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자연적인 대화. 성경에서 Oracle은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행7:38; 롬3:2; 히5:12 등). Oracle의 말씀은 하나님의 언약궤 뚜껑에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으로 간주되었다(삼하16:23). 긍휼의 자리 참조. 한편 다른 곳에서 Oracle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 즉 성전에서 언약궤가 놓여 있는 지성소를 뜻하였다(왕상6:5, 16, 19; 8:6). 이교도들은 신전에서 신의 음성을 들으며 그것을 보통 신탁이라고 하는데 이 신탁이 바로 Oracle이다. 사실 이교도들의 신탁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위조한 것이다.
2009-04-22 18:46:10 | 관리자
크리스천 믿음의 대상.
이 분은 인격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로서 영원하고 무한하며 완전한 분이시고 만물의 창조자요, 자신의 권능과 섭리로 모든 것을 지키고 다스리는 분으로 모든 사람들의 유일한 경배의 대상이 되는 분이시다(신6:4-5). 하나님은 의와 사랑이 충만하신 인격적 존재로서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유일무이하게 살아 계신 신이라는 점에서 세상의 다른 신들과 현저하게 다르다(시18:46; 42:2).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고 인간 역사에 능동적으로 개입하셔서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는 역사의 주님이시며(사40:10) 자연의 신비나 공포심 등에서 발생한 자연 종교의 신이나 사람의 이성에 의해 형성되거나 이해되는 철학적인 신이 아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며(창1:1; 사44:24) 전능한 분이시고(창17:1; 대상29:11) 온 세상과 확연히 구분되는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고(행7:48) 사람의 모든 능력을 초월하는 거룩한 분이시다(출3:5; 시47:8). 삼위일체 하나님 선도 참조(60).
영어 단어 God은 실제로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잘 모르며 히브리 사람들은 하나님을 여호와라 불렀는데 이것은 모세가 그분의 이름을 물을 때에 그분께서 친히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고 일러 주신 것으로(출3:14)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무궁하심과 자존(自存)하심을 잘 보여 준다. 여호와 참조. 그러나 이 이름이 너무나 두려웠으므로 그들은 성경에서 이것이 나올 때마다 발음하지 않고 대신 주를 뜻하는 아도나이(Adonai)라 읽었다고 전해지며 Adonai Jehovah 즉 Lord Jehovah가 나오면 ‘주 주’라 할 수 없으므로 Adonai Elohim 즉 ‘주 하나님’으로 읽었다. 한편 복수형의 엘로힘(Elohim)은 ‘창조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서 그분이 여러 면에서 완전함을 뜻하기도 하고 삼위일체를 암시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아들들 참조.
성경은 아무런 변명도 없이 혹은 이유도 주지 않고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시작부터 확증한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1:1)는 말씀은 그분의 존재의 가장 강력한 증거이고 그분의 본성과 의지를 보여 주는 교훈이 된다. 하나님이 계시므로 무신론은 존재할 수 없으며 창조주 하나님과 창조물은 전혀 다른 차원에 있으므로 범신론도 존재할 수 없다. 또한 유일한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므로 다신론도 무효하며 하나님이 온 우주를 창조하셨으므로 물건이나 천체를 숭배하는 유물론도 무효하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으므로 진화론도 성립되지 않는다. 이처럼 창1:1은 창조 사역 속에 드러난 하나님 자체를 보여 주고 동시에 그분의 섭리 속에 드러난 그분의 길과 그분의 성품의 영화로움을 보여 준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말씀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과 참된 교제를 나눌 수 있다.
성경의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시나 세 가지 뚜렷이 다른 인격체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삼위일체로 존재하신다. 이 같은 세 인격체는 영원 전부터 존재하며 동등하며 서로에게 종속되어 있지 않다. 삼위일체 참조.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리고 그 민족을 통하여 온 세상에게 자신을 보여 주셨다(신7:6-11; 사66:18-21). 하나님은 먼저 족장 아브라함을 은혜로 불러 특별한 사랑과 약속을 주셨으며 부르심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자신의 계획을 이루셨다(창12:1-4). 이 후에 계속해서 하나님은 출애굽기에서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여호와로 알려 주시고(출3:14)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다(출3:13-17). 이때 여호와로 나타나신 하나님은 영원한 존재요 이스라엘이 순종하고 신뢰할 분으로 이스라엘을 속박에서 구출하여 자신의 은혜를 온 천하에 밝히 드러내신 분이시다. 이러한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유일한 경배의 대상으로 삼고 오직 그분께 경배하고 그분의 뜻에 절대 복종하여 은혜에 부응하여야 했다(출20:2).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사랑하시며 지키시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며(시9:8)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므로(출20:5) 자신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다른 신에게 달려가 불의를 행할 때에는 엄히 심판하신다(신28:15-68).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우상숭배의 길을 가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고 70년간의 바빌론 포로 생활을 거쳐 고국에 돌아와 다시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으나 율법의 노예가 되어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찾지 않고 믿음이 피폐해져서 하나님을 사모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대망하게 되었다(말3:16-18; 눅2:25-39).
