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01
정수영 목사님
목사님이 저술한 새교회사 1과 2를 중심으로 신약 교회의 발전과 타락의 역사를 공부합니다.
참된 신약 교회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 정수영 목사님의 새 교회사 1, 2를 스캔해서 자료실의 문서자료에 올렸습니다. 다운받기 바랍니다. 귀중한 책을 공유하도록 허락해 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샬롬 2012년 7월 24일
http://youtu.be/RmSP79VqVHE
2009-10-10 09:51:04 | 관리자
그 동안 밀린 과제로 남아 있던 '오순절 은사 운동 바로 알기'를 출간합니다.
말세를 당한 지금 우리는 반드시 천주교와 오순절 주의를 알아야 합니다.
이 책은 460쪽으로, 4부로 되어 있습니다.
가격은 12,000원입니다.
원하시는 분은 권당 12000원(우송료 출판사 부담) 우리은행 256-031553-12-009(정동수)으로 입금하고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주소와 핸드폰 번호를 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제1부 오순절 은사 운동의 피리 부는 사나이
1장 마귀의 지상 왕국20
2장 오순절 운동과 신비주의25
3장 은사 운동과 천주교의 연합34
4장 은사 운동과 종교통합46
5장 마귀의 거짓 복음62
6장 마귀의 음악71
7장 하나님의 부르심
부 언90
참고 문헌93
제2부
오순절 표적 부흥의 실체
8장 은사 운동의 역사
9장 은사 운동 오류의 역사116
10장 제3의 오순절 물결: 빈야드 운동
11장 빈야드 운동의 원조: 윔버
12장 마귀의 사자: 하워드-브라운
13장 왜 ‘토론토 축복’인가?168
14장 웃음 부흥의 10가지 오류
15장 펜사콜라 웃음 부흥
16장 펜사콜라 부흥의 거짓 주장
17장 웃음 부흥을 배격하는 이유206
18장 알파코스221
19장 은사 운동에 대한 총결론237
제3부
은사 주의의 오류245
부록 1 G12란 무엇인가? 247
부록 2 신(新) 사도 운동252
부록 3 열린 예배260
부록 4 입 신264
부록 5 이교도들의 종교 내에서의 웃음267
부록 6 방언과 표적271
부록 7 축사, 어떻게 하는가?296
부록 8 관상 기도302
부록 9 싱가포르 웃음 예배 현장313
부록 10 한국 목사의 빈야드 체험315
부록 11 프란시스 맥너트 신부322
부록 12 엉터리 베니 힌323
부록 13 웰빙 목사의 혼동의 세계327
제4부
성경과 역사의 가르침336
부록 14 은사주의에 대한 답변337
부록 15 예수 유일주의란 무엇인가?363
부록 16 구원의 영원한 안전 보장378
부록 17 기적들을 요구하라390
부록 18 약속들을 이용하라400
부록 19 성령님의 인도와 마귀의 인도410
부록 20 사도행전 바로 이해하기415
부록 21 오순절 운동의 역사적 고찰429
부록 22 카톨릭 영성에 중독 된 한국 교회448
역자 추천 참고 도서453
2009-10-05 16:17:17 | 관리자
그 동안 밀린 과제로 남아 있던 '오순절 은사 운동 바로 알기'를 출간합니다.
말세를 당한 지금 우리는 반드시 천주교와 오순절 주의를 알아야 합니다.
이 책은 460쪽으로, 4부로 되어 있습니다.
가격은 12,000원입니다.
원하시는 분은 권당 12000원(우송료 출판사 부담) 우리은행 256-031553-12-009(정동수)으로 입금하고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주소와 핸드폰 번호를 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제1부 오순절 은사 운동의 피리 부는 사나이
1장 마귀의 지상 왕국20
2장 오순절 운동과 신비주의25
3장 은사 운동과 천주교의 연합34
4장 은사 운동과 종교통합46
5장 마귀의 거짓 복음62
6장 마귀의 음악71
7장 하나님의 부르심
부 언90
참고 문헌93
제2부
오순절 표적 부흥의 실체
8장 은사 운동의 역사
9장 은사 운동 오류의 역사116
10장 제3의 오순절 물결: 빈야드 운동
11장 빈야드 운동의 원조: 윔버
12장 마귀의 사자: 하워드-브라운
13장 왜 ‘토론토 축복’인가?168
14장 웃음 부흥의 10가지 오류
15장 펜사콜라 웃음 부흥
16장 펜사콜라 부흥의 거짓 주장
17장 웃음 부흥을 배격하는 이유206
18장 알파코스221
19장 은사 운동에 대한 총결론237
제3부
은사 주의의 오류245
부록 1 G12란 무엇인가? 247
부록 2 신(新) 사도 운동252
부록 3 열린 예배260
부록 4 입 신264
부록 5 이교도들의 종교 내에서의 웃음267
부록 6 방언과 표적271
부록 7 축사, 어떻게 하는가?296
부록 8 관상 기도302
부록 9 싱가포르 웃음 예배 현장313
부록 10 한국 목사의 빈야드 체험315
부록 11 프란시스 맥너트 신부322
부록 12 엉터리 베니 힌323
부록 13 웰빙 목사의 혼동의 세계327
제4부
성경과 역사의 가르침336
부록 14 은사주의에 대한 답변337
부록 15 예수 유일주의란 무엇인가?363
부록 16 구원의 영원한 안전 보장378
부록 17 기적들을 요구하라390
부록 18 약속들을 이용하라400
부록 19 성령님의 인도와 마귀의 인도410
부록 20 사도행전 바로 이해하기415
부록 21 오순절 운동의 역사적 고찰429
부록 22 카톨릭 영성에 중독 된 한국 교회448
역자 추천 참고 도서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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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5 16:12:13 | 관리자
디모데 스쿨의 성막 및 절기 강해는 10월 6일(화)에 모두 마칩니다.
그리고 디모데 스쿨에서는 10월 8일(목)부터 10여 주에 걸쳐 정수영 목사님을 모시고 교회사 강좌를 개최합니다.
모이는 날이 화요일이 아니고 목요일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당분간은 화요일에 모임을 갖지 않습니다.
초대 교회 이후로 교회가 어떻게 변천했고 그 동안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아는 일은 우리의 신앙 성장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역사가 이처럼 중요하기에 모든 나라가 자기 국민들에게 자기 나라의 역사를 가르칩니다.
기독교회사는 지금까지 천주교와 천주교에서 나온 프로테스탄트 시각으로 가르쳐져서 실제 진실이 많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정수영 목사님은 미국의 리버티 대학에서 석사를 하면서 바른 교회사를 공부하셨고 그 동안 대전 침신 등을 포함하여 여러 곳에서 침례교에서 보는 교회사를 강의하셨습니다. 또 규장 출판사에서 새 교회사와 새 교회사2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너무나 귀중한 시간이 될 것 같아 연세가 드신 목사님께 부탁을 드려서 이번에 교회사 강좌를 열게 되었으니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사랑침례교회로 오시기 바랍니다.
시간: 10월 8일부터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10주 정도), 50분씩 2회 강의
장소: 사랑침례교회
교재: 새 교회사와 새 교회사2
교재는 현재 절판이라 시중에서는 구하기 어렵습니다.
