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서 14장 분석: 아마겟돈 전쟁, 양과 염소 민족 심판
스가랴서 14장은 7년 환난기 끝의 아마겟돈 전쟁과 예수님의 올리브 산 재림, 양과 염소 민족들의 심판 그리고 천년왕국을 보여 줍니다.
스가랴서 14장은 인류 역사의 이 부분을 성경에서 가장 잘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사실 스가랴서는 요한계시록, 에스겔서, 다니엘서 등과 짝을 이루며 말세의 일들을 가장 잘 보여 줍니다.
특히 스가랴서 12-14장은 이 기간에 이스라엘에 이루어질 일들을 잘 보여 줍니다.
스가랴서, 말라기, 다니엘, 에스겔서 등 구약 성경을 읽으면서 교회를 여기에 대입하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입니다. 이런 말씀들의 대상은 100% 이스라엘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4장, 요한계시록을 읽으며 신약 시대에 주어진 말씀들과 구약 시대의 이런 말씀을 잘 조화시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림 1은 미래 일들의 개요를 보여 줍니다.
그림 2는 마태복음 24-25장을 요약한 것입니다.
그림 3은 이방인들의 심판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75일은 다니엘서 12장의 1260일 이후의 75일을 말합니다.
그림 4 다니엘서 12장의 75일을 보기 바랍니다.
이제 스가랴서 14장을 이 그림들과 조화시켜 보겠습니다.
말세 일들의 순서는 신구약 모두 종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교회의 환난 전 휴거
2. 7년 환난기(환난기 성도들, 144,000명의 유대인, 이들은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이미 휴거되어 이 땅에 없다)
3. 예수님의 올리브 산 지상 재림(아마겟돈 전쟁)
4. 민족들 심판(양과 염소 민족 심판)
5. 천년왕국 통치
6. 1,000년이 지난 뒤 새 하늘과 새 땅(다가올 영원)
스가랴서 14장 분해
1. 슥14:1-3은 아마겟돈 전쟁을 말합니다.
2. 슥14:4-5은 올리브 산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올리브 산과 관련해서는 사도행전 1장 9-12절을 보기 바랍니다.
3. 슥14:6-8은 재림의 때의 현상들을 보여 줍니다. 8절과 관련해서는 에스겔서 47장과 요엘 3장을 보기 바랍니다.
4. 슥14:9는 천년 왕국의 주님을 보여 줍니다. 에스겔서 48장 35절을 보기 바랍니다.
5. 슥14:10-11은 지형의 변화를 보여 줍니다. 이사야서 40장 1-5절을 보기 바랍니다.
6. 슥14:12-15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는 자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7. 슥14:16은 재림 후 이루어질 이방인들의 심판에서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1-46절의 양과 염소 민족들 심판을 보기 바랍니다. 요엘서 3장도 동일한 것을 보여 줍니다.
특히 14장 16절의 '예루살렘을 대적하러 왔던 모든 민족들 중에서 남아 있는 모든 자'는 이 심판에서 살아남은 자들입니다.
8. 슥14:17-19는 양과 염소 심판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천년 왕국에서 주님께 예배드리며 장막절을 지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사야서 66장을 같이 보기 바랍니다.
9. 슥14:20-21은 천년왕국에서 주님의 집이 거룩할 것임을 보여 줍니다. 거기에는 다시는 가나안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식으로 이야기하면 팔레스타인 땅의 이교도 거주민들 중 한 사람도 주의 집에 더는 들어오지 못함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창9:25-26의 성취가 될 것입니다.
샬롬
패스터
2023-08-29 19:42:02 | 관리자
영어 문장의 도치 사례: 디모데전서 6장 5절
안녕하세요?
지금 우리는 글을 쓰면서 무언가를 강조하려면 따옴표를 쓰든지, 컬러로 마크하든지, 밑줄을 긋든지 합니다.
그러나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는 마침표, 물음표, 콤마 등의 간단한 문장 부호 외에는 강조를 표기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부호들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어떤 것을 강조할 때는 문장의 도치나 괄호가 사용됩니다.
오늘은 강조를 위해 문장이 도치된 구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조를 위해 괄호가 사용된 예는 고린도후서 5장 7절을 보기 바랍니다.
고후5:7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문장의 도치 사례 디모데전서 6장 5절
디모데전서 6장 5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6:5 Perverse disputings of men of corrupt minds, and destitute of the truth, supposing that gain is godliness: from such withdraw thyself.
이 구절의 중간에 보면 gain is godliness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godliness는 하나님처럼 사는 것,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 하나님을 따르는 것 등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이 문장을 “이득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라고 번역하면 뜻을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전에는 우리도 그렇게 번역하였으나 뜻이 통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영어 단어에는 피상적인 뜻이 있고 깊이 들여다보아야만 아는 뜻이 있습니다.
영한사전에 가서 gain을 찾아보면 그냥 이득 혹은 이익이라는 피상적인 뜻만 나옵니다.
그런데 영어 Oxford 사전을 보면 gain에는 이런 피상적인 뜻뿐만 아니라 ‘이득의 원천’(원인)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3.3 A source of gain
즉 영국 사람들이 gain이라는 단어를 읽을 때에는 단순히 이득이라는 피상적인 뜻으로도 이해하지만 이득을 늘리는 수단, 방법, 원천, 근거 등의 의미로도 이해합니다.
따라서 이 문장은 이득의 원천 혹은 이득을 늘리는 방법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번역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 역시도 이해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말답게 이 문장을 번역하려면 도치된 문장을 원상으로 돌려서 번역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이득(혹은 이득의 원천)이라고 번역됩니다.
이러면 뜻이 확 들어옵니다.
이 말은 번영 신학, 기복 신앙을 추구하는 자들의 구호, 즉 “예수 믿으면 만사가 형통하고 부자가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번영 신학, 기복 신앙을 추구하는 자들에게서 멀리 떠나라고 이야기합니다.
6:5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가 없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오순절 은사주의자들, 번영 신학 기복 신앙을 추구하는 자들)의 비뚤어진 언쟁이 생기나니 너는 그러한 자들로부터 떠나라.
그리스어를 염두에 두고 번역한 개역 성경은 경건(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이익의 방도(혹은 수단)로 생각하는 자들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gain is godliness라는 문장이 도치 문장이라는 것은 바로 그다음 구절이 증명해 줍니다.
6:6 But godliness with contentment is great gain.
이 구절에는 godliness with contentment is great gain이라는 평범한 문장, 즉 도치가 없는 문장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은 6장 5절과 동일한 구조요, 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당연히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야 합니다.
6:6 그러나 만족하면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큰 이득이니
따라서 딤전6:5와 6:6은 같은 형식의 문장인데 하나는 도치가 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도치가 없이 평범한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두 구절에서 gain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신약 성경에서 딤전 6장 5절과 6절에만 나오고 뜻은 이득 혹은 이득의 원천, 이득을 늘리는 길(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딤전6:5의 도치문을 도치하지 않고 번역한 것은 우리말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5절과 6절과 같이 동일한 형태로 번역이 됩니다.
이러면 누구라도 쉽게 딤전6:5-6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어 단어에 피상적인 뜻이 있고 깊이 들여다보아야만 아는 뜻이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를 하나 더 예로 들겠습니다.
정죄인가, 정죄의 근거인가?
요3:19에는 condemnatio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And this is the condemnation, that light is come into the world, and men loved darkness rather than light, because their deeds were evil.
단순하게 영한사전에 가서 condemnation을 찾으면 그 뜻이 정죄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개역성경 등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이대로 읽으면 정죄란 그들이 빛보다는 어두움을 사랑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이렇게 번역하면 말이 꼬이고 앞뒤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가서 condemnation을 찾으면 세 번째 뜻이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3.3 The ground or reason for condemning. 정죄의 근거 혹은 이유
즉 이런 경우의 condemnation은 그냥 정죄가 아니라 정죄의 근거 혹은 이유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흠정역은 그렇게 번역하였습니다.
흠정역: 정죄의 근거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자기 행위들이 악하므로 빛보다 오히려 어둠을 사랑한 것이니라.
다시 말해 그들이 빛이 아니라 어두음을 사랑한 것이 정죄의 근거라는 말입니다.
이런 것은 원어나 영어의 문제가 아니라 영어의 한 단어가 피상적인 뜻이 있고 은밀히 숨겨져 있는 뜻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아무 문제도 아닙니다.
다만 성경 번역이 이렇게 미묘하므로 20세기 영한사전만 가지고 번역하면 오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2023-08-29 14:22:39 | 관리자
해산함으로 구원을 받는가?(디모데전서 2장 15절)
최근에 어떤 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개역성경 딤전2:15에 따르면 '해산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러면 여자들이 아기를 낳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러면 아기를 낳지 못한 여자들이나 낳을 수 없는 남자들은 구원받지 못합니까?"
이것을 설명하려면 11절부터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11 여자는 전적으로 복종하며 잠잠히 배울지니라.
12 더욱이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여자는 잠잠히 있을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어지고 그 뒤에 이브가 지어졌으며
14 아담이 속지 아니하고 여자가 속아 범법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라.
1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맑은 정신으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 안에 거하면 그녀가 수태와 해산을 거칠 때에 구원을 받으리라.
이 부분은 남자와 여자의 권위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둘 다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지만 권위 행사 측면에서는 동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르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15절에 나오는 구원을 설명하자면 과연 여자가 어디에서 구원받는 것인지를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save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대개 죄와 심판과 사망에서 구원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좀 더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구원받는 것인지를 표현하려면 save 다음에 from이라는 단어가 나와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1장 21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라.
And she shall bring forth a son, and thou shalt call his name JESUS: for he shall savehis people from their sins.
그런데 딤전2:15에는 여자가 어디에서 구원받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문제가 생깁니다.
하지만 앞뒤 문맥을 보면 어디에서 구원받는 것인지 판단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여자가 아이를 낳음으로 죄나 혹은 사망에서 구원받을 수는 없음을 알기에 일단 여기의 구원은 그런 구원이 아님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이를 낳아야먄 구원받는다면 남자들이나 아이를 낳지 못한 여자들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13-14절을 보면 이브는 마귀에게 속아 넘어가서 범법하였습니다.
그 뒤에 15절이 나옵니다.
1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맑은 정신으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 안에 거하면 그녀가 수태와 해산을 거칠 때에 구원을 받으리라.
Notwithstanding she shall be saved in childbearing, if they continue in faith and charity and holiness with sobriety.
여기서 영어 in childbearing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번역이 달라집니다.
childbearing은 우리말로 ‘아이를 지난다’인데 이것은 수태와 해산 그리고 심지어 교육과 훈련까지를 다 포함하는 포괄적인 말입니다.
여기의 in은 수단의 의미도 있고 기간의 의미도 있습니다.
수단의 의미로 in을 해석하면 ‘수태와 해산을 통해’(개역성경의 해산함으로)가 될 것이고 기간의 의미로 in을 해석하면 ‘수태와 해산의 기간에’로 볼 수 있습니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은 in을 후자의 의미로 보고 ‘그녀가 수태와 해산을 거칠 때에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15절은 그들(3인칭 복수(남성인지 여성인지 알 수 없음, 1. 성경적 정의에 따른 선한 여인들을 가리키거나, 2. 남편과 아내, 즉 부부를 가리킴))이 사랑하고 거룩함 가운데 거하면 그녀가(1. 그런 선한 여인이나, 2. 아내가) 수태와 해산을 거칠 때에 (마귀에게 속아 넘어가 범법하는 것에서) 구원받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자에게 가장 힘든 시기는 수태와 해산하는 시기(그 이후의 양육 시기도 마찬가지)이고 이때(childbearing 하는 때)가 마귀의 공격을 받아 이브처럼 실족하기가 가장 쉬운 때입니다(피터 럭크만 등의 주석).
또는 여자의 범법으로 인해 여자가 남자의 권위 하에 놓이게 되고 해산의 고통을 당하게 되었는데(창3:16) 이런 범법의 결과로부터 구원받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존 길 등의 주석).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고통과 수태를 크게 늘리리니 네가 고통 속에서 자식들을 낳을 것이며 또 너의 열망이 네 남편에게 있겠고 그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며(창3:16)
딤전2:11-14은 창3:16에 대해 하나님이 주신 주석입니다.
여러 주석들이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Bible Hub 주석
다만 이 구절이 사람의 구원, 즉 죄에서 벗어나 영원히 하나님과 사는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확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만 분명히 하고 문맥을 잘 보고 각 사람이 이해하는 대로 해석해도 됩니다.
우리는 마제스티 에디션처럼 해석하고 그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샬롬
패스터
2023-08-15 11:53:09 | 관리자
영존하는 파멸의 의미(데살로니가후서 1장 9절)
살후1:6-9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8-9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8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타오르는 불로 징벌하실 때에 이루어질 것이며 9 그때에 그들은 주의 얼굴 앞과 그분의 권능의 영광에서 떠나 영존하는 파멸로 형벌을 받으리라.
9 Who shall be punished with everlasting destruction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and from the glory of his power;
여기서 영존하는 파멸(everlasting destruction)은 무슨 뜻일까요?
불신자는 영원히 소멸되어 사라지므로 고통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며(영혼 소멸설) 이런 분들은 살후1:9의 영존하는 파멸이 그런 것을 뜻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영존하다’라는 말은 무언가가 영원토록 지속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에서는 그런 자들에 대한 파멸이 영원토록 지속된다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영구히 소멸되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다음에 곧바로 형벌을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들에 대한 고통이 멈추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9 그때에 그들은 주의 얼굴 앞과 그분의 권능의 영광에서 떠나 영존하는 파멸로 형벌을 받으리라.
여기의 파멸은 성경 말씀 자체가 그 뜻을 가르쳐 줍니다.
9절을 보면 그들은 주의 얼굴 앞과 그분의 권능의 영광에서 떠나 영존하는 파멸로 형벌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파멸의 뜻은 하나님 앞에서 영원무궁토록 떠나는 것입니다.
