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30년 이상 신학 공부하고 목회하고 현재 신학대학에서 가르치는 분의 글
어쨌든, My Bible is inspired by (or of) God이라고 설교하거나 말할 때는 영감을 받았다는 확실한 표현인데, 더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하면, 원본/원서상에서 이미 영감으로 주어졌고 계시록 이후에는 더 이상 새로운 영감이 없으며, 그 "영감성과 권위"가, 정확하게 번역되었다면, 그대로 옮겨졌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존재하지 않는 원본이 사본으로 정확하게 보전되었다면 사본 자체는 원본과 같은 효력과 권위가 있으며 수용됩니다.
법적 서류를 제출할 때도 원본과 대조해 보고 관공서, 정부, 권위있는 기관에서 발행한 모든 인증서를 인정하듯이 원본과 똑같은 권위와 법적 효력을 발생합니다.
국가기록원에 있는 원본 헌법이나, 중고생에게 주어진 헌법도 똑같은 헌법입니다. 대사관에 제출할 때도 잔고증명이니, 재산세와 같은 세금 증명, 호적관계 서류 등이 공증인이나 변호사가 싸인하고 공공기관의 직인이 있으면 원본과 같습니다.
번역한 것도 번역자와 공증인의 서명이 있으면 유효하지 않습니까? 물론 정확해야지요. 하여간, 표준역자나 저들이 주장하는 것, 정말 사악합니다. 노이즈 마켓팅을 하려는 사람들이 한 둘, 아닙니다.
2023-07-20 04:18:10 | 관리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이중 영감은 허구이다: 표준 킹제임스에 직격탄을 가하는 데이빗 대니얼스
표준킹제임스 진영이 이중 영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에 오늘은 영감에 대해 다시 말씀드리려 합니다.
온 세상의 모든 성경 신자들은 웨스트민스터 고백과 런던 침례교 고백에 있는 성경론을 믿습니다.
1647년에 제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1조 성경 편’의 8항(이것은 런던 침례교 신앙고백에도 100%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음).
우리는 1. 하나님께서 원어 성경기록들을 영감으로 주시고, 2. 사상 유례없는 보호와 섭리로 순수하게 보존하셨음을 믿으며 3. 또한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도록 바르게 예배드리기 위해 정확하게 원어 성경기록들을 번역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성경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영감과 보존과 번역의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감과 보존과 번역
우리는 이것이 성경에 대한 전 세계 모든 성경 신자들의 바른 견해라고 믿고 이것을 조금 더 설명하려 합니다.
자, 그런데 럭크만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소위 ‘향상된 계시’라고 주장하면서 소위 이중 영감(double inspiration)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이중 영감이란 한 마디로 구약과 신약 자필 원본들의 말씀들이 최초로 주어질 때 한 번의 영감이 있었고,
1611년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주어졌을 때 다시 한 번 그 안의 단어들이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611년에 또 한 번 영어로 원본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등에 따라 사실 거의 모든 정상적인 성도들이 믿듯이 역사 속에서 자필 원본의 단어들만 단 한 차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given by inspiration of God).
처음에 자필 원본 성경기록들이 주어질 때 영어나 우리말이 아니라 히브리 말이나 그리스 말로 단어들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inspired와 given by inspiration의 차이
자, 그러면 성경론을 배우는 사람들이 성경에 대한 글(영어로 기록된)을 읽으면 다음과 같이 기록된 데가 많음을 볼 수 있습니다.
A. 내 손에 있는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inspired’ 말씀입니다.
The King James Bible in my hand is the God’s inspired word.
우리는 이를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inspired) 말씀'이라고 번역합니다.
국내의 럭크만주의자들은 바로 이것을 미끼로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의 inspired와 딤후3:16의 given by the inspiration은 다른 말입니다.
B.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딤후3:16)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그런데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칙 출판사의 데이빗 대니얼스, 리플링거 등 유명한 인사들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inspired된 것이라고 주장했으니 그들 역시 이중 영감(double inspiration)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칙 출판사의 대니얼스는 “번역본도 영감을 받을 수 있는가?”(Can a translation be inspired?)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만들어 킹제임스 성경 신자들이 이런 혼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번역본도 영감을 받을 수 있는가?
즉 대니얼스는 이 영상에서 위의 두 예 곧 A와 B의 inspired와 given by inspiration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말합니다.
대니얼스는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끝부분(10분 56초 이후)에서 정확히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1. 만일 여러분이 정확한 번역(역본)을 갖고 있다면 여러분은 아무것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만일 여러분이 ‘영감을 받은 성경기록들의 정확한 번역본’(an accurate translation of the inspired scriptures)을 갖고 있다면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 당신은 새로운 언어로 ‘영감받은 성경기록들’(inspired scriptures)을 갖게 된 것입니다.
2. 그러니 만약 여러분이 번역을 정확하게 했다면, 그러면 그 번역본은 ‘다시 영감을 받은 것’(재영감, re-inspired)이나 ‘이중 영감’(double inspiration)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번역본(역본)은 단순하게 그 영감(즉 자필 원본의 영감)을 새로운 언어로 전달할 뿐입니다.
If you have an accurate translation, you have lost nothing. So if you have an accurate translation of the inspired scriptures, you have also lost nothing. You now have the inspired scriptures in a new language. And if you have translated correctly, then that translation is not “re-spired” or double inspiration. It simply carries that inspiration into a new language.
3. 지금은 이것만 기억하세요.
“여러분이 지금 여러분 손에 킹제임스 성경, 즉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로 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들을 완전히 정확하게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을 들고 있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언어로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들(the inspired words of God)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For now remember, holding in your hands the King James Bible, a fully accurate translation of God's holy words of Greek and Hebrew, you have the inspired words of God in your language.
4.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그 말씀들(단어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서 빼거나 거기에 더하지 않았으므로 그것들은 동일한 영감(즉 자필 원본의 영감)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어로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 안에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the inspired Word of God)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They carry that same inspiration since they have not added to or taken away from what God said. I believe that I have the inspired Word of God, translated into English in my King James Bible. God bless you and have a wonderful day.
이보다 더 명쾌할 수가 있습니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1611년에 이중 영감에 의해 주어진 또 하나의 원본이 아니고 자필 원본의 영감이 그대로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도 동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의미의 ‘inspired’를 ‘영감이 있다’, ‘영감이 보존되어 있다’고 말하며 그런 글을 번역할 때는 어쩔 수 없이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inspired words of God)이라고 말합니다.
결론
심각한 럭크만주의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데이빗 대니얼스가 말하는 것에 동의할 것입니다.
정확하게 번역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다시 영감을 받은 것’(재영감, re-inspired)이나 ‘이중 영감’(double inspiration)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역본은 단순하게 자필 원본의 영감을 영어로 전달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번역한 우리말 흠정역 성경 역시 단순하게 자필 원본의 영감을 우리말로 전달할 뿐입니다.
내가 언제 킹제임스 성경에 영감이 없다고 하였나?
이중 영감으로 혹세무민하는 자들이 변화를 받아 온전한 진리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2023-07-19 15:55:27 | 관리자
영어 본문으로 무익한 논쟁을 일으키는 표준킹제임스 진영에 직격탄을 쏘는 대니얼스
표준킹제임스(이하 표킹) 번역자는 보통 사람들보다 영어를 조금 잘한다고 생각하고는 자기주장을 펼치기 위해 이런저런 사람들의 영상과 글을 문맥 밖에서 자기 마음대로 인용하기를 좋아합니다. 이것은 어려서부터 몸에 밴 습관인 것 같습니다.
다음 영상은 표킹 번역자가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언급하기를 좋아하는 미국 칙 출판사의 데이빗 대니얼스(David Daniels)가 킹제임스 영어 성경 본문에 대해 이야기한 것입니다.
칙 출판사
제목은 “나의 킹제임스 성경은 얼마나 순수합니까?"(How pure is my King James Bible?)입니다.
지금까지 흠정역이든 한킹이든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누구도 단 한 번도 우리가 사용한 영어 본문이 가장 순수하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어떤 판을 써도 실제로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니얼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어떤 사람들은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흠정역 성경이 채택한)이 가장 순수하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조심하세요: 우리 흠정역 진영에서 이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어떤 사람들이 미국에서 그렇게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에서 표킹 번역자가 1769년 케임브리지 본문이 가장 순수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표킹 번역자가 말하는 1769년 케임브리지 본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으며 현재 표킹 영어 본문에는 적어도 46개의 에러들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표준 1769 케임브리지 에디션(Standard 1769 Cambridge Edition) 만들기
즉 미국이든 한국이든 킹제임스 영어 본문의 순수성을 가지고 이슈를 삼는 사람들 - 일종의 불순분자들 - 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니얼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제가 손에 들고 있는 킹제임스 성경이 영어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이 커져 왔습니다.
그러나 불안한 추세가 있습니다.
많은 성경 신자들이 같은 주제로 저에게 고민에 찬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킹제임스 성경은 순수한 성경인가요? 어떤 킹제임스 성경이 순수한 성경인가요?"
그들은 자신의 킹제임스 성경이 절망적으로 부패했으며, 오직 "퓨어 케임브리지 킹제임스 성경"만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차이점 목록(대개 12가지)을 제시하고 그것이 신앙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목록이 그들의 신앙을 망치는 것입니다.
The Cambridge vs. the Oxford Fallacy!(케임브리지판과 옥스퍼드판에 대한 잘못된 생각: 12개 미세 차이)
일부 선의의 사람들이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 킹 제임스 성경'(줄여서 PCE)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가 정말 심각한 문제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새 동영상 "나의 킹제임스 성경은 얼마나 순수한가?"에서 소위 문제가 되는 부분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킹제임스 성경은 소위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과 실제로 똑같이 훌륭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
이런 의심과 질문에 대해 대니얼스는 정확하게 딱 잘라서 이렇게 말합니다.
옥스퍼드든, 케임브리지든, 퓨어 케임브리지든 결국 총 12구절에서 서로 미세하게 다른 데가 있고 나머지는 동일하다.
그러면서 대니얼스는 대소문자 spirit이 다른 6구절, further냐 farther냐 등을 다루는 한 구절 등 미세한 차이를 보이는 12구절이 사실상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킹제임스 성경의 순수성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함을 간단히 설명합니다.
The Cambridge vs. the Oxford Fallacy!(케임브리지판과 옥스퍼드판에 대한 잘못된 생각: 12개 미세 차이)
이 영상의 맨 마지막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그래서 다음에 누군가가 당신에게 ‘당신이 가진 것은 순수한 킹제임스 성경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이죠. 나는 킹제임스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뉴킹제임스’나 ‘킹제임스 2’, ‘킹제임스 3’, ‘현대 영어 역본’ 등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바로 이 킹제임스 성경, 이것은 영어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입니다.”
다만 킹제임스 성경이 아닌 다른 모든 영어 성경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So next time somebody says to you,
“You don’t have the pure King James Bible.”
you can say, “Sure I do.”
I have the King James Bible, not the “New”, King James “II”, “III”,
“Modern English”, “Restored Name”,
Just the King James Bible,
God’s preserved words in English.
It’s the pure words of God.”
Now any English Bible that’s not the King James,
that’s another thing entirely.
표킹 번역자가 언급하기를 좋아하는 리플링거도 동일한 것을 말합니다.
1769년 가짜 케임브리지판으로 성도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표준킹제임스
표준킹제임스처럼 1769년판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1769년판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결론
진실한 바이블 빌리버 사역자들은
변개된 성경과 싸웁니다.
하지만 거짓 사역자들은
교리적인 의미가 전혀 없는
판본들 사이의 차이를 들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판끼리
싸움을 붙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판은 순수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판은 진리의 표준입니다.
이것이 바이블 빌리버의 믿음입니다.
대니얼스의 영상을 본 어떤 분의 덧글입니다.
표킹 번역자는 정말 나쁜 사람이네요.
영상에서 왜 퓨어 케임브리지 본문을 경계해야 하는가로 열심히 증거를 조작하며 떠들더니 끝내는 또 꾸며낸 술수로 밝혀지네요.
이제껏 보아 온 끝의 결론은 그는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증거들을 교묘하게 조작해서 보여 주며, 돌다리도 두들겨 볼 생각없는 순진한 사람들 마음을 훔치고 선동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6장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2023-07-19 14:22:17 | 관리자
불콩들로 만든 죽과 팥죽: 어이없는 표준킹제임스의 난센스
불콩들로 만든 죽이라?
성경에는 lentiles라는 말이 총 4회 나옵니다.
창25:34, 삼하17:28, 삼하23:11, 겔4:9
창25:34
Then Jacob gave Esau bread and pottage of lentiles; and he did eat and drink, and rose up, and went his way: thus Esau despised his birthright.
표준: 그때 야곱이 빵과 불콩들로 만든 죽을 에서에게 주었더니, 그가 먹고 마신 다음에 일어나서 자기 길을 갔더라. 이와 같이 에서가 자기 장자권을 멸시하였더라.
혹시 여러분 가운데 불콩들로 만든 죽이 무엇인지 아는 분 있습니까?
흠정역: 이에 야곱이 빵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그가 먹고 마신 뒤 일어나 자기 길로 갔더라. 이같이 에서는 자기의 장자권을 업신여겼더라.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게 하려면 개역이나 흠정역, 한킹처럼 한국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말로 번역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창25:30이 말해 줍니다.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지쳤으니 원하건대 바로 그 붉은 죽을 내가 먹게 하라,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에돔이라 하였더라.
And Esau said to Jacob, Feed me, I pray thee, with that same red pottage; for I am faint: therefore was his name called Edom.
창세기 25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서가 에돔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배경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즉 에돔 혹은 에서라는 이름이 나오면 붉은색이 연상되어야 합니다.
창25:25
처음에 나온 자(에서)는 붉고 온몸이 털옷 같아서 그들이 그의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자, 불콩들로 만든 죽을 통해 붉은색을 연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말 팥죽은 당연히 붉은색을 연상시킵니다.
표킹 번역자는 창세기 25장 34절에 나오는 lentiles는 콩이고 팥은 콩이 아니라는 뉘앙스로 설명합니다.
그럴까요?
사전으로 팥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팥: 콩과의 한해살이풀.
성경이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lentiles는 콩과 식물이고 붉은색을 띠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즉 콩이냐, 팥이냐가 주제가 아니라 붉은 색의 콩과 식물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당연히 팥입니다.
영어 사전에 가서 lentiles를 살펴보면 렌틸콩 혹은 렌즈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표킹 번역자는 이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렌틸콩을 한 번만이라도 검색해 보면 렌틸콩, 즉 렌즈콩은 색깔이 붉은 것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렌틸콩: lentils
렌틸콩은 색상에 따라 크게 노란색, 붉은색, 초록색, 갈색, 검은색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생산지에 따라서 얼룩이나 반점이 생기는 등 조금씩 다른 색깔의 품종이 전해지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북아프리카에서 널리 심고 있지만 그 기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며 서반구에서는 거의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표킹 번역자는 대다수 한국 사람들이 알지도 듣지도 못하는 불콩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콩의 하나로 알려진 불콩이 붉은색을 띤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저나 여러분 모두 불콩이라는 말을 여기서 처음 들어 봤을 것입니다.
히브리어 사전에 가서 팥에 해당하는 말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팥: 스트롱 5742 아다쉬 `adash {aw-dawsh'} 창 25:34
불확실한 뜻을 가진 사용하지 않는 어근에서 유래;‘(렌즈) 콩’:렌즈콩, 팥
원문은 ‘불확실한 뜻을 가진 사용하지 않는 어근’에서 이 말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불확실한 뜻을 가진 어근에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Old Latin Vulgate에는 이것이 lentis라고 옮겨져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우리가 보고 있는 수정체, 즉 '눈, 렌즈'에서 나온 어원입니다. 왜 이렇게 되어 있을까요? 콩이 렌즈처럼 동그랗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구 라틴 벌게이트'에서 보존되어 온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lentis라는 어근을 기초로 lentiles라는 단어를 넣게 된 것입니다. 즉 렌틸콩이라서 넣은 것이 아니라 어근을 따라 영문으로 옮겨 놓은 것을, 표킹 번역자는 lentiles라는 영문만 보고 지금 시대의 그냥 불콩(렌틸콩)이라고 번역을 했으니 이 얼마나 황당합니까?
창세기 25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의 색이 붉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콩 종류로 만든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말의 팥이 여기에 해당하는 가장 적합한 말입니다.
여기서 표킹 번역자의 난센스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팥들로 만든 죽, 혹은 팥들로 만든 빙수라고 말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나요?
다 팥죽, 팥빙수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팥죽, 팥빙수에는 팥이 하나만 들어 있을까요?
그래서 굳이 불콩을 쓰려고 하면 불콩죽이라고 해야지 ‘불콩들로 만든 죽’이라고 하면 이미 해설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굳이 번역자는 불콩들로 만든 죽이라고 했을까요?
영 킹제임스 성경이 lentiles라고 복수로 했기 때문입니다. 표킹 번역자는 킹제임스 성경의 이중 영감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영어 그대로 복수로 해야 한다고 저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중간에 있는 만든은 영어 어디에 있습니까? 당연히 없지요. 번역자가 그냥 슬그머니 넣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난센스라고 부릅니다.
헛된 말장난으로 성도들을 유혹하는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로마서 16장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2023-07-19 11:58:51 | 관리자
좀과 좀 나방의 차이: 표준킹제임스의 오류
성경에는 moth라는 단어가 구약에 7회, 신약에 3회, 총 10회가 나옵니다.
단순하게 영한사전에 가서 moth를 찾으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① 나방.
② 옷좀나방(clothes ~); (the ~) 《주로 英》 좀먹음
┈┈• get the ~ (옷이) 좀먹다.
③ 《비유적》 등불〔유혹〕에 모여드는 것〔사람〕; 경쾌한 비행기.
1번 의미로 좀 나방이 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moth는 2번 용례 뒤의 ‘좀먹는다’의 의미를 가진 벌레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표준역은 이사야 50장 9절의 moth를 좀이 아니라 좀 나방으로 번역을 해야 맞는다고 합니다.
Behold, the Lord GOD will help me; who is he that shall condemn me? lo, they all shall wax old as a garment; the moth shall eat them up.