목사님이 가지고 계신 것들을 강의 시간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기회를 통해 교회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일들을 바로 보고 말세를 당한 이 시점에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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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5 07:59:27 | 관리자
가톨릭의 신비적 영성에 중독 된 한국교회 한국교회에 침투한 ‘가톨릭 영성’의 문제와 위험 김성건 논설위원/서원대 교수 지성사적으로 보아, 미국의 히피 그룹을 위시해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 기성의 이데올로기와 체제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의 반(反)문화운동이 잇달아 격렬하게 전개된 것은 지난 196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세계적 수준에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대표한 거대 관료 조직으로서 가톨릭교회는 자연스럽게 안팎의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세계의 보편적 교회를 표방하는 가톨릭교회로서는 그 같은 비판적인 저항의 시대 조류에 어쩔 수 없이 부응해 모종의 신학적 대타협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가톨릭교회는 1962년부터 1965년까지 무려 3년간에 걸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해 타종교에 대한 종전의 권위주의적, 배타적 태도를 바꾸어 종교 간에 대화를 앞장서서 추구하는 에큐메니즘(ecumenism, 초교파주의)의 선봉에 서는 등 이른바 종교다원주의 쪽으로 일대 신학적 전환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교리)과 개신교회의 가르침 양자 사이에 종래 존재했던 뚜렷한 간격이 시간이 흐르며 점차 흐려지게 됐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경우는 지난 18세기 말 조선에서 포교가 처음 시작된 이래 수많은 종교적 희생자 곧, 순교자를 내는 등 줄곧 강하게 이단시하고 금지했던 유교적 조상제사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이제는 한국의 전통문화의 한 부분으로 돌연 인정되는 일이 벌어졌다. 역사적으로 보아, 지난 1세기에 오순절 성령운동의 결과로 초대 교회가 출현한 이후 기독교가 핍박을 받던 중 3세기에 들어와서 로마 제국의 정치권력을 장악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서 국교로 공인됐다. 그렇지만 그 당시 가톨릭교회는 초대교회의 전통보다는 오히려 그 주위에 있었던 이방 종교들의 주술적 요소를 상당 부분 수용한 전통이 오늘까지도 면면히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1960년대의 히피문화로 대표되는 반문화 운동을 배경으로 지난 1980년대에 출현한 ‘탈근대’, ‘다원주의’, ‘개인주의’, ‘감성’ 등으로 표상되는 포스트모던의 시대적 흐름과 비교적 최근인 1990년대에 나타난 세계화와 정보화의 영향 아래 세계 종교들 중에서도 기독교 전반 특히 한국 개신교 내에서 약 10년 전부터 ‘제도 종교’와 구별되는 주관적 ‘경험’에 바탕을 둔 이른바 ‘영성’(spirituality)에 대한 관심이 갑작스럽게 크게 고조됐다.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특별히 끄는 측면은 바로 2006년 말 오늘에 이르러서는 본질적으로 다분히 주술적 요소를 많이 갖고 있는 ‘가톨릭 영성’이 16세기 말 당시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등 각종 주술 타파를 목표로 이루어진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자처하는 보수적인 한국 개신교회에 마저도 조금씩 미묘하게 침투해 이제는 사실상 거의 지배하게 된 새롭고도 자못 흥미 있는 현상이다. 필자는 종교를 사회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종교사회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평소에 종교개혁의 유산을 이어받은 복음주의 신앙은 마땅히 가톨릭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돼야 한다고 믿는 한 사람의 개신교 신자로서 최근에 한국 교회에 침투한 ‘가톨릭 영성’의 문제와 이것의 위험을 제대로 밝히는 일이야말로 현재 침체 상태에 빠져있는 한국 교회의 이노베이션을 위해 여러모로 매우 중요하면서도 시급한 과제라고 본다. 오늘날 수많은 복음주의자들이 ‘로마 가톨릭 스타일의 영성’ 혹은 달리 말해서 ‘종교개혁 이전의 영성’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영성은 많은 경우 이방 종교들로부터 차용된 것으로서, 예를 들자면 의례적인 기도 혹은 지루한 되풀이 기도, 영창, 곧 시편 따위의 글귀를 단조롭게 읊는 일, (선불교에서 강조하는) 명상(meditation), 집중기도(centering prayer), 곧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며 단순히 안식을 취하는 명상적 행위 등이다. 그래서 약 120년 전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이 전해진 이래 현재까지도 미국의 문화적 영향권 아래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는 한국 복음주의 개신교 진영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북미의 주요 신학교중 거의 가장 대표적 기관인 초교파적 풀러신학교의 ‘영성’ 코스 관련 주요 필독 도서 목록에는 물론 한국의 대표적 신학교들의 각종 ‘영성’ 과목의 경우도 저자의 상당수가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쓴 토마스 아 켐퍼스(Thomas A. Kempis) 등 로마 가톨릭 신자인 것을 새삼 주목할 수 있다. 한편, 금년 여름 한국을 잠시 방문해 연일 개최한 집회를 통해 국내의 수많은 성도들에게 대단한 감동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미국 남가주 소재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는 베스트셀러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데, 이 릭 워렌 목사 역시 명상, 집중기도 및 여타 가톨릭의 이교도적 영성 형태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로마 가톨릭 저자들의 주장을 자신의 저작이나 설교에서 빈번하게 인용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구체적 예로서, <목적이 이끄는 교회>와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워렌 목사는 존 메인(John Main)을 인용하고 있는데, 메인은 베네딕트 수도사로서 그리스도가 나사렛 예수에게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수도원의 지도자들, 병든 자들, 가난한 자들 같은 우리들 속에 남아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또한 워렌 목사는 북미 기독교계에서 현재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사람으로서 최근 한국을 방문해 당시 국내 기독교계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기 보다는 오히려 커다란 주목을 받은 바도 있는 <영적 훈련과 성장>과 <기도>의 저자인 퀘이커 출신의 신비주의자 리처드 포스터(Richard Foster)가 강조하는 ‘명상’을 실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 시대의 영성신학자를 대표하는 목사로 이미 잘 알려진 포스터가 창시한 이른바 ‘레노바레’(Renovare) 운동은 오늘날 미국의 유명한 윌로우크릭 교회를 위시해 한국 기독교계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명상의 각종 테크닉에 바탕을 둔 레노바레 운동은 본래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퀘이커 전통으로부터 나온 것으로서 진보적인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초교파주의(ecumenism)의 배경에 자리 잡고 있는 운동이다. 주지하듯이 교파 간 일치와 연합을 추구하는 에큐메니즘은 기본적으로 교리(doctrine)에 대해서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 전략을 갖고 있다. 