마25:41에 있는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때에 그(재림하시는 그리스도)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르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사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파멸의 의미입니다.
파멸은 우리말로는 '망가진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건강을 잃으면 건강이 망가진 것입니다. 톱의 날이 부러지면 톱이 망가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서 보듯이 망가졌다고 해서 건강이나 톱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지옥 불 속에 영원히 들어가는 자들도 사람으로서의 제 기능을 못하며 영원무궁토록 망가지게 됩니다.
마10:28도 이런 의미입니다.
몸은 죽여도 혼은 죽일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혼과 몸을 둘 다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
And fear not them which kill the body, but are not able to kill the soul: but rather fear him which is able to destroy both soul and body in hell.
이 구절에는 파멸(destruction)의 동사형인 destroy가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불신자의 혼과 몸을 둘 다 지옥에서 영원토록 망가뜨릴 수 있는 분이므로 우리는 그분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영혼 소멸설(soul annihilation)을 주장하는 분들이 이런 구절들을 제시하면 이 글로 잘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 물론 가장 좋은 주석은 다음에서 언제든지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Bible Hub 주석
2023-08-15 11:00:00 | 관리자
데살로니가후서 1장 5절의 그것(which)의 의미
살후1:4-5를 보겠습니다.
4 그러므로 너희가 겪고 있는 너희의 모든 핍박과 환난 속에서 드러난 너희의 인내와 믿음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들에서 친히 너희를 자랑하노라. 5 그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의 명백한 증표이니 이것은 너희가 하나님의 왕국에 합당한 자로 여겨지게 하려 함이라. 그 왕국을 위해 너희도 고난을 당하고 있느니라.
4 So that we ourselves glory in you in the churches of God for your patience and faith in all your persecutions and tribulations that ye endure: 5 Which is a manifest token of the righteous judgment of God, that ye may be counted worthy of the kingdom of God, for which ye also suffer:
영어 성경을 보면 5절의 which is는 이탤릭체로 되어 있습니다(역자들이 추가함).
5절의 그것(which is)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의 명백한 증표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대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악인들을 심판해 주시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성경은 4절의 앞부분 전체(영어로는 후반부 전체)를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의 명백한 증표로 보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의 증표는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믿음과 사랑의 활력과 성장이 아니라 그들이 핍박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있었습니다. 그러한 핍박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실질적인 표시였습니다.
그 목적은 그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합당한 자로 여겨지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 왕국을 위해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바울은 고난과 핍박을 당하는 것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표로 보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고난을 당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빌1:27-30도 동일한 것을 말합니다.
27 오직 너희 행실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하라. 이것은 내가 가서 너희를 보든지 떠나 있든지 너희에 대한 일들 곧 너희가 한 영 안에 굳게 서서 복음의 믿음을 위해 한마음으로 함께 싸우며 28 어떤 일에도 너희의 대적들로 인해 무서워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내가 듣고자 함이라. 그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명백한 증표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표인데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29 이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도 그분을 위하여 너희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라. 30 너희가 내 안에서 보았고 지금도 내 안에 있다고 듣고 있는 그 동일한 싸움이 너희에게도 있느니라.
17-18세기의 성경적인 주석은 다음에서 언제든지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이트의 주석은 거룩하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보물 창고입니다.
Bible Hub 주석 사이트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을 것이나 악한 사람들과 유혹하는 자들은 점점 더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리라(딤후3:12-13).
샬롬
패스터
2023-08-15 07:53:10 | 관리자
집사들과 연로한 여자들은 약간의 술(포도주)은 먹어도 되나? 디모데전서 3장 8절, 디도서 2장 3절
디모데전서 3장에 기록된 지역 교회의 감독(목사 혹은 장로)과 집사의 자격에 관한 바울의 지시는 음주 및 금주에 관해 오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감독은 "자신을 술에 내주지 말아야 하며"(딤전3:3) 집사는 "자신을 많은 술에 내주지 말아야 합니다"(딤전3:8).
감독: 자신을 술에 내주지 말아야 하며, Not given to wine
집사: 자신을 많은 술에 내주지 말아야 하며, Not given to much wine
그러면 목사들은 철저히 금주해야 하지만 집사들은 약간의 술을 먹어도 될까요?
딤전3:3절의 ‘자기를 술에 내주지 아니하며’라는 문구는 두 개의 그리스어 단어(me paroinos)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포도주 옆에 가지 아니함 혹은 술자리에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Vine, 1966, p. 146; Robertson, 1934, p. 613).
이 문구는 목사들에게 금주를 명령하고 있으며 심지어 술을 먹는 사람과 함께 어울리거나 술을 먹는 장소에 가지도 말라는 명령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목사들에게 금주를 요구하는 것은 같은 요구 목록에 사용된 다른 용어들과 일치합니다.
1. 네팔리온(nepalion, 딤전3:2):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원래 술 취하지 않은 상태를 뜻함)과 “포도주를 절제하는 것”(Perschbacher, 1990, p. 284)
2. 소프로나(sophrona, 딛1:8): “맑은 정신을 갖는 것”(Perschbacher, p. 400), “정신 상태가 맑은 것”(Moulton and Milligan, 1930, p. 622), “자제하는 것”(Arndt and Gingrich, 1957, p.810).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것도 역시 술 취하지 않는 데서 생깁니다.
목사들은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술을 삼가야 하며 그것을 사용하는 장소에 가지도 말고 술 마시는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말아야 합니다.
8절에서 이 점에 대해 집사의 자격을 규정하기 위해 사용된 네 단어, 즉 ‘me oino pollo prosechontas’는 문자 그대로 "아니다, 술(포도주), 많은, 사로잡히다"로 번역됩니다(참조, Perschbacher, p. 352; Spain, 1970, p. 64).
여기 사용된 “많은”(much)이라는 말은 집사들이 적당한 양의 포도주를 마셔도 좋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성경의 언어 사용과 그것의 의미를 보여 주는 사례들을 몇 개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전도서 7장 17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지나치게 사악하게 되지도 말고 어리석게 되지도 말라. 네가 어찌하여 네 때가 오기도 전에 죽으려 하느냐?
솔로몬은 "지나치게 사악한 자가 되지 말라."라고 말했는데 그러면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으면 적당히 사악해도 된다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그 다음 구가 보여 주듯이 지나치게 사악하면 어리석은 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4절을 보겠습니다.
이 점에서 그들이 너희가 자기들과 함께 달음질하여 동일하게 과도한 방탕에 이르지 아니함을 이상히 여기며 너희를 비방하나(벧전4:4)
베드로는 여기서 기독교인들이 “과도한 방탕”에 가담하지 않는 이유를 이교도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 이 말을 하면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온건한 방탕에 이르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였을까요?
사실 이런 구절들의 말은 과도한 방종이나 탐욕에 의한 행동이 적은 양이나 적은 정도면 허용된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으면서도 과도한 방종이나 탐욕이 정죄에 이르는 죄라고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따라서 이렇게 표현된 성경 말씀들을 읽으면서, 과도하면 불법인 것이 적당하면 합법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간통 같은 행위를 적당히 행하는 것이 합법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의 간통 행위는 불법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이 구절은 감독과 집사에 대한 자격을 규정한 디모데전서 3장을 문맥에서 잘 읽음으로써 이해될 수 있습니다. 즉 감독의 자격 중 하나인 금주는 동일하게 집사에게도 적용됩니다. 감독의 자격이 나열된 이후에 집사의 자격을 나열하는 3장 8절이 ‘이와 같이’라는 말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반드시 신중하며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많은 술에 내주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고(딤전3:8)
그러므로 ‘자기를 많은 술에 내주지 아니하며’는 ‘자기를 적은 술에는 내주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레10:9에서 모세 율법은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섬길 때에 절대로 술을 먹으면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너나 너와 함께하는 네 아들들이 회중의 성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이것은 너희가 죽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 그것은 너희 대대로 영원한 법규가 될지니라(레10:9).
그 목적은 10-1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0 그러면 너희가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아니한 것,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 사이에 구별을 두고 11 이로써 주가 모세의 손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한 모든 법규들을 그들에게 가르칠 수 있으리라.
즉 하나님의 직무를 맡은 사람이 술에 취하면 그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바울은 신약 시대의 모든 성도들(감독과 집사를 포함한 모든 성도들), 즉 영적 제사장들이 약간의 술은 먹어도 된다고 기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반즈 주석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습니다. “여기서 사도가 이 주제를 언급하는 방식은 그가 어떤 의미에서든 교회의 직무 수행자들이 술을 마셔도 좋다는 것을 장려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우리에게 공정하게 알려 준다”(1977, p. 144).
다음 글에서 보듯이 전체 성경은 술을 금하고 있습니다.
포도주, 새 포도즙 1
포도주, 새 포도즙 2
집사들 중에는 장로가 되려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어떻게 집사들이 적당하게 술을 마실 수 있었을까요?
그러므로 집사가 적당히 술을 마시는 것은 성경의 규정에 전혀 맞지 않습니다.
A. 집사의 아내들은 술을 먹으면 안 됩니다(딤전3:11).
이와 같이 그들의 아내들도 반드시 신중하며 헐뜯지 아니하고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일에 신실한 자라야 할지니라.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는 술 취하지 말라는 것과 동일한 말입니다.
B. 연로한 남자들 역시 술에 취하면 안 됩니다.
연로한 남자들이 맑은 정신을 가지며 신중하고 절제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 면에서 건전하게 하고(딛2:2)
‘맑은 정신을 가지며’는 술 취하지 말라는 것과 동일한 말입니다.
C. 연로한 여자들은 술에 취하면 안 됩니다.
연로한 여자들도 그와 같이 거룩함에 합당하게 처신하도록 하며 거짓으로 비난하지 말고 자기를 많은 술에 내주지 말며 선한 것들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게 하라(딛2:3).
딛2:3의 ‘자기를 많은 술에 내주지 말며’ 역시 연로한 여자들이 적당히 술을 마시면 된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연로한 남자나 연로한 여자 모두 술을 마시지 말고 맑은 정신을 유지해야 합니다.
결론
그러므로 이런 형태의 말 즉 ‘자기를 많은 술에 내주지 말며’는 ‘느슨한 형태의 말’(loose form of speech) 사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말은 집사들도, 연로한 여자들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참고 문헌 1
참고 문헌 2
2023-08-14 15:05:48 | 관리자
네 위장을 위해 포도즙을 조금 쓰라: 디모데전서 5장 23절
알코올성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옹호하는 많은 기독교인들은 디모데전서의 한 구절을 지지 구절로 사용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더 이상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잦은 병을 위해 포도즙을 조금 쓰라.”(딤전5:23)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네 위장을 위해 ‘wine을 조금’ 쓰라고 지시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울이 이 구절에서 사회적 교제를 위해 음주를 해도 좋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는 "더 이상 물만 마시지 말고 - 중동 지방을 여행한 사람이라면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은 물을 얻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을 알고 있다. - 네 위장과 잦은 병을 위해 포도즙을 조금 쓰라."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바울이 어떤 종류의 wine에 대해 말했든(발효된 포도주든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이든), 그가 디모데에게 조언한 목적이 그의 위장병 때문이라는 것은 지극히 명백합니다.
wine에 대한 바울의 조언은 사회적 사교로 인한 기쁨이 아니라 약으로서의 사용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떤 종류의 wine을 추천했을까요? 사도는 우리에게 잠23:3, 29-31 등이 말하는 포도주를 적당히 사용하라고 말했을까요?
“너는 포도주가 붉거나 잔에서 제 빛깔을 내거나 스스로 똑바로 움직일 때에 그것을 바라보지 말라.”(잠23:31)
“재난이 누구에게 있느냐? 슬픔이 누구에게 있느냐? 다툼이 누구에게 있느냐? 재잘거림이 누구에게 있느냐? 까닭 없는 상처가 누구에게 있느냐? 붉은 눈이 누구에게 있느냐? 오랫동안 포도주에 머무는 자들에게 있고 섞은 포도주를 구하러 다니는 자들에게 있느니라.”(잠23:29-30)
포도주(술)는 조롱하게 하는 것이며(잠20:1) 뱀같이 물고 독사같이 쏘며 낯선 여자들을 바라보게 하고 비뚤어진 일들을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잠23:32-33).
그는 절대로 포도주를 쓰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wine이라는 단어는 알코올이 든 발효 포도주와 발효되지 않은 포도 주스를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 이사야서 65장 8절에 따르면 새 포도즙은 포도송이에서 발견되며 그 안에는 복이 있습니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포도송이에서 새 포도즙이 발견되었으므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것을 멸하지 말라. 그것 안에 복이 있느니라, 하는 것같이 나도 내 종들을 위해 그와 같이 행하여 그들을 다 멸하지는 아니하리라(사65:8).
새 포도즙은 분명히 발효되지 않은 '갓 짜낸 포도 주스'입니다. 주의 만찬에 사용된 wine을 가리키며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 왕국에서 너희와 함께 새롭게 마시는 그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26:29).
여기서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은 새 포도즙을 말합니다.
누룩으로 인한 발효는 죄의 표시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순결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피를 나타내는 주의 만찬의 wine은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이어야 합니다(미국의 다수의 침례교회들은 주의 만찬에서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 주스를 사용함).
디모데전서 5장 23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위장을 위해 wine, 즉 포도즙을 조금 사용하라고 권면합니다. 발효되지 않은 포도 주스에는 몸에 좋은 특성이 있습니다. 참으로 갓 짜낸 새 포도즙에는 복이 있습니다.
성경은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서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조언은 분명히 '정신을 차리라'(be sober)고 말하는데 여기에 사용된 ‘sober’라는 말은 술 취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당신이 술 취해서 빈틈을 보이고 제정신이 아닐 때 사탄은 당신을 유혹하고 속일 수 있습니다.
