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6장 17절 "하늘" 삭제
요한계시록 16장 17절은 마지막 재앙이 쏟아지는 극적인 순간을 묘사하며, 하나님의 왕좌로부터 나오는 최종 선언—“다 이루어졌도다(It is done)”—라는 큰 음성이 들리는 장면입니다.
이 중요한 구절 중 “어디에서” 이 음성이 나는가는 문맥 이해와 신학적 해석에 있어 핵심적 위치를 차지합니다.
1. 킹제임스 성경(KJV)
Revelation 16:17(KJV):
“… and there came a great voice out of the temple of heaven, from the throne, saying, It is done.”
흠정역:
“… 큰 음성이 하늘의 성전에서 왕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다 이루어졌도다, 하더라.”
“Temple of heaven(하늘의 성전)”이라는 표현은 지상의 성전이 아닌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를 분명히 지칭합니다.
→ 이는 요한계시록 전체 문맥과 맞물려, 심판의 권위가 하나님 자신의 초월적 보좌로부터 나옴을 강조하는 결정적인 구절입니다.
현대 역본의 생략 – 개역성경, NIV 등
개역성경: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NIV:
“… a loud voice came out of the temple, from the throne…”
여기서는 “하늘의(of heaven)”라는 말이 완전히 생략되어 있습니다.
→ 그 결과, 독자 입장에서는 성전이 지상의 성전인지, 하늘의 성전인지 명확하지 않게 됩니다.
2. 문맥상 손상 요소
요한계시록 전체 흐름과의 단절
→ 계 11:19, 계 15:5–8, 계 16:1 등에서는 반복적으로 “하늘의 성전”이라는 표현이 등장함.
예:
계 11:19: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고”
계 15:5: “하늘에 있는 증언의 성전이 열리고”
→ 그런데 16:17에서 하늘의 성전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번역하면 일관성이 파괴됨.
3. 하나님의 절대 권위와 분리
→ 이 음성은 사람이나 천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 성전에 좌정하신 하나님 자신의 왕좌로부터 나오는 최종적 선언입니다.
→ “하늘의 성전”을 생략하면 그 권위의 초월성이 불분명해짐
4. 지상 성전과 혼동 위험
→ 계 11장에서는 지상 성전이 언급되며, 그와 하늘 성전은 구별되어 나옵니다.
→ “성전”이라는 말만 쓰면 지상 성전으로 오해할 수 있음
5. 사본 증거
KJV 및 다수 사본(Textus Receptus, Byzantine Majority Text)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ἐκ τοῦ ναοῦ τοῦ ἐν τῷ οὐρανῷ
→ 직역: “하늘에 있는 그 성전에서(from the temple which is in heaven)”
반면, 소수 사본(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등)에서는 “τοῦ ἐν τῷ οὐρανῷ (in heaven)” 구절이 생략되어 단순히 “ἐκ τοῦ ναοῦ (성전에서)”로 축소되어 있습니다.
→ 이로 인해 NIV, 개역성경, 천주교 성경 등은 소수 사본을 따라 “하늘의”라는 핵심 표현을 생략함으로써, 성경의 구조와 의미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6. 결론
요한계시록 16장 17절은 하나님의 마지막 재앙이 임하는 장면으로, 그 선언이 “하늘의 성전, 곧 하나님의 왕좌로부터 나온다.”라는 사실은 이 심판이 절대적이고 최종적이며, 하나님 자신의 주권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합니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 중요한 문장을 다수 사본의 원문에 따라 정확하게 보존하고 있으며, 요한계시록 전체의 구조적 일관성과 신학적 깊이를 충실하게 반영합니다.
반면,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은 소수 사본을 따라 "하늘의"라는 표현을 생략함으로써, 본문의 명확한 위치 정보와 신학적 메시지를 흐릿하게 만들고, 성도들이 오해할 여지를 남기게 했습니다.
이 구절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보존한 성경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대표적 예입니다.
그 음성은 단지 성전이 아니라 “하늘의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2025-05-24 17:58:27 | 관리자
요한계시록 6장 1절, 3절, 5절, 7절 "보라" 삭제
요한계시록 6장 1절, 3절, 5절, 7절은 어린 양께서 일곱 봉인 중 처음 네 개를 하나씩 떼실 때마다 등장하는 네 생물의 외침을 기록한 매우 상징적이고 중요한 장면입니다.
이 네 생물은 각각 한 봉인이 떼어질 때마다 천상의 음성으로 "와서 보라(Come and see)"라고 외치며, 요한으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직접 보고 기록하도록 촉구합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 말씀을 모든 구절에서 “Come and see(와서 보라)”로 번역하고 있지만,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네 번 모두 “Come(오라)”만 기록하여 “보라”라는 중요한 명령어를 모두 생략했습니다.
1. 킹제임스 성경(KJV) – 정확하게 네 번 등장
장절 / KJV 번역 및 핵심 구절
계 6:1 / "Come and see." / 와서 보고
계 6:3 / "Come and see." / 와서 보고
계 6:5 / "Come and see." / 와서 보고
계 6:7 / "Come and see." / 와서 보고
예:
“And I saw when the Lamb opened one of the seals… and I heard, as it were the noise of thunder, one of the four beasts saying, Come and see.” (계 6:1)
현대 역본(개역, NIV, ESV 등) – 네 번 모두 “보라”를 생략
장절 / 개역/NIV 번역 및 생략된 내용
계 6:1 / “오라” (Come) / “보라” 누락
계 6:3 / “오라” (Come) / “보라” 누락
계 6:5 / “오라” (Come) / “보라” 누락
계 6:7 / “오라” (Come) / “보라” 누락
이로 인해, 단순히 “오라”라고 말하는 초대만 있고, 요한이 무엇을 보고 기록하도록 명령받는 핵심 요소인 “보라”가 사라진 것입니다.
2. 의미의 손상
요한의 사도적 직무 약화
→ “와서 보라”라는 말씀은 단지 요한에게 다가오라는 말이 아니라, 하늘의 비전을 보고 계시를 기록하라는 명령입니다.
“보라”를 생략하면 요한이 무엇을 보고 기록하고 있는지 독자에게 명확하지 않게 됩니다.
3. 계시의 구조적 통일성 파괴
→ 요한계시록 1:11, 1:19 등에서 “네가 본 것들을 기록하라”라는 반복적인 명령이 주어짐.
→ 그런데 정작 “보라”가 누락되면, 계시 기록의 전체적 구조가 붕괴됨
4. 복음적 상징성 축소
→ “Come and see”는 요한복음 1:39, 1:46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남에서도 반복되는 표현으로, 주께 나아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하는 복음적 초대의 표현임.
→ 이 상징성이 사라짐으로써 본문의 신학적 깊이 약화
5. 사본 증거 분석
KJV와 다수 사본(Textus Receptus, Byzantine Majority Text)에는 네 구절 모두 헬라어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ἔρχου καὶ ἴδε – "Come and see"
(에르쿠 카이 이데 – “오라, 그리고 보라”)
그러나 소수 사본(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등)은 일부 구절 혹은 전체에서 “ἴδε(보라)”를 생략하여 “ἔρχου(오라)”만 남아 있습니다.
NIV, 개역성경, ES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은 이 소수 사본을 따른 결과로 4번 모두 “보라”를 생략하게 되었습니다.
6. 결론
요한계시록 6:1, 3, 5, 7절에서의 “와서 보라(Come and see)”는 단순한 초대 이상의 의미를 가진 천상의 명령으로, 사도 요한으로 하여금 계시의 장면을 직접 보고 증언하도록 촉구하는 말씀이며, 독자에게는 하늘의 심판과 진리를 직시하라는 복음적 명령입니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 표현을 모두 온전히 보존함으로써, 본문의 구조적 일관성, 신학적 중요성, 계시적 심각성을 충실하게 전달합니다.
반면,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은 소수 사본을 따라 4구절 모두에서 “보라”를 생략함으로써, 성경 본문의 의미와 깊이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들 또한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보존한 참된 성경임을 보여 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계시를 받는 자는 단지 오는 것이 아니라, 와서 보고 기록해야 합니다. “Come and see.”
2025-05-24 17:54:18 | 관리자
요한계시록 2장 13절 "내가 네 행위를 알며" 삭제
요한계시록 2장 13절은 예수님께서 버가모 교회에 보내신 메시지의 일부분으로, 그들의 처한 환경과 신앙을 평가하며 엄중한 칭찬과 경고를 함께 주시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의 시작 구문인 “내가 네 행위를 알며”(I know thy works)는 요한계시록 2~3장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 메시지의 공통적 서두로, 각 교회의 영적 상태에 대한 주님의 전지성(omniscience)을 나타내는 핵심 표현입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KJV)에는 이 중요한 표현 “내가 네 행위를 알며”가 포함되어 있지만,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들에서는 이 표현이 생략되어 본문의 구조와 신학적 강조가 크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1. 킹제임스 성경(KJV)
Revelation 2:13(KJV):
“I know thy works, and where thou dwellest, even where Satan’s seat is…”
흠정역:
“내가 네 행위를 알며, 네가 어디 거하는지 아노니 그곳은 사탄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이 표현은 요한계시록 2~3장에서 모든 교회 편지에서 반복됩니다:
계 2:2 (에베소): “내가 네 행위를 안다”
계 2:9 (서머나): “내가 네 행위를 안다”
계 2:13 (버가모): “내가 네 행위를 안다”
계 2:19 (두아디라): “내가 네 행위를 안다”
계 3:1, 3:8, 3:15에서도 동일 반복
→ 즉, “내가 네 행위를 안다”라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일곱 교회에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예수님의 ‘전지적 진단’이자 메시지의 패턴 구조입니다.
현대 역본의 생략 – 개역, NIV 등
개역성경: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NIV:
“I know where you live…”
이 번역에서는 “I know thy works”(내가 네 행위를 안다)라는 구절이 완전히 생략되었습니다.
