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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스가랴서 14장 5절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어 간단히 적습니다. 흠정역: 또 너희가 그 산들의 골짜기로 도망하리니 이는 그 산들의 골짜기가 아살에까지 이를 것이기 때문이라. 참으로 너희가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시대에 지진 앞에서 피하여 도망한 것 같이 하리라. 또 {주} 내 [하나님]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성도가 너와 함께 임하리라.   KJB: And ye shall flee to the valley of the mountains; for the valley of the mountains shall reach unto Azal: yea, ye shall flee, like as ye fled from before the earthquake in the days of Uzziah king of Judah: and the LORD my God shall come, and all the saints with thee.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맨 끝에 나오는 with thee입니다. 이 thee가 누구인가가 문제입니다. 영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너와 함께, 당신과 함께입니다. 그러면 너 혹은 당신은 누구일까요?   다른 성경들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개역, 한킹: 주와 함께바른: 그분과 함께   이런 것은 번역자의 본문 이해에 달려 있습니다.   켄달 박사는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의견을 공유하였습니다.   Zechariah 14:5 And ye(plural=Jersalemites/Jews, 복수 예루살렘 사람들/유대인들) shall flee to the valley of the mountains; for the valley of the mountains shall reach unto Azal: yea, ye(plural=Jersalemites/Jews 복수 예루살렘 사람들/유대인들) shall flee, like as ye (plural = Jersalemites/Jews 복수 예루살렘 사람들/유대인들) fled from before the earthquake in the days of Uzziah king of Judah: and the LORD my God (스가랴의 주 하나님) shall come (그 하나님께서 아살에 있는 예루살렘 사람들/유대인들에게 오심) He will come to all of you and also to) all the saints (또 그분께서는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는 비유대인들에게도 오심 non-Jews who went with them) with thee(this is referring to the Jerusalemites/Jews as a single person, 여기의 thee는 예루살렘 사람들/유대인들을 2인칭 한 사람으로 표현한 것임).   즉 모든 성도들이 너와 함께 즉 예루살렘 사람들/유대인들과 함께 옵니다.   이것은 이미 7년 전쯤에 휴거받은 교회(주로 이방인들)라 볼 수 있습니다.   롬8:19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창조물이 간절히 기대하며 기다리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라.   여기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미 휴거되어 몸이 영화롭게 변화된 성도들입니다. 아마도 이렇게 보는 것이 가장 유연하게 해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우리는 ‘너와 함께’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물론 다른 성경들처럼 다른 해석도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샬롬
2020-06-18 13:21:19 | 관리자
안녕하세요? 한 분이 시24:6에 대해 질문을 하셔서 답을 드립니다. 킹제임스 성경 시24:6: 이것이 그를 찾는 자들의 세대요, 오 야곱아, 네 얼굴을 찾는 자들의 세대로다. 셀라. 바른 성경: 이런 사람은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며,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이다. 셀라 KJB 24:5-6 He shall receive the blessing from the LORD, and righteousness from the God of his salvation.This is the generation of them that seek him, that seek thy face, O Jacob. Selah. 위에서 보듯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과 다른 성경들은 번역이 다릅니다.주석들도 대개 다른 성경들의 입장을 지지합니다.   그러면 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이처럼 번역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시편 24편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는 의로운 사람을 찾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 보면 이런 사람은 구원받은 자 야곱 즉 이스라엘입니다.   사실 이 시편은 야곱에게 주어진 것이며 그에게 “누가 주의 산에 오를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야곱은 ”내가 오를 수 있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3-5절에서 야곱과 같은 이런 사람을 언급하고 야곱에게 묻습니다. “야곱아, 우리가 네 얼굴을 구할 수 있느냐?”   3-5절의 he가 곧 6절의 he입니다.   그리고 6절의 ‘그를 찾는 자들의 세대’는 1-5절에 언급된 종류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편견 없이 시편 24절을 보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시)   땅과 거기의 충만한 것이 { 주} 의 것이요, 세상과 그 안에 거하는 자들도 그러하니그분께서 바다들 위에 그것을 세우시고 큰물들 위에 그것을 굳게 세우셨도다.누가 { 주} 의 산에 오르리요? 누가 그분의 거룩한 곳에 서리요?깨끗한 손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자 곧 헛된 것을 향해 자기 혼을 들지 아니하고 속임수로 맹세하지 아니한 자로다.그가 { 주} 께 복을 받고 자기의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받으리니이것이 그를 찾는 자들의 세대요, 오 야곱아, 네 얼굴을 찾는 자들의 세대로다.