최신 연구는 포도주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동일한 혜택을 포도 주스에서도 얻을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보라색 포도 주스는 포도주와 마찬가지로 플라보노이드라고 불리는 동일한 강력한 질병 퇴치 항산화제를 함유하고 있어서 심장병 예방에 도움을 줍니다. 포도 주스의 플라보노이드는 포도주의 플라보노이드와 마찬가지로 소위 나쁜 콜레스테롤 LDL 또는 동맥벽에 플라크 형성을 유발하는 저밀도 지단백질의 산화를 방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포도주에서 발견되는 알코올이 실제로 사람에게 해롭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위스콘신 대학교 연구원인 폴츠 박사(John Folts, Ph.D)는 "포도 주스를 사용하면 알코올에 취할 염려 없이 충분히 마실 수 있어서 이런 혜택들을 누릴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게다가 알코올이 든 포도주는 포도 주스처럼 혈관 내막의 세포 기능을 개선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알코올은 실제로 혈관 조직에 손상을 줄 수 있는 활성 산소, 불안정한 산소 분자를 생성하여 적포도주 항산화제가 제공할 수 있는 이점을 약화시킵니다.
'포도 주스'(grape juice)라는 단어는 1896년 웹스터 사전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고대 문헌에서 와인은 발효된 포도주와 발효되지 않은 포도 주스의 이중 의미를 가졌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wine이라고 불렀던 달콤한 포도 음료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그것은 보통의 포도주처럼 취하게 만들지 않으므로 포도주의 효과가 없다.” 카토(Marcus Cato)는 "아직도 포도에 매달려 있는 와인(즉 포도즙)"에 대해 묘사합니다.
wine은 발효되거나 발효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본문에서 히브리어 야인 또는 그리스어 오이노스의 의미를 항상 명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wine'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발효된 포도주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가정할 수 없습니다. 신중한 성경 연구생으로서 우리는 문맥을 잘 보고 그것이 포도주인지 포도즙인지 바르게 판단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다만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함이지만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술(포도주)을 사용하면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과 정반대로 우리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종종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파괴하는 일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그분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경이 절도 있는 알코올 사용을 지지한다는 일반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금주의 표준을 세우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포도주(술) 대신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의를 구하고 아는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술(포도주) 취하지 말라. 그것에는 과도함이 있나니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할지니라.”(엡5:19)
“그러나 모든 것의 끝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벧전 4:7)
여기서도 ‘정신을 차리고’(be sober)는 술 취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 본 글의 출처
Wine For Thy Stomach's Sake
와인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성경의 와인
2023-08-14 11:26:3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성경의 wine 관련 글은 다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wine
샬롬
2023-08-14 10:16:49 | 관리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사도행전 2장 38절 등에서 행위 구원을 가르치는가?
결코 아니다!
신약 성경의 전체 주제는 사람이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엡2:8-9).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롬5:1).
그런데 성경에는 마치 행위(특별히 물 침례나 세례)가 있어야 구원을 받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구절이 몇 군데 있습니다.
1. 마가복음 16장 16절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
그냥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믿는 것과 구원 사이에 침례를 받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물 침례가 되겠지요.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걸려 넘어져서 앞의 ‘믿고’를 읽지 않거나 신경을 쓰지 않고는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이 구절의 뒤에는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침례를 받고 안 받고’가 후반부에는 빠져 있습니다.
분명히 마가복음 16장 16절에는 물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맨 앞에 “믿고”가 들어 있습니다.
이 구절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믿음, ② 침례, ③ 구원
성경 전체와 이곳의 요점은 ① 믿음, 이 하나가 ② 침례와 ③ 구원의 근거이지 ① 믿음과 ② 침례, 이 두 개가 ③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이후에 침례를 받는 것과 구원이 뒤따라옵니다.
이런 구절을 접할 때 우리는 통합적으로 성경을 보고 해석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당연히 구원을 받고 구원에 대한 증언으로 물 침례도 받을 것입니다.
한편 이것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하시니라. 아멘.
여기서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민족들을 가르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물 침례를 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사람이 물 침례 받으면 구원을 받을까요? 당연히 아니지요. 가르침을 받아 믿음을 갖게 되어 구원받은 사람들만 침례를 받을 것입니다.
이런 것이 마16:16, 마28:19-20에 함축되어 들어 있습니다.
2. 사도행전 22장 16절
바울과 관련된 구절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아나니야의 말입니다.
이제 네가 왜 주저하느냐? 주의 이름을 부르며 일어나 침례를 받고 네 죄들을 씻어 버리라, 하더라(행22:16).
여기도 뒷부분만 보면 침례를 받아 죄들을 씻는 것으로 오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맨 앞에 “주의 이름을 부르며”라는 주요 조건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부르면 그는 구원을 받습니다. 여기에는 믿음과 회개가 다 들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
이 구절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 ② 침례, ③ 죄들의 사면
성경 전체와 이곳의 요점은 ①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 이 하나가 ② 침례와 ③ 죄들의 사면의 근거이지 ①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② 침례, 이 두 개가 ③ 죄들의 사면의 근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 이후에 침례와 죄들의 사면이 있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침례를 받는 것 이 두 가지를 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경에는 모순이 없습니다. 이런 구절들을 대하면서 신약 성경의 구원관이라는 차원에서 전체 문맥에 맞게 이해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3. 사도행전 2장 38절
이와 관련해서 사도행전 2장 3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Then Peter said unto them, Repent, and be baptized every one of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for the remission of sins, and ye sha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Ghost.
여기도 자세히 보지 않고 대충 보면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침례교회의 여러 선한 목사님들 중 어떤 분들은 왜 이렇게 번역해서 물 침례를 통해 구원받는 것처럼 만들었느냐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렇게 번역한 이유는 이것이 올바른 번역이기 때문입니다.
여기도 세 가지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이 구절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회개, ② 침례, ③ 죄들의 사면
실제로 그리스어 구조를 보면 “회개하라”가 주동사로 되어 있고 “침례를 받아"라는 보조 동사로 되어 있으므로 죄들의 사면이 “회개하라”에 걸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두 구절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① 회개(물론 믿음이 동반된), 이 하나가 ② 침례와 ③ 죄들의 사면의 근거이지 ① 회개와 ② 침례, 이 두 개가 ③ 죄들의 사면의 근거가 아닙니다.
즉 회개하고 나서 그 뒤에 침례와 죄들의 사면이 뒤따라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회개 + 물 침례’가 죄들의 사면의 근거가 아닙니다.
이런 구절들을 대하면서 신약 성경의 구원관이라는 차원에서 전체 문맥에 맞게 이해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 행2:38을 오역이라고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므로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회개하고 죄들의 사면으로 인해(죄들의 사면 때문에)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얼핏 보면 이것이 침례교 교리에 맞는 것 같지만 그리스 말이나 영어의 구조와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for the remission of sins’라는 구는 신약 성경에 총 5회 나오며 동일한 그리스어 ‘에이스’(eis)가 ‘for’로 번역된 4구절, 즉 마26:28; 막1:4; 눅3:3; 행2:38을 보면 여기의 ‘for’가 모든 곳에서 동일하게 ‘위하여’의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어와 원어를 무시하면서 침례교 교리를 지키려고 하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입니다.
대개 피터 럭크만과 그의 추종자들(대개는 킹제임스 성경의 이중 영감을 믿는 사람들)이 ‘죄들의 사면으로 인해’라고 번역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을 그런 식으로 번역하려면 다음처럼 해야 더 정직한 것입니다.
죄들의 사면으로 인해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러나 이렇게 하면 구원 교리가 깨지므로 안 됩니다. 회개하지도 않았는데 죄들의 사면이 있다고 하면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다 보니 '죄들의 사면으로 인하여'로 하려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죄들의 사면으로 인하여'로 하려고 예수님을 슬쩍 집어넣어 해석합니다.
그러나 38절에는 '너희 각 사람이'라는 말이 나오므로 여기에 예수님을 넣으면 안 됩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즉 ① 회개, ② 침례, ③ 죄들의 사면, 이 세 가지는 모두 개개인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① 회개, ② 침례만 개개인에게 해당되고 ③ 죄들의 사면은 예수님이 하신 것이라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들을 대할 때 가장 좋은 선택지는 그리스어, 영어 등에 있는 것처럼, 지금 흠정역 마제스티 번역처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번역하고 이런 구절들을 통합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구절을 가지고 물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누가 주장하면 잘 설명해 주고 그래도 믿지 않으면 그런 분에게서 조용히 물러나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오해될 수 있는 성경의 증거 세 가지를 보여 주어도 안 믿기로 작정한다면 그 이상 무슨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특정 교리나 교파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문맥에 벗어나게 번역하는 일은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알면서도 그리하면 그것에 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대적하는 어떤 일도 할 수 없고 진리를 위해서만 할 수 있노라(고후13:9).
샬롬
패스터
2023-08-12 13:44:22 | 관리자
원어 성경의 도움 없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으로 정확한 번역이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일단 답을 드리고 시작합니다.
저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함을 믿습니다.
그러나 원어 성경의 도움 없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으로 정확한 번역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1990년대 초에 한국에 킹제임스 성경이 전해진 이후로 킹제임스 성경 진영에 속한 다수의 사람들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특별히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이중 영감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원어 성경을 철저히 무시하고 영어 성경만 있으면 번역, 해석 등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심히 많습니다. 이것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것과 비슷한 일로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런 분들은 영어의 원래 뜻이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몇 구절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을 유혹하여 영어 킹제임스 성경 우상 숭배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게 영어 성경의 모든 것을 다 알면 직접 성경을 내면 좋을 텐데 이런 사람들은 정작 그 일은 하지 못하고 주로 사이버 공간에서 다른 사람이 만든 역본을 가지고 ‘한국말 성경은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는 등의 말로 성도들의 믿음을 파괴하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어로 유혹하는 목사들을 조심하라.
12년 전인 2011년에 400주년 기념판을 낼 때까지는 원어 성경을 담은 소프트웨어가 국내에는 거의 없었고 영어 소프트웨어의 경우 폰트가 깨져서 원어를 참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경부터 디럭스 바이블, 슈퍼 바이블 등의 원어 성경이 한글 윈도우즈에 폰트가 깨지지 않으면서 잘 설치되어 그 이후로는 원어 성경을 자연히 많이 참조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슈퍼 바이블은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인 그리스어 공인 본문(스테파누스 성경)을 기본 그리스어 본문으로 제공하므로 마제스티 에디션을 교정해서 낼 때에는 정말로 매우 많이 참조하였습니다.
슈퍼 바이블
영어에서는 They나 one 등의 성 구별, the 플러스 형용사의 단수 복수, 어떤 단어의 단복수, 같은 단어의 다른 뜻 등이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영어만 보고 한국어로 옮기면 대단히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원어를 영어로 표현하면 그렇게밖에 할 수 없고 그것이 영어로는 완전하지만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는 여성인지, 남성인지, 단수인지 복수인지 등을 알기 어려워 영어 그대로 번역하면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이야기 드린 것입니다.
1. the other
며칠 전에 어떤 분이 마제스티 성경의 마23:23이 잘못되었으니 고치라고 하였습니다.
마23:23
Woe un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for ye pay tithe of mint and anise and cummin, and have omitted the weightier matters of the law, judgment, mercy, and faith: these ought ye to have done, and not to leave the other undone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바치면서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들인 판단의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등한시하였도다. 너희가 이것들도 행하였어야 하며 다른 것들도 행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그분 이야기는 영어 문장 뒤에 the other가 단수이니 ‘다른 것들’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문제가 됩니다. other가 단수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어 사전을 보면 이것 즉 ‘카케이노스’(스트롱 번호 2548)는 중성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영한사전을 보면 other는 복수 명사의 앞에 붙어서 ‘다른’을 뜻한다고 되어 있고 단수 명사를 직접 수식하는 경우에는 another를 쓴다고 되어 있습니다.
┈┈• other people 다른 사람들(the ~ people)처럼 the가 붙으면 ‘나머지 사람들(전부)’이란 뜻.
마23:23의 경우 원래 the other 다음에는 그 앞에 있는 이것들(these)처럼 things가 나와서 전체적으로 the other things로 표현되어야 하지만 things가 생략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제스티 성경처럼 ‘다른 것들’로 해야만 맞습니다.
그래야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이것들’이 되고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들인 판단의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다른 것들’이 됩니다.
2. two, three, one, any 등의 남성 여성 구분
고린도전서 14장에서 타 언어(방언)를 하는 사람들은 남자여야만 합니다.
타 언어 선물(은사)이 존재하던 당시에 그것은 남자들만 할 수 있었습니다.
고전14:27-28을 보겠습니다.
27 If any man speak in an unknown tongue, let it be by two, or at the most by three, and that by course; and let one interpret.
28 But if there be no interpreter, let him keep silence in the church; and let him speak to himself, and to God.
27절에는 two와 three가 나오는데 이것만으로는 둘 혹은 셋이 남자를 말하는지 여자를 말하는지 영어로는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끝에 나오는 one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개역성경처럼 두 사람, 세 사람으로 하면 여자들이 타 언어를 말하거나 통역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그리스어 성경에는 two, three, one이 모두 남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흠정역처럼 남자로 번역해야만 하나님의 뜻이 제대로 나타납니다.
27 만일 어떤 남자가 알지 못하는 타 언어로 말하거든 두 남자나 많아야 세 남자가 순서대로 하고 한 남자는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남자가 없으면 그는 교회 안에서 잠잠히 있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니라.
29-31절에는 대언의 선물이 나오는데 여기의 two, three도 모두 남성입니다.
그러니까 타 언어(방언)든 대언이든 이 두 가지는 남자들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34절 말씀이 문맥에서 합당한 말씀이 됩니다.
너희의 여자들은 교회들에서 잠잠히 있을지니 이는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아니하였고 율법도 말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순종하도록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라(고전14:34).
