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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자손이 그 새긴 형상을 세웠으며 므낫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아들들은 그 땅이 포로로 사로잡혀 가는 날까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니라(삿18:30). “And the children of Dan set up the graven image: and Jonathan, the son of Gershom, the son of Manasseh, he and his sons were priests to the tribe of Dan until the day of the captivity of the land.”(Judges 18:30)   여기의 문제는 므낫세(Manasseh)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위로 올라간 ‘눈’(Hebrew letter n)이라는 문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Vn 만일 위로 올라간 ‘눈’이 없다면 자음들은 ‘MSH’가 되며 이것은 모세를 뜻합니다. 히브리 성경에서 위로 올라간 자음은 무언가를 강조할 때 쓰입니다. 시80:14, 욥38:13, 15에는 ‘아인’이라는 글자가 위로 올라가 있습니다. 현대역본들도 이것들은 모두 제대로 번역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 역시 킹제임스 성경처럼 위로 올라간 ‘눈’을 살려서 ‘므낫세’로 번역해야 함이 맞습니다. 이 단어를 모세로 번역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서기관들의 실수라고 말합니다. 원래 모세에게는 사악한 손자가 있었는데 모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서기관들이 위로 올라간 ‘눈’을 넣어 ‘모세’가 아니라 ‘므낫세’가 되게 했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들로 인해 킹제임스 성경을 포함한 여러 성경은 이 단어를 ‘므낫세’라고 하고 개역성경을 포함한 최근의 성경들은 이 단어를 ‘모세’라고 합니다(다음의 표 참조).  모세(MOSES) 므낫세(MANASSEH) 1890 Darby Bible    Die Bibel (Martin Luther 1545, 1912) 1901 American Standard Version(한글개역성경) Young’s Literal Translation New International Version Jewish Publication Society of the OT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King James Version(흠정역) The New Living Translation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New Century Version The New King James Version LXX Family A (Codex Alexandrinus) LXX Family B (Codex Vaticanus) 여기서 두 가지 짚고 넘어갈 확실한 사실이 있습니다. (1) 히브리 사본 중 어떤 것도 ‘모세’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비평 본문인 BHS도 ‘므낫세’로 되어 있습니다. (2) 단지 그리스어 70인역과 라틴 벌게이트 그리고 시리아 역본만 ‘모세’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습니다. 히브리 사본은 모두 ‘므낫세’를 지지하며 킹제임스 성경은 이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NIV, 개역성경 등의 현대역본들은 원어에서 번역된 고대 역본들에 근거해서 ‘모세’라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NASB와 ASV의 차이입니다. NASB는 1900년대 초반에 나온 ASV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ASV는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만든 영어개역성경(ERV)의 미국 판입니다. ASV는 이 단어를 ‘모세’라고 했는데 최근판인 NASB는 이를 고쳐서 다시 ‘므낫세’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본의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글개역성경은 ASV를 근간으로 번역되었으므로 당연히 ‘모세’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모세’가 아니라 ‘므낫세’로 그대로 두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제 이름들을 살펴봅시다. 게르솜은 누구일까요? 그는 물론 모세와 상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적어도 3명의 게르솜이 나옵니다. (1) 모세의 맏아들(출2:22); (2) 레위의 아들(대상6:16; 15:7); 그리고 (3) 비느하스의 후손(스8:2). 그러면 므낫세는 어떤가요? 구약성경에는 적어도 네 명의 므낫세가 등장합니다. (1) 요셉의 맏아들(창41:51); (2) 히스기야의 아들(왕하20:21; 21:1-20); 그리고 (3) 타국인 아내를 버린 사람들(스10:30, 33). 그러므로 우리는 므낫세와 게르솜이 구약시대에 흔한 이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본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우리는 여기의 게르솜을 모세와 연결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대상26:24를 보면 모세의 손자는 요나단이 아니라 스브엘(‘오 하나님이여, 돌아오소서’라는 의미를 가짐)로 되어 있습니다. 스브엘은 보고를 맡아 감독한 사람인 반면에 요나단은 불순종한 단 지파의 배역한 제사장입니다. 이 단어를 ‘모세’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블엘이 후에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요나단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아무 근거가 없는 내용이지요. 성경에서 단 지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가나안 땅에 관한 언약’을 깬 유일한 지파입니다(레25:23-34; 민36:7-9 참조). 단 지파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영토를 팔거나 거기서 움직이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땅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레위 사람으로 율법 교사인 요나단은 그들의 악한 행위를 꾸짖지 않고 오히려 탐욕으로 인해 그들을 도왔습니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이 망할 때까지 지속된 우상 숭배의 단초를 제공했습니다(삿18:30-31). 그의 죄가 이처럼 심각하고 사악햇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위로 올라간 ‘눈’을 써서 이것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눈’이라는 글자는 그의 할아버지인 므낫세에게 붙여졌는데 아마도 이 그 이유는 므낫세가 레위 사람들의 도시를 떠나서 레위 사람들의 도시가 아닌 베들레헴유다로 이사한 장본인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베들레헴유다는 유다의 땅이었습니다(수21:9-16 참조). 그의 손자인 요나단은 레위 사람들의 도시가 아닌 바로 베들레헴유다에서 왔습니다(삿17:7, 9). 므낫세는 레위 사람들의 도시를 떠나서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땅에 관한 언약’을 어겼고 그의 손자인 요나단은 그의 악한 행위를 본받아 단 지파와 결합하여 이스라엘에 우상숭배를 도입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삿18:30에서 ‘므낫세’라는 말은 히브리 원본이 지지하는 확고한 단어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쓰시던 히브리어 성경도 ‘므낫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사상에 근거한 개역성경과 ASV 등이 이를 ‘모세’라고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후에 깨달은 NASB는 급히 다시 ‘므낫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손 안에 들어 있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확실합니다. 틀린 데가 없습니다. 여기서 신실하게 번역한 것이 우리말 흠정역 성경입니다. 믿음에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보존된 성경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009-05-07 14:34:49 | 관리자
