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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아직 저런 분이 계시는군요. 정말 경이롭고.. 내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영적 복이 얼마나 대단하고 귀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예전에 이은희 자매님께서 올리신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그 아름다운 어린이 생각이 나네요!
2010-04-13 22:43:33 | 김용묵
성경적으로 목사(감독)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목사(목자)였습니다. 목자 없는 양들은 자라지 못합니다. 모두가 형제이지만 모두가 설교를 하지 않습니다. 설교가 없는 교회는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적인 목사를 만나기가, 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돈이 개입되고 욕심이 개입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풀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도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사심없이 보려고 하면 대부분의 문제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사람인지라 그게 잘 안되네요. 그래서 자비량 목회를 하면 이 문제를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사람마다 다 다르지요. 그저 주님의 긍휼을 바랄 뿐입니다.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경험이 없이 설교하는 것 이것이 현대 목사들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선포하겠다고 작정하고 연구하면서 다른 선각자들의 글을 읽고 성경 전체의 메시지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설교할 때 그분의 영광이 나타나지요. 이런 것이 없으면 목사와 양들에게 모두 치명적인 절망이 오게 됩니다. 목사! 쉬운 직분(officei)이 아닙니다. 일단 인생의 밑바닥에 갔다 와야 설교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뇌이며 겨우 준비할 때 주님의 은혜로 하게 됩니다. 김남준 목사님의 책들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바른 목사 상이 나와 있습니다. 그분의 신학(종말론 등)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성도의 성화와 목사의 자세에서는 이 세상 누구보다 잘 가르칩니다. 개인적으로 그분의 설교보다 글이 더 좋습니다. 샬롬.
2010-04-13 22:15:00 | 관리자
영국의 복음주의 설교가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설교야말로 사람의 소명 중에 가장 고귀하고 위대하며 영광스러운 소명'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관여하시는 하나님께서 주님의 교회의 강단에 세울 목자를 구별해 놓지 않으실리는 만무하고다 봅니다. 문제는 설교자라는 위대한 사명을 저버리고 강단을 세속적인 것과 욕망이 분출하는 무대로 변질시킨 목자들이겠지요. 교우들끼리 말씀을 나눈다는 평신도교회가 인간의 눈으로는 발전된 교회 모델로 보여질지도 모르겠지만 말씀의 위대한 권위마저도 낮추어 버릴 치명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왜곡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성을 지키고 그 말씀 그대로를 선포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강단을 찾아 나서는 것이라 봅니다. 자신이 다니던 교회라서 아무 고민도 갈등도 없이 주일마다 성경책 챙겨 습관적으로 교회로 나아가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주님이 인정하시는 강단을 찾아 떠나는 그 모습을 하나님이 얼마나 이쁘게 보실까 상상해봅니다. 저도 몇 개월 전 부터 성경지킴이 사이트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소박하게 덧글로 인사드립니다.^^ 변질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에 간절해있는 사람들에게 인터넷공간에 이런 귀한 말씀의 장을 여시고 운영하시는 정동수목사님 그리고 돕는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2010-04-13 21:23:45 | 김대용
올리신 내용의 글은 '성경에 대한 믿음'을 파괴시키려는 자들의 속임수일 뿐입니다. 구약족보에 없는 이름일지라도 신약에 기록되어 있으면 실제로 존재한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학자들의 말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정확히' 읽고 기록된 그대로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철학이나 헛된 말들에 속지 않는 비결입니다. 이해하고 못하고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아무도 헛된 말들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엡5:6a).