표킹: 보라,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리라. 나를 정죄할 자가 누구냐? 보라, 그들은 모두 한 의복같이 낡아지리라. 좀나방이 그들을 먹어 치우리라.
반면에 흠정역을 포함한 다른 모든 한국어 성경들은 moth를 좀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흠정역: 보라,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가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같이 낡아질 것이요,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무위키에서 좀(곤충)에 대한 정의를 보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좀: 곤충강 좀목에 속하는 곤충으로, 지표면 위의 이끼, 낙엽층이나 인가에서 살고 있는 미소동물이다. '좀먹다'라는 표현의 어원이다. 대부분 자유 생활을 하며 동작이 기민한 편이다. Nicolettidae과 등의 몇 종은 식물 해충이며 좀과의 대부분은 인가에 살면서 종이, 풀, 직물 섬유, 전분 등을 먹고 산다.
좀 벌레에서 좀먹다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자, 지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아래 구절들을 읽어 보시고 가만히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욥4:19 흙집에 거하며 티끌 안에 자기 기초를 두고 좀 앞에서 무너지는 자들이야 얼마나 덜 신뢰하시겠느냐?
욥13:28 이에 그가 썩은 물건처럼, 좀먹은 옷처럼 소멸하나이다.
욥27:18 그가 좀같이 자기 집을 짓는데 그것은 파수꾼이 만드는 초막 같으니라.
시39:11 주께서 불법으로 인해 사람을 책망하여 바로잡으실 때에 그의 아름다움을 좀이 먹은 것같이 사라지게 하시니 분명히 모든 사람은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
사51:8 좀이 그들을 옷같이 먹고 벌레가 그들을 양털같이 먹을 것이나 내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내 구원은 대대로 있으리라.
호5:12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같이 되며 유다 집에게는 썩게 하는 것같이 되리라.
마6:19-20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서는 좀과 녹이 부패시키며 거기서는 도둑들이 뚫고 훔치느니라.
눅12:33 너희가 가진 것을 팔아 구제하며 너희 자신을 위해 낡지 않는 가방들 곧 하늘들에서 없어지지 않는 보물을 예비하라. 거기서는 도둑도 가까이 오지 못하고 좀도 부패시키지 못하느니라.
이 모든 구절에서 moth는 옷을 먹어 없애고 무언가를 썩게 하고 부패시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성경을 상식적으로 풀게 하려면 이 모든 구절에 좀을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구절들에 좀 대신 좀 나방을 넣으면 문맥상 말이 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 '좀'이라면 금방 이해를 하지만, 좀 나방이라면 “이게 뭔 소린가?” 하지 않겠습니까?
‘좀먹다’의 기원이 좀이라는 벌레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국어사전, 좀먹다: 좀이 쓸다.
쓸데없는 말장난으로 허송세월하지 말기 바랍니다.
딤후2:15-17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너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16 그러나 속되고 헛된 말장난들을 피하라. 그것들은 커져서 더욱더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되는 것에 이르리라.
17 그들의 말은 궤양처럼 파먹을 터인데 그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2023-07-19 11:00:16 | 관리자
히브리식 표현과 우리말 번역을 착각하는 표준킹제임스의 또 다른 표준 오류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쭉 읽다 보면 문단이 시작되는 부분에 ‘It came to pass’, ‘it shall come to pass’ 등의 구가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It came to pass: 453회
It shall come to pass: 120회
표킹 번역자는 이것을 해설해서 첨가하고는 흠정역 성경이 무려 2,000 단어를 삭제하였다는 거짓말을 합니다.
그들이 예로 든 것은 스가랴서 13장 2절입니다.
슥13:2
And it shall come to pass in that day, saith the LORD of hosts, that I will cut off the names of the idols out of the land, and they shall no more be remembered: and also I will cause the prophets and the unclean spirit to pass out of the land.
흠정역: 군대들의 주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그 우상들의 이름을 그 땅에서 끊어 그것들이 더 이상 기억되지 못하게 하며 또한 대언자들과 부정한 영을 그 땅에서 사라지게 하리라.
표준: 그리고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그날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내가 그 우상들의 이름들을 그 지역에서 끊겠노라. 그리하면 그것들이 더 이상 기억되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내가 예언자들과 불결한 영을 그 지역에서 사라지게 하겠노라.
영어 문장을 보면 그것은 It shall come to pass... that...의 형태이며 이것은 that 이하의 일이 생길 것이라는 구문임을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
표킹 번역자는 킹제임스 성경의 이중 영감을 믿으므로, -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1611년에 영어로 원본을 또 다시 주셨다는 식으로 믿으므로 - 영어의 모든 글자를 그대로 번역해야 한다는 난센스를 수도 없이 범합니다.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표킹은 It shall come to pass를 번역하느라 ‘그날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라는 해설을 달아 놓았습니다.
이것은 번역이 아니고 해설인데 해설 자체도 잘못되었습니다.
표킹대로 믿으면 그날에 생기는 일은 ‘내가 그 우상들의 이름들을 그 지역에서 끊겠노라’ 하나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다음의 일은 그날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말 구조가 그렇습니다. 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흠정역은 그날에 세 가지가 생깁니다. 1. 내가 그 우상들의 이름을 그 땅에서 끊어 2. 그것들이 더 이상 기억되지 못하게 하며 3. 또한 대언자들과 부정한 영을 그 땅에서 사라지게 하리라.
이렇게 되어야 정상적인 번역입니다.
어떤 문단의 it came(shall come) to pass...that...구절에서 that 이하의 일이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표킹처럼 이런 일이 있었으니 식으로 하면 that 이하의 여러 일 가운데 처음 것만 이런 일에 해당합니다.
영어 KJV 번역을 하면서 수백 번 나오는 이것을 30년 동안 성경을 번역한 번역자가 몰라서 번역을 하지 않았을까요?
이런 히브리식 표현을 우리말 번역에서 그대로 가져오면 이런 혼란과 부정확함이 생기기 때문에 흠정역을 포함한 모든 한글 성경들이 표킹처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It shall come to pass는 히브리 말 하야(스트롱 번호 1961) 한 단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인데 하야는 단순히 존재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표킹처럼 ‘이러한 일이 있으리라'라는 단어 자체가 그 안에 없습니다.
그냥 '하야'라는 원어가 영어 번역에서 영국 사람들이 쓰는 방식대로 'And it shall come to pass'로 번역된 것입니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혹은 지금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영어 시간에 배우는 방식으로 번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내가 그 우상들의 이름을 그 땅에서 끊어 그것들이 더 이상 기억되지 못하게 하며 또한 대언자들과 부정한 영을 그 땅에서 사라지게 하는 일이 그날에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의 it은 that 이하의 모든 것을 뜻합니다.
이것을 우리말답게 표현하면 흠정역처럼 “그 날에 내가 그 우상들의 이름을 그 땅에서 끊어 그것들이 더 이상 기억되지 못하게 하며 또한 대언자들과 부정한 영을 그 땅에서 사라지게 하리라.”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한글 성경이 다 이러합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번역입니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그리고 영어의 문법 구조와 우리말의 문법 구조가 똑같습니까?
우리말 성경의 독자들은 한국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글을 번역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왜 영어로는 저렇게 번역되었을까요?
영어로는 저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문법에 맞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에 가면 It...that...구문을 얼마나 많이 봅니까? 그런 구문은 그들의 말을 영어로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it shall come to pass에서 shall은 미래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러면 스가랴서 13장 2절의 문맥을 볼 때, 그날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라는 해설을 넣어 초등학교 수준의 글이 되도록 해야 할까요? 아니면 미래를 나타내는 말로 that 이하가 다 미래가 되게 해야 할까요?
흠정역처럼 “그 날에 내가 그 우상들의 이름을 그 땅에서 끊어 그것들이 더 이상 기억되지 못하게 하며 또한 대언자들과 부정한 영을 그 땅에서 사라지게 하리라.”로 하면 It shall come to pass의 shall이 다 살아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표킹은 약 500여 군데서, 이런 일이 있으리니, 이런 일이 있었으니 등의 해설을 집어넣었습니다.
창4:14도 비슷합니다.
Behold, thou hast driven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 of the earth; and from thy face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vagabond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 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여기의 끝에는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 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라는 말이 있습니다.
굳이 중학생들 방식으로 이것을 직역하면 ‘나를 찾는 모든 자가 나를 죽이는 일이 있으리이다'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의 문맥을 고려해서 이야기가 끊기지 않게 하려면 흠정역처럼 되어야 하고, 그래서 한국의 모든 성경들이 이런 식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흠정역: 보소서, 주께서 이날 지면으로부터 나를 쫓아내셨으니 내가 주의 얼굴을 떠나 숨으리이다. 내가 땅에서 도망자와 방랑자가 되리니 나를 찾는 모든 자가 나를 죽이리이다, 하매
표킹: 보소서, 당신께서 이날에 땅의 표면에서 저를 몰아내셨나니, 저는 당신의 얼굴로부터 숨겨질 것이며, 저는 땅에서 도망자와 방랑자가 될 것이옵니다. 그리하면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저를 발견하는 모든 자마다 저를 살해할 것이옵니다.
보시다시피 표킹은 “그리하면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저를 발견하는 모든 자마다 저를 살해할 것이옵니다.”라고 하여 해설을 하면서 지저분하게 불필요한 것들을 집어넣었습니다.
이렇게 하고는 표 번역자는 교묘하게 요한복음 14장 29절의 come to pass를 언급합니다.
요14:29
And now I have told you before it come to pass, that, when it is come to pass, ye might believe.
흠정역: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지금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
여기를 보면 흠정역이든 무슨 역이든 한국의 모든 성경들은 it come to pass를 ‘그 일(그것)이 일어나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표킹 번역자는 이것을 보여 주면서 여기서는 come to pass를 일어나다로 번역하고 구약의 500여 군데에서는 왜 그렇게 번역을 안 했느냐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즉 자기는 영어 그대로 번역했고 다른 성경들은 500군데(약 2,000개 단어)를 삭제하였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표킹이 우수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come to pass로 번역된 그리스어 기노마이는 신약 성경에 600여 군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was done(마1:22)', 'be made(마 4:3)'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어 사전을 보면 이 단어의 뜻과 용례가 다음처럼 다양하게 나와 있습니다.
기본동사의 연장형과 중간태; (‘발생하게’)‘되는 원인이 되다’, 즉 (재귀형)‘되다’(‘되기 시작하다’), (문자적으로, 상징적으로, 강조의 의미로) 아래와 같이 폭넓게 사용됨; 일어나다, 모이다, 되다, ~에 일어나다, 스스로 행하다, (지나가기 위해)가져오다, (지나가기 위해)오게 되다, 계속하다, 나누이다, 되어졌다, 끌어내다, 끝맺게 되다, 떨어지다, 끝내다, 따르다, 발견되다, 이루어지다, 하나님이 금하시다, 자라다, 일어나다, 가지다, 지키다, 만들다, 결혼하다, 되도록 정해지다, 착수하다, 지나다, 수행되다, 출판되다, 요구하다, 보이다, 보여지다, 취해지다, 변화하다, 사용하다, ~이 되다, ~일 것이다, ~할 작정이다, 쓰여졌다 <마5:45; 눅1:8; 롬3:19>. to cause to come being into;
요한복음 14장 29절에서 영어 성경 번역자들은 문맥에 맞게 'come to pass'라고 번역하였을 뿐이고 흠정역 성경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말 성경은 이것을 번역했을 때 그 뜻이 그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번역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표킹 번역자의 말대로 구약 성경 영문과 신약 성경 영문의 원어 구조는 똑같지 않습니다. 다만 영어로 번역할 때는 그렇게 같은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이러니 표킹 번역자의 영어 킹제임스 성경 이중영감설이 얼마나 잘못된 개념입니까? 영어 킹제임스 성경도 1611년에 하나님에 의해 또 하나의 향상된 계시로서, 원본으로 주어졌다는 생각에 그들은 부정관사 a, 접속사 and 하나까지 빼지 않고 다 한국어로 바꿔 놨으니 번역에 얼마나 많은 오류가 있을지 상상이 안 됩니다.
다음 글들이 표준이라고 주장하는 이런 사람들의 오류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비둘기, 나귀, 개미 등은 여자이고 등잔대, 언약궤, 까마귀 등은 남자인가? 표준역의 문제>
And를 거의 다 ‘그리고’로 번역해야 한다는 표준 킹제임스의 부적절한 주장
부정관사 a를 ‘한’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하나님을 그릇되게 표현한 표준 킹제임스의 치명적 오류
표킹 번역자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서 모루를 치려 해도 결국 자기의 망치들만 깨지고 창피만 당할 뿐입니다.
왜냐고요? 그들은 성경을 경홀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구글 번역기나 AI 번역기를 돌리는 수준으로 성경을 번역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성경을 막 대하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a는 다 '한'으로, and는 다 '그리고'로 번역하고, 비둘기, 개미는 그녀로 번역하고는 "하나님이 이렇게 성경을 영어로 주셨으니 우리말 번역이 조금 이상하면 어떠냐,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지 인간의 말이 이상한 것이 대체 무슨 문제냐?"라고 주장하는 것, 바로 이것이 심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영어 KJV는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사본들에서 영어로 - 영어에 맞게 - 정확하게 번역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어의 모든 구조를 그대로 살려 우리말로 그대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중고등학교 아이들도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딤후2:16-17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너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16 그러나 속되고 헛된 말장난들을 피하라. 그것들은 커져서 더욱더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되는 것에 이르리라.
17 그들의 말은 궤양처럼 파먹을 터인데 그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2023-07-18 15:37:35 | 관리자
여인은 옥합을 산산조각 나게 깨뜨렸을까? 표준킹제임스의 어처구니없는 추측 오류
마가복음 14장 3절에는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기사가 있습니다.
And being in Bethany in the house of Simon the leper, as he sat at meat, there came a woman having an alabaster box of ointment of spikenard very precious; and she brake the box,
and poured it on his head.
그분께서 베다니에 계시면서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음식 앞에 앉으셨을 때 한 여자가 매우 귀한 나드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깨뜨려 그분의 머리에 부으매
표준킹제임스는 여기의 alabaster box를 설화석고 함으로 번역해야만 하는데 다른 성경들이 이것을 옥합으로 오역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옥합은 금강석처럼 단단하여 깰 수가 없고 석고처럼 단단하지 않아야만 깰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 귀중한 향유를 담는 용기는 그리스어 알라바스트론(alabastron)에서 나왔는데 이것은 이집트의 테베,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소아시아의 갑바도기아 등지에서 생산되는 반투명 고급 대리석 알라바스터(alabaster)로 만든 호리병 모양의 고급 향수병이나 화장품 병 혹은 꽃병 등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의 알라바스터는 푸석푸석한 석고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또한 옥합이라고 할 때 옥은 경옥 즉 딱딱한 옥이 있고 연한 옥 즉 연옥이 있습니다. 이런 연옥은 석회석이 굳어서 만들어지는 대리석 계통의 광물이고 이런 것을 다듬으면 액체를 담을 수 있는 용기가 됩니다.
그러니까 영어 KJV의 alabaster는 표킹 번역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깁스 할 때 사용하는 푸석푸석한 석고가 아니라 액체를 담을 수 있는 단단한 용기, 즉 연옥이나 부드러운 대리석 등으로 만들어진 용기입니다.
그런데 왜 표킹 번역자는 그 용기가 딱딱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마가복음 14장 3절에서 그 여인이 옥합을 깼다고 성경이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에 맞추기 위해 그 용기가 깁스처럼 생긴 석고여야만 여인이 깰 수 있지 대리석 용기를 어떻게 여인이 깰 수 있느냐는 것이 번역자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표킹 번역자는 상자를 깨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여기의 초점은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를 위해 그 여인이 그분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박스를 깨다(break the box)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표킹 번역자의 생각대로 여인이 석고 통을 부셨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석고 통이 산산조각 나면서 그 안의 향유가 다 바닥으로 쏟아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여인은 황급히 걸레를 달라고 해서 바닥에 쏟아진 기름의 일부를 모읍니다. 그러고 나서는 먼지와 뒤범벅이 된(유대인들은 신발을 신고 다님) 그 지저분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여러분, 마가복음 기사가 이런 것을 연상하게 합니까? 이것은 아수라장이 아닙니까?
모두가 조용한 가운데 여인이 옥합을 깨고 향유를 손에 담아서 그분의 머리에 붓고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지는 것이 연상됩니까?
자, 그러면 표킹 번역자의 착각은 무엇일까요? 많은 목사들이 그 여인이 옥합이든, 석고 통이든 들어서 바닥으로 내던져 산산조각 낸 것으로 이해하고 설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런 옥합의 나드 향유는 가격이 1년 치 봉급 정도가 되는 매우 비싼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향유가 새어 나가면(액체로든 기체로든) 안 되므로 이런 향유 병은 봉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만 향유를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와인 병도 코르크 등으로 봉인되어 있듯이).
그러므로 상자를 깨다(break the box)는 상자를 들어서 바닥에 내던지는 것이 아니라 상자의 봉인을 떼는 것을 말합니다. 그 여인은 옥합의 봉인을 떼고 기름의 일부를 손에 담아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말이 아닙니다.
가장 유명한 주석가 중 하나인 앨버트 반즈와 아담 클라크도 그렇게 말합니다.
반즈
여인이 박스를 부수었다: 이것은 그녀가 상자의 "봉인"을 부수어 부을 수 있도록 했다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 향유 상자는 종종 밀봉되거나 왁스로 고정되어 향수가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한다. 깨는 것이 불필요하고 또 초유의 비상사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상자 자체를 부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깨진 상자나 깨진 병에서 그녀는 그분의 머리에 쉽게 향유를 부을 수 없었을 것이다.
[And she brake the box] This may mean no more than that she broke the "seal" of the box, so that it could be poured out. Boxes of perfumes are often sealed or made fast with wax, to prevent the perfume from escaping. It was not likely that she would break the box itself when it was unnecessary, and when the unguent, being liquid, would have been wasted; nor from a broken box or vial could she easily have "poured it" on his head.
(from Barnes' Notes, Electronic Database Copyright ?1997, 2003, 2005, 2006 by Biblesoft, Inc. All rights reserved.)