→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2. 해석상 심각한 손상
요한계시록 전체 구조의 일관성 붕괴
→ 일곱 교회 메시지에서 반복되는 “내가 네 행위를 안다”라는 그리스도의 권위와 관심, 진단, 평가의 공통 출발점입니다.
→ 버가모 교회에만 이 표현이 빠지면, 본문의 구조적 통일성과 신학적 연결성이 무너집니다.
3. 예수님의 전지하심과 심판 주권의 약화
→ “네가 어디 거하는지 안다”만 남으면, 환경은 알지만 행위는 모른다는 인상을 줄 수 있음
→ 본래는 “네 행위를 알고, 네가 처한 상황도 안다”라는 두 축이 함께 있어야 주님의 전지성과 공의로운 심판이 드러남
4. 교회의 책임성과 회개 권면이 약화됨
→ “내가 네 행위를 안다”라는 말은 책임성과 경고를 포함한 무게 있는 선언인데, 이 말이 사라지면 말씀의 강도가 단순한 정보 전달 수준으로 약화
5. 사본 증거 분석
KJV 및 다수 사본(Textus Receptus, Byzantine Majority Text)에는 헬라어 원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οἶδα τὰ ἔργα σου καὶ ποῦ κατοικεῖς”
→ “I know thy works and where thou dwellest”
반면, 소수 사본(바티칸 사본, 시내 사본 등)에서는 “τὰ ἔργα σου (thy works)”가 누락된 채 단순히 “I know where you live”만 남아 있습니다.
→ 따라서 NIV, 개역성경,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은 소수 사본을 따른 결과 이 중요한 구절을 생략한 것입니다.
6. 결론
요한계시록 2장 13절은 단순한 배경 설명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버가모 교회를 향해 “네 행위를 알고 있다”는 권위 있는 평가로 시작하는 구절입니다.
이 구조는 일곱 교회 전체 메시지의 동일한 시작 방식이며, 그리스도께서 각 교회의 행위, 상태, 환경을 모두 알고 계심을 전제로 합니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다수 사본의 정확한 흐름을 따라 이 표현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으며, 본문의 일관성, 교리적 무게, 경고의 강도를 정확히 전달합니다.
반면,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은 소수 사본의 생략된 형태를 반영함으로써, 본문의 논리적 구조와 신학적 중심을 흐리고, 예수님의 전지성과 심판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이 구절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보존한 성경임을 강하게 입증하는 대표적 예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알며…"는 결코 삭제되어서는 안 될, 구조적이고 신학적인 필수 표현입니다.
2025-05-24 17:50:04 | 관리자
요한계시록 1장 20절 "네가 본" 삭제
요한계시록 1장 20절은 요한이 본 환상 중의 핵심 장면에 대한 해석이 처음으로 명확히 주어지는 구절로, 그는 금등잔대들과 별들에 대한 의미를 예수님 자신으로부터 직접 듣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킹제임스 성경(KJV)은 두 번에 걸쳐 "네가 본(that thou sawest)"이라는 표현을 삽입함으로써, 요한이 자신이 실제로 본 환상을 해석받고 있다는 문맥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이 표현 중 마지막 “네가 본”을 생략함으로써, 본문의 해석적 흐름과 독자의 이해 구조를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1. 킹제임스 성경(KJV)
Revelation 1:20(KJV):
“The mystery of the seven stars which thou sawest in my right hand, and the seven golden candlesticks.
The seven stars are the angels of the seven churches: and the seven candlesticks which thou sawest are the seven churches.”
흠정역:
“네가 본, 내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과 일곱 금등잔대의 신비에 대해 기록하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이요 네가 본 일곱 등잔대는 일곱 교회니라.”
여기서 강조할 부분은 두 가지입니다:
"The seven stars which thou sawest" – 일곱 별에 대해 본 것
"The seven candlesticks which thou sawest" – 일곱 등잔대도 본 것임을 다시 강조
즉, 요한이 본 내용(환상)의 해석이라는 사실을 두 번 반복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 전체에서 환상이나 비전의 해석이 나올 때 자주 쓰이는 구조이며, 해석과 환상 사이의 직접 연결 고리를 강조하는 기능을 합니다.
현대 역본의 생략 – 개역성경, NIV 등
개역성경: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NIV:
“…and the seven golden lampstands. The seven stars are the angels of the seven churches, and the seven lampstands are the seven churches.”
여기서 “네가 본 which thou sawest”라는 표현은 두 번째 항목(등잔대) 앞에서 생략되어 있습니다.
→ 결과적으로 등잔대에 대한 해석이 환상에서 본 것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형태가 되어, 해석의 강도가 약화되고 문맥의 일관성이 흔들립니다.
2. 문맥적 흐름과 구조
요한계시록 1장 전체는 다음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요한이 본 환상:
→ 일곱 등잔대(1:12)
→ 일곱 별을 들고 계신 예수님(1:16, 1:20)
예수님의 해석 제공:
→ “네가 본 일곱 별… 네가 본 일곱 등잔대” (1:20, KJV)
즉, 본문에서 “네가 본”이라는 반복은 요한의 환상(1:12~16)과 그에 대한 해석(1:20) 사이의 직결된 연결 고리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현대 역본은 등잔대에 대해 “네가 본”이라는 말을 생략함으로써, 그 연결성을 모호하게 만들고, 요한의 본 것에 대한 해석이라는 문맥을 흐리고 있습니다.
3. 사본 증거
KJV 및 다수 사본(Textus Receptus, Byzantine Majority Text)은 헬라어 원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καὶ αἱ λυχνίαι αἱ ἑπτὰ ἃς εἶδες – “일곱 등잔대는 네가 본 것들”
그러나 소수 사본(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등 알렉산드리아계)에서는 “ἃς εἶδες(네가 본)”이라는 표현이 등잔대 항목에서 누락되어 있습니다.
→ 따라서 NIV, 개역성경, 천주교 성경 등은 이 소수 사본을 따라 두 번째 "네가 본"을 생략한 번역을 채택하게 된 것입니다.
4. 결론
요한계시록 1:20은 요한이 본 환상의 해석을 제공하는 구조에서, “네가 본”이라는 표현이 일곱 별과 일곱 등잔대 모두에 명확히 반복되어야 본문의 논리적 구조와 계시의 신빙성이 유지됩니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다수 사본의 일관된 흐름을 따라 두 번 모두 "which thou sawest(네가 본)"이라는 표현을 포함시켜, 요한이 본 환상의 해석임을 강조하며 문맥적 연결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로써 성경의 영감된 구조가 온전히 보존됩니다.
반면,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소수 사본을 따라 두 번째 “네가 본”을 생략함으로써, 문맥의 흐름과 계시 구조의 명확성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 또한 킹제임스 성경이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예입니다.
"네가 본 일곱 등잔대는 일곱 교회니라." — 반드시 있어야 할 문장입니다.
2025-05-24 17:46:28 | 관리자
요한일서 4장 19절 사랑의 대상 삭제
요한일서 4장 19절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사랑의 관계를 밝히는 매우 핵심적인 구절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진리를 전합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 사랑의 대상이 명확하게 "그분"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반면,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그분"이라는 사랑의 대상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본문의 의미가 모호해지고 문맥이 불완전하게 되어, 성도들이 무엇을, 누구를 사랑하는지 명확하지 않게 만들어 버립니다.
1. 킹제임스 성경(KJV)
1 John 4:19(KJV):
“We love him, because he first loved us.”
흠정역:
“우리가 그분을 사랑함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
여기서 "We love him" — “우리가 그분을 사랑한다”라는 말은 그리스도인 사랑의 대상이 분명히 “하나님”임을 강조합니다.
→ 사랑의 대상이 명확히 주어짐으로써, 하나님의 선행적인 사랑이 우리 안에서 반응을 일으켰다는 관계의 순서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현대 역본의 생략 – 개역, NIV 등
개역성경: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NIV:
“We love because he first loved us.”
이 번역들에서는 "him(그분을)"이라는 사랑의 대상이 완전히 생략되어 있습니다.
→ 이로 인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2. 해석상 손상되는 부분
사랑의 대상이 불분명해짐
→ "우리가 사랑한다"라는 말만 있고 누구를 사랑하는지 불명확합니다.
독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건가?”, “이웃을 사랑하는 건가?”, “그냥 일반적인 사랑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3. 본문의 논리 흐름 왜곡
→ 원래 구조: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사랑한다”
→ 생략된 구조: “그가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한다”
→ 상호성, 방향성, 반응성 모두 모호해져서 복음적 진리를 흐림
4. 요한일서 전체 문맥과 단절
→ 요한일서 4장은 전체적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대상을 생략하면 이 문맥과 단절이 생깁니다.
5. 사본 증거 분석
KJV 및 다수 사본(Textus Receptus, Byzantine Majority Text)은 헬라어 본문에 “ἀγαπῶμεν αὐτόν” (agapōmen auton) – “우리가 그분을 사랑한다"라는 표현을 명확히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수 사본(바티칸 사본, 시내 사본 등 알렉산드리아 계열)은 “αὐτόν(그분)”을 생략하고 단지 “ἀγαπῶμεν(사랑한다)”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NIV, 개역성경, NRS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이 소수 사본을 반영하면서 ‘그분’이라는 사랑의 대상을 생략한 것입니다.
6. 문맥적 근거
요한일서 전체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명령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요일 4:10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요일 4:20 – “어떤 사람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 이 흐름 속에서 요일 4:19에도 “그분을 사랑함”이라는 표현이 반드시 있어야 자연스러운 구조입니다.
7. 결론
요한일서 4장 19절은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의 관계, 방향성, 반응성을 드러내는 복음의 핵심 구절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함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선행적 은혜와 그에 대한 성도의 응답을 잘 보여 주는 신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진리입니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 중요한 구조를 다수 사본의 증거에 따라 정확하게 보존하고 있으며, 본문의 논리, 문맥, 신학적 일관성을 완벽히 유지합니다.
반면,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소수 사본을 따라 ‘그분’이라는 사랑의 대상을 생략함으로써, 본문의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고 복음 진리의 핵심을 희미하게 합니다.