2010-04-13 20:23:39 | 김형식
작년말에 저도 교회를 옮기면서 독립침례교회를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처음 방문하여 설교를 들었습니다. 예배후에 집에 오면서 아내가 제게 얘기하더군요(하나님의 종인 목사님에 대해 서로 비교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죄송하게도 잠깐하겠습니다), "이전교회 목사님 보다 말씀중심이고 군더더기가 전혀 없었다". 그 자매님도 이런 느낌 아니었을까요 ? 그후로 이 교회에 나가게 되고 이전 교회에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던 사람이 지금은 자발적으로 일을 있으면 하려고 하고 이전 교회 생활에서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설교 말씀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김문수 형제님 책도 아내가 주위분들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이게 킹제임스 성경이라고" 적극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성경에 근거한 말씀 선포를 들으면 사람이 변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2010-04-13 19:10:50 | 김학준
지난 주에는 예배를 마치고 한참을 서서 울고 있는 한 자매님을 보았습니다. 예쁘게 생긴 딸아이는 엄마를 맴돌며 위로하고 있었고 지긋이 미소를 짓고 있는 아빠가 옆에 든든이 서 있었는데 ... 민망할 것 같지만 그 눈물의 원인이 무엇일지 궁금해져서 진정되기를 기다렸는데 온 가족이 함께 이곳에 와서 예배드리게 된 것에 대한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과연 나는 언제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었는가? 또한 온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는 것에 대한 감동이 있었는가? 딱딱하고 무뎌진 제 마음이 부끄러웠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자매님댁은 이동원목사님이 시무하는 지구촌교회를 다녔다고 합니다. 이동원목사님은 지성과 인품이 있는 분으로 평판이 나 있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분이지만 우리나라에 관상기도를 설파하고 두 날개 운동을 펼친다는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만 있었는데 오늘은 그곳의 동정이 어떤지 궁금해져서 그 교회 홈피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지구촌교회는 ‘3·3·3 비전’ 달성을 자축했다.  교회 설립 때부터 품어온 성도 3만명, 평신도 선교사 3000명, 해외 선교사 300명 양육의 바람을 실현한 것이다. 이 목사는 이어 새로운 ‘2020 비전’인 ‘동역으로 펼쳐가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축제는 연합 합창단 700여명의 ‘할렐루야’ 찬양과 꿈과 비전을 담은 오색 풍선들을 하늘로 띄워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곳에 모였던 수 많은 군중들은 과연 어떠한 마음이었는지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모임이었는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만큼의 비중을 두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하더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안일하고 편안하고 자유롭고 게을렀던 제가 자다가 깬 사람처럼 정신이 번쩍 뜨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 혹시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위해 쓴웃음과 괴로움을 겪는 또 다른 가족이 있는지 찾아 헤메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전쟁의 후방에서 전방의 긴박감을 조금이라도 나누어야 할 것 같아 부족한 글솜씨지만 올려봅니다.   (부족한 글솜씨라 용기내지 못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저를 시작으로 해서 용기내시라는 의미도 담으면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2:3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13 18:38:50 | 정혜미
(마 1:11) 요시야는 여고니야와 그의 형제들을 낳았는데 그 무렵에 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가니라. 원래 역사적 사실대로 서술하자면, "요시야 - 여호야김 - 여고니야" 가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집트왕 파라오느고가 세운(대하 36:4, 왕하 23:34) 꼭두각시 왕 여호야김을 다윗 왕가를 계승한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메시야 계보에서는 삭제했습니다. 여호야김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빠지고 대신 요시야의 손자인 여고니야가 들어가 있습니다. (참고: 게시물 166번, "시드기야는 여호야긴의 숙부인가, 형제인가?")
