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아내이자 이복누이(창20:12).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나의 공주라는 뜻을 가진 사래라는 이름을 공주를 뜻하는 사라로 바꾸어 주시고 그녀를 통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실 것을 약속하였으며 그것은 정하신 때에 성취되었다. 그녀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는 그들이 파라오와 아비멜렉에게 가까이 갔을 때 아브라함이 그녀를 누이라고 속이려 하자 그녀가 그것에 동의한 것, 그녀가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한 것, 인위적으로 아들을 얻기 위하여 자기 여종 하갈을 그에게 아내로 준 것, 그 뒤 그녀를 미워한 것, 그리고 아주 나이가 들어서 약속의 아들 이삭을 낳은 것 등이 있다(창12-23).
그녀는 매우 아름다운 사람으로 헌신된 아내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그녀가 남편에게 순종한 것은 벧전3:6에 잘 나와 있으며 그녀의 믿음은 히11:11에 나와 있다(참조 사51:2; 갈4:22-31). 사라는 127세를 살았으며 헤브론 골짜기에서 죽었다. 아브라함은 그녀를 위해 애곡하려고 브엘세바에 왔고 헷 족속 에브론으로부터 막벨라라는 이름의 동굴이 있는 밭을 사서 그녀를 거기에 장사지냈다(창23:9).
2009-04-22 15:33:24 | 관리자
느부갓네살의 궁정에서 하나냐에게 주어진 갈대아 이름(단1:7). 아벳느고 참조.
2009-04-22 15:32:34 | 관리자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한 분파.
그들은 종종 바리새인들과 충돌하였으나 예수님을 잡아 죽이는 일에서는 하나가 되었다(마16:1-12; 눅20:27). ‘사두개’라는 말이 공정함을 뜻하는 히브리말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고 예수님이 오시기 300년 전에 살면서 이 파를 창설한 사독 혹은 사두커스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이 귀중하게 여기던 전통과 기록되지 않은 법규를 다 무시하였으며 오직 기록된 성경 말씀만 유대교의 근원이고 규칙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의 마귀론을 거부하고 천사나 영의 존재를 부인하며 몸이 죽을 때 혼도 죽고 따라서 부활이나 보상 등에 대해서도 믿지 않았다(마22:23). 바리새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운명이나 섭리 같은 것에 의해 지배된다고 믿었으나 사두개인들은 개개인의 의지에 따라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유대의 백성들은 사두개인들보다는 바리새인들의 주장을 더 많이 수용하였으나 고위층 사람들은 그 반대였다.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 중 다수가 사두개인이었고(행23:6-9)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도 그들이 기독교를 미워하도록 하는 데 일조하였다(행4:1; 5:17). 바리새인, 분파 참조.
2009-04-22 15:31:54 | 관리자
아히둡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아버지. 그는 사울과 다윗 시대에 대제사장이었다. 아비아달 참조.
이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들은 왕하15:33; 대상6:12; 스7:2; 느3:4; 13:13 등에 나온다.
2009-04-22 15:31:05 | 관리자
사도 누가가 자신의 복음서의 후편을 기록한 신약성경.
이것은 초대 교회의 역사를 담고 있으며 모든 사도들의 행적이 아니라 주로 베드로와 바울의 행적을 담고 있다.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시고 고난당하신 것을 통해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신 것을 묘사했으며 사도행전에서는 기독교의 확산과 초기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과정을 묘사했다.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가 끝나는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주님의 승천과 제자들의 행동, 그리스도의 약속대로 성령님이 주어진 일, 사도들의 기적적인 복음 선포와 그들의 사역의 성공, 그들을 향한 박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흩어지기까지 그곳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묘사한다. 그 뒤 그는 유대교가 기독교로 대체되고 베드로가 이방인 개종자들을 크리스천 교제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여 주고 그 이후에는 주로 사도 바울의 회심과 그의 선교 열정, 수고, 고난, 그리고 감옥 생활 등을 다룬다. 사도행전 연대 선도 참조(7).