즉 여자들은 교회에서 얼마든지 이야기(talk, tell)할 수 있으나 남자들 앞에 서서(즉 공 예배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말(설교나 기도 등)을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목사나 집사는 남자만 할 수 있고(딤전3) 미국의 침례교회들은 지금도 남자만 목사와 집사로 세웁니다.
여자는 전적으로 복종하며 잠잠히 배울지니라. 더욱이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여자는 잠잠히 있을지니라(딤전2:11-12).
3. children
child의 복수인 children은 남성 복수나 중성 복수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여자인 경우 여성 복수도 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셀 수 없이 많이 나오는 children of Israel의 children은 남성 복수 명사이므로 이스라엘의 자녀들이라고 하면 큰 오역입니다.
또한 갈4:28을 보겠습니다.
Now we, brethren, as Isaac was, are the children of promise.
여기서 children은 중성 복수이므로 자녀들이 아니라 '아이들'로 해야 더 정확합니다.
형제들아, 이제 우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아이들이니라.
갈4:31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이처럼 우리는 노예 여자의 아이들이 아니요 자유로운 여자의 아이들이니라.
4. the firstborn, the same 등 the + 형용사
성경에는 the rich, the poor, the wise, the prudent 등 정관사와 형용사가 결합한 사례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정관사와 형용사가 결합되면 단수도 되고 복수도 됩니다.
예를 들어 히12:23을 보기 바랍니다.
To the general assembly and church of the firstborn, which are written in heaven, and to God the Judge of all, and to the spirits of just men made perfect,
피터 럭크만, 존 맥아더 등의 유명한 사람들과 킹제임스 온리를 주장하는 미국의 많은 분들은 여기의 the firstborn이 단수로서 ‘처음 나신 분’인 예수님을 말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여기의 교회는 ‘처음 나신 분인 예수님의 교회’라고 주석을 답니다.
그러나 원어 성경을 보면 the firstborn은 복수입니다. 그러므로 여기는 ‘처음난 자들’(신약 교회 성도들)로 구성된 교회를 말합니다.
하늘에 기록된, 처음 난 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모든 자들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과
여기서 보듯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어를 충실하게 the firstborn으로 잘 번역하였지만 영어를 보고 한국말로 옮길 때는 반드시 원어를 보고 단복수 구분을 해 주어야 합니다.
히2:14의 the same도 마찬가지입니다.
Forasmuch then as the children are partakers of flesh and blood, he also himself likewise took part of the same; that through death he might destroy him that had the power of death, that is, the devil;
2011년 400주년 기념판까지 우리는 앨 레이시(Al Lacy), M.R. 디한 등 미국의 유명한 킹제임스 성경 지지자들의 말에 따라 the same을 단수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의 the same은 원어로 보면 복수이므로 ‘같은 것들’로 해야 합니다. 즉 예수님은 살과 피 두 개를 다 가지고 사람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이 히브리서 기자의 주장입니다.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친히 같은 것들에 참여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등에는 특히 the에 형용사가 붙은 the wise, the poor 등이 많이 나오는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으로는 단복수를 구분할 수 없어 400주년 기념판까지는 단복수의 실수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제스티 판에서는 이 모든 것을 일일이 확인하여 구분하였습니다.
The 플러스 형용사
벧후3:17을 보겠습니다.
Ye therefore, beloved, seeing ye know these things before, beware lest ye also, being led away with the error of the wicked, fall from your own stedfastness.
여기에는 the wicked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이 단수가 되면 엡6:16의 사악한 자 곧 사탄 마귀가 되고 복수가 되면 여러 종류의 사악한 자들이 됩니다. 당연히 이것의 영어만 보고는 단복수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여기는 원어에 따라 복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들을 미리 알고 있으니 그 사악한 자들의 오류에 이끌려 너희도 너희 자신의 굳건함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5. people
중학교에서 배우듯이 people은 한 나라의 백성도 되고 여러 사람들도 됩니다. 신구약 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 유다 백성 등과 같이 유대인들로 구성된 백성의 의미를 가진 people이 있고 단순히 여러 사람들을 뜻하는 백성이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에는 전체적으로 people이 2,139회나 나옵니다. 그런데 원어가 없으면 이 둘을 구분하기 어려운 때가 생깁니다.
오늘은 신약 성경만 예로 들겠습니다.
원어 성경은 이 두 개의 people을 다른 단어로 표기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말할 때는 라오스(스트롱 2992)가 사용되었고(마1:21 등), 여러 사람들을 말할 때는 오클로스(스트롱 번호 3793)가 사용되었습니다(마7:28 등).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라(마1:21).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마치시매 사람들이 그분의 교리에 깜짝 놀라니(마7:28)
그러니까 원어를 사용할 줄 알면 원어의 단어들을 일관성 있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독자는 성경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든 많은 사람들이든 영어로는 둘 다 people이며 people은 두 단어의 정확한 영어 번역입니다. 그러나 영어에서 우리말로 옮길 때는 원어를 참조하여 이 둘을 구분해야만 통일성 있는 번역이 가능해집니다.
6. firstfruits
얼핏 보기에 firstfruits는 복수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꼭 ‘첫 열매들’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롬16:5를 보겠습니다.
Likewise greet the church that is in their house. Salute my well-beloved Epaenetus, who is the firstfruits of Achaia unto Christ.
끝의 그는(who) 단수이고 당연히 그는 그리스도께 첫 열매가 된 자입니다. 첫 열매들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원어가 분명하게 firstfruits는 단수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에 인사하라. 내가 매우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가야에서 그리스도께 첫 열매가 된 자니라.
고전15:20을 보겠습니다.
But now is Christ risen from the dead, and become the firstfruits of them that slept.
여기도 firstfruits는 원어에서 단수이며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잠든 자들의 첫 열매이십니다. 절대로 첫 열매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15:23도 마찬가지입니다.
But every man in his own order: Christ the firstfruits; afterward they that are Christ's at his coming.
그러나 각 사람이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시요,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 속한 자들이니라.
여기도 첫 열매들이라고 하면 명백한 오역입니다.
이런 데를 영어를 가지고 첫 열매들로 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속히 그들에게서 떠나야 합니다. 그들은 무지하거나 영어 킹제임스 성경 우상 숭배자입니다.
첫 열매들로 인해 고민한 분의 간증
7. whereby, which 등의 단복수
벧후3:5-6을 보겠습니다.
5 For this they willingly are ignorant of, that by the word of God the heavens were of old, and the earth standing out of the water and in the water: 6 Whereby the world that then was, being overflowed with water, perished:
일단 5절을 보겠습니다.
5 이는 그들이 이 사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고 또 땅이 물에서 나와 물 가운데 서 있는 것을 일부러 알려 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6절의 첫 단어는 whereby입니다. 이것은 단수일까요? 복수일까요?
다수의 역본들은 이로 말미암아, 이로써, 그리고 등으로 whereby를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원어를 보면 이것은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흠정역처럼 ‘그것들에 의해’라고 번역해야 맞습니다.
(3:6) 그것들에 의해 그때 있던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나
여기의 그것들은 당연히 5절에 따라 물들이 되겠지요.
히12:14를 보겠습니다.
Follow peace with all men, and holiness, without which no man shall see the Lord:
이 절의 중간에는 without which라는 구가 나옵니다. which가 단수이면 바로 앞의 거룩함이 될 것이고 복수이면 화평과 거룩함이 될 것입니다.
원어 성경을 보면 which가 단수로 되어 있으므로 흠정역처럼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과 거룩함을 따르라.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결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할 때 원어 성경을 참조하지 않으면 여러 군데에서 부정확한 번역이 나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2011년 400주년 기념판까지는 원어 성경을 철저히, 충분히 참조하지 않았으므로 이런 실수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제스티 에디션을 내면서는 이런 모든 것을 일일이 다 살펴서 영어와 원어에 맞는 역본을 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이중 영감을 믿으므로 영어만 가지고 순수하게 영어대로 번역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조심하고 피해야 합니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 우상숭배자입니다.
단복수 등의 문제에서 영어는 절대로 원어를 따라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원어에 순종해야 합니다.
즉 원어 이상을 뛰어넘는 영어 번역은 없습니다.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어 성경을 완전하게 영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이 영어 성경을 한국말로 옮길 때에는 반드시(100%) 원어 성경을 참조해야만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위에서 보여 드린 예에서 드러난 것처럼 어떤 때는 원어를 알아야만 정확한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원어를 깡그리 무시하고 ‘영어’, ‘영어 그대로 순수하게’를 주장하면서 실제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우상 숭배하는 자들(특히 목사들)을 조심하고 피해야 합니다. 그들이 여러분의 영혼을 영어 킹제임스 성경 우상 숭배로 망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이고 이해심이 풍부한 성도들이 성경 신자들 가운데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때에 [그분께서] 그들의 이해력을 넓혀 주사 그들이 성경기록들을 이해하게 하시며(눅24:45)
샬롬
패스터
2023-08-12 11:49:1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영어와 원어의 차이 그리고 이로 인한 단수 복수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며칠 전에 외국에 사시는 한 분이 디도서 1장 1절 번역에 대해 질문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의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성품을 따르는 진리를 인정함에 따라
Paul, a servant of God, and an apostle of Jesus Christ, according to the faith of God's elect, and the acknowledging of the truth which is after godliness;
질문의 핵심은 the faith of God's elect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습니다.
God’s elect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단수)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복수)이냐?
이분은 James Knox 목사님의 설교를 듣곤 하며 최근에는 그분이 소개한 다른 미국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는데 이분은 the faith of God's elect의 elect가 단수이며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고 하면서 그분의 설교가 맞는 것 같다고 하며 질문하였습니다.
즉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갈2:20과 매칭이 되게).
사실 영어로는 elect라는 단어가 단수인지 복수인지 구분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어 공인 본문을 사용하는 슈퍼바이블에 가서 원어 분해를 보았습니다.
elect: 1588 ejklektov" eklektos {ek-lek-tos'}
1586에서 유래;‘뽑힌’, (함축적으로)‘마음에 드는’, 택함을 받은, 선출된 <막 13:20>형. chosen; 남성 복수
즉 elect라는 말은 남성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택하신 자들이 되어야 맞습니다.
이런 데가 히브리서 12장 23절에도 있습니다.
총회와 하늘에 기록된 처음 난 자들의 교회와 모든 것의 [심판자] 되시는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과
To the general assembly and church of the firstborn, which are written in heaven, and to God the Judge of all, and to the spirits of just men made perfect,
저 역시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하는 어떤 목사님이 이 구절의 the firstborn을 처음난 자들(복수)이 아니라 처음난 자(단수)로 보아야 하며 처음난 자 혹은 처음난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역시 슈퍼바이블의 공인 본문을 가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firsrborn: 4416 prwtotovko" prototokos {pro-tot-ok'-os}
4413과 5088의 대체어에서 유래; 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먼저 태어남’(일반적으로 먕사로서), 처음난 <롬 8:29; 골 1:15>형. firstborn; 남성 복수
이 단어 역시 남성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2011년 400주년 기념판과 2021년 마제스티 에디션은 단복수에 관한 이런 점에서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마제스티 에디션에서는 영어로 볼 때 단수 복수가 애매모호한 단어들을 모두 원어로 가서 확인하여 원어가 단수면 단수, 복수면 복수로 표기하였습니다.
영어는 원어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단수 복수를 구분하기 어렵다고 해도 영어 번역은 완벽합니다. 그렇게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나 미국 독자들이 영어만 가지고 단복수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강해를 하면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을 가지고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2011년 400주년 기념판: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의 일부를 취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Forasmuch then as the children are partakers of flesh and blood, he also himself likewise took part of the same; that through death he might destroy him that had the power of death, that is, the devil;
여기에는 살과 피가 나옵니다. 그런데 영어 중간에 the same이 나옵니다. 이것을 400주년 기념판에서는 ‘같은 것’이라고 단수로 번역하였습니다.
원어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the same: 846 aujtov" autos {ow-tos'}
불변사 au<아무>【아마 일정한 ‘방향없는’바람의 개념으로 109의 어간과 유사】(‘뒤편’)에서 유래;(재귀대명사)‘자신’, 3인칭(홀로 혹은 1438과 합성어로)으로 사용, 역시 기타 인칭(본래적 의미로는 인칭대명사와 함께)으로 사용, 848과 비교 <마 3:11;눅 3:23;행 10:26>대. self, him, it, her, the same; a)강조적 용법 ;자신(self) b)인칭대명사의 3인칭 ;그, 그녀, 그것c)한정적인 용법 ;동일한, 바로 그 (the same), 중성 복수
즉 여기의 the same은 중성 복수로서 살과 피 두 개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복수로 표현하였습니다.
마제스티 에디션: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친히 같은 것들에 참여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베드로전서 3장 18절도 마찬가지입니다.
400주년: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단수)로서 불의한 자(단수)를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려 하심이라.
For Christ also hath once suffered for sins, the just for the unjust, that he might bring us to God, being put to death in the flesh, but quickened by the Spirit:
영어로만 보면 the just, the unjust가 단수인지 복수인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원어로는 분명하게 전자는 남성 단수, 후자는 남성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제스티 에디션에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마제스티: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해 한 번 고난받으사 의로운 자(단수)로서 불의한 자들(복수)을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해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 데려가려 하심이라.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보다는 ‘성령에 의해’가 더 뜻이 명확해서 그렇게 고쳤습니다.
이번 마제스티 에디션에서는 이런 식으로 the에 형용사가 붙어 있는 명사들을(시편 잠언 등 시가서에 매우 많음, the wise, the rich, the poor, the wicked 등등) 일일이 확인하여 가능한 한 단수와 복수를 구분해서 표현하였습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우리가 보기에 영어로 단수와 복수 구분이 어려워도 영어 번역은 완벽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어만 보고 번역하거나 설교하다 보면 단수와 복수로 인한 혼동이 생길 수 있으므로 원어의 도움을 받아야 이런 부분을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가능하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마제스티 에디션은 가능한 한 단수 복수를 명확하게 표기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가 풍성히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3-08-05 17:30:26 | 관리자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번역의 목적과 원칙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시장 경제 체제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누가 무슨 일을 하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 번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어떤 식으로 번역해서 내든지, 또 그것을 읽고 믿든지 안 믿든지는 다 개인의 자유 영역에 속합니다.