2019-12-27 13:30:27 | 관리자
시편 68편 4절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간단히 설명합니다.   여기의 ‘야’는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하는 이름입니다. 여호와 즉 ‘야’는 스스로 존재하는 분을 뜻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분이 하늘들을 지었으므로 즉 창조자이므로 그분은 자기 이름(스스로 존재하는 자, 창조자)에 근거하여 자신이 지은 하늘들(창조물)을 타고 다니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그 창조자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개역성경은 광야에서 행하시던(걸으시던) 분은 NASB와 같습니다. 개역성경은 NASB의 전신인 ASV를 기초로 번역되었으므로 그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공동 번역은 구름들로 나오는데 이것은 NIV와 같습니다. 요약: 창조자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표현하려면 전 우주 공간(하늘들)을 타고 다니는 창조자 하나님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이것이 프로테스탄트 본문이 말하려는 바입니다.   킹제임스: [하나님]께 노래하며 노래로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라. 자신의 이름 {야}를 힘입어 하늘들을 타신 분을 높이 찬양하며 그분 앞에서 기뻐할지어다.KJB: Sing unto God, sing praises to his name: extol him that rideth upon the heavens by his name JAH, and rejoice before him.   개역: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 이름을 찬양하라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자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 그 앞에서 뛰놀지어다공동: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수금 타며 그 이름 노래하여라. 구름 타고 오시는 분께 길을 비켜드려라. 야훼 그 이름을 찬양하고 그의 앞에서 춤을 추어라.NIV:  Sing to God, sing praise to his name, extol him who rides on the clouds--his name is the LORD--and rejoice before him.NASB: Sing to God, sing praises to His name; Lift up [a song] for Him who rides through the deserts, Whose name is the LORD, and exult before Him.   샬롬   패스터
2019-11-16 15:27:22 | 관리자
안녕하세요?   킹제임스 성경에는 대제사장과 수제사장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반면에 기존 성경들은 수제사장을 다 대제사장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고 하는 대제사장의 관저에 모여(바른 성경 마26:3) 그때에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저에 함께 모여(킹제임스)   기존 성경을 따르면 한 해에 대제사장이 다수였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한 명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들’이라는 복수는 유대인들의 규정과 맞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카톨릭 성경은 매우 흥미로운 번역을 보여 줍니다.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카야파라는 대사제의 저택에 모여(카톨릭 성경)   즉 이 성경은 대제사장들이 아니라 수석 제사장들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오늘은 이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수제사장과 대제사장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성경적 답변   킹제임스 성경의 경우 수제사장(chief priest)과 대제사장(high priest)이라는 용어는 신약과 구약 모두에 나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두 용어를 서로 바꾸어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두 용어가 두 구절에서 함께 나오기 때문에 그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왜 둘 다 한 구절에 나옵니까? 다음은 성경에서 두 용어를 모두 포함하는 유일한 두 구절입니다.   그때에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저에 함께 모여 예수님을 교묘히 붙잡아 죽이려고 협의하였으나(마26:3-4)   Then assembled together the chief priests, and the scribes, and the elders of the people, unto the palace of the high priest, who was called Caiaphas, 그들이 예수님을 대제사장에게로 끌고 갔는데 그와 더불어 모든 수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모여 있더라(막14:53).   And they led Jesus away to the high priest: and with him were assembled all the chief priests and the elders and the scribes.   또한 제레이먀(J. Jeremias)는 대제사장과 수제사장들이라는 호칭이 서로 바뀔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입증했습니다. 이 논의의 목적은 수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의미   ‘대제사장’이라는 호칭은 구약에 21회, 신약에 54회 나옵니다. 신약에서 ‘대제사장’에 대한 그리스어는 아르키에류스(archiereus)입니다. 이 단어는 문자 그대로 ‘처음이 되는 제사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 단어는 제사장직이 여기에서 시작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8장 1절은 이스라엘을 위한 제사장 직무를 규정하는 것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한 그의 아들들을 네게로 취하여 그가 제사장의 직무로 나를 섬기게 할지니 곧 아론과 아론의 아들은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취할지니라(출28:1)   이 구절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모두 이스라엘의 제사장이었음을 보여 주지만 출애굽기 31장 10절은 아론이 제사장 아론(the priest)이나 대제사장으로 이해되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 구절에서 아론은 제사장 아론(the priest)이라고 불립니다.   ...제사장의 직무로 섬길 때에 입는 섬김의 예복 곧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의복들과 그의 아들들의 의복들과 (출31:10) 제사장 아론이나 대제사장이라는 용어는 제사장 중에서 가장 높은 직책을 맡은 성직자를 의미합니다. 대제사장이라는 용어는 레위기 21장 10절에 처음 나옵니다.   대제사장직의 성격   출애굽기 28장 1절에서 29장 46절은 이스라엘의 제사장직 규정에 대한 내용을 자세하게 알려줍니다. 대제사장의 의복(푸른 겉옷, 에봇, 흉패 및 금으로 된 패에 ‘주님께 거룩한 것’이라고 새긴 관)은 독특하고, 영적으로도 특별한 위치를 상징하고 있었습니다(출29:1-37; 레6:19-22; 슥3:4-5). 흉패는 의로운 심판을 상징했으며(출28:29-30),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의 뜻을 결정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출28:29-30). 대제사장은 특별하게 성결의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가 죄를 지으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죄가 되었습니다(레4:3-12).   