이로써, 필자는 오늘날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종교적(가톨릭) 신비주의’와 ‘성서적 영성’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서 제기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는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교회 내의 ‘신비주의의 발전’과 ‘성령운동의 번성’ 양자 사이에 매우 흥미 있는 관련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순절 성령운동(Pentecostalism)과 카리스마 운동들은 놀랍게도 많은 측면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 속에서 발전한 신비주의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는 빈야드 운동의 창시자인 존 윔버(John Wimber) 같은 이가 그의 책 <파워 이반젤리즘(Power Evangelism)>에서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와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Loyola)를 아무런 문제없이 추천하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 로마 가톨릭 진영 속에서 수용되고 있는 관점은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카리스마적 부흥을 위한 예언자적 충동(자극)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성령세례’ 경험, 비전(환상), 내적 목소리, 황홀감과 엑스터시, 진위가 의심스러운 예언하기, 모종의 힘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각종 방언 따위 같은 카리스마 운동과 오순절 성령운동의 주요한 표현들은 전적으로 로마 가톨릭 신비주의와 일치한다. 오늘날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오순절 성령운동 및 카리스마운동 추종자들에 의해서 구성되고 있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가톨릭신앙과 새로운 복음주의가 기묘하게도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왜 수많은 개신교인들이 가톨릭 신비주의에 매력을 느끼게 될까? ‘교리’(doctrine, 신조)와 ‘헌신/신앙심’(devotion) 사이에는 종종 긴장이 있기 마련이지만, 중요한 것은 올바른 교리는 자연적으로 올바른 헌신/신앙심을 갖다 준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개신교회는 차제에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포스트모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종교적 감정주의’(religious emotionalism)를 ‘기독교 영성’과 잘못 동일시하는 오류를 더 이상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한국 교회 내에서 유명한 간증자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드라마틱한 중생 체험과는 뚜렷이 모순 되는 치명적인 문제를 개인 차원에서 일으킴으로써 기독교의 공신력이 크게 추락하는 일이 종종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구굿닷컴 이영주 기자의 2006년 12월 25일자 글 ‘드라마틱한 간증의 함정’ 참조). 이는 한국 교회의 평신도들에 대한 강단의 가르침(설교)과 기독교계 언론의 수준 양자 모두가 아직 매우 낮은 데 머물러 있다는 것을 잘 방증한다. 끝으로, 필자는 신비적 경험에 대한 우리 개신교 크리스천의 사고를 기본적으로 틀 지우는 데 중심이 될 수 있는 두 개의 성경 구절을 제시하고자 한다. 하나님께 대한 겸손한 신뢰가 나타나 있는 시편 131편과 천사숭배와 금욕주의의 위험에 대한 경고가 나타나 있는 골로새서 2장 18절에서 23절까지의 말씀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8:20: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0-01 23:59:31 | 관리자
그렇습니다.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청년 사역으로 유명한 하정완 목사의 열린예배 드라마 관련 저서에 보면, 서두에서 그는 유학 중 참여한 윌로우크릭의 열린예배(구도자예배, Seeker Sensitive Service)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이런 열린예배의 시작은 수정교회의 로버트 슐러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가 만든 드라이브-인 처치, 즉 자동차 극장처럼 넓은 정원에 차를 타고 모여 스크린을 보며 예배하는 것이 그 시초였으며 이에 영향받아 그 뒤를 이은 것이 빌 하이블스와 릭 워렌 등이겠지요. 물론 계보로 본다면 로버트 슐러보다 앞서 적극적 사고방식의 주창자 노먼 빈센트 필이 있을 겁니다.
아무튼 이런 예배에서 뭔가 자극을 받고 후련해지는 느낌을 은혜로 아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시들해질 경우 더욱 자극적인 방법을 쓰는 것은 주최측이나 참여자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은사운동으로 옮아 가겠지요.
뉴에이지 아티스트 시크릿 가든의 You raise me up 같은 노래는 그 대상 You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단지 종교적 선율과 CCM 같은 가사로 크리스천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고 여러 찬양사역자들이 앞 다투어 자기 레퍼터리로 삼아 왔습니다. 교회에서 하면 다 좋다고 생각하는 순진하고 무지한 크리스천들은 지금도 이 노래를 찬양이나 CCM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사실을 알아도 그게 뭐 어때서? 라고 할 이들도 많습니다. 문화는 도구이며 중립적이라는, 좋게 쓰면 좋은 것이라는, 점차 팽배해지는 주관적, 상대적 관점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절대 선이나 악은 없다는 위험한 생각의 씨앗임을 그들은 모릅니다.
이런 움직임이 점점 거세지고 또 다른 형태로 변화를 거듭할 것을 알기에 안타깝지만, 제발 한국교회에 참복음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기를 바라게 됩니다. 가족이나 친구도 설득하기 어렵고, 교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목회방향에 반하는 요주의 숙청대상(?)이 되는 현실입니다.
글이 좀 길어졌네요.^^ 아무튼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열린예배의 심각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2009-10-01 00:01:22 | 김재욱
알파코스, G12 프로그램을 도입한 한국의 수많은 교회들이 열린 예배를 하고 있다. 열린 예배의 기원은 미국이며 빈야드 운동을 하는 존 윔버의 교회와 릭 워렌의 새들백 교회, 하이블스의 윌로우크릭 교회, 조엘 오스틴의 리이크우드 교회 등 이머징 처치들로부터 시작하여 한국 교회들에 퍼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머징 처치 운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열린 예배이다. 그러나 이 이머징 처치 운동이 복음주의 진영에서 자생한 것이 아니라 로마 카톨릭의 영향이라는 비판이 미국에서 일고 있다. 특별히 알파코스와 G12 비전을 하는 교회들은 기존의 전통 예배를 전부 열린 예배 체제로 바꾸고 있다. 그것은 알파코스와 G12 자체가 능력 예배, 능력 찬양, 능력 전도를 강조하면서 전통 예배에서 탈피할 것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예배조차도 빈야드 교회의 예배로 바꾸라는 것이다.
G12는 특히 예배의 강렬성을 요구하는데 이 G12의 열린 예배에 참석하면서 본인이 느낀 몇 가지점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1. 열린 예배에서는 기존의 찬송가 대신 CCM을 주로 사용한다. 그 곡의 근원이 어디이든지 예수와 하나님의 이름만 붙으면 찬양 곡의 자격이 된다. 심지어는 사탄숭배자들이 퍼뜨린 곡과 뉴에이지 음악에 예수와 하나님의 이름을 붙여 만든 찬양도 있는데 이것도 묻지 않는다. CCM은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가에 대하여 검증되지 않고 여과되지 않은 음악이다.
2. 열린 예배에서의 가장 주된 악기는 신디사이저와 드럼과 전자 기타이다. 전자화된 음이 예배자를 리드한다.
3. 열린 예배의 단상은 찬양 리더와 악기 연주자들에 의하여 점령된다.
4. 열린 예배에서는 악단 연주의 볼륨을 극단적으로 올려서 일차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청각적 감성적 질서를 마비시키고 소리로써 예배자를 제압한다.
5. 일단 제압된 예배자는 인도자의 감정을 흥기시키는 제스처와 열광하게 하는 멘트에 동화되며 감정의 최고조 상태에 빠진다. 인도자와 찬양 리더들은 예배자들이 동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을 하도록 유도한다.
6. 예배자는 예배자가 가지고 있는 지정의가 균형 있게 갖추어진 채 거룩한 마음으로 예배 드릴 여유도 없이 오로지 감정적 흥기 상태로만 이입되어 버리며 예배당은 열광의 도가니가 된다.
7. 예배자들이 찬양을 통하여 감정적이 되며 클라이맥스 시점이 되면 설교자는 연극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처럼 아무런 예배 의장도 갖추지 않은 복장으로 단상에 등장하여 설교를 시작한다.
