다 UFO라는 점을 부디 기억하시고 이 책을 끝까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독자께서는 본문을 통해서 UFO의 정체가 무엇인지 차츰 알게 될 것입니다. 첫사람 아담이 창조된 지 약 6,000년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시를 담은 성경이라는 책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경대로 믿는다고 말하는 우리는 믿음과 행위의 모든 것에서 성경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들이며 따라서 성경 말씀이 UFO 문제에 대한 답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독자께서는 부디 하나님의 말씀이 20세기의 과학을 숭배하는 문명인들의 생각이나 지식보다 몇백년 정도는 늘 앞서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제 말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명백하게 UFO를 보여주고 있는 다음의 성경말씀을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돌아서서 눈을 들어본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길이가 이십 큐빗이요 너비가 십 큐빗이니이다. 그가 내게 말하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 만군의 주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이것을 내리니, 그것이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거짓으로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의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과 더불어 없애리라, 하셨느니라. 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되, 네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내가 말하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그가 말하되, 나오는 이것이 에파(바구니)니라. 또 그가 말하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또 보라, 한 탈렌트의 납이 위로 들리니 이것은 이 에파 가운데에 앉은 한 여자라. 그가 말하되, 이는 사악함이라, 하고 그것을 에파 속으로 던져 넣고 그 무거운 납을 에파의 아구 위에 놓아 덮더라.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보라, 두 여자가 나왔는데 그들이 학의 날개 같은 날개를 가진 고로 그들의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파를 하늘과 땅 사이에 들어올렸기로,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말하되, 이들이 그 에파를 어디로 가지고 가나이까?, 하매, 그가 내게 말하되, 그들이 시나르 땅에서 그것을 위하여 집을 지으려 하노라. 그것이 준공되면 자기 자신의 기지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슥5:1-11) 스가랴서 5장에서는 여러 개의 미확인 비행체, 즉 UFO가 나옵니다. 앞 뒤 문맥으로 보아 스가랴 5장이 "주의 크고 무서운 날"이 임하는 말세에 대한 계시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첫 번째 나오는 비행물체는 공중에서 날아가 악한 자의 집으로 들어가는 "날아가는 두루마리"(flying roll)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비행체는 이보다 더 멋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부셀 바구니처럼 생긴 "날아가는 바구니(에파)" 혹은 "날아가는 큰 접시"였습니다. 지금까지 목격된 UFO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물론 두루마리나 바구니 형태의 UFO들도 있습니다. 옆에 있는 그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묘하지 않습니까? 성경에 해답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이나 지식보다 늘 앞서갑니다. 위의 "날아가는 바구니" 위에는 뚜껑이 있었고 재미있게도 그 안에는 여자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하르피(Harpy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존재로 여자의 얼굴과 새의 날개를 가진 탐욕스러운 괴물, 스가랴서의 학의 날개를 가진 여자, 옆의 그림 참조)들은 땅에서 이 바구니를 취해 유프라테스 강가에 있는 바빌론(시나르 땅)으로 옮겨가서 그 바구니의 기지(영어로는 base로서 공군기지 등에 사용되는 단어임)에 세워놓았습니다. 이 기지는 창세기 11:1,2에 나오는 바벨탑이 있던 곳에 존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다시 오기 바로 전의 세상이 마치 "롯의 날들"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롯이 어느 때에 살았을까요. 바로 바벨탑 사건이 생기는 때가 아닙니까(창11:27)? 이처럼 UFO 현상이 재림과 관련이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안에 하르피 같은 반인반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행위와 믿음의 모든 점에 있어서 말입니다. 한편 UFO와는 달리 '외계인'(Alien)이란 단어는 성경에 나오기 때문에 성경이 정의하는 대로 이 단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참으로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너희는 지나간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들이요......그 때에는 너희가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공영권(共榮圈)밖의 외인이라. 약속의 계약들에 대하여는 낯선 자들이요"(엡2:11,12) 이 구절에 나오는 '외인'이 바로 영어로 '에이리언'(Alien)이며 곧 '외계인'을 뜻합니다. 물론 이 구절에서 '외인'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밖에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같은 정의에 따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면서 이 땅에 찾아 온 존재들은 다 '외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외계인'을 '다른 곳에서 온 사람'으로 정의한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온 존재'로 정의했음에 유의하십시오. 이와 관련하여 믿음의 사람들의 행적을 기록한 히브리서 11장에는 아주 재미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대언자들에 관하여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왕국들을 굴복시키기도 하며, 의를 이루기도 하며, 약속들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맹렬한 불을 끄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함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투에 용맹하게 되어 외부의 군대들을 패주시키기도하며"(11:32-34) 여기에서 나오는 '외부의 군대들'은 영어로 'the armies of the aliens', 즉 '외계인들의 군대들'을 뜻합니다. 그런데 32절에 있는 인물 중에서 '전투에 용맹하게 되어 외부의 군대들을 패주시킨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바락이라는 판관(사사)이었습니다. 판관기(사사기) 4장과 5장을 보면, 데보라라는 여대언자와 바락이라는 판관이 나와서 카나안 사람들에게 압제를 당해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기사가 나옵니다. 이 전쟁에서 카나안의 시세라와 싸워 승리한 뒤 데보라와 바락이 승리의 노래를 하는데 거기에는 참으로 흥미로운 구절이 있습니다. "왕들이 와서 싸우되, 카나안의 왕들이 메깃도의 물가에 있는 타아낙에서 싸웠으나 돈을 얻지 못하였도다. 그들이 하늘로부터 싸웠으며, 별들이 자기들의 행로에서 시세라와 싸웠도다."(판관기 5:19, 20) 많은 성경 주석가들은 이 기사가 주 예수님의 재림 전에 메깃도(므깃도) 골짜기에서 이루어질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예표로 봅니다. 물론 판관기 5장의 앞 뒤 문맥이 '크고 무서운 주의 날'과 비슷하므로 이같은 해석에는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사실 메깃도에서의 승리는 우리 주 예수님의 부활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땅에 장사되었다가 정확히 3일만에 부활(즉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시며 홀로 죽음 권세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사로잡힌 자들(구약시대의 성도들)을 다 사로잡아 하늘로 데리고 가셨습니다(이에 대해 자세히 알기를 원하는 독자는 「아이들이 죽으면 어디로 가나요」(도서출판 안티오크)를 참조함기 바람). "그러나 우리 각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으니, 이러므로 말씀하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아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다, 하였도다. (이제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그분께서 먼저 땅의 아래 부분들로 내려가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뇨? 내려가셨던 분께서 또한 모든 하늘들 훨씬 위로 올라가셨던 바로 그분이시니, 이는 모든 것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엡4:7-10)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영감으로 사사기 5:12에 나오는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아 이끄시고"라는 구절을 취해 예수님께 적용했습니다. 계시록을 보십시오. 아마겟돈 전쟁에서는 하늘의 군대가 나오고 물론 사탄과 그의 군대도 나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시세라와 바락의 싸움터에는 하늘로부터의 군대들도 있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물론 '그들이 하늘로부터 싸웠다'는 구절과 '별들이 시세라와 싸웠다'는 구절도 이런 점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구절과 히브리서의 "외계인의 군대들"을 연관시켜보면, 하늘에 속한 천사들과 사탄의 마귀들도 '외계인'이라는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외계인'이 어쩐 존재인지는 본문에서 자세히 드러날 것이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성경에 흥미를 갖도록 하기 위해 위의 정의에 따라 명백하게 외계인을 보여주는 성경 구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별 하나가 하늘에서 땅에 떨어지는데, 그에게 바닥 없는 구덩이의 열쇠가 주어졌더라. 그가 바닥 없는 구덩이를 열자, 거대한 용광로의 연기 같은 연기가 구덩이에서 올라오는데, 태양과 공중이 구덩이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또 메뚜기들이 연기 가운데서 나와 땅 위로 올라오매, 그것들에게 권능이 주어지니, 마치 땅의 전갈들이 권능을 지닌 것 같더라. 그것들에게 명령하시기를, 땅의 풀이나 어떤 푸른 것이나 어떤 나무도 해치지 말고, 오직 이마 안에 하나님의 인이 없는 사람들만 해치라, 하더라. 또 그들을 죽이지는 말고, 다섯 달 동안 고통만 받게 하도록 하시니, 그들의 고통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의 고통과 같더라. 그 날들에는 사람들이 죽음을 구하여도 찾지 못하겠고, 죽기를 갈망하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또 메뚜기들의 생김새는 전투를 위해 예비한 말들 같으며, 그 머리에 쓴 것은 금같은 왕관과도 같고,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더라. 또 여자의 머리카락 같은 머리카락이 있고, 그 이는 사자의 이같으며 또 철 흉갑같은 흉갑이 있고, 그 날개 소리는 전투하려고 달려가는 많은 말들의 병거 소리 같으며, 또 전갈과 같은 꼬리가 있고 그 꼬리에 침이 있으니, 그것들의 권능은 사람들을 다섯 달 동안 해치는 것이더라. 그것들에게 다스리는 왕이 있으니, 곧 바닥 없는 구덩이의 천사로서, 그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아바돈이요, 그리스어로는 아폴리온이라 하더라."(계9:1-11) 위의 계시의 말씀에서 사도 요한은 성도들이 휴거를 받은 뒤 이 세상에 존재하게되는 사람들위에 임하게 될 무서운 재앙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재앙 중 하나가 바로 땅 밑의 아바돈에서 나오는 존재들에 의한 고통입니다. 사도요한이 메뚜기라고 부른 이 존재들은 분명히 땅 밑(즉 외부 세계)에서 나오며 위의 정의에 따라 '에이리언', 즉 '외계인'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사람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으며, 그 생김새가 옆에 있는 "UFO 내의 외계인들"과 매우 비슷합니다. 참으로 흥미롭지 않습니까? 성경을 단지 비유의 책 정도로 보지 마시고 있는 그 안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또한 믿음과 행위의 모든 면에서 성경이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도 늘 기억하십시오. UFO와 외계인에 대한 정의를 내렸고 성경에서 그 예를 보여드렸으므로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에 앞서 저(슈네벨린)는 UFO에 관한 한 제가 초심자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습니다. 저는 1964년부터 무려 30년 이상이나 UFO에 대한 연구를 해왔으며, 크리스천이 아니었을 때도 그리고 지금처럼 크리스천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이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UFO 수수께끼의 역사 상세한 내용 및 해석을 담고 있는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간단하게 나마 UFO의 역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UFO 현상이 매우 오래된 것임을 깨닫게 되면 많은 독자들이 꽤나 많이 놀랄 것입니다. 사람이 하늘을 날기 훨씬 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늘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물체를 보았습니다. 물론 우리는 다 땅에 속한 사람이므로 하늘에 나타난 어떤 현상을 이 땅에서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려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때는 혜성이 나쁜 것에 대한 전조로 인식되곤 했습니다. 현재 20세기말에 사는 우리는 혜성이란 것이 단순히 어떤 주기를 갖고 하늘에 나타나는 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일식이나 월식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는 이런 현상이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최소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문명인들에게는 매우 흥미 있는 볼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고대에 하늘에 나타난 현상을 모두 다 이처럼 쉽게 설명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사실 고대의 많은 사람들이 천문학에 관련된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서는 상당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하늘에서 생긴 사건을 보고 우리 주 예수님의 탄생을 예측했던 동방의 현자들 같은 사람들입니다. 고대에 살던 매우 현명한 연대기 기록자들 중 어떤 이들은 자기들이 관측하고 목격한 어떤 일들로 인해 매우 당혹스러워 했습니다. 빛을 내는 이상한 비행체가 하늘에 날아다니는 것은 주전 90년에 주후 200년까지의 고대 작가들에 의해서도 이미 보고된바 있습니다. 플리니(Pliny)와 세네카(Seneca)뿐만 아니라 주후 170년에는 헤로디안(Herodian) 등이 UFO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UFO 관련 유명인사 중 하나인 본 다아니켄(Erich von Daaniken)이 저술한「신들의 수레」(Chariots of God)와「외계로부터 온 신들」(Gods from Outer Space) 같은 책들이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아 그 내용을 액면 그대로 인정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고대에도 UFO 현상이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UFO는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에도 계속해서 존재했습니다. 주전 175년에 코케이아노(Dione Cassio Cocceiano)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라누비오에서 여러 개의 별들이 태양을 가로질러갔다. 또한 주전 122년에 골 지방에서는 세 개의 태양과 세 개의 달이 나타났다. 스폴레토 근처에 황금색 불 모양의 공이 땅위에서 구르더니 점점 커지면서 땅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지나갔다." 주후 350년에 줄리안(Julian the Obsequious)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주전 222년에 세 개의 달들이 보였다." 주전 106∼43년에 살았던 키케로는「De Divinitate」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두개의 태양이 보였다. 밤의 태양이 보였을 때 큰 소리가 났고 하늘이 갈라지는 듯 했으며 하늘에 이상한 공들이 나타났다." 키케로 이후에 UFO는 "태양들(둥근 것)", "불로된 공들(둥근 것)", "달들(둥근 것)" 등으로 불렸습니다. 주후 23∼79년까지 살았던 플리니는 자신의 저서 「자연 역사」(Natural History)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밤의 태양, 곧 캐킬리오와 파피로가 집정하던 때에 밤에 하늘에서 나온 광채는 밤의 하늘을 마치 대낮처럼 만들었다...... 도미조와 파니오가 집정할 때는 세 개의 달들이 나타났다..... 별에서 나온 불똥이 땅에 가까이 오면서 점점 커져 달처럼 커졌고 마치 대낮에 구름이 낀 것 같은 정도의 빛을 냈다. 그리고는 다시 하늘로 사라졌다." "칠로와 포르키오 시대에는 우유와 피로 된 비가 왔고 루카니아에는 살점과 쇠가 떨어졌다." 주후 170년에 시리아의 헤로디안은 자신의 저서 「마루크스 아우렐리우스 이후의 제국역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매우 밝은 대낮에 하늘에 별이 나타났다." 주후 46∼120년에 살았던 플루타르크는 「캐사르의 삶」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별들의 출현은 항상 초자연적인 사건들과 관련이 있다. 혜성이 7일 동안이나 나타났다. " 「영국민족의 역사」에서 비드(주후672-6735)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거대하며 날아가는 물체 네 개가 보였다...... 하늘에서 광채가 나와 기도하고 있던 수도승들 위를 덮었고, 사원의 반대편에 가서 정지하더니 마치 태양처럼 밝은 빛을 내며 공간 깊숙이 사려져 버렸다." 주후 583년에는 매우 밝은 광채가 프랑스땅 전역으로 날아다녔습니다. 샤를먀뉴의 「Karl Ber Gross」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810년에는 하늘에서 큰 공이 마치 번개처럼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동에서 서로 날아갔고 타고 왔던 말이 뒷걸음질쳐서 그는 떨어져 상처를 받았다." 주후 776년에 로우리쎄네스(Annates Laurissenes)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색슨족들이 시지스부르그에서 샤를마뉴의 기병들을 포위하는 동안 날아다니는 방패가 나타났다. 램프처럼 빛나는 광채들이 있었다. 그리고 붉은 용들이 공중에 날아 다녔다." 웬도버의 로저는 「Floris Historiarium」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주후 796년에 조그만 공들이 태양 주위에 날아다니는 것을 영국의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보았다." 1768년에 독일의 시인 괴테는 자신의 전기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계단 형태의 수없이 많은 별들이 깔때기 모양을 하고 나타나 너무나 큰 빛을 내서 눈을 뜰 수 없었다." 한편 켈리니의 「자서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1290년 10월 2일, 우리는 플로렌스 지방에서 놀라운 일을 보았나이다! 그것은 마치 큰 불 빛 같았으며…… 반지처럼 생긴 은빛 물체가 천천히 날아가는 것이 보였으며 …… 1548년에는 불공이 튜린지아 지방의 하늘에서 폭발하는 듯 했으며 응고된 피같은 물질을 떨어뜨렸나이다……" 1577년에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 이상한 기계들이 날아다녔습니다. 이 외에도 "녹색 태양", "붉은 태양", "붉은 용", "불타는 원반" 등이 폴란드와 독일에 나타났고 "둥근 기계, 날아다니는 원반, 빛나는 반지" 등이 1547년부터 1697년 사이에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에 나타났습니다. 매우 흥미 있는 일은 1492년 10월 11일에 현재 우리가 마의 버뮤다 삼각지대라 부르는 곳에서 미국 대륙을 발견하기 하루 전에 컬럼버스가 UFO를 보았음을 보고한 사실입니다. 버뮤다 삼각지대에 대해서는 부록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한편 1883년 8월 12일 보닐라(Jose Bonila)는 멕시코의 자테카우스 천문대에서 150여장의 UFO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때는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31년 전이었습니다. 그는 담배처럼 생긴 단단한 물체가 마치 비행선처럼 태양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것을 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불길한 관점에서 보면, 중세에 페스트가 발생했을 때 이상한 혜성들이 이 무서운 병이 발발하기 바로 전에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사람들이 혜성이라고 한 것들은 오늘날 우리가 비행접시라고 부르는 것들과 동일한 형태였으며 심지어 포문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많은 경우에 고대의 작가들은 이처럼 날아다니는 물체가 신들과 관련이 있거나 아니면 마귀의 영향으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전혀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지구상에서 전쟁과 죄를 제외하고는 그 어느 것도 UFO 만큼이나 꾸준히 지속되어온 것이 없습니다. 어떤 역사가도 "원반"이나 "불공", "태양", "구", "방패", "달", "접시" 등을 고려하지 않고는 정확하게 인류의 역사를 기록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UFO를 본 사람들 중에서 그것이 우주선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아마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단지 그들은 그런 물체를 보고 "날아다니는 배", "원반" 등으로 묘사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음의 말씀에 근거하여 UFO라는 것이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지속되어온 현상이라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듣지 않거든 너와 함께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마18:16) 하늘에서 살과 피가 떨어지다 한편 UFO와 관련해서 우리는 하늘에서 이상한 것들이 쏟아지는 현상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합니다. 성경에는 "비"(Rain)라는 단어가 동사로도 쓰이고 명사로도 쓰입니다. 그런데 하늘에서는 물로 된 비만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개구리, 빵, 우박, 불, 만나 등이 모두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창19:24, 출9:23, 시78:24,27 등을 자세히 보십시오. 물론 이 구절에는 다 '비'(rain)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두 구절만 영어와 함께 보여드리겠습니다. "And had rained down manna upon them to eat, and had given them of the corn of heaven." "그들에게 만나를 비로 내려 먹이시고 하늘의 곡식을 그들에게 주셨도다."(시편 78:24) "He rained flesh also upon them as dust, and feathered fowls as the sand of the sea." "또 그가 고기를 먼지같이 비로 내리시고, 깃털 달린 날짐승을 바다의 모래같이 내리셨도다."(시편 78:27) 시편 78:24절은 천사들의 양식인 만나가 비로 내려왔고, 27절은 고기와 새들이 비로 내려왔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키케로나 플리니처럼 착각을 했거나 헛것을 본 것일까요? 도대체 왜 현대인들은 이런 것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까? "만일 듣지 않거든 너와 함께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마18:16) 1892년에는 알라바마주의 콜부르그에서 뱀장어들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는 그곳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태평양에서나 사는 것들입니다. "콜부르그 사건은 지금부터 100년전에 일어난 것으로, 지금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지요"라고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1966년에는 영국과 유럽 전역에 미끈미끈하게 생긴 개구리들이 하늘에서 떨어졌고, 프랑스에 사는 한 여인의 뒤뜰에는 개구리가 자그마치 100마리가 넘게 떨어졌습니다. 주전 1500년에 모세가 일으킨 "개구리 비"는 아직도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1954년 9월 26일에는 플로리다주의 올랜도에 두꺼비들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1961년 여름에는 싸우스캐롤라이나주의 스탠리에도 두꺼비 비가 내렸습니다. 인도의 알라바드에는 물고기처럼 생긴 것들이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그것들은 마치 바싹 마른 크래커 과자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냄비에 넣고 그것들을 데우자 갑자기 피로 변했습니다. 1832년에는 러시아에 약 5cm 두께의 노란색 고무같은 끈적끈적한 수지가 하늘에서 떨어져 약 20평 정도를 덮었습니다. 에드워즈(Frank Edwads)가 지은 「이상한 세계」(Strange Worlds, Bantam Books, 1964)에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841년에는 캘리포니아주의 니에토스와 켄터키주의 배쓰군에 살과 피가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한 사람은 내쉬빌 대학의 화학과 교수인 트루스트 박사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레바논에서 동쪽으로 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빨간 구름 속에서 이것들이 떨어졌다. 이 살과 피는 길이가 0.8 킬로미터, 너비가 75 미터 되는 지역을 덮었고, 다 합치면 몇백 킬로그램은 되는 것 같았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1850년에는 버지니아주 클로버리아에서도 살과 피가 떨어졌습니다. "이 비"는 약 3mm 두께의 고기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 고기를 분석해 보니 사람의 근육과 간과 심장 밑부분으로 판명되었습니다. 1851년에 「샌프란시스코 헤럴드」신문은 군인들이 훈련받고 있는 훈련소에 사람 고기가 떨어진 것을 보고했습니다. 군인들이 이것을 거두어 분석한 결과 사람의 살점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을 두십시오. 성경은 20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보다 최소한 500-3000년 정도 늘 앞서갑니다. 참으로 위험한 한 세기 현대의 UFO 현상은 1800년대 후반부터 일어난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19세기는 사회적으로, 과학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큰 변혁이 일어났던 때입니다. 이 때에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영성주의(Spiritualism),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크리스천 사이언스 등과 같은 새로운 거짓 종교들이 태어났습니다. 또한 다아윈의 진화론이라는 허구가 성경의 진리들을 대항하며 일어났습니다. 이때에 와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진지하게 하늘을 날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끝으로, 바로 이 때에 학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난도질을 하며 킹제임스 권위역 성경(King James Version)을 버리고 영국의 개역성경(Revised Version)이라는 "새로운 것"(행17:21)을 만들어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성경을 개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1611년부터 약 300년간 영어권을 비롯한 전세계에서는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랑을 받았고 이 성경을 통해 온 세계가 복음화되었습니다. 한편 19세기말에는 사악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들이 태어났습니다. 그것도 1875년이라는 해에 동시에 말입니다. 이 중 한 명은 신지학협회(Theosophical Society, 즉 접신협회)의 마담 블라바츠키(Helena P. Blavatsky)이며, 다른 한 명은 크로울리(Aleister Crowley)였습니다. 1831년에 러시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블라바츠키는 어릴 때부터 심령술에 대한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어른이 되어서는 그 당시의 지성인들이 앞다투어 추구하려고 했던 힌두교와 기타 다른 동방의 신비주의에 심취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티벳으로 여행하는 동안 마하트마라는 몸이 없는 고등의 영적 존재들과 접촉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녀는 그 당시에 유명했던 올코트(Henry Steel Olcott)와 젓지(William Quan Judge)라는 다른 두명의 신비주의자들과 함께 신지학협회를 설립했습니다. 신지학협회는 사실 현대의 모든 뉴에이지 단체의 모체입니다. 블라바츠키가 저술한 책들은 현대 뉴에이지의 기본적인 개념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이런 개념들은 마치 해악을 품은 독초처럼 미국을 포함한 서구의 형이상학적 정신 체계를 다 장악해 버렸습니다. 블라바츠키가 주장한 우주관의 특징은 비너스 즉 금성에 자신이 접촉한 외계인 마스터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금성의 주들(Lords)은 말 그대로 외계인들로 자신과 같은 영매와 더불어 직접 교통을 한다고 그녀는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사람과 고등 외계인과 접촉하는 것이야말로 현대의 영화 「E.T.」에서부터 「클로스 인카운터」등이 추구하는 것의 모형이었습니다. 한편 블라바츠키를 경멸했던 크로울리는 총기가 넘치는 신동이었으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인물로 불려지기를 고대한 미치광이였습니다. 그는 20세기의 마술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가 이같은 여러 가지 사실을 정리해감에 따라 크로울리와 블라바츠키의 신지학협회의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한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영국의 경우 1880년부터 1889년까지의 10년은 참으로 불행한 시기였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사악한 영어개역성경이 이 때에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소위 프로테스탄트 국가라 칭함을 받던 영국에서 근 300년간 사용되어온 프로테스탄트들의 개혁본문을 담은 킹제임스 성경을 던져 버리고 다시 로마 카톨릭으로 돌아가려는 시도였습니다. 블라바츠키의 영향을 받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라는 소위 "크리스천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칼을 댔습니다(고후2:17).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웨스트코트는 접신을 행하는 영성주의자였으며, 호르트는 마귀와 지옥, 하나님의 창조 등을 믿지 않는 인본주의자였습니다. 이들은 "본문비평"이라는 마귀의 도구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일반 다른 책들과 똑같이 다루며 자기들 마음대로 변개시켰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한 뒤 채 한 세대가 지나지 않아 영국은 세계 최강의 국가에서 밀려나기 시작했고, 현재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이빨 빠진 사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조롱 받는 분이 아니십니다(갈6:7).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재의 미국 역시 영국의 실정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자, 과연 이런 일들이 UFO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매우 상관이 많습니다. 1890년부터 1899년까지의 10년 사이에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만든 개역표준역(Revised Standard Version, RSV)이 출간되었고 동시에 현대판 'UFO 대출현 현상'(UFO flap)이 처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현대 UFO 용어에서, '플랩'(Flap)이라는 말은 UFO 현상이 수없이 많이 목격된 어떤 특정한 기간을 말합니다. 그 당시에는 심지어 한 달 사이에 전세계적으로 수백 건의 UFO 출현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1890년대에 시작한 UFO 대출현 현상은 거의 매 4년마다 되풀이되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UFO가 한 달에서 여섯 달 혹은 1년정도 지속적으로 출현하다가 사라지고는 약 4년이 못되어 동일한 사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신비의 UFO 대출현 주기가 시작된 것은 바로 지금부터 1세기 전이었습니다. 시베리아에 별과 별 사이의 대변동 발생 한편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베리아에서는 지금까지도 논쟁이 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908년에 시베리아의 퉁구스카에는 별들로부터 매우 거대한 것이 떨어졌습니다. 그 충격은(아마도 공중 폭발이었는지도 모름)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위력을 지닌 어떤 원자력 우주선이나 장치가 폭발함으로써 발생한 것 같습니다. 인류가 처음으로 원자폭탄을 폭발시키기 40년전에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을 부디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폭발로 인해 나무들은 마치 성냥개비처럼 뿌리째 뽑혀 30킬로미터나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 폭발 현장에서 나온 빛은 너무나 밝아 8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이 밤에 다른 빛의 도움을 받지 않고 글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 사건이 발생한지 20년이 흘러간 후에도 그 주변에는 아무런 생물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 서구에서는 방사성물질에 대해 겨우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 당시의 러시아 사람들은 미국사람들이나 유럽사람들보다 이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그 폭발이 일어난 장소가 매우 황폐한 곳이므로 지금까지도 과연 그것이 거대한 유성이었는지 혹은 우주선이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근처에서 그것을 눈으로 본 사람들이 모두 다 즉사해서 한 사람의 생존자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현장을 자세히 점검해 본 결과 유성의 잔재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유성이 마치 원자폭탄처럼 폭발한다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흰옷을 입은 마리아의 등장 이 사건이 발생한 후 채 10년이 지나기도 전에 포르투갈에서는 매우 유명한 '마리아 출현' 현상이 있었으며 수만 명의 사람들이 실제로 그것을 목격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이 '성모 마리아 출현'이 UFO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것을 UFO 문제로 보아야만 합니다. 대부분의 세속적 UFO 전문가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917년에 포르투갈의 조그만 마을인 파티마에 사는 세명의 어린이들에게 하얀 모습의 여자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흰옷을 입은 채 빛나는 공같은 것을 타고 왔습니다. '마리아 출현' 및 UFO와의 관련 여부 등은 부록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으니 그 곳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물론 카톨릭교회에서는 이 여인이 마리아라고 주장하며 이를 "파티마의 숙녀"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 여자와 어린아이들과의 만남은 오늘날 우리가 "세번째 종류의 접촉"(Close Encounter of the Third Kind, 제3종 근접조우)이라 부르는 현상의 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는 미국 공군에서 수년간 UFO 상담가로 일한 바 있는 유명한 우주인이자 교수인 하이네크(J. Allen Hynek)가 만들어 놓은 외계인과의 접촉을 분류하는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첫번째 종류의 접촉(Close Encounter of the First kind, CE1, 제1종 근접조우) : 약 150m 정도의 거리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물체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 (2) 두번째 종류의 접촉(Close Encounter of the Second kind, CE2, 제2종 근접조우) : UFO가 목격자 근처에 착륙한 뒤 착륙한 흔적을 남기고 이륙하는 것. 그 흔적에는 불에 탄 것, 방사선, 농작물이나 풀이 눌린 것 등이 포함된다. (3) 세번째 종류의 접촉(Close Encounter of the Third kind, CE3, 제3종 근접조우) : 목격자가 UFO 조종사를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심지어 조종사와 대화를 나누는 것.(우리는 나중에 네 번째 종류의 접촉에 대해 이야기 할 것임.) 사실 하이네크는 UFO 출현 등에 대해 늘 반박했고 믿지 않았으나 공군의 대변인 노릇을 마친 후 군대에서 은퇴하자마자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노년에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UFO의 특성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고 신뢰할 만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사실 그의 글을 통해 우리는 미국 공군이 UFO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현재도 기울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파티마에 나타난 그 여자는 그 어린아이들에게 로마 카톨릭교회의 교리를 강화시켜주는 여러 가지 메시지를 준 것과 더불어 하늘에 놀라운 표적이 있을 것임을 예언했습니다(눅21:11). 이 표적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태양(혹은 구름 뒤에서 나타나 마치 태양처럼 보이는 어떤 것)이 공중에서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옆의 그림에서 볼수 있듯이, 이 둥근 물체는 길이 방향으로 통째로 회전하는 것을 빼고는 갖가지 움직임을 다 보여준 뒤 사라졌습니다. 물론 그 당시 사람들은 그것이 태양이라고 생각했지만, UFO 전문가들은 그것이 분명히 UFO라고 생각합니다. 신실한 카톨릭교도들 역시 이런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원한다면, 분명히 태양을 움직여 이런 식으로 나타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것이 하나님께서 실제의 태양을 움직여 행하신 일이라면, 왜 파티마라는 조그만 마을에서만 그 현상이 나타났을까요? 마치 태양이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원반처럼 공중에서 왔다갔다했다면, 최소한 지구의 그 편에 있던 사람들은 다 그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태양이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단지 그 현상을 지켜보러 온 순례자들과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만 그것을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그 사건은 지역적인 사건이었으며, 이로 인해 우리는 사실 그 현상이 UFO 현상이거나 아니면 레이저에 의한 현상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농장의 소년과 UFO 승무원 : 몰몬교 UFO 연구라는 측면에서 살펴 볼 때 파티마에서의 마리아 출현이 신성을 띤 최초의 '종교적 출현'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증명이 됩니다. 