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느웨의 유적
고대 아시리아의 수도.
아시리아 제국 지도 참조(34). 이곳은 티그리스 강의 동쪽 둑에 위치하였으며 노아의 홍수 후에 곧바로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 뒤 1500년 동안 이 도시는 성경에 언급되지 않으며 요나서와 나훔서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이 도시는 크기가 엄청나게 커서 도시를 도는 데 사흘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 또한 거기에는 어린아이만 12만 명이 있었으므로 전체 인구는 6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이곳의 거주민은 부유하고 전쟁을 좋아하였으며 문명을 발전시켰다. 니느웨는 오랫동안 동방의 주인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800년 전에 요나는 이 도시로 보내어져서 이 도시가 멸망할 것을 대언하였다(사14:24-25). 비록 그들이 곧바로 회개함으로 심판은 유보되었지만 주전 735년경에 메대 사람들에 의해 이 도시는 함락되었고 또한 150년이 지나서는 대언자 나훔의 예언에 따라 다시 느부갓네살의 아버지인 나보폴라사르에 의해 함락되었다(나1:1-15; 2:1-13; 3:1-19, 습2:13). 그 뒤 니느웨는 다시 예전의 영화를 회복하지 못하였다.
2009-05-04 00:33:50 | 관리자
계2:6, 15에 나오는 이단들.
그리스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니골라당은 성도들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로서 구약시대의 제사장처럼 성도들을 통치하려는 자들이다. 신약 교회가 생기자마자 이런 무리가 생겼으며 이에 대해 예수님은 자신이 이런 자들의 교리를 미워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 교회는 아직도 구약시대의 종교로 남아 자기들의 성직자를 제사장(priest)이라 부르고 있고 성직자 계급주의를 철저히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이제는 제사장이 아니라 목사(pastor)가 감독으로 장로로 교회를 치리함을 보인다.
2009-05-04 00:33:07 | 관리자
안디옥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
후에 그는 다시 기독교로 개종하고 열렬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으며 그 결과 예루살렘 교회에서 처음에 선택된 일곱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행6:5).
2009-05-04 00:32:38 | 관리자
유대인들의 공회인 산헤드린의 회원.
그는 처음에 바리새인이었으나 후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초기부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알았지만 금방 그분을 따르지는 않았다. 요3:1-20에서 그는 소극적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나타나서 속죄와 중생의 진리를 배우며 요7:45-52에서는 산헤드린 앞에서 주님을 변호한다. 마지막으로 십자가 처형에서 그는 신자임을 고백하고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와서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마지막 의무를 수행하여 그 몸을 십자가에서 내려다가 향품과 함께 돌무덤에 안치하였다(요19:39).
2009-05-04 00:32:01 | 관리자
예루살렘에서 오순절에 성령 강림이 있은 뒤에 성도들이 선택해서 성도들을 섬기는 일을 맡게 한 일곱 사람 중 하나(행6:1-6).
2009-05-04 00:31:28 | 관리자
업신여기어 욕보임.
2009-05-04 00:30:56 | 관리자
모세가 광야에서 놋으로 만든 뱀에게 히스기야가 붙여 준 이름(민21:8).
이스라엘 백성은 유다 왕국의 말기까지 이 놋 뱀을 보존하였으며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그것을 우상화했으므로 히스기야는 그것을 불사르고 그 이름을 느후스탄 즉 값어치 없는 한 조각의 놋이라고 하였다(왕하18:4). 사람들이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사용하는 유품 등은 오히려 그 반대의 효과를 가져오기 쉬우며 눈에 보이는 형상들은 주님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가리는 경우가 많다(요3:14-16).
2009-05-04 00:30:33 | 관리자
여호야김의 아내. 이 여인은 어린 여고니야의 어머니로서 정부의 일에 관여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예레미야의 책망 속에 이 여인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왕하24:8; 렘13:18; 29:2).