8. 감정이 흥기된 예배자는 설교자가 무슨 말을 하든지(별로 대수로운 말도 아닌데) 아멘 아멘하게 되어 있다.
9. 설교자는 대부분 예배자의 기분을 좋게 하는 성공주의, 기복주의, 행복추구주의 설교를 한다. 간혹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리스도인의 희생적 삶에 대하여 설교하더라도 이 설교는 말로 그칠 뿐이며 전체적으로 보면 설교자는 예배자를 좁은 길이 아닌 넓은 길로 이끌어간다.
10. 설교자는 단상에서 예의를 갖추지 않고 단상을 휘저으며 걸어 다니며 강한 제스처까지 보이며 설교를 한다.
11. 이러한 열린 예배를 통하여 목사의 카리스마는 자동적으로 높여진다.
12. 이러한 열린 예배의 분위기가 자연적으로 온 교회의 교인에게 젖어들게 되면 수양회나 저녁 예배 등을 통하여 은사주의 사역을 실시한다. 이때 방언을 하도록 격려하고, 쓰러뜨림과 각종 표적 보임, 축사 등을 시행한다. 이렇게 하면 할수록 목사의 카리스마는 더욱 고양되며 그읜 위상은 높아지고 능력과 병 고침을 행하는 목사로 소문이 나며 군중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이게 된다.
참으로 이런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받으실 것인가? 열린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감정이 고양된 상황 또는 열광하는 상태를 성령의 충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배는 의식이다. 예배는 가장 선별되고 거룩한 것을 우리의 마음에 실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이에 대한 급부로 하나님의 귀하신 말씀을 받는 자리이다.
예배에서는 찬양도 세속화되지 않은 것을 선별해야 하며 정숙한 마음과 몸가짐이 필요하고 또 감정과 이성의 조화가 깨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너무 기뻐서 춤추고 싶지만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의식의 한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날뛸 수 있단 말인가 ? 날뛰고 싶도록 기쁘지만 절제해야 한다. 통곡하며 마음을 쏟아 놓고 싶지만 절제해야 한다. 예배자가 내는 소리와 악기의 소리도 조심스럽고 경건하려고 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술자리의 노래처럼 볼륨을 최고로 올려놓고 고성방가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예배 처소는 하나님이 계신 자리이다. 두렵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자리이다. 그렇게 날뛰지 않아도 통곡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신다. 예배는 어떻게 하든지 정결하고 거룩한 것을 드리려는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마음으로 뿐만 아니라 외양적으로도 그렇게 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열린 예배 처소는 한마디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리가 아니라 예배자가 도취되어 일방적으로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리로 변하여 버렸다. 요란한 신디사이저와 전자 기타와 드럼의 귀가 찢어질 정도의 엄청난 소리에 자극되고 조작된 감정만이 난무한다. 여기에 설교는 예배자의 비위를 맞추는 세속적 것으로 끝나버린다.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란 말인가?
이런 열린 예배를 하면 당장 성도들이 꼬이고 교회는 성장할 지 모른다. 겉으로는 교회의 분위기가 정열적이고 생동감 있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연극의 연출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같이 얼마든지 그렇게 보이도록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거기에 모인 성도들은 복음의 정수를 맛보지 못한 채 늘 영적 갈증에 시달리며 살아가야 할 것이고 더 강한 열광과 은사주의를 찾아 방황하게 될 것이다.
한국 교회들은 지금 시급히, 너무도 시급히 이 열린 예배의 정체에 대하여 논하고 성도들을 오도하는 잘못된 행태를 시정해야 한다.
2009-09-30 21:02:21 | 관리자
기존의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겁니까?
2009-09-29 18:47:32 | 김용중
열심히 읽었습니다.그런데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분발해서 주위에 잠들어 있거나 무덤덤한 영혼들을 깨울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이 글은 확실한 분별을 잘 표현했으므로 프린트해서 전단지처럼 나누어주고 싶습니다.
2009-09-29 03:06:56 | 정혜미
가톨릭의 신비적 영성에 중독 된 한국교회 한국교회에 침투한 ‘가톨릭 영성’의 문제와 위험 김성건 논설위원/서원대 교수 지성사적으로 보아, 미국의 히피 그룹을 위시해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 기성의 이데올로기와 체제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의 반(反)문화운동이 잇달아 격렬하게 전개된 것은 지난 196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세계적 수준에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대표한 거대 관료 조직으로서 가톨릭교회는 자연스럽게 안팎의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세계의 보편적 교회를 표방하는 가톨릭교회로서는 그 같은 비판적인 저항의 시대 조류에 어쩔 수 없이 부응해 모종의 신학적 대타협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가톨릭교회는 1962년부터 1965년까지 무려 3년간에 걸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해 타종교에 대한 종전의 권위주의적, 배타적 태도를 바꾸어 종교 간에 대화를 앞장서서 추구하는 에큐메니즘(ecumenism, 초교파주의)의 선봉에 서는 등 이른바 종교다원주의 쪽으로 일대 신학적 전환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교리)과 개신교회의 가르침 양자 사이에 종래 존재했던 뚜렷한 간격이 시간이 흐르며 점차 흐려지게 됐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경우는 지난 18세기 말 조선에서 포교가 처음 시작된 이래 수많은 종교적 희생자 곧, 순교자를 내는 등 줄곧 강하게 이단시하고 금지했던 유교적 조상제사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이제는 한국의 전통문화의 한 부분으로 돌연 인정되는 일이 벌어졌다. 역사적으로 보아, 지난 1세기에 오순절 성령운동의 결과로 초대 교회가 출현한 이후 기독교가 핍박을 받던 중 3세기에 들어와서 로마 제국의 정치권력을 장악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서 국교로 공인됐다. 그렇지만 그 당시 가톨릭교회는 초대교회의 전통보다는 오히려 그 주위에 있었던 이방 종교들의 주술적 요소를 상당 부분 수용한 전통이 오늘까지도 면면히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1960년대의 히피문화로 대표되는 반문화 운동을 배경으로 지난 1980년대에 출현한 ‘탈근대’, ‘다원주의’, ‘개인주의’, ‘감성’ 등으로 표상되는 포스트모던의 시대적 흐름과 비교적 최근인 1990년대에 나타난 세계화와 정보화의 영향 아래 세계 종교들 중에서도 기독교 전반 특히 한국 개신교 내에서 약 10년 전부터 ‘제도 종교’와 구별되는 주관적 ‘경험’에 바탕을 둔 이른바 ‘영성’(spirituality)에 대한 관심이 갑작스럽게 크게 고조됐다.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특별히 끄는 측면은 바로 2006년 말 오늘에 이르러서는 본질적으로 다분히 주술적 요소를 많이 갖고 있는 ‘가톨릭 영성’이 16세기 말 당시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등 각종 주술 타파를 목표로 이루어진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자처하는 보수적인 한국 개신교회에 마저도 조금씩 미묘하게 침투해 이제는 사실상 거의 지배하게 된 새롭고도 자못 흥미 있는 현상이다. 필자는 종교를 사회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종교사회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평소에 종교개혁의 유산을 이어받은 복음주의 신앙은 마땅히 가톨릭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돼야 한다고 믿는 한 사람의 개신교 신자로서 최근에 한국 교회에 침투한 ‘가톨릭 영성’의 문제와 이것의 위험을 제대로 밝히는 일이야말로 현재 침체 상태에 빠져있는 한국 교회의 이노베이션을 위해 여러모로 매우 중요하면서도 시급한 과제라고 본다. 