다만 표준 킹제임스처럼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1769년 케임브리지판이라는 본문을 스스로 만든 뒤 – 여기까지는 큰 문제없음 - 이것 외에 다른 본문들은 오류가 많다고 주장하는 것 – 여기에 큰 문제가 있음 - 은 자유 시장 경제 체제에서 소비자들을 현혹시키는 일종의 사기 행위이므로 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그들이 우리가 번역의 저본으로 사용한 1909년 퓨어 케임브리지판은 족보도 실체도 없다고 하는 것 역시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그쪽에서 온갖 거짓말로 우리 흠정역 성경을 비방하고 폄하하기에 하는 수 없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조사를 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에 어떤 사람들은 편지를 쓰고 해서 거짓말을 막고자 하였습니다.
우리가 표킹에 대응하는 이유는 이것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이 만든 것을 좋아하고 사실 그대로 영어 본문을 '제조'했다고 하는데도 사람들이 믿고 따라가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요즘 이런 문제가 생기는 원인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우상으로 숭배하려는 생각 때문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다 보니 영어 그대로 해야 한다고 해서 비둘기가 그녀가 되고 까마귀가 그 남자가 되고 부정관사 a, 접속사 and, 불콩들의 죽처럼 복수를 모두 살리고 심지어 도량형과 인명 지명도 영어처럼 하는 기괴한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요2:6을 보겠습니다.
And there were set there six waterpots of stone, after the manner of the purifying of the Jews, containing two or three firkins apiece.
표준: 그리고 거기에는 유대인들 정결 예식의 방식에 따라 돌로 된 물 항아리 여섯 개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각기 이 펄킨이나 삼 펄킨을 담을 수 있었더라.
펄킨이라는 말은 현재 미국 사람들도 거의 안 쓰는 말입니다. 그래서 목사나 교사가 설명을 해 주거나 용어 사전을 통해 의미를 배워야 합니다. 실제로 이것은 좋은 교육입니다.
이런 일이 다 킹제임스 영어 성경의 이중 영감설에 따른 우상 숭배의 폐해라고 생각합니다.
데이빗 대니얼스 등의 증언을 보기 바랍니다.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다시 영감을 받은 것’도 아니고 ‘이중 영감을 받은 것’도 아니며 ‘최초의 영감’이 영어 번역으로 전달된 성경이다.
대니얼스의 증언: 이중 영감은 없다
펄킨, ‘불콩들의 죽’ 같은 난센스 번역과 관련해서 오늘은 과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완벽하게 혹은 정확하게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이 가능한가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심히 순진한 분들이 ‘순수한 영어 본문을 영어 그대로’ 번역했다는 말을 좋아하고 그런 번역이 있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갑니다.
언제가 한번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최종 권위를 주장하는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나서 창1:1의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earth.”에서 ‘in the beginning’을 ‘그 처음 안에서’로 번역한 것을 보고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번역을 한 번역자 역시 럭크만의 이중 영감설에 푹 빠졌고 철저한 럭크만 신봉자가 되었기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번역을 시도해서 인쇄까지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저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 우상 숭배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표준 킹제임스라는 것도 이런 정도는 아니지만 그것의 번역 원칙과 원리는 거의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왜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해서 출간하는가, 그리고 우리말 번역에서 영어나 원어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말로는 정확한 성경을 낼 수 없는가, 여기서 정확하다는 말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번역 목적
우리는 처음부터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완벽한 성경을 번역하려 하지도 않았고 또 사실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 중요한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영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등과 우리말은 문법 및 구조가 완전히 다르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처럼 히브리어, 그리스어를 거의 완벽하게 일대일 대응시켜 번역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불가능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우리는 우리말 구조와 문법의 한계 내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정확하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하였을 뿐입니다.
우리는 번역을 하면서 항상 영어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의 서문에 나오는 번역의 정의에 대해 생각하였습니다.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번역은 껍질을 까서 우리가 열매를 먹도록 해주며 휘장을 젖혀서 우리가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 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이 없이 야곱의 그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는 아이들과 같이 될 것이다.
마르틴 루터의 예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키고 가장 먼저 한 일들 가운데 하나는 독일어 성경 번역이었습니다. 그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물론 올바른 본문과 번역의 기술이지만 가장 크게 신경을 쓴 것은 평범한 독일 사람들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변장하고 숨어 지내면서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 중에 시시때때로 저잣거리로 나가서 당시 시장에서 보통 사람들이 쓰는 언어에 귀를 기울이고 신경을 썼습니다. 당시 독일에는 여러 계층과 지역의 사람들이 쓰는 다양한 형태의 독일어가 있었고 루터는 그중에서 일반 백성들이 가장 널리 쓰는 언어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루터의 성경을 읽고 깨달은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받는 귀한 일이 생겼습니다.
신약 성경 코이네 그리스어
신약 성경 역시 그 당시 세상의 보통 사람들이 쓰던 코이네 그리스어로 기록되었기에 평범한 사람들이 읽고 구원받고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 가능하였습니다(당시 그리스어도 여러 종류였음).
에라스무스 라틴어
에라스무스 역시 자기 시대 사람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라틴어 역본을 번역하였습니다.
틴데일 영어 성경
킹제임스 성경의 모체가 된 틴데일 성경을 번역하기 위해 틴데일 역시 어떻게 하면 보통 영국 사람들의 말로 성경을 번역할까 애를 썼으며 그 결과 그의 성경의 60-70%가 킹제임스 성경에 그대로 반영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히브리서 12장 2절을 번역하기 위해 여러 날을 고민하였고 그 결과 불후의 구절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히12:2, Looking unto Jesus the author and finisher of our faith;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우리 믿음의 창시자라는 말은 정말 오랜 고민 끝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author를 작가나 저자로 생각하고는 왜 ‘믿음의 저자’로 번역하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author의 첫 번째 뜻은 창시자입니다.
1.1 gen. The person who originates or gives existence to anything: a.1.a An inventor, constructor, or founder. Now obs. of things material; exc. as in b.
그리스 단어들의 뜻을 이렇게 고정하면서 성경 단어들 개념의 기초를 놓아 준 사람이 바로 틴데일이었고 그는 오직 보통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번역하기 위해 전 인생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번역하는 시대의 보통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국어 시간에 배우는 우리말 문법과 용례를 기준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맞춤법 연구를 위해 적어도, 1,000번 이상 국어연구원에 질문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의 교정 의견을 들었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번역 목적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번역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기존의 개역 성경(소수 사본)에서 잘못된 부분들을 교정한 킹제임스 성경(다수 사본)을 출간하는 것(본문 문제, 번역자 사상 문제, 번역 기법 문제, 맞춤법 문제, 4복음서 대조 등)
2. 딤후3:17이 이루어질 수 있는 성경을 내는 것
16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30년의 번역과 교정을 통해 이 두 가지 목표를 이루려 하였습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우리말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영어(그리스, 히브리어)를 그대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번역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의 구조상 차이로 인해 어떤 곳은 영어와 비교했을 때 차이를 보이는 것들이 더러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것들은 딤후3:16-17을 이루는 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것들입니다.
1. 복수
2. 수동태 능동태
3, 부탁의 말씀
우리 주 예수님의 큰 은헤가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풍성히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31 15:29:11 | 관리자
영어를 조금 안다고 하는 목사들이 킹제임스 성경을 가로막는 진짜 문제다
부탁의 말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400년 전 왕정 시대에 왕에 의해 강권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일반 대중은 사실 번역이 조금 좋으냐, 좋지 않느냐를 따질 수 없었습니다. 왕이 제정하였고 또 그것이 보급되는 데도 수십 년 걸렸기 때문입니다. 이러면서 이것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착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웁니다. 그래서 영어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말 번역을 읽으면서 자기 뜻대로 번역되지 않은 데가 있으면 무조건 핏대를 올리며 오역이라고 합니다. 영어를 조금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100이면 100 다 무언가 한두 군데는 자기 생각하고 다른 데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구미에 맞는 킹제임스 성경 역본을 우리말로 내는 것은 이런 면에서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부추기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쓰는 목사들 가운데는 공공연하게 “한국말로는 정확한 성경을 낼 수 없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설교 시간에도 그런 식으로 말을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1주일 전에도 어떤 목사에게서 그런 글을 직접 받았습니다. “한국말로는 정확한 성경을 낼 수 없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국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국 사람들만의 하나님인가요? 한국 사람들의 하나님은 아닌가요?
“한국말로는 정확한 성경을 낼 수 없다.”
이렇게 주장하는 분들에게 에스겔서나 미가서를 가져다주고 즉시 읽고 해석해 보라고 하기 바랍니다. 단언하건대 영한사전 없이 즉시 번역해서 구약 성경을 쭉쭉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 땅에 거의 없습니다. 한두 구절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한국말 성경 읽듯이 시원하게 쭉쭉 영어로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사도행전 전체 28장을 우리말로 정확하게 번역된 흠정역 성경으로 쭉쭉 시원하게 읽는 데는 2시간이면 족합니다. 읽으면서 전체 맥락을 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 읽기 시작하면 1주일이 걸려도 대다수 사람들이 읽지 못할 것이며 번역하느라 뒷부분에 가면 앞에 읽은 내용을 다 잊어버릴 것입니다.
대다수 목사들이 자기들도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한국말 성경은 절대로 정확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흠정역 성경을 예로 들자면 흠정역 성경이 자기 뜻대로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prophet을 예언자가 아니라 대언자로, prophesy를 예언하다가 아니라 대언하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는 replenish를 럭크만의 주장대로 ‘다시 채우다’로 하지 않고 ‘가득 채우다’로 번역했습니다.
왜 이렇게 번역했을까요? 영어 성경과 옥스퍼드 영어 사전 그리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내장 사전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고 우리의 생각을 거기에 맞추어야지 내 생각대로 성경을 뜯어고치면 안 됩니다. 이것이 안 되니까 여러 목사들이 한국말로는 정확한 성경을 낼 수 없다고 노래하고 다닙니다.
예를 들어 prophet을 보기 바랍니다.
출7:1, And the LORD said unto Moses, See, I have made thee a god to Pharaoh: and Aaron thy brother shall be thy prophet.
흠정역: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를 파라오에게 신이 되게 하였으니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라.
심지어 개역도 대언자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영어 옥스퍼드 사전은 prophet이란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하는 자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Prophet: one who speaks for God
그러니까 대언, 대언자 외의 다른 말은 성경 번역에서 수용될 수 없습니다.
결론
“한국말로는 정확한 성경을 낼 수 없다.”고 말하는 목사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서 성경을 빼앗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대다수 성도들은 영어를 읽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한국말로는 정확한 성경을 만들 수 없다. 다 오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가져다버리고 읽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심지어 킹제임스 성경이 없으면 개역성경이라도 매일 읽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한국말로는 정확한 성경을 낼 수 없다”고 말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어떤 점이 딤후3:16-17을 이루지 못하는지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영한사전과 럭크만 주석(그것도 한국말로 번역된 것) 없이는 영어 성경을 읽지도, 해석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여,
부디 딤후3:16-17을 이룰 수 있는 우리말 성경, 이런 성경을 대다수 성도들의 마음에서 빼앗지 말기 바랍니다. 그것은 목사가 성도들에게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성도들도 그런 목사들이 있으면 “한번 영어를 잘 아는 당신이 번역해 보라.”고 하기 바랍니다. 그들은 한두 구절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성경 전체를 번역하지는 못합니다.
끝으로 천부적 탤런트를 받아 워낙 영어에 능통하여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보여 주지 못하는 미묘한 것들(대개는 주관적인 것들, 복수, 수동태 등)로 인해 불평이 생기는 분들은 영어나 원어 성경을 보기 바랍니다.
이제 끝으로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 출간 공지>의 마지막 2항을 보기 바랍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 출간 공지
2. 주 번역자인 저를 포함하여 부족한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마제스티 에디션을 출간하였지만 보는 사람마다 흡족하지 못하다고 여길 부분이 있을 것으로 압니다. 또한 이전 판들의 번역이 더 낫게 보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400주년 기념판과 마찬가지로 마제스티 에디션 역시 올바른 본문에서 최대한 우리말답게 정직하게 번역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사람과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충분한 성경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출간한 목적이고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이것을 이루어 왔다고 믿습니다.
왜 30년이나 걸렸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킹제임스 성경도 1380년경부터 1611년까지 230년에 걸쳐 완성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말로 지키는 우리가 됩시다.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번역은 껍질을 까서 우리가 열매를 먹도록 해주며 휘장을 젖혀서 우리가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 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이 없이 야곱의 그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는 아이들과 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말 사용 면에서 성장하는 우리가 됩시다. 우리말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믿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 중의 난센스입니다.
그래서 영어 그대로 해야 한다는 말은 때로 위험한 말입니다. 우리말 용례에 어긋나는 번역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31 15:05:35 | 관리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번역 시 수동태 문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번역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기존의 개역 성경(소수 사본)에서 잘못된 부분들을 교정한 킹제임스 성경(다수 사본)을 출간하는 것(본문 문제, 번역자 사상 문제, 번역 기법 문제, 맞춤법 문제, 4복음서 대조 등)
2. 딤후3:17이 이루어질 수 있는 성경을 내는 것
16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30년의 번역과 교정을 통해 이 두 가지 목표를 이루려 하였습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우리말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영어(그리스, 히브리어)를 그대로 보통 사람들의 말(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번역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의 구조상 차이로 인해 어떤 곳은 영어와 비교했을 때 차이를 보이는 것들이 더러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것들은 딤후3:16-17을 이루는 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중 하나는 수동태를 능동태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수동태 번역
우리말은 수동태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글에서는 빈번히 수동태가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번역을 할 때 수동태로 해도 문장이 어색하지 않은 경우는 수동태를 유지하고 수동태로 하면 말이 꼬여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 때는 능동태로 하되 첨가된 주어는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마6:7, But when ye pray, use not vain repetitions, as the heathen do: for they think that they shall be heard for their much speaking.