누가는 스스로 자기가 기록하는 일들의 대부분을 경험하였으며 그의 그리스말은 신약성경에서 가장 고전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가 보여 주는 초대 교회 성도들(그들 중 많은 이들은 주님과 함께 지냈음)의 정신 상태와 영적 생활은 참으로 고귀한 본이 된다. 이 책을 잘 이해하고 유익을 얻기 위해서는 지중해 연안의 지리와 그 당시 사람들의 풍습 그리고 그 당시의 역사 등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로마 체제와 그 안의 관직들 그리고 회심하지 않은 유대인들의 성향과 정치적 특색 등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2009-04-22 15:30:23 | 관리자
사자(使者) 혹은 특사.
이 말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낸 특사이신 예수님께도 적용되었으나(히3:1) 대부분의 경우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보낸 특사들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그분의 주요 제자들이었고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권위와 성령님의 충만을 주셨고 자신의 교리를 맡기고 자신의 교회를 일으켜 세울 것을 부탁하셨다. 그들은 열두 지파에 상응하여 열두 명이었으며(마19:28) 평범하고 배우지 못했으며 보통 사람들 가운데서 선택을 받았다.
그들은 그분의 부르심을 받아 책무를 맡은 뒤에(마10:5-42) 자신들의 주인을 섬기며 그분의 일들을 증언하고 그분의 영을 흡수하며 점차로 복음의 교리와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후에 그들을 보내서 선포하고 믿는 자에게 침례를 주게 하셨다(요15:27; 고전9:1; 15:8; 고후12:12; 살전2:13). 그들의 이름은 시몬 베드로, 그의 형제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큰 야고보), 그의 형제 요한, 빌립, 바돌로매, 도마, 마태 혹은 레위, 가나안 사람 시몬, 다대오라 하는 렙배오 혹은 유다, 알패오의 아들 작은 야고보, 가룟 유다(마10:2-4; 막3:16-19; 눅6:14-16) 등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목매달아 죽었으며 후에 그를 대신해서 맛디아가 사도로 뽑혔다(행1:15-26).
사도행전에는 자신들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것을 행하며 고난을 당한 사도들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고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과 사랑과 믿음으로 충만하였으며 특히 사도임을 입증하는 사도의 표적들 - 죽은 자를 살리고 안수하는 사람마다 병이 낫는 것 등 - 을 보였다(막16:17-18; 고후12:12). 사도들은 초대 교회에만 존재하였으며 지금 이 시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도행전 참조.
2009-04-22 15:29:16 | 관리자
이곳은 두아디라에서 동남쪽으로 4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헤르무스 강과 트몰루스 산 사이 해발 약 450미터 고지에 위치한 요새 형 도시였다. 에게해 지도 참조(41). 이 도시는 주전 6세기경에 루디아라는 나라의 수도로 세계적인 대도시였으나 그 후 페르시아, 그리스 제국에 의해 차례로 점령되고 결국 로마의 속국이 되었다. 사금이 흐르는 팍톨루스 시내가 이 도시의 부의 원천이기도 했으나 이는 사데가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사데는 또한 양탄자 생산으로 유명했고 부유했지만 지진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이곳의 거주민들은 대개 목자로서 평원에서 많은 양과 소를 길렀으며 그래서 재물이 풍부한 것으로 유명하였다(계3:4).
사데 교회의 기원은 분명치 않지만 그 교회는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 어느 정도 알려진 교회였던 것으로 보인다(계3:1-6). 그러나 그 도시의 퇴폐풍조가 교회에도 숨어들어 사데 교회는 안일과 부도덕으로 타락한 교회요 죽은 교회라는 책망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이보다 더 나쁜 명칭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교회의 크기가 아니라 지역 교회 회원들의 생명 여부이다. 거듭난 성도들의 특징은 생명이 있는 것인데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가 생명력을 잃었다면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은 없을 것이다.