오늘날 수많은 복음주의자들이 ‘로마 가톨릭 스타일의 영성’ 혹은 달리 말해서 ‘종교개혁 이전의 영성’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영성은 많은 경우 이방 종교들로부터 차용된 것으로서, 예를 들자면 의례적인 기도 혹은 지루한 되풀이 기도, 영창, 곧 시편 따위의 글귀를 단조롭게 읊는 일, (선불교에서 강조하는) 명상(meditation), 집중기도(centering prayer), 곧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며 단순히 안식을 취하는 명상적 행위 등이다. 그래서 약 120년 전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이 전해진 이래 현재까지도 미국의 문화적 영향권 아래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는 한국 복음주의 개신교 진영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북미의 주요 신학교중 거의 가장 대표적 기관인 초교파적 풀러신학교의 ‘영성’ 코스 관련 주요 필독 도서 목록에는 물론 한국의 대표적 신학교들의 각종 ‘영성’ 과목의 경우도 저자의 상당수가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쓴 토마스 아 켐퍼스(Thomas A. Kempis) 등 로마 가톨릭 신자인 것을 새삼 주목할 수 있다. 한편, 금년 여름 한국을 잠시 방문해 연일 개최한 집회를 통해 국내의 수많은 성도들에게 대단한 감동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미국 남가주 소재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는 베스트셀러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데, 이 릭 워렌 목사 역시 명상, 집중기도 및 여타 가톨릭의 이교도적 영성 형태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로마 가톨릭 저자들의 주장을 자신의 저작이나 설교에서 빈번하게 인용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구체적 예로서, <목적이 이끄는 교회>와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워렌 목사는 존 메인(John Main)을 인용하고 있는데, 메인은 베네딕트 수도사로서 그리스도가 나사렛 예수에게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수도원의 지도자들, 병든 자들, 가난한 자들 같은 우리들 속에 남아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또한 워렌 목사는 북미 기독교계에서 현재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사람으로서 최근 한국을 방문해 당시 국내 기독교계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기 보다는 오히려 커다란 주목을 받은 바도 있는 <영적 훈련과 성장>과 <기도>의 저자인 퀘이커 출신의 신비주의자 리처드 포스터(Richard Foster)가 강조하는 ‘명상’을 실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 시대의 영성신학자를 대표하는 목사로 이미 잘 알려진 포스터가 창시한 이른바 ‘레노바레’(Renovare) 운동은 오늘날 미국의 유명한 윌로우크릭 교회를 위시해 한국 기독교계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명상의 각종 테크닉에 바탕을 둔 레노바레 운동은 본래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퀘이커 전통으로부터 나온 것으로서 진보적인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초교파주의(ecumenism)의 배경에 자리 잡고 있는 운동이다. 주지하듯이 교파 간 일치와 연합을 추구하는 에큐메니즘은 기본적으로 교리(doctrine)에 대해서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 전략을 갖고 있다. 이로써, 필자는 오늘날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종교적(가톨릭) 신비주의’와 ‘성서적 영성’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서 제기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는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교회 내의 ‘신비주의의 발전’과 ‘성령운동의 번성’ 양자 사이에 매우 흥미 있는 관련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순절 성령운동(Pentecostalism)과 카리스마 운동들은 놀랍게도 많은 측면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 속에서 발전한 신비주의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는 빈야드 운동의 창시자인 존 윔버(John Wimber) 같은 이가 그의 책 <파워 이반젤리즘(Power Evangelism)>에서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와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Loyola)를 아무런 문제없이 추천하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 로마 가톨릭 진영 속에서 수용되고 있는 관점은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카리스마적 부흥을 위한 예언자적 충동(자극)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성령세례’ 경험, 비전(환상), 내적 목소리, 황홀감과 엑스터시, 진위가 의심스러운 예언하기, 모종의 힘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각종 방언 따위 같은 카리스마 운동과 오순절 성령운동의 주요한 표현들은 전적으로 로마 가톨릭 신비주의와 일치한다. 오늘날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오순절 성령운동 및 카리스마운동 추종자들에 의해서 구성되고 있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가톨릭신앙과 새로운 복음주의가 기묘하게도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왜 수많은 개신교인들이 가톨릭 신비주의에 매력을 느끼게 될까? ‘교리’(doctrine, 신조)와 ‘헌신/신앙심’(devotion) 사이에는 종종 긴장이 있기 마련이지만, 중요한 것은 올바른 교리는 자연적으로 올바른 헌신/신앙심을 갖다 준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개신교회는 차제에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포스트모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종교적 감정주의’(religious emotionalism)를 ‘기독교 영성’과 잘못 동일시하는 오류를 더 이상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한국 교회 내에서 유명한 간증자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드라마틱한 중생 체험과는 뚜렷이 모순 되는 치명적인 문제를 개인 차원에서 일으킴으로써 기독교의 공신력이 크게 추락하는 일이 종종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구굿닷컴 이영주 기자의 2006년 12월 25일자 글 ‘드라마틱한 간증의 함정’ 참조). 이는 한국 교회의 평신도들에 대한 강단의 가르침(설교)과 기독교계 언론의 수준 양자 모두가 아직 매우 낮은 데 머물러 있다는 것을 잘 방증한다. 끝으로, 필자는 신비적 경험에 대한 우리 개신교 크리스천의 사고를 기본적으로 틀 지우는 데 중심이 될 수 있는 두 개의 성경 구절을 제시하고자 한다. 하나님께 대한 겸손한 신뢰가 나타나 있는 시편 131편과 천사숭배와 금욕주의의 위험에 대한 경고가 나타나 있는 골로새서 2장 18절에서 23절까지의 말씀이다.
2009-09-28 13:15:40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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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8 09:36:56 | 허광무
추가적으로 자료를 검색하보니 다른 사이트들에서도 제가 올린 자료를 게시하고 있는데요, 출처가 다 다른 것을 보니 제가 출처라고 밝힌 곳도 다른 곳에서 가져온 자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원본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아서 생긴 현상임.
2009-09-25 09:45:12 | 김학준
혹시 오해가 있을지 몰라 추가 댓글을 올립니다.
우선, 양경수님께서 제 자료 출처사이트의 위험성에 대해서 알려주시기 위해 추가 자료을 올려 지적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제글의 자료 출처시에 언급한 사이트와 전혀 관계가 없고 처음보는 사이트입니다.
단순히 인터넷에서 "교리비교" 자료를 검색하다가 보게되었고 읽어보니 그리 틀린 내용도 없는 것 같아 올리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극단적인 종말론 및 과격주의자들을 경계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설교 및 말씀 공부하여 하나님 제대로 잘 믿고, 저의 본업에 충실히 하다가 자연스럽게 때가 되면 하늘로 들려 올라가기만을 바랄뿐입니다.