클라크
오히려 그녀는 봉인을 뜯었다. - 이것은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번역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1. 그 자체로 매우 귀중한 상자가 내용물을 꺼내기 위해 깨질 가능성은 없다.
2. 깨진 조각이 우리 주님의 머리와 여인의 손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일은 매우 부적절했을 것이다(파편이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것을 고려하면).
3. 부서진 조각들에서 기름을 효과적으로 분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4. 향수를 담고 있는 병을 밀랍으로 밀봉하는 것이 동방 국가들의 관습이었다. 그래서 그런 상자나 병의 내용물에 접근하기 위해 봉인을 뜯는 것 이상의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바로 그 일을 이 여자가 한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봉인을 깼을 때 그녀는 액체 연고를 자기 손에 쏟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병이나 상자를 깨뜨렸다면 그녀가 그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She brake the box] Rather, she broke the seal.-This is the best translation I can give of the place; and I give it for these reasons:
1. That it is not likely that a box exceedingly precious in itself should be broken to get out its contents.
2. That the broken pieces would be very inconvenient if not injurious to the head of our Lord, and to the hands of the woman.
3. That it would not be easy effectually to separate the oil from the broken pieces. And,
4. That it was a custom in the eastern countries to seal the bottles with wax that held the perfumes; so that to come at their contents no more was necessary than to break the seal, which this woman appears to have done; and when the seal was thus broken, she had no more to do than to pour out the liquid ointment, which she could not have done had she broken the bottle.
(from Adam Clarke's Commentary, Electronic Database. Copyright ?1996, 2003, 2005, 2006 by Biblesoft, Inc. All rights reserved.)
사람을 속이는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여자가 에수님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값비싼 향유를 그분의 머리에 부어 최상의 일을 했다는 것이고 우리 주님은 이것을 칭찬하십니다.
이런 핵심은 내던져 버리고 옥합을 바닥에 던져서 산산조각 깨는 것에 주안점을 두면 주객이 전도되는 것입니다.
이런 유치한 논쟁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딤후2:15-17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너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16 그러나 속되고 헛된 말장난들을 피하라. 그것들은 커져서 더욱더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되는 것에 이르리라.
17 그들의 말은 궤양처럼 파먹을 터인데 그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2023-07-18 12:51:16 | 관리자
고린도전서 15장 29절은 몰몬교의 대리 침례(Proxy baptism)가 아니다
안녕하세요?
어떤 사람들이 고전15:29를 이용하여 흠정역 성경이 몰몬 교리를 가르친다는 거짓 주장을 편다고 하기에 간략히 글을 올립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9절은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들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고전15:29
Else what shall they do which are baptized for the dead, if the dead rise not at all? why are they then baptized for the dead?
흠정역: 그렇지 아니하여 만일 죽은 자들이 결코 일어나지 아니한다면 죽은 자들을 대체하여 침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그렇다면 그들이 무슨 이유로 죽은 자들을 대체하여 침례를 받느냐?
어떤 사람들은 사도 바울 당시에 이교도들이 이미 죽은 자들을 대신해서 침례를 받는 풍습(proxy baptism)이 있었고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도 이런 풍습을 행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죽은 자들을 대체하여’라고 번역하지 않고 ‘죽은 자들을 위하여’ 혹은 ‘죽은 자들을 대신하여’라고 번역합니다.
대체와 대신도 모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는 흠정역이 몰몬 교리를 지지한다고 어리석은 주장을 폅니다.
이 글을 읽으면 대체하다가 얼마나 합당한 말인지 알 것입니다.
‘대신하여’ 혹은 ‘위하여’라는 말은 어떤 사람이 구원받지 않아 침례를 안 받았는데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 죽은 자를 위해 대신 침례를 받으면(대리 침례) 구원받을 수 있음을 뜻합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바울이 이런 이단 교리를 지지하였단 말이 됩니다.
지금 바울이 고전 15장 전체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부활, 그것도 구원받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것인데 바울이 부활 교리를 증명하려고 이런 이교도들의 사상을 인용하고 있을까요?
현재 몰몬 교도들은 이런 이교도 사상을 그대로 답습하여 지금도 대리 침례(proxy baptism)라는 것을 행하고 있습니다.
위키백과
말일 성도 교회(몰몬)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이 대리인 역할을 하며 이미 사망한 동성(남성은 남성대리인,여성은 여성대리인) 사람을 대신하여 침수 세례를 받습니다. 죽은 자를 위한 침례는 몰몬교 성전에서만 행해지는 교회 의식이며,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침례가 필요하다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In the practice of the LDS Church, a living person, acting as proxy, is baptized by immersion on behalf of a deceased person of the same sex. Baptism for the dead is an ordinance of the church, performed only in temples, and is based on the belief that baptism is required for entry into the Kingdom of God.
우리는 결코 이런 것을 믿지 않으며 성경이나 사도 바울도 이런 것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 그런 풍습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 거의 확인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을 대체하여 침례를 받는 것의 의미
자, 그러면 baptism for the dead는 무슨 뜻일까요?
어떤 사람의 주석이나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우리는 문맥에 의거하여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앞뒤 문맥을 보면 의미를 알 수 있으므로 30-32절을 보겠습니다.
30 또 우리가 무슨 이유로 매시간 위험 속에 서 있느냐?
31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지고 있는 기쁨 즉 너희로 인한 기쁨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들의 방식대로 에베소에서 짐승들과 싸웠거든 만일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아니한다면 그것이 내게 무슨 유익을 주겠느냐? 내일 우리가 죽을 터이니 우리가 먹고 마시자.
29-32절 전체는 예수님을 믿다가 순교까지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 그들이 죽기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믿을까요? 몸의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9절만 따로 떼어 내어 몰몬 교리를 가르치면 안 됩니다.
29절의 이 말은 흠정역 성경이 말하듯 죽은 자들(믿음을 가지고 살다가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을 대체하여(그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침례를 받는 자들을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군대에서 순교자가 많이 나와도 그리스도의 군대는 계속해서 구원받은 새 성도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이런 순교의 길을 갈까요? 몸의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기의 for는 ‘대신하여’, ‘위하여’가 아니라 ‘대체하여’입니다.
표준킹제임스는 ‘대신하여’, ‘위하여’를 피하기 위해 억지로 ‘인하여’로 번역하였는데 여기의 ‘for’에는 ‘인하여’라는 뜻이 전혀 없습니다. 자기 뜻대로 성경을 왜곡하는 것은 범죄 행위입니다.
1. 스코필드 성경의 증언
죽은 자들을 대체하여 침례를 받는 사람들은 이미 죽은 신자들이 비워 둔 물리적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29절의 생각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함에 따라 그들의 자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설 준비가 된 새로운 개종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주석가는 이것을 "그들이 보는 앞에서 방금 살해당한 동료들을 대체하여 전투에 나서는 병사들의 대열"에 비유합니다(The Works of the Rev. P. Doddridge, Vol. 9, Leeds, 1805, p. 99).
C. I. 스코필드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의역했습니다. “죽음 이후의 삶이 없다면 왜 삶을 위험에 빠뜨리고 이 삶의 혜택을 상실합니까?” (The Scofield Study Bible III, NKJV,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p. 1,593).
Those
baptized for the dead are those who are taking the physical place left vacant by believers who have already died. The idea of 1 Corinthians 15:29 is that, as Christians are martyred, their places are continually being filled by new converts, ready to take a stand for Christ. One commentator likens this to “ranks of soldiers that advance to the combat in the room of their companions who have just been slain in their sight” (The Works of the Rev. P. Doddridge, Vol. 9, Leeds, 1805, p. 99). C. I. Scofield paraphrased the verse this way: “Of what value is it for one to trust Christ and be baptized in the ranks left vacant by the believing dead, if there is no resurrection for believers? Why place life in jeopardy and forfeit the benefits of this life, if there is no life after death?” (The Scofield Study Bible III, NKJV,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p. 1,593).
2. Biblical Illustrator라는 세계 최대 고전 주석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신학 박사 P. J. Gloag, D.D.)
고린도전서 15장 29절 주석
I. 구절의 연결
이것은 20절과 연결되어 있다. 21-28절은 중간 구절이고 괄호에 해당된다. 바울은 부활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허무함에 대해 말했다(19, 20절). 그런 다음 ‘첫 열매’라는 단어가 시사하듯 부활의 순서에 대해 설명한 후에 그는 자기의 주장을 재개한다. "그렇지 아니하여"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죽은 자들을 대체하여 침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이 구절은 앞의 구절들(21-28)과 분리되어 있는 반면에 뒤따르는 구절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30절).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분을 믿는 우리의 인내하는 고난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II. 사도의 생각
1. 그의 주요 주장은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파생된 것이다.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다." 따라서 "너희 믿음이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너희 죄 가운데 있다"고 증언하면서 "우리가 거짓 증인이 된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증거요 보증이다.
2. 부활이 없다면 죽은 신자들은 멸절되었고(18절) 그들의 기독교는 고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인간 실존의 비참함을 증가시켰을 뿐이다(19절). 그러나 이것은 인정할 수 없는 결과이다(20절).
3. 이와 유사하게 사도는 부활이 없다면 믿는 자들의 모든 시련(고통과 고난)이 헛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의 관행이 아니라 에피쿠로스의 관행이 더 합리적이다(30-33절). 이제 이 29절 본문은 바로 이것에 대한 논증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을 대체하는 침례는 신자들의 고난과 연결되어야 한다.
III. 따라서 29절 본문은 죽은 자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한 침례를 의미한다.
1. 사도는 다른 기독교인들을 계승하는 한 무리의 그리스도인들을 보여 준다. 죽음으로 그들의 행렬(대열)이 줄어들었을 때 다른 사람들(새로운 신자들)이 그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급히 들어왔다. 그러나 부활이 없다면 왜 그들이 그렇게 하겠는가? 왜 그들은 믿음을 위해 이와 같은 고난을 자진하여 감수하는 것인가? 이러한 해석은 다음과 잘 일치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나 고귀한 생각을 주는 것인가? 새로 구원받은 자들은 이전에 침례 받은 자들이 싸우다가 죽자 그들의 대열의 뚫린 틈을 메워 가며 "대열을 채우고 동료들이 쓰러진 전투에서 싸운다. 이것은 박해의 시대에 듣던 말 즉 "순교자들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다."라는 말을 중명해 준다.
2. 이 해석은 우리에게 침례의 본질에 대한 놀라운 견해를 제공한다. 그것은 침례 받은 산 자들(새로 믿은 자들)과 침례 받은 뒤 죽은 자들(순교한 자들)을 연합시킨다. 그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큰 군대에 입대하는 의식이다. 그것은 교회의 영속성을 보장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지니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계승을 교회에 제공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봉사에 대한 엄숙한 헌신이며, 우리의 선조들이 수행했던 의무를 우리에게 부과하며, 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보상을 우리가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얼마나 대단한 말인가?
헛된 말로 속이는 자들을 조심하고 피해야 한다.
로마서 17장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Baptism for the dead: --
I.
THE CONNECTION OF THE PASSAGE. It is connected with ver. 20, the intervening verses being a parenthesis. Paul has been speaking of the vanity of the Christian life apart from the resurrection (vers. 19, 20), and then after a digression on the order of the resurrection, suggested by the word "first-fruits," he resumes his argument. "Else," if Christ be not risen, "what shall they do that are baptized for the dead?" But whilst the passage is thus disconnected from what precedes, it is directly connected with what follows (ver. 30). If Christ be not risen, what is the use of our enduring sufferings for our faith in Him?
II. THE APOSTLE'S TRAIN OF THOUGHT.
1. His chief argument is that derived from the resurrection of Christ. "If there be no resurrection of the dead, then is not Christ risen," consequently "your faith is vain, ye are yet in your sins," and in testifying to it "we are found false witnesses." But we have the most convincing proofs, from numerous and unquestionable witnesses, of Christ's resurrection, which is a proof and pledge of ours.
2. If there be no resurrection, then dead believers are annihilated (ver. 18), and their Christianity, as it is inseparably connected with suffering, has augmented the misery of human existence (ver. 19). But this is a consequence that cannot be admitted (ver. 20).
3. And analogous to this the apostle argues that if there be no resurrection, all the trials of believers are useless; not the practice of the Christians, but that of the Epicureans, is reasonable (vers. 30-33). Now it is evident that it is to this argument that the text belongs; therefore, baptism for the dead must be connected with the sufferings of believers.
III. The text therefore means BAPTISM TO FILL THE PLACE OF THE DEAD.
1.
The apostle represents one set of Christians succeeding another: when their ranks were thinned by death others rushed in to supply their place. But why so if there be no resurrection? Why do they voluntarily submit to like suffering for their faith? Such an interpretation agrees well with what follows. And what a noble idea does this give of Christians. They fill up the ranks and fight in the battle in which their companions have fallen. And what a touching scene it must have been in times of persecution to see the baptized, like soldiers, occupying the breach which death had made in their ranks, thus verifying the observation that "the blood of the martyrs is the seed of the Church."
2. This interpretation gives us a striking view of the nature of baptism. It unites the baptized living with the baptized dead; it is the ceremony for our enrolment into the great army of the living God; it ensures the perpetuity of the Church, and supplies it with a constant succession of those who bear the name of Jesus; it is a solemn consecration to the service of Christ, and imposes upon us the duties which our predecessors performed, and enables us to look forward to those rewards which they now enjoy. P.J. Glagg, D.D.
(from The Biblical Illustrator Copyright ?2002, 2003, 2006 Ages Software, Inc. and Biblesoft, Inc.)
2023-07-18 11:30:39 | 관리자
영어 관용구의 God을 다 하나님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난센스: 표준킹제임스의 다른 표준 오류
1. Would God
이전에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이 God에 대해 물었습니다.
-------------
제가 잘 몰라서 한 가지 여쭈려고 합니다.
왕하5:3 And she said unto her mistress, Would God my lord were with the prophet that is in Samaria! for he would recover him of his leprosy.
흠정역: 그녀가 자기 여주인에게 이르되, 내 주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대언자와 함께 계신다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분의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니
위의 영어 구절을 보면 “Would God my lord...”로 되어 있는데 왜 여기서 하나님을 번역하지 않았는지요?
즉 “내 주께서”가 아니라 “하나님 내 주께서”로 번역이 되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
답을 드립니다.
Would God 자체는 기원(祈願) 즉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도록 비는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민11:29, 14:2; 20:3, 신28:67; 삼하18:33 등에도 동일한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어에서 간절히 비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히브리 말 원어 성경에는 God(히브리어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원어 achalay(스트롱 번호 305)는 그냥 간절히 비는 것을 뜻하는데 그것을 영어로 옮기면서 강렬하게 소원을 비는 의미의 Would God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즉 영어식 기원의 표현입니다.
표준: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여주인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나의 주를 사마리아 안에 있는 예언자와 함께 있게 하신다면 좋겠나이다!---.” 하였더라
표킹처럼 하면 치졸한 번역이 됩니다. 번역이 꼬이게 됩니다.
민수기 11장 2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And Moses said unto him, Enviest thou for my sake? would God that all the LORD's people were prophets, and that the LORD would put his spirit upon them!
이중영감설에 빠진 표준역은 다음과 같이 이상하게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표준: 주의 백성 모두가 예언자들이 되어 주께서 그들 위에 그분의 영을 두시기를 하나님께 바라노라!
이것은 치졸한 번역입니다. 왜냐고요?
앞에 '주(LORD)께서'라고 해 놓고 뒤에서는 또 '하나님께'(God)라고 하면 주와 하나님이 다른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간절한 바람을 나타내는 영어식 표현입니다. 이런 데서 영어의 하나님을 번역하면 오역 내지는 졸역 혹은 해석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말 번역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엘로힘’이 있어야 합니다.
민20:3을 보겠습니다.
And the people chode with Moses, and spake, saying, Would God that we had died when our brethren died before the LORD!
흠정역: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며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주 앞에서 죽을 때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표준: 그리고 백성이 모세를 공박하며 이같이 일러 말하였더라. “우리 형제들이 주 앞에서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도 죽게 하셨더라면 좋았으리라!
이런 구절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표킹처럼 하나님을 집어넣으면 안 됩니다. 히브리말에 하나님이 없고 우리말로는 “그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의 의미로 번역하면 됩니다.
표킹 번역자처럼 킹제임스 성경의 이중 영감을 믿는 사람들이 주로 영어 그대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을 넣는데 이것은 난센스입니다.
2. God save the king
이와 관련해서 “God save the king!”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총 7회). 한 예를 들겠습니다.
삼상10:24, And Samuel said to all the people, See ye him whom the LORD hath chosen, that there is none like him among all the people? And all the people shouted, and said, God save the king.
사무엘이 온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주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온 백성 가운데 그와 같은 자가 없느니라, 하니 온 백성이 외치며 이르되, 왕 만세, 하니라.
여기 역시 히브리어에 “God”이 없습니다. God Save the King은 “왕 만세”, “국왕 폐하 만세” 등을 영어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다만 영어에서는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왕을 구원해 달라는 기원이 안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왕을 구원해 주시면 왕은 만세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무리하게 하나님이 들어가게 우리말로 번역하면 번역이 아니라 해석 내지는 졸역이 됩니다.
표준: 이에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왕을 구원하시기를 바라나이다.” 하였더라.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어를 살린다고 God을 넣어서 번역하면 우리말에서는 치졸한 번역이 됩니다.
3. God forbid
또한 영어 성경에는 “God forbid”라는 말이 24회 나옵니다.
롬6:1-2, What shall we say then? Shall we continue in sin, that grace may abound? God forbid. How shall we, that are dead to sin, live any longer therein?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하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를 향해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겠느냐?
이런데도 그리스 말에는 God이 없습니다. 어떤 일이 절대적으로 있을 수 없음을 영어로 표현한 것이 바로 God forbid입니다. 즉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금하시기 원한다는 강한 기원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금하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있을 수 없습니다.
표킹: 그렇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은혜가 풍성해지게 하려고 우리가 죄 가운데 지속적으로 거하겠느냐? 하나님께서 금하시기를 바라노라.
여기서도 표킹처럼 하나님을 넣으면 치졸한 번역이 됩니다.