파티마에서 마리아가 출현하기 90년전에 일어난 또 하나의 유명한 출현을 조사해 보면, 거기에도 UFO와 관련이 있는 요소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몰몬교를 창시한 자칭 예언자 조셉 스미쓰(Joseph Smith)가 처음으로 그 출현을 보았을 때, 그것은 놀랍게도 마치 현대판 UFO의 "세번째 종류의 접촉"과 너무나 같았습니다. 그 때 그는 나무에 걸터앉아 어느 교회에 가야할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대한 어두움이 엄습해 자신을 덮자 그는 연약하게 되어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부터 빛의 기둥이 나타났고 흰옷을 입은 두 남자가 아래로 빛을 비추며 그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몰몬교에서는 이 두 남자가 바로 성부 하나님과 예수님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만일 이 사건에서 종교적 색채를 모두 지워버리면, 그것은 마치 여러 사람들이 경험한 UFO 접촉과 거의 다름이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몰몬교에서 가르치는 많은 교리가 마치 저질 공상과학영화에서 나오는 가르침과 비슷하다는 것을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군의 전투기? 이제 다시 UFO 연대기로 되돌아가보면, 그 다음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은 1930년대에 나찌 독일이 UFO 기술과 접촉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보고서가 있습니다. 한 보고서는 UFO가 독일영토에 추락했고 독일군들이 생존자들을 감옥에 가두었다고 보고합니다. 또 다른 보고서는 독일의 히틀러의 "제3제국"에 고용된 세 명의 접신자들이 영교를 통해 외계인과 접촉을 했으며 독일 과학자들에게 어떤 무기나 비행기 등을 설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기록합니다. 히틀러가 독실한 로마 카톨릭 신자였으며 동시에 신비주의에 깊이 빠져 있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후 독일의 권력을 장악하기 전에 그는 최소한 한 개의 독일 신비주의 그룹에 입문하여 신비 전수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히틀러는 점성학에 너무나 심취했고 그래서 영국의 처칠경은 자신의 점성사들을 불러 히틀러가 점성술 그림에 기초를 두고 세운 전쟁계획을 예측해 내도록 할 정도였습니다.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히틀러가 마귀에 사로잡혀 있었고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나게 사탄의 능력으로 충만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는 거기에 만족해하지 않았고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원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자신이 이룩하려는 천년동안의 "제3제국"건설을 촉진시키기 위해 영매를 고용하여 어떤 종류의 마귀와 접촉을 하거나 혹은 다른 세계의 어떤 권능과 접촉을 시도한다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어찌되었든지 독일의 과학자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매우 진보된 기술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은 많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기술은 V-2 로켓을 만드는 데서도 드러났고, 신속히 원자탄을 제조하려는 시도에서도 잘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이들이 이런 기술을 습득한 것이 단지 과학이나 군사적 목적을 위해서만이 아니고 그것을 벗어난 어떤 초자연적인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뒤에서 UFO와 나찌와의 관계에 대해 좀더 많이 다룰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나찌로부터 현세대까지의 UFO 역사를 다루면 됩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어느 누구도 그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비행체들이 공중에서 수없이 많이 날아다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연합군들은 그것들을 "적군의 보이지 않는 전투기"라 불렀고 그것들이야말로 독일군이 개발한 비밀무기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독일군 조종사들이, 자기들이 독일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미확인 비행물체 때문에 종종 당황해 했다는 점입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원자탄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히틀러와 일본 황제의 광적인 꿈은 모두 산산조각나고 말았습니다. 비행접시와 로스웰의 탄생! 우리가 공식적으로 핵시대에 들어서자마자 UFO 역사에 또다른 획이 그어졌습니다. 1946년에 전쟁이후 처음으로 스웨덴에 UFO 대출현 기간이 발생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매 4년마다 약 8개월간 UFO가 대거 출현하는 일이 주기적으로 발생했습니다. 그 주기가 끝날 무렵인 1947년에 UFO 용어 사전에 영원히 기록될 "비행접시"와 "로스웰"이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두 가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947년 6월 24일 워싱턴의 사업가로서 민간항공경비회의 회원인 아놀드(Kenneth Arnold)는 레이니어산 근처의 캐스케이드 상공에서 자신의 경비행기로 날아갔습니다. 그러다가 마치 연못 위에 수평으로 돌을 던지면 돌이 물위에서 톡톡 튀며 나아가듯이 "비행접시"들이 구름에서 톡톡 튀며 날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방송매체들은 "비행접시"란 단어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비행접시란 단어는 UFO 역사에서 공식용어로 굳어졌습니다. 대개 방송매체들은 이런 종류의 기사에 대해 콧방퀴도 뀌지 않지만, 아놀드의 명성 때문에 그의 진술에 귀를 기울여야만했습니다. 그런데 비행접시 목격사건이 일어나지 채 며칠도 지나지 않은 1947년 6월 2일에 심지어 아놀드의 비행접시사건을 완전히 무색케해버린 매우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뉴멕시코주의 로스웰근처의 광활한 목장에 비행접시가 추락했습니다. 그 당시 로스웰에는 공군 부대가 있었고 그 곳에는 그 당시에 전세계에 유일하게 존재하던 원자폭탄을 실은 비행기 편대가 있었습니다. 녹색과 흰색의 조그만 존재들의 시체들과 날개같이 생긴 물질들이 추락사고 현장부근에서 발견되었다고 여러 사람들이 주장합니다. 처음에 공군은 자신들이 비행접시의 잔해를 보관하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하루가 지나서는 그것이 사실은 기상 측정용 기구라고 발표했습니다. 어떤 비밀 연막이 이 사건을 덮어 버렸고, 지금까지도 이 사건은 UFO 역사상 가장 큰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미국 정부는 이런 사건들을 항상 부인합니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심지어 뉴멕시코주 상원의원이 연방정부에게 로스웰 사건과 관련한 문서를 발표하라고 요구하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미국 정부가 자신들이 부주의로 모든 문서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중에 또 다른 로스웰사건에 대해 언급할 것입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후 또 하나의 중대한 이정표가 새겨졌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비행접시중 하나를 격추시켰고 그들도 우리의 비행기중 하나를 격추시켰습니다. 1948년 1월 7일 오후 1시15분, 켄터키주 포트녹스에 있는 갓맨 공군기지 근처에서 매우 거대한 UFO가 나타났습니다. 이에 F-51 무스탕 편대가 그것들을 요격하려고 출격했습니다. 이 편대의 지휘관인 만텔(Thomas Mantell)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UFO를 추격하다가 구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은 금속체로서 그 크기가 엄청나게 크다." 어떤 이유에선지 그가 탄 비행기는 추락했고 그 잔해는 사방 1.6 킬로미터를 덮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공식 성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스카이훅 기상 기구를 보았다." 그런데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처럼 훈련을 받은 전문 조종사가 자기보다 더 빨리 날고 있는 거대한 비행기를 기상기구로 착각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1954년에 또 다른 UFO 대출현 기간이 발생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UFO를 보았다고 진술했습니다. 그 출현 중 어떤 것은 땅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고 레이더로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비행접시들은 심지어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 상공과 백악관 위에서도 날아다녔습니다. 비행접시의 출현이 너무나 빈번하여 비행기 조종사들은 하룻밤에 8-10번 정도 목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에 미국 시민들은 놀라게 되었고 드디어 공군은 UFO 현상에 대해 심각하게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같은 일련의 조사는 "프로젝트 싸인"(Project Sign), "프로젝트 그럿지"(Project Grudge), "프로젝트 블루북"(Project Bluebook) 등으로 명명되었습니다. 이같은 조사를 통해 공군은 공식적으로 미국의 안보에 영향을 끼치는 어떤 위협적인 것이 공중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술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의 UFO 출현이 사람의 실수로 잘못 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정부 당국의 이런 주장은 점점더 그 근거를 잃게 되었습니다. 1963년에 나타난 UFO 대출현시에 팔로마산 관측기사의 천문학자들은 지름이 300미터가 넘는 UFO가 자그마치 260개나 달을 가로질러 비행하는 것을 보았다고 보고했습니다. 지금까지의 UFO 출현을 모두 합치면 적어도 백만 번은 됩니다. UFO를 실제로 목격한 사람들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1명의 훈련받은 미국 공군 관측사들, 6명의 훈련받은 미국 해군 관측사들, 4명의 훈련받은 미국 해병대 관측사들, 5명의 훈련받은 미국 육군 관측사들, 14명의 과학자나 천문학자들, 40명 이상의 공군 조종사들. 이처럼 잘 훈련받은 관측사나 비행사 혹은 과학자들이 기상 측정용 기구를 UFO로 잘못 보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2009-05-08 15:12:55 | 관리자
UFO는 있다 - 서문 다음의 글은 「UFO는 있다」(도서출판 두루마리)에서 취한 것입니다. 그림을 넣지 못함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10년 전에 출판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없어서 성경구절을 사적으로 번역해서 넣었습니다. 시간이 있어서 최신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으로 바꾸면 좋을 텐데 아직 여유가 없읍니다. 다만 이 글의 필요가 있어서 그내로 올리니 양해해 주기 바랍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뉴에이지 관련 영화들이 봇물 터진 듯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비행접시(UFO), 외계인(에이리언 혹은 E.T.), 외계인과의 접촉 혹은 외계인에 의한 피랍, 공룡 부활, 유전자 조작 등을 줄거리로 하는 영화들이 줄지어 흥행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1997년도에만 해도 「인디펜던스데이」, 「맨 인 불랙」, 「주라기 공원2」, 「콘택트」 등의 UFO 및 외계인 관련 영화들이 미국에서 가장 크게 히트를 쳤습니다. 사실 1997년도는 UFO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그로부터 정확히 50년전에 뉴멕시코주의 로스웰이라는 곳에서 UFO 참사가 있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97년 6월 16-21일 사이에 「타임」지는 로스웰 50주년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다루었고 일간지인 「유에스에이 투데이」 및 기타 여러 TV 방송에서 1997년 3월 13일 아리조나주에서 발생한 이상한 광체들의 출현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리조나주에 나타난 이 UFO들은 비디오로 촬영되어 전파를 통해 전 미국에 방송되었습니다. 또한 1997년 7월 1-6일 사이에는 48,000명이 사는 로스웰 시에 20,000여명의 UFO 신자들이 모여 기념행사를 가졌고 이로 인해 전 세계에 UFO 열기가 뜨겁게 솟아올랐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실제로 미국을 비롯하여 캐나다, 멕시코, 러시아를 포함하는 구소련 국가들, 일본, 유럽 연합에 속한 국가들을 포함하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는 UFO를 목격한 사람들과 UFO에 납치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이런 경향이 예외는 아니며 서점가에서도 계속해서 UFO 관련 서적 열풍이 불고 있으며, 심지어 「스타트랙」 등의 외계인 관련 매체에 의해 세뇌당한 초등학교 학생들조차도 공중에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고는 스스럼없이 '비행접시'일지도 모른다고 말할 정도가 되었고, 휴대폰 광고에도 버젓이 외계인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온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UFO 및 외계인'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UFO 신드롬'이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사실 많은 크리스천들도 이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국내의 경우 여러 명의 세속 작가들이 나름대로의 정신세계에 기초해서 외국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UFO 현상을 규명하기 위한 책들을 여러 권 저술했습니다. 물론 대개의 경우는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의 뉴에이지 신학에 따른 내용이므로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해답을 줄만한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와 전문성 등은 높이 칭찬을 해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크리스천 서클에서는 어떤가요? UFO와 관련해서 한 두개의 책이 나왔지만 그 내용이나 전문성이 세속작가들의 절반도 못 미치는 창피한 수준입니다. 또 그 핵심은 그런 것이 다 정신병자나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거짓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니 신경 쓰지 말고 예수만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소위 크리스천 작가라 하는 이들이 자기들의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다 미신이고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것만 믿어야한다니 이 얼마나 무지한 일입니까? 과연 어느 누가 과학적으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믿든 모든 것이 다 초자연적인 것 아닙니까? 죽지 않고 하늘로 빨려 올라가는 휴거를 믿으십니까? 썩은 몸이 부활하여 예수님처럼 영광스러운 몸으로 되는 것을 믿으십니까?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을 믿으십니까? 성경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완전하게 보존되어 온 것을 믿으십니까? 과연 이런 것이 이성적으로 이해되는 과학적인 것입니까? 아니면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초자연적인 것입니까?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비한 것을 담고 있습니다. 결코 제가 신비주의를 조장한다고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단지 저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우리가 속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풀 수 있는 열쇠가 있다고 믿습니다. 만일 누가 UFO, 버뮤다 마의 삼각지대, 외계인, "세 번째 종류의 접촉" 등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려면, 반드시 성경으로 돌아가 그 관계성 및 의미를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현재 눈에 보이는 것으로 모든 현상을 이해하려는 소위 지성과 이성을 겸비한 현대인들, 혹은 현대판 사두개인 크리스천들은 이 점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해 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현상이나 사물, 혹은 존재를 성경이 이야기하는 대로 구성해 보아야 합니다. 외눈박이 휴마노이드, 거인들, 외눈박이 거인들, 짐승 잡종들(돌연변이들), 괴물들, 푸른색 안개, 날아가는 방패, 살과 피의 비, 모든 것을 보는 눈, 전자칩, 검은 색 헬리콥터, 타락한 천사들, 지하터널, UFO, 소리를 내고 빛을 발산하는 비행물체들,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는 "신들", 식인, 위조된 처녀 탄생, 붉은 색 용들, 검은 옷의 사나이들, 뱀들, 날개 달린 뱀들, 불공들, 가스가 퍼뜨리는 재앙들, 질병의 치료와 관련이 있는 뱀들, UFO 납치, 난쟁이들, 유전자 조작, 인간 복제, 마리아 출현, 그리고 이 세상의 신(고후4:4) 등등. 독자께서는 부디 성경이 믿음과 행위의 모든 것에서 해답을 주며 최종 권위가 되고 현대 지성인들보다 적어도 100-3000년 정도는 늘 앞서간다는 점을 믿으시기 바라며, 자기 머리로 이해되는 것만을 믿으려 하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담대하게 외치기 바랍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롬3;4) 어떤 현상을 성경적으로 연구 해석하고 좋은 책을 발간하는데 있어서도 크리스천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전문성을 발휘하여 더 뛰어난 책을 출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경쟁이 없는 교회에서만 뛰어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를 위해 우리 크리스천들은 제발 공부를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지식이 없으면 망하게 된다는 것을 모릅니까? 저는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오존층 관련 환경문제와 열역학 등을 강의하고 이와 관련이 있는 연구를 수행하는 평범한 크리스천입니다. UFO 문제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깨달았지만 저보다 훌륭한 신학자나 목사 혹은 다른 크리스천 작가들이 이에 대한 답을 담은 책을 출간해주기를 바랬습니다. 일년에 서너 차례 미국에 출장갈 기회가 있으므로 약 4년간 UFO 관련 책자들을 많이 모으고 분석도 했지만 제 자신이 책을 저술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내도 이 일에 적극적으로 반대를 텖습니다. 왜 하필이면 제가 UFO와 관련된 이 음침한 일을 폭로해야 하느냐고 물을 때는 할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문제에 대해 엉뚱한 곳에서 해답을 찾으려하는 것을 보고 큰 부담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이 책을 저술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쓰면서 제가 늘 기억한 것은 다음의 두 가지 사실입니다. (1) 성경에 해답이 있다, (2) 최소한 세속 작가들보다는 사례 제시, 해석 등에서 전문성을 높인다. "무엇이든지 네 손이 해야할 것이면, 네 힘을 다해 그것을 하라. 이는 네가 가게될 무덤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9:10) 이 책을 저술하며 30여가지 이상의 관련 서적들을 참고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UFO 및 이단 전문가인 윌리암 슈네벨린, 훌륭한 목사이자 전도자이며 크리스천 소설가인 알 레이시, 목사로서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자이며 수많은 성경관련 서적을 출간한 피터 럭크맨, 방송 설교가로 유명한 노아 허칭스, 뉴에이지 전문가 텍스 마르스, 뉴에이지 및 컬트 전문가 밥 라르슨, 현대성서와 뉴에이지 커넥션을 밝힌 게일 리플링거 등의 책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특히 본문의 흐름은 슈네벨린의 소책자 「Space Invaders」를 따랐고 필요한 곳마다 보충해야 할 것과 제가 연구한 결과들을 넣었습니다. 한편 천사 관련 기사는 레이시의 「천사의 미스테리」(정동수 역, 도서출판 예향) 이상 좋은 책이 없으므로 그 책에서 발췌하여 인용했고, 고대신화 부분은 럭크맨의 「Black is Beautiful」에서 그림과 함게 발췌했습니다. 또한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4개의 부록을 넣었습니다. 부록 1은 천주교의 '마리아 출현'이 'UFO 현상'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국내의 세속 작가가 매우 세밀하게 저술한 「UFO 신드롬」(맹성렬 지음, 넥서스 출판사)에서 인용한 것이며, 그 외 '고대세계의 지식', '아틀란티스', '버뮤다 마의 삼각 지대' 등은 노아 허칭스의 소책자에서 인용하여 주를 달은 것입니다. 또한 독자들에게 좋은 서적을 제공하기 위해 역자 추천 목록을 추가했으니 참고하시기 바라며, 성경말씀은 모두 다 권위역 킹제임스 성경에서 취했음을 밝힙니다. 저는 영화보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사실 시간이 없어 일년에 서너 차례 정도 영화관을 가곤하며 주로 수사극이나 첩보영화를 봅니다. 하지만 저의 연구 내용을 독자들이 아는 것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하여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인디펜던스데이」, 「닥터 모로의 DNA」를 포함하여 4-5편의 UFO 및 외계인 관련 영화를 보았습니다. 모두 다 비디오로 출시되어 있으므로 이 책을 읽으신 뒤 한번 보시면 UFO 현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가지 경고의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지금까지의 통계를 보면 UFO에 납치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주로 납치됩니다. 또한 외계인과 접촉하기 위해 사악한 신비주의에 입교하여 스스로를 마귀에게 내어놓은 사람이 주로 UFO 및 외계인의 희생물이 됩니다. 결코 신비주의 서적이나 UFO 영화 등에 탐닉하지 마십시오. 특히 독자의 자녀들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영화를 보는가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유명하다고 다 쫓아가면 안됩니다. 예를 들어 스테펜 킹, 스트리버 같은 작가의 글은 베스트 셀러라해도 보지 않는 것이 여러분의 영혼의 건강을 위해 훨씬 더 좋을 것입니다. 비록 많은 부분을 제가 기술하긴 했지만 저는 이 책이 저의 독창적 작품이라 주장하려 하지 않습니다. 단지 크리스천 양심에 따라 여러 가지 자료들을 편집하고 성경으로 판단하고 해석하여 일관성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아무쪼록 이 글을 통해 독자께서 좀더 성경을 신뢰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또한 독자께서 이 글을 읽고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점을 지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끝으로 자신의 책을 번역해도 좋다고 흔쾌히 허락해준 슈네벨린 형제에게 감사를 드리며, 남편과 아빠를 신뢰하며 같이 있을 시간을 희생해준 사랑하는 아내와 세딸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 글을 저술하는 동안 건강한 몸을 허락해주신 주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휴거 받을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내게 이득이 되던 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길 뿐 아니라, 당연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나의 주님을 아는 지식이 월등함으로 인함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게 있는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곧 믿음에 의해 하나님에게서 난 의라. 또 내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의 권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분의 죽으심과 같은 모습이 되어 어찌하든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도달하고자 하노니, 내가 이미 도달했다 함도 아니요, 이미 완전하다 함도 아니라. 다만 내가 그리스도 예수님께 붙잡힌바 된 그것을 나 역시 붙잡으려고 따라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붙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이 한 가지 일을 행하나니, 곧 뒤에 있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나아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7-14) 1998년 2월 인천에서 정동수 목차 제1장 UFO의 역사 제2장 UFO와 천사의 미스테리 제3장 UFO와 유전자 조작 제4장 UFO 사령관: 루시퍼 제5장 UFO와 고대신화 제6장 UFO와 프로젝트 아바돈 제7장 UFO와 뉴에이지의 신비한 표 제8장 UFO와 세상 끝의 표적들 제9장 UFO에 대한 결론과 대책 부록 목차 부록 1 UFO와 천주교의 마리아 출현 그리고 여신 숭배 부록 2 고대세계의 지식 부록 3 사라진 아틀란티스 부록 4 버뮤다 마의 삼각지대
2009-05-08 15:10:56 | 관리자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의 극장 관람객 수가 1,000만 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글이 읽혀지고 있을 동안에도 '친구'는 '쉬리'나 'JSA 공동경비구역'과의 차이를 더욱 벌리며 국산 영화의 흥행 기록을 계속 경신하고 있을 터인데 비디오로 출시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불법으로 유통되는 경로를 통해 이 영화를 본 사람들-주로 중고등 학생들이겠지만-까지 합치면 현재 전 국민의 사분의 일 이상이 이미 '친구'를 관람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영화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영화 속 대사 하나하나를 읊조리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친구'의 영향력 하에 들어간 이들까지 헤아려 본다면 '친구'는 사실상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한 영화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친구'가 이처럼 대박을 터뜨리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우선은 캐스팅이 잘 된 것이 하나의 요인이다.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유오성과 TV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에서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미남 스타 장동건을 주인공으로 하지 않았더라면 '친구'의 흥행속도는 분명 느려졌을 것이다. 또 하나의 흥행요인은 시나리오이다. 즉 '조폭'의 세계를 다루었다는 사실 자체로 흥행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되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내용과 불협화음을 이루는 제목 선정에서부터 디테일한 저급한 대사와 폭력 장면 하나하나를 흥행이 되도록 포장한 감독의 연출력도 주된 성공요인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흥행기록 못지 않게 '친구'가 기록을 세우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방화 사상 유래 없는 찬반 논쟁 속에 휩싸여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매스컴의 연예면, 문화면, 사회면 등에 뿐 아니라 경제면에도 기사가 실리며 급기야는 국회에서도 대정부질문을 통해 영화배우 출신인 강신성일 의원이 강력한 비판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오프라인에서는 찬반논쟁이 나름대로 절제된 언어로 균형을 이루는 데 비해 인터넷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친구'의 방법론을 따라 반대의견은 철저하게 원색적으로 짓밟혀지기 때문이다. 이제 가물에 콩 나듯 인터넷 상에 올려진 비판의 글 몇 편을 어렵사리 찾아내어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이건 사기다. 카피 몇 줄과 사진 몇 장을 믿고 친구와의 우정을 그린 영화려니 하고 보았다가 웬 조폭 이야기. 입장료 생각이 나더군요. … '친구'를 보고 우정에 감동 받았다는 분도 보았는데 동수가 죽는 부분을 회상해 볼까요. 선수 둘의 야습도 물리친 동수가 대낮에 자신의 본거지 앞에서 인턴 한 명에게 당합니다. 천하의 동수가? 유심히 보신 분은 알겠지만 인턴이 공격하는 순간, 동수가 피하지 못하도록 붙잡는 사람이 있었으니 동수의 시다바리입니다. 자신의 시다바리였던 동수가 '많이 커서' '니가 가라'고 맞먹는 것을 준석이 응징한 거죠. '너도 니 시다바리에게 당해 봐라.'인 셈입니다. 기습은 그렇다 치고. 우정은 고사하고 '친구'였다면 선수를 시켜서 게임을 끝내야 할 텐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죠. 흔들리는 카메라워크는 동수의 시선입니다. 십 미터도 안되는 본거지 사방에 선수들이 퇴로를 막고 있습니다. 인턴에게 자신의 나이만큼 대접을 받으며 동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 상택의 가출을 만류한 것이 우정이라는 분들도 있지만 상택은 준석이가 나도 부모를 잘 만났으면 모범생이 될 수 있다는 자기 위안적인 존재입니다. 준석의 졸개는 많으니 굳이 상택이를 끼워 줄 필요도 없을 테고 뒷날 엘리트가 될 '친구'를 잃을 수는 없는 겁니다." "일반인들은 친구라는 말을 들으면 우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친구라는 영화를 보지 못한 수많은 청소년들은 친구라는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친구라는 영화제목에서 떠올려지는 우정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 그 시절(중고등학교) 친구란 거의 생활의 전부이자 때로는 부모님 이상의 의미를 두기도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친구라는 단어에서 우정의 참 의미를 찾으려하고 그것에 감동하고자 한다. 하지만 영화 '친구'에는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우정'은 없다. 영화의 내용은 2인자로 남기 싫어하고 정상에 서려고 하는 장동건과 유오성의 갈등에서부터 시작해서 유오성이 친구 장동건의 살인을 교사하는 비극으로 끝나는 게 전부이며 상스러운 욕설과 잔혹함이 영화의 저급함을 더해 준다. 혹자는 너는 욕 안하냐? 내지는 영화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영화이다 (급기야는 무조건 영화비판 한다고 욕부터 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잔혹함과 저급한 언어사용으로 인해 영화를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고 실망을 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이미 좋은 영화가 될 수 없는 것이고, 대중 매체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한다면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너는 욕 안하냐?'라는 등의 말은 참으로 무책임한 감정이 앞서는 말이라고 본다." "그렇게 굉장한 여운을 주는 영화는 처음이다. 사실 그 잔인성에 질려 한참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으니까 … 욕설, 폭력, 살인 … 정말 놀라웠다. 놀라기는 이 사이트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그런 무서운 욕들을 할까? 그런 욕들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친구'에 난무하는 욕들이나 폭력에 무감각할 수도 있겠지 싶다. 남자친구 왈 '멋있잖아!' 뭐가 그렇게 재밌냐는 나의 말에 대한 대답이다. 멋있잖아 … 어떤 점이 멋있었을까? 매도하는 듯도 싶지만 남자들은 폭력을 숭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 영화의 지나친 폭력은 그런 성향을 충족시켜 주는지도 … 이 영화가 얻은 큰 소득이 아닐까? 특히 극중의 진숙에 대한 폭력은 여자로서 불쾌하다. 준석은 상택에게 그녀를 주기도 하고 … 친구들의 우정인가? 마지막엔 중호가 갖게 되나? 기대감까지 합해서 영화를 본 소감은 완벽한 실망이다. 남자들이 의리, 우정 그리고 옛 향수 그런 것들이 주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의 친구들은 오해하기를 쉽게 하면서 정말 중요한 믿음을 알지 못한다. 또 그들은 친구의 뒤통수를 치는 비열함을 보이며 친구를 죽이는 비정한 사람들이다. 글쎄, 그 안에 어떤 의미가 또 있는 걸까?"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까 무엇이 사람들을 감동적이게 했는지 의문이 갑니다. 감동적이라고 평하는 사람들은 극중 준석이 동수를 죽이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인가요? 저는 감독이 TV에 나와서 '준석이 동수를 죽인 것이 확실하고(실제 있던 일이므로 더더욱 확실) 담배를 떨어뜨리는 등의 암시를 주었음에도 관객들이 너무 준석이를 믿는 것 같다.'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도대체 친구며 우정이라는 가치있는 단어를 그런 살인사건에 언급한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보고 감동을 하고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네요." 이러한 네티즌들의 의견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현재 '친구'라는 프리즘을 통해 확인되는 이 시대의 사회심리적 기반은 한마디로 '조폭문화'라고 할 수 있다. 오죽하면 미국의 연예산업전문지 '버라이어티(variety)'는 최근 한국영화의 중심을 조폭이 차지했다는 서울발 기사를 내보냈을까. 이 이상한 조폭 붐은 '친구'에 뒤이어 개봉 중인 '신라의 달밤'의 높은 흥행고도로도 알 수 있고 또 남녀 불문하고 조폭이 주인공인 영화가 현재 6편이나 제작 중에 있다고 하는 사실로써도 입증이 될 수 있다. 또 CF나 뮤직비디오도 조폭이 휩쓸고 있는데 특히 뮤직비디오로 가면 조폭 이미지 남용이 더 심각하다고 일반 문화평론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조폭 비디오의 원조로 조성모의 '가시나무'가 지칭되는 것을 들으면 우리 크리스천들은 더욱 마음이 씁쓸해 질 수밖에 없다. 영화나 CF나 뮤직비디오에서 조폭의 순기능이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것밖에 없지만 그 역기능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데, 심지어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사고나 간단한 커뮤니케이션에도 폭력적인 색깔이 입혀지곤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폭력'의 밀교주의(密敎主義)는 왜 팽창하는 것일까? 그것은 사람들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기 때문이다(삿21:25). 물론 이 폭력(暴力; violence; 자연 현상, 사람의 행동, 감정 등의 격렬함, 맹렬함)의 원조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사건(창3:6) 이후 무질서도(entropy)가 증가하게 되는 열역학 제2 법칙(창3:17-19)이 태동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폭력이 이 지구상에 존속하며 날로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더욱이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이 확산됨에 따라 앞으로는 폭력이 이 세상에서 더욱 세련된 형태로 변환이 되면서 점차 그 혼돈의 팽창도는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례로 아주 잘 알려진 광고 카피 'just do it!'을 생각해 보자. 그 문구 다음에 남는 여운 곧 생략된 말은 무엇일까? 아마도 'whatever you want'일 것이다. 즉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라. 그것이 폭력이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신(god)이기 때문에 당신이 하는 결정은 모든 것이 다 옳으며 따라서 당신은 그 결과에 책임질 필요가 전혀 없다는 논리가 바로 뉴에이지 운동의 기본 정신이다. 사실 '폭력'이 땅을 가득 채우게 될 것은 시간 문제인데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의 역사 속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사람들이 지면에 번성하기 시작하고 그들에게 딸들이 태어나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과 그들의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자기들이 택한 모든 자를 아내로 삼으니라. … 그 때에 땅도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폭력이 땅에 가득하더라. 하나님께서 땅을 보신즉, 보라,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 위에서 모든 육체가 자기들의 길을 부패시켰음이더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육체의 끝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이는 그들로 인하여 폭력이 땅에 가득함이라. 보라,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6:1,2,11-13, 흠정역) 아울러 예수님께서도 재림의 시기를 폭력이 땅에 가득하였던 노아의 때에 견주어 말씀하고 계시지 않는가."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가 방주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쓸어버릴 때까지 알지 못하였으니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이와 같으리라."(마24:37-39, 흠정역) 그렇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우리들에게는 '복된 소망'이 있다(딛2:13). 왜냐하면 우리의 진정한 친구(요11:11)이시며 구원자(요14:6)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구원을 완성하시고 찬양을 받으시기 위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 '폭력'은 이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다시는 폭력이 네 땅에서 들리지 아니할 것이요, 황폐함이나 파멸이 네 경계 안에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부르며 네 성문을 찬양이라 부르리라."(사60:18, 흠정역)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계22:20하, 흠정역)
2009-05-08 15:09:45 | 관리자