2009-04-22 15:28:25 | 관리자
자기 형을 피해 도망하던 야곱은 하늘에서 나타난 사닥다리를 보았으며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이라는 광야에 사는 자신의 백성에게 모든 것을 제공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창28:12-17; 히1:14). 이것은 또한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 있음을 보여 주었고 이를 통해 우리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분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된다(요1:51).
2009-04-22 15:27:56 | 관리자
유대 땅에 있던 두 마을의 이름(수15:34, 56).
이 두 마을 가운데 하나의 거주민들은 포로 생활 이후에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일을 도왔다(느3:13; 11:30).
2009-04-22 15:27:26 | 관리자
니므롯은 성경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사냥꾼이며 특히 영혼의 사냥꾼이었다(창10:9).
이스라엘 사람들은 직업적으로 사냥을 하지 않았으며 다만 농부나 목자가 먹을 것을 위해 사냥하곤 했다(창27:3-5; 30-31; 잠12:27). 사냥꾼들은 활(창27:3), 돌팔매 기구(삼상17:40), 그물, 올무, 구덩이 등을 사용했다.
2009-04-22 15:26:59 | 관리자
향기를 많이 내고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 나무(아2:3; 8:5; 욜1:12 참조). 잠25:11은 지혜로운 자들의 적절한 말이 은 그림들에 있는 금 사과 즉 잘 익어서 보기에 좋고 아름다운 사과와 같다고 표현한다.
2009-04-22 15:26:30 | 관리자
I. 마23:35와 눅11:51에 나오는 인물. 그는 아마도 대제사장 여호야다 혹은 바라갸의 아들인 것 같다. 그는 요아스 왕과 그의 신하들과 백성이 점점 더 부패하는 것을 보고 공중 앞에서 왕을 책망하였고 이에 왕은 그를 돌로 쳐서 죽게 하였다(대하24:20-22).
II. 아비야 계열 즉 여덟 번째 계열에 속한 제사장(대상24:1-31). 그는 엘리사벳의 남편이며 침례자 요한의 아버지였다. 그는 예루살렘 남쪽에 있던 산지에 거하였으며 경건하고 깨끗한 삶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성전에서 가브리엘을 보았는데 그는 늙은 나이의 사가랴에게 아들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그는 주저하면서 이 약속을 믿지 못하였고 이로 인해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뒤 그는 아들을 낳았고 그에게 할례를 줄 때에 다시 말을 하게 되어 감사와 예언의 아름다운 노래를 하였다(눅1:5-25, 57-59).
2009-04-22 15:25:54 | 관리자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의 아들. 그는 자기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이 되어 6개월 동안 통치하였다.
그는 주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고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그를 대적하여 음모를 꾸미고 백성 앞에서 죽인 뒤 그를 이어 통치하였다. 이로써 주님께서 예후에게 하신 말씀 즉 그의 씨가 4대까지 왕좌에 앉으리라는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다(왕하14:29; 15:8-11).
2009-04-22 15:25:19 | 관리자
I. 임멜의 아들. 그는 성전의 제사장이며 우두머리 감독이었고 대언자 예레미야를 심히 대적한 뒤 그를 때리며 차꼬를 채워 옥에 넣었다가 후에 주님의 저주를 받았다(렘20:1-6).
II. 말기야의 아들. 그는 대언자 예레미야의 원수였으며 그를 옥에 넣는 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렘21:1; 38:1-6). 이 바스훌의 후손들은 바빌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대상9:12; 스2:38).
2009-04-22 15:24:26 | 관리자
히브리 사람들의 부피 단위. 이것은 6힌이며 약 22리터이다.
2009-04-22 15:23:55 | 관리자
요르단 동쪽의 비옥한 땅(민21:33). 이곳은 북쪽의 헤르몬 산과 남쪽의 길르앗과 암몬 사이에 위치하였으며 언덕이 많은 좋은 지역이었다. 가나안 족속들 지도 참조(52). 이곳의 토양이 부드럽고 좋아서 그 이름이 바산이 되었고 성경은 이곳의 초장에 대해 극찬한다: ‘바산의 숫양’(신32:14), ‘바산의 모든 살진 짐승 곧 숫양과 어린양과 염소와 수소’(겔39:18). 바산의 상수리나무는 레바논의 백향목과 함께 언급된다(사2:13). 여호수아 시대에 이곳의 주요 지역 중 하나인 아르곱에는 60개의 성벽을 지닌 고을이 있었다(왕상4:13; 참조 신4:43; 수20:8; 21:27).