한편 신약시대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죄로 인한 공백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충만하게 채워졌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신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성품과 계획을 온전히 나타내신 것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함, 공의, 긍휼, 사랑, 심판, 통치 등을 모두 볼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일하심을 통해 믿는 자들을 용서하시고 자신의 아들로 삼으시며(롬4:4-8; 요1:12-13) 이로써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롬8:14-16). 아버지 참조.
하나님은 모든 것의 원천이요 소유자요 치리자이시다. 그분은 모든 것을 미리 알고 미리 아심에 근거하여 사건과 사람을 선택하고 예정하신다. 또한 그분은 영원한 재판장이시다. 참된 종교는 하나님을 아는 데서 시작되며 그분을 고귀하게 사랑하고 신실하게 그분에게 순종하는 것이다(요17:4).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 참조.
2009-04-22 18:45:40 | 관리자
I. 아사 왕 시대의 선견자. 그는 대언자 예후의 아버지였으며 충성심으로 인해 감옥에 갇혔다(왕상16:1-7; 대하16:7-10; 19:2; 20:34).
II. 느헤미야의 형제. 그는 바빌론에 있던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에 거하는 유대인들의 비참한 상태에 대한 보고를 가져왔고 후에는 예루살렘의 성문들을 맡았다(느1:1-3; 7:2-3).
2009-04-22 18:44:50 | 관리자
예루살렘의 북쪽 성벽에 양 문 근처에 있던 망대(렘31:38).
2009-04-22 18:44:12 | 관리자
I. 기브온의 거짓 대언자. 그는 무모한 거짓 예언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급작스레 죽었다(렘28:15-17).
II. 사드락에 해당하는 히브리 이름(단1:17).
III. 느헤미야 수하의 경건하고 신실한 관원(느7:2).
2009-04-22 18:43:45 | 관리자
하갈과 이스마엘의 후손(대상5:10, 20). 시83:6에서 이 이름은 이스마엘 족속들 중에서 뛰어난 어떤 부족을 가리키는 듯하다. Hagarenes(해거린즈) 역시 같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2009-04-22 18:43:05 | 관리자
사라에게 속한 이집트 출신의 여종(창16:1). 사라는 자기가 수태하지 못하자 그 당시 동방의 풍습에 따라 또 자기의 육신적인 생각을 이루기 위해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그녀를 통해 아들을 얻고자 했다(창16; 17; 21). 사도 바울은 율법에 매여 있는 유대인들을 풍유로 하갈이라 표현하고 이런 것에서 자유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사라라 표현했다(갈4:24). 하갈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아랍 사람들은 하갈을 아주 중요한 인물로 평가한다.
2009-04-22 18:42:34 | 관리자
느헤미야 총독의 아버지(느1:1; 10:1).
2009-04-22 18:42:01 | 관리자
쌍떡잎식물로 사시나무속에 속하는 식물의 총칭.
아름답고 큰 그늘을 제공하는 이 나무는 팔레스타인과 그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창30:37; 호4:13).
2009-04-22 18:41:14 | 관리자
길바닥에 돌, 아스팔트, 콘크리트 같은 것을 깔아 단단하게 다지어 꾸미는 것(왕하16;17; 겔40:17-18; 요19:13).
2009-04-22 18:40:44 | 관리자
하나님은 종종 유대인들이 죄를 지을 때 그들을 포로로 혹은 노예로 잡혀가게 하셨지만(신28:1-68) 유대인들이 처음으로 이집트에서 포로 생활을 한 것은 죄로 인한 형벌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섭리였다. 이집트 탈출 이후에 그들은 재판관들의 시대를 거치면서 여섯 번 포로 생활 혹은 압제를 당했다. 그러나 히브리 사람들의 가장 힘든 포로 생활은 왕정이 시작된 후에 발생했다. 이스라엘은 주전 740년경에 디글랏빌레셀에 의해 포로로 끌려갔는데(왕하15:29) 요르단 동쪽의 지파들과 스불론과 납달리의 일부가 가장 먼저 포로가 되었고(사9:1) 그 후 20년이 지나 아시리아의 살만에셀이 나머지를 또 끌고 갔다(왕하17:6-24). 비록 그들의 영적/육적 회복에 관한 예언이 여럿 있지만(사11:12-13; 렘31:7-9, 16-20; 49:2; 겔37:16; 호11:11; 암9:14; 옵18-19)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열 지파가 지금까지 한 몸으로 팔레스타인에 되돌아갔다는 증거는 없다. 이런 예언의 말씀들은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며 이사야서 11장 등은 이를 잘 보여 준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 생활 지도 참조(32).