1. 들머리 2004년의 마지막 주일(the day of the Lord) 인도양에서 발생한 지진과 그로 인한 지진해일(쓰나미)로 인해 발생 3주가 지난 지금까지 집계된 사망자만 15만 명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결코 유례가 없는 숫자이다. 그리고 재해 지역도 인도네시아를 위시하여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방글라데시, 인도, 스리랑카, 몰디브 등 아시아 국가는 물론 소말리야, 케냐, 탄자니아, 세이셸 등 아프리카 국가에까지 이르렀고 피해국민의 분포도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아시아, 유럽, 미주,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지구촌 곳곳이 다 포함되어서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악의 자연재난으로 기록이 되고 있다. 아울러 해안을 뜻하는 쓰(tsu)와 파도(하는 나미(nami)가 합쳐져서 ‘포구로 밀려드는 파도’를 의미하게 된 쓰나미(Tsunami)가 무서운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해저지진을 잘 관측할 수 있는 21세기 첨단과학 시대에 들어서도 이처럼 가공할 재해를 일으켰다는 사실로 인해 온 세계인들은 더욱 커다란 충격에 휩싸이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세계 각국의 시민들이 함께 마음 아파하며 민간 차원에서도 구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현재까지 세계 각국에서 모아진 구호자금은 역대 최고인 50억 달러를 상회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지구촌이 지진해일 복구에 하나가 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이 번 참사에 대한 어느 대형교회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놓고 네티즌들이 극렬하게 대립되면서 쓰나미는 또한 이 시대의 ‘영적인’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이미 매스컴을 통해 보도된 지진해일에 대한 일반적인 고찰과 더불어 성경적 관점에서 지진의 기전과 역사와 미래를 고찰해 봄으로써 함께 이 시대를 분별해보고자 한다. 2. 기전(Mechanism) 지구의 표층인 지각은 각각의 두께가 수십㎞에서 200㎞에 이르는 12개의 판(유라시아판, 아프리카판, 인도ㆍ호주판, 태평양판, 북아메리카판, 남아메리카판, 남극판, 필리핀해판, 카리브판, 코코스판, 나즈카판, 아라비아판 등)으로 덮여 있는데 이들 판은 연간 수㎝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두 판이 접하는 부분에서는 판끼리 밀거나 서로 떨어져나가거나 부딪치는 가운데 지진이 발생하는데 지각판이 부딪치며 서로 엇갈리는 형태인 수평단층에서는 지진해일이 발생하지 않지만 한쪽 지각판이 상대판에 부딪쳐 밀려들어가는 수직단층 때에는 대규모 지진해일이 발생하게 된다. 남아시아 전역을 초토화시킨 이번 참사는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인도ㆍ호주판이 유라시아판의 아래쪽을 파고들면서 리히터 규모 9.0의 강력한 해저 지진을 일으켜 거대한 해일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발생하게 되었다. 지진해일은 바다가 깊을수록 파고는 높지 않고 속도가 빠른 반면 해안에 가까울수록 파고가 높아지고 속도는 느려진다. 인도양 주변국을 휩쓴 이번 쓰나미의 경우 해저 9㎞ 아래쪽에서의 지진으로 인해 지각이 약 11m 솟으면서 일어났는데 처음에는 길이 1,200㎞의 파도가 시속 700㎞로 달렸지만 파고는 크게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파도가 해변에 도착하는 순간 높이 10m의 거대한 해일로 돌변하여 이처럼 엄청난 재난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의 표층이 12개의 판으로 갈라지지 않고 하나로만 되어 있었다면 지진도, 또 그로 인한 해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도대체 언제부터 지각이 갈라져서 이처럼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인지 한 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3. 노아의 홍수(the Flood of Noah)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하늘 아래의 물들은 한 곳으로 함께 모이고 마른 육지는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마른 육지를 땅(Earth)이라 부르시고 물들이 함께 모인 것을 바다들(Seas)이라 부르시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9,10, 이하 흠정역)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창조 셋째 날에 땅(Earth)과 바다들(Seas)을 만드셨는데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처럼 오대양육대주( 아니었다(창1:9-13). 즉 땅은 하나였고 바다는 그 땅을 기준으로 하여 동해, 서해, 남해, 북해 등과 같은 방식으로 불려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절대적 평가에서 알 수 있듯이 땅은 아담으로 인하여 저주를 받기까지 완전한 하나의 지각과 더불어 유토피아를 이루고 있었다(창3:17). 이후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땅이 저주받고 땅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게 되었지만 지각은 여전히 하나로 이루어져 지진에 의한 재난은 발생하지 않고 있었다(창3:17,18). 또 시간이 흘러 땅이 아벨의 피를 받아 땅에게 저주가 더해졌지만 역시 지각의 변동은 일어나지 않았다(창4:11,12). 그러나 노아의 때에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폭력이 땅에 가득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땅을 사람들과 함께 멸하리라고 작정하셨다(창6:11-13). 그리하여 노아가 육백세 되던 해에 큰 깊음의 샘들이 다 터지면서 땅에는 급격한 물리적인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창7:11). 아울러 하늘의 창들도 열려 비가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땅 위에 쏟아졌고 이 물이 백오십 일 동안 땅 위에 넘쳐나 온 하늘 밑에 있는 높은 산을 약 아홉 달 동안 다 덮게 되었다(창7:11,12,18,19,24; 8:5). 시편기자는 이 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주께서 옷으로 덮는 것 같이 땅을 깊음으로 덮으시매 물들이 산들 위에 섰으나 주의 꾸짖으심에 그것들이 도망하고 주의 천둥소리에 서둘러 물러가며 산들을 따라 오르고 골짜기들을 따라 내려가 주께서 그것들을 위하여 기초를 놓으신 곳에 이르렀나이다. 주께서 경계를 정하사 물들로 하여금 넘어가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시104:6-9) 4. 대격변(Cataclysm) 따라서 지각은 물론 지구의 지리, 수리, 기상 등등에 있어서 이전의 세계 질서를 완전히 파괴시킨 전세계적 대격변(cataclysm)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것은 퇴적층의 화석들이 신속한 매장의 불가피성을 증명하고 있는 보편적 사실로써도 잘 알 수가 있으며 또한 인도의 땅이 태국ㆍ말레이시아를 지탱하는 대륙 밑으로 약간 파고들어가면서 발생한 이번 지진을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즉 진앙지인 수마트라 섬 끝부분이 남서부 방향으로 36m, 그 남서부 섬들도 역시 같은 방향으로 20m쯤 밀려난 것, 길이 560㎞, 폭 150㎞에 이르는 단층도 최대 13.9m 움직인 것, 그리고 기울기가 약 23.5도인 지구의 자전축이 영향을 받은 것 등을 보면 큰 깊음의 샘들이 다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려 일년 간 지구 전체가 물에 잠기는 노아의 대홍수로 인해 얼마나 엄청난 지각변동이 초래되었을 것임은 쉽게 헤아려볼 수 있을 것이다(창7:11; 8:14). 그리하여 홍수 이후 급속도로 지각의 균열이 생겨나면서 여러 지각판들이 만들어져 각종 지진과 함께 홍수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지형변화가 이루어졌을 터인데 일례로 히말라야 산맥은 홍수 이후 인도 지각판이 북쪽으로 밀고 올라가 아시아 대륙판과 충돌하면서 솟아오르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셈(Shem)의 현손(벨렉(Peleg, dividing)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확연하게 땅이 나뉘게 되어 오늘날과 같은 오대양육대주( 성립되게 되었다(창10:25). “에벨에게 두 아들이 태어났는데 이 중 하나의 이름은 벨렉이니 이는 그의 시대에 땅이 나뉘었음이요,”(창10:25) 5. 성경 속의 지진(Earthquakes in the Bible) 벨렉의 시대 이후로도 수많은 크고 작은 지진이 일어났겠지만 성경에서 최초로 언급된 ‘구체적인’ 지진은 모세가 하나님과 만나려고 백성을 데리고 시내 산기슭에 섰을 때 일어난 지진이다(출19:17,18). “시내 산이 온통 연기로 자욱하니 이는 주께서 불 가운데서 그 위로 내려오셨음이더라. 그 연기가 화로의 연기같이 위로 올라가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출19:18) 두 번째 지진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등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였으므로 주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지진이다(민16:1-35). “땅이 그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모든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이 산 채로 구덩이에 빠지며 땅이 그들 위에서 닫히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멸망하니라.”(민16:32,33) 세 번째 지진은 요나단이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 것이라. 이는 많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지 혹은 적은 사람으로 하시든지 주께는 제약이 없기 때문이니라.’ 하면서 자기의 병기든 청년과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에게로 건너가 싸울 때에 일어난 지진이다(삼상14:1-23). “이 때에 군대와 들과 온 백성 가운데 떠는 일이 일어나매 수비대와 노략하는 자들도 떨었으며 땅도 흔들렸으니 이것은 참으로 큰 떨림이었더라.”(삼상14:15) 네 번째 지진은 엘리야가 로뎀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한 후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으려 할 때에 일어난 지진이다(왕상19:4-18). “그분께서 이르시되, 앞으로 나아가 주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주께서 지나가시는데 주 앞에서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들을 산산조각으로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주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주께서 계시지 아니하고”(왕상19:11) 다섯 번째 지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발생한 지진이다(마27:51-54). “이에,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들이 터지고…이 때에 백부장과 그와 함께 예수님을 지켜보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진실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마27:51,54) 여섯 번째 지진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발생한 지진이다(마28:1,2). “보라, 큰 지진이 나니 이는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입구에서 돌을 뒤로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음이더라.”(마28:2) 일곱 번째 지진은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찬양의 노래를 부를 때에 일어난 지진이다(행16:12,25,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감옥의 기초가 흔들리고 즉시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결박이 풀리니라.”(행16:26) 6. 심판(judgment) 이상과 같이 성경에 나타난 역사적 지진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남아시아의 지진과 쓰나미도 분명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발생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암3:6하; 마10:29). “주께서 행하지 아니하셨는데 어찌 도시에 재앙이 있겠느냐?”(암3:6하) “참새 두 마리가 일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그 중의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 특히 이번 지진해일의 피해지역이 대표적인 기독교 박해 지역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이곳에 행해진 것이라는 주장은 일부의 우려와 달리 결코 비성경적인 내용이 아니다. ‘세계 종교의 자유 보고서 2004’(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 2004)를 보면 인도네시아 최대 피해지역인 수마트라 섬 북부의 아체 지역은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이슬람법인 샤리아에 의해 통치되고 있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던 곳이고, 스리랑카도 목사를 구타하거나 교회를 방화할 정도로 기독교인에 대한 핍박이 드센 곳이며, 인도의 상당수 주에서는 아예 법적으로 기독교 개종이 금지되어 있고, 태국 푸켓의 경우 이슬람교뿐 아니라 중국계 무속 등 미신이 팽배하여 기독교 전파가 어려운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충분히 개입하실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린 판단은 아닌 것이다(암3:2하). “그런즉 내가 너희의 모든 불법으로 인하여 너희를 벌하리라, 하셨느니라.”(암3:2하) 그런데 우리는 이미 이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번 쓰나미 참사와 같은 사건을 두고 하신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 때에 몇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희생물에 섞은 일을 예수님께 고하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일들을 당했다고 해서 그들이 모든 갈릴리 사람들보다 더 큰 죄인이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그와 같이 멸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깔려 죽은 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하는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그와 같이 멸망하리라.”(눅13:1-5) 그렇다. 우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언제든 쓰나미 재난처럼 멸망할 수 있는 것이다. 7. 시대의 표적(Signs of the Age) 아울러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로부터 주님께서 오시는 때의 표적과 세상 끝의 표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다음과 같이 답하신 것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마24:3-28; 눅21:5-24). “또 민족이 민족을, 왕국이 왕국을 대적하여 일어나고 곳곳에 기근과 역병과 지진이 있을 것임이라.”(마24:7) “또 너희가 전쟁과 난리에 대하여 들을 때에 무서워하지 말라. 이는 이런 일들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야 하되 곧 끝이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왕국이 왕국을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역병이 있겠으며 또 하늘로부터 두려운 광경과 큰 표적들이 있으리라.”(눅21:9-11) 그런데 이번 남아시아 지진해일의 충격이 가라앉기도 전 세계 곳곳에는 이상 자연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1월 8일부터 유럽 북부에 허리케인 수준인 시속 150km 이상의 폭풍우가 들이닥쳐서 노르웨이에서는 원유 생산이 중단되고 독일에서는 열차 운행과 여객선 운항이 금지됐으며 아일랜드에서는 15만 가구에 전기 공급이 끊겼고 영국에서는 3명의 사망자와 함께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에도 폭설과 폭우가 쏟아져 11명이 숨졌는데 샌게이브리얼 산맥 인근에는 무려 690mm의 비가 내려 마을이 물에 잠기기도 했으며 시에라네바다의 고지대에는 지난해 12월 28일 이후 570cm의 눈이 쌓였고 네바다 주 리노레이크타호에도 195cm의 눈이 내려 1916년 이후 최대의 강설량을 기록했다. 브라질에는 가뭄과 폭우가 한꺼번에 몰려왔는데 남부 리우그란데두술 주 당국은 1월 10일 가뭄 비상사태를 26개 시에서 87개 시로 확대했고 북동부 지역도 식수 부족과 수확 위기 상황을 맞고 있는 반면 이 날 중부 4개 주에는 폭우주의보가 내려졌다. 이 밖에 멕시코에서는 1월 9일 수도 인근 포포카테페틀 화산이 증기와 재를 5km 높이까지 분출해 폭발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으며 1월 10일 이란 북동부에서 리히터 규모 5.8, 남미 콜롬비아에서는 규모 4.8의 지진이 일어났다. 그렇다. 우리는 쓰나미를 포함하여 ‘곳곳에’(in diverse places)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자연재해들을 통해 주님께서 오시는 때가 임박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마24:7,33; 눅21:11,28)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그 때가 가까이 곧 문들 앞에 이른 줄 알라.”(마24:33)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위를 보고 너희 머리를 들라. 이는 너희의 구속(?ption)이 가까이 이르렀기 때문이라, 하시더라.”(눅21:28) 8. 세계화(Globalization) 이번 인도양 연안의 쓰나미 참사를 두고 세계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세계의 비극’이자 ‘비극의 세계화’라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화’란 관점이 또한 하나의 시대적 표적임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단2:24-45; 12:4; 계13:1-3; 17:8). 앞서 잠시 언급이 되었지만 이번 지진해일로 인해 지구촌 곳곳이 재난을 당하여 실제로 ‘국가 연합’(UN)에 가입된 191개 국가 중 약 1/5에 해당하는 42개 이상 국가의 시민들이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세계의 비극’ 또는 ‘비극의 세계화’는 너무도 적절한 평가라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1990년 이후 보고된 지진들 중 가장 강력하였던 리히터 규모 9.5의 칠레 지진(1960년, 5,700명 사망)이나 또 리히터 규모는 7.5였지만 사망자 수에서 최고를 기록한 중국 지진(1976년, 25만5천 명 사망)의 경우들도 단일 국가에서 일어나 그 국민만이 피해를 입었을 뿐인 데 반해 이번 쓰나미 참사는 그야 말로 오대양육대주를 망라해서 피해가 일어난 재난임으로 ‘세계화된 최초의 재난’이라는 데에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더 온 세계인들은 이심전심으로 이번 참사의 구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국가마다 나름대로의 전략이 작용하기는 했겠지만) 세계화된 재난 덕분에 구호의 손길도 세계화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전세계가 보여준 유대로 힘을 얻었다.”고 한 스리랑카 대통령의 감사성명에서도 충분히 확인될 수 있다. 그런데 ‘세계화된 재난’에 대한 인식이 증대되면서 세계인들의 관심은 ‘다음 지진 발생지는 어디며 과연 우리는 안전한가?’에 모아지고 있다. 왜냐하면 지진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역은 지구상에 한 곳도 없음이 이미 과학적으로 판명이 났으며 또 이번에 경험했듯이 한 곳의 재난이 세계 여러 곳에까지 파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진 이후 지진해일 발생 여부와 규모를 예측하여 알려주는 조기 경보시스템을 갖추어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세계 각국이 공동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함께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데 일부 태평양 연안 국가들이 미국 하와이 소재 태평양쓰나미경보센터(PTWC)로부터 지진해일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고 있는 것과 최근 ‘국가 연합’(UN)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인도양 연안국들을 위해 국제적인 조기경보체제 구축을 추진키로 한 것 등은 세계화된 재난 대책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 9. 다가올 지진(Earthquakes to come) 그런데 이처럼 온 세계인들이 하나가 되어 열심히 범세계적인 재난 관리를 한다 하여도 지진 발생 그 자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즉 이번 쓰나미의 여파로 인도 아삼 주에서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곧 일어날 가능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수마트라섬 일대에서 알래스카로 이어지는 환태평양 화산대나 아프리카 카나리아제도 등 지구촌 곳곳이 언제든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지진의 잠재 위험 지역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AFP 통신은 ‘아프리카 카나리아제도의 쿰브레 비에야 활화산 폭발로 쓰나미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로 인해 미국의 북동부 해안까지 심각한 피해를 볼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지금까지 7번 폭발한 쿰브레 비에야 화산이 다음 번 폭발할 때는 섬의 서부 측면이 크게 붕괴되어 5천억 톤의 돌덩이가 물 속으로 한꺼번에 잠기면서 100m 이상의 해일이 발생하고, 이 해일은 시속 800㎞로 8시간 만에 대서양을 건너 미국 북동부 해안을 강타하여 바닷물이 내륙 20㎞까지 침투할 것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진은 정말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한 번 성경을 통해 답을 구해보도록 하자. “일곱째 천사가 자기 대접을 공중에 쏟아 부으매 큰 음성이 하늘의 성전에서 왕좌로부터 나서 이르시되, 다 이루어졌도다, 하시니 음성들과 천둥들과 번개들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크고 강력한지 사람들이 땅 위에 있은 이래로 그와 같은 지진이 없었더라. 이에 그 큰 도시가 세 조각으로 갈라지고 민족들의 도시들도 무너지며 또 큰 바빌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되어 그분께서 그녀에게 자신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 잔을 주시니 모든 섬이 사라지고 산들도 보이지 아니하더라.”(계16:17-20) 그렇다. 분명 앞으로 큰 지진이 있을 것인데 사람들이 땅 위에 있은 이래로 경험하지 못했던 그리고 과학자들의 예상도 뛰어넘는 엄청난 지진이 발생하여 모든 섬이 사라지고 산들도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10. 마무리 이제 이 쓰나미 참사를 통해 ‘주님의 날’(the day of the Lord; 사2:12; 13:6,9,13; 슥14:4,5; 마7:22; 10:15; 요6:39; 롬2:5,6,16; 고전3:13; 고후1:14; 빌1:6,10; 살전5:4; 딤후4:8; 벧후3:7,12; 유1:6; 계6:17)에 대한 카운트다운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음을 진정 거듭 난 그리스도인들은 확실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 먼저 이 ‘주님의 날’은 불신자들에게는 멸망과 심판의 날이 되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영광과 소망의 날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사13:13; 슥14:4,5). 그리고 날마다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그분의 구원을 나타내도록 하자(딤후4:2; 시96:2). “그러므로 내가 만군의 주의 진노로 맹렬한 분노의 날에 하늘들을 흔들며 땅을 제 자리에서 움직이게 하리니”(사13:13) “그 날에 그분의 발이 예루살렘 앞 동쪽에 있는 올리브 산 위에 설 것이요, 올리브 산이 그 한가운데서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지므로 심히 큰 골짜기가 생길 것이며 그 산의 반은 북쪽으로, 그 산의 반은 남쪽으로 이동하리라. 그런즉 너희가 그 산들의 골짜기로 도망하리니 이는 그 산들의 골짜기가 아살에까지 이를 것임이라. 참으로 너희가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시대에 지진 앞에서 피하여 도망하던 것같이 하리라. 또한 이 때에 주 내 하나님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성도가 주와 함께 임하리라.”(슥14:4,5) “너는 말씀을 선포하라. 때에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항상 예비하라.”(딤후4:2상) “주께 노래하고 그분의 이름을 찬송하며 그분의 구원을 날마다 나타낼지어다.”(시96:2) * 저자의 단행본 ‘성경으로 세상보기’는 ‘생명의 말씀사’에서 온라인으로도 구매할 수 있습니다.
2009-05-08 15:09:02 | 관리자
1. 들머리 “나는 죽고 싶지 않다”고 절규하던 김선일씨는 (바그다드 시각으로) 6월 22일 오후 5시20분 끝내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이 되었다. 이미 같은 달 11일 미국인 통신업자 니컬러스 버그(Nick Berg)를 참수(斬首)한 것으로 알려진 ‘자마아트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Jamaat al Tawhid wa’l Jihad, ‘유일신과 성전’)에 의해 결국 김선일씨도 참수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6월 30일 부산 사직 실내체육관과 영락공원 등에서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3,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그의 장례식이 범(汎)기독교연합장으로 치러졌다. 그런데 건국 이래 수많은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지만 고(故) 김선일씨의 참수 사건만큼 온 국민이 관심을 갖고 가슴 아파하였던 동시에 장례가 끝난 이후에도 극심한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야 했던 경우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특히 ‘아랍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사역을 하게 되면 영어와 아랍어와 미용기술을 통하여 그들에게 복음으로 다가가고자 한다’는 김선일씨의 가나무역 입사 지원서 내용이 공개된 이후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논란들이 계속 증폭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 깊은 가슴앓이가 요구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정치적, 사회적 이슈는 물론 신앙적 논쟁의 주제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바로 이 번 김선일씨의 참수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김선일씨의 참수에 대해 언급된 기존의 지엽적이고도 주관적인 견해들과 달리 참수 자체에 대한 역사적, 의학적 고찰과 더불어 성경적 관점에서 참수를 조명해 봄으로써 함께 영적인 유익을 구해보고자 한다. 2. 참수의 역사 인류의 역사 속에 사형의 수단으로 가장 많이 쓰인 방법은 참수형(斬首刑, 참형, decapitation, beheading)이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시행되었던 참수형은 프랑스대혁명 후 ‘기요틴’(guillotine, 단두대)의 발명으로 그 피크를 이루었으며 현재에도 이슬람율법을 엄격히 고수하는 사우디에서 살인, 강간, 마약밀매, 무장강도 등의 중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행이 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지금은 참수형이 실시되고 있지 않지만 1894년 고종의 칙령에 의해 사라지게 될 때까지 우리나라에서도 수백 년 간 참수형이 존재하였었다. 참수(斬首) 곧 목을 베는 데는 칼, 도끼 등 다양한 도구가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 방법에는 처형의 성패가 사형집행인의 힘과 기술에 좌우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끔찍하기는 하지만 목을 베는 장치가 개발되었는데 중세의 서양에서는 떨어지는 칼 자체의 무게에 의해 목이 베어지는 장치가 고안되었으며, 16세기에는 나무로 된 틀 속에서 칼날이 낙하하도록 설계된 장치가 완성되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 장치를 ‘마나이아’라고 불렀으며, 영국형 개량품인 ‘질레트’는 16, 17세기에 사용되었다. 이런 장치들을 복원하고 개선하여 후일 기요틴(guillotine)이라고 불리는 탁월한 단두장치를 개발한 것은 파리 의과대학의 해부, 생리, 병리학 교수였던 기요탱(Joseph-Ignace Guillotin) 박사였다. 프랑스혁명이 발발한 1789년, 그는 최소한의 고통을 동반하는 인도주의적 사형방법과 인민의 평등한 죽음을 위해 효율적인 처형용 기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였다. 의회의 승인을 얻어 그가 고안한 새 장치의 특징은 칼날을 45도 경사지게 장착한 점이었다. 척추라는 단단한 조직과 치밀하게 얽혀 있는 근육이나 인대를 단숨에 절단하기 위해서는 칼날이 미끄러지면서 떨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기계의 설계는 역시 의사였던 루이 박사가 맡았고, 독일의 피아노 제조 기술자 슈미트가 제작을 담당하였다. 여러 차례의 실험을 거쳐 성능이 확인된 후 1792년 4월 25일 기요틴에 의한 첫 번째 사형이 집행되어 신속 정확함을 인정받게 되자 이후 기요틴은 1977년까지 약 180년간 널리 쓰이게 되었는데 프랑스혁명 당시 사형집행인으로 유명했던 상송은 이 장치로 불과 13분 동안 12명의 목을 자르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3. 참수의 고통 그리고 9·11 테러 이후 새롭게 참수 사건들이 계속 알려지고 있다. 첫 참수 희생자는 2002년 2월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의 대니얼 펄(Daniel Pearl) 기자였다. 그리고 올 들어 닉 버그(Nick Berg)에 이어 폴 존슨(Paul Johnson)도 이슬람과격주의자들에 의해 참수됐으며 비(非)미국인으로 고(故) 김선일씨가 처음으로 참수된 이래 현재는 필리핀인도 납치되어 참수의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런데 닉 버그의 참수동영상에 이어 김선일씨의 참수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참수의 그 끔찍한 장면에서 확인되듯이 참수를 당할 때의 고통이 얼마나 클 것이며 특히 참수가 완전히 되고 나서 얼마 동안이나 의식이 남아 있을 것인지에 모아지고 있다. 이러한 관심은 이미 서양의 많은 의학자들에게도 있어 왔다(the British Medical Journal, Vol 294: February, 1987 page 474). 특히 1587년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이 당한 끔찍한 참수의 고통은 참수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잘 알려주었을 터인데 프랑스에서는 참수 후 의식이 남아 있는 기간을 알기 위해 단두대에서 참수를 당하는 죄수에게 눈을 계속 깜빡거리라고 하여 관찰한 결과 참수 후에도 30초 동안 눈의 깜빡임이 있었음을 보고하기도 하였다. 또 프랑스의 화학자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 1743-1794)는 자신이 단두대서 참수를 당하게 되자 친구들에게 참수 후에도 계속 눈을 깜빡이겠노라고 말한 후 15초 동안 신호를 보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1905년 6월 28일 오전 5시 30분 단두대에서 살인죄로 처형된 한 죄수(Languille)는 참수된 후 이름을 부르자 두 번이나 또렷하게 호명자(Dr. Beaurieux)를 응시하였다고 하는데 이로써 약 25-30초 동안 의식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A History of the Guillotine by Alister Kershaw). 그리고 아담스(Cecil Adams)에 의하면 1989년 6월 한국에서 근무하던 한 미군이 친구와 함께 택시를 타고 가다가 트럭과 충돌하여 친구의 목이 완전히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였는데 참수되어 위아래가 바뀐 친구의 얼굴에서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볼 수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는 참수되었음에도 입을 두 번 이상 벌렸다가 다물었으며 얼굴 표정이 처음에는 ‘충격과 혼동’(shock or confusion)의 상태였고 이어서 ‘공포와 비통함’(terror or grief)으로 바뀌었다고 하였다. 또한 그의 눈은 처음에는 자기를 바라보는 친구를 응시하였다가 자기의 잘려진 몸을 보고난 후 이어서 다시 친구의 눈을 정확히 응시하였다고 하였다. 4.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김선일씨가 참수되는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이 정부의 강력한 처벌 방침과 차단 조치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계속 유포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닉 버그의 참수동영상도 그렇지만 김선일씨 참수 장면 동영상을 본 사람에게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osttraumatic stress syndrome)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언론에 보도된 회사원 이모(42·남)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최근 동료들과 함께 인터넷으로 테러리스트들이 김선일씨를 살해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끔찍한 장면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업무에 복귀했으며, 저녁엔 동료들과 술도 한 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씨는 그러나 살해당하는 순간에 질렀던 김씨의 비명이 귓가에 울리면서 낮에 봤던 영상이 눈앞에서 재현돼 옅은 잠에 빠졌다 5분 만에 깨어났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결국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이씨는 “그 뒤로도 문득 문득 참수 장면이 떠올라 기분이 우울해진다”며 “3~4년 전의 불면증이 재발해 요즘은 수면제를 복용해야 잠을 잘 수 있다”고 말했다. 흔히 이와 같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자동차사고, 가족이나 연인의 죽음, 인질, 강간, 자연재해 및 전쟁 등 외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강도의 정서적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타난다. 그리고 피해자에 따라 사고 즉시 나타나기도 하고 몇 주 후에 반응하기도 한다. 일부 피해자들의 반응은 사고를 잊기 위해서 환상이나 상상을 통해 동일 상황을 재경험하거나 아예 회피하기 위해 무감각해지기도 하지만, 흔히 동반되는 증상으로 피로, 분노, 불안, 공포, 수면장애, 집중력장애 등을 호소한다. 이 증세는 심신이 힘들 뿐 아니라 직장에서의 업무 능력을 감소시키는 ‘후유증’(aftershock)으로 이어져 심할 경우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김선일씨가 참수당하는 모습은 보통 사람이 평생 한 번도 경험할 수 없는 끔찍하고도 충격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이 동영상비디오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의 증상을 나타내는 환자들이 점차 양산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이 이 동영상에 많이 노출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리라 생각된다. 만약 동영상을 본 뒤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서 재현되고 신경이 예민해지면 즉시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5. 성경 속 참수 그러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악을 잘 기술하고 있는 성경에서 어떠한 참수의 사건들이 언급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성경에는 모두 일곱 번의 참수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첫 번째로 사무엘상 5장에 다곤(Dagon; fish-god, 머리와 몸은 사람이고 하체는 물고기인 우상)이 참수되는 사건이 나오고 있다.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다곤의 집으로 가져간 다음날 다곤이 주의 궤 앞에 쓰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다. 사람들이 다시 세웠으나 그 이튿날 아침 다곤의 머리와 두 손바닥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상인 다곤을 참수하신 것이었다(삼상5:1-12). 두 번째로 사무엘상 17장에 골리앗의 참수가 기록되어 있다. 다윗이 골리앗과 맞서 ‘전쟁이 주께 속한 것임’을 선포하며 돌을 던져 골리앗의 이마를 쳐서 쓰러뜨린 후 골리앗의 칼을 빼서 그의 머리를 잘랐다. 그리고 사울 앞으로 인도된 다윗의 손에는 골리앗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삼상17:38-58). 세 번째로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울 왕의 참수가 사무엘상 31장에 기록되어 있다. 블레셋과 싸워서 패하게 되자 사울 왕은 자살을 하였는데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의 시체를 보고 그 머리를 잘랐다(삼상31:1-10). 네 번째로 사울 왕의 아들 이스보셋의 참수가 사무엘하 4장에 기록되어 있다. 레갑과 바아나가 밀을 가지러 온 것처럼 하여 이스보셋의 집으로 들어가서 이스보셋의 다섯 번째 갈빗대 밑을 찌르고 그를 참수한 후 그의 머리를 가지고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로 갔다(삼하4:1-12) 다섯 번째로 사무엘하 20장에 벨리알(Belial; worthlessness) 사람 세바의 참수가 기록되어 있다. 다윗에게 반역을 한 세바가 아벨로 도망하자 요압이 아벨을 에워싸고 함락시킬 준비를 하였다. 그때 그 도시의 한 지혜로운 여인이 요압과 대화를 한 후 백성들과 함께 세바를 참수하여 요압에게 세바의 머리를 주었다(삼하20:1-22). 여섯 번째로 헤롯의 불법을 지적하였던 뱁티스트 요한의 참수가 공관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마14:3-12; 막6:14-29; 눅9:7-9). 일곱 번째로 요한계시록 20장에는 대환난 기간 중 믿음을 지키다가 참수당한 성도들이 언급되고 있다(계20:4). “또 내가 보니 예수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인 자들의 혼들이 있는데 그들은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 위에나 손 안에 짐승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라.”(계20:4중, 이하 흠정역) 즉 이상을 요약해 볼 때 구약에서 참수는 주로 불의한 자들에 대해서 행해졌다고 할 수 있는 반면에 신약에서는 의로운 자들 곧 성도들이 당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6. 시대의 표적 그렇다. 지금도 (장차 다가올 대환난기에서와 같이 정교일치가 이뤄지고 있는) 이슬람권이나 북한 등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거나 받아들이려면 목이 잘릴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실제로 목이 잘리는 참수는 현재 우리의 삶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같지만 영적인 면에서 본다면 정말로 우리는 참수가 창궐하는 시대를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첫째로 참수된 가정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고전11:3; 엡5:23). “아내들아, 너희 자신을 낮추어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과 같기 때문이니 그분은 그 몸의 구원자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아내들도 모든 일에서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5:22-24) 머리가 잘려진 가정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은 현재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47.4%로서 조만간 51%인 미국의 이혼율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이혼 천국’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로써도 잘 알 수가 있다. 둘째로 작금의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확연히 리더십이 참수된 상황이기 때문이다(사9:13-17). “그러므로 주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로부터 머리와 꼬리와 가지와 골풀을 끊으시리니 그 머리는 곧 나이 들고 존귀한 자요, 그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대언자라. 이는 이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들로 하여금 잘못하게 하기 때문이니 그들의 인도를 받는 자들이 멸망을 당하였도다.”(사9:14-16) 나이 들고 존귀한 자 곧 백성의 지도자들이라 하는 한 나라의 머리가 리더십을 상실한 것은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이나 작금의 대한민국이나 대동소이함을 누구나가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교회는 많지만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인정하길 싫어하는 참수된 교회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고전11:3; 엡1:22; 4:15하; 5:23; 골1:18; 2:19). “또 모든 것을 그분(Christ)의 발아래 두시며 그분을 교회에게 주사 모든 것 위에 머리가 되게 하셨느니라.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 곧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이니라.”(엡1:22,23) 종교 혼합주의와 종교 다원주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한국교계와 전세계의 기독교계에 은밀히 침투하여 왔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되심을 상실한 거짓 교회들 곧 세상의 칭찬에 목말라 하는 참수된 교회들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7. 마무리 우리의 가정과 국가와 교회가 참수되고 있는 오늘,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너무나도 가까워졌음을 확신하게 된다(마24:3-41). 아울러 참수와 같은 방법으로 성도의 믿음을 시험하는 일이 날로 증대될 것임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마24:9; 눅18:8).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넘겨주어 핍박받게 하겠고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24:9) 그러할 때 우리는 우리를 참수하려는 자들에게 어떠한 믿음을 나타내보여야 할까? 그렇다. 우리는 이천 년 전 로마의 토굴 속에 갇혀 있다가 중죄수의 몸으로 참수를 당해 죽었지만 우리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역설한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을 동일하게 증언해야 할 것이다(고전4:16; 11:1; 빌3:1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벌거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것은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토록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겨졌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아니라. 우리는 이 모든 것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을 통해 정복자들보다 더 나은 자들이니라.”(롬8:35-37) * 저자의 단행본 ‘성경으로 세상보기’는 ‘생명의 말씀사’에서 온라인으로도 구매할 수 있습니다.