질문: 사사기 5장 14절은 글 쓰는 자의 펜이 맞습니까, 대장의 지팡이가 맞습니까?대답: 이 문제는 진화론적 사고를 가진 번역자들이 고의로 저지른 실수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에 따라 글 쓰는 자의 펜이 맞습니다. 먼저 대상 성경 구절을 살펴봅시다.스불론에게서는 글 쓰는 자의 펜을 다루는 자들이 내려왔도다(삿5:14).1884년에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영국개역성경을 내면서 ‘글 쓰는 자의 펜’을 삭제하고 ‘대장군의 지팡이’로 대체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당시 발견된 고고학 자료인 ‘텔아르마나 서판’이 사사기 시대에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음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분명하게 모세와 여호수아가 성경의 일부를 기록했다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이 부분에서 성경이 틀렸다고 자기들 마음대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그 당시 사람들이 펜으로 글을 썼다는 고고학적 증거들이 나왔지만 현대 역본들은 여전히 이 구절을 제대로 적지 않고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은 ‘대장군의 지팡이’로 번역한 뒤 각주에 히브리말로는 ‘기록하는 자’라고 적고 있습니다. 히브리말이 ‘글 쓰는 자’로 되어 있으면 그대로 번역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모세 당시 사람들이 무식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피라미드를 보기 바랍니다. 현대 사람들이 그런 것을 지을 수 있습니까? 그런 것을 지으려면 계산을 하고 도면을 그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글을 쓸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고고학적 발견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2009-05-07 14:33:38 | 관리자
사 사 기 The Book of JUDGES   기록자: 사무엘(탈무드), 기록 시기: 주전 1100년경, 성격: 역사, 기간: 약 305년(어셔), 수신자: 하나님이 구출하신 이스라엘 백성 이름: 영어 성경 제목 ‘Judges’는 사사기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책명 ‘크리타이’에서 나온 말로서 ‘재판관들’을 뜻한다. 우리말의 사사기는 고대 중국의 재판관을 가리키는 사사(士師)에서 유래되었다. 히브리 성경에서 사사기는 여호수아의 죽음과 왕정이 시작되는 시기 사이에 이교도들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지도자 혹은 구원자를 뜻하는 ‘쇼페팀’에서 유래되었다. 히브리 사람들의 재판관은 영어나 우리말의 재판관이 나타내는 의미보다 훨씬 더 넓은 의미를 포함한다. 고대 국가에서 이 말은 문관(文官)이나 국가의 수뇌를 묘사할 때 사용되곤 하였다. 사사기에서는 총 12명의 재판관이 나오며 아비멜렉은 스스로 권력을 빼앗아서 재판관 노릇을 한 사람이다. 주제: 하나님께서 추방하라고 명령하신 가나안 족속들을 이스라엘이 추방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들이 허리에 가시가 되어 이스라엘을 괴롭힐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재판관들을 일으키고 그들을 구원하신 것 목적: 성도가 마땅히 누려야 할 복을 누리지 못할 때 그 이유가 무엇인지 보여 주며 그 상황을 극복하게 하고 다시 교제를 나누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주는 것 내용: 사사기는 여호수아와 그 당시 장로들의 죽음 이후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제공한다. 사사기에는 재판관들의 생애와 활동과 직무 등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여전히 신정 정치를 통해 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셨고 재판관들은 다음과 같은 때에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도구로 쓰였다. (1) 이스라엘이 원수들로부터 압제를 받아 극심한 고통을 당할 때; (2) 이스라엘의 권리와 자유를 유지시켜야 할 때; (3) 이스라엘 군대를 인도하여 적군을 치게 할 때; (4) 공의를 수행할 때. 재판관들은 왕들과는 달랐으며 그래서 그들의 직무는 지속되거나 다음 세대로 이양되지 않았다. 이 책은 타협과 더불어 시작되며 무정부 상태로 끝을 맺는다. 사사기는 21장, 618절, 18,976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2장(이스라엘의 배도의 시작), 핵심 절: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은 것을 행하였더라.”(21:25), 핵심 단어: 건져 내다 혹은 구출하다(28회), 핵심 구: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1:27; 29; 30; 31) 이 구절은 이스라엘이 자기의 원수들을 약속의 땅에서 완전히 추방하지 않음으로 인해 부분적인 승리가 임한 것을 보여 준다. 사사기의 그리스도: 1. 우리의 구출자(3:9), 영적 교훈: “우리의 경계를 주의해서 살펴보라.”
2009-05-07 14:32:49 | 관리자
여호수아기 The Book of JOSHUA   기록자: 여호수아, 기록 시기: 주전 1430년경, 성격: 역사, 기간: 약 26년, 수신자: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 이름: 영어 성경 제목 ‘Joshua’는 히브리말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를 뜻한다. 주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을 정복하고 지파 별로 배분하는 것 목적: 우리의 여호수아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복의 장소로 인도하시고 승리하게 하시며 궁극적으로 자신 안에서 하늘에 있는 복을 누리게 하시는 것을 보여 주는 것 내용: 여호수아기는 모세오경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계속해서 기록하며 족장들과의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열두 지파를 약속의 땅에 정착시킴으로 생겨난 신정 국가를 보여 준다(11:23; 21:43-45). 모세의 죽음 이후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인도할 책임을 맡았다.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국가가 정착되고 가나안 정복이 이루어져서 지파 별로 땅을 배분하는 일은 친히 자신의 백성을 구출하셔서 오래 전에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 즉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잘 보여 준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광야에서 그들이 불평하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믿지 않는 과정 속에서도 지속된다. 또한 여호수아기에서는 가나안 족속들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이 잘 드러난다. 이 책에서 입증되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 중 하나는 하나님의 구원이다. ‘예수’의 히브리말 즉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를 뜻하며 따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소유하게 된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은 투쟁과 승리와 복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체험을 보여 준다(엡1:3; 2:6; 6:12). 그러므로 여호수아기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에베소서와 신약 성도들과의 관계와 비슷하다. 이런 차원에서 가나안은 천국의 예표가 아니라 원수의 권능을 무찌르고 승리의 삶을 사는 현장의 예표로 이해될 수 있다. 여호수아기는 24장, 658절, 18,858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1장(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주심), 핵심 절: “주께서 이스라엘의 집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이루어지니라.”(21:45), 핵심 단어: 소유하라, 핵심 구: “하나님의 신실하심”(1:3; 21:45) 여호수아기의 그리스도: 구원의 대장(5:14; 히2:10), 영적 교훈: “네 소유물을 소유하라.”