대제사장의 기능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였으며 오직 속죄일에만 지성소에 들어가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속죄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유형이었습니다. 히브리서 9장 15절과 12장 24절은 예수님이 새 상속 언약의 중재자라고 말합니다(히8:6).   레위기 23장 26-32절은 7월 10일을 영원한 속죄일로 제정합니다. 레위기 16장 6-34절은 속죄일에 하는 일들을 설명합니다. 레위기 16장 6절에서 아론이 제사 행위를 수행할 것이라고 말해 주므로 이것은 중요합니다. 이것이 대제사장의 기능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시대에 대제사장의 책임은 다음과 같습니다. 속죄일에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속죄하며, 자기가 원할 때 희생물에 참여하고, 산헤드린 공회 의장으로서의 기능을 하며, 다양한 의식 의무를 수행하고, 성전, 제사장, 레위족속의 제사장들과 규례에 대한 감독 및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일 등입니다(말2:1-9).   수제사장의 의미   수제사장이라는 용어는 구약에 일곱 번 나오며(왕하25:18 등) 특히 신약에 많이 나옵니다. ‘수제사장’이라는 용어는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대제사장과 바꿔 쓸 수는 없습니다. G. D. Fee는 수제사장이라는 직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슈러(E. Shürer) 시대부터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용어가 대제사장이나 전직 대제사장 혹은 일반적으로 ‘대제사장의 특권을 부여받은 특권 가족의 일원’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Shürer, II, I, 202-206). 그러나 제레미야(J. Jeremias)는 수제사장이 대제사장과 성전의 대장뿐만 아니라 성전 감독자들과 탈무드에 두 번 등재되어 있는 재무관도 포함하는 특별한 성전 책임자 그룹을 언급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득력 있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Tosephta Shekalim ii, 14, 177; Mishnah Shekalim v. 1-2).”   제레미야(J. Jeremias)는 대제사장이 매일 성전 책임을 맡은 수제장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시대의 수제사장들은 순서대로 다음의 역할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전의 대장 주간 계열 책임자매일 계열 책임자성전 감독자성전 재무관   성전의 대장은 최고 높은 수제사장으로 대제사장을 보좌했으며 대개 대제사장의 후계자였습니다. 주간 계열 책임자는 24개의 제사장 계열을 위해 일반 제사장들의 일정을 담당하였습니다. 매일 계열 책임자는 156개의 매일 계열을 위해 일반 제사장들의 일정을 담당하였습니다. 성전 감독자들은 성전을 감독했으며 성전 재무관은 성전의 재정을 관리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4절은 이 고위 관리들이 산헤드린위원 공회의 일원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결론   이제 우리는 마태복음 26장 3-4절에서 대제사장이 모든 제사장들 중에서 선임된 제사장이었고 수제사장들은 그의 보좌 참모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카톨릭 성경의 수석 사제(제사장)이라는 표현은 적합한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4절에서 보듯이 수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가야바라는 대제사장의 관저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교묘히 예수님을 붙잡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결론을 내리기 전에 우리는 “교회에서 당신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주님을 섬기도록 자신을 내어 놓습니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은 마음으로부터 주님을 섬기겠다고 헌신한 거룩한 사람들이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설명합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교회를 지지합니까 아니면 비판합니까? 우리는 이 논의를 통해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의 마음에 오기를” 바랍니다. 참조: https://www.neverthirsty.org/bible-qa/qa-archives/question/what-is-the-difference-between-chief-priests-and-high-priests/
2019-11-14 17:57:25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떤 분들은 1611년 판에 'but saved Noah the eight preson'으로 되어 있어 "...노아의 여덟 명”으로 로 번역해야 하는데 왜 ‘but saved Noah the eighth preson’을 대본으로 취해 "...여덟 번째 사람 노아"를 구원했느냐고 묻습니다.   'eighth person'에 해당하는 그리스말은 단수입니다. 이것은 스트롱 번호 3638에서 유래되어 ‘제8의’, 여덟번째 <행7:8>형. the eighth를 뜻합니다.   And he gave him the covenant of circumcision: and so Abraham begat Isaac, and circumcised him the eighth day; and Isaac begat Jacob; and Jacob begat the twelve patriarchs.   또 할례의 언약을 그에게 주셨느니라. 이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아 여드레째 되는 날 그에게 할례를 행하였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열두 족장을 낳으니라(행7:8).   복수가 되려면 'eight persons'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원래 단수인 것을 그대로 단수로 번역한 것이 옳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여덟 사람으로 번역된 것은 오역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덟 사람이 옳다고 주장하면 단순히 그런 사람을 따르지 말기 바랍니다.    영어 본문은 Cambridge Pure text를 보시기 바랍니다.   http://new.keepbible.com/KJB2/View/2Vo   샬롬  
2019-10-08 12:43:53 | 관리자
<여자는 한 명도 찾지 못하였다>   전도서 7장 28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8 내 혼이 아직도 찾고 있으나 내가 알아내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곧 내가 천 명 가운데서 한 남자를 찾았으나 그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여자는 한 명도 찾지 못하였느니라.   왜 솔로몬이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늘 그러하듯이 이 절 역시 앞뒤 문맥을 보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래서 25-29절 전체를 살펴보고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25 내가 내 마음을 기울여 지혜와 사물의 이치를 알고 탐구하여 찾아내려 하였으며 또 어리석은 짓 곧 어리석은 것과 심지어 미친 것의 사악함을 알고자 하였는데26 마음이 올가미와 그물 같고 두 손이 묶는 띠 같은 여자가 죽음보다 더 쓴 것을 내가 알게 되었도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녀에게서 벗어나려니와 죄인은 그녀에게 붙잡히리로다.27 선포자가 이르되, 보라, 내가 하나씩 하나씩 세어가며 전말을 알아내어 이것을 알게 되었노라.28 내 혼이 아직도 찾고 있으나 내가 알아내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곧 내가 천 명 가운데서 한 남자를 찾았으나 그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여자는 한 명도 찾지 못하였느니라.29 보라, 내가 발견한 것은 오직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사람을 곧바르게 만드셨으나 그들이 많은 창안물을 찾아냈다는 것이라.   25절은 솔로몬이 사물의 이치를 찾고자 노력한 것을 보여 줍니다.   26절은 악한 여자가 죽음보다 더 나쁘다는 것을 그가 알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실로 그는 1,000명의 아내와 첩을 두었습니다.   