2009-05-08 15:08:17 | 관리자
1. 들머리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으로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된 후 치러진 역대 선거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승리의 열쇠는 ‘단일화’였다.  1987년 야당의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의 후보 단일화가 실패하면서 여당인 노태우 후보가 당선이 되었고 1992년에는 3당 합당으로 여권의 단일 후보가 이루어져 김영삼 후보가 승리를 하게 되었다. 이어 1997년에는 이인제 후보의 경선불복으로 인해 여당의 후보 단일화가 실패함으로써 야당인 김대중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  그리고 2002년, 사실상 각자 20%대의 지지율에 머물러 패색이 뚜렷하던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단일화를 하지 않고 각자 출마했으면 노무현 후보의 당선은 불가능하였다. 비록 정몽준 대표가 투표개시 약 8시간 전 지지철회라는 소위 ‘본헤드(bonehead)플레이’를 했다고는 하나 노 후보를 당선자로 만든 사람은 누가 뭐래도 정몽준 대표이며 역시 이번 대선도 ‘단일화’가 승리의 열쇠임을 입증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 단일화(單一化; to become one)란 정치적 코드가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성경적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2. 여론(public opinion) 지난 한 해 우리는 대선을 치르면서 소위 ‘바람(風)’과 ‘여론(與論)’이라는 국민적 조울증(躁鬱症)을 경험할 수 있었다. 민주당 국민경선 과정에서 ‘노풍(盧風)’이 불었다가 월드컵 이후 ‘정풍(鄭風)’이 불고, 이어 두 바람이 주춤했다가 후보 단일화를 계기로 다시 ‘노풍’이 불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민심이 춤추고 있어 갈피를 잡기 힘들 지경’이라고 푸념했는데 어찌되었거나 대선의 특수를 누린 곳이 여론조사 기관이었으며 이제는 어느 누구도 여론조사를 무시하고 정치를 할 수가 없는 시대가 도래된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하겠다. 특히 지난 해 11월24일 민주당과 국민통합21 간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위해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노 후보가 정 대표를 눌러 양당의 단일후보로 결정된 것은 여론조사의 엄청난 위용을 보여준, 세계 정당사에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정권을 잡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 여론인데 이를 잘 활용하였던 성경 속의 인물로 압살롬을 들 수 있다. 구약에서 적그리스도의 예표로 나타나고 있는 압살롬이 왕위 찬탈을 위해 어떻게 여론을 조성하였는지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압살롬이 일찍 일어나 성문길 옆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분쟁거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 이르되, 너는 어떤 도시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말하기를, 종은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기를, 보라, 그 일들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말을 들을 사람을 왕께서 임명하지 아니하셨다, 하고 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어 청원이나 사정이 있는 사람이 다 내게로 올 때에 내가 그에게 정의를 베풀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어떤 사람이라도 그에게 가까이 와서 경의를 표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내밀어 그 사람을 붙들고 입을 맞추니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온 이스라엘에게 압살롬이 이런 식으로 행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니라.”(삼하15:2-6, 이하 흠정역) 그리하여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계속해서 불어나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압살롬을 따르게 되었으므로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 왕궁을 버리고 그냥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삼하15:12-14).   그렇다. 이제 장차 적그리스도가 이 땅을 다스리게 될 때에도 같은 방식으로 여론이 조성될 것인데 온 세상 사람들은 그를 놀랍게 여기며 따르게 될 것이다(계13:3,4,13,14). 3. 새 질서(new order) 단일화를 위한 TV토론에서 정몽준 대표는 누가 단일 후보로 되든 상관이 없으며 단지 수구세력으로 대표되는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기조발언을 하였다. 또 단일화 이후에도 노·정 두 사람은 합동 유세에서 줄기차게 ‘낡은’ 정치를 청산하여 ‘새로운’ 정치를 이루어야 한다고 외쳐댔었다. 그리하여 네티즌으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들은 이러한 구호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여 결국 끊임없는 지역갈등 외에 ‘세대간 갈등’을 낳은 최초의 선거로 16대 대선이 평가받게도 되었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뿐 아니라 역사 속 수많은 지도자들이 ‘새 정치’ 곧 이전과 달리 새로운 방식으로 수행되는 ‘새 질서(new order)’를 이미 주창해 왔었다. 즉 고대 로마제국에서도 그랬고 근세의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등이 ‘프로파간다(propaganda)’로 사용하였던 아이템이 바로 ‘새 질서’였던 것이며 따라서 새로운 질서(new order)란 개념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전1:9). 그러나 이 새 질서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가 노 당선자에게 기대하는 바와 같이 동서 간 지역주의의 타파요, 동서뿐 아니라 남북이 하나로 되는 일이요, 더 나아가 세계화 시대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라 하겠다.  이것은 이미 미국의 리처드 닉슨이나 부시 전 대통령 등 20세기의 지도자들도 미·중 수교나 걸프전쟁과 같은 역사의 갈림의 현장에서 온 세계인이 하나로 되는 ‘새로운 세계 질서(New World Order)’를 줄기차게 강조해온 사실과 부합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새 세계 질서’를 통해 이들이 주장하는 대로 세계 평화와 안전과 자유와 질서가 성취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9. 11. 테러 사건을 당한 미국인들은 더욱 더 이러한 새 세계 질서를 갈망하고 있을 터인데 비단 미국뿐 아니라 갖가지 갈등과 분쟁으로 중병을 앓고 있는 온 세계인들이 이를 환영하며 함께 힘을 합쳐 여러 가지 건전한 정책들을 세우면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새 세계 질서를 이루고자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전 세계가 한 시스템 안에서 새로운 지구촌을 이루어 가게 될 것인데 안타깝게도 바로 그 때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온 세계는 곧장 파멸로 치닫게 될 것이다. "그(적그리스도)가 자기의 정책(policy)을 통하여 자기 손에서 속임수가 형통하게 하고 마음 속에서 자기 자신을 높이며 평화를 빌미로 많은 사람을 멸할 것이요,"(단8:25상) "또 사람들이 평화와 안전을 말할 그 때에 아이밴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임하는 것같이 갑작스런 파멸이 그들 위에 임하기 때문이니 그들이 피하지 못하리라."(살전5:3) 4. 단일 경제(one economy; one monetary system) 이 번 대선에서 선거 운동 막바지에 들어 가장 논쟁이 되었던 수도 이전 공약도 그렇고 거의 대부분의 다른 공약들도 우리가 먹고 사는 것 곧 경제와 직·간접으로 연관된 것들이었다. 더욱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독재자로서 저질렀던 과(過)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功)을 인정해야 한다는 쪽으로 평가가 바뀌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또한 빌 클린턴의 경우에도 수많은 스캔들과 외교적 부침이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집무하는 동안 미국 경제가 호황이었기 때문에 업무를 잘 수행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다시 말해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계 모든 나라에서 최고 지도자들이 경제 대통령 또는 경제 수상 등의 이름으로 불려지길 바라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따라서 ‘새 세계 질서(NWO)’가 먼저 이러한 경제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추진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리라. 1967년 7월 1일 EEC(유럽 경제 공동체), ECSC(유럽 석탄·철강 공동체), Euratom(유럽 원자력 공동체) 등 3개 공동체가 평화와 경제 번영을 위한 유럽 통합을 목적으로 통합하여 설립한 EC(유럽 공동체)가 대표적인 단일 경제 체제이다. EC는 결국 1994년 1월 1일부터 그 이름도 EU(유럽 연합)로 바뀌면서 상품·사람·자본·서비스 등의 자유이동을 제한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고 유럽 단일시장을 탄생시켰으며 이제 21세기에 들어서는 유로화의 가치로 알 수 있듯이 너무나도 확고한 단일 경제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해 월드컵 공동 개최와 한·일 투자협정 체결을 계기로 한·일 양국의 기업인들은 한국과 일본이 관세가 없는 하나의 시장으로 묶인다면 인구 1억 7천만 명에 5조 달러 규모의 엄청난 시장이 탄생하여 급성장하는 중국을 견제하며 한국과 일본이 함께 생존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또한 2002년 11월 4일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담에서 싱가포르의 고촉동(吳作棟) 총리는 EC를 모델로 하여 아세안 5억 인구를 관세가 완전 제거되고 상품과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단일시장으로 묶는 ‘아세안 경제 공동체(AEC)’를 2020년까지 만들 것을 제안하였다. 그렇다. 이제 세계 각국은 ‘새 세계 질서(NWO)’를 따라 치열한 세계 경제 전쟁에서 서로 이익을 보는 윈윈 전략으로 단일 경제 체제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나면 결국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의 권역별 단일 시장도 하나로 통합되어 ‘세계 단일 경제(One World Economy)’가 이뤄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EC(EU)와  유로(Euro)화의 관계에서 보듯이 ‘세계 단일 화폐 제도(One World Monetary System)'가 만들어져 이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는 어떠한 거래도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계13:16-18).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숫자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계13:17) 5. 단일 정부(one government) “전쟁이냐 평화냐”라고 외치던 노 후보와 그의 지지자들의 바램은 물론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가 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통일 방법은 정치인들의 논리와는 달리 북한이 내부사정으로 붕괴되어 남한에게 전격적으로 흡수되는 평화통일일 수도 있고, 항간에서 주장(www.ddanggul.org)하는 대로 어이없게 하룻밤 사이에 적화통일이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전자의 방법론이라면 내어놓고 반대할 사람은 없을 터인데 통일지상주의의 감성적 통일론자나 또는 통일에 부수되는 손실이 예상되어 통일을 원하지 않는 반통일론자 등의 극단적인 경우들을 제외하면 통일은 우리 민족이 속히 이루어야 할 지상 최대의 명제임이 너무나도 분명하다. 남북통일이 되어야 하는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필자의 경우 다음의 예로써 그 당위성을 설명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남한에서 연간 음식쓰레기로 낭비되는 8조 원 중 4%만 절약해서 옥수수로 바꾸어 북한에 보내면 북한의 기아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내려진 지 오래건만 아직도 북한에서는 연간 100만 명 가까운 이들이 굶어 죽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가 있을까? 앞서 언급된 ‘단일 경제 체제’로 가면 북한의 경제가 살아나 북의 기아 문제도 해결될 수 있지만 역시 이를 실질적으로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에 두 정부가 있어서는 곤란하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밖에 없다. 즉 새 질서를 넓혀 나가기 위해서는 관장하는 조직 곧 정부도 단일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1993년 11월 1일 마스트리히트조약 발효에 따라 1994년 1월 1일부터 경제 공동체인 EC가 정치적 공동체도 표방하는 EU(European Union: 유럽 연합)로 공식명칭을 바꾼 사실에서 잘 알 수가 있다. 아울러 작년 10월 29일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EU가 2004년부터 회원국을 현행 15개국에서 25개국으로 확대하는 대변화에 맞춰 채택할 유럽 헌법 초안이 공개되었는데 여기에는 EU가 하나의 정부로 불리는 데 조금도 손색이 없는 내용들이 담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25개 회원국에 인구 5억명 이상의 거대한 지역 공동체로 등장할 새로운 EU에는 현재의 유럽의회와 EU 회원국 의회를 합친 ‘유럽국민회의’ 가 창설될 예정인데 유럽국민회의의 가장 큰 역할은 2년에 한 번씩 EU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밖에 EU 공동의 외교안보 정책을 대표하기 위해 권한이 더 강화된 EU 외무장관 신설 및 EU 회원국 국민들이 자국 국적과 EU 국적을 동시에 갖는 이중 국적 제도 등 장래 EU의 기본골격은 유럽 헌법 초안으로 볼 때  ‘슈퍼스테이트(superstate)’, 즉 가맹국들을 지배하는 국제정치기구라는 것이 언론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그리고 로마노 프로디 EU 집행위원장이 “10개 새 회원국 가입은 유럽의 분열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라고 밝혔듯이 이제 앞서 설명된 ‘세계 단일 경제(One World Economy)’를 통해 세계 각국의 분열은 그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며, 바야흐로 적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세계 단일 정부(One World Government)'가 탄생될 것이다(계13:1-3; 17:8).  즉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무너진 바벨탑을 다시 쌓기 위해서 하나로 뭉치는 작업이며 세상의 종말을 재촉해 가는 하나님의 섭리이다(창11:1-9; 단2:24-45). 6. 단일 종교(one religion)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대표의 단일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던 지난 해 11월, 한 권의 책이 또 다른 단일화를 추구하며 출간이 되었다. 곧 다일공동체 대표로 잘 알려진 최일도(崔一道) 목사와 정토회 지도법사인 법륜(法輪) 스님, 그리고 오순절 평화의 마을 대표인 오수영(吳壽永) 신부가 함께 펴낸 ‘함께 사랑한다는 것,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란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이 책의 출판사이기도 한 조선일보에는 이 세 사람에 대한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이번에 내신 책에서 세 분은 물질과 정신, 수행과 이웃사랑, 종교간 화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핵심적인 메시지는 무엇입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최 목사는 “실제로 우리가 다른 것은 한두 가지에 불과하고 같은 것은 수없이 많습니다. 다일공동체의 자원봉사자들은 여러 종교·종파의 신자들로 구성돼 있지만 활동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답을 하였고, 이어 다른 종교의 종교인과 함께 책을 낸 소감에 대한 물음에는 “저는 늘 여러 종교가 함께 참여하는 수행공동체를 꿈꿔 왔습니다. 이번에 맺은 인연이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답을 하였다. 엘리야가 바알 제사장들과 함께 수행을 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아니면 사도 바울이 각종 우상을 섬기는 이교도들과 같이 영적인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모습을 그려보라. 상상이 가는가?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의 반응과는 달리 세상 사람들은 모든 종교인들이 함께 사랑함으로 함께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다고 고백하는 최 목사와 같은 이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이는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대언자들에게 이같이 행하였음이라.”(눅6:26) 예를 하나만 더 들어 보자. 제 14대 달라이 라마가 미국을 처음 방문하였을 때 맨 처음 그를 영접하여 잔치를 베풀어준 자는 뉴욕 지구 쎄인트 페트릭 대주교 교회였다. “세계의 모든 주요 종교는 근본적으로 하나다.”라고 달라이 라마가 선언했을 때 장내를 가득 채운 군중은 기립박수로 그에게 갈채를 보냈다. 이 사건을 1979년 9월 17일자 타임지는 ‘특별한 타종교 간의 축제’라고 평하였다. 그러나 또한 성경은 말씀한다. “이 땅에서 놀랍고도 무서운 일이 이루어지고 있도다. 대언자들은 거짓되이 대언하고 제사장들은 자기 방법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렇게 하는 것을 사랑하니 그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5:30,31) “이제 성령께서 밝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에 주의를 기울이리라 하셨으니”(딤전4:1) 그렇다. 오늘날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 전 세계의 종교를 하나로 묶는 ‘종교 간의 화해와 통합 운동(Inter Faith Movement)’이 날이 갈수록 활발해 지고 있다. 1997년 6월에는 새 세계 질서(NWO)의 일환으로 종교연합기구(UR: the United Religions Organization)에 의해 새 세계 교회(a New World Church)가 이미 시작된 상태이다. 궁극적으로 세계 단일 정부(OWG)라는 새 세계 질서(NWO)를 이루어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통치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세계 종교 통합(One World Religion)’인데 적그리스도는 결국 이 ‘세계 단일 종교(One World Religion)’를 통해 자신을 하나님으로 높여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로부터 경배를 받게 될 것이다(살후2:3,4; 계13:8).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지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할 것임이라. 그는 대적하는 자요,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를 받는 모든 것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로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2:3,4) 7. 마무리 촛불시위 최초 제안자인 ‘앙마’ 김기보(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씨가 촛불시위 기사를 ‘자작(自作)’한 사실에서 드러났듯이 포퓰리즘(populism)은 앞으로 전 세계 네트워크가 완벽해 지는 ‘새 세계 질서(NWO)’ 하에서 더욱 무섭고도 세련된 형태로 기승을 부리리라 전망이 된다. 특히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이들이 모두 연합하여 새 시대(New Age)의 도래를 추구하면서 공통적으로 내거는 “평화와 일치”란 슬로건 하에서는 더욱 포퓰리즘이 아름답게 포장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전 세계의 경제, 정치, 문화, 종교 등이 하나로 되어 인간들에 의한 유토피아가 건설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함께’(together, 고후6:14)로 시작하여 ‘일치’(agreement, 고후6:16)로 끝날 단일화 운동에 대하여 성경은 다섯 번이나 ‘어찌?’로 경고하고 있다(고후6:14-16). 즉 사탄은 세상을 향한 연합과 일치를 부르짖으나 세상과 분리되고 구별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공평하지 못한 멍에를 메지 말라. 의와 불의가 어찌 사귀겠으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친교를 나누겠으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일치하겠으며 혹은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어찌 한 몫을 나누겠으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조화를 이루겠느냐?”(고후6:14-16)
2009-05-08 15:07:23 | 관리자
1. 레프트 비하인드 며칠 전 아마존(amazon.com)으로부터 ‘레프트 비하인드(Left Behind,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10번째 시리즈물 ‘더 렘넌트(The Remnant, 남은자들)’의 출간을 알려주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 “대환난기에 접어든 지 한 달, 예언된 ‘영광스런 주의 재림’을 기다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대 도시 페트라에 모여든다. 세계정부는 지체하지 않고 폭격을 가하여 그 도시는 완전히 화염에 휩싸이게 된다. 이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들의 운명은…(It's one month into the Great Tribulation, and a million people gather in the ancient city of Petra to await the foretold ‘Glorious Appearing.’ The Global Community loses no time in bombing the city, which is completely engulfed in flames, guaranteeing certain doom for those assembled unless a miracle occurs…)” 지구 최후의 날을 소재로 지난 1995년부터 출간된 ‘레프트 비하인드’는 지금까지 9편의 시리즈물을 모두 합쳐 3천200만 부가 팔렸다고 하는데, 9.11 테러가 발생한 이후에 한동안 이 시리즈물 중 몇 권이 아마존에서 종합부문 베스트 셀러 1위 및 상위 랭킹을 차지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제 막 출간된 10번째 ‘더 렘넌트’는 초쇄 부수가 무려 300만부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출판 동향에 맞춰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신호(7월1일자)에서 ‘성경과 요한계시록’이라는 제하의 특집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CNN과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고 올여름에는 종말론에 관한 서적이 최대 인기를 끌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17%가 자신이 생존하는 동안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답한 가운데 언젠가는 종말이 올 것이라는 응답도 42%를 차지하여 종말론을 신봉하는 응답비율이 과반수(59%)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타임은 “복음주의 독자들에게 있어 ‘레프트 비하인드’ 시리즈물은 영적인 가이드 이상의 것을 제공해 준다. 이 책들은 정치적 어젠다라고 할 수 있다”며 팀 라헤이(Tim LaHaye)와 제리 B. 젠킨스(Jerry B. Jenkins)가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토대로 쓴 이 시리즈물을 비교적 정확하게 소개하고 있다. 2. 종말 그러면, 정말로 종말은 곧 오게 되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진정 가능한 일인가?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대환난이 소설 속에서처럼 이 세상에서 진짜로 일어나게 되는 것인가? 물론이다.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맞이하고(요14:3; 딤후2:19), 악을 행하는 자들을 자신의 임재 가운데서 영존하는 파멸로 징벌하며(살후1:7-9; 마13:39-43), 통치와 영광과 왕국을 받으시고 모든 백성들, 민족들 언어들로 하여금 자신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단7:13,14) 주님께서 다시 오실 터인데 우리는 바로 그 때가 임박했음을 성경에 제시된 여러 표적들(단12:4; 나2:3,4; 마24:7,12; 딤전4:1-4; 딤후3:1-5; 약5:3; 벧후3:3,4)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는 세태를 보며 깨닫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great tribulation)이 있을 것임이니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이 때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이후에도 없으리라. 주께서 그 날들을 짧게 하지 아니하시면 어떤 육체도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로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짧게 하시리라.”(마24:21,22, 이하 흠정역) 이 대환난과 종말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뿐 아니라 신구약 곳곳(사65장; 렘30:7; 단9,12장; 슥12장; 마24장; 막13장; 눅21장)에서 너무나도 정확하고 자세하게 언급이 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제한된 지면에서 다룬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 되겠지만 이 글에서는 요한계시록의 순서를 따라 아주 간략하게 대환난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함께 복을 받고자 한다(계1:3). 3. 휴거 먼저 대환난을 설명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할 대전제가 휴거(携擧, 공중들림, rapture, 살전4:16,17)이다. 휴거의 시점에 대해 적지 않은 신학적 이견이 있기도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성도들이라면 대환난 직전에 휴거되어 대환난을 겪지 않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기간을 면하게 하리니 이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기간이라.”(계3:10) 아울러 휴거에 대해 혼동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그 시기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이고(마24:36; 행1:7) 또 갑작스럽게 일어날 것이므로(살전5:1-3) 휴거의 시간을 명시하여 주장하는 자들은 100% 거짓말쟁이들이라는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마귀는 1992년과 1999년에 걸쳐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종말론 백신을 접종하여 사람들이 심판과 종말(휴거, 재림, 대환난 등)의 말씀들을 부인하도록 하는 데 거의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주의하라. 깨어 기도하라. 이는 그 때가 언제인지 너희가 알지 못하며 …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이르는 말이니라, 하시더라.”(막13:33,37). (이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기를 원하면 2000년11월호 건강과 생명에 쓴 필자의 글 ‘집단자살’ 및 도서출판 건생에서 출간된 척 스미스의 ‘대환난과 교회’를 읽어 보시기 바란다.) 4. 대환난    1) 전쟁, 기근, 사망 적그리스도가 흰 말을 타고 구세주를 가장하여 나타나지만 그는 전세계인을 파괴하여 노예화하려고 한다(계6:2). 붉은 말이 등장하여 지상에 엄청난 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이어서 검은 말의 출현으로 지구상에 대기근이 오게 된다(계6:4,5). 아마도 핵전쟁의 결과로 모든 작물이 불타버려 세계적 규모의 기근이 초래될 것이다. 창백한 말이 나오면서 지상의 25%의 사람들이 전쟁, 기근, 전염병 등으로 죽게 된다(계6:8). 휴거 후 수십억의 사람들이 지상에 남겨져 대환난 시대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무려 10억 이상의 사람들이 연달아 죽게 되는 것이다. 교회가 휴거된 후 지상에는 휴거 사건으로 말미암아 전세계적 공포(panic)가 초래되며 동시에 이제껏 없었던 영적 부흥이 대규모로 일어난다. 그러나 이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아 이 중 수많은 이들이 순교하게 된다(계6:9-11).    2) 지표의 변화 여섯 번째 인이 떼어지자 지구가 흔들리며 지표의 변화가 일어나 섬들이 바다에 가라앉고 높은 산은 무너지며 별이 하늘에서 떨어진다(계6:12-14). 만약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몇천 톤의 흙먼지나 티끌이 공중으로 치솟게 되면 그 순간 태양이 어두워지고 달은 핏덩이처럼 보이게 될 것이며, 또 지축이 변화되어 산들이 무너지고 섬들도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이다. 바람이 불지 않게 되자 비도 오지 않고 따라서 대기오염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며 땅은 사막과 같이 황폐한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계7:1). 나팔이 불리자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 땅에 쏟아져 나무의 삼분의 일과 푸른 풀이 다 타버린다(계8:7). 이어서 바다생물과 배들의 삼분의 일이 파괴되며(계8:8,9) 또한 물도 오염되고 해와 달과 별의 빛이 어두워진다(계8:12). 몇 년 전 개봉된 블록버스터 SF 영화 딥임팩트(deep impact)나 아마겟돈에서 묘사되었던 것처럼 지구에 소혹성 운석이 떨어질 경우 그 피해는 전면적인 핵전쟁 이상의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까지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소혹성의 수는 이미 이천 개 이상으로 확인이 되었고 그 중 몇 개는 지름이 무려 770km나 되기 때문이다.    3) 멈춰진 죽음과 대살육 지상 세계는 5개월 동안 메뚜기에 의해 고통 받지만 놀랍게도 사람은 죽지 않는다(계9:3-6).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연속 속에서 차라리 죽음을 갈망한다 해도 죽을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되는 것이다. 죽음이 멈춰진 때보다 최악의 고통의 시대가 또 있을까? 이것은 마치 죄인들이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일 것이다. 다시 나팔이 울리며 대살육은 계속 진행이 된다. 2억의 군대에 의해서 살아남은 인류의 삼분의 일이 죽음을 당하게 된다(계9:15-18). 오늘날 중국이 2억의 군대를 보유하였다는 것은 이미 세상에 공표된 사실이다. 그러나 2억의 모든 군사가 중국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몇 개 나라의 연합군일 가능성도 있다. 적그리스도를 지배자로 내세워 연합군이 형성되고 그들에게 거역할 때는 즉시 진압 당하게 된다.    4) 두 증인 대환난 시대가 시작하자마자 하나님은 자신이 택하신 백성인 유대인을 위해 두 명의 증인을 보내신다(계11:3). 두 증인은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이 지상 세계에 극심한 전염병을 가져올 수 있으며 42개월 동안이나 비가 내리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계11:5,6). 이 두 증인은 예루살렘에서 1,260일간 증거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다 감당하고 나서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에 의해 죽게 된다(계11:7). 사흘 이상 이들의 시체는 예루살렘 거리에 팽개쳐졌지만 나흘째에 사람들이 이 두 증인의 되살아남을 목격하고서는 경악하게 된다(계11:11). 그리고 두 증인이 하늘에 오르자 예루살렘에 대지진이 일어나 도시의 십분의 일이 파괴되고 칠천 명의 사람이 죽게 된다(계11:13).    5) 적그리스도 짐승 적그리스도가 자신을 경배하라고 하자(살후2:4; 단9:27) 세상 사람들은 그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세계를 통일하였다고 믿기에 대부분 그를 하나님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거역하게 되면 무참한 박해를 받게 되는데 그 박해를 피해서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밖의 광야나 사해 남동쪽에 위치한 요단강 바위 계곡(Petra)으로 도망하여 3년 동안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된다(계12:6). 치명적인 상처가 낫기도 하고 또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는 등의 기적을 사탄이 행하자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채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짐승에게 경배하게 된다(계13:3,8,12,13). 그리고는 오른 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아 새로운 경제 시스템 하에 들어가게 되는데(계13:16,17) 이와 동시에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된다(계14:9,10).    6) 진노의 대접들 진노의 대접이 쏟아지자 바다가 죽은 사람의 피같이 되어 모든 살아 있는 혼이 바다에서 죽으며 강들과 물들의 근원들도 피가 되고(계16:2,3) 해는 사람들을 불사를 권능을 받아 사람들을 큰 열기로 태우게 된다(계16:8,9). 아마도 물의 오염, 산성비, 적조현상, 오존층파괴, 사막화, 온난화현상, 홍수사태 등의 자연재해와 기상이변들이 더욱 심화되고 증폭되면서 이러한 재앙이 초래될 것이다. 짐승의 왕국은 어둠으로 가득하고 사람들이 아픔으로 인해 자기 혀를 깨물고 자기의 아픔과 헌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모독한다(계16:10,11). 이어서 유프라테스 강이 말라서 동방의 왕들의 길이 예비되어 아마겟돈으로 세상 군대가 모이게 된다(계16:12-16). 그리고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지진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후 모든 섬이 사라지고 산들도 보이지 않게 된다(계16:18-20). 또 무게가 수십 킬로그램 되는 우박이 사람들 위에 떨어져 커다란 재앙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독한다(계16:21).    7) 바빌론의 붕괴 사탄은 지구 역사 가운데 악한 천재들을 이용하여 하나님께 최후의 싸움을 걸어온다. 짐승은 함께 권위를 받게 되는 열 왕과 손을 잡게 되며 음녀와도 한동안 우호관계를 유지하다가(계17:2,12,13) 결국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한다(계17:16). 그리고 나서 마귀들의 거처가 되고 온갖 더러운 영의 요새가 되었던 바빌론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계18:2-24). 곧 영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타락시킨 카톨릭과 같은 거짓된 종교제도와 그 부의 힘으로 하나님께 반역하여 세계 만민의 눈을 어둡게 하였던 경제 대국 바빌론은 붕괴되고 적그리스도는 최후의 전쟁에서 사로잡혀 불못에 던져지며 사탄도 바닥없는 구덩이(무저갱)에 감금됨으로써 대환난의 시대가 마무리된다(계19:19,20; 20:1-3). 5. 대환난이 오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계22:20)고 하셨다. 그렇다면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계22:20)라고 화답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받아들여 자신의 모든 죄를 씻음 받아 대환난 가운데 들어가지 않는 모든 독자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린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6:37) “너희가 만일 그분을 구하면 그분을 만나려니와”(대하15:2)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2:21)고 하신 주님의 약속들을 기억하자. “보라, 지금이 받아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2009-05-08 15:05:38 | 관리자
1. 들머리 사교의 집단자살 현장에서 경찰은 아직 죽지 않은 만삭의 여인을 구조하여 병원으로 옮긴다. 그러나 여인은 죽고 뱃속의 아이만이 살아 남는다. 집단자살 사건에서 살아 남은 생존자들을 차례로 살해하던 악령은 그 아이를 통해 인간의 모습으로 부활하려 한다. 인간을 이용하여 세상을 지배하려는 악에 맞서 싸우기 위해 퇴마사는 악령과 일대접전을 벌인다. 이상의 스토리는 안성기, 신현준, 추상미 등이 주연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퇴마록'의 기본 줄거리이다. '퇴마록'에서 플롯(plot)의 구성이 가능하게 하였던 집단자살이라는 사건은 단지 영화 속의 허구는 아니다. 우리 삶에서 날로 증가되고 있는 수많은 사회적 문제 중의 하나인 집단자살은 현실적으로 이에 대한 예방책이 큰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슈일 뿐 아니라 세 번째 밀레니엄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특별히 영적인 분별력이 요구되는 너무도 중요한 성경적 주제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집단자살의 유형들과 그 기전(機轉, mechanism)을 살펴보고 성경적 관점에서 집단자살을 조망해 보고자 한다. 2. 집단자살의 유형 1). 동물에서의 집단자살 스페인에서는 해마다 '고래소동'이 일어난다. 스페인 해안가에 매년 약 4백 마리의 고래들이 뭍으로 올라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 일부 고래는 사람의 손에 의해 구조된 경험이 있는 고래들이기도 하다. 이 같은 현상은 스페인뿐 아니라 뉴질랜드나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노르웨이에 사는 레밍 쥐(Lemmus lemmus)는 보통 쥐와는 다른 괴이한 행동을 한다. 다리가 짧고 작은 귀에 부드럽고 긴 털을 가진 설치류 레밍 쥐의 집단은 3-4년만 지나면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면 봄이나 가을의 하루를 잡아 야음을 타고 여러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나중에는 대낮에도 집단으로 이동한다. 이들의 종착지는 바닷가다. 거기서 막다른 벼랑에 다다르면 처음에는 멈칫 바다에 뛰어들기를 주저하며 도망갈 곳을 찾다가 다른 길이 없다는 점을 알아차리고는 그만 바다에 빠져버린다. '집단 자살'이 자행되는 것이다. 또 1993년 8월 중국 신장지구에서는 수만 마리의 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슬처럼 연결돼 강으로 뛰어들어 자살한 적도 있다. 1995년 중국 내몽고에서는 5백여 마리의 염소들이 목동들의 필사적인 저지에도 불구하고 호수로 뛰어들어 집단 자살을 벌인 사건이 일어났다. 평소 물을 싫어하는 염소 두 마리가 깊이 1.5m의 호수로 뛰어들자 다른 염소들도 이들의 뒤를 따랐고 결국 2백여 마리의 염소가 목숨을 잃었다. 2). 비종교적 집단자살 얼마 전 중학교 여학생 4명이 20층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 집단 자살을 한 적이 있었다. IMF여파로 인한 가장의 자살이 잇따르던 가운데 발생한 여중생 집단자살은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는데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이들 여중생들이 가난을 참지 못할 고통으로 생각하고 자살까지 결심했을 뿐 아니라 주저 없이 동반자살을 택했다는 점이다. 또한 1830년대 중국 광동성의 광주 지방에서도 예닐곱 명으로 추정되는 일단의 처녀들이 집단으로 강에 투신 자살한 사건이 일어나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자살자들은 금란회(金蘭會)라는 일종의 비밀결사의 조직원들이었는데 금란회는 처녀들이 결혼을 거부하고 서로 자매로 지내기로 맹세한 조직이었다. 그런데 조직원 중 한 명이 어릴 때 부모님이 이미 혼사를 결정해 두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집을 가게 됐다. 그녀는 결혼을 하고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 한밤중에 탈출에 성공을 하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한자리에 모인 금란회 회원들은 회칙에 따라 함께 강물에 투신 자살을 한 것이었다. 1998년 6월 26일(금) 오전11시 합동참모본부 정영진(육군중장) 작전본부장은 국방부 기자실에서 북한잠수정 침투사건 조사결과 발표 후 기자회견을 갖고 "4명은 머리에 총상을 입었고 5명이 난사 당한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을 하였다. "96년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 때도 11명이 모두 머리에 총상을 입고 자살한 전례가 있다. 이번에 총기로 난사한 것을 보면 공작조와 승조원들 사이에 집단자살을 놓고 의견충돌이 있었던 것 같다." AD 70년 로마의 디도(Titus) 장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88일만에 함락하였는데 쫓겨난 열심파들은 맛사다 고지에서 끝까지 항거하다가 집단자살을 하여 결국 독립운동에 실패하였다. 이로써 예루살렘은 마태복음 24장 2절에 나온 예수님의 예언대로 완전히 멸망하였다. AD 660년 백제의 제 31대 의자왕이 임금의 자리에 오른 지 20년이 되는 해 신라의 태종 무열왕은 김유신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소정방이 거느린 당나라 군사와 연합군을 짜서 백제를 총공격하였다. 계백 장군이 5천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로 나아가 5만 명의 신라군과 싸웠지만 전멸하였고 마침내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이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무너뜨리니 의자왕은 항복하고 말았다. 이 때 백제왕의 3천 궁녀가 낙화암에서 백마강으로 꽃잎처럼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집단자살의 또 다른 일례이다. 3). 종교적 집단자살 1>. 오대양 사건은 1백70여억 원의 사채를 빌려쓰고 행방을 감췄던 ㈜오대양 대표 박순자씨와 그 직원, 가족 등 32명이 1987년 8월29일 경기도 용인에서 집단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수사 당국은 이 사건이 소위 '집단 자살', 그러니까 전원의 자유 의사에 따라 남자 3명이 나머지 29명을 목졸라 살해하고 3명은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 배후는 오대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종교집단 구원파(정식 명칭은 '기독교복음침례회')였는데 그 중심인물은 당시 잘 나가던 ㈜세모의 사장 유병언씨다. 이 사건은 이후에도 두 차례나 재수사 과정을 밟게 되었지만 결론은 변함없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백한 집단자살이었다. 2>. 1999년 10월 5일 강원도 양양 남대천 둑에서 7명이 자신들이 타고 다니던 승합차에 불을 질러 집단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분신 전에 번호판까지 떼어버려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던 이들은 놀랍게도 종말론에 심취해 있던 목사와 그를 추종하던 영생교회 신도들로 밝혀졌다. 수년 전부터 가족들조차 버린 채 서울의 한 단독주택에서 극도로 폐쇄적인 집단생활을 해온 이들은 우 목사를 살아 있는 하나님으로 신격화하고, 예전부터 주위에 순교에 대한 암시를 하는 등 광적인 종교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3>. 