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델의 중에서 "내 주는 살아계시니"를 좋아했답니다. 그게 찬송가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찬송가를 찾아보니 관련 성경구절이 욥기 19:25-26이 나와서 그걸 즐겨 암송했답니다.
나중에 킹제임스성경 찾아보고 나서야 개역의 그 구절이 얼마나 잘못된 내용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살아계신 구속자이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나의 몸은 썩어 없어져 부활도 못하고 내가 육체 밖에서 영으로만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번역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은 몸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 살갗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010-01-12 00:47:59 | 김문수
이 설문은 애초에 구원을 KJV 교회에서 받고 여기서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하신 분에게는 해당 사항 없습니다.
기성 교회를 다니다가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 알게 된 초창기 시절을 떠올려 보십시오.(없음) 말고, 내가 알던 구절과 KJV 구절이 이렇게 다르다는 걸 알게 됨으로써 가장 놀랐던 성구는 무엇이었습니까?
저의 경우는 그 유명한 요일 5:7이라든가, 딤전 3:16, 요 3:36도 아닙니다.저는 그 당시는(2001~02) 아직, 성경에 그런 유명 구절이 있는 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
제가 깜짝 놀라는 체험을 한 구절은 바로 마 5:22입니다.마태복음의 산상 설교는 비교적 유명한 구절인 데다 신약 성경을 마태복음부터 읽기 시작하면 비교적 금방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저도 나름 중학교 때부터 대략의 내용을 알고 있었습니다.자기 형제에게 화만 내도, 바보 멍텅구리라고만 불러도 공회에 끌려가고 불지옥에 심판을 받는다는데 얼마나 무서운 내용입니까? ‘어 그런데 예수님도 화를 내시지 않았나?’ 당연히 그렇게도 생각했습니다. 중학생의 지적 수준만으로도 말입니다.
그 당시는 뭐 어차피 주변에서는.. 성경 너무 많이 읽으면 이단 되고, 그런 건 신학자들이 공부하는 내용이니 너무 파고들 필요 없다, ‘없음’은 그냥 후대에 추가된 내용이고....어차피 각 교파마다 다 자기네 교리만 옳다고 하는데, 우리가 성경을 다 이해하고 해석해 내는 건 불가능이니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이런 식이었으니 제가 더 뭐 따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까닭 없이’가 저를 살려 줬습니다. 할렐루야!
저 말고 다른 분들의 간증을 들어 보면, ‘예수님 명령에 순종을 안 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떨어진다니!’(요 3:36), ‘이제 신령한 젖 먹으면서 구원에 이를 때까지 한참 자라야 되는구나!’(벧전 2:2)처럼..변개된 성경 때문에 생사람을 잡을 뻔하던 기가 막힌 사연이 엄청 많습니다.행 12:4 이스터 하나만 딱 보고는 무릎을 치고 ‘그럼 그렇지, 이게 진짜 정확하고 무오한 성경이구나!’ 바로 깨달았다는 간증도 들었습니다.
김문수 형제님께서 연재하는 글을 통해 조목조목 지적하시는 것처럼, 변개된 성경엔.. 정말 ‘정신줄을 놓은’ 번역 많습니다.바른 성경을 통해.. 구원은 받았으나 성경관에 막혀 지금까지 영적 성장이 지체된 사람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부디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묻습니다.여러분의 knockdown 성경 구절은 무엇입니까? 간증을 들어 보고 싶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11:2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12 00:33:50 | 김용묵
그리스도인의 기도 상식어떤 자세로 기도하는가?개인기도공중기도기도 응답 등
● 유튜브동영상 바로보기 => http://youtu.be/-YqIBDSQAs0
2010-01-11 18:04:56 | 관리자
그리스도께서 세운 신약 교회의 정신은 무엇인가?
1. 율법 시스템(율법주의)에서 벗어나 영적인 자유로 섬기는 것2. 전 성도 제사장직, 모두가 형제이다.3. 물질적인 성전이 아니라 신자가 성전이 된다.4. 자발적인 헌금5. 말씀만으로 충분한 교회
이런 것이 확실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내 교회’에서 멀리 있다.교회인 것 같은데 교회가 아니다.
우리는 확실히 구원받았는가?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내 교회에 얼마나 가까이 근접해 있는가?
2010-01-11 17:57:18 | 관리자
!!! 결혼식 대신에 "혼인 예배"란 말도 쓰죠.