그에게 아내들 곧 왕비 칠백 명과 첩 삼백 명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돌렸더라(왕상11:3).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는 자기가 취한 아내들이 모두 악한 자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25절이 그것을 보여 주니다.   솔로몬이 늙었을 때에 그의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그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주} 그의 [하나님]께 대해 완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솔로몬이 시돈 사람들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족속의 가증한 신 밀곰을 따랐기 때문이라(왕상11:4-5).   그러면서 28절이 나옵니다. 그는 좋은 남자는 1,000명 중에 하나를 찾기도 어렵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고 나서 1,000명의 여자들 중에서는 1명도 선한 여자를 찾지 못하였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그가 취했던 1,000명의 여인들로 인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남자들 가운데는 선한 사람이 있고 여자들 가운데는 없다는 식으로 이 구절의 결론을 내리면 안 됩니다. 여기의 포인트는 사람들 가운데는 선한 사람을 찾기가 심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자들 이야기는 본인의 체험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29절이 이것을 잘 보여 줍니다. 남자든 여자든 하나님을 사람을 곧바르게 만드셨지만 사람들이 꾀를 내어 악한 짓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남녀가 차이가 없습니다.   아마 이렇게 이 부분을 보는 것이 합당한 해석이 될 것입니다.   샬롬   패스터
2019-09-06 10:31:16 | 관리자
그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사순절/고난주간을 지켜왔었다. 이제 알고보니 성경에 어디에도 이것들을 지키라고 하는 내용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작을 잘못된 교회에서 한것이다. 이제라도 올바른것을 알고 행할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04-15 09:56:00 | 김성관
안녕하세요?   오늘은 잠언 4장 23절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킹제임스: 열심을 다해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산물들이 거기에서 나오느니라.   바른: 그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마음은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공동: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그것이 바로 복된 삶의 샘이다.   KJB: Keep thy heart with all diligence; for out of it are the issues of life.   NIV: Above all else, guard your heart, for it is the wellspring of life.   이 구절에서 핵심은 issues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issue를 문제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생명의 문제들’ 혹은 ‘인생의 문제들’이 거기서 나온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issue라는 말은 흘러나가는 것을 뜻합니다.   한국서 근무하는 미국 군인들을 줄여서 GI라고 부릅니다. 그 말은 원래 government issues라는 것입니다. 즉 정부가 내보낸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정부 문제라고 번역하면 안 되지요.   issues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은 스트롱 번호가 8444이고 이 말은 다 흘러나가는 것을 뜻합니다.   즉 생명에서 흘러나가는 것들(생명의 생산물들)은 다 마음에서 나간다는 말입니다.   흘러나가는 것을 기존 번역에서는 근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샘이나 근원 모두 아주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원어에 근접한 것입니다.   주석들을 보니 ‘생명의 issue들’에는 바른 원리, 바른 생각, 바른 행동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샬롬   패스터  
2019-04-11 10:15:36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잠언 18장 1절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킹제임스: 어떤 사람은 소원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분리하고 모든 지혜를 구하며 그것과 상관하느니라.   바른: 욕망을 따라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바른 지혜를 모두 배척한다.   공동: 남 잘되는 것을 배아파하는 사람은 외톨이가 된다.   KJB: Through desire a man, having separated himself, seeketh and intermeddleth with all wisdom.   NIV: An unfriendly man pursues selfish ends; he defies all sound judgment.   이 구절은 해석 및 번역에 많은 논쟁이 있는 유명한 구절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석들도 보면 역시 긍정적인 견해와 부정적인 견해로 나뉩니다.   우리는 잠언이 지혜를 알려주는 책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해석을 취하였습니다. 즉 지혜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지혜를 찾아다니는 부지런한 사람이 있는 것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벤슨의 주석을 보면 KJB 영어 성경 자체가 이렇게 번역됨을 보여 줍니다.   Proverbs 18:1-2. Through desire, a man having separated himself, &c. — According to this translation, the sense of this controverted proverb is, Through desire of wisdom, a man, having separated himself from the company, and noise, and business of the world, seeketh and intermeddleth with all wisdom — Uses all diligence that he may search and find out all solid knowledge and true wisdom.   존 길도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그렇게 보았습니다.   Through desire a man having separated himself, seeketh,.... Or, "a separated man seeketh desire" (g); his own desire, will, and pleasure. This is either to be understood in a good sense, of one that has a real and hearty desire after sound wisdom and knowledge, and seeks in the use of all proper means to attain it; and in order to which he separates himself from the world and the business of it, and retires to his study, and gives up himself to reading, meditation, and prayer; or goes abroad in search of it   텍스트를 그대로 둔 채 여러분이 부정적인 해석을 취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어 KJB의 번역은 그렇게 되는 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안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9-04-11 09:34:38 | 관리자