1978년 남미 가이아나에서 벌어진 인민사원 집단학살 사건은 감리교를 비틀어 이단종교를 만든 교주 짐 존스에 의해 저질러졌다. 당시 존스는 인권유린 여부를 조사하러 온 미국 상원 조사단원 3명을 살해한 뒤 신도들을 신앙촌 광장에 모아놓고 강제로 독극물을 마시도록 해 모두 914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남미의 밀림에 신앙촌을 건설하고 이 사설 왕국의 군주로 군림한 존스는 제2의 예수, 최후의 인도주의자, 참된 사회주의자를 자처했지만 결과는 떼죽음이었다. 4>. 1993년 미국 텍사스주 웨이코에서 발생한 다윗파 집단자살사건은 종말론을 맹신하며 무기를  갖고 다니던 교주 데이빗 코레시와 신도들이 불법무기 수색에 나선 공권력에 맞서 51일간 저항하다 불을 질러 집단자살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어린이 24명을 포함해 교주와 신도 등 86명이 숨졌다. 코레시도 심판의 날을 예비하는 예언자이자 '하나님의 어린 양'을 자처했고 신도들은 프리섹스로 그들만의 천국을 즐겼다. 5>. 태양의 사원은 재림 예수를 자청하는 벨기에인 뤽 주레가 1987년 창설, 스위스를 중심으로 유럽과 캐나다에서 신도를 늘려가다가 1994년 10월 교주와 신도들이 집단자살극을 벌임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스위스와 캐나다에서 동시에 발견된 53구의 시신은 죽음에 앞서 모종의 종교의식을 치른 듯 장미와 십자가가 그려진 예복 차림에 둥근 대열로 누워 있었다. 일부는 자살한 것으로 추정됐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총상과 마약주사 흔적이 있어 타살가능성도 제기됐다. 알프스 산록의 농가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된 신도 중에는 소도시 시장과 기자 등 지식인도 포함돼 있었다. 이 집단 신도들은 1995년 12월 프랑스, 1997년 3월 캐나다에서도 자살극을 벌였다. 6>. 1997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 산타페에서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신도 39명이 진정제를 넣은 음식과 보드카를 먹고 집단 자살했다. 이들은 기독교에 뿌리를 둔 '천국의 문' 신도로 UFO를 타고 천국에 가 영생을 얻겠다는 신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밝혀졌다. 신도들은 대부분 컴퓨터업에 종사하는 전문가로 교리내용을 인터넷 웹사이트에 올리기도 했다. 이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인간의 진화단계를 졸업하고 천국에 있는 존재들과 함께 고차원의 생명을 얻는 것"이라며 자살 직전 즐거운 표정으로 작별인사를 하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과거 동료나 목사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7>. 2000년 3월 17일 우간다에서는 '하나님의 십계명 회복 운동'이라는 사교집단의 집회소에서 집단자살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하여 약 900 여명이 사망하였다. 우간다 남서부에서 발생한 집단자살 사망자 중 어린이 78명과 적어도 6명의 신도들은 종말론 지도자들에 의해 강제로 살해됐다는 증거 및 증언이 나왔다고 우간다 경찰이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영생교회처럼 집단생활을 하고 있는 사교집단이 전국적으로 60여 곳이 넘고, 이들 집단의 제2, 제3의 집단자살 또한 우려되고 있다. 미국의 사이비 종교 전문가 마이클 셔머에 의하면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종말론 사교 집단이 1,200여 곳에 이른다고 하는데 특히 워싱턴주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 서부에는 종말론 집단 40여 곳이 무기까지 갖춘 채 산악 지역에 모여들어 있다고 한다.) 3. 집단자살의 기전 1). 동물에서의 집단자살 스페인 동물학자들은 돌고래들이 정말 '자살의지'를 가지고 이런 행위를 하는지 아니면 '식욕부진' 같은 일시적인 생리적인 현상으로 인한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를 진행중이다.  고래들이 밀물을 따라 해안가로 왔다가 썰물 때 바다로 돌아가지 않고 가끔씩 집단으로 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어 그 원인을 두고 일부 학자들은 고래의 소리 체계의 이상으로 인해 방향 감각이 상실되어 일어나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사실 자살을 시도하는 일부 고래들에게서 방향감각 기관이 있는 귀 부근에 염증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연례적으로 고래들이 끊이지 않고 자살을 하는 정확한 이유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레밍 쥐들은 3, 4년에 한 번씩 개체군의 '폭발' 현상을 일으킨다고 한다. 따라서 레밍 쥐들은 자신들의 생존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폭발' 현상과 함께 대이동을 시작하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쥐들이 죽거나 다치게 됨으로 자연스레 적절한 수를 유지하게 된다고 한다. 특히 노르웨이 레밍 쥐들의 이동은 극적인 것이어서 무더기로 바다에 뛰어드는 투신자살을 강행한다. 확실한 원리를 밝히지는 못했지만 때가 되면 늙은 쥐들이 죽어줌으로써 집단의 밀도를 낮춰 결과적으로 종족보존에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 있다. 이런 집단자살은 집단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으로 대자연의 생태계로 따져보면 자연이 스스로 자신의 질서를 유지하는 능력이기도 하다고 과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2). 비종교적 집단자살 집단 자살을 한 중학교 여학생들의 마음 속에 무슨 죽을 만큼 모진 일들이 있었을까? 물론 그들 나름대로 복잡한 사연이 있었겠지만 가난에 대한 열등감이었든지, 이성문제였든지, 학업문제였든지 심지어 감상적인 충동이었든지 간에 그들에게는 세상에 마음 붙일 곳이 없는 고독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사회심리학자들은 설명하기도 한다. "고독을 느끼지 않으면 현대인이 아니다."는 말처럼 고독은 현대인의 보편적인 현상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일까? 금란회와 비슷한 조직이 광동 지방에 많이 있었다고 한다. 당대의 호사가들은 이 사건을 동성연애자들의 병적 행동이라고 했지만 일부에서는 중국 여성들이 받고 있는 가혹한 성차별과 억압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의 광동 지방은 견직물업 지역으로 여성들은 주로 제사공으로 일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노동자로서 받는 수탈에다 가정에서 남성으로부터의 수탈까지 겹쳐서는 살 수 없다는 인간 극한의 절규로 이해되고 있다. 96년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이나 98년 북한잠수정 침투사건 또는 백제의 낙화암 사건과 맛사다 결사항전 등은 모두 전쟁에 지면 안된다는 군인정신 내지는 집단 민족정신 또는 신앙 공동체적 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겠다. 비록 오늘날 고고학계에서 맛사다가 '정치와 고고학이 결탁해 역사적 사실을 미화하는 데 이용됐다'는 주장이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기도 하지만 꺾이지 않은 선조들의 고귀한 정신을 잇고자 하는 이 맛사다의 외침은 60∼70년대에 주변 아랍국들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 됐다. 3). 종교적 집단자살 질병을 옮기는 바이러스처럼 한 사람 또는 일부 집단의 주장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마인드 바이러스(mind virus)'라고 말한다. 이 마인드 바이러스는 TV 광고, 종교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의 일상에 침투해 생각과 행동을 지배한다.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제기한 '밈(meme)'이라는 용어가 마인드 바이러스의 출발점이다. 그는 주로 모방에 의해 전파되는 문화요소가 밈이며 노래, 사상, 선전문구, 패션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한다. 사회생물학자들은 앞서 언급된 집단자살한 광신도 집단들을 일종의 마인드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제품의 장점 또는 기업 이미지를 은연중에 유포시키는 상업광고나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인들도 마인드 바이러스를 활용하는 사례다. 특히 인터넷의 등장은 마인드 바이러스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는데 네트워크와의 접촉이 잦은 미래 인류는 마인드 바이러스에 더욱 쉽게 노출될 것으로 사회생물학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사교 집단의 위험성은 상당수가 폭동 등 사회 불안을 일으키면 종말을 앞당길 수 있다고 믿는 데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이런 종말론 열풍을 시대 변화에 대한 대중의 두려움에서 나오는 사회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캐나다 토론토대학 마크 킹웰 교수(종교학·철학)는 "미치광이 같은 종말론은 역사 전환기마다 반복을 거듭하며 나타났던 것"이라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극단적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기독교단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이단/사이비는 무려 490종이 있고, 최근에는 사이비종교 피해사례가 하루 40여 건이 넘게 접수되고 있다고 한다. 종교 전문가들은 현재의 경제불황과 인류의 마지막 천년이라는 사회적 불안심리 등으로 반사회적, 반인륜적인 사이비종교가 앞으로도 계속 극성을 부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종교연구가들은 인류의 종말 을 걱정하는 국내 종교단체가 유사종교까지 합쳐 65,000 개로 본다. 이 가운데 문제가 되는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곳은 80-100여개, 신도수는 약 20만명 정도이며 적어도 수만명이 여기에 푹 빠져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종교문제연구소측은 5-6개 단체, 경찰은 20여개 단체들이 한 번쯤 일을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지난 해 포항 모교회 신도들이 집단 가출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듯이 수십, 수백명씩 외딴 시골 등에서 외부접촉 없이 극도로 폐쇄된 생활을 하고 있다. 신도들이 집단자살한 채 발견된 '천국의 문'과 같이 '미래의 한 시기에 인류보다 뛰어난 생물체가 UFO를 타고 와서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집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최근호에 따르면 현재 미국만 해도 무려 5천개의 광신집단이 있으며 최근 들어 이들 중 상당수가 UFO 신앙의 양상을 띤다고 보도했다. 이 밖에 프랑스에서는 4광년 떨어진 한 행성을 다녀온 '라엘'의 계시를 따르는 라엘리언 무브먼트가 적잖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라엘리언 무브먼트 회원들은 인간이 고도로 문명이 발달한 우주인들의 유전공학술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 UFO는 지구에 낙원을 건설할 우주인이 타고 온 것이라고 한다. 회원들은 우주인을 '엘로힘'이라 부르는데 '엘로힘'은 원래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다른 이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4. 집단자살의 성경적 관점 1). 종말성 집단자살의 사건이 시한부 종말론 내지는 비성경적 종말론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마24:36) 그런데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어느 한 집단에만 그리스도가 강림하시는 줄 알고 그리스도라 자처하는 그 집단의 지도자가 주장하는 종말론에 세뇌되어 기꺼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종말이 임박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주께서 오시는 때의 표적과 세상 끝의 표적이 무엇이리이까? 하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라 하며 많은 사람을 속이리라."(마24:3하-5, 이하 흠정역) 2). 진리의 변질 집단자살을 하였던 집단들이 내걸었던 타이틀의 어휘들을 살펴보면 '구원', '영생', '천국', '재림', '휴거' 등 오직 성경만이 갖고 있는 키워드(key words)인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영혼 구원에 대해서 말하거나, 죽음이후 심판과 영생이 있다고 선포하거나, 최권능 목사처럼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거나,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공중들림 받기를 원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집단자살이나 하는 광신자의 영역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 대신 '사랑'과 '화평'과 '복'과 '인간승리'와 '이 세상에서의 유토피아 건설'과 같은 '보이는 신앙'이 우리가 지향해야 될 세련되고 고급스런 믿음의 목표가 되어 버렸다, "이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니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느니라."(고후11:14) "저 사악한 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권능과 표적과 거짓 이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수로 멸망하는 자들에게로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함이라.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한 미혹을 보내사 거짓말을 믿게 하시리니 이는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 불의를 기뻐한 모든 자들로 하여금 정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전 2:9-12) "사람들이 평화와 안전을 말할 그 때에 아이 밴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임하는 것같이 갑작스런 파멸이 그들 위에 임하리니 그들이 피하지 못하리라."(살전5:3) 3). 휴거 후 효과 성경에 휴거(rapture)라는 단어 자체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분명히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이 세상의 성도들이 공중들림 받는 것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도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게 되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휴거가 일어난 다음 이 세상에 남아 7년 대환난에 들어가게 된 사람들은 이 역사상 전무후무한 휴거 사건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극도의 혼란과 정신적 공황이 일순간 지구상의 수십억 인류에게 초래될 것인데 아마도 세계 정부나 지역 정부들은 그 때까지 날로 증가하고 있었던, 집단자살도 하며 폐쇄적인 은둔 생활을 해온 수많은 광신자 집단들의 또 다른 집단적 소동이나 치명적인 마인드 바이러스의 폭발적 감염 내지는 UFO와 연관된 사건이라는 컨센서스(consensus)를 자연스럽게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휴거에 따른 역류작용(back flow)으로 적그리스도와 세계 단일정부는 쉽게 그 체제를 갖추고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대자연의 생태계에서 광신도들의 증발은 자연이 스스로 자신의 질서를 유지하는 능력이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가이아(Gaia) 가설은 더 이상 가설이 아니라 참 진리이다! 세계 단일정부와 지도자 동지를 위하여, 브라보!'라고 환호하면서 말이다. 5. 마무리 지난 달 필자가 출석하는 온누리교회에서는 '디지털 세상, 불멸의 교회'란 타이틀로 창립 15주년 기념행사를 성황리에 치렀다. 아울러 같은 달 미국의 과학잡지인 디스커버리(2000년 10월호)에는 인류멸망의 가능성이 엄청나게 증가되었다고 하면서 2020년 안에 일어날 수 있는 20가지 재앙이 소개되었다. 이 가운데 집단 정신착란이나 외계인 침공 및 종말론 확산 등이 인류멸망 요인 중의 하나로 제시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 우리는 교회 안팎으로 디지털(digital) 세상에 살고 있다. 느부갓네살 왕이 꾸었던 꿈속의 형상 중 제일 마지막 단계인 발가락(digit) 시대가 바로 오늘인 것이다.(단2:41-43)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시각에 너희 주가 올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그러나 이것을 알라. 만일 집주인이 도둑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자기 집에 들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도 않은 시각에 사람의 아들이 오느니라."(마24:42-44)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벧전5:8,9상)"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계22:20)
2009-05-08 15:04:00 | 관리자
지금이 말세인가? (에이즈와 성경 그리고 재림 신앙) 정동수 인류는 불치의 병으로 알려진 에이즈 백신을 만들기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20-30개의 백신을 테스트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이제 단 한 가지만 남았다고 합니다. 지금 이 시간 여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거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백신이 나온다 해도 에이즈를 다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에이즈는 워낙 변종이 많기 때문에 한 가지 백신으로는 이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주받은 질병들이 온 세상에 만연하게 된 것이 과연 성경이 말씀하는 말세의 징조일까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수치스런 애정에 내어 주셨으니 이는 심지어 그들의 여자들도 본래대로 쓸 것을 본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바꾸었으며 남자들도 이와 같이 본래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를 향해 욕정이 불 일 듯 하여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보기 흉한 짓을 행함으로 자기 잘못에 합당한 보응을 자기 속에 받았음이니라."(롬1:26-27).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에이즈 관련 기사를 살펴보기 바랍니다.  이 마지막 때에 더욱 더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들의 신앙을 철저히 점검하고 재림의 소망 속에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야 할 목사들이 성경을 잘못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연하게 '에스라 하우스'라고 장로 교회의 노○○ 목사가 운영하는 웹사이트(http://www.ezrahouse.org/)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 질문과 답변이 많이 있어서 몇 가지를 보다가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노 목사는 장로교 계통에서 계시록 주석으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물론 칼빈주의 해석 체계이므로 환난 통과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 한국 기독교계의 계시록의 대가라는 분이 현 시대를 보는 관점을 한 번 유심히 살펴보기 바랍니다.  한 분이 답답해서 그분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질문: 로마서 11장 25-27절에 대해서...     목사님 안녕하세요.  성경을 읽다가 답답하여 질문하게 되군요.  이스라엘이 대거 그리스도를 믿어 회심할 때 심판날이 온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설명을 로마서 11장 25-27절로 이야기하는데 제가 읽어 보니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고 심판날은 못찾겠고 구원문제만 헷갈리게 됩니다. 심판날과 상관이 있는지요.. 그리고 로마서 11장을 읽어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된 주인공 같고 이방인은 말 그대로 이방인취급 하는 것같은 느낌인데...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안 믿으니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주고 이스라엘을 질투하도록 하셨고 그 동안에 이방인들 중에 그리스도께 나오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다 올 때까지 지속된다는것도 맞는지요. 하여튼 재림하고 로마서11장 말씀과 연관이 있습니까? 이에 대해 노 목사는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답변: 다른 번역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    문맥이나 문장이 어려울 때는 다른 번역을 참고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현대어 성경을 적극 권해 드립니다. 그리고 현대인의 성경이나 표준 새번역 혹은 개역 개정판을 참고하시고 그래도 어려우시면 영어 성경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의 어떤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으신다면 틀림없이 구약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시지 못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먼저 충분히 읽어서 원만한 이해가 있어야 신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1장의 기사는 주님의 재림하고는 직접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영영 버리신 것은 아니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아직은 상당한 세월이 흘려야 하고 아직은 열심히 전도하고 선교해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쯤 되면 다시 이방인들의 교회에서 성도들이 믿음을 배반하고 반대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때가 올 것으로 봅니다. 아직은 그렇게 되기까지 상당한 세월이 흘러야 할 것입니다. 아직은 이방인 세계에서 복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전도가 전혀 되지 않는 때가 올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답변이 과연 성도들을 세워 주는 것입니까?  지금 질문을 한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성경이 어렵기 때문입니까?  더더욱 현대어 성경은 개역성경만도 못한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그런데 노 목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로마서 11장이 주님의 재림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사실입니까?   어떻게 성경을 읽기에 이스라엘의 부활이 예수님의 재림하고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까?  로마서 11장의 말씀은 답답한 심정으로 물었던 그분이 지적한 그대로입니다.  즉 그 장은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이스라엘이 구원받고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스가랴서 12-14장을 천천히 문맥을 따라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극심한 환난 이후에 살아남은 온 민족이 회개하고 메시아를 맞아들이는 내용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노 목사는 또한 주님의 재림까지는 아직도 상당히 오랜 세월이 남아있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이 부활해서 나라를 되찾으면서 이제 말세의 말세를 맞은 것이 아닙니까!   천년 왕국을 다루는 에스겔서 40-48장 전에 3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부활할 것을 예고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구절을 그대로 믿지 않고 영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아직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려면 멀었다는 주장을 펴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의 많은 성도들이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은 이제 교회로 바뀌었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야곱의 집 등이 모두 교회를 언급하고 있다고 배웠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이와 전혀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분명히 이스라엘이고 우리 믿는 이들은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녀요, 영적으로는 이스라엘이지만 결코 육신적으로는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지금 중동에 서 있는 육적인 이스라엘이 분명히 있으며 성경에는 말세에 이 육적인 이스라엘에게 적용 될 예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모두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에 적용하게 될 때 성경해석상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약속들 중 실제의 육적 이스라엘이 받게 될 것들은 신약 시대 교회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을 - 특히 구약성경을 - 읽으면서 그 내용을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내인 이스라엘을 직접 다루시는 역사적 사실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 나하고 상관이 있는 '영적 QT 재료'로만 사용하기에 우리 한국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형성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간단한 예로 에스겔서 37장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골짜기에서 에스겔에게 마른 뼈들을 보여 주시고 이들에게 대언하게 하시고 결국 이 뼈들이 살아나서 하나님의 군대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 내용이 37장 1-1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여기까지만 읽고 영적으로 이것을 내게 적용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주님께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이것은 성경 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바로 다음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주 간결하고 명확하게 이에 대한 해석을 내려 주십니다. "그때에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이스라엘의 온 집이라. 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은 말랐고 우리의 소망은 잃어버린바 되었으며 우리로 말하건대 우리는 끊어졌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고 너희로 하여금 너희 무덤들에서 나오게 하며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고 너희를 너희 무덤들에서 이끌어 올릴 때에 내가 주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겔37:11-13).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 뼈들이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말씀하시며 40장부터 나오는 천년왕국이 임하기 전에 이스라엘이 나라를 세우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이 구절은 1차적으로 이방인 크리스천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유대인들의 부활과 상관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을 이해한 뒤에 영적인 해석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1차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않고 다 나에게 적용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보는 것입니다.  특별히 구약 성경을 읽으면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것을 다 자기에게로 취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왕국, 주의 날, 천년 왕국 이전에 있을 7년 환난기 등을 다 교회에게 적용하고 영적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2003년 1월에는 이탈리아에서 첫 번째 복제 인간이 탄생한다고 합니다.   온 세상에 에이즈가 창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부활해서 언제라도 성전을 지으려 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천 교사라고 하는 사람들은 재림의 교리를 왜곡되게 가르치며 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을 맞아 부디 눈을 하늘로 향하고 비록 몸은 이 땅에 살지만 하늘의 것에 애착을 두고 사시기 바랍니다.  끔찍한 대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교회가 휴거된다고 말씀하는 성경의 복된 소망을 믿고 최선을 다해서 믿음의 경주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았거든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있는 것들에 애착(愛着)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두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기 때문이라."(골3:1-3).   유엔·세계보건기구 발표 "에이즈로 올 310만명 사망" 2020년까지 6천8백만명 희생…인도·중국 등 인구대국 가장 위험     올해 들어 전 세계에서 3백10만명이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로 목숨을 잃었고 5백만명이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새로 감염돼 전 세계 HIV 감염자 및 에이즈 환자는 4천2백만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공식 집계됐다.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앞두고 유엔에이즈퇴치계획(UNAIDS)과 세계보건기구(WHO)가 25일 발표한 '에이즈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획기적인 예방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앞으로 2020년까지 모두 6천8백만명이 에이즈로 사망할 전망이다.  이는 1980년대 초 에이즈가 처음 발견된 이래 지금까지 발생한 에이즈 사망자의 3배가 넘는 수준이다. 보고서는 주요 에이즈 확산지역으로 아시아, 태평양지역을 꼽았다. 이 지역에서만 올들어 1백만명이 HIV에 신규 감염돼 역내 에이즈 환자 수는 인도 4백여만명, 중국 1백만명, 태국 70만명 등 모두 7백20만명으로 늘었다.  UNAIDS는 특히 "인도.중국.인도네시아 등 인구 대국의 경우 당장은 감염자 비율이 낮지만 앞으로 감염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의 경우 헌혈과 수혈을 통한 감염자가 많아 지난해 상반기 중 감염자 증가율이 67%에 달했고, 이 추세대로라면 2010년에는 HIV 감염자 및 에이즈 환자가 1천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국제적십자연맹(IFRC)은 24일 마닐라에서 열린 지역회의에서 아시아 지역의 에이즈 확산을 경계하며 "당장 에이즈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아시아도 아프리카처럼 '에이즈 고아' 양산과 같은 사회, 경제적 참상을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에이즈 대륙'으로까지 불리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올해 3백50만명이 에이즈에 새로 감염돼 총 감염자 수가 2천9백40만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보츠와나를 비롯한 일부 국가의 경우 임산부의 감염률이 30%를 웃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상황이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라면서 "그동안 에이즈 감염률이 높았던 태국과 캄보디아, 우간다, 잠비아에서 감염률이 떨어지는 등 희망적인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중앙일보(2002.11.26)        
2009-05-08 15:02:43 | 관리자
예수님은 정말 다시 오시는가? 정동수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이라는 최종권위에 기초를 두고 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고 고백한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보지 않고도 어떻게 그분께서 살아 계시며 우주를 창조하셨고 우주 안에 있는 만물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성경은 우리가 믿음을 통해서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히11:3). 무엇을 보거나 만져 보아서 아는 것이 아니고 믿음을 통해서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 그리고 다른 사도들은 신약성경 안에서만 무려 삼백 번이 넘도록 예수님께서 영광과 심판의 주님으로서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통해 그분께서 가장 빈번히 전하신 말씀이 바로 그분의 재림에 관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재림은 정말 오는가 안 오는가 하는 것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확신의 대상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어떤 정해진 날짜에 오신다고 예언하는 자칭 선지자들이 많이 있어왔다. 1990년대 초반에 가장 두드러진 조직체는 아마 이장림씨가 조직한 다미선교회일 것이다. 이 선교회 회원들은 전철역 등의 여러 장소에서 예수님께서 1992년 10월 28일에 재림하신다고 외쳤다. 그러나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그분의 재림에 대한 날짜를 제시하는 곳이 없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절에 보면 주님의 날은 마치 밤에 도둑 같이 임한다고 기록되어져 있다. 도둑이 어느 때 오는지 알면 누구나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믿는다면 우리는 그분의 재림의 날짜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어떤 날짜에 다시 온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그들이 주장하는 공통적인 이야기는 그들이 이상(환상)이나 목소리를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1:1-2에서는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라고 기록되어져 있다. 다시 말해 인류의 영원한 구원과 심판을 위한 하나님의 마지막 계시는 성자 하나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존되어져 온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을 보여주시기를 원했던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성부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씀하셨다(요한 14:9). 성경은 예수님을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요한복음 1장 1절은 그분을 말씀이라 부르며, 요한계시록 19장 13절 또한 그분의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안에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성경만이 우리 믿음의 최종 권위이므로 아무리 유명한 사람의 주장이라도 그것이 성경에 위배되는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단순히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날짜를 제시하지 않으므로 성경에서 벗어난 이런 계시들은 고려해볼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가짜 선지자들이 사람들을 유혹하는가? 창조 이후로 계속해서 사탄(마귀)은 인류를 기만해 왔고, 그의 운명은 창세기와 예수님의 계시록(성경의 첫째와 마지막 책들)에 이미 멸망될 것으로 확정되어져 있다.(창3:15, 계20:7-10) 사탄은 사람들에게 창세기는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듯 신화에 지나지 않고, 계시록은 이 책이 읽고 듣기만 해도 축복을 받는 책임에 불구하고(계1:3)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라고 속여 왔다. 따라서 인류 구속사의 시작과 끌이 되는 이 중요한 책들이 교회 안에서조차 제대로 가르쳐 지거나 읽혀지지 않는 배경에는 마귀의 교묘한 계획이 있음을 파악해야만 한다. 특히 한국 교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나눌 수 있는 좋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길러내기 위한 성경적인 신학교들과 지도자들이 심히 결여되어 있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수많은 신학교들이 난립되어있고, 신학교 내에도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은 많은 인본주의적 신학자들이 많이 있다. 다시 말해서, 몸의 부활 등과 같은 영적인 내용들을 부정하는 현대판 사두개인들이 많다는 것이다.(마22:23-33,고전15:12-58) 예수님의 계시록에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한국의 교회들은 그들의 부와 교인 수를 자랑하나, 실제로는 자신들이 영적으로 가난하고 벌거벗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천주교인들처럼 그리스도인들도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질문 없이 무조건 믿어야 할 것을 요청 받는다. 이것은 절대로 인격적인 믿음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인격적인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써 그분을 신뢰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의 재림의 문제도 이같은 차원에서 다루어져 왔다. 소위 성도들이 계시록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위험하다는 것이고, 그냥 믿으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순수한 사람들이 성경을 읽거나 듣는 대신에, 자신의 흑은 다른 사람의 계시들에 더 많은 비중을 두기 때문에 사탄의 꼬임에 쉽게 넘어가는 것이다. 비록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정확한 날짜는 성경에 제시되어 있지 않으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재림의 시기를 분별하라는 주의를 주셨다.(마태24:32-34) 그러면 성경은 그분의 재림의 시기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데살로니가후서 2:3-4에는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지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명의 아들이 드러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할 것임이라. 그는 대적하는 자요,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를 받는 모든 것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로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보여지듯이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전 세계적인 기독교의 배교 현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지기 위해 모든 종교들이 근본적으로 같은 것으로서 같은 신을 섬긴다라는 전 세계 종교일치 운동이 지난 반세기 동안 줄기차게 진행되어져 왔다. 로마카톨릭, 새시대운동(New Age Movement), 불교, 힌두교, 그리고 많은 개신교의 지도자들에 의해 전 세계 종교회의가 이미 여러 차례 열렸다. 또한 적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다. 유럽공동체(EC)는 경제적으로 하나의 국가가 되고 있고, 곧 정치까지도 일원화되어 유럽합중국이 될 것이다. 이미 EC의 돈인 ECU(에큐)가 나와서 여행자수표에 사용되고 있다. 흥미 있는 사실은 이 ECU의 앞면에는 계시록 17장에 있는 짐승 위에 음녀가 타고 있는 그림이 인쇄되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EC가 형성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온 인류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직 아버지께서 너희 머리털까지도 다 세셨나니"(마태10:30)라고 말씀해 주셨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아시며 간섭하신다.  그렇다면 유럽공동체가 형성되고 공산주의 국가들이 와해되는 이 모든 일들이 어찌 하나님의 계획과 경륜이 없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동시에 새세계 질서를 펴기 위하여 UN의 역할이 점점 강화되어져 가고 있음도 유의해야 한다. 또 유의해야 될 사항은 적 그리스도가 성전에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며 자신에게 경배할 것을 강요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4:15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즉 대언자 다니엘을 통하여 말슴하신바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너희가 보거든" 이 사실들은 예언의 성취를 위해 글자 그대로 성전이 지어져야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성전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 했던 모리아산(지금의 예루살렘)에 지어져야만 한다. 솔로몬, 스룹바벨, 헤롯왕 당시의 성전들이 모두 같은 자리에 있었다. 기원 후 70년 로마에 의해 성전이 파괴된 후 지금까지 이스라엘에게는 성전이 없는 상태이다. 1948년 전까지 어느 누가 이스라엘이 재생하리라고 믿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66장과 에스겔 37장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며 하루 사이에 마른 뼈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국가를 만드셨다. 그러나 그들은 1968년 6일 전쟁이 일어나서 당시 요르단에 속해 있던 서안지역(West bank, 예루살렘이 속해있음)이 이스라엘의 국토가 되기까지는 성전을 지을 수 없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 모세 다얀 장군은 "첫째 우리가 할 일이 성전을 짓는 것"이라고 공포했다. 1968년 이후로 지금까지 정통파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그들의 성전을 지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오고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와 만물이 신음하는 - 오존층 붕괴, 지구의 온난화 - 세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라는 복음을 우리가 먼저 믿고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이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과 은혜가 넘치기를 기원한다.