2009-05-07 14:32:02 | 관리자
반복의 율법이라 하는 모세의 다섯 번째 책: 신명기 The Fifth Book of Moses Called DEUTERONOMY   기록자: 모세, 기록 시기: 주전 1450년경, 성격: 역사, 율법, 기간: 약 40년, 수신자: 이집트 탈출 이후 광야 생활을 하면서 태어난 새 세대의 이스라엘 백성 이름: 유대인들은 이 책을 ‘말씀들’(The Words)이라고 불렀다. Deuteronomy는 신명기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책명 ‘듀테로노미온’에서 나와 라틴어를 거쳐 영어로 정착된 이름으로 ‘두 번째 율법’을 뜻한다. 이것은 결코 유대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두 번째 율법을 받았음을 뜻하지 않고 다만 시내 산에서 모세가 받은 율법이 여기서 다시 한 번 검토되고 거기에 대한 주석이 주어짐을 뜻한다. 한글 성경의 ‘신명기’는 ‘명령들을 자세히 설명한 책’이라는 뜻으로 신명기의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제: 광야에서 하나님의 역사와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회고, 새 땅에서의 이스라엘을 안내하기 위한 교훈,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예언 목적: 신자의 믿음의 시련 과정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실하지 못함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 주며 동시에 현 세대에서의 삶의 원리와 미래의 소망을 알려 주는 것 내용: 신명기는 시내 산에서 처음에 주어진 율법을 직접 듣지 못한 새 세대의 출현과 이들이 한 번도 밟아 보지 못한 가나안이라는 새 땅의 정복과 유랑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바뀌면서 이들이 지켜야 할 새 의무의 필요 등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영감으로 주신 말씀이다. 여기에서 모세는 새 세대에게 과거에 시내 산에서 받은 율법을 다시 한 번 복습시키고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서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려면 어떤 조건 하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를 자세히 보여 준다. 잠시 후에 그들을 떠날 모세는 그들의 안녕과 복지를 진지하게 갈구하면서 잠시 남은 시간을 이용하여 그들의 마음 판에 하나님의 율법을 새겨 주려고 노력하는데 바로 이 율법이야말로 그들이 지켜야 할 순종의 잣대요 또 행복의 열쇠였다. 그래서 모세는 구세대의 불순종을 그들에게 상기시키고 가나안에서 그들이 불순종하게 될 때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미리 경고를 주며 특히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예언의 말씀들을 준다. 예수님은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여 마귀의 궤계를 격퇴시키셨고(마4:1-11) 또 율법을 한 마디로 요약하셨다(마22:37). 신약성경의 27권 책 중에서 17권이 신명기를 인용하고 있다. 신명기는 34장, 958절, 28,461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29장(팔레스타인 언약), 핵심 절: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6:5), 핵심 단어: 1. 순종, 2. 기억, 핵심 구: “지켜 행하라.”(12:1) 신명기의 그리스도: 대언자(18:15-19; 행3:22-23; 7:37), 영적 교훈: “멈추어 서서 기억하라.”
2009-05-07 14:31:21 | 관리자
백성의 수라 하는 모세의 네 번째 책: 민수기 The Fourth Book of Moses Called NUMBERS   기록자: 모세, 기록 시기: 주전 1450년경, 성격: 역사, 기간: 약 39년(어셔), 수신자: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체험하고 가나안에 정착할 두 번째 세대의 이스라엘 이름: Numbers는 수(數)를 뜻하는 그리스어 책명 ‘아리스모이’에서 나와 라틴어 ‘누메리’를 거쳐 영어로 정착된 이름으로 ‘많은 종류의 수를 보여 주는 책’을 뜻한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여러 종류의 수 - 예를 들어 이스라엘 지파의 통계(1:20-46), 레위의 몇몇 가족의 수(3:14-51), 이스라엘 족장의 통계(26:5-51), 행사 때에 바친 희생 제물의 수(28:1-29:23), 미디안 사람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의 수(31:32, 52) 등 - 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한글 성경의 민수기라는 이름은 이 책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 조사에 근거를 둔 이름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책은 히브리 성경의 이름인 ‘광야에서’가 의미하듯이 인구 조사가 핵심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광야의 여정을 지나간 것이 핵심이다. 주제: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과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목적: 사람이 믿음을 통해 시험의 장소에서 복의 장소로 들어가도록 하나님께서 성도의 인생 여정을 인도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 내용: 역사적으로 볼 때 민수기는 출애굽기가 끝나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민수기는 가데스바네아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광야에서 방황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특별히 민수기는 이전의 모세의 세 책과 더불어 신자의 경험을 완벽한 그림으로 보여 준다. 창세기는 창조와 타락을, 출애굽기는 구속을, 레위기는 경배와 교제를, 그리고 민수기는 섬김의 여정을 보여 준다. 민수기는 시내 광야에서의 마지막 19일부터(1:1; 10:11) 이집트 탈출 뒤 40년이 되는 해에 요르단 동쪽 모압 평지에 도착할 때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22:1; 26:3; 33-36:13). 민수기에는 몇 장에 걸쳐 인구 조사가 기록되어 있지만(1-4장, 26장) 책의 대부분은 율법과 규례와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경험을 다루고 있다. 두 번에 걸쳐 시행된 인구 조사는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첫 번째 조사는 광야 생활을 준비하며 시내 산에서 이루어졌고 두 번째 것은 약 40년 후에 약속의 땅에 들어갈 준비를 하면서 요르단 강 근처에서 이루어졌다. 이 두 차례의 인구 조사가 민수기를 양분한다. 1-21장은 첫 번째 인구 조사를 시작으로 해서 광야 시대를 다루고 있고 26-36장은 새로운 세대에 대한 인구 조사를 시작으로 해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몇  달 전까지의 역사를 말해 준다. 이 둘을 나누는 거짓 대언자 발람의 이야기는 문학적으로 또 예언적으로 큰 중요성을 지닌다. 민수기는 36장, 1,288절, 32,902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14장(가데스바네아에서의 불신), 핵심 절: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의 손 밑에서 자기들의 군대와 함께 이집트 땅에서 나오던 때의 여정이 이러하니라.”(33:1), 핵심 단어: 여정, 핵심 구: “여정이 이러하니라.”(33:1) 민수기의 그리스도: 1. 반석(20:11; 고전10:4), 2. 별 - 통치자(24:17; 계22:16), 3. 홀 - 치리자(24:17; 딤전6:14-15), 영적 교훈: “하나님의 은혜로 서 있을 곳에 서 있으라.”