4. God speed
또한 영어 성경에는 “God speed”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이1:10 If there come any unto you, and bring not this doctrine, receive him not into your house, neither bid him God speed: 11 For he that biddeth him God speed is partaker of his evil deeds.
흠정역: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오면서 이 교리를 가져오지 아니하거든 그를 너희 집에 받아들이지 말고 그에게 축복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축복 인사를 하는 자는 그의 악한 행위들에 참여하는 자니라.
여기에도 그리스 말에는 God이 없습니다. 이것은 여행을 떠나거나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성공을 기원하는 인사입니다.
God Speed: The wish that the outcome of someone's actions is positive for them, typically someone about to start a journey or a daring endeavor. quotations
Synonyms : farewell, goodbye, good luck
Related terms : God bless you, God forbid, godsend
그래서 표킹처럼 하면 번역이 아니라 해석이 됩니다.
표킹: 만일 어떤 이가 너희에게 오면서 이 교리를 가지고 오지 않는다면 너희의 집 안으로 그를 영접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를 성공하게 해주시기를 기원하지도 말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성공하게 해주시기를 기원하는 자는 그의 악한 행실들에 동참자가 되기 때문이라.
결론
로마서 16장 17-18절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샬롬
패스터
2023-07-17 20:25:08 | 관리자
1769년 가짜 케임브리지판으로 성도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표준킹제임스
한 분이 킹제임스 성경 영어 본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연구 결과를 알려 주셔서 올립니다.
-----------
킹제임스 성경 요한일서 5장 8절에서
대문자 S나 소문자 s는 둘 다 '옳다'도 '틀리다'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언어(영어)의 다양성을 통해
두 가지 모두를 허락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 G. A. 리플링거(뉴에이지 성경 역본들 저자)
킹제임스 성경의 어느 판도
1,800년 이후에 나온 어느 성경보다 우수하다
---고 (故) 피터 럭크만 박사
(미국 펜사콜라시 성경침례교회 목사, 펜사콜라 성경신학원 학장)
진실한 바블 빌리버 사역자들은
변개된 성경과 싸웁니다.
하지만 거짓 사역자들은
교리적인 의미가 전혀 없는
판본들 사이의 차이를 들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판끼리
싸움을 붙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판은 순수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판은 진리의 표준입니다.
이것이 바이블 빌리버의 믿음입니다.
로마서 16장 17-18절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결론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선물로 주신 것은 1611년에 인쇄된 본문, 1769년에 인쇄된 본문, 1909년에 인쇄된 본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1611년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담은 킹제임스 성경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판 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존된 말씀인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선물의 의미에 어떤 것도 더하지 못합니다. 1611년 성경 발행 이후의 본문 변화는 인간의 언어(철자법)가 변하거나 인쇄 기술이 변하면서 이것을 교정한 것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아포스트로피, 하이픈, 대소문자 등은 원래 원문에 없던 것들이며 이런 것들이 설사 판별로 미세하게 몇 부분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에 어떤 문제를 결코 가져오지 않습니다.
G. Campbell은 400주년 기념판 성경의 뒤에 쓴 글에서 킹제임스 성경의 본문 변화 등을 다 설명한 뒤 이렇게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다른 역본들 – 이 중 어떤 것들은 정말로 좋은 역본일 수 있다 – 이 지금까지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지만 킹제임스 성경은 끝까지 존속할 것이다.”
"Other translations, some of them very good indeed, have come and will go, but the King James Version will endure."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리건 박사가 지은 글의 끝맺는 말이 그 이유를 잘 보여 줍니다.
여러분은 이제 확신을 가져도 된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손에 있는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개정된 것’이 아니라 ‘정화된 것’이다.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이 우리를 위해 ‘영어로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정확성에 대한 권위는 1611년판 ‘킹제임스 성경’의 초판 인쇄본 – 여기다 더하면 1760년판, 1769년판, 1909년판, 케임브리지판 혹은 옥스퍼드판 - 에 있지도 않고 제임스 1세의 인품에 놓여 있지도 않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문학의 뛰어난 업적에 있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스어 ‘공인 본문’에 있지도 않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KJV)이라는 절대 무오한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그분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우리 손에는 그분의 완전한 말씀이 있다.
2023-07-17 18:50:36 | 관리자
오장육부를 굽는다는 난센스: 표준킹제임스의 또 다른 오류 표준
출애굽기 12장 9절에는 유월절 어린양을 구워서 먹는 방법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출12:9
Eat not of it raw, nor sodden at all with water, but roast with fire; his head with his legs, and with the purtenance thereof.
표준: 그것을 날것으로 먹지 말고 일절 물에 삶지 말며 오직 불에 직접 구우라. 그의 머리를 그의 다리들과 함께 그리고 그것의 오장육부와 함께 구우라 .
일단 표킹은 어린양을 남자로 표현하는 난센스를 보이고 있습니다.
뒤에 보면 purtenance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도살되는 짐승의 내장을 뜻합니다.
흠정역: 그것을 날로 먹거나 결코 물에 삶지 말고 그것의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불에 구우라
오장육부란 무엇일까요?
오장육부에서 오장은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 다섯 가지를 말하며 육부는 위, 큰창자, 작은창자, 쓸개, 방광, 삼초를 말합니다.
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린양의 오장육부를 다 먹었을까요?
허파와 심장과 콩팥까지?
이런 것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나요?
레위기의 제물들을 보면 반복해서 '두 콩팥과 그것들 위의 기름 곧 옆구리 곁에 있는 것과 간 위의 꺼풀을 콩팥들과 함께 떼어 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볼 때 오장육부가 아니라 내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flesh는 혈육인가, 골육인가, 육친인가?
창37:27
표준 오라. 그런즉 우리가 이스므엘족들에게 그를 팔고 우리 손이 그의 위에 있게 하지 말자. 이는 그가 우리의 형제요, 우리의 혈육(flesh)이기 때문이라.” 그러자 그의 형제들이 만족해 하였더라.
왜 혈을 더하는 것인까요?
사58:7
표준 그것은 배고픈 자들에게 너의 빵을 나누어 주며 네가 쫓겨난 가난한 자들을 너의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냐? 네가 벌거벗은 자를 볼 때 네가 그를 덮어 주는 것이요, 네가 너 자신의 골육(flesh)으로부터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냐?
왜 골을 더하는 것일까요?
롬11:14
표준 혹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나의 육친(flesh)인 자들에게 경쟁심을 유발하여 그들 중 일부를 구원할 수 있을까 함이라.
왜 친을 더하는 것일까요?
무엇을 잡다하게 더하지 말고 이런 경우의 flesh는 살붙이로 통일하는 것이 옳습니다.
흠정역:
창37:27 오라, 우리가 그를 이스마엘 족속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 동생이요, 우리 살붙이(flesh)니라, 하니 그의 형제들이 흡족히 여기더라.
사58:7 그것은 굶주린 자에게 네 빵을 나누어 주고 내쫓긴 가난한 자들을 네가 네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냐? 네가 벌거벗은 자를 볼 때에 그를 덮어 주며 네가 네 살붙이(flesh)를 피하여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냐?
롬11:14 이것은 어찌하든지 내가 내 살붙이(flesh)인 그들을 자극하여 경쟁하게 함으로 그들 중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로마서 16장 17-18절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2023-07-17 17:11:58 | 관리자
안녕하세요?
킹제임스 성경 옹호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리플링거 자매님이 1611년 이후의 킹제임스 성경 성경 본문 변천에 대해 다루면서 영어 KJV를 출간하는 출판사들이 부주의하게 인쇄하는 과정 중에 만든 인쇄상 실수를 지적하면서 성경 출판사들이 단어 하나하나의 조판에 신경을 쓸 것을 주문하는 글을 썼습니다.
그 팸플릿의 제목은 <Settings of the King James Bible>입니다. 구글에 가서 Settings of the King James Bible Riplinger로 검색하면 몇 쪽으로 된 PDF 파일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 신자 중 한 분이 이 글을 읽고 리플링거가 한 말을 그대로 가져다가 번역하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
여기서 리플링거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The
1769 edition, done by Blayney, also had its own typos. The name '1769' is frequently and wrongly applied to digital editions on the internet, which are simply a digitization of the Cambridge Concord edition, a singular variety of the Cambridge text. No one has digitized the actual 1769 and it would be pointless to do so. The '1769' banner is a straw man, created by KJB critics, and unwisely adopted by KJB users."
- Settings of the King James Bible, G. A. Riplinger
블레이니가 편집한 1769년판에도 오자가 있었습니다. '1769년판' 이라는 이름은 인터넷의 디지털 판에 종종 잘못 적용되는데, 이는 케임브리지 본문의 단일 변종인 케임브리지 콩코드 판을 디지털화한 것에 불과합니다. 아무도 실체 '1769년판'을 디지털화하지 않았고 그렇게 하는 것도 무의미합니다. '1769년판' 이라는 깃발은 KJB 비평가들이 잘못된 의도로 만든 것인데 KJB 사용자들이 어리석게 채택한 허상일 뿐입니다. - G. A. 리플링거 (저자, 뉴에이지 성경 역본들)
해설: 킹제임스 성경의 판본들 중 1769년 옥스퍼드판이 표준판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사실상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 판에도 오자가 있으며 이후에 더 수정되었습니다. 또한 지금 1769년 케임브리지 스탠다드판(표준킹제임스 주장)이라 불리는 것은 사실 여러 케임브리지판 중에 하나인 케임브리지 콩코드판을 디지털화한 것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공격하는 비평가들(배교자들)은 주로 킹제임스 성경의 특징한 판을 들어 다른 판들을 공격하는 자료로 사용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1769년판만 내세우며 강조하는 것도 바이블 빌리버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지역 교회를 분열시켜 자신들만을 따르게 하기 위한 미혹에 불과합니다.
리플링거 웹사이트
-----------------------
이미 잘 알려진 대로 표준킹제임스 역자는 자기가 저본으로 삼았다는 소위 1769년 케임브리지 표준 에디션(이런 에디션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이라 불리는 영어 본문을 스스로 self 제조하였다고 실토하였습니다. 그 안에는 이미 46개의 명백한 오류들이 있습니다.
표준 킹제임스 역자의 거짓말 이실직고
로마서 16장 17-18절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2023-07-17 16:18:10 | 관리자
표준킹제임스처럼 영어 단어를 단순히 영한사전에서 찾아서 번역하면 치졸한 번역이 된다.
우리는 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영어를 배운다. 그래서 영한사전만 있으면 쉽게 영어 문장을 번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특히 영어 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미숙한 사람들이 영한사전으로 번역하다가 졸역을 만드는 사례들이 많다.
근래에 나온 표준킹제임스라는 것이 그런 졸역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1. 약속인가, 약속하신 것인가?
중고등학교에 가면 promise라는 단어를 배운다. 누구나 다 그것이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히11:13은 영어로 이렇게 되어 있다.
These all died in faith, not having received the promises,
but having seen them afar off, and were persuaded of them, and embraced them, and confessed that they were strangers and pilgrims on the earth.
흠정역: 이들은 다 믿음 안에서 죽었고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하였으나 멀리서 그것들을 보고 확신하며 끌어안았고 또 땅에서는 자기들이 나그네와 순례자임을 고백하였으니
여기에 보면 그들이 promises를 받지 못한 것으로 되어 있다.
표킹: 이들 모두가 그 약속들을 받지 못한 채 믿음 안에서 죽었으나 아득히 떨어져 있는 그것들을 보았고
한킹: ...그 약속들...
개역: 약속...
카톨릭: 약속된 것(Good)
표준역처럼 영어 번역의 초짜가 만든 책들은 이런 것을 번역하면서 ‘그들이 그 약속들을 받지 못하였다.’고 번역한다. 그러고는 이것이 직역으로 가장 우수한 번역이라고 주장한다.
히11:39에도 promise를 받지 못했다는 동일한 말씀이 있다.
And these all, having obtained a good report through faith, received not the promise:
흠정역: 이들은 다 믿음을 통해 좋은 평판을 얻었으나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하였으니
표준역은 여기도 역시 그들이 그 약속을 받지 못하였다고 오역을 하였다.
표킹: 그리하여 이들 모두가 믿음을 통하여 하나의 좋은 평판을 얻었으면서도 그 약속을 받지는 못하였느니라.
한킹: 그 약속, 개역: 약속
카톨릭: 약속된 것(Good)
반즈 주석 등이 말하는 것을 보자.
[Not having received the promises] That is, not having received the "fulfillment" of the promises. The promises themselves they "had" received. The word "promise" is used by metonymy "for the thing promised.“
이 말은 약속들의 성취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약속들 그 자체는 이미 받았다. 여기의 ‘약속’은 ‘약속된 것들’을 뜻하는 수사학적 환유 표현이다.
그러므로 흠정역처럼 번역해야 올바른 것이다.
흠정역: 이들은 다 믿음 안에서 죽었고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하였으나 멀리서 그것들을 보고 확신하며 끌어안았고 또 땅에서는 자기들이 나그네와 순례자임을 고백하였으니
눅24:49; 행1:4; 히11:33, 39 등의 promise도 같은 식으로 ‘약속하신 것‘으로 번역해야만 한다.
그러나 표준역은 이 모든 곳을 다 약속으로 번역하여 오역을 하였다.
눅24:49; 행1:4 등에서는 약속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야 한다.
2. 정죄인가, 정죄의 근거인가?
요3:19에는 condemnation이라는 말이 있다.
And this is the condemnation, that light is come into the world, and men loved darkness rather than light, because their deeds were evil.
흠정역: 정죄의 근거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자기 행위들이 악하므로 빛보다 오히려 어둠을 사랑한 것이니라.
단순하게 영한사전에 가서 condemnation을 찾으면 뜻이 그 뜻이 정죄로 되어 있다. 구글 번역기도 당연히 이렇게 번역한다.
그래서 표준역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그런즉 이것이 정죄니 곧 빛이 세상 속으로 왔으나 그런데도 사람들이 그들의 행실들이 악하므로 빛보다는 어두움을 사랑한 것이라.
표킹에 있는 대로 읽으면 정죄란 그들이 빛보다는 어두움을 사랑한 것이 되고 만다. 이러면 말이 꼬이고 앞뒤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영어 초짜가 1차원적인 번역을 한 것이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가서 condemnation을 찾으면 세 번째 뜻으로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3.3 The ground or reason for condemning. 정죄의 근거 혹은 이유
즉 이런 경우의 condemnation은 정죄가 아니라 정죄의 근거 혹은 이유로 번역되어야 한다.
흠정역은 그렇게 번역하였다.
그들이 빛이 아니라 어둠을 사랑한 것이 정죄의 근거이다.
흠정역: 정죄의 근거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자기 행위들이 악하므로 빛보다 오히려 어둠을 사랑한 것이니라.
3. 수고인가, 수고의 열매인가?
잠언, 전도서 등에는 labour라는 말이 여러 차례 나온다.
역시 영한사전으로 이 말을 찾아보면 뜻이 수고, 애씀, 노동 등으로 나와 있다.
그러므로 labour를 모두 수고로 번역하면 역시 졸역이 된다.
전2:18을 보자.
Yea, I hated all my labour which I had taken under the sun: because I should leave it unto the man that shall be after me.
표준역은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표준: 내가 나의 모든 수고를 증오하였도다. 이는 내가 내 뒤를 이을 사람에게 그것을 남겨 주어야만 하기 때문이라“
이대로 읽으면 수고를 남겨 준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어떻게 수고를 남겨 줄 수 있는가?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가서 labour을 찾으면 네 번째 뜻으로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4.4 The outcome, product, or result of toil. 수고의 결과, 산물, 열매 등
그러므로 같은 labour라도 전2:18 같은 데서는 흠정역처럼 번역해야만 한다.
흠정역: 참으로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한 내 모든 수고의 산물을 미워하였으니 이는 내가 그것을 내 뒤에 올 사람에게 남겨야 하기 때문이라.
카톨릭 성경, 공동 번역도 이런 부분을 제대로 번역하였다.
카톨릭: 나는 또 태양 아래에서 내가 애써 얻었건만 내 뒤에 오는 인간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내 모든 노고의 결실을 싫어하게 되었다.
이런 데가 잠언 전도서 등에는 여러 차례 나온다.
신28:33을 한 번 더 보자. 여기에도 labour가 나온다.
The
fruit of thy land, and all thy labours, shall a nation which thou knowest not eat up; and thou shalt be only oppressed and crushed alway:
표준역은 네 모든 수고들을 다른 민족이 먹어 치울 것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사람들이 수고를 먹어 치울 수 있는가?
흠정역처럼 되어야 마땅하다.
흠정역: 네 땅의 열매와 네 모든 수고의 산물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고 너는 항상 억눌리고 짓밟힐 뿐이리니
카톨릭: 너희 땅의 소출과 너희가 일하여 얻은 모든 것을 너희가 알지도 못하는 백성이 먹어 버리며, 너희는 언제나 억압을 받고 짓밟히기만 할 것이다.
그래서 영한사전만 있으면 성경을 쉽게 번역할 수 있다고 오해하거나 착각하면 안 된다.
또 그런 초짜들의 꾐에 속아 넘어가서도 안 된다.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면 그 자들의 배만 불려 주고 본인은 패가망신할 뿐이다.
로마서 16장 17-18절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어떤 사람이 보내 준 글을 공유합니다.
어떤 분이 쓴 덧글입니다.
<하나님과 표준 번역자의 대화 유머>
표킹 번역자 :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 : 그런 적 없는데... 내가 영감을 준 것은 처음 자필 원본뿐인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내가 영감을 불어 넣은 원본을 신실하게 옮긴 사본들에서 영어로 정확하게 번역한 것이지 영감을 준 것은 아닌데…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
그거 내가 한 말 맞니? 너만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니?
표킹 번역자 :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신학도 공부하며 주님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표준역으로 받는 고난 또한 주님께서 주신 것이라 생각하고 감내하겠습니다.
하나님 : 그래 나도 알아. 근데 지금 네가 받는 고난은 스스로 자초한 거야. 멋드러진 간증과 또 고난이라는 힘들고 어려운 길을 홀로 걸어간다는 감성 컨셉으로
내 자녀들을 선동하고 현혹시키지 말렴.