이 구절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보존한 성경인지를 보여 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2025-05-24 17:42:38 | 관리자
베드로후서 2장 17절 "영원토록" 삭제
베드로후서 2장 17절은 거짓 교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매우 강력한 언어로 묘사하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에서 킹제임스 성경(KJV)은 "영원토록(for ever)”이라는 표현을 포함시켜, 그들에게 임할 형벌의 지속성—곧 영원한 멸망이라는 성경적 진리를 분명히 선포합니다.
그러나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이 “영원토록”이라는 핵심 구절을 생략하거나, 그 심판의 강도를 흐리는 식으로 축소 번역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대한 경고가 약화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1. 킹제임스 성경(KJV)
2 Peter 2:17(KJV):
“These are wells without water, clouds that are carried with a tempest; to whom the mist of darkness is reserved for ever.”
흠정역:
“이들은 물 없는 샘이요 폭풍에 밀려다니는 구름이라. 그들을 위해 어둠의 안개가 영원토록 예비되어 있나니.”
이 구절은 거짓 교사들을 “물 없는 샘”과 “폭풍에 휩쓸리는 구름”에 비유하며, 그 결과로 “영원한 어둠의 안개”—즉 지옥 형벌이 “그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라고 말합니다.
“영원토록(for ever)”이라는 표현은 여기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구절의 핵심입니다.
→ 이 말은 그들의 심판이 일시적이거나 정화적인 것이 아니라, 완전하고 끝없는 형벌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현대 역본의 생략 – 개역, NIV 등
개역성경: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나니”
NIV:
“These people are springs without water and mists driven by a storm. Blackest darkness is reserved for them.”
여기서는 “for ever(영원토록)”이라는 말이 완전히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로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2. 해석상 손상되는 요소
심판의 지속성 삭제
→ “영원토록”이라는 표현이 없다면, 이 “어둠”이 일시적 형벌인지, 종말적 멸망인지 불명확해집니다.
→ 특히 지옥(불호수)의 영원한 형벌이라는 성경 전체의 교리에서 이 표현은 핵심적인 언어입니다(마 25:41, 계 14:11, 계 20:10).
3. 경고의 강도 약화
→ “영원토록”이라는 표현은 독자에게 도망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를 경고합니다.
→ 이 표현이 사라지면, 본문의 무게와 두려움의 감각이 약해지고, 거짓 교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도덕적 경계 수준으로 축소할 수 있습니다.
4. 사본 증거
KJV 및 다수 사본(Textus Receptus, Byzantine Majority Text)에는 헬라어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eis ton aiōna) —“영원토록” (for ever)이라는 표현이 명확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면, 소수 사본(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등)에서는 이 구절이 “τοῦ σκότους”만 남아 있고, “εἰς τὸν αἰῶνα”는 누락되어 있습니다.
→ 이로 인해 NIV, 개역성경, 천주교 성경 등은 이 표현을 번역하지 않음으로써 본문의 형벌의 영원성이라는 교리적 무게를 의도적으로 제거하거나 무시하게 된 것입니다.
5. 성경적 일관성
이 구절은 유다서 13절과 평행 구조를 가집니다:
유다서 13절 (KJV):
“…to whom is reserved the blackness of darkness for ever.”
→ 여기서도 “for ever”는 지옥 형벌의 지속성을 명확히 밝히는 표현입니다.
→ 베드로후서 2:17과 유다서 13절은 거짓 교사들에 대한 동일한 심판을 선포하고 있으며, 이 “영원토록”이라는 표현이 삭제되면 두 본문 간의 연결성도 무너집니다.
6. 결론
베드로후서 2장 17절은 거짓 교사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무게와 지속성을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영원토록(for ever)”은 이들이 받을 형벌이 끝이 없는 심판, 즉 지옥 형벌임을 증언하는 핵심 단어입니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 중대한 단어를 다수 사본의 증거에 따라 정확히 보존하고 있으며, 본문의 교리적 무게와 경고의 강도를 온전히 유지합니다.
반면,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소수 사본을 따른 결과 이 표현을 삭제하여, 거짓 교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이라는 성경의 핵심 교리를 흐리고 있습니다.
이 구절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왜 가장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한 성경인지를 보여 주는 또 하나의 명백한 증거입니다.
거짓을 가르치는 자들에게는 “어둠의 안개가 영원토록 예비되어 있나니”
2025-05-24 17:39:37 | 관리자
베드로전서 4장 1절 "우리를 위해" 삭제
베드로전서 4장 1절은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하신 목적을 제시하면서, 성도들 역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고난에 참여해야 한다는 실천적 권면을 전하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에서 킹제임스 성경(KJV)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for us)” 당하신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며, 복음의 핵심인 대속적 고난의 교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이 중요한 표현 “for us(우리를 위해)”를 의도적으로 생략하거나 약화시킴으로써 본문의 복음적 중심 의미를 흐리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일반적 혹은 모범적 고난으로만 축소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1. 킹제임스 성경(KJV)
1 Peter 4:1(KJV):
“Forasmuch then as Christ hath suffered for us in the flesh, arm yourselves likewise with the same mind: for he that hath suffered in the flesh hath ceased from sin;”
흠정역:
“그런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하셨으니 그와 같이 너희도 같은 생각으로 무장하라. 이는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한 자가 이미 죄를 그쳤기 때문이니”
여기서 “for us(우리를 위해)”는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이 대속적이며 대표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복음 교리의 핵심입니다.
→ 즉, 그분의 고난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속을 위한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현대 역본의 생략 – 개역성경, NIV 등
개역성경: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에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NIV:
“Therefore, since Christ suffered in his body, arm yourselves also with the same attitude…”
여기서는 “for us(우리를 위해)”라는 구절이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 결과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2. 해석상 심각한 손상
복음의 핵심인 ‘대속 교리’가 생략됨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다.”라는 표현은 복음 전체의 중심 메시지입니다(롬 5:8, 고후 5:21, 벧전 3:18 참조).
→ 이 부분이 생략되면,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이 죄를 위한 대속적 고난이 아니라 일반적인 고난으로 오해될 가능성이 생깁니다.
3. 신자들에게 주는 권면의 논리 구조가 약화됨
→ “그분이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셨으니, 너희도 그분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라는 논리적 연결 고리가 사라집니다.
→ 바울 서신과 동일하게, 베드로도 고난의 의미를 복음적, 구속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행동을 유도하는데, 현대 역본은 그 논리를 모범론적 윤리 수준으로 축소시킵니다.
4. 문맥상 강조점 왜곡
→ 베드로전서 전체는 고난받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위로와 권면이 핵심입니다.
→ 그 위로는 단순한 정신론이 아니라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모범과 대표성에 근거합니다.
→ “for us”가 생략되면, 위로의 뿌리 자체가 사라지게 됩니다.
5. 사본 증거 분석
KJV 및 다수 사본(Textus Receptus, Byzantine Majority Text)에는 헬라어 “ὑπὲρ ἡμῶν” (hyper hēmōn) – ‘우리를 위하여’가 명확히 본문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면, 소수 사본(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등)에서는 이 “ὑπὲρ ἡμῶν” 표현이 생략되거나 의도적으로 누락되어 있으며, NIV, 개역성경,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은 이 소수 사본을 반영하여 “우리를 위해”라는 핵심 복음 표현을 생략했습니다.
6. 결론
베드로전서 4장 1절은 단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이 바로 “우리를 위한 대속적 고난”임을 전제로 성도들에게 권면을 주는 구절입니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우리를 위해(for us)”라는 복음의 핵심 교리를 정확히 보존하고 있으며, 본문의 논리 구조, 신학적 진술, 실천적 적용을 완전하게 연결해 줍니다.
그러나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소수 사본을 따라 이 표현을 삭제함으로써, 복음의 본질인 대속 교리를 흐리고, 신자들이 고난을 이기는 논리적 근거를 단순한 모범론 수준으로 격하시켰습니다.
이 구절 또한 킹제임스 성경이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입증하는 사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2025-05-24 17:36:15 | 관리자
히브리서 11장 37절 "시험받음" 삭제
히브리서 11장 37절은 소위 “믿음의 영웅들”이 당한 고난의 목록을 나열하면서, 믿음으로 살았던 자들이 세상에서 어떤 처참한 시련과 고통을 감내했는지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그중 킹제임스 성경(KJV)은 “시험을 받기도 하고”라는 표현을 다른 고난들과 동등한 무게로 포함시키고 있으며, 이것은 신약 교회 시대의 성도들에게도 믿음의 시험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허락되는 중대한 신앙의 과정임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이 중요한 표현을 문법적 구조 속에서 흐리거나 사실상 생략하고 있어, 본문의 메시지와 경고가 약화되고 있습니다.
1. 킹제임스 성경(KJV)
Hebrews 11:37 (KJV):
“They were stoned, they were sawn asunder, were tempted, were slain with the sword…”
흠정역: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며 시험을 받기도 하고 칼로 죽임을 당하기도 하며 양가죽과 염소 가죽을 입은 채 떠돌아다니고 궁핍과 고난과 고통을 당하였으니”
여기서 “were tempted”(시험을 받았다)라는 표현은 고난이 단지 육체적 핍박에 국한되지 않고, 정신적·영적 시련도 포함됨을 명확히 보여 줍니다.
→ 이는 신자들이 믿음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외부적 핍박뿐 아니라 내적 시험도 겪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요소입니다.
현대 역본의 생략 혹은 축소 – 개역, NIV 등
개역성경: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여기서 “시험”이라는 단어는 포함되어 있는 듯 보이나, 원문상에서 분리된 고난 목록 중 하나로서의 “시험받음(tempted)”이 아니라, 단지 단어 나열 중에 포함된 듯한 표현으로, KJV에서와 같은 동등한 사건의 무게를 갖지 못하는 구조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NIV:
“They were put to death by stoning; they were sawed in two; they were killed by the sword…”
→ “tempted”(시험을 받았다)라는 구절이 아예 생략되어 있습니다.