2009-05-04 00:30:02 | 관리자
하가랴의 아들, 예루살렘의 총독. 느헤미야는 포로 시절에 바빌론에서 태어났으며 어떤 이들은 그가 제사장 가문이나 유다의 왕족이라고도 한다. 그는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의 잔을 드는 자였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유대인들에게 재난이 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다가 왕에게 간구하여 예루살렘에 가서 그 도시를 재건하는 일을 도울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는 그곳의 총독으로 임명을 받고 주로 도시의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집중하였다. 유다의 귀환 지도 참조(33). 그러나 예루살렘을 괴롭히던 사마리아 사람들의 적개심은 날로 증가하였고 그곳의 총독인 산발랏의 인도 하에 그들은 유대인들을 향해 온갖 방해 공작을 꾸몄다. 그들은 심지어 일하는 사람들도 공격하였고 그래서 느헤미야는 그들로 하여금 손에 무기를 들고 일하게 하였다. 이 큰 일에서 그는 열정을 보였고 하나님의 도시와 백성을 향해 큰 사랑을 나타내었으며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려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는 신실한 친구들 특히 에스라의 도움을 크게 받았고(느8:1, 9, 13; 12:36) 여러 가지 중요한 사회 제도를 향상시켰다. 그 뒤 그는 바빌론으로 되돌아왔다가(느2:6; 5:14; 13:6) 몇 년 지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 예배, 안식일 준수,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 문제 등 중요한 일을 잘 해결하였다. 그는 특히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그 여인들을 버리든지 혹은 나라를 버리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요구하였다. 이에 불만을 품은 제사장 무리들은 사마리아의 그리심 산에 신전을 짓고 사마리아에서 예배를 드린 것으로 추정된다. 산발랏 참조. 느헤미야기는 그가 생을 마감하면서 자기의 일생 동안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은 에스라서의 연장이며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제2 에스라서’라고 불렀다.
2009-05-04 00:29:32 | 관리자
느부갓네살 왕의 장군. 그는 예루살렘을 멸하고 노략하였다(왕하25:8-21; 렘39:9; 40:1; 52:12-30).
2009-05-04 00:29:01 | 관리자
나보폴라사르의 아들로서 주전 600년경에 그의 뒤를 이어 갈대아의 왕이 된 사람. 그는 예레미야서에서 느부갓레살로도 나온다. 그는 이집트 왕 느고로부터 갈그미스를 빼앗았으며 그 뒤 페니키아 총독과 느고에게 조공을 바친 유다의 여호야김 왕을 치고 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가 후에 조공을 바친다는 조건 하에 다시 유대에 남겨 두었다. 그는 또한 예루살렘에서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등을 포함한 여러 사람을 포로로 잡아갔다. 그들은 대개 왕족이나 귀족이었으며 바빌론 왕은 그들에게 갈대아의 말과 학식을 가르치고 후에 그들이 궁중에서 자신을 섬기게 하였다(왕하24:1; 대하36:6; 단1:1).
나보폴라사르가 죽자 이집트 혹은 유대에 있던 느부갓네살은 급히 바빌론으로 돌아갔고 자기 장군들을 시켜 시리아와 유대와 페니키아와 이집트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을 갈대아로 데려오게 하였다. 그는 이 포로들을 여러 식민지에 분산시켰으며 벨루스의 신전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기구들을 두었다. 유다의 여호야김 왕은 3년 동안 느부갓네살에게 충성하다가 반역을 일으켰고 그 뒤 3-4년이 지나 예루살렘에서 잡혀서 죽임을 당하고 그의 몸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공중의 새의 밥이 되고 말았다(렘22:1-30). 그의 뒤를 이은 여호야긴 혹은 여고니야 역시 느부갓네살에게 반역을 일으켰다가 예루살렘에서 붙잡혀서 주요 관리들과 함께 바빌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 이때에 그의 어머니와 아내들과 예루살렘의 주요 기술자들도 함께 끌려갔고 모르드개와 대언자 에스겔도 끌려갔다(에2:6).
느부갓네살은 솔로몬이 성전과 궁전을 위해 만든 금 그릇들을 가져가고 여고니야의 삼촌인 맛다니야를 왕으로 삼고 시드기야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시드기야는 9년 동안 느부갓네살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그 근처의 통치자들과 함께 연합하여 반역을 일으켰다. 이에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대로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쌌으나 이집트의 파라오호브라가 시드기야를 도우려고 나오자 그를 대면하여 그의 나라로 쫓아버렸다. 이 일을 끝낸 뒤 느부갓네살은 다시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으며 마침내 시드기야의 제11년에 그곳을 함락시켰다. 시드기야 왕은 그때에 시리아의 리블라에 있던 느부갓네살에게 끌려가서 정죄를 받았고 왕은 그의 눈앞에서 그의 자녀들을 죽이고 그의 눈을 뺀 뒤 사슬로 묶어서 그를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왕하24:1-20; 25:1-30; 대하36:1-23).