표킹 번역자 : 저는 사람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만을 보고 걷는 사람입니다... 신실하게 영어 그대로 옮겨서 까마귀가 남자가 되고 개미가 여자가 되었습니다 ㅠㅠ 억울합니다...
하나님 : 너 말고도 내 영광을 위해 걷는 사람 많아. 내 영광을 빌미로 너의 무지함과 몰상식함을 덮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심판석에서 보자...
2023-07-17 15:54:00 | 관리자
host를 천체, 군사들, 만군으로 마음대로 번역한 표준킹제임스의 표준 오류 또 하나
창세기 1장이 끝난 뒤 2장 1절에는 처음 6일 동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습니다.
창2:1
Thus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host of them.
흠정역: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니라.
옥스퍼드 사전에 가서 host를 보면 이 단어의 뜻이 군대임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고 히브리어 사전으로 보면 스트롱 번호 6635 'tsaba'는 전쟁을 위해 조직된 무리 즉 근대를 뜻합니다.
출12:41을 보면 host가 군대임을 모든 역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흠정역: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때에 바로 그날 주의 모든 군대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왔으므로
And it came to pass at the end of the four hundred and thirty years, even the selfsame day it came to pass, that all the hosts of the LORD went out from the land of Egypt.
개역: 사백삼십 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표킹:주의 모든 군사들
한킹: 주의 모든 군대
결론
스트롱 번호 6635의 host 혹은 hosts는 구약 성경 전체에서 다 군대들을 뜻합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데 흠정역을 제외한 다른 성경들은 창2:1을 다 다른 식으로 번역합니다.
흠정역: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니라.
개역: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한킹: 그리하여 하늘들과 땅이 완성되었고 하늘들의 군상들도 그러하니라.
표킹: 이와 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천체가 완성되었더라.
창2:1의 ‘all the host of them’의 ‘그것들’(them)은 하늘들과 땅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host는 천체들이나 군상들이 아니고 하늘들과 땅에 창조된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을 말합니다.
성경은 그것들을 군대라고 부릅니다.
삼상1:3에 처음 등장하는 LORD of hosts는 ‘군대들의 하나님’입니다.
‘여호와 사바오쓰’(Jehovah Sabaoth)는 ‘군대들의 주’(The LORD of hosts)입니다.
기존 개역성경에서는 이를 ‘만군의 여호와’로 표현하였는데 사실 만군이 무엇이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이 말의 ‘군대들’에는 하늘의 군대인 천사들과 일월성신 군대, 즉 천체들과 땅의 군대들과 심지어 메뚜기, 까마귀, 메추라기, 자벌레 같은 창조물 군대도 모두 포함됩니다(창2:1).
주님께서는 이 모든 군대를 치리하며 조절하셔서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신약과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 즉 하나님의 군대의 대장이십니다(삼하6:2; 시24:10; 롬9:29; 약5:4).
Gill 주석
and
all the host them, of the heavens and the earth(그것들의 모든 군대는 하늘들과 땅의 모든 군대를 말한다.); the host of heavens are the sun, moon, and stars(하나님의 군대에는 해, 달, 별들 등이 있다), often so called in Scripture, and also the angels; see Luke 2:13 wherefore this may be considered as a proof of their creation within the above space of time, probably on the first day, though the Jews commonly say on the second; for if all the host of heaven were made at this time, and angels are at least a part of that host, then they must be then made, or otherwise all the host of heaven were not then and there made, as here affirmed: and the host of the earth, or terraqueous globe(땅의 군대에는 식물, 채소, 나무, 날짐승, 물고기, 짐승, 사람이 있다), are the plants, herbs, and trees, the fowls, fishes, animals, and man; and these are like hosts or armies, very numerous, and at the command of God, and are marshalled and kept in order by him; even some of the smallest of creatures are his army, which are at his beck, and he can make use of to the annoyance of others, as particularly the locusts are called, Joel 2:11.
https://biblehub.com/commentaries/genesis/2-1.htm
대다수 주석가들도 비슷하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표킹처럼 host를 천체, 군사들, 만군 등으로 번역하면 안 됩니다. 특히 창2:1의 그것들은 땅과 하늘들을 가리키므로 그것들의 천체라고 하면 땅도 천체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됩니다.
또는 군상으로 해도 안 됩니다.
군상: 떼를 지어 모여 있는 많은 사람.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게 하려면 스트롱 번호 6635에서 나온 host를 처음부터 끝끼지 군대로 번역해야 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17 15:34:33 | 관리자
사람을 살해하는 섬뜩하고 살벌하고 공포스러운 하나님: 표준킹제임스의 또 다른 표준 오류
도저히 하나님께 쓸 수 없는 단어들을 사용하여 신성모독을 범하는 오류의 표준, 표준킹제임스의 사례들
1. 사람을 살해하는 하나님, 살해는 친족 살해, 영아 살해, 존속 살해 등 반인륜적인 살인을 말할 때 사용되는 말
창38:7 그런데 유다의 첫 태생인 엘은 주의 목전에 사악하였더라. 그리하여 주께서 그를 살해하셨더라.
창38:10 그러자 그가 행한 그 일이 주를 불쾌하게 하였더라. 이러한 이유로 그분께서 그 역시 살해하셨더라.
출13:15 그런즉 파라오가 우리를 전혀 가게 하려 하지 않았을 때 이러한 일이 있었으니, 주께서 이집트 지역 가운데서 첫 태생들을 모두 살해하셨는데 사람의 첫 태생과 짐승의 첫 태생을 모두 살해하셨도다.
민14:16 ‘주께서 이 백성에게 맹세한 지역으로 그분이 그들을 데리고 들어갈 수 없었기에 그분이 그들을 광야 가운데서 살해하셨도다.’ 하리이다.
대상10:14 그런데 주께는 여쭙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므로 그분께서 그를 살해하셨고 왕국을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로 돌이키셨더라.
시78:31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 위에 임하였고 그들 중 가장 살진 자들을 살해하셨고 이스라엘 가운데 선택된 사람들을 쳐서 쓰러뜨리셨도다.
2. 섬뜩한 하나님, 살벌한 주의 날
섬뜩하다: 갑자기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고 끔찍하다. 등골이 섬뜩하다. 장소나 소리가 섬뜩하다고 하는 경우는 없다. 더욱이 섬뜩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우리말에서 찾아볼 수 없다.
창28:17 그러고 나서 그가 무서워하여 말하기를, “이 얼마나 섬뜩한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곳은 하늘의 대문이로다.” 하였더라.
욥15:21 한 섬뜩한 소리가 그의 두 귀에 있도다. 번영 속에서 멸망시키는 자가 그의 위에 임하리라.
단9:4 그리고 나는 주 나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의 자백을 드리며 이같이 말씀드렸더라. “오, 주여, 위대하시고 섬뜩하신 하나님, 곧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는 자들에게 언약과 자비를 간직하시는 분이여,
살벌하다: 행동이나 분위기가 거칠고 무시무시하다. 분위기가 살벌하다. 하나님의 이름이 살벌하다거나 주의 날이 살벌하다거나 사람들이 살벌하다는 것은 우리말이 아니다.
말1:14 그러나 자기 양 떼 가운데 수컷이 있는데도 서원한 뒤에 부패한 것을 주께 희생 제물로 바치는 자, 바로 그 속이는 자는 저주받기를 바라노라. 이는 내가 한 위대한 왕이요, 나의 이름이 이교도들 가운데서 살벌하기 때문이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말4:5 보라, 위대하고 살벌한 주의 날이 오기 전에 내가 예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겠노라.
합1:7, 그들은 공포스러우며 살벌하도다. 그들의 심판과 그들의 위엄이 그들 자신에게서 표출되리라
3. 공포스럽다는 말 차제가 우리말에 없다. 하나님이 공포스러운가? terrible, 총52회
신1:19 그러고 나서 우리가 호렙에서 출발하였을 때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가 목격한 그 거대하고 공포스러운 광야를 아모리족들의 산길로 다 거쳐 갔느니라. 그런 다음에 우리가 카데시바네아에 왔느니라.
신7:21 너는 그들에게 겁먹지 말지니라. 이는 주 너의 하나님, 곧 막강하고 공포스러우신 한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 계시기 때문이라.
신10:17 이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는 신들의 하나님이시요, 주들의 주시요, 한 위대한 하나님이시요, 한 막강한 분이시요, 한 공포스러운 분이시요, 외모들을 유념하지 아니하시고 보수를 받지도 아니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라.
합1:7 그들은 공포스러우며 살벌하도다. 그들의 심판과 그들의 위엄이 그들 자신에게서 표출되리라.
히12:21 그런즉 그 광경이 이처럼 공포스러웠기에 모세도 말하기를, “내가 극도로 두렵고 전율하노라.” 하였느니라.
2023-07-17 15:00:46 | 관리자
영감과 보존과 번역, 그리고 원본, 사본, 역본의 관계
오늘은 영감과 보존과 번역, 그리고 원본, 사본, 역본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영감과 보존과 번역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정의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을 보겠습니다.
1647년에 제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1조 성경편’의 8항(이것은 런던 침례교 신앙 고백에도 100%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음).
우리는 1. 하나님께서 원어 성경기록들을 영감으로 주시고, 2. 사상 유례없는 보호와 섭리로 순수하게 보존하셨음을 믿으며 3. 또한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도록 바르게 예배드리기 위해 정확하게 원어 성경기록들을 번역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것이 성경 신자들의 성경에 대한 바른 견해라고 믿고 이것을 설명하려 합니다.
영감이란 무엇인가?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성경대로 믿는 신자라면 누구나 성경의 영감을 믿을 것입니다.
영감이란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을 문자들을 써서 단어들로 기록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그리스 말로 영감(inspiration)은 ‘숨을 불어 내어 쉬다’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감’은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내어 쉬셨음’을 뜻합니다.
영어 ‘inspiration’에서 중간에 있는 ‘spir’는 영을 뜻하는 ‘spirit’에서 나왔습니다. 또 앞의 ‘in’은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감은 ‘하나님의 영(숨)이 직접 들어갔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무엇에 숨(혹은 영)을 불어 넣으셨을까요?
그분은 ‘모든 성경기록’에 그리하셨습니다. 여기서 성경기록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그라페는 기록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은 완전한 성경기록의 모든 단어에 자신의 숨을 불어 내심으로써 그 단어들이 살아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이것 없이는 아무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단어)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히4:12-13).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단어)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4).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영감은 몇 차례 있었나?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영감 과정이 과거에 몇 차례 있었느냐, 또 지금도 있느냐는 것입니다.
영감이 과거에 한 차례만 있었을까요, 여러 차례 있었을까요?
즉, 원본의 단어들만 단 한 차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을까요? 아니면 사본의 단어들도 여러 차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을까요? 혹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나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어떤가요? 그것들도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을까요?
즉 하나님의 성경 영감 과정이 과거에만 있었을까요, 아니면 현재에도 있을까요?
바로 이것이 여러 사람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여기서 잘못 나가면 럭크만주의의 킹제임스 성경 이중영감설(double inspiration)이 나옵니다.
일단 분명한 것은 딤후3:16에 나오는 영감이 자필 원본의 단어들을 기록할 때에 사용된 영감이라는 점입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히브리 말(약간의 아람어)로, 신약 성경은 그리스 말로 나왔습니다. 그 단어들을 인간 기록자들이 기록하였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기록의 대언은 결코 어떤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에 의해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자기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벧후1:20-21).
분명한 점은 처음에 자필 원본 성경기록들이 주어질 때 영어나 우리말로 단어들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단 한 차례 자필 원본의 단어들만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기록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섭리를 통해 자신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을 보존하십니다. 이렇게 치밀하게 완벽하게 보존되면 그 성경은 사본이든 역본이든 자필 원본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하나님의 숨(영감)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읽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1647년에 제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1조 성경편’의 8항을 보기 바랍니다.
우리는 1. 하나님께서 원어 성경기록들을 영감으로 주시고, 2. 사상 유례없는 보호와 섭리로 순수하게 보존하셨음을 믿으며 3. 또한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도록 바르게 예배드리기 위해 정확하게 원어 성경기록들을 번역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문제를 잘 이해하지 않거나 잘 표현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영감과 보존 설명
이제 우리가 잘 아는 영어와 한국어를 가지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일단 하나님의 입에서 영어로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나와서 인간 기록자가 완벽하게 기록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자필 원본: I am a boy.
자, 시간이 지나면서 ‘I am a boy.’가 담긴 자필 원본이 해어져서 어쩔 수 없이 사본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이것을 정확하게 다른 사본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사본: I am a boy(필사자와 필체는 다르지만 네 단어는 정확하게 같음).
이 문제의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로 말하자면 자필 원본의 ‘I am a boy.’는 딤후3:16의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그 이후에 자필 원본의 모든 단어를 정확하게 그대로 옮겨 놓은 사본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보존에 의해 주어진 것입니다.
다만 둘이 정확히 일치하므로 원본과 사본은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하나님의 숨(영감)이 동일하게 살아서 움직입니다.
과거의 유대인들은 피땀 흘려가며 구약의 히브리 성경을 처음의 원본과 동일하게 기록하였습니다.
1960년, 밀러(H. S. Miller)가 지은 「일반 성경 입문」(General Biblical Introduction)에는 유대인들이 구약 시대 회당에 있던 두루마리들을 복사하면서 지킨 여덟 가지 준수 사항이 있습니다.
(1) 양피지는 정결한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되 오직 유대인만이 만들 수 있으며 정결한 짐승으로부터 만든 끈으로 묶어야만 한다.
(2) 두루마리의 각 난에는 48줄에서 60줄이 들어가야만 한다.
(3) 잉크는 반드시 검은색이어야만 하고 특별한 방법으로 제조해야만 한다.
(4) 어떤 단어나 글자도 머리로 외워 적어서는 안 된다. 서기관은 반드시 자기 앞에 정통 복사본을 놓고 기록하기 전에 먼저 각 단어를 큰소리로 읽고 발음해야 한다.
(5)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기 전에 그는 반드시 두려운 마음으로 펜을 닦아야만 하며 여호와(Jehovah)라는 이름을 적기 전에는 그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온 몸을 씻어야만 한다. 이 단어는 영어 성경에서 주(主) 즉 전체가 대문자로 된 ‘LORD’로 번역되었는데 따라서 그는 필사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많이 몸을 씻어야만 했다.
(6) 글자의 형태, 글자와 단어 사이의 간격, 펜을 사용하는 방법, 양피지 색깔 등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한 규례들이 있었다.
(7) 두루마리를 수정하려면 그것이 완성된 후 30일이 지나기 전에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두루마리는 무효가 된다. 또한 한 장에 단 한 개의 실수라도 있으면 그 장은 버려야만 했으며 전체 필사본에서 세 개의 실수가 발견되면 전체를 버려야만 했다. 다시 말해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다 기록했는데 그중에 단 세 개의 실수가 나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창세기부터 필사해야 한다. 이런 것을 통해 우리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일에 어느 정도 신중을 기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그들은 자기들이 필사하는 말씀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들임을 믿었으며 따라서 이런 철저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들을 완전하게 보존해 왔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본문에서 빼거나 본문에다 첨가하거나 본문을 바꾸거나 하는 NIV, NASB, NKJV 등의 현대 역본 기록관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런 치밀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완전하게 보존해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회당에서 친히 읽으신 말씀이 자필 원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스스럼없이 성경이라고 부르셨다.
(8) 그들은 글자와 단어 수를 세었으며, 만일 글자가 삭제 혹은 첨가되었거나 다른 글자와 붙어 있으면 필사한 사본 전체를 버렸다.
이 같은 규칙들을 소개한 뒤 밀러는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이런 규칙들이 좀 부조리하거나 너무 극단적인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은 유대인들이 얼마나 성경을 거룩하게 여겼는지 잘 보여 준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읽으셨던 성경, 즉 처음에 하나님께서 영감을 불어넣으신 성경을 지금 이 시간에 우리손 안에 가지고 있다고 확신해도 된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자신이 읽은 성경 말씀이 비록 자필 원본의 말씀이 아니고 필사본의 말씀이었지만 그것을 100%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시며 기록된 필사본에 권위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단 한 번도 우리 주님은 사본 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손에 있는 필사본 두루마리가 곧 원본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every word)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4).
분명히 위 구절에 있는 구약 성경 말씀은 주전 1500년경에 모세가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기록된 바’(it is written)라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신 것을 보면, 모세의 자필 원본이 아니고 모세로부터 예수님 시대까지 약 1,500년 동안 필사되어 보존된 성경(사본)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원본만 옳았다면 ‘it was written’으로 과거 시제로 기록되었어야 합니다.
참고로 여기의 현재형은 예수님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뜻하는 현재형입니다.
또한 ‘모든 말씀’(every word)이란 것은 말 그대로 모든 말씀(단어)이 보존되지 않는 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즉,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의 손안에 들어 있는 필사본 성경이 자필 원본과 똑같음을 증명해 주셨으며 그 필사본에 권위를 부여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려면 이 외에도 다른 구절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마5:17-18; 눅24:27; 눅24:44 등).
번역본의 영감 문제
자, 그러면 번역본은 어떨까요? 자필 원본을 그대로 동일하게 베껴 쓴 사본의 ‘I am a boy.’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입니다.
번역본: 나는 소년입니다(참고로 우리말은 존칭이 있으므로 ‘나는 소년이다’, ‘저는 소년입니다’도 다 맞는 번역임).
