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사게와 다르단과 함께 히스기야에게 보내어진 아시리아의 사신(왕하18:17). 이 이름은 내시들의 우두머리를 뜻한다.
2009-04-22 13:04:42 | 관리자
잔 나르는 자들의 우두머리.
그는 아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라기스에서 히스기야에게 보내어 항복을 권하게 한 사신이었는데 그는 아주 불경스런 방법으로 히스기야와 백성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왕하18:17; 대하32:9; 사36:22).
2009-04-22 13:04:13 | 관리자
랍 참조.
2009-04-22 13:03:40 | 관리자
랍 참조.
2009-04-22 13:03:17 | 관리자
아르 참조.
2009-04-22 13:02:51 | 관리자
암몬 족속들의 수도.
이곳은 모세 당시에 유명한 도시로서 랍바스암몬이라 불리기도 하고 후에는 필라델피아라 불리기도 하였으며 얍복 강의 남부 근원 근처 즉 요르단에서 3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신3:11; 수13:25). 다윗이 암몬 족속을 치려고 전쟁을 선포하였을 때에 그의 장군 요압이 여기를 포위하였고 우리야가 다윗의 흉계로 여기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도시를 점령하게 되자 요압은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가 속히 와서 직접 그곳을 함락하게 하였다(삼하12:26-31). 그 뒤부터 이곳은 유다 왕들의 지배를 받았고 이스라엘 왕들은 요르단 너머의 지파들과 함께 역시 그곳의 주인 노릇을 하였다. 이스라엘 왕국이 끝날 때에 디글랏빌레셀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많은 부분을 데리고 갔으며 이때에 암몬 족속들은 남아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혹한 행위를 하였다. 예레미야와 에스겔 대언자는 이 일로 인하여 그들의 수도 랍바스를 향해 엄중한 대언의 말씀을 선포하였고 예루살렘의 멸망 후 5년 내에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렘49:1-3; 겔21:20). 그 뒤 안티오쿠스 대제가 이 도시를 취하였고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이곳을 필라델피아로 불렀다.
이곳은 현재 요르단의 암만이다.
2009-04-22 13:02:20 | 관리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취할 때 그의 군대 통치자 중 하나(렘39:3).
그의 이름은 마기 즉 지혜자 중에서 으뜸가는 자를 뜻한다.
2009-04-22 13:01:42 | 관리자
히브리말에서 랍은 우두머리를 뜻한다.
그러므로 호위대의 우두머리인 느부사라단은 히브리말로 ‘랍타바킴’이었고(왕하25:8) 느부갓네살의 내시들의 우두머리인 아스부나스와 지혜자들의 우두머리인 다니엘도 랍이었다(단1:3; 5:11). 랍막 참조. 후대에 이 말은 유대인들의 학교에서 스승이나 박사에게 붙여 준 명예의 호칭이 되었다. 랍에는 여러 등급이 있어서 랍만 붙이면 단순히 명예로운 사람을 뜻하였고 내 주인을 뜻하는 랍비의 랍은 그보다 더 큰 명예를 나타냈다. 또 다른 형태는 랍반 혹은 랍본이었으며 여기서 랍보나이가 나왔는데(요20:16) 이것은 가장 명예로운 호칭이었다. 그래서 이 호칭은 힐렐의 율법 학교에 속했던 뛰어난 일곱 명에게만 붙여졌다. 가말리엘 참조. 그 후에는 랍비가 가장 흔하게 사용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이 호칭이 유지되고 있다(마23:7-8).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백성은 종종 그분을 랍비라 불렀다(막9:5; 11:21; 요1:38, 49; 4:31).
2009-04-22 13:00:11 | 관리자
라반의 딸(룻4:11), 레아의 동생, 야곱의 아내.