2009-05-08 15:01:17 | 관리자
신랑이 오신다 (레날드 샤우어스 지음, 정동수 역) 드디어 운명의 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은 함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이제 몇 시간이 지나면 그분께서는 십자가에서 처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대해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들은 제자들은 근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에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의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해 다음과 같은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말해 주었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21세기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한복음 14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약속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결혼 풍습과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이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을 들어서 자신의 약속이 무엇을 뜻하는지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을 이해해야만 예수님의 약속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결혼에서 첫 단계는 보통 정혼이라 불리며 정혼은 결혼 계약을 확립하는 단계입니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결혼 계약은 신랑 될 사람이 주도해서 시작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신랑이 될 사람은 자기 아버지 집을 떠나서 신부가 될 사람의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신부의 아버지와 협상을 벌여 얼마의 지참금을 주고 신부를 살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 지금과 달리 그 당시에는 돈을 내고 신부를 사야만 했습니다. 신랑이 동의하고 지참금을 지불하면 결혼 계약이 확립되고 이제 처녀와 총각은 아내와 남편으로 간주됩니다. 또한 그 순간부터 처녀는 자기의 남편만을 위해 구분된 존재가 됩니다. 어느 누구도 이 여인을 아내로 맞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결혼 계약이 확립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신랑과 신부는 잔에 담긴 포도즙을 함께 마십니다. 이와 같이 결혼 계약이 확립되면 신랑은 신부의 집을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신부와 떨어져서 약 1년 정도를 지냅니다. 이 기간에 신부는 결혼 생활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며 신랑은 신부를 자기 아버지 집으로 데려와 같이 살기 위해 아버지 집에 붙여서 자기들이 거할 처소를 마련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절에 ‘거할 곳’으로 번역된 맨션이 바로 이런 처소입니다. 신부와 떨어져서 약 1년 정도를 보낸 뒤 드디어 신랑은 자기와 함께 살기 위해 신부를 데려와야 합니다. 대개 신부를 데려오는 일은 밤에 이루어졌습니다. 신랑과 신랑의 들러리와 또 다른 동행자들은 신랑의 집을 떠나 횃불을 들고 행진하며 신부의 집으로 갑니다. 이들은 가면서 “보라, 신랑이 임한다.”라고 외칩니다. 그러면 이 소식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거리에서 거리로 신부에게 곧 전달됩니다. 신부는 자기 남편이 온다는 것을 늘 기대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언제 정확히 올지는 모릅니다. 그래서 신랑이 도착하기 전에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 소리를 들으면 신부는 곧바로 자기 남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자기 친구들에게도 같이 가기 위해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신랑과 그의 동행자들이 신부와 신부의 친구들을 만난 이후에 이들은 다 같이 신랑의 아버지 집으로 되돌아갑니다. 거기에는 결혼식에 참석할 하객들이 이미 모여서 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도착하자마자 결혼식 준비 위원들은 신부 방이라 불리는 방으로 이들을 데려갑니다. 이 방에 들어가기까지 신부는 베일로 얼굴을 가려서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신랑의 친구들과 신부의 친구들이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신랑과 신부는 단 둘이 그 방에 들어갑니다. 거기서 그들은 처음으로 육체적으로 한 몸이 되면서 약 1 년 전에 결혼 계약으로 확립한 결혼을 완성합니다. 이렇게 결혼이 완성된 후에 신랑은 신부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결혼식 준비 위원들에게 자기들의 결혼이 완성되었음을 알립니다. 그러면 이들은 신랑과 신부가 드디어 한 몸이 되었다는 소식을 하객들에게 알리고 이 소식을 접한 하객들은 7일 동안 연회를 베풀며 기뻐합니다. 이렇게 7일 간 연회가 열리는 동안 신부는 신부 방에 머무르며 결코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7일이 다 끝나면 드디어 신랑이 신부 방에서 신부를 데리고 나와 그녀의 얼굴에서 베일을 벗겨 모든 사람이 신부를 볼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입니다.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을 설명했으므로 이제부터는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께서 이런 풍습을 이해하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전달해 주시려 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에베소서 5장에서 성경은 교회를 가리켜 예수님의 신부라 부릅니다(엡5:22-33). 유대인 신랑이 결혼을 하기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자기 아버지 집을 떠나 신부의 집까지 여행을 했던 것처럼 예수님도 주도적으로 약 2000년 전에 하늘에 있는 자기 아버지 집을 떠나 자기의 신부가 될 사람들이 있는 이 땅까지 내려왔습니다. 유대인 신랑이 신부의 집에 와서 결혼 계약을 확립함으로 신부를 얻은 것 같이 우리 예수님도 이 땅에 와서 계약 즉 언약을 확립함으로 교회를 자신의 신부로 얻고자 했습니다. 이 언약이 무엇입니까?요한복음 14장에서 “내가 아버지께로 갔다가 다시 온다.”는 약속을 하던 바로 그 밤에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유월절을 바꾸어 주의 만찬을 제정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포도즙이 담긴 잔을 집고 감사를 드리신 뒤 그들에게 주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나의 피 곧 새 상속 언약의 피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이것은 곧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자기의 신부인 교회와 새로운 결혼 언약을 세우려 하는 것을 뜻합니다. 유대인 신랑은 자기의 신부를 얻기 위해 값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께서도 신부인 교회를 얻기 위해 값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분께서 지불하신 결혼 지참금은 자신의 생명이 담긴 보배로운 피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서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殿)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이는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음이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결혼 언약이 확립되면 유대인 신부가 오직 자기의 신랑만을 위해 구별되어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될 수 없었듯이 주님의 신부인 교회 역시 새 언약을 통해 구분되어 오직 주님만을 위한 존재가 되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엡5:25-27; 고전1:2; 6:11; 히10:10; 13:12). 유대인 신랑이 결혼 계약을 맺은 뒤 계약이 확립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잔을 취해 신부와 함께 포도즙을 마신 것처럼 우리 믿는 사람들도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을 확립하셨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주의 만찬의 잔을 취해 포도즙을 마십니다. 유대인 신랑이 결혼 계약을 확립한 뒤 신부의 집을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예수님도 자신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을 확립하시고 부활하신 뒤 신부가 사는 땅을 뒤로하고 자기의 아버지가 계신 하늘로 되돌아가셨습니다(요6:62; 20:17). 유대인 신랑과 신부 사이에 결혼 계약이 확립된 이후에 서로 일정 기간 떨어져 있었던 것 같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인 교회도 지난 2000년 동안 서로 떨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지금 이 시간 이렇게 신랑과 떨어져서 땅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떨어져 있는 동안 유대인 신랑이 자기의 신부를 데려다가 자기 아버지 집에서 함께 살기 처소를 마련해야 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신부인 교회와 떨어져 있는 동안 하늘에 있는 자신의 아버지 집에서 신부와 함께 거할 처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요14:2). 이렇게 떨어져 사는 기간이 다 지난 뒤 유대인 신랑이 신부를 데려오려고 자기 집을 떠나 다시 신부에게 간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신부인 교회와 따로 거하는 기간이 다 차게 되면 교회에게로 다시 와서 자기가 마련한 하늘의 처소로 교회를 데려갈 것입니다(요14:3). 유대인 신랑이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 자기 아버지 집을 떠나서 신부의 집에 갈 때에 신랑과 동행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주님께서 교회를 데려가기 위해 하늘에 있는 자기 아버지 집을 떠나 땅에 오실 때에도 천사들이 그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살전4:16). 유대인 신부가 자기 신랑이 언제 올지 몰랐던 것처럼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 역시 그리스도께서 언제 오시는지 모릅니다. 유대인 신부에게 언제라도 신랑이 임할 수 있었듯이 우리 예수님도 언제든지 교회에게 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랑을 생각하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 신랑과 함께 오는 사람들이 “보라, 신랑이 임한다.”라고 외쳤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도 “보라, 신랑이 임한다.”라는 천사장의 음성이 있을 것입니다(살전4:16). 유대인 신부가 신랑을 만난 뒤 자기 집을 떠나 신랑의 아버지 집으로 간 것처럼 교회 역시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공중에서 만나기 위해 휴거를 받은 뒤 그분과 함께 그분의 아버지 집으로 갈 것입니다(살전4:17; 요14:2-3). 신랑과 신부와 그들의 일행이 신랑의 아버지 집에 도착했을 때 하객들이 이미 거기 모여 있었던 것 같이 그리스도와 휴거 받은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도착하면 이미 구약 시대 성도들이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거기서 그들을 기다릴 것입니다. 유대인 신랑과 신부가 신랑의 아버지 집에 도착해서 육체적으로 한 몸이 되어 이미 오래 전에 확립했던 결혼 계약을 완성한 것 같이 그리스도와 교회도 신랑의 아버지 집이 있는 하늘에 도착해서 영적으로 한 몸이 되어 이미 오래 전에 그리스도께서 확립하신 새 언약에 근거한 특별 관계를 완성할 것입니다. 유대인 신부가 신랑의 아버지 집에 도착한 뒤 7일 동안 신부 방에서 자기 자신을 숨기고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이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 역시 신랑의 아버지 집에 도착한 뒤 7년 동안 자기 자신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을 것입니다. 이 7년 동안 땅에서는 창세 이후로 없었던 극심한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기간에 교회는 하늘에 숨겨져 있습니다. 유대인 신랑이 7일이 지난 뒤 신부를 신부 방에서 데리고 나와 그녀의 얼굴에서 베일을 벗기고 모두에게 그녀를 공개한 것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7년 환난기가 지나면 자신의 신부를 하늘에서 데리고 나와 함께 땅에 강림해서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부를 공개할 것입니다(골3:4).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에는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관계가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이런 약속의 말씀을 주시면서 근심에 잠긴 제자들에게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것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첫째로 여기 모인 분들 가운데 아직 구원받지 못한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분들에게 오늘 우리가 살펴본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과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는 큰 의미를 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 이 땅에 와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이런 죽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사서 자신의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려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그분과 특별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매번 복음이 선포될 때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에게 결혼을 하자고 프로포즈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자신과 함께 이 특별한 관계에 들어가기를 원하시며 그래서 복음을 통해 그것을 프로포즈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혼식에서 신랑이 신부에게 결혼 서약을 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님은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이 결혼 서약을 하고 싶어합니다. 나 예수는 죄인인 당신을 내 신부로 맞이하고 하나님 아버지 앞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사랑 많고 신뢰할 수 있는 구원자와 신랑이 될 것을 서약합니다.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부유할 때나 궁핍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든지 영원토록 당신의 신랑이 될 것을 서약합니다. 유대인 신부가 신랑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일 수도 있었고 거절할 수도 있었듯이 여러분도 예수님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이 땅에 살면서 그분의 프로포즈를 거부한다면 영원토록 그분과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여러분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영원히 분리되어 유황불이 타는 지옥 불못에 들어갈 것입니다(계20:11-15).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면 여러분의 모든 죄가 용서되고 여러분은 그분과 함께 특별한 관계에 들어가 그분의 신부인 교회의 일원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다시 오셔서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하늘로 데려가실 때에 그분과 함께 하늘 아버지 집에 가서 영원토록 복을 누리며 살 것입니다. 예수님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께서 이 땅에 와서 여러분의 죄로 인해 피를 흘려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으면서 다음과 같이 서약하면 됩니다. 나 죄인은 당신 예수를 내 구원자로 맞이하고 하나님 아버지 앞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사랑 많고 신뢰할 수 있는 신부가 될 것을 서약합니다.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부유할 때나 궁핍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든지 영원토록 당신의 신부가 될 것을 서약합니다. 둘째로,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도 오늘의 교훈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결혼 계약이 확립된 이후에 신랑이 자기의 신부를 데려가기 위해 다시 올 때까지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 유대인 신부는 자기 자신을 다른 남자에게 내어 주고 간음을 범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신자들도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신부인 교회를 데려가기 위해 다시 오시기 전에 이 땅에 살면서 그분을 대적하고 간음을 범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3절에서 이러한 염려를 분명히 표출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질투로 너희에 대하여 질투하노니 이것은 내가 너희를 한 남편에게 정혼시켜 순결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고자 함이라. 그러나 뱀이 그의 간교함으로 이브를 속인 것같이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변질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 야고보 역시 야고보서 4장 4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꾸짖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 야고보는 영적 간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점점 세상에 동화되고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 일보다 그분을 슬프게 하는 일에 관심을 두게 되면 곧 영적으로 간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지금 이 시간 여러분의 신랑 되신 예수님께 얼마나 내 자신이 신실한가 판단해 보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처음 구원받고 그분을 신랑으로 맞이했던 때처럼 지금 이 시간에도 그분을 사랑합니까? 여러분에게 삶의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신 그분이 정말로 여러분 삶의 중심입니까? 여러분의 태도와 행동과 인생을 대하는 자세가 그분께 대한 충성과 헌신에서 비롯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은 이 세상을 사랑하고 그 안의 것들을 추구하며 영적 간음을 범하고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신랑 예수 그리스도께 신실하지 못했다면 즉시 그 죄를 고백하기 바랍니다. 비록 저와 여러분이 신실하지 못해도 그분은 항상 신실하십니다. 디모데후서 2장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믿지 아니하여도 그분은 항상 신실하시니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느니라. 부디 이 말씀을 믿으시고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실 것을 확신하기 바랍니다. 이렇게 될 때에 비로소 여러분은 언제라도 나타나실 신랑 예수님을 고대하며 신실하게 이 땅에 살며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생을 통해 우리를 데려가기 위해 하늘에서 다시 오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쳐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2009-05-08 15:00:17 | 관리자
마지막 때가 되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How We Know the End is Near?   재림의 전조들 우주가 저절로 형성되어 우연의 과정을 통해 현재처럼 복잡하게 되었다는 진화론적 세계관은 우주가 과거의 엄청난 세월 동안 존재해 왔으며 다가올 시대에서도 본래의 진화론적 궤도를 따라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혹시 지구에서 앞으로 이런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멀리 떨어진 별들에서라도 계속해서 진화가 이루어지리라고 굳게 믿고 있다. 사실 마귀가 세운 이 같은 인본주의 체계는 인류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성경적 세계관과 맞서 왔다. 이러한 끊임없는 과정들이 삶, 죽음, 그리고 윤회라는 반복되는 주기 안에서 일어난다고 많은 이들이 주장해 왔다. 이 부류 중 어떤 이들은 또한 복잡한 생명체의 점진적 발달이 태초의 어떤 혼돈으로부터, 아마도 어떤 형태도 없는 물 덩어리 또는 에너지를 띤 분자들의 원형질로부터, 심지어는 어떤 우주론적 사고 체계로부터 이루어졌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진화론은 지난 수 세기에 걸쳐 여러 형태를 취하였지만 그 형태에 상관없이 진화론 추종자들은 항상 지금까지 엄청나게 긴 세월이 흘렀다고 주장해 왔으며 또한 인격적이며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하나님께서 온 세상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해 왔다.   한편 성경은 우주가 진화론적 발전에 필요한 긴 세월을 거쳐 생성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하신 말씀으로 인한 6일간의 짧은 창조 행위의 연속 과정을 통해 신속하게 초자연적으로 생성되었음을 우리에게 명백히 가르쳐 준다. 주의 말씀으로 하늘들이 만들어지고 하늘들의 모든 군대가 그분의 입의 호흡으로 만들어졌도다(시33:6).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그런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히11:3).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피조 세계를 만들기 위해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긴 세월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으며 따라서 장차 올 완전한 세상 속에서 거룩하게 정하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친히 구속하실 세상을 예비하시는 데도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인간의 투쟁, 고통 그리고 죽음으로 점철된 과거 속에 즉 여러 국가들이 창건되고 멸망해 온 지나간 수천 년의 세월 속에 날과 해와 세기가 역사 속으로 흘러가 잊혀지고 말았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처럼 느껴질지 모르나 “주의 눈앞에서는 천 년이 단지 지나간 어제와 같으며 밤의 한 경점(更點)과 같을 뿐이다”(시90:4).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시간 개념이며 구원받은 우리도 다가오는 영원 속에서 이러한 시간 개념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가 시작되던 때부터 인류 역사의 끝이 있을 것임을 분명히 약속해 주셨다. 비록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마귀의 사주를 받은 인류의 반항에 의해 방해를 받았고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실패한 것 같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救贖) 계획을 통해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 이 계획으로 인해 하나님은 사람이 되셔야만 했고(성육신) 이로써 우리의 창조주는 또한 우리의 구원자가 되셔야만 했다. 그 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들로 인해 죽고 묻혔다가 부활하셔서 죽음 권세를 물리치셔야만 했다. 사실 그분께서는 천국에 잠시 동안 계신 후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 이 땅에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런 약속을 이루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다시 오실 것이며 그 후에 새로 창조될 땅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의 영원한 집이 될 것이다. 그 구원받은 인류가 새롭게 만들어진 땅에서 자기들의 위대하신 창조주/구원자를 영원토록 기쁨으로 섬기도록 하기 위해 우리 주님께서는 지금 인류가 사는 이 땅에서 그들을 예비하고 계신다(‘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 그림 참조).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인 성경 안에 재림의 약속들을 기록하셨고 이 약속들과 더불어 이 땅에 있는 우리의 일시적 거주지에서의 삶에 필요한 지침도 다 기록하셨다. 또한 그분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初臨)과 재림(再臨) 사이의 짧은 기간에 살고 있는 우리 신약 성도들이 말세가 가까이 옴을 잘 알 수 있도록 많은 지침들/표적들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모든 표적들이 매일 매일 또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며 그래서 세계 여러 곳에 살고 있는 신자들은 자신들의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을 흥분 속에 기다리고 있다. 물론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처음 오신 이래로 지난 2,000년 동안 각 세대마다 많은 믿는 자들이 그분의 재림을 기다려 왔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부주의한 성경 연구자들의 그릇된 해석으로 인해 재림의 날짜를 정하는 사례들도 있었으며 결국 그렇게 정해진 날들은 그분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모두 허탕으로 끝나버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하지 않은 시각에 사람의 아들이 오느니라…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이 오는 그 날도 그 시각도 알지 못하느니라”(마24:44; 25:13)라고 이미 명백하게 경고를 주셨으므로 우리는 이러한 실패 사례들에 대해 결코 놀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다가오는 마지막 날에 대한 많은 표적들을 제시해 주며 사실 이러한 지침들은 우리의 이해와 인내를 위해 꼭 있어야만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그것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런즉 이와 같이 너희가 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에 그때가 가까이 곧 문들 앞에 이른 줄을 아느니라(막13:29).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한 의심스러운 해석이나 ‘감정을 부추기는 일’(sensationalism)이나 ‘날짜 정하기’(date-setting) 등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조심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적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많고 명백하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큰 기쁨과 기대를 갖기만 하고 이러한 표적들을 무시하며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지난 수년간 재림의 표적들은 분명히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나는 나의 할머니께서 어떤 전도자가 다가와서 주의 재림의 날에 예상되는 표적들을 독재자 무솔리니의 출현과 연관시키면서 주님께서 1933년에 오실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1945년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나는 주님의 재림 날짜를 정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 아닌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그분의 재림의 때가 아주 가까이 이르렀다는 확신에 차서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기로 거의 결심했었다. 나는 그 후 지금까지 거의 50년 동안 내 사무실 벽에 “어쩌면 오늘”(Perhaps Today)이라고 적힌 액자를 걸어 놓고 날마다 이것을 바라보곤 했으며 50년 전에도 그렇게 명백하게 보였던 재림의 표적들이 지난 반 세기동안 더욱더 확실하게 증가하고 있음에 주목해 왔다. 분명히 우리 주님은 곧 오신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는 그분의 포도원에서 충성스럽게 일하면서 “내가 올 때까지 관리하라”(눅19:13)고 명령하신 대로 묵묵히 순종하며 우리의 할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이제 그분 안에 거하라. 이것은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지게 하려 함이요, 또 그분께서 오실 때에 우리가 그분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요일2:28)는 말씀 또한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우리는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단 한 번 헌물로 드려지셨으며 또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사 구원에 이르게 하실’(히9:28) 그분을 매일 바라보고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의의 관이 약속되어 있음’(딤후4:8)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번 장(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다시 오시리라는 표적으로서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말씀 안에 은혜로이 제공해 주신 많은 표적들의 중요성을 연구하고 요약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이미 이러한 것들에 대해 친숙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독자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 친숙한 독자나 그렇지 못한 독자나 - ‘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나타나심’(딛2:13)을 계속해서 사모하는 것은 참으로 즐겁고 상쾌한 일이다. 다음은 우리에게 소망을 가져다주는 몇 가지 이유들이다. 세계에 편재해 있는 진화론적 인본주의 비록 성경 예언에 관한 서적들을 쓴 다른 저자들이 대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가장 주요한 표적은 아마도 진화론적 인본주의 철학이 전 세계를 지배하는 추세일 것이다. 이러한 진화론적 세계관의 한 형태 또는 다른 형태는 불교나 힌두교 등의 범신론적(pantheistic) 세계 종교들뿐만 아니라 고대 이교도들의 모든 종교들에게 특징을 부여해 왔으므로 이것은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단지 한 가지 새로운 것은 전에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의 일신론적(monotheistic) 세계관을 가졌던 민족들도 이러한 진화론적 세계관에 의해 정복을 당했다는 점이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후서의 마지막 장에서 말세에는 이러한 상황이 심지어 기독교 국가라고 고백하는 나라들에서도 일어나리라는 것을 예견했다. 먼저 이것을 알라. 곧 마지막 날들에 비웃는 자들이 와서 자기들의 정욕을 따라 걸으며 이르되, 그분께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모든 것이 창조의 시작 이후에 있던 것같이 그대로 계속되느니라, 하리니(벧후3:3-4). 여기서 마지막 날들에 등장할 비웃는 자들이란 자기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는’ 자기 중심적인 인본주의자들임이 확실하다. 그들은 명목상의 기독교인이거나 최소한 기독교회의 ‘하나님 아버지’와 ‘재림에 대한 그분의 약속’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것들을 가르치는 기독교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가르침을 자의로 거부해 왔고 지금 이 시간에는 드러내놓고 그러한 것들을 비웃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는 이유는 진화론을 신봉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것이 창조의 시작 이후에 있던 것같이 그대로 계속되기 때문에 피조 세계는 과거를 통해 늘 그랬던 것처럼 현재에도 계속되는 자연적 과정을 통해 유지되고 발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창조란 하나님께서 창조의 6일 후에 말씀하셨던 것처럼(창2:1-3) 이미 ‘끝난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므로 “재림의 약속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면서 믿는 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비웃고 있다. “처음에 초자연적인 창조가 없었으므로 말세에도 초자연적인 멸망이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때에 기독교 문화권 안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는 말로 거부하면서 자기들의 행동을 어떻게 합리화시키려 할 것인지 말해 주는 것이다. “어떤 신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으며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구호는 저 악명 높은 ‘제2차 인본주의 선언’(1973)에서 인본주의자들이 채택한 발언으로 이것은 실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의 발언이었다. 사도 베드로의 예언은 19세기 중반에 다윈(C. Darwin)의 진화론적 세계관이 대두되면서 문자 그대로 성취되기 시작했고 현재 이러한 인본주의 세계관은 학교, 대학, 뉴스 미디어, 정치 체제, 오락 산업, 비즈니스 세계, 각종 직업, 법정 그리고 심지어는 소위 기독교 세계에 있는 모든 나라의 주요 교회들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본인의 저서 「하나님께 대한 긴 전쟁」(The Long War against God - Baker Book House, 1989)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이미 알려진 사실로서 간략히 언급만 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정통파 유대인들 중 소수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의 모든 유대인 공동체들과 이스라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정통파 모슬렘의 소수를 제외한 전 모슬렘 세계의 대부분도 이런 범신론적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있고 심지어 이런 사람들은 창조주와 그분의 구속(救贖) 약속의 관계에 대해서도 크게 왜곡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사도 베드로가 2,000년 전에 기록한 예언의 말씀이 오늘날 명백히 성취되고 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편 최근 몇 십 년 간 여러 나라에서 진화론에 대항하는 창조주의가 되살아나고 있으나 이것은 전 세계를 삼켜 버린 - 특히 그 지도자들 사이에 밀물처럼 퍼져나가는 - 진화론적 인본주의와 비교해 볼 때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과학적/역사적 증거들이 모두 창조론을 뒷받침하고 진화론을 부인함에도 불구하고 - 예를 들어 「과학적 창조론」과 「창조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미국창조과학회의 책들을 참고하기 바람 -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증거들을 무시하거나 왜곡해 버린다. 사도 베드로가 예언했던 것처럼 그들은 두 개의 초자연적이며 세계적인 역사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물이 6일만에 특별히 창조된 것과 노아의 대홍수에 의해 전 세계가 급작스럽게 멸망한 것(벧후3:5-6)에 대한 성경의 증거와 자연계의 압도적인 증거들을 제멋대로 무시해 버린다. 모든 체계의 복잡한 구조 안에 있는 증거들과 이런 증거들을 지배하는 물리적 법칙들이 하나님의 특별 창조에 대해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다. 또한 커다란 지질학적 구조물과 그 안의 화석 묘지들도 노아의 대홍수를 명백히 증거하고 있다. 모든 곳에서 우리는 “만물이 창조의 시작 이후에 있던 것같이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는 진화론적 신념에 전적으로 배치되는 많은 증거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마지막 날에 나타나는 비웃는 자들은 이미 예언된 것처럼 자기 멋대로 이 모든 증거들을 무시하고 있다. 