하나님의 입에서는 분명히 처음에 ‘I am a boy.’가 나왔고 인간 기록자는 그것을 원본에 기록하였으며 이 네 단어는 사본에 그대로 정확하게 보존되었습니다. 이 보존된 사본에서 정확하게 ‘나는 소년입니다.’라는 역본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 역본도 최초에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원본과 동일한 효력을 지닐까요? 물론입니다. 정확하게 번역된 역본에는 하나님의 진리가 100% 살아서 숨 쉬고 있습니다(영감이 보존되어 있음). 그래서 이 역본의 단어들 역시 사람을 살리며 하나님의 사람을 완전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예수님 십자가 사건 이후 신약 성경이 완성된 뒤로 실제로 이방 사람들을 구원한 것은 다 역본이었습니다. 즉 AD 100년 이후에는 원본이나 사본의 시대가 아니라 역본의 시대가 왔습니다. 그리고 역본들을 통해 이방인들이 구원받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손에 들린 성경(역본)에 하나님의 숨(영감)이 없다면 그것으로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번역 성경의 단어들이 딤후3:16의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영감은 단 한 차례, 자필 원본이 기록될 때만 하나님이 사용하신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요약하면, 자필 원본의 단어들만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원본이 정확하게 필사되었고 그 필사본에서 지금의 역본이 정확하게 나왔으면, 지금의 역본에도 하나님의 모든 단어가 동일한 효력을 갖습니다(영감이 보존되어 살아 있음). 우리는 이것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자, 이제 원본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비교해 봅시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단어는 원본을 정확하게 보존한 사본의 원어들에서 나왔습니다. 신약 성경의 경우 이러한 사본에는 성경기록 필사본, 성경기록을 담고 있는 성구집 등이 포함됩니다. 물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사본의 모든 단어를 가능하면 1대1 대응이 되게 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심지어 원어의 문장의 구조까지도 영어로 그대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언어로 번역하면 당연히 언어의 차이로 인해 무언가를 첨가해야만 합니다. 번역을 해 본 사람이면 누구라도 이것을 잘 압니다.
예를 들어 다시 딤후3:16을 보도록 합시다.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여기서 우리는 두 개의 is가 이탤릭체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역자들이 번역을 위해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is가 없어도 말이 되지만, 영어에서는 is가 없으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역자들이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리고 역자들은 정직하게 이것을 이탤릭체로 표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이것은 원래 원본에 없었으나 번역을 위해 첨가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두 개의 is를 제외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본(사본)을 있는 그대로 영어의 구조 안에서 가능한 한 1대1 대응이 되게 정확하게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형식적 일치’ 번역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번역되었기에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온전히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성경을 들고 “이것은 하나님의 ‘오류가 없는 완전한 말씀’입니다.”라고 외칩니다.
세상에 수많은 성경이 있지만 이런 식으로 거의 완벽한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611년 이래로 이 성경에 복을 주셔서 이 세상 모든 교회와 신학교의 교리, 신앙신조 등을 정리하며 5대양 6대주에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성경을 쓰셨습니다. 온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여러 나라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수백 개 나라 성경의 번역 대본으로, 표준 잣대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럭크만주의자들 - 무조건 피터 럭크만을 따르는 자들 - 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우수성을 너무 과장한 나머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본에서 향상된 계시’ 혹은 ‘원본보다 더 좋은 계시’ 혹은 ‘영감을 받은 성경’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원본보다 더 좋은 역본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향상된 계시’가 아닙니다. 이것은 완전하게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을 형식적 일치를 통해 정확하게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옮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향상된 계시’나 ‘영감을 받은’ 성경이 아니고 ‘정확하게 보존되어 영감이 살아 있는 성경’입니다.
1647년에 제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1조 성경'편의 8항을 다시 보기 바랍니다.
우리는 1. 하나님께서 원어 성경기록들을 영감으로 주시고, 2. 사상 유례없는 보호와 섭리로 순수하게 보존하셨음을 믿으며 3. 또한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도록 바르게 예배드리기 위해 정확하게 원어 성경기록들을 번역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전 세계 모든 성경 신자들은 이런 고백에 따라 영감과 보존, 그리고 정확한 번역을 구분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온전하게 보존된 사본들에서 정확하게 영어로 번역된 완벽한 영어 성경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미국(영국) 사람들은 킹제임스 성경을 'inspired words of God'라고 부릅니다. 이런 데 사용되는 'inspired'라는 말은 최초의 영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초의 자필 원본의 단어들만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이런 데 사용되는 'inspired'라는 말은 '영감이 보존되어 그대로 살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이중영감설이라는 오류에 빠집니다. 물론 우리말로 번역할 때는 '영감을 받은' 정도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최종 권위
그런데 왜 우리는 원본이 아니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최종 권위라고 부를까요? 다음의 예를 보겠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향상된 계시’의 한 예로 행12:4를 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헤롯이 베드로를 붙잡아 감옥에 넣고 군사가 넷씩인 네 소대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으니 이것은 이스터가 지난 뒤에 그를 백성에게 끌어내려 함이더라(행12:4).
And when he had apprehended him, he put [him] in prison, and delivered [him] to four quaternions of soldiers to keep him; intending after Easter to bring him forth to the people.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다른 성경들은 여기의 ‘이스터’를 유월절로 번역하였습니다. 루터 성경같이 바른 본문에서 나온 성경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전 세계 성경 중에 유일하게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이것을 ‘이스터’라고 바르게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우수하므로 이 성경은 원본을 뛰어넘으며 그래서 ‘향상된 계시’라고 주장하거나 영어 성경의 단어들도 딤후3:16의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는 ‘이중영감설’을 펴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기의 대표적인 사람이 피터 럭크맨(Peter Ruckman)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주장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이거나 이중 영감을 받으려면, 원본에 없던 무엇인가가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있어야만 합니다.
자, 그러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이스터’라고 번역한 그리스말이 원어에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그것이 없는데 영어 성경이 그것을 번역해서 집어넣었다면 그것은 첨가이고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스터’에 해당하는 그리스말은 ‘파스카’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말 '파스카'는 명절의 경우 크게 둘을 뜻합니다.
하나는 유월절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터’(이교도들의 부활절 축제)입니다.
파스카는 Oxford English Dictionary에도 정확하게 이 두 개의 명절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파스카는 이 둘 중 하나로 번역될 수 있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행12장의 때가 이미 무교절 기간이라 유월절은 지났으므로 무교절 다음에 오는 이교도들의 부활절인 ‘이스터’로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원어 없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향상된 계시’나 딤후3:16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성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가 100% 보존된 바른 사본의 단어들을 정확하게 번역한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는 처음에 원본이 주어졌을 때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진리가 살아서 숨 쉬고 있습니다(영감이 그대로 살아 있음).
이것이 바로 1647년에 제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1조 성경편’의 8항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1. 하나님께서 원어 성경기록들을 영감으로 주시고, 2. 사상 유례없는 보호와 섭리로 순수하게 보존하셨음을 믿으며 3. 또한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도록 바르게 예배드리기 위해 정확하게 원어 성경기록들을 번역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단어 중 원어들을 담은 사본에서 나오지 않은 단어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향상된 계시나 이중 영감을 받은 성경이 아닙니다.
만일 킹제임스 성경의 이중 영감이 사실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구약과 신약 성경의 자필 원본을 주신 뒤(BC 1500-AD 100년) 약 1,500-3,000년이 지난 뒤인 1611년에 영어로 또 다시 원본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전도서에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선포자 솔로몬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흠정역: 내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노니,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1:14).
킹제임스 성경은 분명하게 “모든 것이 헛되어 영을 괴롭게 한다.”(vexation of spirit)고 전도서에서 무려 10번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역성경, NIV를 포함한 대부분의 현대 역본은 이것을 전적으로 달리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역: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영을 괴롭게 하는 것’과 ‘바람을 잡는 것’(grasping of the wind)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 혹은 ‘바람’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은 ‘루아흐’입니다. 이 경우 킹제임스 성경이나 개역성경의 대본이 된 원어 성경의 원어가 동일하므로 이 같은 차이가 생긴 데 대해 원어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이 예를 통해 우리는 성경 번역자가 같은 단어를 문맥에 따라 어떻게 번역하는가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전도서의 문맥상 어느 번역이 맞을까요? 우리는 전도서 기자가 말하려는 요점이,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이 번역한 대로,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어 우리의 영을 괴롭게 하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결국 전도서 기자는 마무리를 하면서 12장 13절에서 ‘사람의 온전한 의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즉, 이 모든 것이 영의 문제지 결코 뜬구름 잡는 것 같이 바람을 붙잡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번역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 주는 번역이라고 믿으며 이런 의미에서 킹제임스 성경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이것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임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까? 아닙니다. 다만 킹제임스 성경이 원어를 정확하게 번역했음을 보여 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결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원본보다 낫다는 주장을 펴서는 안 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보존해 주신 사본들의 모든 단어를 정확하게 번역해서 하나님의 이 단어들을 이방인들의 공통 언어인 영어로 보존한 성경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그런 진술을 수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대편 진영에서 무식하다고 조롱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원어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원어가 최종 권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시간에 우리가 원본의 모든 단어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들이 바르게 번역되지 않으면 최종 권위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파스카’, ‘루아흐’, ‘하데스’ 등의 원어들은 다 여러 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의도대로 번역되지 않으면 원어들만으로는 최종적인 표준 잣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섭리(providence)라는 돌보심을 통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을 인도하셔서 각각의 원어 단어가 뜻하는 바를 정확하게 영어로 번역하게 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본의 모든 단어들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번역되어야만 맞는다고 믿습니다.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를 택하셔서 지난 400년 동안 하나님이 하신 일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현대 역본들의 역자들은 원본의 원어들의 뜻을 이 세상 문학가나 철학자의 글을 통해 전달하려고 합니다. 원어 사전들의 저자들 가운데는 불신자가 많으며, 심지어 쎄이어(J. H. Thayer) 같은 유니테리안 이단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언어는 성경의 언어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지금의 번역본 시대에 하나님의 원어 단어들을 100% 정확하게 영어로 옮긴 보존된 성경입니다.
그러면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어떨까요?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1대1 대응이 되게 형식적 일치를 유지하면서 정직하게 번역한 성경입니다. 그래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교리와 특징이 우리말의 테두리 안에서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말 흠정역 성경에 하나님의 모든 진리가 담겨 있다고 당연히 주장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물론 딤후3:17의 진리가 흠정역 성경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7).
우리말 번역의 문제
한편 ‘I am a boy.’를 ‘나는 소년입니다.’로 하지 않고 ‘나는 아이입니다.’로 하면 반만 맞습니다. 아이에는 남자아이, 여자아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1대1 대응을 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나는 한 소년입니다.’로 하면 우스운 번역이 됩니다. 한국 사람은 아무도 이런 말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표준역의 치졸한 부정관사 a 번역
비둘기, 나귀, 개미를 그녀로 번역한 우스꽝스러운 표준역
이런 주장을 펴는 이들은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earth’(창1:1)라는 말씀을 ‘그 시작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라고 번역하고는 이 외의 다른 번역은 다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무지에서 나오는 만용입니다.
‘In the beginning’은 관용구로서 ‘처음에’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그 처음(시작) 안에서’로 번역하는 것은 영어와 우리말을 망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머릿속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는 생각(이중 영감론)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이므로 그 안에 있는 정관사, 부정관사, 하이픈, 세미콜론, 콜론, 콤마를 번역할 때 수용 언어(한국어)의 용례를 무시하고 단어 대 단어로 번역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극단을 피해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향상된 계시’가 아니며, 이중 영감을 받은 성경이 아닙니다. 원본의 모든 단어들을 하나님이 의도하신 그대로 형식적 일치를 취하면서 정확하게 번역하여 그대로 보존한 성경, 이것이 바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진리가 처음에 원본이 주어질 때와 마찬가지로 100% 그대로 살아 있는 성경입니다.
결코 100%를 넘을 수는 없습니다.
원본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비유로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7-11절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분을 알고 또 보았느니라, 하시니라.
8 빌립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러면 우리에게 족하겠나이다, 하니
9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네가 아직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는데 어찌 네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들은 내가 스스로 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 곧 그분께서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내 말을 믿으라. 그러지 못하겠거든 바로 그 일들로 인해 나를 믿으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시기 전에 빌립은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그러자 우리 주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비록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다른 인격체이지만 성육신 하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 행동, 생각이 아버지 하나님과 100%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주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통해 알지 않은 아버지 하나님은 다 거짓이라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특징입니다.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우리는 원본과 킹제임스 성경으로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꾸 원본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혹은 원본이 우월하다고 하거나 그런 주장에 세뇌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들을 통해 보거나 아는 아버지만이 참 하나님이듯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보는 원어의 뜻만이 옳은 뜻입니다. 이 외에는 다른 데서 옳은 뜻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아버지보다 우월하지 못합니다. 요10:30에서 아들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셨듯이 원본과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모든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온전히 전해 주시려고 하나님께서는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원본의 원어들을 정확하게 번역한 ‘완전한 성경인 킹제임스 성경’을 주셨습니다. 이 성경을 본문으로 해서 지난 400년간 수백 개의 성경이 번역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바른 교리를 깨달으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배도의 때에 마귀가 세상 무대에 등장해서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는 뜻이나 단어가 변경된 성경의 등장이 필수 요건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마귀라 가정한다 해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경에 무언가 변경을 가져오는 일일 것입니다. 마귀는 과거에 이집트에서부터 이 사악한 일을 주도하였고 주후 200년을 넘기면서 그 일은 카톨릭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 역본들은 한결같이 카톨릭 교회의 사본들만을 번역의 대본으로 쓰고 있습니다.
현대 신학자의 안타까운 주장
성경대로 믿고자 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감과 보존, 원본과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바른 개념을 정립하여 다른 성도들에게 비방의 빌미를 주지 않으면서 지혜롭게 바른 성경을 전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성경 신자들을 많이 불러주시고 이들로 하여금 바른 교회를 세우게 하셔서 많은 혼들을 수확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13 15:19:25 | 관리자
표준킹제임스의 극심한 내로남불: 산당과 높은 곳
안녕하세요?
요즘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에도 언급될 정도로 이 말은 온 세상에 널리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내로남불
특히 조국, 추미애 등 좌익 세력의 내로남불은 도를 넘어 대한민국 국민과 전 세계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성경은 옳은 것(right)을 추구하라고 말합니다. 즉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아 그분의 의(righteousness, 올바름)가 전가되어 정치관, 세계관, 인생관 등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오른쪽(Right)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마귀와 그에게 속한 자들은 여전히 왼쪽을 사랑하지요(낙태, 동성애, 트랜스젠더, 무상 급식, 무상 의료, 사회주의, 공산주의 주창자들에게 표를 던지는 무지한 자들).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 비유를 잘 보기 바랍니다.
34 그때에 왕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오라,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 너희는 세상의 창건 때부터 너희를 위해 예비된 왕국을 상속받으라.
41 그때에 그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르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전도서 10장 2절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의 오른쪽에 있으나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그의 왼쪽에 있느니라(전10:2).
A wise man's heart is at his right hand; but a fool's heart at his left.
그런데 표준역 번역자 역시 내로남불의 극치를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실상을 보여 드리려 합니다.
high place 산당
성경에는 high place라는 말이 단수로 22번, 복수로 98번 총 120번 나옵니다.
영어 high place는 단순하게 높은 곳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 high place를 단순하게 높은 곳으로 번역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전혀 뜻이 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다수 우리말 성경들은 높은 산에 있는 high place는 산당(山堂)으로 번역하였고 실제로 거리 등에 있는 높은 곳은 높은 곳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레26:30을 보겠습니다.
And I will destroy your high places, and cut down your images, and cast your carcases upon the carcases of your idols, and my soul shall abhor you.
말씀드린 대로 제가 살펴보니 한국의 거의 모든 역본들(개역, 카톨릭, 공동, 한킹, 바른, 현대어, 쉬운 등)은 이것을 흠정역처럼 산당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흠정역: 내가 너희 산당들을 헐고 너희 형상들을 베어 넘어뜨리며 너희 사체를 너희 우상들의 사체 위에 던지고 내 혼이 너희를 혐오하리라.
그런데 유독 표준역은 이것을 높은 처소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의 높은 처소들을 멸망시키고 너희의 형상들을 절단하여 쓰러뜨리며 너희의 사체들을 너희의 우상들의 사체들 위에 던지겠노라. 그런즉 나의 혼이 너희를 혐오하리라.
사전들의 정의
넬슨 사전 등은 high place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교도들의 신을 섬기기 위해 마련된 높은 곳의 장소 혹은 언덕에 있는 장소
Elevated or hilltop sites dedicated to worship of pagan gods. Ancient peoples often built their shrines on hilltops.
사실 이것은 히브리 사람들이나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산당의 의미로 이미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위키 백과도 동일한 것을 말합니다.
산당(山堂, high place)은 성경 문맥에서 항상 "예배의 장소"를 의미한다. 이것은 마을보다 높은 곳에 있는 작은 산이나 언덕에 놓여 있었다.
그러므로 이교도들이 산이나 언덕 등의 높은 곳에 마련한 예배 처소를 그냥 ‘높은 처소’ 혹은 높은 곳으로 번역하면 ‘이교도들의 예배 처소’라는 개념이 우리말에서는 전혀 들어오지 않습니다. 영어에서는 당연히 기독교인들이 그런 의미로 그 단어를 사용하므로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장소를 단순히 높은 곳 혹은 높은 처소로 번역하면 세상에 있는 모든 높은 집이나 건물이 다 해당됩니다.
그러나 레위기를 비롯한 성경의 문맥은 high place의 대다수가 당연히 이교도들의 산당(山堂)을 의미하지 세상에 있는 모든 높은 곳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대다수 성경들이 이것을 산당(山堂) 즉 ‘산에 있는 집’이라고 정확한 의미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표준역 번역자는 산당이 산신을 모시는 집이므로 이곳에서는 하나님께 경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산당에서 바알과 아스다롯 등을 섬겼지 산신을 섬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자, 이것은 꼬투리를 잡기 위한 심히 부당한 주장입니다.
문자 그대로 산당(山堂)은 ‘산에 있는 집’입니다. 어떤 한글 성경도 사람들이 산당에서 산신을 섬겼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두산백과, 동아 프라임 영한사전 등도 산당은 종교에서 high place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은 산당에서 하나님께 경배할 수 없습니다. 해서는 안 됩니다. 표준역 번역자는 이런 당연한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산당에서 바알과 아스다롯 등을 섬겼지 산신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표준역 번역자는 이런 당연한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산당에서 산신을 섬겼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표준역처럼 자기들 마음대로 상상해서 추측한 뒤 남을 비방하면 안 됩니다.