2. 사본 증거 분석
킹제임스 성경(KJV)은 다수 사본 계열(Textus Receptus, Majority Text)을 따른 것으로, 이 본문에는 헬라어 “ἐπειράσθησαν” – “they were tempted”(그들은 시험을 받았다)가 명확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면, 소수 사본(바티칸 사본, 시내 사본 등 알렉산드리아계)에서는 이 구절이 생략되거나 모호한 구문 안에 병합되어 나타나며, 현대 역본들은 이 소수 사본을 따라 해당 표현을 누락하거나 축소 번역했습니다.
3. 신학적 중요성
시험은 신앙의 중요한 요소
→ 성경 전체에서 시험은 믿음의 정련 과정으로 반복해서 강조됩니다(약 1:2–3, 벧전 1:7).
따라서 믿음의 사람들이 육체적 고난뿐 아니라 정신적·영적 시험도 겪었다는 진술은 매우 중요합니다.
4. 본문 구조의 완전성 유지
→ “돌로 맞음, 톱으로 잘림, 시험받음, 칼로 죽임”은 모두 대등한 사건 목록으로, "시험받음"을 제거하면 구문 구조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축소되고,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력이 약화됩니다.
5. 교리적 정당성과 균형
→ 믿음의 사람들은 칼과 불 앞에서 죽기도 했지만, 의심과 유혹과 배교의 시험 앞에서도 싸워야 했습니다.
이 부분이 사라지면, 믿음의 본질이 오로지 박해에 대한 물리적 저항처럼 오해될 위험이 있습니다.
6. 결론
히브리서 11장 37절은 믿음의 사람들에 대한 고난 목록에서 시험(temptation)을 분명히 포함시키며, 신앙은 단지 육체적 핍박뿐 아니라 내면의 싸움과 유혹에도 직면한다는 깊은 진리를 전달합니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다수 사본을 바탕으로 이 구절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으며, 믿음의 여정에 있어 내적 시련과 외적 박해가 함께 존재함을 보여 주는 신학적으로 완전한 구조를 제공합니다.
반면,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은 소수 사본을 따르며 ‘시험’이라는 중대한 요소를 생략하거나 약화시켜, 본문의 교훈력과 적용의 깊이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 또한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고 충실히 보존한 성경임을 입증하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2025-05-24 17:32:52 | 관리자
빌레몬서 12절 “그를 받아들이라" 삭제
빌레몬서 11–12절은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를 직접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는 장면으로, 이 편지 전체의 정서적 절정이자 핵심적 요청이 담겨 있는 구절입니다.
그중 12절에서 킹제임스 성경(KJV)은 바울이 단순히 오네시모를 돌려보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러므로 너는 그를 받아들이라(receive him)”라는 명확한 명령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이 “받아들이라”라는 직접적 표현을 생략하고 있어, 본문의 핵심 요청이 흐려지며, 바울의 사도적 권고가 약화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1. 킹제임스 성경(KJV)
빌레몬서 12절(KJV):
“Whom I have sent again: thou therefore receive him, that is, mine own bowels.”
흠정역:
“내가 그를 다시 보내었노니 그러므로 너는 그를 받아들이라. 그는 곧 내 속 중심이니라.”
여기서 receive him – 그를 받아들이라는 말은 바울이 빌레몬에게 명확한 실천 행동을 요청하는 본문의 중심 메시지입니다.
→ 단순한 서신 전달이 아니라, 관계 회복, 용서, 받아들임을 요구하는 복음의 적용입니다.
현대 역본의 생략 – 개역성경, NIV 등
개역성경:
“네게 저를 돌려 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
NIV:
“I am sending him—who is my very heart—back to you.”
여기서는 “그를 받아들이라(receive him)”라는 핵심 문장이 완전히 누락되어 있습니다.
→ 그 결과, 바울의 사도적 명령이 흐려지고, 본문의 핵심 적용인 용서와 환대의 요청이 사라지는 구조가 됩니다.
2. 사본 증거
KJV와 다수 사본(Textus Receptus 및 비잔틴 사본)에는 헬라어 “σὺ δὲ αὐτὸν προσλαβοῦ” – “그러므로 너는 그를 받아들이라(you therefore receive him)”가 명확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면, 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등 일부 소수 사본들은 이 표현을 생략하거나 축약하였고, NIV, ESV, 개역성경 등 현대 역본은 이 생략된 형태를 반영하여 번역했습니다.
3. 신학적, 해석적 손상
사도 바울의 권면이 명령에서 진술로 약화됨
→ KJV: “그러므로 너는 그를 받아들이라.” – 행동을 촉구하는 강한 권면
→ 현대 역본: “그를 돌려보낸다” – 단순 진술로 전환
4. 용서와 환대라는 복음의 적용이 흐려짐
→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 받아들이라는 복음의 핵심 원리를 실천적으로 전달하고 있는데, 현대 역본은 이 실천적 적용을 생략함으로써 복음의 요구를 약화시킴.
5. 본문의 감정적 호소력이 줄어듬
→ “그는 곧 내 속 중심이니라”라는 표현은 남았지만, 그를 받아들이라는 행동 지시가 없으므로 정서적 호소의 방향과 목적이 불명확해짐.
6. 결론
빌레몬서 12절은 단순한 회신 문장이 아니라, 오네시모를 복음의 관계 안에서 형제로 받아들이라는 실천적 명령이 담긴 핵심 구절입니다.
“그를 받아들이라(receive him)”라는 말은, 용서, 환대, 복음의 적용, 실천적 신앙을 보여 주는 결정적인 표현입니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다수 사본의 정확한 흐름에 따라 이 명령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으며, 사도 바울의 의도, 복음의 요청, 관계 회복의 핵심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반면,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소수 사본의 생략을 따름으로써, 본문의 신학적 핵심과 실천적 요청을 약화시켰습니다.
이 구절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증거입니다.
2025-05-24 17:28:44 | 관리자
디모데후서 1장 11절 "이방인들의" 삭제
디모데후서 1장 11절은 사도 바울의 사역 정체성과 소명을 요약적으로 보여 주는 핵심 구절입니다.
그는 단순히 복음을 전파하는 선포자(preacher)나 사도(apostle)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특별히 이방인들(gentiles)을 위한 교사(teacher of the Gentiles)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사도행전과 서신서 전체를 통해 나타나는 바울의 독특한 사역 영역, 즉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가르치는 사역자라는 점을 명백히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1. 킹제임스 성경(KJV)
2 Timothy 1:11(KJV):
“Whereunto I am appointed a preacher, and an apostle, and a teacher of the Gentiles.”
디모데후서 1:11(흠정역):
“이 복음을 위해 내가 선포자와 사도와 이방인들의 교사로 정하여졌느니라.”
여기서 “of the Gentiles(이방인들의)”라는 표현은 단순히 교사라는 직무에 더해 그 사역의 수신 대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이는 바울이 사도행전 9:15에서 주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받은 사명과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는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내 이름을 전하기 위해 내가 택한 그릇이니라.” (행 9:15, KJV)
현대 역본의 생략 – 개역성경, NIV 등
개역성경: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NIV:
“And of this gospel I was appointed a herald and an apostle and a teacher.”
여기서는 “of the Gentiles(이방인들의)”라는 표현이 완전히 생략되어 있습니다.
→ 단순히 교사로 불렸다는 진술만 남고, 그 교사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불명확해집니다.
이로 인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2. 해석상 손상되는 점
바울 사역의 대상이 흐려짐
→ 신약 성경 전체에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을 위한 사도인 베드로와 달리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구별됩니다(갈 2:7–8 참조).
→ “이방인들의 교사”라는 표현이 삭제되면, 이 결정적인 사역의 정체성이 가려집니다.
3. 사역의 독특성과 사명 의식 약화
→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을 위한 교사로서의 사명을 매우 강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방인들의 사도인 만큼 내 직무를 존귀하게 여기나니” (롬 11:13, KJV)
→ 그런데 이 정체성을 생략하면, 바울 사역의 초점이 흐려지고 사도 바울이 어떤 일을 감당했는지 독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습니다.
4. 복음 확장의 방향성과 구속사 흐름 왜곡
→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까지 확장되는 구속사의 전환점이 바울 사역에서 핵심인데, “이방인들의 교사” 표현이 빠지면 그 역사적, 신학적 전개가 흐려집니다.
5. 사본 증거
KJV는 다수 사본(Textus Receptus 및 비잔틴 다수 본문)을 기반으로 하며, 헬라어 원문 “διδάσκαλος ἐθνῶν”(didaskalos ethnōn) – 이방인들의 교사를 정확히 반영합니다.
그러나 NIV, ESV, 개역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소수 사본(시내사본, 바티칸사본 등)에 따라 “ἐθνῶν”(of the Gentiles)를 생략하거나 축소한 본문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 사도 바울의 이방인 사도직을 흐리게 하는 방향으로 편집된 것입니다.
6. 결론
디모데후서 1장 11절은 사도 바울의 사역 정체성과 소명을 분명히 드러내는 구절로, 그는 단순한 교사나 사도가 아니라, 이방인들을 위한 교사로 특별히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 중요한 표현인 “이방인들의 교사”를 정확히 보존하여 복음의 세계 확장, 바울 사역의 독특성, 구속사의 흐름을 충실히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은 소수 사본을 따라 ‘이방인들의’라는 핵심 표현을 생략함으로써, 본문의 신학적 명확성, 역사적 중요성, 사역적 특수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 또한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보존한 성경임을 강하게 입증하는 예입니다.
복음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입니다(롬 1:16).
2025-05-24 17:25:22 | 관리자
디모데전서 4장 12절 "영" 삭제
디모데전서 4장 12절은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주어진 목회적 권면으로,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어야 할 여섯 가지 영역을 열거합니다.
이 구절에서 킹제임스 성경(KJV)은 여섯 항목 중 다섯 번째 항목으로 “영(Spirit)”을 포함하고 있는데,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이 “영”(Spirit)을 삭제하고 있습니다.
이 삭제는 단순한 단어의 누락이 아니라, 신자 삶의 중심인 ‘성령의 역사와 태도’라는 중요한 요소를 제거하는 심각한 변개이며, 사본적, 신학적 관점에서 중대한 왜곡입니다.