인간의 관혼상제라도, 이를 주관하고 이로 인해 영광 받으실 분은 하나님임을 인정하고 절차 중에 찬송과 기도, 목사님 말씀 선포가 들어가면 '예배'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 같습니다. ^^ (그냥 제 의견입니다.)
2010-01-11 14:56:00 | 김용묵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10-01-11 11:31:37 | 조두현
소천 기념 예배 1번만 한다. 일단 1번에는 동감이 가는데 그것을 예배라고 해야 할까요?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두고 두고 생각해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2010-01-11 10:13:41 | 관리자
김 형제가 재치있게 글을 쓰는 것을 보니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사람을 살리는 글을 더 많이 써 주세요. 샬롬.
2010-01-11 10:10:41 | 관리자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2010-01-10 23:07:38 | 조두현
재미있고도 얼른 이해가 가는 비유인 것 같습니다.^^
율법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2010-01-10 13:08:17 | 김재욱
듣자하니 오늘날에도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그 율법주의자들의 후예가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의 계명에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하는데 십계명 중에 왜 안식일만 빼느냐..예수님도 율법을 다 성취하러 오시지 않았느냐,그 법은 네 가까이에 있고 네가 능히 지킬 수 있다고 신명기에 명시돼 있는데 왜 자꾸 불가능하다는 쪽으로만 가느냐..이런 식으로 따지고 들면 참 할 말이 없습니다.
(일부만 예를 든 건데... 성경 구절들을 잇는 논리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힙니다.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충분히 생길 법도 합니다)
율법 조항이 "겉보기로 보기에" 얼마나 고차원적이고 좋은 법인지 그쪽으로만 접근하면 영락없이 율법주의로 빠지기 쉽습니다.
비유를 들자면 이렇습니다.제대하고 민간인 된 지가 언젠데 그렇게도 군인 행세하고 싶으면 혼자 그렇게 살면 됩니다.민간인이라도 군대식으로 살면 육신의 건강에 좋으면 좋지 나쁠 것 하나도 없습니다.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아주 규칙적으로 살면서 심신 단련하고.. 생필품도 아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치약 하나만 있으면 청소 다 하고.. ^^ 누가 부르면 관등성명 "병장 ○○○!"까지 해 주고..
그런다고 해서 국가에서 군인으로 알아 주는 건 아닌 게 문제일 뿐이죠.국가에서 현역 시절처럼 총기라도 지급해 주는 것도 아니고, 집 근처에 무슨 초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제 총까지 만들어서?? -_-)
더구나 남한테 이런 소리는 더욱 하지 말아야겠습니다.민간인 된 뒤라도 군기 빼지 말고 바르게 살아야 민간인 신분이 유지되지, 어영부영 굴었다간 다시 군대로 끌려간다거나..민간인이라도 아주 심한 중죄를 지으면 경찰이 아닌 헌병이 와서 잡아간다거나.. 군사 재판에 회부된다거나..그런 식으로 말입니다.
또 다른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죽을 병을 고쳐 준 의사가 너무 고마운 나머지 "환자 시절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부과됐던 행동상의 각종 제약--이것저것 먹지 말고, 매일 무슨 약 반드시 먹고, 무슨 행동 하지 말고...--과 주의사항들을 앞으로도 모두 이행하면서 살겠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와는 또 반대로, 그런 것들을 이제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을... "앞으로 술 담배에 쩔어서 살아도 되고 진짜 내 마음대로 건강 따윈 내팽개치고 살아도 된다" 와 동급으로 알아듣는 것도 말귀를 못 알아들은 멍청한 짓이지요.
그리스도인과 율법의 관계도 바로 이런 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바람직하냐 안 하냐의 차원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신분의 차이이고 위상의 차이입니다. 완전히 차원이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이 아니라 아예 율법을 근본적으로 초월한 법 아래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 덧..이 글을 쓰고 나서 느끼는 건데,율법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자기 의'는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이 갖고 있는 '자기 의'하고 아주 비슷한 맥락인 것 같습니다."요즘 군대가 군대냐? 애들이 다 군기가 빠졌어. 내 때는 말이야.." 이런 식.. ㅡ,.ㅡ;;[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11:2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10 09:15:37 | 김용묵
너무나 당연한 내용의 글입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님께서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후,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저렇게 애곡하고 성대하게 장례식 치러 주길 원하셨겠습니까?