바산은 모세가 옥과 그의 백성을 섬멸한 후에 므낫세 반 지파에게 이곳을 넘겨주었고(수12:4) 솔로몬은 이곳에서 물품들을 가져왔다(왕상4:13). 이곳은 후에 시리아의 하사엘에게 정복되었으나 요아스가 회복했다(왕하10:33; 13:25).
2009-04-22 15:23:30 | 관리자
I. 유스도라 하는 요셉. 그는 그리스도의 초기 제자들 가운데 하나였으며 아마도 70명 중의 일원이었을 것이다. 그는 가룟 유다를 대체하기 위한 두 명의 후보 중 하나였다(행1:16-26).
II. 예루살렘 교회의 주요 인물. 그는 대언자였고 실라와 함께 바울과 바나바와 동행해서 안디옥으로 내려가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라는 부탁을 받았다(행15:22-34).
2009-04-22 15:22:51 | 관리자
I.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세워진 고대의 유명한 도시.
원래 이곳은 바벨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졌으며 고대의 전설은 이것을 지지한다. 한편 어떤 이들은 그 이후에 니므롯의 아내인 세미라미스가 혹은 느부갓네살이 이곳을 세웠다고 말하는데 세미라미스가 고대의 도시를 재건하고 느부갓네살이 그것을 확장하고 잘 단장했다고 하면 이런 주장들이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바빌론은 유프라테스가 비옥하게 만든 광활한 평야 위에 세워졌다. 성벽의 둘레는 100킬로미터, 높이와 너비는 각각 90미터, 22미터였다고 한다(렘51:44-58). 또한 성벽 주변에는 깊은 도랑이 돌아가며 있었고 도시의 네 면에는 25개의 놋 문이 있었으며 이렇게 정방형으로 생긴 도시 안에는 정원과 집이 매우 많았다. 느부갓네살의 궁궐은 둘레가 9킬로미터였으며 여기에 공중 정원이 있었다(단4:29-30).
느부갓네살의 통치 하에서 바빌론은 최고의 영예를 누렸으며 특히 천문학으로 유명했다. 위치적으로 바빌론은 중앙아시아와 아라비아와 이집트 사이를 오가며 무역하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세금을 걷는 일을 하기에 적합했고 그래서 상인들의 도시라 불렸다(사43:14; 겔17:4). 따라서 거기로 온 세상의 좋은 것이 흘러 들어갔고 그 결과 대언자들은 그것을 ‘큰 곳’, ‘온 땅에서 칭송받는 자’, ‘갈대아 사람들의 빼어난 아름다움’, ‘왕국들의 귀부인’(사13:19; 47:5; 렘51:41; 단4:20) 등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러한 부유함으로 인하여 여기에서는 부패와 음란한 것들이 극도로 성행하게 되었고 벨, 느보, 네르갈, 메로닥, 숙곳브놋 같은 우상들이 숭배의 대상이 되었으며 더러운 종교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가 예언되었고 성경은 바빌론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준엄함을 잘 보여 준다(사13:1-22; 14:22; 21:9; 47:1-15; 렘25:1-38; 50:1-46; 51:1-64).