2009-09-25 08:53:20 | 김학준
로마 카톨릭이 가르치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교리 62가지를 정리한 자료입니다. 이것을 보시면 카톨릭과 제대로된 교회간의 차이가 불분명하셨던 분들도 차이를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인터넷에 있는 자료 이며 출처는 하단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정목사님, 혹시 아래 내용중에 잘못된 내용을 발견하시면, 추가 설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구원
구원에 대하여 가르치는 카톨릭의 잘못 된 교리 1~24 * 빨간색이 카톨릭 교리이며, 그 문장 끝에 기록된 숫자는 카톨릭 교리 문답의 번호이다.
1. 의롭게된다는 것은 영혼 속에 있는 원죄를 정결하게 하는 은총을 주입(注入:infuse) 함으로 써 된다(1987-1995). 성경의 가르침: 의롭게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로, 죄인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기시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죄를 사하시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으로 우리를 의롭다고 간주하시는 것이다(롬3:21,4:8).
2. 처음으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온다(1262-1274). 성경의 가르침: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오로지 믿음으로서만 이다(롬 3:28).
3. 성인은 의롭게되기 위하여 믿음으로 착한 일을 함으로써 준비하여야한다.(1247-1249). 성경의 가르침: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신다(롬 4:5). 믿는 자들이 착한 일을 하는 것은 구원받은 결과에서 오는 것이다(엡 2:8-10).
4. 의롭게된 신자는 그들 자신이 보기에 아름답고,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 (1992, 1999-2000, 2024). 성경의 가르침: 의롭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안에서만 이루어지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다(엡 1:1-14). 5. 의롭게된 신도들은 일곱 가지 성사와 선행을 통하여 이를 증진시킨다(1212, 1392, 2010. 성경의 가르침: 우리가 의롭게되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의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고후 5:21). 그리스도안에서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의로 완전하게된다(골 1:28).
6. 이미 의롭게 된 신자들이 도덕적으로 죄를 범함으로 의롭게 된 것을 상실한다(1033, 1855, 1874). 성경의 가르침: 한번 의롭다함을 받은 자는 그것을 상실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정하신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는다(롬 5:8-9).
7. 비도덕적인 작은 죄를 범했을 때 일곱 가지 성사를 통하여 다시 의롭게 된다(980, 1446). 성경의 가르침: 두 번째로 의롭게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의롭다 하신 그를 또한 영화롭게 하신다(롬 8:30).
8.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게된 인간이 구원을 받는 과정은 평생에 걸쳐 되는 일이다 (161-162, 1254-1255) 성경의 가르침: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게된 인간의 구원은 구원을 받는 순간에 이루어지며, 하나님께서 그 구원을 보장하신다(롬 5:19).
9. 구원은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와, 선행과, 일곱 가지 성사에 참석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183, 1129, 1815, 2002). 성경의 가르침: 구원은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며,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다(엡 2:8-9). 구원받은 자들의 선행은 구원을 받은 것의 결과이며, 구원의 원인이 아니다.(엡 2:10).
10. 믿음은 하나님을 믿으며, 교회가 제시하는 모든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181-182, 1814). 성경의 가르침: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그리스도만을 구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롬 10:8-17).
11. 씻음을 받은 은총은 우리 영혼의 고상한 질(質)을 말하며, 우리 영혼이 완전하게 되는 신비적인 과정이다(1999-2000). 성경의 가르침: 은혜는 우리가 받을 만한 아무런 이유 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엡 1:7-8).
12. 일곱 가지 성사는 은혜를 계속해서 받게되는 절대로 필요한 통로(channels)가 된다 (1127-1129). 성경의 가르침: 하나님의 자녀는 계속하여 아버지께서 은혜를 내리시는 대상이 되어있다(롬 5:1-2).
13. 은혜는 착한 일을 함으로 써 더욱 더 많이 얻게된다(2010, 2027). 성경의 가르침: 은혜는 그저 얻는 선물이다(롬 11:6).
14. 작은 죄를 짓는 것으로는(비도덕적 죄) 영원한 형벌을 받지 않는다(1855-1863). 성경의 가르침: 모든 죄는 영원한 형벌을 받게 만든다(롬 6:23).
15. 심각한 죄는 신부(神父) 앞에 고백하여야한다(1456-1457). 성경의 가르침: 지은 죄는 하나님께 직접 고백하여야한다(스 10:11).
16. 신부는 심판관의 역할을 하므로 죄를 용서할 수 있다(1442, 1461). 성경의 가르침: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죄를 용서할 수 없다(막 2:7).
17. 지은 죄에 대하여 용서함을 받지만, 그에 대한 형벌은 남아있다(1472-1473). 성경의 가르침: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면, 그것은 완전히 용서하시는 것이다(골 2:13, 사 43:25).
18. 고해성사를 시행함은 죄에 대한 임시적인 형벌을 만족시키는 것이 된다(1434, 1459, 1460). 성경의 가르침: 예수님께서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온전하게 하신다(요일 2:1-2).
19. 신도들의 신앙심을 얻게 하기 위하여 교회가 분배(分配)한 면죄부(免罪符)를 받은 것은, 죄인들이 임시적인 형벌을 면하게 하는 것이다(1471-1473). 성경의 가르침: 예수님께서 그의 흘리신 피로써 믿는 자들을 죄에서 해방시키신다(계 1:5).
20. 지은 죄를 씻고 사함을 받기 위하여 연옥이 필요하다(1030-1031). 성경의 가르침: 연옥이란 성경에 없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정결하게 하신다(히 1:3).
21. 세상에 남아있는 자들이 기도를 드리거나, 선행을 하거나, 미사를 드림으로 연옥에서 가난한 심령이 고통을 받는 것을 돕는다(1032, 1371, 1479).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안에서 자는 자들은 인간의 아무런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후 5:8).
22. 믿는 자들 중 아무도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다(1036,2005). 성경의 가르침: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영생을 얻을 것을 알게된다(요일 5:13).
23. 영생은 선한 삶의 보상이다(1821, 2010). 성경의 가르침: 믿는 자들이 얻는 영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값없이 받는 선물이다(롬 6:23).
24. 로마 카톨릭 교회는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는데 필수적이다(846). 성경의 가르침: 구원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에 인간이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하셨다.
미사(성체성사)
미사(성체성사)를 통하여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잘못된 교리 25~39
25. 예수님께서 베푸신 마지막 성찬은, 우리의 죄인을 위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의 피를 잔에 부어 넣으신 것이다(610-611,621, 1339). 성경의 가르침: 예수님의 마지막 성찬은 유월절의 음식을 나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피를 흘리신 것은 십자가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벧전 2:24).
26.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살이 되고 그리스도의 피가 된다(1373-1377). 성경의 가르침: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상징이다(고전 11: 23-25).
27.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카톨릭 교회가 시행한 성체성사의 떡과 포도주 속에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전반적으로 또한 완전하게 나타난다(1374, 1377).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는 천국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히 10:12, 13).
28. 거룩하게 구별된 빵과 포도주는 하늘에서 내려온 음식이므로, 신자들이 영생을 얻는데 도움을 준다(1392, 1405, 1419). 성경의 가르침: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를 기억하게 하는 상징이다(눅 22:19).