이 글 읽은 지는 꽤 오래 됐는데 이제야 keepbible에서 다시 접하네요. ^^
저희 교회에서는 "소천 기념 예배" 딱 하나만 있습니다.
한편 주일학교 시절엔, 목사님에게서 "크리스천에게는 졸업이 없고 수료만 있다"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마치 크리스천의 삶은 마태복음 1장처럼 '낳고'만 있지, 창세기 5장처럼 '죽으니라'가 없다.. 그런 맥락인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2010-01-10 09:01:02 | 김용묵
옳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장례식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잠시 있는 이별을 슬퍼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시신을 무덤에 넣는 일 외에는 없습니다. 성경에 근거한 장례식 모범 절차가 빨리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죽은 자를 위해서 애곡하고, 제사상을 차리고, 꽃을 바치고 하는 일은 하늘나라에 있는 성도들이 보기에는 참 민망하고 딱한 일이 될 것이며, 지옥에 있는 자들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무익한 일이 될 것입니다.
2010-01-09 15:41:14 | 김문수
요즘 목회를 하면서 장례식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입관 예배, 발인 예배, 하관 예배, 장례 예배, 추모 예배 등
죽은 사람을 보내기 위한 절차성 예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것들은 우리 조상들의 유교 혹은 불교 풍습을 그저 이름만 바꾼 것입니다.
"이런 것이 과연 기독교의 장례일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조만간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이 문제를 다루어서 교회의 규칙을 세우려고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므로 장례예배가 아니라 장례식이라고 해서 한 번만 예식을 행하는 것이 죽은 자와 산 자들을 위해 필요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러던 차에 전주 소망침례교회 목사인 김재근 형제가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좋은 내용이라 공유하고 싶어 올립니다.
좋은 의견이 있으면 답글도 주세요.
감사합니다.
죽음의 종교와 생명의 종교
기독교와 장례식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기독교식' 장례의식이라는 것이 참 어색합니다.
조문을 가게 되면 빈소에서 어떤 의식을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신앙은 참으로 죽음의 의식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장례식의 종교의식이 실제 죽은 자를 위한다기 보다는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하는 것이기에 '거창'할 수록 보기도 좋고 '위로'도 됩니다.
정말 죽음의 의식은 '죽은 자들'이 거행해야 제격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종교들은 죽음의 의식이 거창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잃어버린 인간의 눈으로만 보자면, 화려하고 거창한 의식속에서 조금이라도 위로를 얻을 것입니다.
49재를 거행하고 나니 이제 사랑하는 가족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종을 치고, 향을 피우고, 물을 뿌리고, 목탁을 두드리고, 경을 외우고.....
그렇지만 기독교에는 죽음의 의식이 없습니다.
사실 기독교식 장례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생명의 종교'이기 때문이죠.
우리 주님은 생명이십니다.
그분이 장례식과 대면하면 언제나 죽은 자들이 살아났습니다.
생명이신 분께서 죽음의 의식을 가르치실리는 만무합니다.
기독교식 장례식을 말하자면, 죽음 앞에 슬퍼하고, 가족을 위로하고, 시신을 장사지내는 일입니다.
시퍼렇게 살아 계신 생명이신 분을 믿고 신뢰하는 신자들은 세상이 만들고 세상이 거기서 이득을 취하고 거짓 위로를 만들고 있는 '죽음의 의식'에 압도당하거나
종노릇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생명이신 분께서 속히 오셔서
아직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죽음'에게 죽음으로 응징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11:2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09 14:37:05 | 관리자
주님의 부활 이후 행적은 성경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그분께서 수난을 받으신 뒤에 또한 자신이 살아 계심을 절대 확실한 많은 증거들로 그들에게 보여 주시고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것들을 말씀하시고
- 사도행전 1장 3절
2010-01-09 11:21:30 | 김재근
학구적이고 거룩한 궁금증이 많은 자녀를 두셨군요~^^
그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러 갈 때에, 보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다 잘 있느냐, 하시거늘 그들이 나아와 그분의 발을 붙잡고 그분께 경배하니 (마 28:9)
또 도마와 같이 예수님을 만져본 일이 나오지요.
단지 마리아는 주님을 동산지기로 알 정도로, 맨 처음 목격자입니다.
그런데 손을 대지 말라고 하시면서 '아직 내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으니까
몸에 손을 댈 수 있도록 하신 일들은 아버지께 갔다 오신 이후임을 알려 주시면 되겠지요.