유다에게는 세 번의 포로 생활이 있었다: (1) 여호야김의 통치 제3년 즉 주전 606년에 다니엘과 다른 사람들이 바빌론에 끌려갔다(왕하24:1-2; 단1:1). (2) 여호야김의 마지막 해에 느부갓네살이 유대인 3,023명을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여호야김 이후에 여호야긴이 3개월 동안 통치하다가 바빌론으로 끌려갔는데 이것은 느부갓네살 왕의 제7년과 8년(주전 598년)에 일어났다(왕하24:12; 대하36:8, 10; 렘52:34). (3) 시드기야의 통치하에서 주전 588년에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고 유다의 주요 인물과 귀중품이 다 바빌론으로 옮겨졌다(왕하25:1-30; 대하36:1-23). 그들은 거기에서 70년 동안 머물렀는데(렘25:11; 29:10) 이 기간은 첫 번째 포로로 잡혀갈 때(주전 606년)부터 계산된 것 같다. 바빌론에서도 유대인들에게는 재판관과 장로들이 있어서 그들이 치리를 하였고 논쟁이 되는 문제는 율법에 따라 재판했다. 다니엘서는 유대인들이 고위직에도 진출했음을 보여 주고 에스더기는 그들이 페르시아에서 크게 불어나서 막강한 힘을 과시했음을 보여 준다. 물론 대언자들은 그들의 참된 신앙의 열정이 사라지지 않게 하였다.
70년이 다 차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자신의 통치 제1년에(주전 536년) 바빌론에서 자신의 영토에 사는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성전을 지어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고(스1:1) 그래서 거의 50,000명이 돌아갔다(스2:2-65; 느7:7-66). 그들은 주전 516년경 다리오의 통치 제6년에 두 번째 성전의 기초를 놓았다. 그로부터 58년이 지난 뒤에 에스라는 7,000명을 이끌고 바빌론에서 유다로 돌아갔고 그 이후에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부임하여 성벽을 세우고 사람들을 개혁시키는 일을 하였다. 그의 수고의 결과는 그리스도 때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유다의 귀환 지도 참조(33).
야곱의 후손들 가운데 자기가 어느 지파에 속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유다와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상속의 땅에서 옮겨져서 이방인들 가운데로 흩어졌고 따라서 하나님만이 그들이 어느 지파에 속하는지 알 것이다. 어찌 되었든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유다와 에브라임의 시기(猜忌)는 떠나고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의 영화가 다시 부활될 것이다(사11:10-16; 겔37:26-28).
주후 70-71년에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한 죄로 인해 또 다시 포로가 되어 온 세상을 유랑하게 되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킬 때에 1,100,000명이 죽고 100,000명이 포로가 되어 여러 지방으로 가서 노예가 되었다고 기록했다. 모든 유대인들이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마23:39)라고 외치며 자기들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맞아들일 때에야 비로소 그들의 포로 생활이 완전히 끝날 것이다(슥13-14; 롬11:25-26). 요세푸스 참조.
2009-04-22 18:40:16 | 관리자
전쟁에서 사로잡힌 사람. 고대 사람들은 마땅히 그들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마음대로 그들에게 엄청난 박해를 가했으며 그래서 그들의 목을 밟기도 했는데(수10:24) 이것은 철저한 복종을 의미했고 시110:1은 이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요셉처럼 노예로 팔리기도 했으며 삼손과 아도니베섹처럼 몸의 일부가 잘리거나 상하기도 했다. 그들은 대개 옷이 벗긴 채 무리를 지어 쫓겨 갔으며 승리자들은 포로들 중에 많은 이들을 자로 재고 죽였으며(삼하8:2; 대하25:12) 이런 일은 종종 잔인하게 이루어졌다(삼하12:31; 대상20:3). 로마 사람들은 살아 있는 포로를 죽은 시체에 묶어서 함께 썩도록 했는데 이런 예를 알면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라는 사도 바울의 외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09-04-22 18:39:31 | 관리자
팔레스타인과 동방 땅에는 포도나무가 많았으므로 자연히 포도즙이 여러 용도의 음료로 쓰였다(에1:7; 5:6; 단5:1-4; 요2:3). 가나안 땅에서 포도가 주산물이었으므로 포도즙은 음료 헌물로도 쓰였고(출29:40; 민15:4-10) 첫 열매에도 포함되었으며(신18:4) 유월절과 주의 만찬에도 쓰였다(마26:27-29). 그래서 곡식과 기름과 함께 포도즙은 주식으로 이용되었다(시4:7; 호2:8; 욜2:19).