29. 거룩하게 구별된 빵과 포도주는 거룩하므로, 그것에 예배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1378-1381). 성경의 가르침: 하나님께서 어떠한 대상이 비록 그것이 하나님을 상징한다 하더라도, 그것에다 예배하는 것을 금지하셨다(출 20:4-5, 사 42:8).
30.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 희생하심을 영원히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신부(神父)들의 성직을 안수하셨다(1142, 1547, 1577).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께서 모든 믿는 자들을 거룩한 제사장으로 기름 부어 안수하셨다. 그들은 다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릴 것이며 그들의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며, 그들의 삶을 하나님께 바칠 것이다(벧전 2:5-10, 히 13:15, 롬 12:1).
31. 미사에서 경험하는 희생은 십자가의 희생이다(1085, 1365, 1367). 미사를 베푸는 방법에 따라 다르다(1367).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약 2000년 전에 예루살렘 성밖에서 일어난 한 사건이다(막 15:21-41).
32. 십자가의 희생은 미사에서 경험할 희생 속에 영원히 존재한다(1323, 1382). 성경의 가르침: 십자가의 희생은 예수님께서 단번에 받으신 것이며,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요 19:30).
33. 희생과 죽음을 당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미사를 통하여 나타나신다(1353, 1362, 1364, 1367, 1409).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부활하시고 영원히 사셨다. 그리스도께서 희생과 죽음을 위하여 다시 나타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계 1:17,18, 롬 6:9-10).
34. 각 미사 때마다, 신부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을 대표하여 하나님 아버지에게 나가는 것이다(1354, 1357).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자신을 희생 제물로 아버지께 단번에 드리셨으며, 역대에 살던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하신 것이다(히 9:24-28).
35. 다시는 피를 흘리지 않는 희생으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죄를 사하신다(1367, 1371, 1414) 성경의 가르침: 피 흘리는 일 없이는 죄 사하심이 없다(레 17:11, 히 9:22).
36. 성체성사의 행사마다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진정시킨다(1371, 1414). 성경의 가르침: 십자가상에서 단번에 드린 그리스도의 제사는 인간의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진정 시킨다(히 10: 12-18).
37. 독실한 카톨릭 신자들은 성체성사를 통하여 충분한 이득을 얻는다(1366, 1407).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신자로서의 모든 이득을 받는다(엡 1:3-14).
38.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속죄하시는 사역이 성체성사를 통하여 계속하여 이루어진다(1364, 1405, 1846).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고, 그의 희생으로 속죄하시는 사역을 완성하셨다(엡 1:7, 히 1:3).
39. 카톨릭 교회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희생을 계속하며, 세계 구원을 위하여 계속할 것이다(1323, 1382, 1405, 1407). 성경의 가르침: 교회는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죽으셨기 때문에 세상을 구원하신다는 말씀을 선포할 따름이다(고전 11:26).
마리아
마리아에 대하여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잘못된 교리 40~49
40. 성모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할 때 원죄로부터 물들지 않도록 보전하셨다(490-492). 성경의 가르침: 마리아도 아담의 후손이며, 죄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다(시 51:5, 롬 5:12).
41. 마리아는 온전히 거룩하며, 죄 없이 일생을 살았다(411,493). 성경의 가르침: 마리아도 죄인이었으며, 하나님만이 거룩하시다(눅 18:19, 롬 3:23, 계 15:4).
42.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과 또 그 후 평생을 처녀로 살았다(496-511). 성경의 가르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탄생 시까지 처녀이었다(마 1:25). 그 후 마리아는 여러 아이들을 낳았다(마 13:55-56, 시 69:8).
43.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이다(963, 971, 2677). 성경의 가르침: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세상에 오셨을 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였다(요 2:1).
44.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이다(963, 975). 성경의 가르침: 마리아는 교회의 한 회원이었다(행 1:14, 고전 12:13, 27).
45.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쓰라린 인간 속죄의 사역을 같이했기 때문에, 그녀는 인간 속죄의 동역자이다(618, 964, 968, 970).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지시고 홀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음으로, 그리스도만이 홀로 우리의 대속자 이시다(벧전 1:18-19).
46. 마리아가 이 세상에서 일생을 마쳤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육신과 영혼을 천국에 가도록 했다(The doctrine of the Assumption)(966. 974). 성경의 가르침: 마리아도 죽음으로써 그 육체가 땅의 흙으로 돌아갔다(창 3:19).
47. 마리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신자들의 중보자이며, 신자들이 염려와 탄원을 마리아에게 호소할 수 있다(968-970, 2677).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는 우리의 염려와 근심 걱정을 고할 수 있는 유일한 중보자이시다(딤전2:5, 요14:13-14, 벧전5:7).
48. 카톨릭 신자는 자신을 마리아에게 의탁하며, 그들의 죽는 순간 모든 것을 마리아에게 맡긴다(2677). 성경의 가르침: 믿는 자들은 우리 주 예수님만을 의지해야하며, 죽는 날 우리는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긴다(롬 10:13, 행 4:12).
49.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이 세상과 천국의 여왕으로 높이 찬양하셨다(966). 신자들은 특별한 기도로써 그를 찬양해야한다(971, 2675). 성경의 가르침: 주님만을 찬양해야한다. 주님만이 하늘과 땅에서 높임을 받으실 뿐이기 때문이다(시 148:13). 하나님께서 "내 앞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명령하셨다(출 20:3).
권위
권위에 대하여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잘못된 교리 50~62
50. 베드로는 사도들의 으뜸이었다(552, 765, 880).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의 으뜸이었다(요 13:13).
51. 감독(bishops:추기경)들은 사도들의 임명을 계승한자들이다(861, 862,, 938). 성경의 가르침: 사도들의 계승자는 없다. 계승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도해야 하는 것밖에 없다(행 1:21, 22).
52. 교황은 로마의 감독으로서 베드로의 직분을 계승한 것이다(882, 936). 성경의 가르침: 베드로에게 계승자가 있다는 얘기는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
53. 교황을 교주로 하며, 그는 추기경(감독)들을 통하여 전 세계적인 교회를 통치한다(883, 894-896).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께서 교회 공동체의 머리이시며, 전 세계적인 교회를 통치하신다(골 1:18).
54. 하나님께서 로마 카톨릭 교회 감독들에게 믿음의 도를 계시 하셨다(81, 86). 성경의 가르침: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믿음의 도를 계시하신다(유 1:3).
55. 교도권(Magisterium)은 카톨릭 교회의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85-87). 성경의 가르침: 성령만이 교회에서 권위 있는 선생이다(요 14:26, 16:13, 요일 2:27). * 주: 교도권(Magisterium)은 교황과 바티칸공의회로 구성되며, 교도권이 정의한 어떠한 가르침과 교리는 구원을 받는데 유익한 믿음과 도덕을 가르침으로 성경과 차별 없이 무오한 진리가 된다.
56. 교도권은 성경 해석에 오류가 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890-891, 2034-2035). 성경의 가르침: 성경만이 성경해석에 있어 오류가 없는 권위가 있는 책이다(행 17:11).
57. 교황의 권위는 가르침에 있어 오류가 없다(891). 성경의 가르침: 하나님만이 오류가 없으시다(민 23:19). 교황은 사람이다.
58. 교도권 자체가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 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이 있다(85, 100, 939). 성경의 가르침: 모든 믿는 자들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말씀을 통하여 성경을 바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을 받는다(행 17:11, 고전 2:12-16).