여기에는 뒤에 they shall be heard라는 수동태 구문이 있습니다. 표킹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표킹: 오히려 너희가 기도할 때면, 이교도들이 하듯이 헛된 반복들을 사용하지 말라. 이는 자신들이 많이 고하여야 그것들이 들릴 것이라고 그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라.
자신들이 많이 고하여야 ‘그것들이 들릴 것이라고’는 오역입니다.
they shall be heard의 they는 기도하는 사람들이지 그들이 하는 말들이 아닙니다.
이상하지만 영어 수동태를 살린다고 억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말을 많이 해야 [아버지에 의해] 들어질 줄로 생각하느니라.
‘아버지에 의해’는 바로 위의 6절을 통해 아버지가 기도를 듣는 분이므로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네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러면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공개적으로 보답해 주시리라(마6:6).
자, 영어 수동태를 살린다고 “그들은 자기들이 말을 많이 해야 [아버지에 의해] 들어질 줄로 생각하느니라.”가 되면 이것을 이해할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을까요? 수동태에 익숙한 미국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개역, 카톨릭 성경은 모두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로 번역하였는데 이런 식이 되면 비문(非文)이 됩니다. 기도를 들어 주는 주체(주어)가 문장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동 번역은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 줄 안다.”고 하면서 ‘하느님께서’를 넣어 비문이 되는 것을 피하였습니다.
이처럼 어떤 때는 수동태 문장이 우리말 번역에서는 큰 문제가 됩니다.
흠정역은 다음과 같이 능동태로 번역하였습니다.
더욱이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들과 같이 헛된 반복의 말을 사용하지 말라. 그들은 자기들이 말을 많이 해야 아버지께서 들으실 줄로 생각하느니라.
이렇게 능동태로 번역하면서 비문을 피하기 위해 ‘아버지께서’를 이탤릭체로 넣어 이것이 첨가되었음을 밝혔습니다.
그러니까 영어 그대로 하라고 하는 말이나 영어 그대로 했다는 말이 듣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그런 식으로 번역을 하면 우리말 독자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렇게 번역하기 어려운 수동태 문장을 능동태로 바꾼다 해도 딤후3:16-17을 이루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와 비슷한 것이 히브리서 5장 7절에도 나옵니다.
히5:7, Who in the days of his flesh, when he had offered up prayers and supplications with strong crying and tears unto him that was able to save him from death, and was heard in that he feared;
여기 끝부분에는 and was heard in that he feared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여기서 He was heard라는 수동태 문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영어 그대로 번역한다고 하면 “그분께서 들어지셨다”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말에 이런 표현은 없습니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개역은 하는 수 없이 ‘그가 들으심을 얻었느니라’로 번역하였는데 이것 역시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말입니다.
카톨릭과 공동 번역은 ‘하느님께서는 그 간구를 들어 주셨습니다.’라고 제대로 번역하였지만 자기들이 첨가한 ‘하나님께서는’을 이탤릭체로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직역을 자랑하는 표킹을 보겠습니다.
표킹: 하나님께서 들으셨느니라.
잘 보기 바랍니다. 표킹도 분명히 수동태를 능동태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하나님께서를 넣고 이탤릭체로 표기하습니다. 이유는 심히 간단합니다. 수동태로 번역하면 우리말이 안 되는 것을 그들도 알기 때문입니다.
흠정역을 보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친히 육체로 거하시던 때에 자기를 사망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분께 강렬한 부르짖음과 눈물로 기도와 간구를 드리셨고 친히 두려워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말을 들으셨느니라.
엄마가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할 때 아이가 ‘나 엄마 말 듣고 있어요’를 영어로 표현하면 ‘Mom, I hear you’가 됩니다. 이것을 ‘나는 너를 듣고 있다’로 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당신(엄마)의 말을 듣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문장에서도 그냥 '하나님께서 들어 주셨다'로 하면 비문이 됩니다. 그래서 흠정역처럼 하나님께서 그 말(간구하는 말)을 들으셨다고 해야 적합한 번역이 됩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이런 문장에서 불가피하게 수동태 문장을 능동태로 바꾼다 해도 딤후3:16-17을 이루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이렇게 해야만 우리말 구조에서는 합당한 번역이 됩니다. 이런 것은 결코 오역이 아닙니다.
하사관이 신병들에게 적지에 들어가기 전에 생존 지침을 열심히 설명한 뒤 “내 말 알아들었어?”라고 하는 것을 영어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요?
대다수 한국 사람들은 능동태로 “Do you understand me(or what I said)?”로 번역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사관은 큰 소리로 “Am I understood?”라고 말합니다.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오면 반드시 “너희들 알아들었어?”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 의해 이해되어졌어?"라고 하면 치졸한 번역이요, 알아든지 못하는 번역이 됩니다.
유명한 구절 하나를 더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마6:33, But seek ye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shall be added unto you.
여기의 후반부 ‘all these things shall be added’ 역시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개역 등 대다수 성경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역시 뒷부분에 주어가 빠져서 비문이 됩니다.
카톨릭이나 공동은 이를 피하기 위해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로 하여 하나님이 더해 주시는 것을 우리가 곁들여 받는다고 조금 의역을 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주어 ‘너희’를 살릴 수 있어 비문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다음과 같이 ‘그분께서’를 이탤릭으로 첨가하여 비문을 피하면서 원래 뜻을 정하려고 하였습니다.
오히려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그분께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렇게 어떤 부분에서 불가피하게 수동태 부분을 능동태로 바꾼다 해도 딤후3:16-17을 이루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사실 흠정역에는 수동태를 그대로 살린 데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고전3:10, According to the grace of God which is given unto me, as a wise masterbuilder, I have laid the foundation, and another buildeth thereon. But let every man take heed how he buildeth thereupon.
앞부분에는 which is given unto me라는 수동태가 있습니다.
기존 개역 성경 등은 이것을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번역하였는데 이것 역시 ‘주신’이라는 동사의 주어가 없어서 비문입니다. 개역성경은 이런 데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100년 전에는 수동태를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흠정역 성경은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내게 주어진’으로 수동태를 살려서 비문을 피하였습니다.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내가 지혜로운 주 건축자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세우되 저마다 어떻게 그 위에 세울지 주의할지니라.
이처럼 수동태 문장의 번역은 우리말의 번역 가능 여부에 따라 번역자가 정한 규칙에 의해 결정됩니다.
다만 이때에도 딤후3:16-17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번역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마6:7, 히5:7처럼 수동태로 번역하면 전혀 말이 안 되는데도 무조건 영어식으로 수동태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며칠 전에는 어떤 분이 이런 수동태 구절 하나를 이메일로 보내고는 왜 오역을 했느냐고 따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도 극심한 분노를 표출하면서 말입니다.
영어 그대로 해야 한다고 하면서 직역만을 고집하는 표킹도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수동태를 능동태로 처리한 데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다만 우리는 이러면서 절대로 표킹처럼 오역을 하지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킹제임스 성경도 원어에 없는 부분들을 첨가하고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이런 데가 수천 군데 있는 것으로 압니다.
Looking unto Jesus the author and finisher of our faith; who for the joy that was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despising the shame, and is se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
여기서 ‘우리의’에 해당하는 our는 첨가된 것입니다. 번역자들이 볼 때 그냥 믿음으로 두면 안 될 것 같아 our를 넣어 예수님이 특별히 신약 시대 성도들(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임을 구체화하였습니다.
왜 영어 성경의 이탤릭체는 문제가 없고 우리말 번역에서 필요시 능동태로 바꾸면서 주어를 이탤릭으로 한 것은 문제가 됩니까?
번역이란 무엇인가?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의 서문에서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번역은 껍질을 까서 우리가 열매를 먹도록 해주며 휘장을 젖혀서 우리가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 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이 없이 야곱의 그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는 아이들과 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말 사용 면에서 성장하는 우리가 됩시다. 우리말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 중의 난센스입니다.
그래서 영어 그대로 해야 한다는 말은 때로 위험한 말입니다. 우리말 용례에 어긋나는 번역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31 14:49:30 | 관리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번역 시 단수 복수 처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번역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기존의 개역 성경(소수 사본)에서 잘못된 부분들을 교정한 킹제임스 성경(다수 사본)을 출간하는 것(본문 문제, 번역자 사상 문제, 번역 기법 문제, 맞춤법 문제, 4복음서 대조 등)
2. 딤후3:17이 이루어질 수 있는 성경을 내는 것
16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30년의 번역과 교정을 통해 이 두 가지 목표를 이루려 하였습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우리말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영어(그리스, 히브리어)를 그대로 보통 사람들의 말(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번역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의 구조상 차이로 인해 어떤 곳은 영어와 비교했을 때 차이를 보이는 것들이 더러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것들은 딤후3:16-17을 이루는 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중 하나는 단수 복수 문제입니다.
복수 문제
1. 창25:34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Then Jacob gave Esau bread and pottage of lentiles; and he did eat and drink, and rose up, and went his way: thus Esau despised his birthright.
이에 야곱이 빵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그가 먹고 마신 뒤 일어나 자기 길로 갔더라. 이같이 에서는 자기의 장자권을 업신여겼더라.
영어에는 팥죽이 pottage of lentiles로 되어 있는데 복수를 살려서 이것을 번역하면 ‘팥들의 죽’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 팥죽이라고 해야지 복수를 살린다고 팥들의 죽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팥빙수도 팥들의 빙수라고 하면 안 됩니다. 팥죽과 팥빙수라는 말에 이미 여러 개의 팥이 들어가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2. 선한 행위(good works) 등 단복수 처리
딛2:14, Who gave himself for us, that he might redeem us from all iniquity, and purify unto himself a peculiar people, zealous of good works.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셨으니 이것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친히 우리를 구속하시고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 소유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는 끝에 good works라는 복수 명사가 나오는데 우리는 이것을 선한 행위들이 아니라 선한 행위로 표현하였습니다.
자, 국방부 장관이 연설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대한민국 군대의 체질을 바꾸어 북한 적군의 침입이 있으면 지체 없이 초토화시켜야 합니다.”
이런 데 나오는 군대에는 사실 육군, 해군, 공군 등 여러 군대가 다 포함됩니다. 이럴 때 단순히 ‘대한민국 군대’라고 하면 그 군대는 대한민국의 모든 군대를 가리킵니다.
“사자는 동물의 왕이다.”라는 말 역시 사자 한 마리가 왕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으로 해도 우리말에서는 복수의 의미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행위들로 표현하여 각각의 행위를 나열해서 보여 주어야 할 때가 있고 복수 주어를 맞추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갈5:19-20, Now the works of the flesh are manifest, which are these; Adultery, fornication, uncleanness, lasciviousness, Idolatry, witchcraft, hatred, variance, emulations, wrath, strife, seditions, heresies, Envyings, murders, drunkenness, revellings, and such like:
한편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며 그것들은 이것들이니 곧 간음과 음행과 부정함과 색욕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증오와 불화와 시기심의 경쟁과 진노와 다툼과 폭동과 이단 파당과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댐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니라.
이 경우 복수로 표현해야 뒤의 여러 가지 행위가 살아나고 '그것들은 이것들이니...그와 같은 것들이니라'의 복수와 매칭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복수를 살렸습니다.
3. 의인화의 단복수
히10:31, It is a fearful thing to fall into the hands of the living God.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니라.
이 경우 영어는 hands of the living God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손으로 단수 처리하였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사람들처럼 손과 발과 다리 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손, 팔, 입 등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을 우리는 의인화라고 합니다.
그래서 히10:31은 이런 뜻입니다.
살다가 우리(자녀들)가 잘못해서 강한 사람(부모님)의 손에 들어가면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죄를 짓는 자도 하나님에 의해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의 손들로 하면 우리말에 맞지 않습니다.
“내 손에 걸리기만 해. 그냥 안 두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말이지 “내 손들에 걸리기만 해. 그냥 안 두겠다.”라고 하면 어색해집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전혀 쓰지 않습니다.
더욱이 표킹처럼 하나님의 두 손이라고 하여 ‘두’를 임의로 첨가하는 일은 더욱더 유치한 일이 됩니다.
시11:4, The LORD is in his holy temple, the LORD's throne is in heaven: his eyes behold, his eyelids try, the children of men.
주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전에 계시며 주의 왕좌는 하늘에 있도다. 그분의 눈은 사람들의 아이들을 바라보시며 그분의 눈꺼풀은 그들을 단련하시는도다.
히브리어는 같은 것을 반복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뒤에 있는 눈꺼풀은 바로 앞의 눈을 반복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무슨 일을 곰곰이 생각할 때 눈꺼풀을 내립니다(눈을 반쯤 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꺼풀은 하나님이 깊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음을 의인화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사람들을 단련하십니다.
이런데도 굳이 복수를 살린다고 ‘눈들’, ‘눈꺼풀들’이라고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유치한 번역이 됩니다.
참고로 개역은 이것을 안목으로 공동과 카톨릭은 눈동자로 번역했지만 이것은 바른 번역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들은 딤후3:17을 이루는데 아무 문제가 없으며 영어 문장을 우리말로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 번역의 정확성을 따지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번역이란 무엇인가?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의 서문에서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번역은 껍질을 까서 우리가 열매를 먹도록 해주며 휘장을 젖혀서 우리가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 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이 없이 야곱의 그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는 아이들과 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말 사용 면에서 성장하는 우리가 됩시다. 우리말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 중의 난센스입니다.
그래서 영어 그대로 해야 한다는 말은 때로 위험한 말입니다. 우리말 용례에 어긋나는 번역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31 14:15:31 | 관리자
개정(Revision)이라는 말의 두 가지 의미
안녕하세요?