2009-05-07 14:30:38 | 관리자
  이스라엘의 헌물 제도 이름 성경 구절 내용 의미 번제 헌물 (태우는 헌물)       레1; 레6:8-13       수소, 숫양, 숫염소, 수컷 집비둘기 혹은 산비둘기(제물은 모두 흠 없는 수컷이어야 하고 바치는 사람의 재정 능력에 따라 헌물이 정해짐) 자원해서 드림. 죄로 인한 화해와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복종을 의미함.     음식 헌물 (소제 헌물)     레2; 레6:14-23     고운 밀가루, 빵이나 과자(기름과 소금으로 만든 음식으로서 반드시 누룩이 없어야 하고 유향을 더하기도 함) 자원해서 드림. 첫 열매로 인한 감사     화평 헌물 (화목제):  감사 헌물, 서원 헌물, 자원 헌물 포함   레3; 레7:11-36; 레22:17-30; 레27     흠 없는 짐승(암수에 상관없고 바치는 사람의 재정 능력에 따라 헌물이 정해짐)       자원해서 드림. 하나님과의 교제를 의미함. (1) 특별한 복에 대한 감사 (2) 서원에 대한 표현 (3) 일 년에 세 차례 모이는 명절에 감사를 표시하는 것 죄 헌물 (속죄제)           레4:1-5:13; 레6:24-30; 레12:6-8         흠 없는 짐승(수컷이나 암컷) 제사장, 회중: 어린 수소 치리자: 숫염소 새끼 일반인: 암 염소 새끼나 어린양; 가난한 사람: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매우 가난한 사람: 밀가루 십분의 일 에바 필수적으로 드림. 무의식적으로 죄를 지은 자가 바치거나 부정한 자가 정결하게 되기 위하여 바침.       범법 헌물 (속건제)       레5:14-6:7; 레7:1-6; 레14:12-18     흠 없는 숫양         필수적으로 드림.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했거나 거룩한 것을 더럽게 한 사람이 바침. 나병 환자들도 정력하게 되기 위해 바침. 거제 헌물 (들어 올리는 헌물)     출29:27-28; 레7:12-14, 32; 민6:20; 민15:19-21; 겔 48:8-12 화평 헌물 중 하나 오른쪽 어깨       원래 이것은 주께 드린 것의 일부를 제사장이 들어 올림으로써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보여 주는 데서 유래됨. 요제 헌물 (흔드는 헌물)     출 29:24,26 레7:30; 레8:27, 29 민6:20; 8:11 제사장을 거룩히 구별하는 숫양의 가슴     원래 이것은 희생물의 가슴을 주 앞에서 흔들어 일단 주께 바친 헌물을 제사장에게 주는 데서 유래됨.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음료 헌물(전제)은 날마다 혹은 안식일이나 월삭, 명절 등에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과 함께 누구나 드릴 수 있었다(민15:1-10; 28:14; 29:6).
2009-05-07 14:29:40 | 관리자
레위 사람들에 관한 법이라 하는 모세의 세 번째 책: 레위기 The Third Book of Moses Called LEVITICUS   기록자: 모세, 기록 시기: 주전 1450년경, 성격: 율법, 수신자: 레위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 이름: 유대인들은 이 책을 ‘주께서 부르셨다’(The LORD called)라고 불렀다. Leviticus는 레위기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책명 ‘레위티콘’에서 나와 영어로 정착된 이름으로 ‘레위 사람들에 관한 책’을 뜻한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주로 레위의 제사장 체계, 제사장들의 섬김, 희생 율법 등을 다루기 때문이다. 주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지 또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보여 주는 것 목적: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가르쳐 주고 구원받은 신자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을 보여 주는 것(엡1:7; 히10:19-22) 내용: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관계는 사복음서와 서신서의 관계와 비슷하다. 출애굽기는 구속의 기록으로서 구속받은 백성이 정결하게 되어 자기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을 섬기고 그분께 경배 드리는 것에 대한 기초를 놓는다. 이스라엘 백성은 레위기에서 출애굽기의 기초 위에 이 일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쌓는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산에서 말씀하시지만 레위기에서는 자신이 친히 거하며 자신의 백성들이 접근할 수 있는 성막에서 말씀하신다. 레위기의 내용은 전적으로 율법적이며 이 안에는 시민법, 의식법, 윤리법, 종교법, 정결례 등에 관한 법규가 들어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우리의 관심이 되는 것은 종교법과 의식법이다. 레위기에서 발견되는 여러 종류의 희생과 명절과 의식과 예식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요, 장차 올 좋은 것들의 그림자이다. 이런 면에서 히브리서는 성령님이 영감을 주신 레위기 주석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 두 책을 함께 읽음으로써 예표와 실체를 잘 이해할 수 있다. 레위기를 통해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때 영적인 복을 기대할 수 있다. 레위기는 27장, 859절, 24,546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16장(속죄일), 핵심 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나 주 너희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할지니라.”(19:2), 핵심 단어: 거룩함(152회), 핵심 구: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너희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여 거룩할지니라.”(11:44) 레위기의 그리스도: 위대한 대제사장(히4:14), 영적 교훈: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져라.”
2009-05-07 14:28:53 | 관리자
질문 : 하나님의 창조는 지금과 같은 24시간의 날들에 일어났습니까? 대답 :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일을 마치시고 자신이 만든 모든 일을 떠나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2:2) "엿새 동안에 주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주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11) '날'(day)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를 뜻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24시간의 하루이며 두 번째는 어떤 기간입니다. 후자의 경우 '노아의 날' 같은 표현은 '노아의 생애'를 뜻하며 실제적인 24시간을 뜻하지 않습니다. 유신론적 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창세기 1장의 '날들'(days)이 실제적인 24시간의 날들이 아니라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기간을 뜻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것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몇 날을 지정하는 경우는 언제든지 24시간의 날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유신론적 진화를 주장하는 사람이 은행에서 10,000달러를 빌린 뒤 엿새 후에 100달러 이자와 함께 원금을 갚겠다고 약속한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이 때 은행은 분명히 엿새 뒤에 10,100달러를 기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유신론적 진화론자는 이렇게 말 할 것입니다. "나는 실제적인 엿새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여섯 기간을 즉 60억 년을 말한 것이며 그때에 10,100달러를 갚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은행에서 어떤 조치를 취하겠습니까? 보통 우리가 날이라 하면 24시간을 의미하며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날'을 처음부터 끝까지 찾아보면 분명하게 다른 것을 의미한다고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날'은 항상 24시간의 날입니다. 겔4:6을 보면 24시간이 아닌 날의 예가 있습니다. 겔4:5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더러 390일 동안 왼쪽으로 누움으로써 예루살렘이 포위된 것을 상징적으로 보이라고 했습니다. "그것들을 채우거든 다시 네 오른쪽 옆구리로 누워 사십 일 동안 유다의 집의 불법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각 날을 일 년으로 정하였느니라."(겔4:6) 이 경우 하루는 1년을 의미했고 에스겔은 430년이 아니라 430일 동안 누웠습니다. 성경은 지구가 약 6,000년 전에 생성되었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이것이 정확한 지구의 나이입니다(The Book of Bible Problem by G. D. Bouw, Ph.D.).
2009-05-07 14:28:04 | 관리자
질문 : 모세의 장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답변 : "그들이 자기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르렀을 때에 그가 이르되, 너희가 어떻게 오늘은 이같이 빨리 돌아왔느냐? 하니"(출2:18) "이제 모세가 자기 장인 곧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양떼를 지키더라. 그가 그 떼를 사막의 뒤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곧 호렙에 이르매"(출3:1) "이제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에서 겐 족속 헤벨이 자신을 분리하여 겐 족속을 떠나 게데스 옆의 사아나임 평야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삿4:11) 모세의 장인의 이름은 세 가지나 됩니다. 르우엘은 출2:18에 단 한 번 나오며 이드로는 총 열 번 나오고 호밥은 민10:29와 삿4:11에 두 번 나옵니다. 르우엘은 "하나님의 친구"를 뜻하며 모세가 그를 만났을 때 이 이름이 나옵니다(출2:18). 그 때에 그는 이미 미디안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이드로는 뛰어난 사역자를 뜻하므로 이것은 이름이라기 보다 호칭이었을 것입니다. 이집트 탈출 당시 그는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했으며 호밥으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그의 애칭이었던 것 같습니다. 민10:29에서 우리는 또한 호밥의 아버지의 이름이 라구엘임을 알 수 있습니다(The Book of Bible Problem by G. D. Bouw, Ph.D.).