표준역 번역자의 심각한 내로남불
이렇게 산당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된다고 거품을 물고 이야기하던 표준역 번역자는 자기가 high place를 산당으로 번역해 놓은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번역자는 자가당착에 빠졌고 요새 말로 우리는 이런 것을 내로남불이라고 말합니다.
겔16:24-25, 31을 보겠습니다.
24 That thou hast also built unto thee an eminent place, and hast made thee an high place in every street.
25 Thou hast built thy high place at every head of the way, and hast made thy beauty to be abhorred, and hast opened thy feet to every one that passed by, and multiplied thy whoredoms.
31 In that thou buildest thine eminent place in the head of every way, and makest thine high place in every street; and hast not been as an harlot, in that thou scornest hire;
표준역:
24 너는 너에게 한 우뚝 솟은 처소를 지어 두었고, 모든 거리마다 너에게 산당을 만들어 두었도다.
25 너는 너의 높은 처소를 모든 길머리마다 지었고 너의 아름다움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지나가는 모든 이에게 저마다 너의 발들을 벌려 너의 행음들을 가중시켰도다.
31 네가 모든 길머리마다 너의 우뚝한 처소를 건축하고 모든 거리마다 너의 높은 처소를 지으면서도 네가 화대를 경멸하니, 여느 창녀 같지 아니하였도다.
표준역 번역자는 24절에서 high place를 분명히 산당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밑의 25절과 31절에서는 이것을 높은 처소로 번역하였습니다.
24, 25, 31절의 high place는 히브리말, 영어 모두 같은 말입니다.
이제 번역자는 솔직하게 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산당이 맞습니까? 높은 처소가 맞습니까?
이렇게 부조리한 번역, 즉 앞뒤가 맞지 않는 번역을 하고는 다른 사람들이 가장 올바르게 번역한 것을 죄다 오역이라고 하는 내로남불이 어디에 있습니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high place가 산당인지, 단순히 높은 처소인지 120번을 모두 올바르게 구분하여 번역하였습니다. 맞지 않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기 바랍니다.
흠정역 24절: 네가 또한 너를 위해 우뚝 솟은 처소를 짓고 모든 거리에 너를 위해 높은 처소를 만들었도다.
개역 24절: 너를 위하여 누를 건축하며 모든 거리에 높은 대를 쌓았도다
표준역 번역자는 제발 수천 군데 오역을 하고 다른 성경들을 비방하는 일을 멈추기 바랍니다.
표준역의 수천 군데 오역
사람들은 잠시 잠깐 속일 수 있어도 진실 앞에서는 어둠이 빛 앞에서 물러가듯이 표준역은 슬금슬금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서 이런 부조리 내로남불을 가져다가 성경 신자들을 속이려 합니까?
다음 블로그를 늘 보시기 바랍니다. 표준역의 거짓들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표준역 내로남불, 오역 퇴치 블로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장난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보답해 주실 것입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13 10:57:42 | 관리자
부정 관사 a를 ‘한’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하나님을 그릇되게 표현한 표준 킹제임스의 치명적 오류
안녕하세요?
표준역 번역자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등이 무려 10,000-20,000개 정도를 영어에서 삭제하였다고 주장합니다. 실상 그들이 말하는 삭제란 영어의 부정 관사 a 등을 번역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번역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기에 발생하는 무지한 일입니다.
1. My father is a farmer. 제 아버지는 농부입니다(한 농부입니다는 오역 내지는 졸역(아무도 이런 말 쓰지 않음).
2. My brother is a wrestler. 제 형은 레슬링 선수입니다(한 레슬링 선수는 오역 내지는 졸역(아무도 이런 말 쓰지 않음).
3. “It is a book about Korean history.”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그것은 한국 역사에 대한 책이다.”가 됩니다. “그것은 한국 역사에 대한 한 책이다.”로 하면 이것은 우리말이 아닙니다.
우리말에서는 ‘그것’이라는 말에 이미 단수를 뜻하는 ‘한’이 들어가 있습니다. 즉 우리말은 대부분의 경우 부정관사를 글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4. It is a rose. 그것은 장미이다. “그것은 한 장미이다.”는 오역입니다. 말이 안 되는 번역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는 부정 관사 a(an)가 수만 번 나오는데 표준역은 부정 관사 a의 다수를 ‘한’으로 번역하는 난센스를 범하고는 그 번역이 영어 단어를 거의 다 빼지 않고 다 번역한 것이니 가장 좋은 번역이라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표준역은 부정 관사 ‘a’의 다수를 ‘한’으로 번역하여 치졸한 짓을 하였습니다.
창1:18
And the LORD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n help meet for him.
그런 다음에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자가 홀로 있게 되는 것이 좋지 않도다. 내가 그를 위하여 한 돕는 배필을 그에게 만들어 주겠노라.” 하셨느니라.
창3:24
So he drove out the man; and he placed at the east of the garden of Eden Cherubims, and a flaming sword which turned every way,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fe.
그렇게 하여 그분께서 그 남자를 몰아내셨으며, 그분께서 에덴의 동산의 동쪽에 그룹들과 각각의 모든 길로 회전하고 불타오르는 칼 한 자루를 배치하셨으니,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려 하심이라(임의로 자루 추가).
요1:7
The same came for a witness, to bear witness of the Light, that all men through him might believe.
바로 그가 빛에 관하여 증거하기 위해 한 증인으로 왔으니, 그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믿게 하려 함이라.
요1:32
And John bare record, saying, I saw the Spirit descending from heaven like a dove, and it abode upon him.
그리고 요한이 확증하며 이같이 말하였더라. “내가 한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는 성령님과 그 영 이 그분 위에 거하신 것을 보았노라.
보시다시피 이런 식으로 성경을 번역하면 우리말이 됩니까?
그런데 부정 관사 a를 다 번역한 것도 아닙니다.
딤후2:3
Thou therefore endure hardness, as a good soldier of Jesus Christ.
그러므로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인으로서 어려움을 견디어 내라(한 훌륭한 군인으로 안 함).
여기도 그들의 주장대로 하려면 훌륭한 군인이 아니라 한 훌륭한 군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여기의 good는 좋은 군사 혹은 좋은 군사가 되어야지 훌륭한 군인은 아닙니다.
딤후2:9
Wherein I suffer trouble, as an evil doer, even unto bonds; but the word of God is not bound.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마치 악을 행하는 자처럼 심지어 결박들을 당하기까지 곤란을 감내하고 있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느니라.
여기도 악을 행하는 자처럼이 아니라 한 악을 행하는 자처럼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표준역은 일관성 없게 부정 관사 a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심각한 오류
표준역은 하나님과 관련해서 심각하고도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창17:7
And I will establish my covenant between me and thee and thy seed after thee in their generations for an everlasting covenant, to be a God unto thee, and to thy seed after thee.
표준: 그리고 내가 하나의 영원한 언약으로 나와 너와 너의 뒤를 잇는 너의 씨 사이에 그들 대대로 나의 언약을 확립하겠으니, 너에게 그리고 너의 뒤를 잇는 너의 씨에게 한 하나님이 되고자 함이라.
그들은 a God을 한 하나님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요4:24
God is a Spirit: and they that worship him must worship him in spirit and in truth.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은 반드시 영과 진리 안에서 그분께 경배해야만 하느니라.”
그들은 a Spirit을 한 영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렇게 부정 관사 a를 ‘한’으로 하다 보니 진짜로 ‘한’을 써야 할 데 가서는 ‘한’을 쓸 수 없으므로 ‘유일한’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신6:4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one LORD: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로다.
표준역은 ‘a God’을 ‘한 하나님’이라고 번역하고는 ‘one LORD’는 '유일하신 주'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이 말이 됩니까?
여기의 one(히브리어 에카드)은 하나를 뜻하는 말이지 결코 성경 어디에서도 유일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유일하다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경우에 사용됩니다.
1. 그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나와 동갑내기였다.
2. 그 할아버지께는 철이가 유일한 혈육이다.
유일하다는 절대로 성경의 one LORD를 표현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기초적인 조직 신학, 히브리어를 공부하지 않은 데서 발생하는 무지입니다.
우리의 삼위일체 하나님은 영어로 three persons in one God입니다. 즉 여기의 one은 복수가 하나가 되는 것을 표현하는 에카드입니다.
창2:24를 보겠습니다.
Therefor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shall be one flesh.
표준역: 그러므로 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자기 어머니를 떠날 것이요, 자기 아내와 결합하리라. 그리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되리라.
여기서 표준역은 one flesh를 한 육체로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의 one을 ‘한’으로 번역해야 함을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즉 남자와 여자(복수)가 한 육체(one flesh)가 되는 것을 표현할 때 히브리어 에카드가 사용되었습니다.
신명기 6장 4절의 에카드도 여기에 쓰인 에카드와 동일합니다.
이런 식으로 한 하나님 안에 세 인격체가 있음을 보여 주는 one LORD의 one을 ‘유일한’으로 번역하는 것은 번역이 아니라 반역 그 자체입니다.
개역 개정이 이렇게 하였습니다.
개역 개정: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한글 킹제임스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좋아하는 번역이 되게 하였습니다,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분 주시니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닙니다. 한 하나님입니다. 참으로 신학 지식의 무지가 하늘을 찌릅니다.
monotheism은 대개 유일신을 믿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것은 우주 공간에 한 하나님(one God)만 존재한다는 믿음입니다.
이렇게 심각한 오역을 하고는 그것을 표준이라고 주장하니 오호통재라!
유일하다는 절대로 성경의 one LORD, one flesh 등을 표현하는 말이 아닙니다.
표준역은 a God을 이미 한 하나님으로 했으므로 one LORD의 one과 a를 구분하려다 보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치명적인 오류를 창출하였습니다.
이런 곳들을 모두 고치려면 사실 몇 년 동안 다시 번역하는 것이 더 빠를 것입니다.
영한사전은 one에 대해 다음과 같이 첫 번째 용례를 말합니다.
one
① ⦗흔히 한정⦘
a) 한 사람의, 하나의, 한 개의(single)
┈┈• ~ pound 1파운드
┈┈• ~ dollar and a half 1달러 50센트《~ and a half dollars보다 일반적》
┈┈• ~ or two days 하루나 이틀, 극히 짧은 날수(=a day or two)
┈┈• ~ man ~ vote 1인 1표(제)
┈┈• ~ man in twenty 20인에 한 사람
┈┈• No ~ man can do it. 누구든 한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
┈┈• One man is no man. 《속담》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
보시다시피 one은 명백히 하나를 표현해야 할 때 쓰는 말입니다.
더욱이 영한사전은 다음의 중요한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 ‘1’의 뜻을 강조할 때에는 부정 관사 a, an을 쓰지 않고 one을 씀
또 위에서 언급한 창17:7의 끝부분을 보겠습니다.
to be a God unto thee, and to thy seed after thee.
표준: ‘너에게 그리고 너희 뒤를 잇는 너의 씨에게 한 하나님이 되고자 함이라.’
이것 역시 우리말의 구조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번역입니다. 마치 외국인이 우리말을 배울 때 문법을 몰라서 저지르는 실수와 비슷합니다.
매끈한 우리말 번역은 ‘너와 너의 뒤를 잇는 너의 씨에게 한 하나님이 되고자 함이라.’이다.
and를 살린다고 이런 식으로 번역하면 치졸한 번역이 됩니다. ‘와’가 곧 ‘and’이며 ‘에게’는 끝에 한 번만 붙여야 합니다.
and의 바른 번역
“대통령께서는 내무부 장관과 외무부 장관과 내각의 모든 관료들에게 이런 지시를 내렸다.”
이것을 다음과 같이 하면 얼마나 치졸한 말이 될까요? 더욱이 이런 말은 한국 사람 누구도 쓰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내무부 장관에게 그리고 외무부 장관에게 그리고 내각의 모든 관료들에게 이런 지시를 내렸다.”
이런 식의 번역으로 혹세무민하는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자들은 돈이나 명예를 얻기 위해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도둑질합니다. 그 결과 그들의 꼬임에 빠져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만 비참하게 됩니다.
번역이란 수용 언어의 구조와 용례에 맞게 번역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표준역의 이런 식 번역은 번역이 아니라 반역입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12 13:36:08 | 관리자
And를 거의 다 ‘그리고’로 번역해야 한다는 표준 킹제임스의 부적절한 주장
안녕하세요?
표준역 번역자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등이 무려 10,000-20,000개 정도의 영어 단어를 번역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듣고 귀가 얇은 분들은 우르르 몰려가서 결국 신세를 망치는데 실상 그들이 말하는 삭제란 영어의 And와 콤마 등을 번역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표준역은 이미 수천 군데에서 번역 오류를 보이고 있습니다.
표준역의 수많은 오류
또한 영어 본문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자가 수제 본문입니다.
표준역 영어 본문의 실체
이것은 번역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기에 발생하는 무지한 일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말한 번역의 정의를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번역은 껍질을 까서 우리가 열매를 먹도록 해주며 휘장을 젖혀서 우리가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번역은, 야곱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려내고 물을 길어 그것으로 라반의 양 떼들에게 물을 주었던 것처럼(창29:10), 우물의 뚜껑을 열어 우리가 물로 나가게 해 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이 없이(요4:12) 야곱의 그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는 아이들과 같고 이사야서에 언급된 사람, 즉 봉인된 책을 넘겨받아 읽을 것을 요구받는 사람과 같을 것이다. ‘원하건대 이것을 읽으라, 하면 그가 이르기를, 그것이 봉인되었으므로 내가 읽을 수 없노라, 할 것이요’(사29:11).
이처럼 번역은 글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것을 남에게 전달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번역을 통해 글에 생명력을 넣으려면 문맥에 따라 단어들의 뜻을 잘 고려해서 합당하고 적절하게 번역해야 합니다.
번역은 원어에서 수용 언어로 옮기는 것이므로 수용 언어답게 번역해야 합니다.
1. That is a flower. 저것은 꽃이다(저것은 한 꽃이다. 라고 하면 오역 내지는 졸역).
2. That is a beautiful lily. 저것은 아름다운 백합이다(저것은 한 아름다운 백합이다. 라고 하면 오역 내지는 졸역).
3. 오늘 갯벌에는 백로들이 많다, 그녀들이 얼마나 희고 아름다운지(오역).
실제로 저는 어제 갯벌에 갔습니다. 거기에는 백로의 일종인 왜가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표준역 표현대로 하면) 그녀들 가운데 하나는 그녀의 머리를 그녀의 몸속으로 숨기고 그녀의 두 발을 모은 채 홀로 서 있어서 아무도 그녀가 새인지 잘 몰랐습니다.
4. 예수님께서 한 병든 소년을 불러(오역 내지는 졸역)
And의 용례
접속사 And는 뜻이 여러 가지입니다. 그것을 거의 다 ‘그리고’로 번역하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영한사전 용례를 보면 and가 적어도 15개의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① ⦗나란히 어·구·절을 이음⦘ …와 ─, … 및 ―, …이나 ―; 그리고, …또(한)
┈┈• John ~ Mary are great friends. 존과 메리는 아주 친하다〔단짝이다〕.
┈┈• He is a novelist ~ poet. 그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② a) ⦗동시성을 나타내어⦘ (…와 동시에) 또, …하면서
┈┈• We walked ~ talked. 우리는 걸으면서 이야기했다.
b) ⦗앞뒤의 관계를 보여서⦘ …하고 (나서), 그고 나서
┈┈• He took off his hat ~ bowed. 그는 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다.
③ [보통 ən] ⦗하나로 된 것; 단수취급⦘ …와 ―이 (합하여 일체가 된 것)
┈┈• bread ~ butter [brédn-bʌ́tǝr] 버터 바른 빵
┈┈• a carriage ~ four 사두(四頭)마차
④ a) ⦗반복·중복⦘ …(한) 위에 또 ―, …이고 (―이고), 더욱더; 씩(짝을 지어)
┈┈• again ~ again 몇 번이고, 재삼재사
┈┈• for ever ~ ever 영원히
b) ⦗비교급과 함께 써서⦘ 점점 더, 더욱더
┈┈• more ~ more 점점 (더)
⑤ ⦗강조⦘ 더구나, 그뿐이랴
┈┈• He, ~ he alone can do the work. 그 사람, 그것도 그만이 그 일을 할 수가 있다.
⑥ ⦗의외·비난⦘ 더욱이, 더구나 …인데〔…한 터에〕, …한데
┈┈• How could you talk like that, ~ your father present? 아버지도 계신데 어떻게 그와 같이 말할 수 있었는가?
⑦ ⦗이유·결과⦘ 그래서, 그러자
┈┈• He is very kind, ~ I like him very much. 그는 대단히 친절해서, 나는 그를 매우 좋아한다.
⑧ ⦗명령법 또는 그 상당어구 뒤에서⦘ 그렇게 하면, 그러면
┈┈• Turn to the left, ~ you will see the post office. 왼편으로 돌면 우체국이 나올 것입니다.
⑨ a) ⦗대립적인 내용을 보여⦘ …이긴 하나, …인〔한〕데도, …이면서도
┈┈• He promised to come, ~ didn’t. 그는 오겠다고 약속을 했으면서도 오지 않았다.
b) ⦗추가적으로 덧붙여⦘ 그것도, 게다가
┈┈• He did it, ~ did it well. 그는 그것을 했다, 그것도 썩 잘.
⑩ ⦗부정사의 to 대신⦘ 《구어》 …하러, …하기 위해
┈┈• Come (~) see me. 만나러 오시오.
⑪ ⦗두 개의 형용사를 연결하여 앞의 형용사를 부사적으로 함; 종종 단순한 강조⦘
┈┈• It is nice ~ cool. 기분 좋을 만큼 시원하다.
⑫ ⦗두 개의 동사를 이어서 뒤의 동사가 현재분사적인 뜻을 나타내어⦘ …하면서
┈┈• He sat ~ looked at the picture for hours. 그는 몇 시간이나 그 그림을 보면서 앉아 있었다.
⑬ ⦗도입적⦘ 그리고 (또), 그뿐 아니라〔게다가〕 또; 그런데; 그래
┈┈• How are you?―Fine, thank you. And (how are) you? 안녕하십니까.―네, 잘 있습니다. 당신은?