59. 성경은 교도권에서 건의한 대로 해석할 것이다(113, 119) 성경의 가르침: 성경은 성령께서 원하는 대로 해석되어야 된다(벧후 3:14-16).
60. 교도권은 계시록에 기록된 애매하고 뜻이 포함된 구절의 뜻을 정의할 권한이 있다(66, 88, 2035, 2051). 성경의 가르침: 세상에 아무도 성경에 기록된 이상의 것을 정의할 권한이 없다(고전 4:6, 잠 30:6).
61. 성경과 교회 전통이 합쳐서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81, 85, 97, 182). 성경의 가르침: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다(요 10:35, 딤후 3:16, 17,벧후 1:20-21). 교회전통은 사람의 말이다(마 7:1-13).
62. 성경과 교회전통이 결합되어 신자들 믿음의 법칙이 된다(80, 82). 성경의 가르침: 성경만이 교회 안에서 믿음의 법이 된다(막 7:7-13, 딤후 3:16,17). 출처 : http://www.headstone.pe.kr/12_bbs/view.php?id=a65&page=1&sn1=&divpage=1&category=18&sn=on&ss=on&sc=on&keyword=교황&select_arrange=hit&desc=asc&no=19[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8:17:5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09-24 13:38:50 | 김학준
아직도 카톨릭이 개신교의 큰집쯤으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들(특히 나이드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런 책들을 얘기하면 그러냐, 그런 책 볼 시간에 성경책이나 많이 보자고 하시더군요. 그들은 천주교에 큰 반감이 없습니다. 그 이유가 그들의 실체를 정확히 모르기때문입니다. 이런 책들이 현재와 같은 어려운 시기에 분별력을 키울수 있도록 많이 퍼져야 합니다.
정목사님의 많은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2009-09-24 13:09:20 | 김학준
이번에 우리 출판사는 '성경 바로 보기'(라킨의 Rightly Dividing The Word)를 출간합니다.
이 책은 10년 전에 '다시 보는 성경'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번에 이 책은 개정, 증보되어 472쪽이 됩니다(컬러 선도 40쪽 포함).
1부는 라킨의 책이고 2부에는 젤러의 성경의 파노라마를 넣었습니다.
또 성경 구절도 최신판 흠정역으로 모두 바뀌었습니다.
참고로 정가는 12,000입니다.
내일 인쇄 들어가 다음 주부터는 생명의 말씀사 등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주변 분들에게도 널리 알려주기 바랍니다.
성경을 바로 보기 원하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 출판사로 주문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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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master@keepBible.com
계좌는 우리은행 256-031553-12-009(정동수)입니다.
감사합니다.
내용
제1부 성경 바로 보기
저자 서문 8역자 서문 10제1장 성경을 바로 보자 17제2장 시대와 경륜 27제3장 유대인과 이방인 42제4장 교회와 왕국 54제5장 네 가지 복음 67제6장 초림과 재림 70제7장 영의 세계 84제8장 사탄 94제9장 사탄의 삼위일체 100제10장 두 가지 신비 104제11장 그리스도의 부활 119제12장 성경의 부활 125제13장 성경의 심판 132제14장 두 아담 144제15장 속죄와 구속 157제16장 죄와 구원 164제17장 율법과 은혜 172제18장 믿음과 행위 178제19장 두 가지 본성 183제20장 그리스도인의 위치와 상태 191제21장 새로 태어나는 것과 침례 196제22장 선택과 자유 의지 205제23장 그리스도와 신자의 내주 관계 211제24장 그리스도의 세 가지 사역 220제25장 유월절 어린양 그리스도 230제26장 천국과 지옥 240제27장 유대교와 기독교 255제28장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들 267
제2부 세대주의 바로 알기
제1장 세대주의 바로 알기 275제2장 세대주의는 무엇인가? 293제3장 세대주의자는 누구인가? 311제4장 무죄 경륜 321제5장 양심 경륜 327제6장 인간 정부 경륜 335제7장 약속 경륜 343제8장 율법 경륜 351제9장 율법의 역할과 목적 359제10장 은혜 경륜 367제11장 교회 377제12장 환난기 389제13장 왕국 경륜 398제14장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409제15장 세대주의 요약 418
부 록성경 연대기 422역자 추천 참고 도서 426구원의 원리 429컬러 도표 목록 432
도표 목차1. 예언의 날들 242. 때와 시기 253. 시대와 경륜 314. 심판의 경륜 395. 유대인 436. 다섯 가지 세상 왕국 517. 이방인 538. 교회 559. 교회와 왕국 6310. 하나님의 왕국, 하늘의 왕국, 교회 6511. 네 가지 복음 6912.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7213. 예언의 산봉우리 7314. 다니엘의 칠십 이레 7515. 성막 8716. 사람의 세 가지 본질 8917. 지하 세계: 지옥 9118. 사탄: 이 세상의 신 9719. 사탄의 삼위일체 10120.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 10521. 처녀 탄생 10922. 적그리스도 11523. 적그리스도와 이방인들의 때 11724. 성경의 부활 12925. 성경의 심판 13326. 성도들에 대한 두 가지 심판 13627. 보상의 심판 13728. 두 아담 14529. 율법과 은혜 17330. 두 가지 본성 18731. 그리스도인의 위치와 상태 19332. 사람의 상태 19733. 그리스도와 신자의 상호 내주 관계 21334. 그리스도의 세 가지 사역 22135.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23536. 성경의 하늘들 24337. 유대교와 기독교 25738. 그리스도와의 친밀도를 보여 주는 원들 26939. 만물의 회복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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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3 18:30:10 | 관리자
이번에 우리 출판사는 '성경 바로 보기'(라킨의 Rightly Dividing The Word)를 출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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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3 18:27:21 | 관리자
이번에 우리 출판사는 '성경 바로 보기'(라킨의 Rightly Dividing The Word)를 출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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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3 18:27:21 | 관리자
분별력을 돕는 좋은 댓글들이라 생각합니다. 참 좋네요^^
갈수록 사탄의 계략은 교묘하며 집요하군요.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2009-09-23 15:10:38 | 박종철
구원파는 위험한 것입니다 회개할 필요가 없다니요~ 명목상 신자 즉 주여주여~하는 자들을 만드는 집단입니다. 정말 참 믿음이 무엇입니까? 행함있는 산믿음 아닙니까? 단순히 사변적인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진정한 만남으로 인해 임금과 구주로 모셔 드리며 임금으로써 그분을 경외하며 사랑함으로서 그분의 모든 뜻과 말씀을 인정하며 말씀대로 살고 우리의 죄로 인해 그분이 못밖이시고 죽으셨음으로 가장 미워하는 것이 죄가 되어 평생 자기의 죄성을 회개하며 치며 정말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못해서 안타까워 하며 경외함으로 살아야 그것이 참믿음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살아야 참믿음이다 라는 말이 아니라 참믿음이 들어올 때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쁜소식선교회, 구원파 입장은 너무나 어이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체로 여기신다면 절대 그럴 수 없지요 지금도 주님은 우리의 죄때문에 아파 하시는데,,,
2009-09-23 14:36:30 | 장철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