2009-05-07 14:27:10 | 관리자
질문 : 모세가 율법을 기록했습니까? 대답 : "또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기 위해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말한 자들도 이들이니 이들은 그 모세와 아론이라. 주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던 그 날에"(출6:27-28) 만일 모세가 출애굽기를 기록했다면 왜 이 구절에서 모세는 자기에 대해 제 3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할까요? 성경에서는 말하는 사람이 바뀌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성경의 저자이시며 삼위일체의 세 분이 서로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예를 들어 시편 2편) 출6:27-28 역시 영감을 받은 사람이 기록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종종 자신에 대해 제3자의 입장에서 말씀하였음을 발견합니다. 예를 들어 요3:16에서 그분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면서 자기 자신을 가리켜 '그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책이며 그분께서 이 책의 저자시라면 (딤후3:16) 성경에서 말하는 사람이 바뀌는 경우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3장의 경우 앞부분에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고 뒷부분은 성령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처럼 말하는 사람이 변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도 있습니다. 신명기 24장은 모세의 죽음 이후에 기록되었는데 그렇다면 누가 그 부분을 기록했을까요? 아마도 모세가 느보 산에 올라가기 전에(신24:1) 앞날을 예언하며 그 부분을 기록했을 수도 있으며 여호수아가 수24:26에 기록된 것처럼 그 부분을 기록했을 수도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 말씀들을 하나님의 율법 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거기서 주의 성소 옆에 있던 상수리나무 밑에 세우며"(수24:26). 이 구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대화 부분 특별히 모세의 죽음 이후의 부분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문제는 간단히 해결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께서 성경에 여감을 주신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심지어 모세를 써서 그가 죽기 전에 이 부분을 기록하게  할 수 있습니다(The Book of Bible Problem by G. D. Bouw, Ph.D.).
2009-05-07 14:25:42 | 관리자
질문: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출애굽기 20장 6절은 “나를 사랑하고 내 명령들을 지키는 수천의 사람들에게는 긍휼을 베푸느니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개역성경이나 한글 킹제임스 성경처럼 “나를 사랑하고 내 명령들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혹은 수천 대까지) 긍휼을 베푸느니라”로 번역해야 하지 않습니까? 대답: 아닙니다. 지금의 번역이 원문, 영문, 문맥에 맞는 번역입니다. 영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And shewing mercy unto thousands of them that love me, and keep my commandments.‘천 대’ 혹은 ‘수 천 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5절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나는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손들에게 벌하여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5절 후반부).…visiting the iniquity of the fathers upon the children unto the third and fourth generation of them that hate me;즉 5절에 하나님의 징계가 삼사 대까지 간다고 했으니 6절에 있는 하나님의 긍휼도 수천 대까지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추측에 불과하며 원문에도, 영어에도 6절에 ‘세대’라는 말이 없습니다. 또한 신학적으로도 수천 세대는 맞지 않습니다.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들의 불법을 영원토록 벌하는 것이 아니라 삼사 대까지만 벌하여 긍휼을 베푸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6절에서처럼 아버지의 은덕으로 수천 세대까지 긍휼을 받는다면 이것은 말 그대로 조상 덕으로 은혜를 받는다는 것인데 성경은 이런 사상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가 6,000년 정도이며 처음에는 사람이 근 1,000년까지 살았음을 고려할 때 아담으로부터 지금까지의 세대 수는 약 200세대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면 수천 세대라면 앞으로도 몇 만 년이 더 지나야 할 터인데 과연 조상의 은덕이 몇 만 년까지 간단 말입니까? 이런 것은 결코 성경에 있지도 않으며 사람들이 상상해서 ‘세대’를 집어넣은 것에 불과합니다.참고로 영어에서는 ‘수천의 사람들’(thousands of them)이 많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여기서도 럭크맨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럭크맨이 주석서에서 이 구절에 ‘세대’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럭크맨이든 누구든 성경에 없는 것을 넣으면 성경을 변개시키는 것입니다. 저희는 고의로 성경을 변개시키지 않습니다. 이해가 안 되면 그대로 두고 이해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여기서 다 이해가 안 되면 천국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저희의 철학입니다. 혹시 성경을 읽으시다가 실수나 오탈자 등을 발견하시면 언제라도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의문 사항도 좋습니다. 성경에 맞으면 나중에 쇄를 바꿀 때에 교정하겠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희가 알면서도 고의로 성경을 변개시켜 특정 교리를 세우려고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2009-05-07 14:25:11 | 관리자
탈출이라 하는 모세의 두 번째 책: 출애굽기 The Second Book of Moses Called EXODUS   기록자: 모세, 기록 시기: 주전 1450년경, 성격: 율법, 기간: 약 216년(어셔) 수신자: 이집트 탈출 이후 광야 생활을 하면서 이집트 탈출과 시내 산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선민으로 공식 출범한 이스라엘 백성과 모든 성도(롬15:4; 고전10:11) 이름: Exodus는 출애굽기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책명 ‘엑소더스’에서 나와 영어로 정착된 이름으로 ‘탈출’을 뜻한다. 따라서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는 것을 보여 주며 영적으로는 사람이 죄의 왕국에서 탈출하는 것을 보여 준다. 주제: 이스라엘의 속박과 해방 및 하나님께 대한 관계(6:6-8; 19:4-8; 24:1-7; 25:8) 목적: 사람의 구속의 당위성과 방법 및 결과 등을 온 인류에게 보여 주는 것(엡2:1-10) 내용: 출애굽기는 창세기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 요셉과 모세 사이의 시기는 1장 6-7절로 간략히 기술되고 곧바로 이스라엘 자손의 절박한 상황을 기술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한때 파라오와 요셉의 총애를 받던 이스라엘 자손은 이제 속박의 집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게 된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파라오가 나타나 히브리인들을 지배하려 하지만 권능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민을 구속하기 위해 활동하신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먼저 모세를 예비하고 그 다음에 자신의 권능에 의한 이집트 탈출의 구속의 사건을 일으키신다. 이집트로부터의 구속은 단순히 노예 상태에서 해방 되는 것 이상의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친히 예비하신 백성으로 삼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셨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 들어 있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씨를 번성케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것이다. 이 외에도 출애굽기에는 이스라엘의 고난, 하나님의 긍휼과 그것을 통한 해방, 광야에서의 성막 예배 규례 등이 중요한 진리로 자리 잡고 있다. 출애굽기 전체를 통해서 우리는 신자가 마귀의 왕국인 영적 이집트를 떠나 세상이라는 광야를 통과하며 승리의 가나안에 들어가는 여정과 더불어 이 여정 속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을 본다. 출애굽기에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직무 그리고 은혜 등을 가리키는 예표가 많이 있다. 출애굽기는 40장, 1,213절, 32,692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12장(유월절), 핵심 절: “주께서 두루 지나가시며 이집트 사람들을 치실 때에 문의 인방과 양 옆 기둥의 피를 보시면 주께서 그 문을 넘어가시고 파멸시키는 자가 너희 집에 들어가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시리라.”(12:23) 핵심 단어: 구속(대속). 출애굽기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려면 반드시 구속이 필요함을 보여 줌과 동시에 구속받은 자녀들도 계속해서 더러움에서 정결하게 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핵심 구: “너희를 넘어가리라.”(12:13) 출애굽기의 그리스도: 1. 하나님(3:14, 요8:58 참조), 2.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12:5, 고전5:7 참조), 3. 만나(16:14-22, 요6:35 참조), 4. 반석(17:1-7, 고전10:4 참조), 영적 교훈: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서 나오라.”