느부갓네살의 통치 때에 바빌론 도시와 바빌로니아 왕국은 영예의 최고조에 달하였다. 그는 힘을 다해 바빌론을 치장하였고 그래서 이것은 그의 자랑의 하나가 되었다. “이 큰 바빌론은 내가 내 권능의 힘으로 건설하여 왕국의 집으로 삼고 내 위엄의 영광으로 삼은 곳이 아니냐?”(단4:30)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교만을 물리치셨고 그래서 그는 한때 다니엘의 예언에 따라 짐승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단4). 다섯 가지 세상 왕국 선도 참조(76).
2009-05-04 00:28:38 | 관리자
I. 벧엘과 아이 근처의 마을(스2:29; 느7:33).
II. 르우벤의 도시(민32:38).
이곳은 모압 족속이 점령하여 예레미야의 시대에 지배하였다(사15:2; 렘48:1).
III. 모압의 산.
여기서 모세는 약속의 땅을 내려다보고 여기서 죽었다. 이곳은 아바림 산지의 정상으로 여리고 맞은편에 있었다(신32:49; 34:1-12). 팔레스타인의 산들.
IV.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우상(사46:1).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별 신화에서 느보는 수성을 나타내며 고대 아라비아 사람들도 이 신을 숭배하였다. 갈대아와 아시리아 사람들이 흔하게 이 신에게 경배했다는 것은 이 이름이 복합어로 여러 인물의 이름에 사용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느부갓네살, 느부사라단, 느부사스반(렘39:9, 13) 등을 보기 바란다.
2009-05-04 00:27:56 | 관리자
북 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의 아버지(왕상11:26; 12:2; 왕하3:3).
그는 사악한 아들로 인해 ‘느밧의 아들 여로보람’이라는 호칭으로 수치의 대상이 되었다.
2009-05-04 00:27:14 | 관리자
이스마엘의 아들(창25:13). 그의 후손은 아라비아의 초장을 차지하였으며(사60:7) 후에 에돔을 차지하였다.
그들은 세속 역사에서 나바티안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이두매아 참조.
2009-05-04 00:26:46 | 관리자
이 용어는 가장 먼저 레위 사람들에게 적용되었으나(민8:19) 가나안에 정착한 뒤에는 성막이나 성전에서 섬기기 위하여 헌신한 종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가장 힘든 일 즉 나무와 물을 나르는 일을 하였다. 처음에는 기브온 사람들이 이 일을 하였고(수9:27) 후에는 스스로 항복한 가나안 사람들과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이 하였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처음에 다윗과 다른 통치자들에게 배정되었으나 그들은 이들을 성전에서의 봉사 일에 배정하였다(왕상9:20-21; 스2:58, 70; 8:20; 느11:3). 그들은 아마도 유대교로 개종했을 것이다(느10:28). 이 느디님 사람들은 유다 지파와 함께 포로가 되어 끌려갔으며 그 중 많은 이들이 카스피 해 부근에서 살다가 에스라의 인도로 220명이 유다로 돌아왔다(스8:20).
2009-05-04 00:26:17 | 관리자
베들레헴 근처의 마을(삼하23:28-29; 왕하25:23; 스2:22; 느7:26).
2009-05-04 00:25:48 | 관리자
이것은 시편 5편의 타이틀에만 나오는 말이며 피리 등의 악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편은 이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악장에게 주어졌다.
2009-05-04 00:25:26 | 관리자
히브리 사람들의 현악기를 일컫는 말(합3:19).
특히 몇몇 시편(시4:1-8; 6:1-10; 54:1-7; 55:1-23; 76:1-12)은 이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악장에게 주어졌다.
2009-05-04 00:25:01 | 관리자
라오디게아의 그리스도인. 바울은 그의 집에 있는 교회와 그에게 문안하였다(골4:15).
2009-05-04 00:24:29 | 관리자
이것은 마주 대하여 보고 있는 앞을 뜻하며 면전(面前)과 같은 말이다.
또한 영어 sight는 ‘in the sight of’라는 관용구로 쓰이면서 ‘누군가가 보는 데서’를 뜻하며 우리말로 번역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서는 이를 모두 ‘눈앞에서’ 등으로 통일했다.
2009-05-04 00:24:06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