2010-04-13 18:07:36 | 김문수
이 문제에 대해서 논증의 글을 올려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괜히 쓸데없는 억측과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가 있어서 성경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기초하여 답하겠습니다. -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지만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롬3:4). 그런즉 위에서 성경을 공격하는 신학자나 문서비평가들의 말이 거짓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입니다. - 성경은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쓴 글이 아니라, 성경 기록은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주신 것입니다(딤후3:16). 성경의 각 단어들은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주신 것이므로 누가복음 3장에 게난이 들어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단어를 주셨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기록자가 어느 문서를 보고 족보를 계산했느니, 이것이 어느 사본에서부터 등장하느니, 필사가들이 제대로 옮겨 적었느니 못 적었느니 하는 논의는 믿을 수도 없거니와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 - 창세기와 역대기의 기록이 누가복음하고 일치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무엘하 11장에는 다윗의 간음사건이 나오는데 역대기에는 안 나옵니다. 그렇다고 역대기의 기록에서 다윗의 간음사건을 필사가들이 삭제했다거나 사무엘기에 누군가가 다윗을 모함하려고 있지도 않은 간음사건을 집어넣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각 기록들은 각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적과 기록하신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 누가는 모든 일을 처음부터 완전히 이해하고 차례대로(눅1:3) 하나님께서 주신 단어들로 기록했습니다. 누가가 창세기나 역대기의 족보를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기록한 것은 하나님께서 게난이라는 단어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 아르박삿은 살라를 낳았는데 여기서의 낳았다(begat)는 것은 "출산"(bear)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상속 관계가 법적으로 성립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관계는 대부분 자녀 출산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유다의 며느리가 낳은 아이가 유다의 아이로, 요셉의 두 아들들이 야곱의 아들이 되는 것처럼 인준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 누가의 족보 기록은 사람으로부터 하나님께로 거슬러 올라가는 계보입니다. 이것은 사실적인 관계를 담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창세기와 역대기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게난(가이난)이 법적 상속자로 적합하지 않다고 여기시고 그를 계보에 넣어주지 않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2010-04-13 17:55:50 | 김문수
제 아내가 성경 공부중  누가 복음 족보에 가이난(게난) 2번 나오는데 아르박삿의 아들 셀라는 성경의 오기 라고해서 성경이 잘못될리가 없다고 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창조과학 홈에서 찾았습니다. 무엇이 잘못된건지 알고 싶습니다.    아르박삿의 아들은 누구인가? : 가이난, 셀라? (Who was Arphaxad’s son: Cainan or Shelah?)  Answers Magazine    만일 당신이 성경 관련 잡지에서 족보 도표를 대조해 본다면, 대부분의 현대 번역 성경들에 기록되어있는 누가복음 3:36절의 가이난(Cainan)의 이름이 없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당신은 이 이름이 창세기 10:24, 11:12, 그리고 역대상 1:18,24절에 있는 상응하는 족보들에도 나타나 있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왜 그럴까? 첫째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딤후 3:15-17), 이 모순은 무오 했던 성경 원본에서는 오류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이 삽입(insertion)은 후대의 70인역(Septuagint, LXX) 필사본들(비-영감된 히브리 필사본들)에서 발견되어진다. 누가복음 3:36절에 가이난이라는 이름이 삽입된 것에 대해서는 2 가지의 가능성 있는 설명이 존재한다. 첫째, 가이난은 원본 사본에는 들어 있었는데, 히브리 필사자들이 창세기와 역대상의 구절들을 필사하던 중에 이 이름을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헨리 모리스 박사가 지적했던 것처럼[1] 히브리 서기관들은 필사 과정에 매우 신중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것은 가능성이 낮은 설명이다. 또한 그 이름은 구약성경의 다른 고대 판(사마리아역, 불가타역, 가장 오래된 70인역 등)들에서도 빠져있다. 두 번째의 설명은 좀 더 설득력이 있다. 즉 누가의 편지를 필사한 70인역 필사자들이 부주의로 인해 아르박삿(Arphaxad, 아박삿)과 셀라(Shelah, 살라) 사이에 가이난을 실수로 삽입시켰다는 것이다. (사실 아르박삿은 35세에 셀라를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창 11:12). 따라서 그 사이에 가이난이 들어가는 것은 나이 상으로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나중의 70인역 필사자들이 누가복음에 있는 명단과 일치시키기 위하여 창세기와 역대상의 구절들에 아르박삿과 셀라 사이에 가이난을 삽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래리 피어스(Larry Pierce)는 이러한 설명이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AD 37/38 – 약 100)의 자료에 의해서도 지지받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요세푸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계도를 편집하기 위해 분명히 70인역을 사용했지만, 가외의 가이난을 포함시키지 않았음을 그는 입증하였던 것이다 : 만약 요세푸스가 ‘70인역(LXX)’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는 틀림없이 70인역에 기초하여 쓰여진 어떤 다른 문서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세푸스의 저술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70인역의 실수들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세푸스의 시대에는 가이난이라는 가외의 세대가 70인역 또는 요세푸스가 사용했던 문서에는 들어있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지 않았다면 요세푸스는 그(가이난)를 넣었을 것이다! 