그녀는 레아보다 사랑을 받았지만 레아는 더 많은 자식을 낳아 위로를 받았다. 라헬은 요셉과 베냐민을 낳았으며 베냐민을 낳은 직후에 죽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창세기 29-35장에 자세히 나와 있다. 베들레헴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닿을 수 있는 그녀의 돌무덤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렘31:15의 대언은 그녀가 자신의 후손들 즉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베냐민을 위해 울고 있는 것으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마2:18에서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어린아이 대학살과 관련된 것으로 인용된다. 물론 이 대학살에서 그녀의 후손 중 많은 아이들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헤롯 왕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라마라 불리는 여러 장소 중에서 하나가 베들레헴 근처에 있었음이 확실하다.
2009-04-22 12:59:33 | 관리자
라합은 두 개의 히브리말을 나타낸다.
I. 여리고에 살던 가나안 여인. 그녀는 여호수아가 보낸 두 정탐꾼에게 피신처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그 도시가 함락될 때에 자기와 자기 친척들의 목숨을 구하였다(수2:1-21; 6:17-25). 이 일을 하는 동안 그녀가 보여 준 믿음에 대해서는 히11:31; 약2:25에 기록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특히 유대인들은 라합이 단지 여관의 여주인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창녀였다. 그녀는 구원받기 전에 회개하고 자기의 악한 행실에서 떠났으며 그 뒤 주님을 구원자로 삼고 그분께 경배하였으며 유다 지파(支派)의 통치자인 살몬의 아내가 되었다(룻4:21; 마1:4). 우리 주님은 회개하고 돌아서는 세리와 창녀들을 반갑게 맞이하셨다. 바로 그와 같은 사람들이 사람을 180도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권능에 따라 천국에서 빛나는 존재가 되고 반면에 도덕을 지킨다고 하며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 가운데서 멸망하게 된다.
II. 이집트를 나타내는 말. 이것은 곧 교만과 무례함을 뜻하며(시87:4; 89:10; 사51:9) 마지막 구절에서 이집트는 사악한 짐승 곧 용으로 표현되었다.
2009-04-22 12:58:51 | 관리자
단 참조.
2009-04-22 12:58:14 | 관리자
소아시아의 대규모 도시. 에게해 지도 참조(41).
이곳은 브루기아 파카티아나의 수도였으며 골로새와 히에라폴리스 근방에 있었다. 이곳은 주후 65년경에 지진으로 인해 골로새와 히에라폴리스와 함께 폐허가 되었으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다시 재건했다. 여기에도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으며 필라델피아와 마찬가지로 헬레니즘 문화가 성행하여 신전, 극장 등이 많았다. 이곳은 에게 해와 유프라테스 강을 잇는 큰 통상로를 끼고 있으므로 유리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상업 도시로 발전하여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여기서 서쪽으로 19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안약을 정제하여 파는 곳이 있었다(계3:18). 그리스도의 교회가 초기에 이미 이곳에 시작되었고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이곳의 교회에 대하여 언급한다(골2:1; 4:13-16). 바울은 주후 63년경에 라오디게아 교회를 방문한 것으로 보이며 이곳은 승천 이후에 그리스도로부터 특별 메시지를 받은 일곱 교회 중 하나이다(계1:11; 3:14-22).
2009-04-22 12:57:37 | 관리자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면서 지은 도시(출1:11).
이곳은 고센 땅에 있었으며 그 지역의 수도인 것으로 보인다(창47:11). 바로 여기에서 그들은 이집트 탈출을 시작하였다(출12:37; 민33:3-5).
2009-04-22 12:57:04 | 관리자
구스의 아들(창10:7; 대상1:9).
이것은 또한 같은 이름을 가진 함의 손자의 후손들인 구스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가리키는데 이곳은 페르시아 만 근처에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겔27:22).
2009-04-22 12:55:37 | 관리자
크레테의 남쪽에 있는 아름다운 항구 부근의 도시.
바울은 로마로 가는 도중에 이곳을 통과하였다(행27:8). 사도 바울의 로마 이송 지도 참조(44).
2009-04-22 12:55:09 | 관리자
메소포타미아의 부유한 목자.