창세기 1장 1절의 하늘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창1:1은 다음과 같습니다.   KJB: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NIV, NASB 등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여기의 the heaven이 원래 복수이므로 KJB가 틀렸다고 말합니다.   NIV, NASB: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KJB에서 the heaven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샤마임(8064 !yIm'v; shamayim {shaw-mah'-yim})으로서 구약 성경에 총 421회 나오며, 하늘, 하늘들, 공중(air)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들의 주장대로 샤마임은 항상 복수로만 번역되어야 할까요?   Englishman’s concordance로 스트롱 번호 8064를 치면 전체가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이 단어는 창1:8, 9, 14, 15, 17에서처럼 단수 heaven으로, 창1:26, 28, 30에서처럼 단수 air로 번역되었고 2장에서 가서  1,4절은 복수 heavens로, 그 뒤에는 역시 air, heaven 등으로 쭉 나옵니다.   그러면 다른 성경은 어떨까요? NIV, NASB도 KJB처럼 다른 구절들에서는 모두 단수로 번역하였습니다. 다만 NIV, NASB는 the air를 the sky로 번역하였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왜 NIV, NASB 등은 일관성 있게 이 단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복수로 번역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두 복수로 번역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단어의 번역은 앞뒤 문맥에 의해 결정됩니다.   창세기 1장에서 KJB는 일관성 있게 이 단어를 단수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야 이 하늘이 바로 1차적으로 8절, 9절의 궁창을 나타내는 하늘이기 때문입니다.   7 And God made the firmament, and divided the waters which were under the firmament from the waters which were above the firmament: and it was so. 8 And God called the firmament Heaven.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second day.   7 [하나님]께서 궁창을 만드사 궁창 위의 물들에서 궁창 아래의 물들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께서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둘째 날이더라.   그러면 1장 1절의 하늘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히브리 개념으로 이것은 천체들을 두는 우주 공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1장 1절은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땅과 우주를 창조하셨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면 우주 공간에는 새들이 날아다니는 하늘(the air, sky)도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장에 가서는 1장의 모든 일을 요약하면서 두 개의 하늘(한 우주)이 창조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2:1 Thus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host of them.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니라.   물론 여기의 모든 군대는 땅과 우주의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그대로 두고 앞뒤 문맥으로 잘 이해해야만 합니다.   “모두 복수로 해야 한다” 등의 논리로는 성경 번역이 안 됩니다.   the airs라고 할 수 있나요? firmament는 하나이므로 heavens로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창1:1에 보면 땅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면 땅의 물은 언제 창조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언제 창조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이 땅 전체에 기록해도 다 할 수 없습니다.   땅이 창조되었으면 당연히 물도 그 날 창조되었을 것으로 보면 됩니다.   창세기 1장은 전체 창조의 윤곽을 알려줍니다. 세부적인 것을 다 기록할 필요도 없고 온 지면에 기록하려 해도 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이해하고 창세기를 읽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저의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9-03-15 10:48:05 | 관리자
안녕하세요? 한 분이 시편 136편에 대해 질문해 주셔서 간단히 답을 드립니다. ---------목사님~  시편 136편을 보면 흠정역에는 '감사하라'가 이탤릭체이지만 영어성경에는 ‘endureth’가 이탤릭체인데.. 어찌된 건지요?전 영어성경에 이탤릭체로 된 것만 흠정역에도 이탤릭체로 옮긴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아닌가요? 그리고 endureth는 왜 이탤릭체일까요?  흠정역에 있는 말씀대로 시편 136장 찬양이 있으면 좋겠다하는 맘이 드네요..  1 O give thanks unto the LORD; for he is good: for his mercy endureth for ever. 1 오 주께 감사하라. 그분은 선하시며 그분의 긍휼은 영원하도다. 2 O give thanks unto the God of gods: for his mercy endureth for ever.2 오 신들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분의 긍휼은 영원하도다. 3 O give thanks to the Lord of lords: for his mercy endureth for ever.3 오 주들의 주께 감사하라. 그분의 긍휼은 영원하도다. 4 To him who alone doeth great wonders: for his mercy endureth for ever.4 홀로 큰 이적들을 행하시는 분에게 감사하라. 그분의 긍휼은 영원하도다. 5 To him that by wisdom made the heavens: for his mercy endureth for ever.5 지혜로 하늘들을 만드신 분에게 감사하라. 그분의 긍휼은 영원하도다. ...... ---------안녕하세요? 영어의 경우 ‘endureth’가 없으면 문장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역자들이 넣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넣은 것이 아닙니다. 구약 성경 전체에서 '그분의 긍휼은 영원하다'는 구절은 41번 나오는 데 다 ‘endureth’가 없어요. 