1. 킹제임스 성경(KJV)
1 Timothy 4:12(KJV):
“Let no man despise thy youth; but be thou an example of the believers, in word, in conversation, in charity, IN SPIRIT, in faith, in purity.”
“아무도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도리어 너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영과 믿음과 순결 면에서 믿는 자들의 본이 되라.”
여기서 "영(spirit)"은 단순한 태도 이상의 의미로, 성령 충만한 마음가짐과 내적 영적 태도를 의미합니다.
→ 이 항목은 신자의 외적 행위뿐 아니라 내면의 성령 중심적 상태까지도 신앙의 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현대 역본들의 삭제 – 개역, NIV 등
개역성경: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NIV:
“...in speech, in conduct, in love, in faith and in purity.”
이들 번역에서는 모두 "in spirit(영)”이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 그 결과, 디모데가 보여야 할 본의 기준이 외적 영역에 국한되고, 신자의 중심 상태, 즉 영적 태도에 대한 언급이 사라집니다.
2. 사본 증거 분석
킹제임스 성경(KJV)은 다수 사본 계열(Textus Receptus, Byzantine Majority Text)에 따라 헬라어 본문 “ἐν πνεύματι” (en pneumati) – ‘영 안에서’라는 표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수 사본 계열(알렉산드리아계, 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등)에서는 “ἐν πνεύματι”(영 안에서)가 누락되어 있습니다.
현대 역본(NIV, ESV, 개역성경 등)은 이 소수 사본을 따르면서 해당 표현을 생략하였고, 이로 인해 본문의 영적 강조점이 약화되었습니다.
3. 신학적 의미
‘영(spirit)’은 성도의 영적 태도와 내면을 의미
→ 단순히 ‘믿음’이나 ‘말’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영의 상태, 성령 안에서의 동기와 자세를 말합니다.
→ 이는 목회자나 성도가 외면뿐 아니라 내면까지 본이 되어야 함을 보여 줍니다.
육적인 행위 중심에서 영적인 상태 중심으로 확장
→ ‘말, 행실, 사랑’은 외면적이고, ‘영, 믿음, 순결’은 내면적인 요소들입니다.
→ 이 둘이 함께 있어야 균형 있는 신앙생활과 본이 되는 삶이 가능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의 생략은 교리적 손실
→ ‘영’이 빠지면, 성령의 열매를 맺는 내적 상태의 본이 결여됩니다.
이는 목회자나 교회의 리더가 보여야 할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4. 결론
디모데전서 4장 12절은 신자가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어야 할 여섯 가지 영역을 열거하며, 그 중 다섯 번째 항목 “in spirit – 영 안에서”는 신자의 내면과 성령 충만한 삶을 대표하는 핵심 개념입니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다수 사본을 충실히 반영하여 이 단어를 정확히 보존하고 있으며, 내면의 영적 태도까지 포함하는 균형 있는 성경 해석과 삶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반면,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소수 사본을 따라 ‘영(spirit)’을 생략함으로써, 본문의 내면적, 성령 중심적 본이 되는 삶의 기준을 약화시켰습니다.
이 구절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분명한 사례입니다.
신앙은 외적인 것뿐 아니라,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내면의 태도까지도 본이 되어야 합니다.
2025-05-24 17:09:51 | 관리자
골로새서 2장 18절 "보지 아니한" 삭제
골로새서 2장 18절은 거짓 종교적 체험과 외형적 경건을 앞세우며 성도들을 미혹하려는 자들을 경고하는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이 구절에서 사도 바울은 거짓 겸손(humility)과 천사 숭배(worshipping of angels)를 말하는 자들이 실제로는 자기가 보지도 않은 것들을 근거로 삼아 헛되이 우쭐대는 자들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이 핵심 문장에서 킹제임스 성경(KJV)은 다음과 같이 명확히 말합니다:
골로새서 2:18 (KJV)
“Let no man beguile you of your reward in a voluntary humility and worshipping of angels, intruding into those things which he hath not seen, vainly puffed up by his fleshly mind,”
1. 한글 킹제임스 흠정역
“아무도 꾸며 낸 겸손과 천사 숭배로 너희를 속여 너희 보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그런 일을 하는 자는 자기가 보지 아니한 그것들 속으로 들어가 자기의 육신적 생각으로 말미암아 헛되이 우쭐대며”
여기서 핵심은 “he hath not seen” – ‘자기가 보지 아니한 것들’이라는 문구입니다.
이 문장은 그 거짓된 체험과 종교적 주장들이 실제 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폭로하며, 이단적 체험주의, 신비주의, 천사 숭배의 허구성을 명확히 드러냅니다.
2. 현대 역본(NIV, 개역, 천주교 사본)의 왜곡
개역성경: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NIV:
“…such a person also goes into great detail about what they have seen…”
이 번역들은 ‘보지 아니한 것들’이라는 본래 의미와 정반대로, ‘자기가 본 것’을 주장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자기가 실제로 본 것”에 근거해서 우쭐댄다는 뜻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 그 결과, 거짓 체험이 아니라 실제 체험에 근거한 교만으로 의미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3. 사본 증거
KJV 및 다수 사본(Textus Receptus, Byzantine Majority Text):
헬라어 “ἃ μὴ ἑόρακεν” → “그가 보지 아니한 것들”
소수 사본(알렉산드리아계열: 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등):
“ἃ ἑόρακεν” → “그가 본 것들”
이처럼 단어 하나, “μὴ(부정어 not)”의 유무가 본문의 의미를 180도 바꾸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4. 신학적 문제점
이단적 체험주의에 대한 경고가 사라진다
→ 바울은 자기가 보지도 않은 것들을 근거로 종교적 권위를 주장하는 자들을 경고했으나, 현대 역본은 이들을 자신의 체험을 자랑하는 자로 묘사하며
오히려 그 체험의 정당성을 암시하게 됩니다.
5. 성경의 교리적 일관성 훼손
→ 성경은 신비주의적 체험이나 개인적 환상에 기초한 신앙을 배격합니다(신 13:1–3, 골 2:8).
→ 그런데 “그가 본 것에 의지한다.”라는 번역은, 그 체험이 사실임을 전제로 하여 교만만 문제 삼는 구조로 바뀝니다.
6. 문맥의 흐름이 왜곡됨
→ 앞 구절(골 2:16~17)에서는 율법주의와 형식적 절기 관찰을 경고하고, 이어서 거짓 겸손과 천사 숭배로 넘어가는데, 여기서 “보지 못한 것들을 근거로 우쭐대는 자”라는 맥락이 명확해야 거짓 체험과 허위 종교의 본질을 폭로하는 구조가 완성됩니다.
7. 결론
골로새서 2:18은 신비주의, 체험주의, 천사 숭배 등 거짓 영적 주장에 대한 직접적인 경고 구절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본 것도 아닌 것들에 대해 말하면서 헛되이 교만하게 구는 자들이라고 선언합니다.
킹제임스 성경(KJV)과 다수 사본은 이 진리를 “he hath not seen(보지 아니한 것들)”이라는 결정적 문구로 정확히 보존하고 있으며, 이단과 체험주의의 허구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역성경, NIV, 천주교 라틴 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소수 부패 사본을 따라 ‘보지 않은 것들’을 ‘본 것들’로 정반대의 의미로 번역함으로써, 이 경고의 본래 의도를 완전히 왜곡해 버렸습니다.
이 구절 또한 킹제임스 성경이 왜 가장 신실하게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인지 확실히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2025-05-24 17:06:42 | 관리자
에베소서 5장 9절 "성령" 오역
에베소서 5장 9절은 성도들이 어둠이 아닌 빛의 자녀로 살아가야 하는 삶의 증거를 말하면서, 무엇이 그 증거인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구절이다.
이 말씀에서 킹제임스 성경(KJV)은 “성령의 열매(the fruit of the Spirit)”라고 기록하며, 성령께서 성도 안에서 맺으시는 선함, 의, 진리를 열거한다.
이는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도 연결되는 성경 전체의 일관된 흐름이다.
그런데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이 구절을 “빛의 열매(the fruit of the light)”라고 바꾸어 번역하며, 본문의 핵심 영적 주체인 성령(Spirit)을 제거하고, 대신 빛(light)이라는 비인격적 개념을 넣는다.
이는 단순한 단어 선택의 차이가 아니라, 의도적 사본 변개로 인해 본문의 교리적 중심을 흐리게 하는 중대한 문제다.
킹제임스 성경(KJV)
Ephesians 5:9(KJV):
“(For the fruit of the Spirit is in all goodness and righteousness and truth;)”
1. 흠정역
“(성령의 열매는 모든 선함과 의와 진리 안에 있느니라.)”
여기서 강조점은 분명히 “성령”이다.
→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성도 안에 맺히는 도덕적 결과들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 이는 갈라디아서 5:22의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라는 구절과도 직접 연결되며, 성령 중심의 성화 교리를 지지하는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2. 현대 역본의 왜곡 – 개역성경, NIV 등
개역성경: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NIV:
“(for the fruit of the light consists in all goodness, righteousness and truth)”
3. 사본 증거
킹제임스 성경(KJV)은 다수 사본 계열(Textus Receptus 및 다수 비잔틴 사본)에 근거하여 헬라어 “τοῦ πνεύματος” (of the Spirit) — 즉 성령의 열매라는 표현을 확고히 포함하고 있다.
반면, 소수 사본(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 등)에서는 이 부분이 “τοῦ φωτός” (of the light) — 빛의 열매로 변경되어 있다.
현대 역본(NIV, NRSV, 개역성경 등)은 이 소수 사본의 비성경적 변경을 반영하여 “빛의 열매”로 번역했으며, 그 결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령 사역이 이 본문에서 삭제되었다.
4. 신학적 문제점
이들은 모두 “빛(light)”을 주어로 삼고 있으며, 성령(Spirit)이라는 표현은 완전히 삭제되어 있다.