만일 70인역에 가이난의 이름이 포함되어있었다면, 요세푸스가 착오로 그것을 누락시켰거나(가능성 없음), 그 자료를 가볍게 취급하였거나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제롬(Jerome, 약 AD 347 – 419/420)은 벌게이트 성경(Vulgate, 성경의 라틴어 판)을 AD 5세기에 번역하였을 때, 어거스틴(Augustine, AD 354 – 430)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그는 70인역을 사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롬은 70인역이 너무나도 부정확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는 변동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던 히브리 텍스트(Hebrew text)를 사용했다[2].  피어스는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Julius Africanus, AD 약 180 – 약 250)로부터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프리카누스도 그가 분명히 70인역의 부풀려진 연대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대표(AD 220년에 쓰여짐)에 가이난을 누락시켰다. 가외의 가이난의 추가는 AD 220년 이후의 어느 시점에서 이루어졌음에 틀림없다. 피어스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 ... 요세푸스는 크리스천 저술가가 아니었고 누가복음 족보의 필사본들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이지만, 이에 반해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그의 아리스티데스에게 보낸 서신(Epistle to Aristides) 3장에서, 그는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족보에 대해 철저히 연구했다. 사실 그는 누가복음 3:25절을 인용하고 있었다[3]. 따라서 아프리카누스는 누가복음과 마태복음 사본들을 둘 다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프리카누스가 누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 기록된 족보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누가복음의 사본들에 이 가짜 가이난이 들어 있었다면, 아프리카누스는 분명히 그것을 포함시키기 위해 그의 연대기를 수정했을 것이다. 사실 현존하는 가장 초기의 누가복음 사본이라고 알려진 P75 (AD 175-255년 사이[4])라 불려지는 보드머 소장품(Bodmer Collection)의 파피루스 사본(papyrus codex) 102 페이지(원래는 144 페이지)에는 가이난의 이름이 누락되어 있다. 그래서 누가복음 3:36절에 있는 내용은 AD 220년 이전에는 존재했다고 볼 수가 없다. 또한 개혁주의 침례교파 신학자인 존 길(John Gill)은 누가복음 3:36절에 가이난이 더해진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 이 가이난은 창세기 11:12절에서 모세에 의해서 언급되지 않았고, 구약의 어떤 히브리어 사본들에도 나타나 있지 않으며, 또한 사마리아어 판(Samaritan version)이나, 탈굼어 판(Targum version)에도 없다. 또한 요세푸스도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가계의 족보가 반복되고 있는 역대상 1:24절에도 없고, 베자(Beza)의 가장 오래된 누가복음의 헬라어 판에도 없다. 그 이름은 정말이지 현대의 70인역에만 나타나고 있는데, 원래는 거기에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 자료로부터 누가가 취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의 어떤 부주의한 누가복음 필사자의 탓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권위 있는 70인역에 부주의하게 삽입되어진 그때부터, 많은 헬라어 판들(Greek copies), 라틴어 판인 벌게이트(Vulgate Latin), 모든 동방 판들(Oriental versions), 심지어 그들 중 가장 오래된 시리아어 판(Syriac)에도 가이난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아르박삿의 아들이며 셀라의 아버지가 되는 그러한 가이난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성경의 어느 사본에도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5]. Footnotes[1] Morris, H.M., The Genesis Record, Baker Book House, Grand Rapids, MI, 1976, p. 282. [2] Pierce, L., Cainan in Luke 3:36: insight from Josephus, CEN Technical Journal 13(2):76, 1999. [3] Ante-Nicene Fathers 6:126, Hendrickson, Peabody, MA, 1994. [4] Geisler, N.L. and Nix, Wm. E., A General Introduction to the Bible, Moody Press, Chicago, revised and expanded, pp. 390–391, 1986. [5] Commentary available online.   *참조 : What about Cainan?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8_2/j18_2_41-43.pdf Some remarks preliminary to a biblical chronology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56   출처 : AiGURL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1/n2/chronology-conundrums번역자 : IT 사역위원회[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1:1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13 16:39:08 | 허광무
본 사이트는 성경과 관련된 글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니 가능하면 정치적 색채가 있는 글은 게재하지 말기 바랍니다.   저는 이북의 김정일 세력을 극도로 미워합니다. 그것은 마귀의 세력입니다.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아주 싫어합니다.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 아주 이상하지요.   물론 북쪽 동포들의 아픔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아버지도 이북 사람(황해도 안악)으로 공산주의의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런 일로 다툼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잘 판단해서 올려주세요. 이런 종류의 글이 예고 없이 지워져도 용서하세요.    부탁합니다.