⑭ ⦗and를 사이에, 같은 명사를 반복하여⦘ 여러 (가지)
┈┈• There are books ~ books. 책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⑮ ⦗수사를 연결하여⦘ …과, …에 더하여
┈┈• Two ~ two make(s) four. 2 더하기 2는 4
이것을 머릿속에 넣고 이제 창세기 1장의 몇 구절을 보겠습니다.
1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2 And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and darkness was upon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 of the waters.
3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4 And God saw the light, that it was good: and God divided the light from the darkness.
5 And God call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he called Night.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rst day.
표준 창1:1-4
1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2 그리고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였으며 어둠이 깊음의 표면 위에 있었더라. 그리고 하나님의 영께서 물들의 표면 위에 움직이셨더라.
3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셨느니라. 그러자 빛이 있었더라.
4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셨으니, 그것이 좋았더라. 그런즉 하나님께서 그 빛을 어둠에서 나누셨더라.
5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빛을 낮이라 부르셨으며
표준역은 이런 식으로 그리고를 수천 번 성경에 넣고는 자기들이 본문을 그대로 번역했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자기들 성경만이 온전히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했다고.
그러고 나서는 ‘그리고’를 뺀 성경은 영어 성경대로 안 했으니 오역이나 부실한 것이라고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폅니다.
우리는 혹세무민하는 이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말은 구조가 다 다릅니다. 그래서 번역은 수용 언어의 구조를 최대한 살려서 수용 언어를 읽는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번역해야 합니다.
즉 번역의 글은 초중고 학생들이 읽는 교과서의 문법에 맞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그 나라의 표준을 갖춘 성경이 될 수 있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는 것을 주장하는 다수의 럭크만주의자들의 착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영어의 모든 단어가 하나님의 입에서 나왔다. 그래서 영어에 있는 그대로 번역해야 한다.” 그러니까 창세기 1장의 예처럼 2-4절의 and를 다 ‘그리고’로 번역해야 한다. 심지어 하이픈, 세미콜론, 콜론까지.
이것은 듣기에 매우 좋은 말 같지만 여기에 큰 속임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번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런 주장에 쉽게 현혹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and에 해당하는 히브리말, 접속사 와우(혹은 바우)는 명사와 붙어 있고 영어는 이런 접속사를 거의 다 and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히브리어와 영어는 접속사 와우나 and를 수천 번 넣었을까요? 그렇게 and를 넣어야만 이 두 말은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and를 그리고로 다 번역하면 심히 이상한 말이 됩니다. 말이 안 됩니다.
우리말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오늘 나는 오전에 서울에 가서 몇몇 친구들을 만나 함께 스파게티 점심을 하고 5시에 인천으로 돌아왔다.
Today I went to Seoul in the morning and met some friends and had spaghetti lunch together and I came back to Incheon at five o’clock.
보시다시피 영어는 글을 만들려면 반드시 중간에 and와 주어(주어는 매번 들어가는 경우도 많고 안 들어가는 경우도 있음)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그렇게 하면 다음과 같이 심히 이상하게 됩니다.
오늘 나는 오전에 서울에 갔다. 그리고 나는 몇몇 친구들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함께 점심을 했다. 그리고 나는 5시에 인천으로 돌아왔다.
그러면 이제 창세기 1장 1-5절에서 절 번호를 빼고 문장을 다시 보기 바랍니다.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는 절 번호가 없었으므로 다음과 같은 구조로 됩니다.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And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and darkness was upon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 of the waters.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And God saw the light, that it was good: and God divided the light from the darkness. And God call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he called Night.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rst day.
그러면 보시다시피 1-5절은 계속해서 and로 연결되는 보통의 평범한 영어 문장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데를 다 ‘그리고’로 번역하면 말이 안 됩니다.
‘그리고’는 대개 같은 주어가 이어지면서 어떤 일이 끝난 뒤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보여 주는 데 사용됩니다.
표준역의 1절과 2절을 보기 바랍니다.
1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2 그리고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였으며 어둠이 깊음의 표면 위에 있었더라.
1절은 주어가 하나님이고 2절은 주어가 땅과 어둠입니다.
이처럼 1절과 2절이 주어가 다를 때 and를 ‘그리고’로 번역하면 말 자체가 안 됩니다.
그러면 이제 흠정역으로 1-2절을 보겠습니다.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더라.
1절 끝의 마침표와 2절의 ‘고’, ‘며’가 우리말에서는 이미 and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사실 1절은 하나님께서 우주 공간과 그것의 센터인 지구를 무에서 유로 창조하셨다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2절에 ‘그리고’가 나오면 말이 꼬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 황영조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에서 1등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신문 기사에 이런 제목과 글이 뜹니다.
제목: “황영조 마라톤 경주에서 세계를 제패하다”
기사: 우리나라의 황영조 선수가 자랑스럽게도 올림픽에서 다른 모든 유명한 선수들을 제치고 2시간 몇 분의 기록으로 1등을 하였습니다...
이 경우 제패한 것은 이미 과거의 일이지만 ‘제패하다’로 써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현재를 묘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는 현재 시제가 아니라 제목처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현재 시제가 되려면 ‘하시느니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어 단어들이 다 영감을 받았으니 그대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은 난센스 중의 난센스입니다. 우리말답게 번역해야 합니다.
사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히브리어를 그대로 살려서 가장 영어답게 정확하게 번역한 것입니다.
영어는 and가 없으면 말이 안 되니까 계속해서 and가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대부분의 경우 and를 그리고로 번역하는 것이 불필요하고 번역하면 오히려 졸역이 됩니다.
우리말에서는 이미 ‘고’, ‘며’, 마침표 등에 and가 다 들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And Jesus entered and passed through Jericho.
2 And, behold, there was a man named Zacchaeus, which was the chief among the publicans, and he was rich.
3 And he sought to see Jesus who he was; and could not for the press, because he was little of stature.
4 And he ran before, and climbed up into a sycomore tree to see him: for he was to pass that way.
표준역
1 이후에 예수님께서 예리코로 들어가시어 그곳을 지나가셨더라.
2 그리고 보라, 삭개오란 이름으로 불리는 한 남자가 있었으니, 세리들 사이에서 우두머리인 자였고 그가 부유하였더라.
3 그리고 그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그분을 보고자 하였더라. 그런데 인파로 인하여 볼 수 없었으니, 그의 키가 작았기 때문이라.
4 그러자 그가 앞으로 달려가서 그분을 보려고 뽕나무 하나에 올라갔더라.
표준역은 1절 시작의 and를 ‘이후에’라고 임의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2절 시작의 and를 ‘그리고'로 번역하였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1절과 2절의 주어가 다르기 때문에 2절의 and는 ‘그리고’로 하면 안 됩니다. 우리말로 굳이 하지만 ‘그런데’ 정도가 가능할 것입니다.
또 2절 중간에 세리들 사이에서 앞에는 which가 있으므로 이것을 '그가'로 번역해야 두 번째 문장의 주어가 있게 됩니다.
'세리들 사이에서 우두머리인 자였고 그가 부유하였더라.'로 하면 우리말이 아닙니다.
3절 첫 부분의 ‘그리고’도 심히 어색함을 누구라도 느낄 것입니다. 표준역 번역자는 뒤에서 그런데를 자기 마음대로 추가하였습니다.
4절 첫 부분에서 and를 그들은 ‘그러자’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자’는 어떤 일을 하고 나니까‘의 뜻입니다. 그런데 3절 끝은 삭개오의 키가 작다는 상태를 보여 주므로 여기서 ’그러자‘는 문맥 맞지 않는 접속사입니다. 그리고 표준역은 4절 중간의 콜론(:)을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영어 그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그리고, 그러자를 자기들 마음대로 넣고 말이 안 되니까 그런데를 마음대로 추가하면 이것은 올바른 성경 번역이 될 수 없습니다.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이것을 읽고 이게 무슨 뜻인지 머릿속에 들어올까요?
흠정역을 보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거기를 지나가시더라.
2 보라, 삭개오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리들 가운데 우두머리요 또 부자더라.
3 그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려고 애쓰되 키가 작으므로 밀려드는 무리로 인해 볼 수 없어서
4 앞으로 달려가 그분을 보려고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그분께서 그 길을 지나셔야 하기 때문이더라.
흠정역처럼 1절 처음의 and는 그 전의 18장 마지막 절의 마침표로 이미 번역이 된 것입니다.
2절 처음의 and도 1절 끝의 마침표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which를 미리 살려서 '그는'이 먼저 나오므로 주어가 살아서 온전한 문장이 됩니다.
3절 첫 부분의 and도 2절 마침표로 번역이 되었고 4절 첫 부분의 and는 3절 끝부분에 ‘볼 수 없어서’로 알맞게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and를 위의 15가지 용례에 맞게 번역해서 우리말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도 sycomore tree는 뽕나무가 아니라 돌무화나무가지요.
결론
영어 성경의 and를 거의 다 그리고로 번역하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그렇게 하면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졸역 내지는 오역이 나옵니다.
우리말 번역 시 and는 마침표, ‘고’, ‘며’, ‘과’(혹은 와, 사과와 배, 사과 그리고 배 No!)와 위의 15가지 용례 중 하나로 우리말답게 번역해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번역을 하고는 단순한 사람들을 미혹에 빠지게 하는 일을 하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습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12 11:41:08 | 관리자
킹제임스 흠정역의 퓨어 케임브리지 영어 본문은 미국 최대 성경 출판사가 쓰는 베스트 본문이다
안녕하세요?
요즘 표준역이란 역본이 나와 자기들이 1769년 케임브리지 표준 본문을 쓰고 있다고 하며 흠정역같이 다른 본문을 쓰는 역본들은 오류가 많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거짓말이 오래가면 결국 탄로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드디어 표준역 번역자는 자기가 스스로 영어 본문을 제조해서 1769년 케임브리지 표준 본문이라고 했음을 실토하였고 적어도 45개의 오류가 있음을 시인하였습니다.
표준 킹제임스 번역자의 이실직고
사실 킹제임스 성경의 영어 본문을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은 시간이 지나며 철자법이 고정되면서 그에 따라 올바르게 교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troden이 trodden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개정이 아닙니다.
또한 한 군데(대하33;19)에서 all his sins가 all his sin으로 교정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sin이 원어에 단수이기 때문입니다.
His prayer also, and how God was intreated of him, and all his sin, and his trespass, and the places wherein he built high places, and set up groves and graven images, before he was humbled: behold, they are written among the sayings of the seers.
이런 것들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 개정이 아니라 교정(정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영어 본문 변천 과정은 다음을 보기 바랍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에 대하여
현재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퓨어 케임브리지판의 영어 본문 거의 99.9% 동일하고 다음 기사에서 보듯이 12구절에서 심히 단순한 차이들만 있습니다(대소문자, a냐 e냐, and냐 or냐 등).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12구절의 미세한 차이들
다시 말씀드립니다.
1. 표준역이 주장하는 <1769 표준 케임브리지 에디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가 제조한 것입니다.
2.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퓨어 케임브리지 판은 거의 동일하고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자들이 이런 것을 가지고 논쟁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의심만 불러일으키는 악한 행위입니다.
위의 글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12구절 미세한 차이들>에서 저자는 맨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당신이 요한일서 5장 8절에서 대문자나 소문자 's'에 대해 논쟁할 때 학자들과 KJV 비평가들이 메모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당신의 말이 감시되고 기록되고 당신 자신의 의심과 질문이 성경 불가지론자들에게 미래에 당신에게 불리하게 사용될 더 좋은 자료를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당신과 KJV에 대해 당신 자신의 주장을 사용할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지켜보고 기록하고 시험하고 계십니다. 그러한 사소한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그분과 그분의 인도를 구하십시오. 당신이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스스로 찾아보기 바랍니다.
진리를 찾고자 하는 당신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 본문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 본문이 1909년경에 나와 가장 최근의 철자법 등을 반영하고 미국 최대 성경 출판사가 그것을 사용하기에 영어 본문으로 채택하였습니다. 표준역처럼 수제 본문을 마음대로 제조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것 말고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이에 대해 표준역 진영 사람들은 “그것은 1인이 만든 것이다.”, “그것은 은사주의자가 만든 것이다.” 등의 말을 하면서 비방을 합니다.
하나님은 불신자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얼마든지 쓰십니다.
1. 대표적인 예가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였는데 유다 사람들을 그들의 땅으로 돌려보내는 위대한 일을 하였습니다.
2. 또 에라스무스는 킹제임스 성경의 저본인 그리스어 공인 본문을 만들어 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개종하지 않고 평생 천주교도로 살았습니다. 그가 천주교도라는 것이 공인 본문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3. 1760년 케임브리지판은 파리스가 홀로 만들었습니다(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모름).
4. 1769년 옥스퍼판 본문도 블레이니가 홀로 만들었습니다(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모름).
5. 1884년 스크리브너판은 스크리브너가 홀로 만들었습니다(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모름). 그는 심지어 킹제임스 성경을 반대하면서 영어 개역 성경 번역 위원회의 위원으로 일한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는 번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번역 이후 철자법의 변화에 따른 교정을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영어 본문은 대개 개인이 홀로 시간의 변화에 따른 철자법 등을 고친 것에 불과합니다.
1909년경의 pure cambridge edition 본문도 역시 한 개인이 전체적인 교정 일을 하였습니다(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모름). 그리고 교정의 양도 얼마 안 됩니다. 이미 스크리브너까지 오면서 거의 다 교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후대의 것이니 당연히 1769년 옥스퍼드판보다 철자법 등 모든 면에서 향상이 되었습니다.
누가 혹은 몇 명이 일을 했느냐갸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작업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실수가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나서 여러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것을 쓰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세상에는 지금 여러 종류의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다 1769년 옥스퍼드판에서 나온 것이고 거의 다 동일합니다. 요일5:8의 s, S 정도의 차이를 빼고.
미국 최대 성경 출판사 퓨어 케임브리지 본문 사용
그러면 pure Cambridge edition 본문을 누가 사용해서 지금까지 성경을 출간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현재 미국 홀맨 성경 출판사(Holman Bible Publisher)는 pure Cambridge edition의 KJV를 출간합니다. 이 출판사는 미국 남침례교 소속 출판사(Lifeway의 자매 회사)이고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경 출판사로서 1743년부터 영어 성경을 출간해 오고 있습니다(위 그림 오른쪽 설명 글).
Holman Bibles is the oldest Bible publisher in North America dating back to 1743 and is committed to publish Bibles and reference products of the highest quality that are trustworthy, accessible, and useful for the pursuit of lifelong discipleship. Just a few of our resources include:
이들은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홀맨 출판사의 이 킹제임스 성경은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을 사용하는데 이 에디션은 킹제임스 성경의 정확한 판들 중 가장 널리 인정된 판들 가운데 하나이다(위 그림 왼쪽 설명 글).
This
Bible uses the Pure Cambridge Edition, which is one of the most widely recognized accurate editions of the KJV.
홀맨 출판사 킹제임스 성경
아마존에 가서 ‘pure cambridge edition king james version’으로 검색하면 여러 출판사들이 지금도 여전히 pure cambridge edition KJV를 출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미국에서 가장 큰 성경 출판사와 다른 출판사들이 퓨어 케임브리지판을 써서 성경을 출간할까요?
그것이 공신력 있는 베스트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 역시 자기들의 본문을 사용해서 성경을 출판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 답변: 우리가 현재 출간하는 킹제임스 성경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소소하게 업데이트된 것들을 포함한 1769년판’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Our
KJV is based on the 1769 albeit with some minor updates over the year.
케임브리지 대학 답변에서 1769년판이란 표준역 번역자가 말했듯이 당연히 1769년 옥스퍼드판입니다.
그러면 흠정역 성경의 퓨어 케임브리지 본문과 케임브리지 출판사의 본문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제가 알기로는 요한일서 5장 8절의 영이 대문자(the Spirit)냐, 소문자(the spirit)냐 밖에 없습니다.
다음 편지를 보면 심지어 케임브리지 출판사도 1985년 6월 3일 이전까지는 요일5:8에 소문자 spirit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이 편지를 받고 그 이후 출간되는 성경부터 대문자 Spirit으로 임의로 바꾼 것 같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미국에서 훨씬 더 많이 사용되므로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 성경보다는 홀맨 출판사 성경이 더 많이 출간되고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 성경은 최고급 재질로 만들어져서 매우 비싸며(평균 100-150달러) 홀맨 출판사 성경은 보통 재질로 만들어져서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입니다(평균 40-50달러).
차이는 요한일서 5장 8절의 대소문자 spirit 정도입니다.
요한일서 5장 8절의 진실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보기 바랍니다.
요한일서 5장 8절의 진실
결론
표준역 영어 본문에는 오류가 적어도 46개 됩니다.
흠정역 영어 본문에는 오류가 없습니다(혹시 있으면 알려 주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킹제임스 성경 영어 본문을 가지고 성도들을 우롱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마귀를 돕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선물로 주신 것은 1611년에 인쇄된 본문, 1769년에 인쇄된 본문, 1909년에 인쇄된 본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1611년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담은 킹제임스 성경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판 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존된 말씀인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선물의 의미에 어떤 것도 더하지 못합니다. 1611년 성경 발행 이후의 본문 변화는 인간의 언어(철자법)가 변하거나 인쇄 기술이 변하면서 이것을 교정한 것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아포스트로피, 하이픈, 대소문자 등은 원래 원문에 없던 것들이며 이런 것들이 설사 판별로 미세하게 몇 부분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에 어떤 문제를 결코 가져오지 않습니다.
리건 박사의 다음 글이 모든 문제의 결론을 이야기해 줍니다.
여러분은 이제 확신을 가져도 된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손에 있는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개정된 것’이 아니라 ‘정화된 것’이다.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이 우리를 위해 ‘영어로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정확성에 대한 권위는 1611년판 ‘킹제임스 성경’의 초판 인쇄본 – 여기다 더하면 1760년판, 1769년판, 1909년판, 케임브리지판 혹은 옥스퍼드판 - 에 있지도 않고 제임스 1세의 인품에 놓여 있지도 않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문학의 뛰어난 업적에 있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스어 ‘공인 본문’에 있지도 않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KJV)이라는 절대 무오한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그분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우리 손에는 그분의 완전한 말씀이 있다.
2023-07-11 17:05:40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