영어 성경에서 wine으로 번역된 말은 10여개의 히브리말과 2개의 그리스말을 번역한 것인데 이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인 히브리말 ‘야인’과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말 ‘오이노스’는 모든 종류의 wine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말이다(느5:18).
히브리어, 그리스어, 영어에서 wine은 동형이의어(homograph)로 ‘포도즙 틀에서 갓 짜내어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과 ‘시간이 지나 발효된 포도주’의 의미를 다 포함하므로 용례별로 구분하여 번역하여야 하되 특별히 성경이 분명히 술을 금한다는 사실과 앞뒤 문맥을 고려하여 번역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창세기 14장에 나오는 멜기세덱은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데 이런 인물이 성도에게 그것도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술을 준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합당하지 않다. 또한 요한복음 2장의 가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서 술을 만들어 주신다는 것은 그분의 신성과 속성을 고려할 때 결코 맞지 않는다. 주의 만찬 등에 쓰이는 wine도 마찬가지이다.
특별히 주의 만찬에 사용되는 wine은 누룩이 들지 않은 빵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순수한 피를 상징하는 포도즙 즉 ‘누룩이 들지 않은 순수 포도 주스’여야 한다. 포도주는 이미 누룩이 들어가서 포도즙이 발효된 것이므로 순수한 그리스도의 피를 나타낼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성경대로 믿는 무리들이 이런 이유로 오직 포도 주스만을 사용한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영향을 받은 몇몇 프로테스탄트 교단들만이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전통을 따라 포도주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큰 잘못이다. 실로 성경은 마지막 만찬에서 주님께서 사용하신 음료가 ‘포도 열매’라고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마26:29; 막14:25; 눅22:18).
포도를 짜서 주스를 만드는 틀은 winepress인데 이 경우도 포도주 틀이라 하면 맞지 않고 포도즙 틀이라 해야 한다. 포도를 짜면 당연히 포도즙이 나온다. “그 천사가 자기의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모아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즙 틀 속에 던지니”(계14:19).
옛날에는 포도즙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포도즙을 끓여 쨈같이 만들었으며 필요할 때마다 이를 물에 풀어서 사용하곤 했다.
2009-04-22 18:38:58 | 관리자
성경은 알코올이 들어간 포도주를 직간접적으로 정죄하며 술로 인한 재난과 피해를 자주 언급한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언급될 때에 포도주는 죄와 수치의 상징으로 쓰였고 그 이후에도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였다(창9:20; 19:31-36; 삼상25:36-37; 삼하13:28; 왕상20:12-21; 에1:10-11; 단5:23; 계17:2). 포도주 혹은 술은 사람을 속이며 조롱하게 하는 것이며(잠20:1) 재난을 불러오고(잠23:29-35) 슬픔을 가져오며(사5:22) 실수하게 하고(사28:1-7) 어리석은 일을 하게 한다(사5:11-12; 56:12; 호4:11). 그래서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으며(레10:9; 민6:3) 그리하는 것은 사악한 자의 특성으로 나와 있고(욜3:3; 암6:6) 술 취하지 말 것에 대한 경고도 여러 차례 들어 있으며(삼상1:14; 잠23:31; 31:4-5; 딤전3:3) 다른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저주받을 일로 되어 있다(합2:15). 한 마디로 성경은 금주를 명하며 다니엘과 레갑 사람들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아야 할 이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렘35:14; 단1:8). 사도 바울도 이와 같은 원리를 신약시대 성도들에게 그대로 피력하고 있다(롬14:21; 고전8:13). 포도즙 참조.
2009-04-22 18:38:12 | 관리자
포도나무 참조.
2009-04-22 18:37:39 | 관리자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여러 종류의 포도나무가 많았으며 성경에서도 처음부터 포도나무가 언급된다(창9:20; 14:18; 19:32; 욥1:18; 신8:8). 성경은 또한 십마와 에스골의 포도나무를 극찬한다. 이집트의 포도(창40:11)는 작았으므로 에스골 골짜기에서 큰 포도를 처음 본 이스라엘 정탐꾼들은 매우 놀랐다(민13:23). 족장 야곱은 죽으면서 유다의 땅에 많은 포도나무가 있을 것을 예언하였다(창49:11).