2010-04-13 16:38:20 | 관리자
기존 교회의 목사제도 등에 염증을 느낀 분들이 너무 과도하게 반발하는 것이 바로 그런 대안교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평신도'라는 말 자체가 그런 것을 구분짓는 말입니다. 목사자격이 있는 분은 그 교회에 갈 수 없나요? 말씀하시는 곳이 지방교회인지 가정교회, 형제교회.. 용어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성경대로 하면 됩니다. 신약에 해당 구절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김재근 형제님이 찾아 주셨네요.^^ 목사님이시지만 이렇게 형제님이라고 부를 수 있답니다. 성경대로 하면 자유가 생깁니다. 아무튼 (평)신도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닌, 말씀을 맡아 가르치고 이끄는 목자는 꼭 필요합니다. 물론 교단 등에서 지정한 학교를 졸업하고 안수받는 사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다음은 목사에 대한 성경사전 검색 내용입니다. 어떤 결정을 하시든 선택에 도움이 되시기 바랍니다. 목자. 이것은 그리스도의 양 떼를 먹이고 보호하는 직무를 가진 사람으로 감독과 장로와 같은 사람이다(엡4:11; 벧전5:2). 목자, 감독, 장로 참조. 신약성경에서 목사에 해당하는 그리스말은 ‘포이멘’이며 이것은 18군데에서 모두 목자로 번역되었다(마9:36; 막6:34; 눅2:8; 요10:11; 히13:20; 벧전2:25 등).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자신의 교회를 위해 목사 즉 지역 교회의 목자라는 선물을 주셨다(엡4:11). 목사는 감독으로 교회를 감독하며(빌1:1) 장로로 위엄 있게 치리하고(딛1:5) 목자로 꼴을 먹이는 의무를 수행한다(엡4:11).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요10:11), 큰 목자(히13:20), 우리 혼의 목자와 감독(벧전2:25), 목자장(벧전5:4)이시며 따라서 목사는 하늘에 계신 그분을 대신해서 땅의 성도들을 먹이는 작은 목자 혹은 보호자를 뜻한다. 목사의 자격은 딤전3:1-7과 딛1:6-9에 나와 있다. 어떤 이들은 엡4:11을 잘못 해석해서 목사, 교사 등이 직분이 아니라 선물(은사)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성경의 문맥을 벗어난 자의적 해석이다. 성경은 그 부분에서 분명하게 교회에게 목사, 교사 등의 선물을 주셨음을 말하며 결코 개인의 선물(은사)을 말하지 않는다. 목사는 집사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교회에게 주신 직분(office)이다(딤전3:1-7). 목사는 권위를 가지고 모범을 보이면서 감독하며 지역 교회의 양들을 이끌고(히13:7, 17; 딤전5:17; 살전5:12) 먹이며(엡4:11-16) 양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교회는 목사를 존경하고 신뢰하며 사랑하고 후하게 대우하며 기도해 주고 격려하며 감사히 여기고 그의 필요를 채워 주어야 한다. 한편 구약성경에서도 pastor는 목자이며 또 다른 목자를 나타내는 shepherd와 구분하기 위해 목양자로 번역되었다(렘2:8; 3:15; 10:21; 23:1-2). 목자 참조.
2010-04-13 15:23:37 | 김재욱
.... 더러는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에베소서 4장 11절] 선포자(preacher)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로마서 10장 14절]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이방인들과 선포자(preacher)와 사도와 교사로 정하여졌느니라. [딤후1:11]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고 감독하되(oversight).... [베드로전서 5장 2절]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히브리서 13장 17절]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을 기억하며... [히브리서 13장 7절] 남자가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으리요? [디모데전서 3장 5절]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overseer)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장 28절]
2010-04-13 15:11:20 | 김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