2009-05-07 14:24:34 | 관리자
이 글은 도서출판 건생에서 발간된 단행본 ‘생로병사, 그 신비를 벗긴다.’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었던 인간들은 아담의 타락 이후부터 노아의 홍수가 나기 전까지 평균 9백세 가량을 영위하고 죽었다. 아담의 세대들에 대한 책(the book of the generations of Adam)(창 5:1)에 나오는 인물들은 정녕 하나님의 심판으로 죄의 삯을 치르고 모두 죽어갔는데, 그들은 무한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잠깐 동안 살다 죽은 것이나 오늘날 우리 인간들의 관점에서 보면 대단한 장수를 누리며 살았었다. 즉, 아담에서부터 노아 때까지의 인간의 수명을 살펴보면, 아담 9백30살(창5:5), 셋 9백12살(창5:8), 에노스 9백5살(창5:11), 게난 9백10살(창5:14), 므두셀라 9백69살(창5:27), 노아 9백50살(창9:29)이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노아 이후로는 인간의 수명이 단계적으로 계속 줄어들어, 셈 6백세, 셀라 4백33세, 벨렉 2백39세, 아브라함 1백75세, 야곱 1백47세, 모세 1백20세, 그리고 마침내는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시 90:10) 정도로 평균 수명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각종 문명과 의학의 혜택을 입고 있는 현대인들이 불과 1세기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데 비해 므두셀라와 같은 노아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여 10세기 정도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홍수 이전에 비해 인간이 성적으로 조숙하게 되었다는 설, 식생활에 있어서 커다란 차이가 있으며 특히 비타민 C의 섭취량 차이 등도 주요한 원인들로 알려지고 있지만 본 글에서는 홍수 자체와 관련된 환경적 요인에 국한시켜 언급하고자 한다. 우선 우리들은 수명이 줄어들기 시작한 노아의 시대를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노아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타락한 인간들의 생활 형편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기까지 그래서 반신반인(半神半人, giants, demigods)이 나타날 정도로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게 되었고, 인간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였다(창6:1~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시사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인간들과 땅위의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물로 쓸어버리셨다. 므두셀라(Mutheselah, ‘심판’이라는 뜻)가 죽었던 바로 그 해에 일어난 노아의 홍수는 중동지방에 국한된 국지적 홍수가 아니라 온 세상을 뒤엎었던 어마어마한 역사적인 홍수였다. 즉 하늘은 사십주야 동안 계속해서 비를 억수같이 쏟아 부었다(창7:12,17). 그리고 최초의 사십주야 동안과 같이 꾸준히 억수처럼 비가 쏟아지지는 않았을지라도 150일 동안 하늘에서는 계속 비가 내렸고 땅에서는 샘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현재의 기상조건 하에서는 이 같은 일이 불가능하다. 그와 같이 엄청난 비를 쏟아놓을 수 있는 유일한 근원은 창세기 1장 7절에 기록되어 있는 ‘궁창 위의 물’(the waters which were above the firmament) 인데 바로 이 궁창 위의 물로 인해 홍수 이전의 인간들은 10세기 가까이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궁창 위의 물을 대기권의 한계를 넘는 에테르적인 물 또는 유리바다나 생명의 강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고 단순히 구름이라고 하는 생각도 가질 수 있지만 여러 과학자들은 노아의 홍수 전에 궁창 위에 물층(water canopy)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히브리어를 살펴 볼 때 하늘이란 단어는 ‘샤마임’으로서 ‘샴’(저 곳)과 ‘마임’(물)의 합성어인데 히브리인들은 하늘 위에 물층이 있었으므로 하늘을 ‘저 윗물’이라고 불렀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궁창 위의 물은 중력을 이기고 떠 있을 수 있도록 아주 작은 미립자 상태로 지구 전체에 걸쳐서 궁창 위에 떠 있었다. 즉 첫째 하늘 위에 있었던 이 수분층은 지구로 침투하는 수많은 우주광선을 걸러내 주는 역할을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놀랍게 창조하신 우리 육체 속에 재창조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인간은 이 수분층에 의해 우주광선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을 당시에는 생명력 곧 육체적 능력과 힘이 감퇴되지 않은 채 거의 천 년을 지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세포를 파괴하고 노쇠현상을 촉진시키는 고주파 방사선과 같은 우주광선이 이 수분층에 의해 완전히 차단된 상태이므로 아무런 변이현상(mutation)이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스파라가스의 화석이 무려 15 미터가 된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는데 이로써 아주 이상적인 환경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바로 이 수분층의 보호 덕분에, 즉 이 수분층이 우주광선 중 따뜻한 열선을 받아들인 후 외계로 방사되는 것을 막아 온실효과를 일으키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화석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며 그 당시 지구 전 지역이 하와이 같은 환경 또는 섭씨 27도 정도의 아열대 기후였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또 남극대륙의 지하 60 미터에서 많은 석탄이 발견되는 것과 시베리아 지방에서도 열대식물들과 함께 맘모스가 얼음 속에 묻혀 보존되어 있는 증거들로써 당시에는 극지방이라는 것이 없었으며 지구가 지금보다 훨씬 더 생존에 적합한 환경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남북극의 광활한 얼음지대뿐 아니라 폭풍우 같은 급격한 공기의 움직임도 홍수 이전에는 없었을 것이며 단지 온화한 바람의 순환만이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의 기상조건으로 미루어 보아 뜨거워진 공기로 인해 생긴 진공부분에 찬 공기가 갑자기 몰아치는 현상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주광선에 의한 분자구조의 파괴가 없었기 때문에 인간의 육체의 노화나 식물의 시들어 버림도 거의 없었을 것이며 아울러 홍수 후에 산맥들이 높이 솟아올라 대륙들의 지세가 더욱 험난하게 된 것과는 반대로 대륙 전체가 얕은 구릉으로 되어 있어서 그야말로 지구 곳곳이 하나의 아름다운 온실과 같았을 것이다. 이와 같이 노아 홍수 이전의 인간은 궁창 위의 물로 인해 지금과는 확연하게 다른 이상적인 환경 가운데 살면서 므두셀라(Methuselah)처럼 평균 9백여 세를 영위할 수 있었지만 홍수라는 심판 이후 엄청나게 달라진 지구환경 하에서는 그 수명들이 계속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09-05-07 14:23:42 | 관리자