모세의 율법은 포도나무를 심고 5년이 지나서 열매를 먹을 것과(레19:23-25) 안식년에 포도를 따지 말고 가난한 자들에게 줄 것을 명한다(출23:11; 레25:4-5, 11; 19:10; 신24:21). 또 여행자는 언제든지 포도원에 들어가 먹되 가지고 가지는 말 것을 요구하고(신23:24) 4년 동안 열심히 수고하여 포도나무 열매를 얻게 된 사람은 전쟁에서 싸워야 하는 의무를 면제할 것을 규정하였다(신20:6).
유대인들은 대개 작은 산의 비탈에 돌을 주워 내고 가시나무 등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포도원을 만들었다(렘31:5; 사5:1-6; 시80:1-19; 마21:33). 또 포도원을 세 주는 일도 있었고(마21:33) 좋은 포도원은 1,000그루의 포도나무가 있어서 1,000세겔의 임대료를 지불해야 했다(사7:23). 포도원은 아주 흔하였으므로 여러 예화나 비유에 등장한다(삿9:12; 마20:1; 21:28). 나봇의 포도원(왕상21:1-29)은 부유한 자가 가난한 자의 소유를 무자비하게 빼앗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이 되었다. 포도가 익을 때에 쓰다가 후에 버려진 포도원 망대는 황폐함의 상징이었다(시80:12-13; 아2:15; 사1:8). 시편 80편의 포도원 풍유는 하나님께서 심고 가꾸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잘 보여 준다.
팔레스타인에서 포도 수확은 밀 수확과 타작이 끝난 뒤에 이루어졌다(레26:5; 암9:13). 처음 익은 포도는 6월 이후에 거두어졌으며(민13:20) 그 뒤로 약 4개월 동안 포도 수확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포도는 9월경에 거두어져서(렘6:9) 포도즙 틀에서 눌려 즙이 되었다(계14:18-20). 땅에 판 포도즙 틀에서 포도를 밟는 일은 큰 노동이었지만 사람들은 기쁨에 차서 노래를 부르며 이 일을 하였다(렘25:30; 48:33). 우리 주님은 재림하시면서 진노의 포도즙 틀을 홀로 밟으심으로 자신의 원수들을 처벌하실 것이다(사63:1-3; 계19:15). 포도 수확 시기는 희락의 때요(사16:9-10) 또 종종 우상을 숭배하는 때였다(삿9:27).
히브리 사람들은 포도를 말려 건포도를 만들기도 하였으며 아비가일은 다윗을 위해 건포도 100송이를 예비하였고(삼상25:18) 시바도 다윗을 만나서 같은 양의 건포도를 주었다(삼상30:12; 삼하16:1; 대상12:40). 포도즙 참조.
우리 주님은 “내가 포도나무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유대인들이 너무나 익숙한 사실을 들어 자신과 자신의 백성의 하나 됨을 보여 주셨다(요15:1-8).
2009-04-22 18:37:12 | 관리자
팔레스타인의 포도는 맛이 좋고 컸다(민13:24). 포도는 있는 그대로 여러 용도로 쓰였고 햇볕에 말려서 저장되기도 했으며 부대에 담아 포도즙으로 저장하여 일년 내내 즐거운 용도로 쓰기도 했다(민6:4). 모세의 율법은 첫 3년 동안 포도를 따지 못하게 했고 또한 거두어들일 때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얼마를 남겨 두게 했으며(레19:10, 23) 남의 포도원을 지날 때에 조금은 따서 먹을 수 있으나 가지고 가지는 못하게 하였다(신23:24). 이런 것을 통해 우리는 모세의 율법이 참으로 인간적이었음을 볼 수 있다. 포도가 없는 포도원은 종종 황폐의 상징이었다(사17:6; 24:13; 옵5). 포도즙 참조.
2009-04-22 18:36:19 | 관리자
갓난아이를 감싸기 위한 사각형의 천(욥38:9; 겔16:4; 눅2:7, 12). 아기는 보통 포대기에 대각선으로 뉘고 머리와 다리 부분의 포대기를 접어서 미라 형태로 만들고 끈으로 묶었다.
2009-04-22 18:35:44 | 관리자
있어 온 풍습, 제도, 법규, 기관 따위를 없애 버리다.
2009-04-22 18:35:17 | 관리자
전에는 주로 폐결핵에 대해 사용되었으나 전반적으로 소모성질환을 일컫는다(레26:16; 신28:22).
2009-04-22 18:34:45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