분명히 이것은 우리가 마지막 때에 살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이 땅에 다시 오심을 보여 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만연되어 있는 도덕의 붕괴 하나님께서 창조에 대해 명백히 이야기하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을 거부할진대 그들이 그분의 명령들을 무시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만약 거룩한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혹은 영지주의자들처럼 그분께서 자신의 피조물로부터 시공간 상으로 너무나 멀리 떨어져 계셔서 인류의 역사에 간섭하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분의 거룩한 표준들에 의거하여 우리의 행동을 제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진화론적 인본주의에 사로잡힌 세계관은 현재 전 세계에 만연되어 있는 도덕 붕괴의 근본적 원인이 되어 왔다. 이것 또한 말세의 표적으로서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또한 이것을 알지니 마지막 날들에 위험한 때가 이르리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탐욕을 부리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신성모독하며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본성의 애정이 없으며 협정을 어기며 거짓 고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자들을 멸시하며 배신하며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너는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이러한 부류 중에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가 미련한 여자들을 포로로 사로잡는 자들이 있나니 이런 여자들은 죄들로 눌려 있고 여러 가지 욕심에 이끌려 항상 배우나 결코 진리를 아는 데 이르지 못하느니라(딤후3:1-7). 말세의 자기중심적인 인본주의 철학을 묘사한 사도 베드로의 마지막 경고와 같이 사도 바울의 이 생생한 마지막 경고는 말세의 자기 중심적인 인본주의자들의 행동을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실 자기중심적 행동은 자기중심적 철학이 낳는 당연한 결과이다. 사도 베드로의 예언은 특별히 기독교 국가들 안에 있을 인본주의 철학의 대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반해 사도 바울의 예언은 이 같은 기독교 국가들의 인본주의적 행동의 기승 즉 도덕의 붕괴를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사실 여기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없는 자들 -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믿음을 시인하기는 하나 실제로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인본주의자들 - 의 특성 즉 자기 사랑, 교만, 신성 모독 등은 이미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설명한 바 있는 고대 이교도들의 특성과 놀랄 만큼 비슷하다(롬1:29-31). 이것이야말로 말세의 표적들 가운데 하나로서 기독교 국가들이 이교도들의 인본주의적 신념 뿐 만 아니라 그들의 생활양식까지도 받아들여 이교도 문화에 굴복 당할 것임을 명백히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런 도덕 붕괴는 정말로 오늘날 소위 기독교 국가로 불리는 나라들 안에서 개탄할 정도로 급속도로 일어나고 일이며 이런 상황은 해가 갈수록 더욱 악화되고 있다. 누구나 이러한 도덕 붕괴 특성들에 대한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위에 열거된 말세의 특징들에 대해 한 두 마디 정도만 설명하고 넘어가겠다.  1. 자기를 사랑하며 - 이것은 오늘날 심지어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 있는 현상 즉 ‘자기의 이미지를 높이는 것’과 ‘자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2. 탐욕을 부리며 - 이것은 새롭게 등장한 젊은층 즉 여피(yuppie) 세대와 그들의 물질욕을 말하는 것인데 현대에는 심지어 많은 복음주의 교회에서도 ‘번영과 성공의 복음’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3. 자랑하며 교만하며 - 교만은 아주 오래 전부터 사탄이 지어 온 죄인데 오늘날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서 이런 큰 교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4. 신성모독하며 - 이것은 자유주의 기독교인들에게 너무도 평범한 일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신성의 ‘비신격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무분별하게 문학, 영화, 음악, TV 등에서 계속해서 헛되이 일컬어지고 있다. 5.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 마약과 떠들썩한 음악과 부도덕이 유행하는 오늘날의 뉴에이지 사회에서 심지어는 기독교 가정에서조차도 순종하는 십대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다. 6. 감사하지 아니하며 - 유복한 미국 기독교인들과 다른 부유한 나라의 기독교인들조차도 자기들이 누리는 복에 대해 하나님께 거의 감사하지 아니하며 이런 복과 은혜를 맡은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7. 거룩하지 아니하며 - 거룩한 생활양식보다는 하나님 없이 세상적으로 사는 것이 기독교 국가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8. 타고난 애정이 없으며 -  어린이 학대와 보편적인 가족 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낙태와 동성연애가 급증하고 있다. 9. 협정을 어기며 - 국가 간의 조약, 사람들 간의 계약, 일반적인 약속들이 아무 때나 깨지고 있으며 고소/고발 사례는 이제 천문학적 수치에 달하고 있다. 그리스어로 이 구절은 ‘화해하지 않으며’로 볼 수도 있다. 10. 거짓 고소하며 - 오늘날 어느 곳에서나 매일같이 읽고 들을 수 있는 악담 뿐 아니라 중상모략, 명예 훼손, 모욕, 허위 선전 등이 여기 속한다. 11. 절제하지 못하며 - 이 구절은 오늘날 유럽과 미국의 이혼율이 이교도 국가들의 이혼율보다 훨씬 더 높고 부도덕한 행위, 상대를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행하는 성행위, 부부 사이의 부정과 심지어는 동성연애 등의 통계 수치가 급등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 구절은 또한 전 세계에 만연해 있는 마약과 알코올 중독도 지적하고 있다. 12. 사나우며 - 그리스어에서 이 말은 물리적인 난폭함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현대에 널리 파급된 죄와 폭력의 급증을 가리키며 특별히 태어나지도 않은 수 백만 명의 아이들을 낙태시키는 것도 포함한다. 13. 선한 자들을(것을) 멸시하며 - 한 때는 악으로 간주되었던 것들이 - 예를 들어 동성연애, 도색문학, 포르노 영화 등 - 지금은 시민의 권리로 간주되고 있으며 반면에 전에는 좋은 도덕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 예를 들어 학교에서 성경을 낭독하고 기도하는 것 - 지금은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14. 배신하며 - 이 단어는 흔히 볼 수 있는 정치적 배신행위에 적용될 뿐 아니라 오늘날 수도 없이 많이 자행되는 인간관계 및 종교적 믿음의 배신에도 적용된다. 15. 고집이 세며 -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나 권리에 대한 부주의와 성급함을 내포하며 결과에 관계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때마다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16. 높은 마음을 품으며 - 이것은 다른 곳에서 ‘우쭐대며’로 번역되기도 했으며 개인적인 자만과 지식인들 사이에 서 찾아볼 수 있는 우월감을 말해 주고 있다. 17.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을 더 사랑하며 - 유럽, 호주,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통계는 말할 것도 없고 소위 기독교 국가라 하는 미국에서만 보더라도 일요일에 쾌락을 위한 소풍이나 여행을 가는 사람들에 비해 교회에 가는 사람들의 수는 훨씬 적다. 18.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며 - 비록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 국가’라고 불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국가들의 경우에도 학교나 통신매체에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주요 교회에서조차 하나님의 창조와 기독교의 초자연적인 면을 부인해 왔다. 19. 항상 배우나 결코 진리를 아는 데 이르지 못하며 - 이것은 본질상 절대적이고도 궁극적인 진리의 존재를 단호히 거부하면서도 ‘진리를 위한 탐색’은 쉬지 않고 계속하는 현대 교육에 대한 정의이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든 시대, 모든 장소에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위의 모든 특성들이 짝을 이루며 잘 들어맞았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이제 이러한 특성들이 이교도 국가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기독교 국가들을 특징짓는 잣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고대의 이교도 국가들의 인본주의 문화는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롬1:25) 진화론적 철학에 기초를 두었는데 오늘날에는 심지어 기독교 국가에서도 이런 문화가 득세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인류가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해 왔기 때문에 생긴 ‘위험한 시기’ 즉 마지막 날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보여 주는 강력한 표적이 된다. 사회적 다윈주의, 노예화와 전쟁 위에서 언급한 도덕의 붕괴 외에도 임박한 멸망에 대한 사회 정치적 및 경제 산업적인 표적들도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마지막 서신들을 살펴보았으며 이제 사도 야고보의 서신을 살펴보려 한다. 자 이제, 너희 부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너희의 비참한 일들로 인하여 슬피 울며 울부짖으라. 너희의 재물은 썩었고 너희의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의 금과 은은 부식되었으니 그것들의 녹이 너희를 대적하는 증인이 되고 불과 같이 너희의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마지막 날들을 위해 재물을 함께 모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서 곡식을 거둔 품꾼들의 품삯 곧 너희가 사기 쳐서 숨겨 둔 품삯이 소리를 지르며 곡식을 거둔 자들의 울부짖음이 만군의 주의 귀에 들어갔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쾌락 가운데 살며 방탕함에 빠져 살육하는 날에서와 같이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너희가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오실 때까지 인내하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받을 때까지 오랫동안 그것을 위해 인내하느니라. 너희도 인내하고 마음을 굳건히 하라. 주의 오심이 가까우니라(약5:1-8). 위의 예언은 마지막 때의 사회적 불안 상태에 대한 것이다. 부한 자와 가난한 자, 자본가와 노동자, 주인과 노예 간의 끊임없는 갈등이 마지막 날 즉 마침내 고생으로 인하여 울고 통곡할 ‘살육하는 날’이 되면 더욱 격렬해질 것이다. 실제로 이 예언적 표적은 ‘산업혁명’에서부터 성취되기 시작했다. 비록 산업혁명이 대단한 기술적 진보를 가져왔으나 동시에 부자 소유주의 공장에서 무자비하게 착취당하는 노동자층의 큰 불행도 가져왔다. 이에 대해서는 아마도 미국의 노예농장보다 그 폐해가 더한 곳도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미국의 남북 전쟁뿐만 아니라 피의 프랑스 혁명 그리고 그 후의 러시아 그리고 중국과 다른 나라들에서의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키는 촉발제가 되었다. 이런 ‘살육하는 날’이 노동자층의 운명을 어느 정도 완화시키긴 했지만 많은 나라에서 무자비한 집권자들과 귀족층들에게 이전보다 더 많은 부와 권력을 가져다주었다. 비록 이런 혁명들이 부르주아 계급(부유층)에 대항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저소득층) 혁명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실제로 많은 경우에 유럽과 미국의 국제적 은행가들과 상인들이 이런 혁명들을 부추기고 자금을 조달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전쟁을 통해 백만장자가 된 사람들은 살육하는 날에 자기들의 마음을 살찌웠다. 전쟁과 노예제도, 노동자 착취, 자본주의에 기초한 제국주의와 이와 비슷한 예들은 진화론  특히 산업혁명 이래로 자연 선택, 생존을 위한 투쟁과 적자생존 같은 진부한 표현들에 의해 촉진된 진화론의 한 형태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또 다시 이를 정당화시켜 왔다는 것은 참으로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 체제는 사회적 다윈주의로 알려지게 되었고 그것은 특별히 영국의 경우 스펜서, 맬더스, 다윈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발전되었고 독일의 경우 니체, 헤겔, 비스마르크, ‘독일 황제 빌’과 결국 히틀러에 의해서 발전되었으며 프랑스와 미국에서는 록펠러, 카네기, 그리고 또 다른 ‘약탈자 귀족들’을 통해 강성해졌다. 이들은 다 열렬한 진화론자들이었는데 비록 이들이 자기들의 방법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사회의 유익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얻은 결과는 대중들이 크게 착취당하는 고난을 가져왔다. 불간섭 자본주의, 공산주의, 히틀러의 나치주의, 인종차별, 제국주의와 세계대전의 진화론적 배경은 전에 언급한 책인 「하나님께 대한 긴 전쟁」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위의 성경 말씀에서 사도 야고보는 사람들에게 그들을 구원할 어떤 혁명이나 법령을 찾지 말고 이러한 표적들이 예고하는 ‘주의 재림’을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가난한 대중들의 운명은 더욱 더 비참해지고 있으며 - 최근에 공산당의 착취로부터 도망 온 사람들과 집 없는 사람들과 미국의 빈민가 인구의 증가를 포함해서 이디오피아, 인도, 수단과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 굶어 죽는 인구를 생각해 보라 - 사실 마지막 날의 이 표적은 날이 가면 갈수록 전보다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사도 야고보는 우리가 가져야 할 진정한 희망이 바로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것’이라고 했다. 배교, 이성주의와 신비주의 우리는 사도 베드로, 바울, 야고보가 기록한 예언의 말씀 즉 마지막 때의 중요한 예언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예언들은 한결같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말세의 종교적 배교가 어떤 것인지 보여 주며 공통적으로는 말세에 전 세계에 널리 만연될 인본주의 철학, 도덕, 그리고 경제적 타락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한편 신약 성경의 다른 서신서들을 기록한 두 저자들은 직접적으로 종교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며 ‘마지막 날’에 대해 언급하였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어린 자녀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니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 함을 너희가 들은 것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있으니 이로써 우리가 지금이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요일2:18). 한편 사도 유다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전에 한 말들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마지막 때에는 자기들의 경건치 아니한 정욕대로 걷는 조롱하는 자들이 있을 것을 알려 주었나니니 이들은 자기를 분리시키는 자들이며 육체적 감각대로 살고 성령이 없는 자들이니라(유17-19). 사도 요한은 마지막 때에 한 명의 마지막 ‘적그리스도’뿐만 아니라 수많은 적그리스도가 있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으며 사도 유다는 거듭나지 못한 채 조롱만을 일삼는 이단 종파주의자들이 있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두 경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말세에 이러한 자들이 신앙인으로 자처하면서 교회에 참석하여 가능하면 교회 사역을 파괴하고 훼방하며 사탄이 원하는 일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사도 요한의 서신에서 ‘마지막 때’(the last time)로 번역된 구절은 ‘마지막 시간’(a last hour)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교회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많은 지역 교회가 대개 거듭나지 못한 지도자들의 활동과 가르침으로 인해 큰 위기를 맞았음을 알 수 있으며 그럴 때마다 그것은 그 교회와 교회 사역에 대한 마지막 시간 즉 위험한 순간이라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마지막 날에도 마찬가지이며 이때에는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날 것이다. 적그리스도란 자신을 가리켜 그리스도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 그들은 ‘거짓 그리스도’(a false christ)임 -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의 본질을 밝히는 것을 반대하는 자들을 말한다. 이러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 처녀 탄생과 부활을 강조하는 그분의 말씀들을 삭제해 버리거나 설명에서 제외해 버림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성화시키려는 자유주의자들로 볼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인간 예수와 신 그리스도를 구별함으로써 - 대개는 ‘우주의 그리스도의 영’으로부터 받았다는 새로운 ‘계시’나 그와 비슷한 같은 것들을 기록된 성경 말씀에 첨부시킴으로써 -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려 하는 광신자들이나 신비주의자들일 것이다. 전자는 사람들을 이성주의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무신론에 이르도록 하며, 후자는 신비종교와 이단 무속 신앙 및 다신론에 이르도록 한다. 이 두 종류의 거짓 교사들은 자기들의 배교, 종파 분립 개념들을 진화론의 어떤 형태 - 어떤 경우에는 진화론적 자연주의에 또 다른 경우에는 진화론적 다신론 - 에 두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 둘은 모두 성경의 하나님 곧 진정한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다. 오늘날 교회들은 이런 적그리스도들로 가득 차 있으며 이러한 양상은 전보다 더욱 심하고 사실 이들은 사도 유다의 서신에서 ‘당을 짓는 것으로 표현된 것같이’ 실제적인 추진력을 가지고 있으며 셀 수 없이 많은 분쟁을 일으켜 왔다. 사도 요한은 자신의 마지막 서신 맺음말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계22:18-19). 현대에는 새로운 계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요구하는 새로운 이단 종파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실제적으로 모든 전통적인 기독교 교단/종파들은 -  사실 이것들은 그리스도나 성경의 진리에 관한 차이로부터 생긴 것이라기보다 성경 해석의 차이로부터 생긴 것이다 - 그리스도의 진정한 신성과 인성을 그리고 성경의 오류 없는 권위를 파괴시키려는 자유주의자들 때문에 큰 소동과 분열의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런 일들을 마지막 때의 표적으로 본다면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지금처럼 이렇게 많은 표적들이 나타난 적이 없으므로 이런 사실은 확실히 이런 예언의 말씀들이 이 시대에 성취되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우리에게는 마지막 날의 배교에 대해 경고하는 다른 성경 구절이 많이 있으며 그 중 몇 가지는 추후에 논의될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거론된 성경 말씀만으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오시리라는 점을 알리기에 족할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시대 구약 성경은 많은 예언서를 포함하고 있으나 신약 성경의 계시록을 제외하고 다니엘서만큼 말세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책은 없다. 다니엘에게 이 모든 계시를 전해 준 권능의 천사는 이 책의 예언적 요소들의 대부분을 보여 준 후에 다니엘서의 마지막 장에서 그에게 이 모든 계시가 성취될 때를 깨달을 수 있는 중요한 표적을 줌으로써 책을 마무리 짓고 있다. 그러나, 오 다니엘아, 너는 끝이 임하는 때까지 그 말씀들을 닫아 두고 그 책을 봉인하라.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달음질하고 지식이 증가하리라(단12:4). 어떤 주석가들은 이 말의 의미가 ‘마지막 때에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성경 여기저기를 부지런히 연구해서 마침내 다니엘의 난해한 예언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리저리 달음질하고’(running to and fro)라는 표현을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 그리고 ‘지식이 증가하리라’는 것이 ‘이러한 예언서의 해석이 증가할 것이다’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 역시 합당하다 볼 수 없다. 이것은 결코 이  예언서의 주요 의미일 리가 없다. 대신에 우리는 마지막 때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그리고 다시 그곳으로 달음질(running) - 단순히 여행(traveling)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경주함을 뜻함 - 하리라고 평이한 해석을 할 수 있다. 어쨌든 우리 시대에 여행의 속도가 증가하리라는 것은 초자연적인 영감에 의해서가 아니면 예언될 수 없는 심오한 진리이다. 다니엘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뉴턴의 시대에도 사람이 가장 빨리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은 재빠른 말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다니엘서를 부지런히 공부하고 그를 신봉했을 뿐만 아니라 아마도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여겨질 뉴턴은 이 구절에 기초해서 사람들이 언젠가는 한 시간에 80킬로미터를 달리며 심지어는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빠르게 여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1세기 후에 프랑스의 적그리스도 신봉자인 볼테르는 뉴턴의 기독교 정신이 그의 이성에 영향을 미쳐 그가 헛소리를 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의 말을 비웃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듯이 뉴턴이 소개한 과학의 시대 안에서 우리는 지난 한 세기 동안에 증기기관, 자동차, 비행기, 그리고 지금은 놀라운 속도로 우주를 떠다니는 우주선의 발명을 보아 왔다. 다니엘의 이 예언은 지금의 ‘마지막 때’에 더욱 더 명백히 성취되고 있다. 그의 예언의 나머지 반 즉 ‘지식이 증가하리라’는 ‘과학이 증가하리라’로 번역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두 단어 즉 ‘지식’과 ‘과학’은 그 의미와 어원에 있어서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라디오, TV, 거의 모든 것을 작동시키는 전기 장치, 고속도로, 핵무기, 컴퓨터, 자동화 장치, 전파 탐지기, 플라스틱, 마이크로칩, 로봇 등 지난 30년 동안에 이루어진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불과 2세기 전만 해도 세계의 모든 과학자를 한 강당에 소집할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수 백 종류의 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수백만의 과학자들이 있다. 지금의 과학시대의 기초를 연 사람들 즉 뉴턴, 케플러, 보일, 파스퇴르, 페러데이, 주울, 갈릴레오, 오일러, 맥스웰 등이 모두 기독교인으로 창조론을 믿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반면에 천문학, 생물학, 인류학 혹은 다른 분야에서 진화론자들이 이루어 놓은 연구는 인간의 수명, 생산과 생활수준을 진보하게 한 과학적 발견이나 기술적 발명에 전혀 기여한 바가 없다. 거짓 과학을 신봉하려는 과학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마지막 때의 한 표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것은 참으로 주목할 만한 일이다. 다시 한 번 우리는 마지막 때에 대하여 기록한 예언서 기자들의 예언적 통찰력에 대해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성경 기자들의 예언들을 다시 한 번 요약해 보자. (1) 다니엘은 마지막 때에 이르러 교통/통신의 급속한 발전과 과학의 대진보가 있을 것임을 말했다. (2) 베드로는 마지막 때에 진화론적 인본주의인 자연주의 철학이 세계를 지배할 것을 강조했다. (3) 바울은 마지막 때에 온 세상이 인본주의 철학으로 팽배하고 이런 인본주의의 산물로서 극심한 영적, 도덕적 타락이 있을 것임을 예언했다. (4) 야고보는 마지막 날에 큰 전쟁과 혁명을 초래할 산업 경제적 갈등을 예언했다. (5) 요한과 야고보는 모두 마지막 날에 진정한 기독교를 흐리게 할 무신론, 다신론과 더불어 기독교 내에서의 배교를 강조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의 끝 부분에 기록된 예언 즉 ‘올리브 산 설교’(Olivet discourse)로 잘 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을 살펴보자. 그분께서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행하신 개인적인 가르침을 제외하면 이 ‘올리브 산 설교’는 그분의 마지막 공식 메시지였는데 여기서 그분께서는 자신의 재림에 대한 많은 표적들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계시해 주신 큰 표적 예수님께서 못 박히시기 바로 직전에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떠나서 가실 때에 그분의 제자들이 성전의 건물들을 보여 드리려고 그분께 나아오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아니하느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서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 하시니라. 그분께서 올리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은밀히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에게 말씀해 주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들이 있으리이까? 또 주께서 오시는 때의 표적과 세상 끝의 표적이 무엇이리이까? 하니(마24:1-3)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앞으로 있을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에 대해 말씀하셨으며 여러 차례 자신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들은 그분께서 자기들의 약속된 메시아로서 곧 로마의 통치자들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에 그분 자신의 왕국을 건설할 것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느 때에 이런 일들이 있으리이까? 또 주께서 오시는 때의 표적과 세상 끝의 표적이 무엇이리이까?”라고 질문을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21장에 기록되어 있다. 많은 부분들이 중복되고 있기는 하나 각 복음서 기자는 다른 두 복음서에는 없는 부분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완전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세 답변을 동시에 연구해야만 한다. (1) 예루살렘 성전이 언제 파괴될 것인가? (2)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표적은 무엇인가? (3) 세상의 끝이 언제 이를 것인가? 첫째로 우리 주님께서는 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건들이 사실은 표적이 아니며 인류 역사를 통해 늘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속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따라가지 말라. 또 너희가 전쟁과 난리에 대하여 들을 때에 무서워하지 말라. 이런 일들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야 하되 곧 끝이 오지는 아니하느니라(눅21:8-9). 정말로 주님의 승천 이후로 수 세기 동안 많은 동요와 전쟁의 소문과 전쟁과 많은 거짓 그리스도가 있었고 그래서 이 특별한 예언은 명백히 성취되었으며 따라서 나머지 예언들도 당연히 문자 그대로 이루어질 것임을 우리는 더욱 더 확신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의 특별한 질문에 계속해서 답을 주시기 전에 잠시 이를 중단하신 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 뒤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왕국이 왕국을 대적하여 일어나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역병이 있으며 또 하늘로부터 두려운 광경과 큰 표적들이 있으리라(눅21:10-11). 다시 말해 주님의 재림에 대한 표적은 제자들이 요구한 것처럼 여러 면을 동시에 가질 것이다. 그 첫 번째 구성 요소는 단지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이 아닌 여러 나라들 사이의 큰 전쟁일 것이다. 적어도 두 민족과 두 나라가 싸울 것이며 실제로 이런 표현은 많은 나라 특히 세계의 주요 나라들이 참전하는 전쟁을 일컫는 관용어로 쓰인다. 그리고 그 후에는 하늘의 두려운 징조 뿐 아니라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역병이 있을 것이다. 이 복합 표적이야말로 분명히 제자들이 요구한 것이다. 마태복음 24장과 마가복음 13장에서는 이 시기에 하늘의 두려운 징조에 대한 언급이 없으므로 누가복음에서의 이 말은 마지막 날의 표적 중 마지막 단계에 적용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예언의 말씀을 주신 이래로 이 세상에는 지진, 기근, 역병 및 여러 종류의 재난뿐만 아니라 수많은 전쟁이 있어 왔다. 그러나 민족들 간의 첫 번째 큰 전쟁은 1914-1918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그리고 이 전쟁은 역사상 아마도 가장 무서운 역병이었던 1918년의 유행성 인플루엔자로 이어졌고 또 중국 및 러시아와 다른 나라에서의 심각한 기근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의 대지진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정말 그분의 재림에 대한 표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왕국의 도래와 관련하여 이것이 단지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산모가 느끼는 ‘산고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표적이 완성되기 전에는 간간이 육체적 고통이 수없이 많이 있어야만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은 출산의 첫 진통일 뿐이었으며 이것은 곧 다른 것들로 이어졌다. 일본의 중국 침략을 시작으로 무솔리니의 이디오피아 침략과 1939년 히틀러의 전격작전이 있었고 곧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에 모든 나라가 미래의 전쟁을 막기를 희망하면서 국제 연합(United Nations)을 설립함으로써 그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것 역시 끝은 아니었다. 곧 인도차이나 전쟁, 베트남 전쟁, 그리고 절정을 이룬 한국전쟁이 일어났으며 이러한 전쟁에는 많은 나라들이 참전했다. 최근에 (1990/1991) 전 세계는 이라크에 대항한 국제 연합(United Nations)의  전쟁을 실제로 목격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중동에는 계속해서 소동이 있으며 이 모든 것은 세계 모든 민족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다민족 전쟁과 함께 첫 진통 이래로 지난 70년 동안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역병”이 있었을 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 차례의 국지전도 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전쟁과 기근, 지진 등이 있을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지구 종말의 날이 가까이 왔음은 확실하다. ‘하늘로부터의 두려운 광경과 큰 표적들’은 이 시기에 있을 UFO 현상이나 하늘로 쏘아 올린 다양한 우주 비행선을 의미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재림과 세상 끝 날에 대한’ 첫 번째 큰 표적을 주신 후에 가까운 사도 시대에 있을 일반적 성격의 예언을 주셨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전에 그분께서는 다음과 같은 예언의 말씀을 주셨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있기 전에 그들이 내 이름으로 인하여 너희에게 손을 대어 너희를 핍박하고 회당과 감옥에 넘겨주며 왕들과 치리자들 앞에 끌어가려니와(눅21:12) 이 핍박의 최초의 물결은 예루살렘의 파괴와 유대인들의 분산이 이루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또 그들이 칼날에 쓰러지고 모든 민족들에게 포로로 잡혀 가며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리라(눅21;24). 예수님의 이 예언 부분은 제3장에서 다시 논의 될 것이다. 이것은 로마 장군으로 후에 황제가 된 타이투스의 성전 파괴로 주후(主後) 70년에 성취되었으며 그 뒤 주후 135년에 헤드리안 군대의 예루살렘 파괴가 있었고 그 뒤 지난 1,800년 동안 세계 여러 나라로 유대인들을 떠돌게 한 강제 추방이 있었다. ‘올리브 산 설교’로 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주요한 예언 메시지에는 다른 표적들이 들어 있으나 이것들은 뒤에서 다시 논의될 것이다.
2009-05-08 14:59:22 | 관리자
전천년 신앙(Pre-millennialism)   이것은 계20:1-6에 기록된 ‘1000년 동안 지속되는 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음을 믿는 것이다. 교회와 왕국, 만물의 회복 선도 참조(85, 94). 성경은 이 1000년의 기간을 보통 왕국이라 말하며 대언자들은 이 기간이 온 우주가 의로 치리를 받으며 온 땅이 복을 받는 때라고 묘사했다. 신약성경의 구조 자체가 그리스도께서 천년왕국 이전에 재림하실 것을 요구한다. (1) 천년왕국에서는 의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국의 백성들을 통치하므로 그분께서는 그 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오셔서 의인들을 부활시켜야 한다(계20:5). (2) 천년왕국은 어느 곳에나 의가 존재하는 기간이므로 그분께서는 그 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오셔서 반드시 알곡과 가라지를 분리하셔야 한다(마13:40-43). (3) 사탄은 1000년 동안 결박되어 있으므로 그분께서는 그 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오셔서 사탄을 결박하셔야 한다(계20:1-3). (4) 적그리스도는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멸망 받으므로 그분께서는 그 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오셔서 그를 멸하셔야 한다(살후2:8; 계19:20). 무천년설, 후천년설, 천년왕국 참조.
2009-05-08 14:57:51 | 관리자
그런즉 너희는 회개하고 회심하라. 그리하면 새롭게 하는 때가 주의 앞으로부터 이를 때에 너희 죄들이 말소될 것이요, 또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너희에게 미리 선포된 분을 보내시리라.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자신의 모든 거룩한 대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때 곧 모든 것을 회복하시는 때까지는 하늘이 반드시 그분을 받아들여야 하리라(행3:19-21). 창세기는 죄와 사람의 타락을 보여 주며 계시록은 하나님의 역사의 마지막 부분에 모든 것이 회복하는 것을 보여 준다. 위 성경 말씀대로 주님이 오시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회복된다. 주님의 재림 이후에 이 땅에는 문자 그대로 1000년 왕국이 열리며 이 기간에 구약성경에 예언된 모든 말씀들(창12:2-3; 창15:18-21; 시2; 사11; 겔40-48; 슥14 등)이 성취될 것이다. 이때에 팔레스타인 땅은 지구의 중심이 되며 유대인들은 민족들의 으뜸가는 자들이 된다. 우리 주님은 이 기간을 ‘다시 나게 하는 때’(regeneration)라고 말씀하셨다(마19:28). 이 기간이 끝나 신구약의 모든 예언이 옛 땅에서 성취되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며(벧후3:10-13; 계21:1)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다가오는 영원 안에서 이루어진다.