질문: 벽을 파내려 갔습니까,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습니까? “오 내 혼아, 너는 그들의 은밀한 일에 가담하지 말지며, 내 존귀야, 너는 그들의 모임에 연합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분노 중에 사람을 죽이고 자기들의 의지대로 벽을 파내려 갔도다”(창49:6)   많은 사람들이 킹제임스 성경의 “벽을 파내려 갔다”(digged down a wall)가 틀리고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가 맞는다고 주장합니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개역성경 창49:6)   포인트(점)가 없는 자음 형태의 히브리말은 위의 두 가지를 다 의미하며 포인트가 있는 자음형태의 히브리말은 후자를 지지합니다. 그런데 성경기록을 살펴보면 이 구절의 그들 곧 시므온과 레위가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반대로 창34:28-29를 보면 그들은 히위 족속의 소들을 취하여 보관하려고 애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양과 소와 나귀들과 그 도시 안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그들의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들의 어린것들과 아내들을 포로로 사로잡고 심지어 집안에 있는 것을 다 노략하매” 또한 창34:27을 보면 그들이 성벽을 두른 도시를 노략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을 하려면 벽을 파서 무너뜨려야만 했습니다. 원래 히브리 성경은 포인트가 없었습니다. 포인트를 넣는 작업은 주후 6-7세기에 마소라들에 의해 천천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마소라들이 넣은 포인트가 영감 받은 것으로 보지 않으며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또한 종교개혁 당시의 역본들 역시 킹제임스 성경처럼 “그들이 성벽을 파내려 간 것”으로 번역했습니다: 드라이나(de Reina, 1569), 드발레라(de Valera, 1602), 디오다티(Diodati, 1576-1649). 이런 성경들은 킹제임스 성경 이전에 혹은 같은 시대에 완성된 것들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하고 특별히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 중 하나인 마일스 스미쓰 같은 사람은 다섯 살에 포인트가 없는 히브리말을 읽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이 옳음을 알 수 있습니다(The Book of Bible Problem by G. D. Bouw, Ph.D.)  
2009-05-07 14:21:54 | 관리자
질문 : 이집트로 내려간 혼은 모두 몇입니까?   대답 : "야곱의 허리에서 나와 그와 함께 이집트에 이른 모든 혼 즉 야곱의 며느리들 외의 모든 혼은 예순여섯이더라. 이집트에서 요셉에게 태어난 아들들은 두 혼이니 야곱의 집의 모든 혼 곧 이집트에 이른 혼이 일흔 혼이었더라."(창46:26-27)   "이미 요셉이 이집트에 있었으므로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혼(魂)이 모두 일흔 혼이더라."(출1:5)   "이집트에 내려간 네 조상들이 칠십 명이었으나 이제 주 네 하나님께서 너를 하늘의 별들같이 많게 하셨느니라."(신10:22)   "그때에 요셉이 사람을 보내어 자기 아버지 야곱과 그의 모든 친족 일흔다섯 혼(魂)을 부르니" (행7:14)   이 네 구절을 보면 이집트로 내려간 야곱의 집 혼들의 수가 70 같기도 하고 75 같기도 합니다. 창세기 46장에 있는 야곱의 후손들의 총계는 70명으로 출1:5와 신10:22에 있는 숫자와 동일합니다. 여기에는 레아의 둘째 딸과 아셀의 딸인 세라(창46:17)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레아의 첫째 딸인 디나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둘째 딸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창46:8-15를 살펴보면 레아가 낳은 아들딸들이 나오는데 이들을 다 더하면 서른 세 명(15절)이 아니라 서른 두 명이 됩니다. 이 차이는 성경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해결됩니다. 여기 있는 명단을 보면 디나라는 이름의 딸이 한 명 나오는데 15절에는 분명히 "딸들"(daughters)이라고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영어 성경 참조).   "이들은 레아가 밧단아람에서 야곱에게 낳은 아들들이라. 그의 딸 디나를 합하여 그의 아들딸의 모든 혼이 서른셋이더라."(창46:15) "These be the sons of Leah, which she bare unto Jacob in Padanaram, with his daughter Dinah : all the souls of his sons and his daughters were thirty and three."   그러므로 야곱과 레아 사이에는 성경에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딸이 또 하나 있었던 것입니다. 7절에 보면 그가 자기 씨를 다 데리고 이집트로 갔다고 되어 있으므로 그 딸은 아마도 야곱이 이집트로 내려가기 전에 죽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15절의 서른 세 명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70명이 되고 75명이 되는지 그 이유를 살펴봅시다. 창46:26은 또한 예순 여섯 혼이 야곱과 함께 이집트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셉과 그의 아들 둘이 이미 이집트에 있었으므로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은 총 69명이 됩니다. 그런데 27절은 야곱 또한 총수에 포함시키고 있으므로 결국 이집트로 내려간 혼은 일흔 혼입니다. 위에서 밝힌 대로 분명히 딸들 중 하나 즉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레아의 둘째 딸은 어려서 죽었으며 그래서 이집트로 내려가지 못하고 가나안에 남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일흔 다섯 혼이라 기록된 행7:14 말씀은 창46:26에서 생략된 야곱의 며느리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허리에서 나와 그와 함께 이집트에 이른 모든 혼 즉 야곱의 며느리들 외의 모든 혼은 예순여섯이더라." 그러므로 이들의 수를 포함시키면 70명과 75명의 차이는 간단히 해결됩니다(The Book of Bible Problem by G. D. Bouw, Ph.D.).  