그래서 역자들이 통일해서 넣은 것입니다. 넣어야 ‘지속하다’는 동사로 인해 영어 문장이 구성돼요. 히브리어에서는 없어도 이미 말이 됩니다. 우리말의 경우 ‘for ever’에 ‘endureth’까지 합쳐서 ‘영원하도다’로 한 것입니다. 즉 ‘그분의 긍휼은 영원히 지속한다’는 것입니다. 영어에서 4-25절은 시작이 ‘to him’이며 이것은 3절의 ‘Give thanks to the Lord’에 붙습니다. 영어로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말의 경우 ‘감사하라’를 안 넣으면 이상하게 됩니다. ‘감사하라’를 빼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4 홀로 큰 이적들을 행하시는 분에게, 그분의 긍휼은 영원하도다.5 지혜로 하늘들을 만드신 분에게, 그분의 긍휼은 영원하도다.6 땅을 물들 위에 펴신 분에게, 그분의 긍휼은 영원하도다.7 큰 광체들을 만드신 분에게, 그분의 긍휼은 영원하도다. ‘감사하라’가 들어가야 자연스럽지요. 흠정역 성경은 ‘감사하라’가 추가되었음을 이탤릭으로 표기하였고 다른 한글 성경은 ‘감사하라’가 추가되었음에도 이탤릭으로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이탤릭체 원칙:  1. 영어의 이탤릭은 무조건 우리말로 옮겨야 한다. 그래야 말이 된다.2. 그런데 이런 예처럼 우리말의 경우 무언가를 반드시 추가해야 하는 경우 이탤릭으로 표시한다. 주님과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는 그분의 모든 자녀들에게 그분의 긍휼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8-11-08 11:33:4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신실한 성도께서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내 주셔서 잠시 소개 합니다.------목사님 안녕하세요! 제가 구원받고 나서 정말 위안을 받고 붙들었던 말씀이 잠언 14장 26절인데요...  흠정역으로 보면 그 의미가 제가 생각해왔던 것과 많이 다른것 같아서요. 전에는 제가 주님을 믿고 의뢰하면 제 아이들도 안전하다고 이해했는데 흠정역에서는 그런거 같지가 않아서요. 여기의 his는 누구를 말하는 건가요? 소문자라서 그 의미가 헷갈립니다.  흠정역에서는 주님을 말하는 것 같고 영어에서는 소문자라 아닌 것도 같고.. 사실 주님 앞에 각자 서는 것을 생각할 때 부모의 믿음이 자녀에게 피난처를 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그래도 주님의 그 말씀을 약속으로 받고 지금까지 평강 속에 살아왔거든요. 흠정역: {주}의 두려움 속에 강한 확신이 있나니 그분의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KJB: In the fear of the LORD [is] strong confidence: and his children shall have a place of refuge. 개역: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NIV: He who fears the LORD has a secure fortress, and for his children it will be a refuge. ------간단히 답을 드립니다. 대다수 한글성경은  his를 거의 번역하지 않거나 ‘그’로 번역하여 이런 오해가 생기기 쉽습니다.당연히 여기의 his는 그분 즉 주님입니다. 부모의 믿음으로 아이들을 잘 가르치면 대개 아이들이 잘 자랄 것입니다. 그러나 잠언 14장 26절은 그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르게 번역하는 일이 매우 필요합니다.저희는 가능한 한 그의, 그녀의, 그들의 등을 다 살렸습니다. 그리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다른 역본들과 달리 주님을 가리키는 경우에도 대문자를 쓰지 않습니다. His가 아니라 his. 번역자가 번역이 아니라 임의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NIV는 의역을 하였습니다. 원어에는 he who가 없습니다.그러나 KJB, NKJB, NASB 등은 이 구절을 직역을 하여 우리 것과 같습니다.  다른 한글 역본들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공동: 야훼를 두려워하여 섬기는 사람은 힘이 있어 자식들에게 믿음직한 의지가 된다.쉬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견고한 요새를 가진 자이며, 그 후손도 그로 인해 피난처를 얻는다.바른: 여호와를 경외하면 강한 믿음이 생기고 그의 자녀들에게는 피난처가 있을 것이다. 다음을 보시면 더 이해가 잘 될 것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_m.html?board_table=qna&write_id=47  주님을 사랑하는 부모들을 통해 아이들이 교육을 받아 안전하게 살기를 원합니다.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을 줄 믿습니다. 샬롬 
2018-11-08 11:15:38 | 관리자
단번 속죄의 의미 구약 시대 이스라엘은 규례에 따라 집단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매해 다음과 같은 수의 짐승을 죽여 주님께 희생물로 바쳤습니다(민수기 28-29장, 레위기 23장 15절 이하) 1. 매일 죽여서 드리는 희생물 짐승 730마리2. 매주 죽여서 드리는 희생물 짐승 208마리3. 매달 죽여서 드리는 희생물 짐승 168마리4. 매해 유월절에 죽여서 드리는 어린양 1마리5. 무교절에 죽여서 드리는 희생물 짐승 91마리6. 초실절에 죽여서 드리는 희생물 짐승 10마리7. 오순절에 죽여서 드리는 희생물 짐승 13마리8. 나팔절에 죽여서 드리는 희생물 짐승 12마리9. 속죄일에 죽여서 드리는 희생물 짐승 10마리10. 장막절에 죽여서 드리는 희생물 짐승 218마리 매해 적어도 총 1,461마리의 희생물을 주님께 드림. 이 외에도 자원 헌물로 원하는 대로 주님께 희생물을 드림 그런데 우리 주 예수님은 단 한 번 자신을 완전한 희생물로 영원히 드림으로써 더는 이런 희생물을 드릴 필요가 없게 됨. 할렐루야! 다음 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요1;29). 히브리서 9장 11-15절 1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가올 좋은 일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시되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성막 곧 이 건물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더 완전한 성막을 통해 오셔서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를 힘입어 단 한 번 거룩한 곳에 들어가사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얻으셨느니라. 13 황소와 염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육체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 자신을 점 없이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는 죽은 행위로부터 너희 양심을 얼마나 더 많이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느냐? 15 이런 까닭에 그분께서는 새 상속 언약의 중재자이시니 이것은 첫 상속 언약 아래 있던 범법들을 구속하시려고 죽으심으로써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영원한 상속 유업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10장 11-14절 11 제사장마다 날마다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희생물들을 드리되 그것들은 결코 죄들을 제거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해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 13 그 이후부터 자기 원수들이 자기 발받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느니라. 14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 헌물을 드림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0장 18절 이제 이것들[죄들과 불법들]의 사면이 있는 곳에서는 다시는 죄로 인한 헌물이 없느니라.