2009-05-08 14:56:59 | 관리자
천년왕국(Millenium): 계20:1-6에 기록된 대로 땅에서 1000년 동안 지속되는 그리스도의 왕국. 구약의 대언자들은 줄기차게 이 기간이 온 우주가 의로 치리를 받으며 온 땅이 복을 받는 때라고 묘사했다. 어떤 이들은 1000년이 단순하게 완전한 수를 뜻하며 따라서 천년왕국이란 새 하늘과 새 땅이 거하는 영원한 왕국이라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 땅에 눈에 보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워져서 주님께서 친히 철장 권세로 온 세상을 통치하심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딤후2:12; 계5:10; 사11:1-12; 25:6-9; 65:18-25; 미4:1-4; 습3:14-20; 슥8:3-8, 20-23; 14:16-21 참조). 교회와 왕국, 만물의 회복 선도 참조(85, 94). 시편 2편에는 이방 나라들이 하나님을 반역한 것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교도들을 네게 상속물로 주고 땅의 맨 끝 지역들을 네게 소유로 주리라. 네가 그들을 철장으로 부수고 토기장이의 그릇같이 산산조각 부수리라”(시2:8-9; 계12:5). 이것은 결코 영적 통치를 뜻하지 않으며 실질적으로 땅에서 이루어지는 통치를 말한다. 또 대언자 이사야는 예수님이야말로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의와 평강을 가져오는 분이라고 대언하면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짐승들이)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상하게 하거나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물들이 바다를 덮는 것같이 주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 날에 이새의 뿌리가 있어서 만백성의 기(旗)로 설 것이요, 이방인들이 그에게 찾아오리니 그가 베푸는 안식이 영화로우리라”(사11:9-10). 이런 구절의 왕국은 결코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앞으로 주님의 재림 이후에 1000년 동안 문자 그대로 땅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첫 아담은 죄를 지어 땅에 의의 왕국을 세우려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지 못하였으나 둘째 아담 예수님은 죄를 없애고 의와 평강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왕좌를 둔 채 온 땅을 통치하여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루실 것이다(단7:14; 계19:15; 시72). 그 이후에 지금의 하늘과 땅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온 우주에 가득하게 되어 다시는 반역과 죄가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된다. 이때에 이스라엘은 자기 땅으로 돌아와(렘30:3; 31:8-9; 겔39:25-29; 암9:11-15) 새로 부활된 다윗의 왕국의 백성이 되고(사9:6-7; 33:17; 44:6; 렘23:5; 미4:2-3, 7) 특별한 복을 받아 민족들 중에 으뜸이 되며(민23:9; 사14:1-2; 49:22-23; 60:14-17) 또 영적으로 부흥할 것이다(렘23:3-6; 겔36:25-26; 슥13:9; 말3:2-3). 이때에는 또 경배의 장소로 천년왕국 성전이 지어지고(겔40-48) 제사장들이 실제적으로 희생 예물을 바친다. 이것은 결코 속죄를 위한 예물이 아니고 속죄를 이루신 예수님의 사역을 기념하는 것이다. 즉 천년왕국의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만이 죄를 제거함을 보여 주기 위한 시청각 교육으로 희생 예물이 드려질 것이다. 이때에는 땅도 기능을 회복하여 많은 열매를 맺고(사35:1-2) 산과 골짜기가 모두 평지로 변하며 온 세상의 기후 역시 온화하게 되고(사40:3-4; 슥14:4) 예루살렘에도 큰 변화가 생기며 왕의 왕좌를 둔 곳으로 모든 곳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슥14:4; 10). 또 이방인들은 반드시 예루살렘에 와서 왕에게 경배하고 장막절을 지켜야 한다(슥14:16-21). 천년왕국의 성전과 도시 선도 참조(93). 천년왕국에는 부활한 몸으로 예수님과 통치하는 사람들이 있고 부활하지 않은 몸으로 거기 들어가는 사람들 즉 7년 환난기를 거쳐 살아남은 채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있으며 그들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1) 그리스도 이전의 이방인과 유대인들(부활한 몸); (2) 신약 교회 시대 사람들(부활한 몸); (3) 환난기에 구원받은 유대인과 이방인들(부활한 몸); (4) 환난기를 통과하고 살아남은 유대인과 이방인들(부활하지 않은 몸); (5) 천년왕국 기간에 태어난 사람들(부활하지 않은 몸). 7년 환난기를 통과하고 왕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양들로 묘사되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다시 오실 때에 왕국에 들어가고 거기서 아들딸을 낳는데 이들 역시 그 전의 다른 세대 사람들처럼 구원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죄를 지을 수 있으며 그 결과 그리스도의 철장으로 형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중 얼마는 겉으로는 충성을 다하는 체 하지만 천년왕국이 끝나면서 사탄이 풀려나는 때에 기회를 타서 자기들의 속 감정을 드러내며 반역을 일으키고 결국 사탄과 함께 멸망하게 된다(계20:7-10). 이때에는 사람의 수명이 다시 길어져서 창조의 시작 때처럼 거의 1000세까지 살며 또 죽기도 한다(사65:20). 전천년 신앙, 환난기 참조.
2009-05-08 14:56:14 | 관리자
칠십 이레(Seventy weeks): 성경의 가장 놀라운 예언 중 하나는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대언자 다니엘에게 주신 ‘70이레’ 혹은 ‘70주’(seventy weeks)라 불리는 예언이다. “주께서 네 백성과 네 거룩한 도시에게 칠십 이레를 정하셨나니 이것은 범법을 그치고 죄들을 끝내며 불법에 대하여 화해를 이루고 영존하는 의를 가져오며 환상과 대언을 봉인하고 또 지극히 거룩하신 이에게 기름을 붓고자 함이라”(단9:24). 다니엘은 유다 왕국의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천사 가브리엘은 자기가 말한 것이 70년이 아니라 70년이 7개 있는 490년이며 또 하나님께서 이 기간에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에서 최종적으로 돌아오는 것을 세고 계신다고 말했다. 칠십 이레 선도 참조(78). 이 490년의 처음 69이레 즉 483년은(69x7=483) 주전 454년경에 아닥사스다 왕이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명령을 내린 때(느2:1-8)와 통치자 메시아가 와서 죽은 때 즉 주후 30년까지의 기간을 나타낸다.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한 예는 민14:34에서 찾을 수 있고 또 창29:27을 통해 이레가 7년을 뜻함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루시면서 늘 490년이라는 주기를 이용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부터 가나안 정착까지, 여호수아부터 왕국까지, 그리고 다윗으로부터 바빌론 포로까지의 기간이 모두 490년이다. 이 사실과 실제로 예수님께서 주전 4년에 태어나셨고 주전 1년 다음이 곧바로 주후 1년이 된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약속된 메시아가 오는 해는 주후 30년이 된다. 그때 예수님의 나이는 서른세 살 반이었고 바로 그 해에 그분께서는 유다의 약속된 통치자 즉 메시아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그러나 일주일 후에 그분께서는 자기 백성들에 의해 배척을 받으셨는데 그렇게 된 것은 기록된 대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죽음은 남을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다(단9:26). 이 주목할 만한 예언이 문자적으로 성취됨으로써 다니엘이 예언한 490년의 기간 중 처음 483년이 성취되었다. 그러나 다음의 기록으로부터 명백하게 알 수 있듯이 그 483년 후에 남은 마지막 7년은 즉시 연이어서 일어나지 않았다. “장차 임할 통치자의 백성이 그 도시와 그 성소를 파괴하려니와 그것의 끝에는 홍수가 있을 것이며 또 그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황폐하게 하는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많은 사람과 한 이레 동안 언약을 확정하리니 그가 그 이레의 한중간에 희생물과 봉헌물을 그치게 하며 또 가증한 것들로 뒤덮기 위하여 심지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것을 황폐하게 할 것이요, 작정된 그것이 그 황폐한 곳에 쏟아지리라, 하니라”(단9:26-27). 이 예언은 메시아가 끊어진 뒤 수세기가 흘러간 후인 마지막 때를 가리키고 있는데 이 마지막 때는 다니엘의 칠십 이레 예언 중 다니엘의 백성인 ‘유대인들을 향해’ - 이방인들을 향한 것이 아님 - 예비된 마지막 한 이레 즉 7년을 가리키며 이때를 보통 ‘7년 환난기’라 부른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회복을 보여 주기 위한 이정표인 다니엘의 칠십 이레 중 앞부분은 이미 성취되었고 나머지 한 이레 즉 7년은 앞으로 적그리스도의 때에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이다. 환난기 참조.
2009-05-08 14:55:34 | 관리자
우리는 히브리서 9장 12절, 10장 10절 등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 구약 시대의 사람들과 신약 시대의 사람들 즉 과거에 이 땅에 산 모든 사람들과 현재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미래에 이 땅에 살게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해 완전히 영원토록 단 한 번 자신을 희생물로 드리셨음을 믿고 있고 이에 감사를 드린다. 보통 이것은 예수님의 ‘영 단 번 속죄’라고 불린다. 그런데 문제는  ‘영원한 단 번 속죄’가 이루어졌는데 왜 이 땅에서 이루어질 천년왕국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 헌물 같은 희생 예물을 드리느냐 하는 것이다. 겔43:18-27절에 보면 분명히 제사장들이 죄 헌물, 번제헌물 그리고 화평 헌물을 드린다.   이 문제를 자세히 논하기 전에 먼저 천년왕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천주교회와 및 천주교회에서 항의하고 나온 프로테스탄트(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성공회 등)의 대부분은 천년왕국이 이 땅에서 1000년 동안 실제로 이루어지는 왕국이 아니고 단지 ‘영구히 지속되는 영적인 왕국’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믿는 분들에게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그런 구절들을 영적으로 뭉뚱그리는 것이다. 즉 이 시대에는 실제의 이스라엘이 존재하지 않으며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으므로 이스라엘과 관련된 이런 것들은 모두 가상의 세계에서 영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우리는 이런 분들의 믿음을 존중하지만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싶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강림이 이루어지면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 국가가 확고히 서고 그들은 분명히 레위인 체계와 제사장 체계를 갖는다. 에스겔서 40-48장은 분명히 천년왕국 때에 이 땅에 세워질 문자적인 성전(41-43장)과 문자적인 제사장들(42장, 44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이사야서 66장 21절도 천년왕국 때에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세워짐을 보여 주고 말라기 3장 3절도 레위 사람들이 세워짐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이 외에도 크고 무서운 주의 날 이후에 팔레스타인에 세워질 문자적 이스라엘에 대한 기록들은 분명히 제사장/레위 사람 체계와 성전의 건립을 보여 준다. 이런 것을 문자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참고로 밑에 있는 인용문 (1)과 (2)의 출처는 http://blog.daum.net/11christ/10411012이고 저자는 김정우로 되어 있다. (1) 에스겔 47장: 여기에는 성전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예언되고 있다. 성전의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오는데 이것이 큰 강이 되어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으로 나타난다(5절). 그리고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고 강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며 바닷물(사해)이 소성함을 얻는다고 한다(9절). 이 예언을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 있을까?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물이 흘러 사해까지 적시며 사해를 생명의 바다로 바꾸고 고기가 살 수 있도록 할까? 이 예언의 배후에는 명백하게 에덴동산 이미지가 깔려 있음을 주목하라. 에덴동산에 흐르는 물과 모든 나무와 산의 모티프가 에스겔서에서 성전을 중심으로 새롭게 그려지고 있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28)고 말씀하심으로 에덴동산을 성령강림으로 재해석하셨다. 요한계시록 22:1-4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어린양의 보좌로 부터 나오며 강 좌우편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개의 실과를 맺는다고 한다. 즉 에스겔의 상징적인 강이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에스겔은 에덴동산의 회복을 여기에서 바라보고 있지 문자 그대로 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흘러나올 것을 내다보고 있지 않다. 구약의 성전은 그 자체가 예표적이다. 성막은 하나님의 처소를 본 딴 복사판이다(출25:40, 왕상8:29-30). 성전은 하늘 성전의 그림자로서(히8:5) 하나의 모형으로 주어졌다. 이 모형은 그림자로서 솔로몬의 돌 성전은 보다 완전한 것이 나올 때 폐기될 수 있었다(히10:9). 이 그림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실체가 나타나고(요1:14) 종말론적인 새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계22). 이 성경신학적인 맥락 속에서 에스겔서의 강물과 나무 이미지를 이해하여야 한다. (2) 스가랴서에 나타난 예언: 메릴 엉거(Unger 1978)는 스가랴서 전체가 메시야의 강림과 천년왕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이라는 관점 속에서 주석을 하고 있다. 예로서 2:1-13의 측량줄 잡은 사람이 예루살렘을 측량하는 환상은 "그 도시가 미래에 천년왕국의 수도가 될 것"을 바라보고 있다 (1978:43). 즉 예루살렘은 예루살렘이고 교회가 될 수 없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깨끗함을 받는 환상(3:1-10)은 메시야가 다시 오실 때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회개할 것을 그리고 있다(55쪽). 11장은 미래에 거짓 목자 즉 적그리스도가 올 것을 말하며, 12장은 미래에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것을 예언한다고 말한다(206쪽). 미래의 예루살렘이 다시 이방인들에게 포위될 것이며 (12:1-9), 메시야 왕이 두 번째로 오셔서 구원하실 것이다. 그때 온 이스라엘이 회개할 것이다(12:1-13:9). 마지막으로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승리를 거둘 것이나 메시야가 감람산에 오심으로 큰 지진이 일어나고 그 산이 변형되며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는다(14장). 따라서 14장은 전적으로 예언적이다(wholly prophetic). 이것은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과거 역사에는 적용할 수가 없다(238쪽). " 스가랴 14장은 현 시대의 관점에서도 전적으로 예언적이다. 그 의미를 풀 수 있는 유일한 해석법은 문자적인 해석이다 " (239쪽). 그리고 엉거는 파인버거(Feinberg)를 인용하고 있다: "이 장이 문자적으로 해석될 때 스가랴가 지금까지 계시한 것과 성경전체가 말하는 이스라엘의 완성에 대한 예언과 조화를 이룰 것이다" . 그렇다면 스가랴서에서 감람산이 나누어지고 에스겔서에서 성전에서 물이 흘러 나와 사해를 생명의 바다로 만드는 이미지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시작이 되는 것을 알리는 비유적 표현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요엘이 말세가 되어 하나님의 영이 새롭게 일하시는 시대를 예언하면서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시는 것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알았을까? 선지자는 신약시대의 도래에 대해 상징과 비유를 사용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 상징과 비유를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고 선지자의 의미를 바로 캐어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묵시문학이라는 장르를 결정하는 것이 종말과 연관된 본문들을 이해하는 열쇠를 준다. 다니엘과 사도 요한은 고난 가운데서 꿈과 환상과 상징을 통해 하나님이 이기고 있고, 역사의 마지막에 개입하시며 그의 성도들을 신원하시고 그의 왕국을 세우실 것을 말하고 있다. 묵시문학은 구체적인 종말의 때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종말론적인 최후의 승리를 제시하며 고난 받는 믿음의 공동체를 위로한다. 신자들이 고난 받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상징(symbolism)을 통해서 의미를 전달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의 성경 해석 체계와 믿음을 가진 분들 중 상당수가 진지한 크리스천임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이 부분에 관한 한 그들의 진지함을 따르지 않고 문자 그대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 믿는다. 즉 에스겔서에 기록된 대로 실제 예루살렘 성전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흘러 사해를 회복시키며 재림 때에 우리 주 예수님께서 올리브 산에 오셔서 땅이 갈라지는 것을 그대로 믿는다. 스가랴서 14장 4절에서 우리 주님의 발이 올리브 산에 닿는 것은 곧 사도행전에서 주님께서 승천하면서 주신 약속의 말씀 즉 올리브 산에서 승천한 그대로 올리브 산에 오신다는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런 부류 사람들의 문제는 아브라함의 육체적 자손인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고의로 무시하고 영해하여 모두 교회에 적용시키려는 것이다. 이것은 천주교의 어거스틴 사상에서 나와 칼빈을 통해 장로교회에 고착된 잘못된 믿음이다. 자, 그러면 히브리서와 에스겔서의 상충되는 부분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성경을 영해하거나 왜곡하여 우리의 주장을 펴려 하지 않는다. 다만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고 그것이 성경의 다른 부분과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한다. 그러면 우리 주 예수님은 왜 재림하시는가? 그분의 재림이 죄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히브리서 9장 27,28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단 한 번 드려지셨으며 또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리라. 주님의 재림은 죄와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천년왕국에서의 희생 제사도 죄와 상관이 없다. 히브리서 10장 16-18절에는 교회에게 또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성취될 말씀이 있다.  16 그 날들 이후에 내가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내 법들을 그들의 마음속에 두고 그들의 생각 속에 그것들을 기록하리라, 하신 뒤에 17 또, 내가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8 이제 이것들의 사면이 있는 곳에서는 다시는 죄로 인한 헌물이 없느니라. 18절은 분명히 죄로 인한 헌물이 더 이상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의 헌물은 죄로 인한 것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이스라엘의 천년왕국 헌물들은 다른 목적으로 드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유대인들이 그것들을 드리는 목적이 자기들이 죽인 메시아의 은혜를 기념하기 위함이라고 믿는다. 이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것이 가장 합당한 이유라고 믿는다. 즉 구약 시대에는 다가올 메시아를 기대하며 예표로 유대인들이 희생 헌물을 드렸고 천년왕국에서는 이미 모든 일을 이루신 메시아를 기념하기 위해 유대인들이 희생 헌물을 드릴 것이다. 또한 천년왕국 시대는 구약시대와 비슷하게 신정 정치 형태가 이루어지고 이스라엘의 절기 중에서 유일하게 장막절이 지켜질 것이다. 그런데 이때에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장막절에 주님을 뵈러 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스가랴서 14장 16-19절을 보자. 16 예루살렘을 치러 온 모든 민족들 중에서 남은 모든 자가 심지어 해마다 올라와 그 왕 곧 만군의 주께 경배하며 장막절을 지키리라. 17 땅의 모든 가족들 중에서 그 왕 곧 만군의 주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모든 자들에게는 그분께서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터인즉 18 만일 이집트 가족이 올라가서 거기에 이르지 아니하면 비를 받지 못하리니 곧 주께서 장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교도들을 칠 때에 내리실 재앙을 거기에 내리시리라. 19 장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모든 민족들이 받을 벌과 이집트가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우리는 이대로 될 줄 믿는다. 주님의 말씀이 그렇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우리는 이것만이 유일한 대답이라고 믿지 않으며 이 외에 다른 합당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여기 이 땅에 사는 동안 그 이유를 모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자 그대로 하나님이 주신 성경을 믿는다. 이렇게 믿으면 세대주의자요 심지어 이단이라는 공격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이것만이 바른 성경 해석 방법이요 하나님이 주신 뜻이라고 믿는다. 물론 그렇게 믿지 않는 분들(대부분의 칼빈주의자들)의 믿음도 존중하며 특히 그들의 성화 노력을 크게 반긴다. 하지만 종말론의 이 부분에서는 그들이 틀렸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대중적 기독교는) 바른 것을 원치 않는다. 그냥 유명한 사람들의 해석 체계를 따르면 다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주님께서 이런 형제들에게도 성경을 바로 볼 수 있는 귀와 눈을 주시기를 기도한다. 또 바르게 본다고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에게는 칼빈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점 즉 하나님의 거룩함을 추구하는 열정이 있었으면 좋겠다. 극도로 순수하게 살고자 노력했기에 칼빈주의자들은 영국에서 퓨리탄(Puritans)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나님 앞에서 순수하게 되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을 본받고 싶다(다만 종말론의 영적 해석 체계와 죽은 정통으로 정형화 된 칼빈 우상주의를 빼고).
2009-05-08 14:54:56 | 관리자
주님의 재림의 전조는 이스라엘의 부활입니다. 독자께서는 주님의 재림을 믿으십니까?  독자께서는 주님의 재림을 열렬히 바라고 있습니까? 세상이 너무 좋아 머리로는 믿지만 여기서 더 살려고 하지 않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소망은 주님의 재림에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의 때에 대해 스가랴서 12장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이스라엘을 위한 주의 말씀의 엄중한 부담이라. 주 곧 하늘들을 펼치고 땅의 기초를 놓으며 사람 속에 사람의 영을 짓는 이가 말하노라.2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사방 모든 백성에게 사람을 떨게 만드는 잔이 되게 할 터인데 그때는 곧 그들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치려고 에워쌀 때니라.3 ¶ 그 날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모든 백성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비록 땅의 모든 백성이 그것을 치려고 함께 모일지라도 그 돌로 짐을 진 자는 다 산산조각 끊어지리라. 스가랴서 12-14장을 잘 읽어 보기 바랍니다.  재림의 소망을 굳게 가집시다. 여기에 우리의 안식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물질은 다 없어지고 맙니다. 다음은 연합뉴스의 보도입니다. 위의 성경 말씀들과 같이 읽어 보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건국 60년, 빛과 그림자  수많은 절멸 위기 딛고 중동 최강국으로 발돋움 약자 팔레스타인 탄압 비난..아랍권과 평화공존 등 과제    이스라엘이 5월 8일(이스라엘 달력으로 5월 14일) 건국 60주년을 맞는다. 유엔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47년 11월29일 총회에서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고 있던 팔레스타인 땅의 약 56%를 유대인들의 국가에 주는 팔레스타인 분할을 결의했다. 일부 영역을 잃게 된 아랍권이 이를 거부했지만 유대인들은 그로부터 5개월 보름만인 1948년 5월14일 전격적으로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이스라엘은 건국일을 유대력에 따라 기념하고 있는데 올해는 이 날이 서양력으로 5월8일이다. 서기 7세기 이래 아랍 무슬림들이 지배력을 행사해 온 중동의 한 복판에 전혀 이질적인 국가로 태동한 이스라엘은 당연히 역내 갈등을 일으키는 씨앗이 됐다.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로 구성된 아랍연합군은 이스라엘의 독립이 선포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을 침공해 제1차 중동전쟁을 벌이는 것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분쟁의 서막을 올렸다. 이후 이스라엘은 아랍권과 크고 작은 규모의 전쟁을 수없이 치렀지만 그때마다 더 강한 국가로 거듭났다. 특히 이스라엘은 1967년 선제공격으로 시작한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을 통해 팔레스타인 전역을 장악함으로써 성서를 통해 약속받았다고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영역이 명실상부한 국토가 됐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근 2천 년에 걸친 디아스포라(이산)와 20세기의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를 겪으며 절멸의 위기로 내몰렸던 유대인들에게는 성공 신화의 출발점이었다. 이스라엘은 오늘날 정치, 경제적으로 세계 최강국의 반열에 올라 있다. 이스라엘이 유대인 로비단체들을 앞세워 국제 정치 무대를 주도하는 미국의 정책 형성 과정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의료, 제약, 전자 등 기술집약적인 산업 분야에서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한 이스라엘의 국민총생산(GNP) 규모는 연간 5천억 달러에 육박해 주변의 아랍 국가들이 넘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도 덩치가 큰 아랍 국가들과의 크고 작은 전쟁에서 불패의 역사를 써올 만큼 막강한 힘을 자랑한다. 이처럼 높아진 이스라엘의 국가적 위상은 이스라엘의 건국에 반발하며 여러 차례 전쟁을 불사했던 이집트와 요르단이 현실을 받아들여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집트와 요르단은 1979년과 1994년 각각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유대인 국가의 동반자가 됐다. 이스라엘이 건국 후 60년 간 정치, 경제, 외교적으로 눈부신 성과를 이뤘지만 평화와 안정을 구가하는 보통 국가가 되기 까지는 갈 길이 멀고 주변의 현실이 우울하고 답답한 게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이다. 이스라엘이 지난 60년 간 팔레스타인 땅에서 국가의 틀을 확고히 다지는 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우는 꿈이 점점 더 멀어지는 현실에 직면해야 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1967년의 제3차 중동전쟁으로 전 팔레스타인 영역이 이스라엘 점령 체제에 놓이자 독립을 향한 처절한 투쟁을 본격화했다. 이 투쟁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서방의 시각에선 테러리즘으로 규정됐다. 1987년과 2000년 각각 시작된 팔레스타인인들의 제1, 2차 이스라엘 점령 반대 투쟁(인티파다)은 약 6천 명의 팔레스타인인과 1천 명 이상의 이스라엘인을 희생시켰다. 이스라엘은 저항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지난 93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체결한 오슬로 평화협정을 통해 점령지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제한적 자치를 허용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1967년 전쟁 이전의 경계에 맞춰 가자지구와 동예루살렘을 포함하는 요르단강 서안을 영토로 하는 독립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꿈을 외면하고 있다.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의 일부 땅을 영원히 차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에 반발하는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내의 강경 정파들은 저항공격으로 이스라엘을 압박하고, 이스라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큰 인명피해를 수반하는 무력에 주로 의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또 하마스 등 강경 정파들을 약화시키기 위해 이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를 봉쇄하는 정책을 펴면서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서는 유대인 정착촌과 팔레스타인인 마을을 갈라놓는 약 700㎞에 이르는 보안장벽(분리장벽)을 세우고 있다. 이를 두고 이스라엘 비판론자들은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제2의 홀로코스트를 자행하고 있다거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 정책이었던 아파르트헤이트를 시행하며 땅을 절취하고 있다고 서슬이 퍼런 지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입장에선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의 생존을 위한 것이며, 국가안보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며 그런 비난을 일축하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 내에도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 타결에 무게를 두고 아랍권과의 공존을 중요시하는 세력들이 존재한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정책을 제외하면, 주변 아랍 국가들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경우 대내 정치에선 서구 여느 나라 못지 않게 민주주의 적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내부에서 확산하는 극우주의 성향은 공존을 통한 평화구현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낮추는 요인이다. 마탄 빌나이 이스라엘 국방부 부장관이 최근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더 엄청난 홀로코스트를 안겨줄 수 있다고 발언한 뒤 이와 비슷한 견해를 피력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잇따르고 있다. 유대교 율법학자(랍비)인 이스라엘 로센은 "팔레스타인인은 남자, 여자, 아이를 불문하고 모두 죽여야 한다. 그들의 가축도 예외가 돼선 안된다"는 취지의 극단적인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사무엘 엘리야후라는 이름의 랍비는 지난 3월 예루살렘에 소재한 유대인 종교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학생 8명을 숨지게 한 팔레스타인인의 자식들을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60년 간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해 중동 지역의 최강국으로 발돋움했고, 이에 대해 찬사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는 아랍권에서 조차 이론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주변에 수많은 적을 둔 태생적 환경 탓에 팔레스타인 문제 등에 대처하면서 자국의 안보 이기주의에 너무 몰입해 보편적 정의를 등지는 길을 걸어왔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집트 신문인 알-아흐람 위클리는 "이스라엘은 60번째 생일을 맞았지만 60년 전 탄생 때처럼 여전히 피와 학살, 절취와 거짓의 기반 위에 세워진 국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루살렘=연합뉴스) 
2009-05-08 14:54:06 | 관리자
  휴거(Rapture): 예수님의 재림은 초림과 마찬가지로 두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비밀리에 지구의 대기권 내로 들어오시는데 이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과 살아 있는 성도들이 공중으로 들려져서 그분을 만나며 이것을 보통 휴거라 한다. 재림 참조.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살전4:16-17).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러 오셨을 때 그의 누이 마르다에게 휴거의 두 가지 특성에 대해 잘 알려주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선도 참조(64). 사도 바울은 불멸의 부활 장에서 휴거의 급박함에 대해 강조해서 말하고 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게 하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고전15:51). 여기서 볼 수 있듯이 휴거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시간에 갑자기 일어난다. 그분은 마치 집에 도둑이 드는 것처럼 갑자기 오신다. 도둑은 자신이 오는 시각을 미리 알리지 않으며 특별한 목적을 갖고 들이닥친다. 도둑은 집안에 있는 것을 다 털어 가지 않으며 금은과 같은 보석과 귀중품만 훔쳐간다. 그는 결코 그 집에 머무르려고 오지 않으며 귀중한 물건만 챙기면 즉시 떠난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공중 강림 하실 때에 즉 휴거 시에 자신의 보배인 성도들만 데려가신다. 믿음이 많은 자든 적은 자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받은 자는 다 휴거된다. 휴거가 일어난 뒤에 온 땅에는 7년 동안 무서운 환난이 있으며 특히 후반부 3년 반은 거의 지옥이나 다름없게 된다. 환난기 참조. 이때는 마귀가 자신의 모든 악을 퍼붓는 때며 창세 이래로 가장 두려운 때이다. 우리 주님은 믿는 신자들이 이런 환난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 그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이라”(계3:10). 우리 주님은 여기서 ‘keep from’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는 환난에 들어간 사람들을 보호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믿는 사람들을 환난에서 떼어내어 아예 거기 들어가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영어에서 keep과 전치사 from이 쓰일 때는 언제나 이런 뜻으로 쓰인다. I kept him from going. 이것은 '그를 가지 못하게 막았다는 뜻이지 '가는 데서 그를 지켰다'가 아니다. 독자들은 이미 중고등학교 영어 시간에 keep from, prevent from에 대해서 배웠을 터이므로 이 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자들은 모두 7년 환난기 전에 휴거를 받으며 이를 보통 ‘환난 전 휴거’라 부른다. 이렇게 부활한 성도들과 휴거 받은 성도들은 어린양의 신부로 하늘에서 혼인 만찬에 들어간다. 우리 주님은 결혼을 위해 신부를 데리러 환난 전에 공중 강림하시고 혼인 만찬이 끝나면 신부와 함께 땅으로 내려오신다. 이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 우리 주님은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을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너희 자신은 마치 자기 주인이 결혼식에서 돌아올 때에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같이 되라. 그가 와서 문을 두드리면 그들이 즉시 그에게 열어 주리라 ”(눅12:36). 우리 주님은 하늘의 결혼식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다시 오신다. 또한 7년 환난기는 다니엘의 백성인 유대인들을 향한 심판의 기간이며 이방인들이 주축인 교회와 상관이 없다. 칠십 이레, 환난기 참조. 그러므로 계시록 4장부터 19장까지 교회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교회의 성도들은 휴거되어 이 땅에 없기 때문이다. 이 환난기에도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구원받지만(계7:9) 그들은 교회가 아니라 환난 성도들이다. 교회의 성도들과 믿지 않는 자들을 분리시킬 휴거는 이 시대에서 가장 놀랄 만한 사건이 될 것이며 그래서 믿는 신자들은 이 사건을 고대하고 사모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우리 신자들의 소망이 있다.
2009-05-08 14:52:31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