바빌론은 영원히 세계의 수도로 남지 못했으며 느부갓네살의 손자 즉 벨사살이 통치하던 때에 고레스가 이곳을 점령하였고 그리스 역사가들의 진술 역시 성경과 일치한다. 그 이후부터 고레스가 수사를 자신의 왕국의 수도로 만들면서 바빌론의 중요성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바빌론은 한때 다리오 왕에게 반역하였으나 다리오는 다시 바빌론을 정복한 뒤 거기의 성문을 모두 부수고 성벽의 높이를 50큐빗 미만으로 줄였다. 페르시아 사람들과 알렉산더의 후계자들의 통치 밑에서 바빌론은 점점 더 힘을 잃게 되었고 결국 아우구스투스 시대에는 거의 황폐한 사막이 되고 말았다. 주후 4세기까지는 바빌론이 있던 곳에 조그만 마을이 있었고 유대인들이 거기 거하였지만(벧전5:13) 그 이후부터 바빌론은 역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으며 그 유적이 발견된 것도 약 3세기 전의 일이다. 바벨 참조. 바빌론의 붕괴와 멸망에 대해서는 이사야 대언자의 예언을 참조하기 바란다(사13-14).또 신약성경에서 바빌론은 우상숭배, 미신, 사치와 향락에 빠진 채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 집단의 상징이 되기도 했으며(계14:8; 16:1-21; 17:1-18; 18:1-24) 중세 종교개혁자들은 이것이 교황체제를 가리킨다고 확신하였다.
II. 이집트에도 온(헬리오폴리스) 근방에 바빌론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가 있었다.
2009-04-22 15:22:15 | 관리자
바빌론을 수도로 둔 지방.
이 유명한 지방은 유프라테스 강에 놓였으며 북쪽에는 메소포타미아와 아시리아, 남쪽에는 페르시아 만, 서쪽에는 아라비아 사막이 있었다. 고대와 현대에 티그리스 강의 동쪽 지역과 유프라테스 강의 서쪽 지역 그리고 이 두 강이 만나는 곳의 양쪽 지역은 바빌로니아 혹은 ‘이라크 엘아랍’으로 인정되었다. 바빌론 제국 지도 참조(35).고대에 이 지역의 이름은 시날이었고(창10:10; 단1:2) 그 후에 바벨, 바빌론, 바빌로니아 등이 이 지역의 이름이 되었으며 갈대아 사람들이 이 지역의 대부분을 소유한 이후에는 갈대아로 불리기도 했다.
바빌로니아는 언덕이나 산이 거의 없는 평지로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범람으로 인해 기름진 퇴적물이 쌓여 농사짓기에 아주 좋은 지역이었다. 유프라테스 강은 4월말부터 6월까지 평상시 수위보다 3.6미터 정도 높은 상태로 흘렀고 그 결과 그 주변의 초기 경작자들은 충분한 물을 이용해서 관개 시설을 개발하여 농업에 이용하였다. 이런 이유에서 바빌로니아에는 크고 작은 운하가 많았으며 아마도 이런 운하들이 시137:1에 나오는 강들일지도 모른다. 이런 운하들 외에도 이곳에는 여러 개의 큰 호수가 있었고 그래서 대언자 예레미야는 바빌론이 많은 물들 위에 거한다고 말하였다(렘51:13).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노아의 후손 중 셈족에 속하고 그들의 말은 히브리말과 비슷하며 특히 갈대아말과 거의 비슷하였다. 바빌로니아 제국은 주전 2000년경에 니므롯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바벨, 에렉, 악갓, 갈네 같은 도시들을 포함하였다(창10:10). 니므롯 참조. 주전 1237년경에 니누스가 니느웨를 지은 후에 이 도시는 아시리아 제국이 갈대아 사람들에게 넘어가서 바빌론이 명성에서 최고조에 이른 주전 606년경까지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유대인들이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여전히 많은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에 살았으며 복음의 초기에 그들의 후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고 베드로는 거기에서 베드로전서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벧전5:13).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에 여러 개의 발전하는 회당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의 탈무드 중 하나가 여기서 작성되었다.
갈대아 사람들 참조.
바빌론의 벽돌
2009-04-22 15:21:07 | 관리자
키프러스 섬의 서쪽 끝에 위치한 해양 도시. 여기에는 좋은 항구가 있었고 로마 총독의 관저가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여기서 복음을 선포하였다(행13:6-13). 엘루마 참조.
2009-04-22 15:20:14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