요즘 어떤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1769년 케임브리지 표준판’ 영어 본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제조하고 이것 외에 다른 킹제임스 영어 본문은 순수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폈지만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는 자기들이 그런 판을 만든 적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알려주었습니다.
이미 수차례 말씀드린 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은 크게 옥스퍼드 대학에서 출간하는 성경에 쓰이는 본문(옥스퍼드판)이 있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출간하는 성경에 쓰이는 본문(케임브리지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둘 다 1769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만든 본문에다 그 뒤 시간이 지나면서 영어 철자법 등이 고정됨에 따라 미세한 부분들이 변한 것들을 포함하고 있고 신구약성경 전체에서 12군데 정도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칙출판사의 대니얼스를 포함한 대다수 성경 신자들이 글로 밝히고 영상으로 보여 준 대로 이 12개의 미세한 차이는 활자를 세팅할 때 생긴 식자상의 오류이지 본문에 영향을 미치는 변개 사항이 아닙니다.
영어 본문으로 무익한 논쟁을 일으키는 자들에게 직격탄을 쏘는 대니얼스
1769년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옥스퍼드든 케임브리지든 이 12개를 통일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고 그 결과 판본에 따라 이런 미세한 차이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개정(revision)과 판(edition)에 대해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1611년 5월에 처음 인쇄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독일체가 쓰였고 정서법이 지금과 달랐으며 또 500만 개의 활자를 수작업으로 심어야 했으므로 인쇄된 초판에는 여러 개의 명백한 오류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1611년판 킹제임스 영어 성경 교정 역사
어떤 사람들은 이런 오류들을 가지고 킹제임스 성경을 폄하하려 하지만 이것은 지금부터 400년 전의 인간의 기술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성경을 인쇄하기 위해 500만 개의 활자를 일일이 손으로 심는 것, 이것은 지금 하라고 해도 여전히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 발간의 가장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 이전까지 무려 1,000년 이상 중세 암흑 세상을 지배하던 천주교 소수 본문 성경이 더 이상 활개를 치지 못하도록 1611년에 다수 본문에서 나온 킹제임스 성경을 세상의 모든 교리, 신조, 신학, 복음 선포의 도구로 쓰시기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지난 400년 동안 역사에서 일어났고 킹제임스 성경은 적어도 십 억 권 이상 인쇄되어 온 세상을 덮었습니다. 이런 책은 인류 역사에서 단 한 권도 없습니다.
이것이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 출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고 인쇄상의 오류들은 당시 인간들의 기술로는 해결할 수 없는 한계였습니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자필 원고가 있었으므로 곧바로 대조작업을 통해 교정 작업이 철저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영어 철자법은 계속해서 변했습니다. 예를 들어 tread(밟다)의 과거 분사인 trodden은 처음에 troden으로 쓰이다가 후에 지금처럼 trodden으로 고정되었습니다.
약 15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1760년과 1762년에 케임브리지 출판사에서 교정판을 출간했고 1769년에는 옥스퍼드 출판사에서 교정판을 출간하였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사람들은 이렇게 교정된 성경이 출간될 때 대개는 두 가지 용어로 이것을 표현합니다.
하나는 판(edition)이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1611년에 킹제임스 성경이 처음 인쇄되었을 때 우리는 이것을 1611년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1611년에는 두 번 인쇄가 되었으므로 1611년 1판과 2판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개정(revision)이라는 말입니다. 1760년대에 가장 유명한 판은 블레이니가 옥스퍼드에서 만든 옥스퍼드판(Oxford edition)입니다. 오랜 시간 뒤에 케임브리지 출판사도 이 판을 사용하고 자기들의 미세한 교정들을 더해 출간하면서 19세기 말에는 옥스퍼드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성경이나 케임브리지에서 출간하는 성경이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일치하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769년 케임브리지 표준판’ 영어 본문의 우수성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자기들의 말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어떻게든 ‘1769년 케임브리지 표준판’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중 미국 이베이에서 올린 글과 성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1769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출간한 킹제임스 성경이 있음을 보고는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1769년판이 아닙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만든 1762년판을 1769년에 인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판은 그 판이 만들어진 해에 출간되고 그 이후에도 계속 출간될 수 있는데 영어 성경에 적혀 있는 연도는 판이 처음 출간된 연도가 아니라 그 판이 인쇄된 연도입니다.
그런데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 그리고 킹제임스 성경을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서 몇몇 사람들은 종종 1769년 판을 1769년 개정본(1769 revision)이라고 부릅니다.
옥스퍼드 사전에 가서 영어 revise를 찾아보면 는 1.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본다, 2. 다시 보다, 3. 향상이나 교정을 위해 자세히 보거나 읽는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1 intr. To look again or repeatedly at, to look back or meditate on, something. Obs.
†2.2 trans. To see or behold, to look at, again.
3. a.3.a To look or read carefully over, with a view to improving or correcting.
그러면 1769년 개정본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먼저 1611년 판과 비교해 보면 150년의 기간 동안 영어 철자가 고정되면서 철자가 바뀌었습니다.
가장 쉽게 이것을 설명하면 과거에 우리나라는 Corea로 불리다가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는 Korea로 불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자, 그러면 이것은, 첫 글자가 C에서 K로 바뀌었으니 개정된 것(revision)이 맞습니다. 그런데 두 개를 읽어 보면 동일하게 코리아로 읽히고 누구라도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1900년 초반까지는 Corea로 쓰이다가 그 이후에 Korea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쇄상에서는 분명히 개정되었으나 읽는 측면이나 내용 면에서는 전혀 개정된 것이 없습니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 등이 1769년판을 1769년 개정본이라고 부르는 것은 철자 등이 바뀌어서 인쇄된 것을 말할 뿐입니다. 그래서 철자상 변화가 있으니 개정본이리고 불러도 문제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1611년판과 1769년판의 차이입니다. 1769년판은 인쇄상으로는 분명히 변화가 되었지만 내용은 단 하나도 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캐나다의 어떤 목사가 제가 킹제임스 성경이 개정된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울분을 토하며 대노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체 그분이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아는 게 무엇일가요? 저는 적어도 35년 이상 동안 킹제임스 성경만 들고팠습니다. 객관적인 정보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위키 백과사전을 통해 거의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분이 대노를 표출한 것은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적개심과 저에 대한 적개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킹제임스 성경도 개정된 적이 있나요?”라고 물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의도를 잘 파악해서 답을 해 주어야 합니다.‘
단순히 인쇄상의 변화를 의미하는 개정이 있었는지를 묻는 것으로 판단되면 “그렇습니다.”라고 답하면 됩니다.
그런데 인쇄상의 변화가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변화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를 공격하려 하면 “개정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묻는 사람들의 의도는 킹제임스 성경도 개정되었으니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입니다.
제가 강단에 서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습니다!”라고 외칠 때는 당연히 지난 400년 동안 내용 면에서 단 하나의 변화(개정)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와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에 울분을 토하는 목사들에게 일일이 대답하는 것이 사실 불필요한 일이지만 순진한 사람들은 이런 데 빠질 수 있으므로 위에서 설명한 대로 대답해 주시면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킹제임스 성경을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우리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샬롤
패스터
2023-07-31 09:35:45 | 관리자
<12종 무료 책 배송 시작 공지>
안녕하세요?
이미 여러 차례 공지한 대로 저희 교회에서는 2023년 미디어 선교의 일환으로 원하시는 모든 분들(1차분 10,000세트)에게 무료로 12권의 책들을 보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 성경 바로 보기 448쪽
2. 천국과 지옥 바로 알기 440쪽
3. 구원의 ABC 208쪽
4. 천사들의 미스터리 184쪽
5. 성경해석법 80쪽
6. 재림과 휴거 바로 알기 100쪽
7. 복음 전도 가이드 76쪽
8. 천주교와 기독교 어떻게 다른가?
9. 오순절 은사 운동의 역사와 정체 156쪽
10. 창조와 진화 140쪽
11. 왜 안하는가? 156쪽
12. 칼빈주의 바로 알기 120쪽
이 모든 책들이 지난 2주에 걸쳐 다 제작되어 내일 교회로 들어오고 곧바로 포장되어 무료로 받기 원하는 분들에게 다음 주 초에 다 배송될 것입니다.
12만부의 책자가 내일 한 번에 들어오고 5-60% 정도가 포장되어 나가니 더운 날에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집사/지역 인도자 형제님들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번 주일에 교회에 오시면 성도님들도 1가정당 1세트씩 가져가실 수 있으니 받아서 차에 넣든지 가방 등을 가져오셔서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주변의 다른 분들에게도 이것을 전달해 드리기 원하면 그분들이 직접 링크로 들어와 주소 등을 남기라고 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치도 않는데 그냥 가져다주는 것은 낭비가 될 뿐이라 저희는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12종 무료 책 배송 안내_2023년 미디어 선교>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doctrine)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바른 교리로 바르게 믿음 생활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2023-07-28 15:36:56 | 관리자
케임브리지 출판사의 공식 답변: 표준 킹제임스의 1769년 표준 케임브리지판은 없다.
안녕하세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표준 킹제임스 번역자는 영어 성경 번역의 저본으로 ‘1769년 표준 케임브리지판’을 사용했다고 밝히고 그것만이 순수하며 한글 킹제임스나 흠정역 킹제임스 성경에 쓰인 영어 본문들은 순수하지 않다는 주장을 지난 3개월 동안 줄곧 펴 왔습니다.
집요하게 흠정역 성경을 대적하며 비방과 공격을 하므로 하는 수 없이 몇 사람이 조사를 했고 그 결과 표킹 번역자가 말하는 ‘1769년 표준 케임브리지판’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이 확인되었고 결국 표킹 번역자는 1769년 옥스퍼드판 영어 본문을 구하여 거기에다 자기가 마음대로 변경 작업을 하여 소위 ‘1769년 표준 케임브리지판’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다음과 같이 실토하였습니다.
케임브리지판은, 케임브리지는 텍스트를 잘 안 줘요. 그래 가지고 그냥 인터넷에 있는 걸 자꾸 긁어야 되는데 너무 오래 걸립니다. 삼만 천백두 구절, 삼만 번을 못하기 때문에 1769년판 텍스트는 있어요. 옥스퍼드판. 그래서 그 텍스트를 가지고 입력해서 이 케임브리지판에 맞춰서 수정할 부분을 다 수정했어요. 그런데 하나 제가 간과했던 게 어퍼스트로피 s('s)를 빼는 거였네요. 이거는 잘 찾아 주셨습니다. 3판 나올 때 빼겠습니다. 그런데 이건 오류가 아니라 원래 19세기의 문법이다. 오류가 아닙니다.
위에서 보듯이 표준역 번역자는 자기가 ‘1769년 옥스퍼드판’을 구해서 그 안의 영어 단어들을 자기 마음대로 고쳤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1769년 케임브리지판’이 아닙니다. 더욱이 케임브리지 출판사는 영어 본문을 주지 않는데 무엇을 근거로 1769년 옥스퍼드판을 고칠 수 있을까요?
한국에서 표준 1769 케임브리지 에디션(Standard 1769 Cambridge Edition) 만들기
표준 킹제임스 번역자 1769년 케임브리지판은 없다고 이실직고, 직접 들어 보세요.
그런데 그러고 나서도 반성은커녕 계속해서 표킹 번역자와 지지자들은 ‘1769년 표준 케임브리지판’이 있다고 주장하므로 몇몇 사람들이 직접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내 그런 판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에서 다음과 같이 공식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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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Cambridge 1769 Standard Bible' 또는 이러한 용어의 조합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다른 질문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케임브리지(대학 출판사)가 그 날짜에(1769년에) 텍스트에 대한 특정 편집 작업을 수행한 기록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생성된 텍스트에 대한 주요 편집 작업은 블레이니(Benjamin Blayney)가 수행했으며 Oxford University Press에서 출판했습니다. 케임브리지는 결국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이 텍스트 개정판(1769년 옥스퍼드판)을 채택했고 그 결과 두 출판사에서 사용된 텍스트는 19세기 후반에 가서는 어느 정도 일직선으로 정렬되었습니다(즉 19세기 말에는 두 출판사가 사용하는 본문이 거의 서로 일치하게 되었고 결국 그 차이는 12개 정도의 미미한 것들임).
Other questions have also been asked about a so-called ‘Cambridge 1769 Standard Bible’ – or using a combination of those terms. Again, we can be clear that there is no record of Cambridge undertaking any particular editorial work on the text at that date: The major editorial work to the text produced at that time was done by Benjamin Blayney and published by Oxford University Press. Cambridge eventually adopted this textual revision some considerable time later to the extent that the text used by both publishers were more or less aligned by the late 19th century.
Bible Department, Cambridge University Press.
Kind regards,
Shani Goldstone
Customer Service Representative
Cambridge University Press & Assessment
Shaftesbury Road, Cambridge, CB2 8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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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한 번도 문제 삼지 않던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을 가지고 - 그것도 존재하지도 않는 본문으로 - 지난 3개월 동안 성도들을 괴롭히고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를 격하시킨 표킹 번역자와 주변 지지자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28 11:30:22 | 관리자
안녕하세요?
몇 년 전에 저는 MBC의 주진우 등이 저의 영상들을 마음대로 짜깁기하여 저를 친일파로 몰아가는 것을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국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그것은 거짓이니 그 영상을 고치라고 MBC에게 이야기해도 듣지 않는 것을 보고 좌익들의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보통 ‘악마의 편집’이라고 합니다. 영상의 일부분만 자르든지 혹은 앞과 뒤를 바꾸든지 해서 마치 내가 친일파 발언을 한 것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그런데 표킹 번역자 역시 악마의 편집에 대단히 능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영어 본문으로 무익한 논쟁을 일으키는 표준킹제임스 진영에 직격탄을 쏘는 대니얼스>라는 글에서 저는 대니얼스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경우 옥스퍼드든, 케임브리지든, 퓨어 케임브리지든 어떤 영어 본문을 써도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와 정확성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영어 본문으로 무익한 논쟁을 일으키는 표준킹제임스 진영에 직격탄을 쏘는 대니얼스>
대니얼스의 영상 제목은 “나의 킹제임스 성경은 얼마나 순수합니까?"(How pure is my King James Bible?)입니다.