이로 인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성령의 인격성과 사역이 가려진다
→ “빛의 열매”는 추상적 개념이지만, “성령의 열매”는 삼위 하나님의 인격적 사역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
→ 성도 안에 맺히는 선한 열매가 성령의 역사임을 강조해야 함에도, 그 영적 출처가 모호해진다.
갈라디아서 5:22와의 연결성이 단절된다
→ 성령의 열매는 성도 내면에 맺히는 도덕적·영적 결과로 성화 교리의 중심 개념이다.
→ 이 흐름이 “빛”이라는 비인격적 개념으로 바뀌면, 성경 전체의 일관된 교리 구조가 약화된다.
변개 목적이 보인다
→ 앞 구절(엡 5:8)에서는 성도들을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라고 한다.
이에 영향을 받은 서기관들이 연속성만을 고려하여, 성령의 열매라는 표현을 ‘빛의 열매’로 임의로 바꾸었을 가능성이 높다.
→ 이는 교리적 신중함보다 문학적 흐름에 집착한, 심각한 본문 변개의 예다.
5. 신학적 연계
갈라디아서 5: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 열매는 빛의 결과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의 산물이다.
요한일서 1:5:
“하나님은 빛이시며” — 빛은 하나님 존재의 속성이지만, 빛이 사람에게 직접 열매를 맺게 하지는 않는다.
에베소서 5:8–9의 흐름:
8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니…”
9절: “(성령의 열매)는 선함과 의와 진리…”
→ 성도가 “빛의 자녀”로 살기 위해 반드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는 구조임.
6. 결론
에베소서 5장 9절은 성도 안에 맺히는 열매의 근원이 빛이라는 추상 개념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인격적 사역자임을 선포하는 본문이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본래의 성경적 교리 흐름에 충실하여 “성령의 열매”라는 표현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이는 성화와 삼위일체 교리의 맥락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그러나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소수 사본의 변개를 따라 “빛의 열매”로 수정함으로써, 본문의 교리적 깊이와 성령님의 역할을 축소하거나 제거해 버렸다.
이 구절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명백한 예이다.
빛이 아니라 성령께서 열매를 맺게 하신다.
2025-05-24 17:03:06 | 관리자
갈라디아서 5장 21절 살인 삭제
갈라디아서 5장 21절은 육신의 행위들을 열거하면서,
그러한 행위들을 지속적으로 행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한다는
매우 중대한 경고의 말씀이다.
여기서 킹제임스 성경(KJV)은
육신의 행위 목록에 **“살인(murders)”**을 분명히 포함시키고 있다.
KJV – 갈 5:21:
“Envyings, murders, drunkenness, revellings, and such like…”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댐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니라.…”
하지만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역본들은
이 “살인”이라는 중대한 단어를 완전히 생략하고,
그 결과로 본문의 도덕적 무게와 경고의 강도를 심각하게 약화시키고 있다.
현대역본 예시
개역성경: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envy, drunkenness, orgies, and the like… those who live like this will not inherit the kingdom of God.”
이처럼 **살인(murder)**이라는 가장 명백한 죄가
이 목록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있다.
사본 증거 분석
KJV는 다수 사본(Textus Receptus, Byzantine Majority Text)를 따른다.
이 사본들은 “φθόνοι, φόνοι, μέθαι, κῶμοι…” —
즉, “시기, 살인, 술 취함, 흥청댐…”이라는 순서를 포함하고 있다.
“φόνοι” (폰오이): “살인들”(복수형 murders)
→ 다수 사본에는 명확하게 포함되어 있음.
반면, NIV, ESV, 개역성경 등은 소수 사본 계열(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등)을 따르는데,
이들 일부 사본에서는 “φόνοι”가 완전히 누락되어 있다.
이 소수 사본의 삭제는 고의적일 가능성도 있다.
“살인”이라는 죄를 지나치게 노골적이거나 반복적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
혹은 필사자의 실수로 인한 생략 등이 지적된다.
본문 해석의 중요성
살인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명확한 죄 중 하나
→ 십계명에서도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은 도덕법의 근간이다.
→ 이를 육신의 행위 목록에서 삭제한다는 것은, 그 죄의 심각성을 흐리는 일이다.
경고의 강도 약화
→ 바울은 “이런 것들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 경고한다.
→ 이 경고는 살인 같은 명백한 죄를 포함시켜야 더욱 무게를 갖는다.
도덕 기준의 누수
→ “시기 envy”나 “술 취함 drunkenness”만 열거하면,
도덕적 판단이 흐릿해지고,
“최악의 죄”인 살인조차 포함되지 않는 불균형을 만들게 된다.
결론
갈라디아서 5장 21절은 신자의 삶에서 버려야 할 육신의 행위들을 열거하고,
그러한 일을 지속적으로 행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한다는
매우 엄중한 선언을 담고 있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여기에 “살인”을 분명히 포함시켜,
그 경고의 무게와 영적 기준을 정확히 보존하고 있다.
반면, 개역성경, NIV, 천주교 계열 성경 등 현대역본들은
소수 사본을 따름으로써 “살인”이라는 중대한 죄를 삭제하였고,
그로 인해 본문의 신학적 강도와 경고의 분명성이 심각하게 약화되었다.
이 구절 역시, 왜 킹제임스 성경이 정확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믿고 따를 가치가 있는지를 분명히 증언해 준다.
2025-05-24 16:57:53 | 관리자
고린도후서 4장 4절 그들에게 삭제
고린도후서 4장 4절은 복음이 세상에서 어떻게 가려지고 있는지를 설명하며,
**사탄(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한다는
중대한 영적 진리를 담고 있는 구절이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킹제임스 성경(KJV)은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to them)” 비치지 못한다고 명확히 대상(불신자들)을 반복하여 지칭하는 반면,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역본들은 이 “그들에게”라는 표현을 생략함으로써
본문의 명료성과 논리적 구조, 그리고 영적 진단의 대상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킹제임스 성경 (KJV)
고후 4:4 (KJV):
“In whom the god of this world hath blinded the minds of them which believe not, lest the light of the glorious gospel of Christ, who is the image of God, should shine unto them.”
“그들 속에서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여기서 핵심은 “unto them(그들에게)”라는 말이다.
→ 이 표현은 복음의 빛이 누구에게 비치지 못하는지를 명확히 다시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 이는 곧 복음의 사역 대상과 사탄의 활동 대상이 동일함을 강조하는 구조다.
현대역본의 생략 – 개역성경, NIV 등
개역성경: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여기서는 “그들에게”라는 직접적 대상이 생략되어 있다.
→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문제가 생긴다:
복음이 누구에게 비치지 못하는지 불분명해진다
→ 앞에서 “믿지 않는 자들”이라고 말했지만,
다시 한 번 대상을 반복해 지칭하지 않음으로써
복음의 빛이 막힌 대상이 누구인지 강조 효과가 줄어든다.
복음의 실패가 불분명해진다
→ KJV에서는 복음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한다”고 하여
영적 전쟁의 현실과 사탄의 간계가 복음 전파를 직접 방해하는 것을 명시한다.
그러나 현대역본은 이 비침의 대상이 모호하게 표현되어
메시지의 날카로움이 둔해진다.
문장 구조의 논리성이 약화된다
→ KJV는 “믿지 않는 자들” →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함” → “그들에게 비치지 못함”이라는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대명사 연결 구조를 갖추고 있다.
현대역본은 그 중간 고리를 생략함으로써 흐름이 불분명해진다.
사본 증거
킹제임스 성경(KJV)은 다수 사본 계열(Textus Receptus)에 따라
헬라어 원문 “πρὸς τοὺς ἀπίστους” → “그들(믿지 않는 자들)에게(to them who believe not)”,
그리고 **“μὴ αὐγάσαι αὐτοῖς” →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라는 구조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반면, 소수 사본 계열(시내사본, 바티칸 사본 등)에서는
후반부 “그들에게(to them, αὐτοῖς)”라는 표현이 누락되거나 축약되어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역본들은 이 표현을 반영하지 않았다.
결론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바울은
복음이 불신자들에게 비치지 못하는 이유를
**영적 실명(blinding)**과 사탄의 간계로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이 말씀에서 “그들에게(to them)”라는 표현은
복음의 빛이 누구에게 미치지 못하는지,
즉 복음의 전달 실패 대상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알려주는 결정적 요소이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 표현을 명확히 보존하고,
본문의 논리 구조, 영적 교훈, 대상의 명료성을 모두 충실히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역본들은
소수 사본을 따라 이 중요한 표현을 삭제함으로써,
복음의 본질적 경고와 복음 전도의 긴박성을 약화시킨다.
이 구절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된다.
2025-05-24 16:54:05 | 관리자
고린도전서 10장 23절 나를 위해 2번 삭제
고린도전서 10장 23절은 신자들의 자유와 행동의 기준에 대해 바울이 교훈하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다”는 일반 원칙을 인정하면서도,
그 행동이 자신에게 유익한가, 그리고 다른 사람을 세워 주는가를 따져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KJV)은 여기서 매우 중요한 표현인
**“나를 위해”(for me, unto me)**라는 말을 두 번 반복하여,
이 구절이 단순히 일반 원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적용과 바울 자신의 양심의 기준에 따른 교훈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역본들은
이 **“나를 위해”(for me)**라는 표현을 모두 생략하고,
단지 “모든 것이 가하다”는 식의 일반화된 진술로 축소함으로써
본문의 맥락과 목적을 흐리고 있다.
킹제임스 성경 (KJV)
1 Corinthians 10:23 (KJV):
“All things are lawful for me, but all things are not expedient:
all things are lawful for me, but all things edify not.”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적법하나 모든 것이 적절하지는 아니하며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적법하나 모든 것이 세워 주지는 아니하나니”
여기서 **“for me(나를 위해)”**라는 말이 두 번 반복됨으로써,
바울은 개인의 자유와 행동이 단순히 객관적으로 허용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기준과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구절은 단순한 일반 규범이 아니라,
신자의 양심, 자기 절제,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포함한 실천적 적용이다.