그 '아버지께 올라가시는 일'을 마지막 승천으로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렇게 보면 마리아 이후 사람들이 주님의 몸에 손을 댄 사건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010-01-09 09:48:51 | 김재욱
김형제님의 글을 아이에게 대충 얘기했더니..이러네요. "그럼 도마에게는 예수님이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저의 대답."몰라. 답을 프린트해서 줄테니까 네가 읽어 봐." 이자매님의 글도 같이 프린트해서 줄께요. 답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빨리 해결이 되니 참 좋으네요. 아니면, 교회에 가서 바쁘신 목사님들 붙잡고 물어봐야하는데.. 그리고, 그 대답을 아이에게 충분히 전달해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이런 점에서 이 사이트는 아주 좋은 사이트네요.하하하.
2010-01-09 09:23:31 | 백화자
얼른 생각나는 한 가지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를 읽어 보셨는지요?
합본되기 전에는 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의 '십자가의 피로 용서받다' 부분입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이 나오지요.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슬피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그녀는 그분을 동산지기로 생각하고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당신이 그분을 여기서 옮기셨거든 그분을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일러 주소서. 그리하면 내가 그분을 모셔 가리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마리아야, 하시거늘 그녀가 돌이켜 그분께, 랍보니여, 하니 이 말은, 선생님이여, 라는 뜻이라.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아직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다만 내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요 20 :15~17)
예수님은 더럽혀지지 않은 보혈을 하나님의 보좌에 가져가시기 전이었고 그래서 몸에 사람의 손을 못 대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뿌리는 피(히 12:22~24)는 실제적으로 하늘에 영원히 있습니다.
예수님이 피를 하늘로 옮기시기 위해 승천하셨다는 이야기인데 40일 후의 승천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피를 옮기신 후에 다시 오셔서 자신의 몸에 손을 대고 경배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마 28:9).
반론이 있는 내용들이지만 이런 강해가 나오게 된 성경적 증거를 자세히 보여 줍니다.
아이들이 궁금해 한 시간대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밖에 성경에 없는 부분이라면 기록되지 않은 것일 뿐,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도 처음엔 주님을 못 알아 보았듯이
사람들이 모르는 여러 곳에서도 많은 필요한 사역들을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들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심지어 이 세상이라도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두기에 부족할 줄로 나는 생각하노라. 아멘. (요 21:25)
2010-01-08 13:21:01 | 김재욱
어제 밤 아이와 함께 요한복음 마지막 장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나서 베드로와 함께 물고기도 잡고, 물고기를 구워먹기도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전 가끔 설명을 해 줍니다.
길게 하면 신경질 내니까(신경질 내는 이유 - 성경읽기를 빨리 마치기를 원하는데, 엄마가 설명을 하니까 길어짐.) 짧게 하지요.
"얘, 이건 부활체에 대한 거야." 부활체에 대한 설명을 하기도 전에
"알아요." 얼른 튀어나오는 아이의 말. 설명 필요없다는 얘기이지요.ㅋㅋ.
그런데, 우리 아이가 자기의 읽을 부분을 읽고 나서는
"잠깐..엄마, 예수님은 왜 제자들 옆에 계속 붙어계시지 도대체 어디를 가시는거예요?"
저의 대답..."글쎄..만나야하는 사람들이 많을터이니.. 이곳 저곳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았을까?"
"중요한 시기인데, 제자들 옆에만 계속 계셔야하지 않나요?"
아이는 그 때가 중요한 시기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저도 궁금하네요. 도대체 제자들 옆에 계시면서 자꾸 가르치셔야지 어디를 다니셨는지..
저의 상상으로는 이 사람, 저 사람 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하려 다니시지 않았을까..상상하는데..
혹, 아시는 분 , 또는 이 부분을 생각해 보신 분... 댓글 좀 부탁합니데이..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5 12:03:4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08 13:05:07 | 백화자
당시 원자폭탄의 위력이 그 정도였으니 오늘날 핵무기의 살상 위력은 어느 정도일지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듭니다. 마지막 날에는 그보다 더 극심하고 무서운 재앙들이 이 땅에 쏟아지겠지요. 핵무기 몇 개만 각 대륙에 떨어진다고 해도 지구상의 생물 3분의 1이 비참한 모습으로 죽는 것은 정말 순간적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살아남은 자들은 더욱 더 고통에 시달릴 겁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 마지막 흰 왕좌 심판 후에는 영원한 불 호수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2010-01-08 11:30:04 | 김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