2009-05-07 14:16:13 | 관리자
질문 : 왜 함 대신에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을까요?   대답 :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자기 아버지의 벌거벗은 것을 보고 밖에 있던 자기의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올려놓고 뒷걸음쳐 들어가 자기들의 아버지의 벌거벗은 것을 덮더니 그들의 얼굴이 뒤를 향하였으므로 그들이 자기들의 아버지의 벌거벗은 것을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포도주에서 깨어나 자기의 작은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창 9:22-24)   노아가 취한 상태에서 죄를 지은 것은 그의 아들 함인데 왜 그가 저주를 받지 않고 그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을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이미 복을 주신 사람을 저주할 수 없었습니다(창9:1). 분명히 노아는 가나안이 함이 지은 죄와 비슷한 죄를 지은 것을 보았거나, 아니면 가나안이 함과 함께 그 범죄에 가담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성경과 역사를 보면 가나안의 후예인 가나안 족속이 아주 사악한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가나안에게 내린 저주가 합당함을 알 수 있습니다(The Book of Bible Problem by G. D. Bouw, Ph.D.).
2009-05-07 14:13:30 | 관리자
질문: 베냐민은 어디에서 태어났습니까? 밧단아람입니까, 베들레헴 근방입니까?  대답: 창세기 35장 16절을 보면 라헬은 분명히 베들레헴 근처에서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26절은 베냐민이 밧단아람에서 태어났다고 말할까요? 모순이 아닙니까? 그들이 벧엘에서 이동하다가 에브랏에 조금 못 미친 곳에서 라헬이 진통을 겪는데 산고가 매우 심하더니 그녀가 심한 산고를 겪을 때에 산파가 그녀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그대가 이 아들도 갖게 되리라, 하니라. 그녀의 혼이 떠나려할 때에 (이는 그녀가 죽었기 때문이더라.) 그녀가 그의 이름을 베노니라 하였으나 그의 아버지가 그를 베냐민이라 하였더라.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에 묻었고(창35:16-19).레아의 아들들은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라헬의 아들들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들은 단과 납달리요, 레아의 여종 실바의 아들들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다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태어난(born to him) 자들이더라(창35:23-26).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이야말로 풀기 어려운 난제라고 말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태어난’으로 번역된 ‘born’이라는 단어는 18세기 중반까지 상당히 넓은 의미로 쓰였습니다. 예를 들어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bear’로 가서 43번째 용례를 보기 바랍니다. 그러다가 18세기 중반 이후에 아주 특별한 의미로 즉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많이 축소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창21:7을 보시면 ‘born’이 넓은 의미로 쓰인 용례가 있으며 여기서는 분명히 임신한 전체 기간을 가리킵니다.또 이르되, 사라가 아이들에게 젖을 주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내가 늙은 나이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창21:7).And she said, Who would have said unto Abraham, that Sarah should have given children suck? for I have born him a son in his old age.우리말로는 현재완료와 과거가 잘 구분이 되지 않지만 영어로는 분명히 현재완료로 즉 ‘have born’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곧 임신한 전체 기간을 가리킵니다. 참으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오묘합니다.또한 원래의 1611년 판에는 ‘born’이 아니고 ‘borne’으로 되어 있으며 이것은 곧 ‘아기를 배어 지니고 다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라헬의 경우 베냐민은 밧단아람에서 수태되었으며(born) ‘born’의 넓은 의미에서 볼 때 밧단아람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물론 그가 거기서 수태되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밧단아람을 떠나서 얼마 후 베들레헴 근처에 이르러 그를 낳고 죽었습니다. 즉 라헬은 밧단아람에서 그를 뱃속에 지니고 다녔습니다.그러므로 수태된 때부터 생명이 태어난 것으로 보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으며 성경의 용례가 이를 지지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 역시 ‘bear’의 의미를 잘 생각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오류가 없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굳건히 앞으로 나갑시다.
2009-05-07 14:12:37 | 관리자
질문 : 아브라함의 약속의 땅   답변 : "네가 보는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씨에게 영원히 주리라"(창13:15).   "그분께서는 그 땅 안에서 그에게 발 디딜 만큼의 상속 재산도 결코 주지 아니하셨으나 그럼에도 그가 아이가 없던 때에 그와 그의 뒤를 이을 씨에게 그 땅을 소유로 주실 것을 약속하셨으며"(행7:5).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서 묘지 외에 어떤 것도 받거나 구입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땅에 거했지만 그가 묘지 외에 다른 곳을 구입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약속이 그의 생애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시록 20장에 기록된 천년왕국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렘30:9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오히려 그들이 주 곧 그들의 하나님과 내가 그들을 위해 일으킬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   여기 보면 다윗이 부활해서 천년왕국 시대에 다시 왕으로 통치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때에 아브라함을 향한 약속이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20:4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됩니다(The Book of Bible Problem by G. D. Bouw, Ph.D.).
2009-05-07 14:11:42 | 관리자
질문 : 하나님도 피곤해 하십니까? 답변 :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히 구별하셨으니 이는 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며 만든 자신의 모든 일을 떠나 안식(安息)하셨기 때문이더라."(창2:3) "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 있을 영원한 표적이니 이는 주가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며 상쾌하게 되었기 때문이니라, 하라."(출31:17)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영존하시는 하나님, 주 곧 땅 끝들을 창조하신 이는 기진(氣盡)하지 아니하시고 피곤하지 아니하시며 그분의 명철(明哲)은 찾을 길이 없도다."(사40:28) 이 문제를 풀려면 아주 주의 깊게 이 구절들을 읽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결코 피곤해하지 않으시며 위의 구절들 역시 그분께서 피곤해 하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피곤해 하시는 경우는 우리의 죄들을 보고 참아야 하는 경우뿐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사 43:24; 말2:17). 이런 경우 그분께서 지쳤다고 성경은 말하는데 이때는 일을 많이 해서 지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들이 그분의 본성과 너무나 반대가 되기 때문에 지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로 지치실 수는 있어도 일이 많아 피곤해 하시는 경우는 없습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 '안식'(rest)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정의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는 것은 그분이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하기 때문에 쉬어야 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막2:27에 나옵니다.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아버지께서 사람을 위하여 안식일을 만드셨으며 안식일을 위하여 사람을 만들지 아니하셨나니"(막2:27) 그분께서는 자신을 위해 안식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안식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상쾌하게 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신 이유는 자신의 진노를 보이시고 자신의 권능을 알리며 자신의 영광을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롬 9:21-23). 아버지, 아들, 성령님 이 세분은 이 모든 것을 아셨으며 따라서 그런 것들을 보여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진노의 그릇들과 긍휼의 그릇들을 창조하셨고 자신의 본성과는 정반대가 되는 죄를 허용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지치신 것입니다. 끝으로 출31:17의 경우 히브리서 3,4장에 따라 안식을 얻지 못한 이스라엘은 1,000년 왕국에서(벧후 3:8) 1,000년 동안 일곱째 날의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The Book of Bible Problem by G. D. Bouw, Ph.D.).
2009-05-07 14:10:49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