표킹 번역자가 악마의 편집을 해서 성도들을 속이는 대목은 9분 45초 이후에 있습니다.
9분 48초
나는 할 수 있으면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을 사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I won’t use the Pure Cambridge Edition if I can help it
표킹 번역자는 딱 이 부분을 보여 주면서 대니얼스가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그것은 나쁜 것(불완전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그분은 이 부분만 보고는 우리가 옳지 않고 표킹 번역자가 옳다고 생각하고는 블로그에 그대로 올려놓은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악마의 편집입니다.
대니얼스가 이 영상을 만든 목적은 무엇일까요?
영상 제목이 의미하듯이 대니얼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어떤 사람들은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흠정역 성경이 채택한)만이 가장 순수하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조심하세요: 우리 흠정역 진영에서 이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어떤 사람들이 미국에서 그렇게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한 번도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대니얼스의 이 말은 즉 미국이든 한국이든 킹제임스 영어 본문의 순수성을 가지고 이슈를 삼는 사람들 - 일종의 불순분자들 - 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니얼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성경 신자들이 다음과 같은 문제로 저에게 고민에 찬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킹제임스 성경은 순수한 성경인가요? 어떤 킹제임스 성경이 순수한 성경인가요?"
어떤 사람들이 그들에게 다가가서 오직 "퓨어 케임브리지 킹제임스 성경"만 순수하다고 그들에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이 나온 것입니다.
이에 대해 대니얼스는 “이 문제가 정말 심각한 문제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여러 본문들의 차이점 목록(대개 12가지)을 한 개 한 개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런 미세한 것들이 신앙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음도 알려줍니다. 대소문자 spirit 등 총 12개
The Cambridge vs. the Oxford Fallacy!(케임브리지판과 옥스퍼드판에 대한 잘못된 생각: 12개 미세 차이)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가진 킹제임스 성경은 소위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과 실제로 똑같이 훌륭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9분 45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한 개를 제외하고 모든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합니다.
So I use every King James Bible with one exception.
그 뒤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할 수 있으면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을 사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의 이름 즉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이라는 이름이 다른 킹제임스 성경들은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I won’t use the Pure Cambridge Edition if I can help it. Because by its name, it claims to be pure which implies that other King Jmaes Bibles are impure.
다시 말해 대니얼스는 판에 상관없이 킹제임스 성경의 내용에는 전혀 변화가 없는데 본문의 순수함을 자랑하려는 어떤 사람들이 ‘퓨어 케임브리지판’만 순수하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깨뜨리므로 자기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옥스퍼드든 케임브리지든 퓨어 케임브리지 등 본문에 아무 차이가 없는데 ‘퓨어’가 붙은 것을 쓰면 오해가 생길까 봐 자기는 안 쓰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대니얼스는 퓨어 케임브리지판이 잘못되어서 안 쓴다고 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다음처럼 악마의 편집을 하여 9분 48초만 보여 주면 대니얼스의 의도가 완전히 왜곡되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있으면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을 사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I won’t use the Pure Cambridge Edition if I can help it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런 의심과 질문에 대해 대니얼스는 정확하게 딱 잘라서 이렇게 말합니다.
옥스퍼드든, 케임브리지든, 퓨어 케임브리지든 결국 총 12구절에서 서로 미세하게 다른 데가 있고 나머지는 동일하다.
이것이 그가 말하고자 한 핵심입니다.
이 영상의 맨 마지막 결론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래서 다음에 누군가가 당신에게 ‘당신이 가진 것은 순수한 킹제임스 성경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이죠. 나는 킹제임스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뉴킹제임스’나 ‘킹제임스 2’, ‘킹제임스 3’, ‘현대 영어 역본’ 등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바로 이 킹제임스 성경, 이것은 영어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입니다.”
즉 이것은 어떤 킹제임스 영어 본문이든 다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옥스퍼드든, 케임브리지든, 퓨어 케임브리지든..킹제임스 성경이기만 하면 된다!
So next time somebody says to you,
“You don’t have the pure King James Bible.”
you can say, “Sure I do.”
I have the King James Bible, not the “New”, King James “II”, “III”,
“Modern English”, “Restored Name”,
Just the King James Bible,
God’s preserved words in English.
It’s the pure words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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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바이블 빌리버 사역자들은
변개된 성경과 싸웁니다.
하지만 거짓 사역자들은
교리적인 의미가 전혀 없는
판본들 사이의 차이를 들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판끼리
싸움을 붙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판은 순수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판은 진리의 표준입니다.
이것이 바이블 빌리버의 믿음입니다.
지금까지 흠정역이든 한킹이든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누구도 단 한 번도 우리가 사용한 영어 본문이 가장 순수하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어떤 판을 써도 실제로 내용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6장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2023-07-27 09:18:40 | 관리자
안녕하세요?
표준킹제임스 번역자는 1769년 표준 케임브리지판 영어 본문을 썼다고 거듭 주장합니다.
그런데 한 분이 케임브리지 대학에 문의한 결과 그러한 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장을 주었습니다.
다음 영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1. 표준 킹제임스 성경의 허구
2. 표준킹제임스는 가짜이다.
더 놀라운 것은 표킹 번역자가 족보가 없다, 실체가 없다고 비난하는 1909년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 - 흠정역 성경이 사용하는 영어 본문 -이 가장 정확하다고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 웹사이트가 증언해 줍니다.
케임브리지 대학 웹사이트 내용
흠정역 성경은 1611년에 처음 출판되었습니다. 그 문학적 탁월성은 잘 알려져 있으며 그 단어와 문구는 영어에 독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400년 동안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예식용 성경으로 선택됩니다. 예를 들어 킹 찰스의 대관식에서 사용된 킹 제임스 성경입니다.
1611년에 두 번의 인쇄가 있었는데, 둘 다 당시의 왕의 인쇄인인 로버트 바커가 수행했습니다. 첫 번째는 두 번째 인쇄에서 수정된 많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두 개의 가장 초기 버전에도 많은 변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KJV 성경은 16세기와 17세기에 편집자와 인쇄업자에 의해 일부는 우연히, 일부는 의도적으로 도입된 수백 가지의 작은 변경 사항이 있는 텍스트를 사용합니다.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 가능한 텍스트는 실제로 1611년이 아니라 1769년 개정본입니다.
1909년에 케임브리지 학자인 William Aldis Wright는 1611년에 인쇄된 두 판 사이의 변형 목록과 함께 초판의 원본을 명확하고 읽기 쉬운 형태로 표현했습니다.
Cambridge는 고전 및 이전에 절판되었던 책에 대한 디지털 재인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해당 에디션을 재발행했습니다.
The King James Version of the Bible was first published in 1611. Its literary brilliance is well known and its words and phrases have had a unique influence on the English language. Four hundred years on it is still widely used, and is the version of choice for ceremionial Bibles — for example, it is the King James Bible which will be used in King Charles' Coronation ceremony.
There were two printings in 1611, both carried out by Robert Barker, the King's Printer of the day. The first contained a number of errors which were corrected in the second printing, so even the two earliest editions contain many variations.
Most of today's KJV Bibles use a text with hundreds of small changes introduced by editors and printers in th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 - some accidentally, some intentionally. The text commonly available now is actually that of the 1769 revision, not that of 1611.
In 1909, Cambridge scholar William Aldis Wright represented the original text of the first edition in a clear and readable form, together with a list of variations between the two 1611 printings.
Cambridge has reissued that edition as part of its digital reprint programme for classic and previously out-of-print books.
두 번째 그림(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
일반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으로 알려진 성경의 승인된 버전은 1611년에 처음 출판되었습니다. 400년 동안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 성경 번역본인 1611년 성경은 영어의 고전이 되었으며, 그 원본의 수많은 어구가 표준 관용 영어로 바뀌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판본은 이후의 편집자와 인쇄인에 의해 150년 이상 도입된 철자와 구두점의 보수적인 현대화를 통합합니다.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텍스트는 1611년이 아닌 1769년 개정판입니다. 그해에 왕의 프린터인 로버트 바커가 두 번 인쇄했으며 이 두 호 사이에는 많은 변형이 있습니다. 20세기 초 케임브리지 학자 William Aldis Wright가 제작한 이 에디션은 원본 텍스트를 명확하고 읽기 쉬운 형태로 정확하고 독특하게 표현하며, 1611년의 두 인쇄본 사이의 변형 목록은 기존의 팩시밀리 에디션이 제공할 수 없는 기능입니다.
The Authorised Version of the Bible, commonly known as the King James Bible, was first published in 1611. The most widely accepted rendering of the Scriptures for four hundred years, the 1611 Bible has become a classic of the English language, and countless of its original phrases have passed into standard idiomatic English. Most present-day editions incorporate conservative modernisations of spelling and punctuation introduced over a century and a half by subsequent editors and printers: the text that is commonly available is that of the 1769 revision, not that of 1611. There were two printings undertaken by Robert Barker, the King's printer in that year, and there are many variations between these two issues. This edition, produced by the Cambridge scholar William Aldis Wright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accurately and uniquely represents the original text in a clear and readable form, together with a list of the variations between the two printings of 1611 - a feature that no conventional facsimile edition can offer.
사실 저는 이런 것을 알지도 못했고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이 가장 정확한 본문이라는 말을 듣고 조사한 뒤 2011년 400주년 기념판 때부터 본문으로 써 왔습니다. 거짓 비방을 예방하기 위해 이것이 이때에 드러나도록 예비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단 한 번도 영어 성경 본문에 대해 거론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판을 쓰든지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미국의 학자들과 성경 신자들로부터 들었고 책들을 읽어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디도서 3장 9절이 말하듯이 영어 성경 본문 족보 이야기는 무익하며 헛된 짓임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와 논쟁과 율법에 관한 다툼들은 피하라. 그것들은 무익하며 헛되니라.
표킹 환불 가능하다고 함
위 두 개의 동영상 제작자는 표킹 번역자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영어 본문으로 사기를 쳤으므로 환불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분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영문 킹제임스성경만이 유일한 하나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이에요. 누구라도 더 이상 표준킹제임스성경 윤 모씨와 글 또는 영상물로 논쟁 벌이는 건 스스로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임을 증명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1769 케임브리지 스탠다드판, 그런 것 없다는 게 분명해진 이상, 바로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검찰 거쳐 형사재판을 통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 받게 된다네요. 사기 혐의로 경찰에 신고만 할 것이 아니라, 표준킹제임스성경 샘플을 케임브리지 출판사로 보내(DHL 등을 이용함이 바람직할 듯) 적절한 조치(손해배상은 물론, 향후 킹제임스성경 번역 자체를 못하도록 함)를 취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킹제임스성경에 깊은 사랑 지니고 계시는 목사, 블로거, 유튜버 분들 중 왜 이토록 명백히 드러난 상황에서조차 상황 마무리를 위한 단순 명료한 행위, 행동, 조치를 취하지 않는지 정말 너무 답답하네요. 바라보고 있는 보통의 바이블빌리버 입장에서는요. 감히 묻고 싶어요. 하나님께서 아직도 논쟁이나 하고 있으라고 하실까요? 논쟁하실 시간과 열정으로 경찰 신고부터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보통의 대응(그다지 현명하다 할 것도 없는)일 것이라 생각해요.
케임브리지 출판사 이메일
표준 킹제임스 1769년 케임브리지 표준 판이 존재하는지, 1909년 퓨어 케임브리지판이 정말로 케임브리지 대학이 출간한 것인지 등을 직접 확인하기 원하시는 분은 다음 이메일 주소로 케임브리지 대학에 직접 이메일을 보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directcs@cambridge.org
제가 대충 다음과 같이 이메일 샘플을 만들었습니다. 이메일 뒤에 본인 이름만 넣으면 됩니다. 그리고 밑에 있는 그림(표준 킹 영어 본문 페이지)을 다운로드해서 이메일에 붙이면 더 좋습니다.
Dear Sir/Madam:
Greetings in the name of our Lord Jesus Christ!
Today, I have a few things to ask.
1. In 2023, Mr. Yoon published a Korean translation of the King James Bible. In the opening section, he specified that the English text used is "The Standard 1769 Cambridge Edition Crown Copyright".
I checked the Wikipedia and other literatures but could not find such thing as "The Standard 1769 Cambridge Edition Crown Copyright".
I only find 1760, 1762, and (1763) Cambridge editions by Francis Sawyer Parris and 1769 Oxford edition by Benjamin Blayney,
https://en.wikipedia.org/wiki/King_James_Version
Please tell me if "The Standard 1769 Cambridge Edition Crown Copyright" exists.
2. He also told in an youtube article that he got the text of the 1769 Oxford edition and modified it according to the Cambridge Standard edition by himself and claims that ‘this self made text’ is "The Standard 1769 Cambridge Edition Crown Copyright".
Please tell me if anyone can make "The Standard 1769 Cambridge Edition Crown Copyright" without knowing the changes you have made over the years.
3. He also claims “the so called pure Cambridge edition of 1909" is worse than the edition he made, "The Standard 1769 Cambridge Edition Crown Copyright".
Please tell me if Cambridge ever publish "the pure Cambridge edition of 1909".
Your web site cleary says you did and you said also this is an accurate text for the 1611 King James Bible.
https://www.cambridge.org/bibles/bible-versions/king-james-version/text-editions/authorised-version-english-bible-1611
I am looking forward to hearing from you soon.
Thanks and God bless you
Sincerely
다시는 이 땅에서 이런 악한 일이 생기지 않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24 10:58:07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