2018-07-07 09:26:0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사도행전 2장의 new wine에 대해 물어서 간단히 답을 적습니다.   <사도행전 2장 13절이 궁금합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5261 와인(wine)은 동형이의어입니다. 그래서 wine은 포도주도 되고 포도즙(주스)도 됩니다. 문맥이 술인지 아닌지를 결정합니다.   new wine은 성경에 총 22군데(구약 13, 신약 9) 나오며 이것은 어디서나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주스)을 뜻합니다.   구약에서 가장 명확한 것은 사65:8에 있습니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포도송이에서 새 포도즙을 찾았으므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것을 멸하지 말라. 그것 안에 복이 있느니라, 하는 것 같이 나도 내 종들을 위해 그와 같이 행하여 그들을 다 멸하지 아니하리라.   신약에서는 마9:17 등에 나옵니다.   사람들이 새 포도즙을 낡은 부대에 넣지도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즙이 흘러나오고 부대도 못 쓰게 되느니라. 오직 그들이 새 포도즙은 새 부대에 넣나니 그리하면 둘 다 보존되느니라, 하시니라(마9:17).   이미 발효된 포도주는 탄산가스를 더 내지 못하므로 가죽 부대를 터뜨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새 포도즙은 시간이 감에 따라 발효하면서 가스를 내어 가죽 부대를 터뜨립니다.   그러므로 new wine은 새 포도즙을 뜻합니다.   사도행전 2장 13절에 나오는 ‘new wine’은 그리스어 글레우코스(gleukos, 스트롱 번호 1098)를 번역한 것이며 이 단어는 알코올이 들지 않은 '새로운 즙'(포도 주스 혹은 포도즙)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취할 수는 없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도들은 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4).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온 독실한 유대인들은 이것을 보고 모두 놀라 의심하며,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라고 말하였습니다(12).   그런데 다른 이들은 조롱하면서, 이 사람들이 새 포도즙으로 충만하다, 라고 말하였습니다(13).   요점은 바로 13절의 ‘조롱하다’라는 단어에 있습니다.   후자의 사람들은 사도들이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자 그 일을 두고 그들을 조롱하였습니다.   조롱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저들은 아무리 마셔도 술 취할 수 없는 포도즙을 먹고 술 취해 있다. 심지어 아이들도 아무리 많이 마셔도 술 취할 수 없는 포도 주스를 마시고.”   알코올이 들어 있는 포도주를 마시고 그들이 취해 있다면 그것은 결코 조롱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러나 포도 주스를 마신 뒤 취해 있다고 하면 이것은 심히 큰 조롱거리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지금은 겨우 낮의 세시이므로 너희가 짐작하는 것처럼 이 사람들은 술 취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베드로의 이 말은 우리를 조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의 new wine은 그래서 당연히 새 포도즙으로 번역해야만 문맥상 조롱했다는 말과 어울립니다.   요한복음 2장에는 가나의 혼인 잔치 기사가 나오고 예수님은 여기서 물을 와인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여기의 와인은 포도주일까요? 포도즙일까요?   잔치를 주관하는 자는 포도즙이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그 물을 떠 온 종들은 알더라.) 잔치를 맡은 자가 신랑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모든 사람이 처음에 좋은 포도즙을 내고 사람들이 충분히 마신 뒤에 덜 좋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즙을 남겨 두었도다, 하니라(요2:9-10).   여기의 wine이 포도주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러합니다.   “그 당시 풍습은 처음에 가장 좋은 포도주를 내고 술기운으로 인해 사람들의 감각이 무뎌지면 그때에 덜 좋은 싸구려 포도주를 낸다.”   그런데 가나의 혼인 잔치의 와인을 이렇게 해석하는 데는 문제가 있습니다.   나중에 나온 와인을 맛본 사람들은 나중 것이 처음 것보다 더 좋았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곧 그들이 이미 와인을 많이 마셨는데도 그들의 감각이 무뎌지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처음에 마신 것은 단순히 포도즙이었습니다.   즉 처음에 그들이 먹은 것도 포도즙이었고 나중에 마신 것은 더 좋은 포도즙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술을 미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마시고 취하라고 술을 만들어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속성에 맞지 않습니다.   포도주와 포도즙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주의 만찬 와인: 포도즙 다시 한 번 설명>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42   <술 - LIQUOR (포도주와 포도즙>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3711   <만찬과 술(포도주와 포도즙)>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3700   샬롬   패스터   
2018-06-19 15:28:10 | 관리자
형제님께서 질문하신 내용과 목사님의 답변을 읽고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 역시 이런 부분에서 고민이 되었던 적이 있어서 짧은 덧글 하나 달고 지나가겠습니다. " 그 곳에서는 "is fulfilled"로 되어 있어서, 제가 배운 바로는 원문 그대로 해석한다면 "성취되느니라"라고 해석해야 옳다고 생각해서 오늘 이렇게 정동수 목사님께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아마 형제님께서는 is fullfilled 이부분이 현재수동태 문장이라서 '성취되느니라'라고 보신 듯한데요. 이 부분은 목사님께서 위에서 '이미 완료된 현재'라고 답변을 주셨습니다. KJV를 읽다보면 이러한 Be완료형 시제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저의 부족한 지식을 하나 덧붙인다면, 이 부분은 old English에서 'Be완료형'이라는 시제용법으로 사용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be완료형은 상태의 완료를 표현하는 옛스러운 표현방식으로 현재수동태와는 형태는 비슷하나 다른 용법입니다. Are you finished with the paper?(신문을 다 보셨나요?) 와 같은 형식도 이 완료형의 일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동작의 완료를 강조할 때는 be가 아니라 have를, 상태의 완료를 강조할 때는 have가 아니라 be를 사용합니다.