현대역본의 생략 – 개역성경, NIV 등
개역성경: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NIV:
“I have the right to do anything,” you say — but not everything is beneficial.
“I have the right to do anything” — but not everything is constructive.
여기서 “나를 위해(for me)”라는 말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표현이 일반적 진술로 축소되어,
본문의 핵심인 개인적 적용과 책임 의식이 사라진다.
이로 인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개인적 양심의 적용이 흐려진다
→ 바울은 "나에게는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가 내게 유익하지 않으면 제한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그러나 현대역본은 이를 객관적 진술로 돌려버림으로써,
자유의 절제와 자기훈련의 요소를 흐린다.
책임과 자기절제의 강조가 사라진다
→ “나를 위해”라는 표현이 있어야,
자기 자신이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할 수 있다.
이 점은 자기 부인의 삶을 사는 신자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이다.
본문의 반복 구조가 깨진다
→ KJV에서는 “for me”가 두 번 반복되어 구조적으로도 강조되지만,
현대역본은 이 반복을 없애고 내용을 납작하게 균등화시켜 본문의 강약 조절이 사라진다.
사본 증거
킹제임스 성경(KJV)은 다수사본 계열(Textus Receptus)에 따라
본문에 다음과 같이 “μοι πάντα ἔξεστιν” –
“모든 것이 내게 적법하다(for me)”라는 표현이 두 번 반복되어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소수 사본(시내사본, 바티칸 사본 등)에서는
“μοι”(나를 위해, for me)라는 표현이 한 번 또는 두 번 생략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개역성경, NIV 등 현대역본들은 해당 표현을 모두 삭제하거나 생략하고 있다.
이처럼 소수 사본을 따른 현대역본은
본문의 개인적 적용, 신학적 강조점, 구조적 리듬감을 약화시키는 번역을 한 것이다.
결론
고린도전서 10장 23절은
신자의 자유가 무제한이 아니라,
그 자유가 자기 자신에게 유익한가,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가를 따져야 한다는
성경적 절제와 책임의 원리를 담은 구절이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 중요한 구절에서
“나를 위해”라는 표현을 두 번 반복함으로써,
이 구절이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개인 적용의 모델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역본들은 소수 사본을 따라
이 핵심 문구를 삭제함으로써,
본문의 윤리적 긴장감과 실천적 깊이를 손상시켰다.
이 구절에서도 킹제임스 성경이 정확하고 온전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 입증된다.
신자의 자유는, 성령 안에서 책임 있게 사용될 때만 유익하다.
2025-05-24 16:49:50 | 관리자
고린도전서 4장 6절 중요 부분 삭제
고린도전서 4장 6절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교만을 경계하며,
사람을 높이거나 편당하는 태도를 버리라고 권면하는 핵심 구절이다.
이 본문에서 킹제임스 성경(KJV)은 매우 중요한 교훈,
즉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not to think of men)"는 교리를 분명히 포함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한 사람을 높이고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분열을 막으려는 목적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개역성경, NIV, 천주교 라틴 계열 등 현대역본들은 이 구절의 핵심 문장 —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이라는 표현을 통째로 삭제하거나 생략하고 있어,
본문의 의미를 약화시키고 문맥의 논리 흐름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킹제임스 성경 (KJV)
1 Corinthians 4:6 (KJV):
“…that ye might learn in us not to think of men above that which is written, that no one of you be puffed up for one against another.”
“…너희가 기록된 것 이상으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을 우리 안에서 배우게 함으로 너희 중 아무도 한 사람 편을 들고 다른 사람을 반대하며 우쭐대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바울은 기록된 것(성경 말씀) 이상으로
사람을 평가하거나 존경하거나 높이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 말은 고린도 교회 내의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등의 분열을 경고하는 것으로,
누가 더 나은 지도자인지에 대한 인간적 평가를 금지하는 것이다.
현대역본의 삭제 – 개역성경, NIV 등
개역성경: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NIV:
“…learn from us the meaning of the saying, ‘Do not go beyond what is written.’”
이처럼 현대역본들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는 표현 전체를 생략하고,
단지 “기록된 것 이상으로 넘어가지 말라”는 일반적인 교훈으로 축소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본문의 경고 대상이 사라진다
→ KJV에서는 분명히 사람들을 기준으로 삼아 판단하거나 우쭐대지 말라고 말하지만,
현대역본은 무엇에 대해 넘어가지 말라는 건지 불명확해진다.
교회 내 편당 문제의 핵심이 흐려진다
→ 바울이 말하는 교만은 단순한 일반 교만이 아니라,
사람(지도자) 중심의 파당 형성에서 비롯된 교만이다.
그러나 현대역본은 이 부분을 명시하지 않아,
본문의 목적과 경고 대상이 모호해진다.
앞뒤 문맥의 연결성이 약화된다
→ 바로 앞 장들(고전 1–3장)에서는 계속해서
**사람을 따라 나뉘는 문제(“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를 지적했는데,
이 흐름이 4장 6절에서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이 절에서 “사람을 생각하지 말라”는 표현이 빠지면,
앞의 문맥과 직접 연결되는 구조가 사라지고, 주제 흐름이 끊긴다.
사본 증거
킹제임스 성경(KJV)은 다수 사본 계열(Textus Receptus)에 따라
헬라어 “μὴ ὑπὲρ ἃ γέγραπται φρονεῖν ὑπὲρ τοῦ ἑνὸς” —
“기록된 것 이상으로 사람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라는 표현을 충실히 번역했다.
반면, 소수 사본(시내사본, 바티칸 사본 등)에서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는 내용이 생략되어 있거나,
모호한 구조로 축소되어 있다.
이러한 소수 사본을 기반으로 한 NIV, 개역, NRSV 등 현대역본들은
본문의 교훈의 초점(사람 평가 금지)을 흐리게 만들었다.
결론
고린도전서 4장 6절은 고린도 교회 내에 만연한 사람 중심의 분열과 교만을
정면으로 지적하고 고치는 말씀이다.
그 핵심은, 성경에 기록된 것을 넘어서서 사람을 평가하고,
사람을 기준으로 삼아 우쭐대는 것을 금지하는 데 있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 점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정확히 전달하고 있으며,
본문의 앞뒤 흐름, 신학적 목적, 교회 내 문제에 대한 정확한 경고를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개역성경, NIV, 천주교 계열 등 현대역본은
소수 사본에 의존해 이 중요한 표현을 삭제하고,
본문을 단순한 일반 교훈으로 축소시킴으로써
본문의 핵심 교리를 약화시키고 있다.
이 구절 또한 킹제임스 성경이 왜 하나님의 완전한 보존된 말씀인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2025-05-24 16:48:48 | 관리자
고린도전서 2장 4절 사람 삭제
고린도전서 2장 4절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역 방식과 그 근거를 설명하면서,
복음 선포가 단순한 말재주나 철학적 설득력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과 실증에 기초했음을 강조하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다.
이 구절에서 킹제임스 성경(KJV)은
복음 선포가 “사람의 지혜의 유혹하는 말들”(enticing words of man's wisdom)이 아니라고 분명히 진술한다.
즉, 그 지혜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속한 지혜이며,
성령의 권능과 대조되는 인간적인 접근과 철학적 설득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역본들은
이 표현에서 **‘사람의’(man's)**라는 중요한 한 단어를 삭제하거나 생략하고 있다.
이 삭제는 단어 하나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문맥의 흐름과 신학적 메시지에 있어서는 매우 중대한 손상을 초래한다.
킹제임스 성경 (KJV)
고전 2:4 (KJV)
“And my speech and my preaching was not with enticing words of man's wisdom, but in demonstration of the Spirit and of power:”
“또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를 사람의 지혜의 유혹하는 말들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과 권능을 실증함으로 하였으니”
여기서 바울은 두 개의 지혜를 대조한다:
– 하나는 사람의 지혜(man’s wisdom),
– 다른 하나는 성령의 권능이다.
이 대조는 단순한 수사법이 아니라,
당시 헬라 철학적 변증과 복음의 본질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를 드러낸다.
즉, 복음은 사람의 이성이나 철학으로 설득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권능에 의해 깨달아지는 진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개역성경 및 현대역본의 번역 문제
개역성경: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NIV:
“My message and my preaching were not with wise and persuasive words…”
여기에서는 **‘사람의’(man's)**라는 수식어가 빠지고,
단지 ‘지혜의 말’, ‘설득력 있는 말’로 번역된다.
이러한 번역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낳는다:
문맥의 대조 구조가 무너진다
→ 바로 다음 구절(고전 2:5)에서는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권능에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 여기서 “사람의 지혜 vs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명확한 대조 구도가 등장한다.
→ 그런데 2:4에서 “사람의”라는 말이 빠지면,
앞뒤 연결성과 대조 구조가 흐려지고,
본문의 논리가 약화된다.
‘지혜’ 자체가 나쁜 것처럼 보이게 한다
→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도 성경에 분명히 존재한다(약 3:17).
따라서 지혜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사람의 지혜가 문제라는 것이 본문의 핵심이다.
→ 그런데 단순히 “지혜의 말”이라고만 하면,
성경의 다른 지혜와 충돌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복음 전도의 본질이 약화된다
→ 바울은 자신의 복음 선포가 철학적 논증이나 웅변이 아니라,
성령의 실증과 권능에 기초했다고 강조한다.
→ 이것은 복음의 초자연적 본질을 드러내는 진술인데,
“사람의 지혜”라는 표현이 빠지면
바울의 전도 방식의 본질적인 차별성이 흐려진다.
사본 증거
KJV는 Textus Receptus(수용본문) 및 다수사본 계열에 따라
헬라어 원문 “σοφίας ἀνθρώπων λόγοις” — “사람의 지혜의 말들”을 정확히 번역했다.
반면, 소수 사본 계열(시내사본, 바티칸 사본 등)에서는
**“ἀνθρώπων(사람의)”**라는 단어가 누락되었거나
다른 형태로 변경되어 있다.