그는 브두엘의 아들이요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홀의 손자이다(창24:28-31). 그의 성격은 그가 자기 동생 리브가를 부자인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 기쁘게 내준 데서 잘 나타나며(창24:30, 50) 또 자기 조카이자 사위인 야곱을 속이고 부당하게 대우한 데서 잘 드러난다. 후에 야곱은 이에 대해 그에게 항변하고 자기의 충성심을 보여 주었다. 한 가족의 번영과 다른 가족의 질투로 인하여 야곱은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몰래 가나안으로 도망하려 하였다.
이를 알고 라반이 쫓아왔으나 밤에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평화의 협약을 맺고 그를 축복하고 돌아갔다. 그는 하나님을 알고 그분께 경배한 것 같다(창24:50; 30:27; 31:53).
그러나 라헬이 그에게서 드라빔을 훔친 것으로 보아 그는 여전히 우상숭배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다(창31:30, 34).
2009-04-22 12:53:49 | 관리자
길르앗의 산에 있던 유명한 도시.
이곳은 종종 라못길르앗 혹은 라맛미스바라고 불리기도 하였다(수13:26). 이곳은 갓 지파에게 속하였고 레위 사람들을 위한 도시였으며 또한 요르단 너머의 도피 도시 중 하나였다(신4:43; 수20:8; 21:38). 이곳은 이스라엘의 후대 왕들의 통치 때에 유명하였으며 이곳에서 이 왕들과 시리아 왕들 사이에 전쟁이 있었다. 여기서 아합이 죽었고 요람이 부상을 당하였으며 예후가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왕상22:1-53; 왕하8:28-29; 9:1-14; 대하22:5-6).
2009-04-22 12:52:52 | 관리자
I. 가인의 후손(창4:18-24). 그는 농사와 음악과 기계적인 고안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으며 성경에서 처음으로 일부다처제를 시행한 인물이었다.II. 므두셀라의 아들이며 노아의 아버지. 그는 777세를 살았고 홍수가 일어나기 5년 전에 죽었다(창5:25-31).
2009-04-22 12:52:18 | 관리자
라마 참조.
2009-04-22 12:51:25 | 관리자
이 말과 라못은 거의 같은 말이며 팔레스타인의 높은 곳에 위치한 여러 도시가 라마, 라못, 라마다임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같은 장소가 이런 이름으로 무차별적으로 사용된다(왕하8:28-29 참조). 어떤 경우에는 라마나 라못이 다른 이름에 붙어서 그런 도시의 높은 장소 등을 결정하기도 하며 또는 산당을 뜻하기도 한다.
I. 원래의 라마는 베냐민의 도시로서 기브아 근처에 있었으며 에브라임 산 쪽을 향하고 예루살렘 북쪽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마리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있었다(수18:25; 삿19:13; 느11:33). 이곳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경계에 있었으며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은 이곳을 강화시켜 유다 땅으로부터의 통로가 자기 영토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왕상15:17, 21-22, 사10:29; 렘31:15; 40:1; 호5:8 참조).
II. 에브라임 산에 있던 도시. 이곳은 라마소바다임 혹은 ‘숩 사람들의 라마’라 불렸으며 사무엘이 여기서 태어나 거하고 묻혔다(삼상1:1, 19; 7:17; 8:4; 25:1; 28:3). 라마다임과 아리마대라는 이름이 비슷하다는 사실과 초기 역사가들의 주장에 근거하여 이 두 도시는 같은 도시로 추정된다. 아리마대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32킬로미터 떨어진 룻다의 언덕들 가운데 하나에 있으며 이곳은 성경에 나오는 라마 즉 사무엘이 거하던 도시와 잘 들어맞는다.
III. 아셀 지파의 도시(수19:29).
IV. 납달리의 도시(수19:36).
V. 길르앗의 도시(왕하8:28-29). 라못 참조.
VI. 시므온의 도시. 이곳은 남쪽의 라마로 불리기도 했다(수19:8; 삼상30:27).
2009-04-22 12:50:55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