2018-04-19 18:37:15 | 심재범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분이 요한일서 3장 1-8절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하기에 잠시 글을 씁니다.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게 하셨는가. 그런즉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 3 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분께서 순결하신 것 같이 자기를 순결하게 하느니라. 4 누구든지 죄를 범하는 자는 율법도 범하나니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이니라. 5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을 제거하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알거니와 그분 안에는 죄가 없느니라. 6 누구든지 그분 안에 거하는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누구든지 죄를 짓는 자는 그분을 보지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7 어린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분께서 의로우신 것 같이 의로우며 8 죄를 범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죄를 짓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이것이니 곧 그분께서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려는 것이라. 9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분의 씨가 그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 그는 [하나님]에게서 났으므로 죄를 지을 수 없느니라.  6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분 안에 거하는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누구든지 죄를 짓는 자는 그분을 보지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9절은 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9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분의 씨가 그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 그는 [하나님]에게서 났으므로 죄를 지을 수 없느니라.  질문은 참 단순합니다. 구원받은 우리도 매일 죄를 지으며 우리 스스로 그것을 분명히 아는데 어떻게 하나님에게서 난 자가 죄를 범하지 않느다고 말하느냐? 성도는 두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은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있습니다. 당연히 새 사람은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였으므로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육신 안에 있는 옛 사람은 이 땅에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죄를 짓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로마서 7장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인정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내가 원하는 것 즉 그것은 내가 행하지 아니하고 내가 미워하는 것 즉 그것을 내가 행하기 때문이라. 16 그런즉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내가 행하면 율법이 선하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율법에 동의하노니 17 그런즉 이제 그것을 행하는 자는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  즉 새 본성의 새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옛 본성의 옛 사람은 죄를 짓습니다. 옛 사람(혹은 죄가)이 죄를 지으니 아무리 죄를 많이 지어도 괜찮다고 하면 절대 안 됩니다. 구원은 마음대로 죄를 짓는 면허를 주지 않습니다. 다만 피나는 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7장 끝의 바울의 결론을 보기 바랍니다. 21 그런즉 내가 한 법을 발견하노니 곧 내가 선을 행하기 원할 때에 악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가 속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23 내 지체들 안에서 다른 법이 내 생각의 법과 싸워 내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내가 보는도다. 24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런즉 이와 같이 내 자신이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되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로마서 7장과 요한일서 3장을 같이 읽어 보면 좋겠습니다.그리고 로마서 8장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2018-04-04 12:59:27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욥기 31장 31절의 뜻이 무어냐고 묻기에 글을 씁니다. 29 혹시 나를 미워한 자가 멸망당하는 것을 보고 내가 기뻐하거나 그가 화를 당한 때에 내 자신을 높였던가. 30 나는 그의 혼이 저주받기를 원함으로 내 입이 죄를 짓게 하지 아니하였노라. 31 혹시 내 장막의 사람들이 이르기를, 오 우리가 그의 살을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만족할 수 없노라, 하지 아니하였던가.  무심코 31절을 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31장에서 욥은 자신의 의로운 과거 행적을 말합니다.  29-30절을 보면 그는 자기를 미워하고 저주한 자가 망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이어서 31절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의 장막 사람들 즉 가족들, 친척들, 종들은 욥을 미워하는 자를 보고 “우리가 그의 살을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만족할 수 없노라, 하고 말하였습니다. 즉 그들의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록 욥은 그를 용서하는 일에 만족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의 살을 먹기 전까지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 매튜 헨리 주석이 이를 잘 보여 주므로 영어지만 같이 올립니다.  샬롬 (*) 앞으로 1-2년 내로 마제스티 판 교정을 다 끝내고 출간하면 성경의 모호한 구절들을 가능한 한 모두 설명하려고 합니다. 저 역시 자꾸 읽으면서 여러 가지를 보며 많이 배웁니다. Job 31:31He was violently urged to revenge, and yet he kept himself thus clear from it (v. 31): The men of his tabernacle, his domestics, his servants, and those about him, were so enraged at Job's enemy who hated him, that they could have eaten him, if Job would but have set them on or given them leave. "O that we had of his flesh! Our master is satisfied to forgive him, but we cannot be so satisfied." See how much beloved Job was by his family, how heartily they espoused his cause, and what enemies they were to his enemies; but see what a strict hand Job kept upon his passions, that he would not avenge himself, though he had those about him that blew the coals of his resentment. Note, (1.) A good man commonly does not himself lay to heart the affronts that are done him so much as his friends do for him. (2.) Great men have commonly those about them that stir them up to revenge. David had so, 1 Sam 24:4; 26:8; 2 Sam 16:9. But if they keep their temper, notwithstanding the spiteful insinuations of those about them, afterwards it shall be no grief of heart to them, but shall turn very much to their praise.(from Matthew Henry's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PC Study Bible Formatted Electronic Database Copyright ?2006 by Biblesoft, Inc. All Rights reserved.) 
2018-03-16 13:58:36 | 관리자