NIV, NRSV, 개역성경 등 현대역본들은 이 소수 사본의 흐름을 따라
‘사람의’라는 본질적인 수식어를 생략함으로써,
성경 본문의 교리적 명확성과 문맥의 논리성을 손상시킨 것이다.
결론
고린도전서 2장 4절은 바울이 복음을 선포할 때
사람의 지혜에 의존하지 않고, 성령의 권능에 의지했음을 분명히 밝히는 중요한 구절이다.
이 구절의 핵심은 “사람의 지혜”라는 표현으로,
복음과 세상의 철학적 지혜를 명확히 구분하는
신학적 대조 구조의 중심 축을 이룬다.
그러나 개역성경, NIV, 천주교 성경 등 현대역본들은
소수 사본의 오류를 따름으로써,
이 중요한 대조 구조를 흐리게 만들고,
본문의 신학적 핵심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 구절에서도 오직 킹제임스 성경(KJV)만이
말씀의 깊이와 정확성을 손상 없이 보존하고 있다.
하나님의 권능은 사람의 지혜가 아닌, 성령의 실증으로 증언된다.
2025-05-24 16:22:08 | 관리자
사도행전 25장 16절 핵심 삭제
사도행전 25장 16절은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로마 총독 베스도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유대인들이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이송해 재판하자고 요청한 것에 대해
베스도가 로마법의 원칙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이 구절에서 핵심은, 피고가 변명할 기회도 갖기 전에 그를 "넘겨주어 죽게 하는 것"(KJV)이
로마 사람들의 관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 중요한 내용, 즉 “죽게 하는 것(to die)”이라는
법적·형벌적 결과를 명확히 포함시키고 있는 반면,
개역성경, NIB, NIV, 천주교 라틴벌게이트 계열 등 현대역본들은 이 중요한 표현을 생략하고 있다.
KJV 원문: 죽음의 결과까지 명확히 표현
Acts 25:16 (KJV):
“To whom I answered, It is not the manner of the Romans to deliver any man to die, before that he which is accused have the accusers face to face, and have licence to answer for himself concerning the crime laid against him.”
“내가 그들에게 응답하되, 고소당한 어떤 자가 고소인들과 얼굴을 마주 보고 자기가 고소당한 범죄에 대하여 자기를 위해 답변할 기회를 갖기도 전에 그 사람을 넘겨주어 죽게 하는 것은 로마 사람들의 관례가 아니라, 하였나이다.”
여기서 “to deliver any man to die”(누군가를 죽도록 넘겨주는 것)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그를 넘겨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법적 절차 없는 처형을 말하며,
**로마법의 정당한 절차주의(principle of due process)**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역본의 생략 – 개역/NIV/NIB/천주교 성경
개역성경: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주는 것은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NIV:
“I told them that it is not the Roman custom to hand over any man before he has faced his accusers and had an opportunity to defend himself.”
여기서는 “죽게 하다(to die)”, 즉 형벌의 결과에 대한 언급이 완전히 빠져 있다.
→ 이는 독자로 하여금 그저 일반적인 송환이나 인도 문제로 오해하게 만들 수 있으며,
본문의 긴박성과 위법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게 한다.
사본 증거 비교
킹제임스 성경(KJV)은 다수 사본 계열(Textus Receptus)을 따르며,
본문에 “παραδοθῆναι εἰς θάνατον”(넘겨져 죽게 하다)라는 표현이 분명히 존재한다.
παραδοθῆναι = 넘겨주다
εἰς θάνατον = 죽음에 이르도록
반면, 소수 사본 계열(시내사본, 바티칸 사본 등 알렉산드리아 본문)에서는
“죽게 하다”라는 부분(εἰς θάνατον)이 빠져 있거나 생략되어 있다.
이에 따라, 현대역본들(NIV, NRSV, 개역 등)은 이 소수 사본을 반영하여
단지 “내주다”, “인도하다” 정도로 번역하고,
본문이 지닌 법적·도덕적 긴박성과 바울의 위기상황을 무디게 만든다.
신학적·문맥적 분석
본문의 핵심 논점은 ‘죽음’이다.
→ 유대인들은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압송하여 암살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행 23:15, 25:3).
→ 따라서 베스도의 이 말은 단순한 행정적 거절이 아니라,
바울을 사형으로 몰아가려는 불법적 요청을 거절한 로마법의 원칙 선언이다.
“넘겨주는 것”과 “죽게 넘겨주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 생명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단지 “내주는 것은 로마법에 맞지 않는다”는 표현은
결정적인 맥락 설명이 부족하다.
로마법의 정당성 vs 유대인의 모략이 대조되는 장면이다.
→ 로마는 적어도 원칙적으로 재판 없는 처형을 금지했으며,
바울의 로마 시민권은 그 원칙 안에서 보호되어야 했다.
이 구절은 바로 그 정당한 법의 적용을 선언하는 절정이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결과가 반드시 명시되어야만 본문의 의미가 온전히 전달된다.
결론
사도행전 25장 16절은 로마 총독 베스도가 유대인들의 불법적 바울 인도 요청을 거절하며,
재판 없는 사형 집행은 로마법의 관례에 맞지 않음을 강조하는 장면이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넘겨주어 죽게 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바울이 어떤 위협 속에 있었는지,
그리고 로마법이 어떻게 그의 생명을 보호했는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반면, 개역성경, NIV, 천주교 사본 기반 현대역본들은
소수 사본에 따라 이 중요한 문장을 축소하거나 삭제함으로써,
본문의 법적 논리, 긴박성, 신학적 의미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도,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손상 없이 보존하고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2025-05-24 15:45:55 | 관리자
사도행전 24장 7절 삭제
사도행전 24장 7절은 바울이 벨릭스 총독 앞에서 고소당하는 재판 장면에서 등장하는 구절로,
유대인 측 고소장 내용의 핵심 흐름을 구성하는 부분이다.
이 본문은 킹제임스 성경(KJV)에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개역성경, NIV, 천주교 라틴 벌게이트 계열 성경들에서는 완전히 생략되어 있다.
이 생략은 단순한 문장의 누락이 아니라, 본문의 논리적 흐름과 법적 정황의 설명력을 크게 훼손하는 문제를 낳는다.
KJV의 본문 내용
Acts 24:7 (KJV):
“But the chief captain Lysias came upon us, and with great violence took him away out of our hands,”
“그러나 총대장 루시아가 우리를 기습하여 큰 폭력으로 우리 손에서 그를 빼앗아 데리고 간 뒤”
이 구절은 당시 유대인 고소자들이 자신들의 실패를 로마 총독 앞에서 정당화하기 위해 한 주장으로,
바울을 체포하고 조사하려 했던 자신들의 행위를 로마 군대의 개입으로 인해 중단 당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이 말은 총대장 루시아(천부장)가 우리를 방해하고, 폭력적으로 바울을 빼앗아 갔다는 식의
책임 회피와 불만 제기이며, 동시에 로마 당국자에 대한 정치적 비난을 우회적으로 담고 있다.
이 내용이 포함되어야만 8절에서 벨릭스 총독에게 진상을 직접 확인하라고 하는 논리가 이어질 수 있다.
개역/NIV 등 현대역본의 누락
개역성경: 사도행전 24장 7절 자체가 없음 (6절에서 바로 8절로 넘어감)
NIV 등: 동일하게 7절이 통째로 빠져 있으며, 간혹 각주로만 처리됨
이러한 누락은 본문의 흐름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법정 진술의 완성도가 무너진다
→ 고소 내용이 중간에서 갑자기 끊기고,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 진실 여부를 확인하라는 8절의 요청이 맥락 없이 튀어나오게 된다.
총대장 루시아의 등장이 사라진다
→ 이 장면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루시아의 행동과 개입이 사라지면,
바울의 체포 경위에 대한 설명과 책임 구도가 흐려지게 된다.
로마 권력 비판의 뉘앙스가 사라진다
→ 유대인 측은 루시아의 강제 개입을 ‘폭력’이라 규정하여 은근히 고소를 로마 당국 쪽으로 돌리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 부분이 누락되면, 고소인의 동기와 전략이 보이지 않게 된다.
사본 증거
킹제임스 성경(KJV)은 다수사본(Textus Receptus) 및 비잔틴, 안티오크 계열의 그리스 사본들을 근거로
본문의 7절 전체를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소수 사본(시내사본, 바티칸 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에서는
사도행전 24:7의 절 전체가 생략되어 있으며,
현대역본들(NIV, ESV, 개역 등)은 이러한 소수 사본을 기반으로
해당 구절을 본문에서 삭제하거나 각주 처리하고 있다.
이는 본문의 신뢰도와 정경성 판단에서 매우 신중해야 할 부분임에도,
중대한 서술 논리의 축을 제거한 것으로 평가된다.
본문의 논리적 정합성
사도행전 24장 6–8절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연결된다 (KJV 기준):
6절: 우리가 바울을 붙잡아 율법대로 재판하려 하였으나,
7절: 그러나 루시아가 우리를 기습하여 바울을 강제로 데려갔다.
8절: 그래서 당신(벨릭스 총독)이 직접 조사해 보면 이 모든 일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7절이 빠진다면, 6절과 8절은 이렇게 이어지게 된다:
바울을 붙잡았고...
→ 벨릭스 총독이 직접 조사해 보십시오
→ 중간의 사건 설명이 누락되어 논리적 비약이 발생한다.
결론
사도행전 24장 7절은 단지 하나의 설명 절이 아니라,
사건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역사적·법적 문맥을 제공하는 절이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다수사본과 정경적 일관성에 따라
총대장 루시아의 개입과 유대인들의 고소 논리를 정확히 보존하고 있으며,
본문의 흐름과 법정 상황을 논리적, 사실적으로 완성시킨다.
반면, 개역성경과 NIV, 천주교 계열 현대역본들은 소수 사본을 따라
해당 구절을 삭제하거나 생략함으로써,
본문의 일관성과 신학적 깊이를 축소하고,
독자에게 왜곡된 문맥과 흐름을 제공하고 있다.
이 구절 역시 킹제임스 성경만이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증거이다.
2025-05-24 15:42:31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